New Era of Action RPG
근 20~30년 정도 되는 컴퓨터 게임의 역사에 있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장르는 바로 RPG입니다. 지난 근 30년 가까이 수많은 RPG 들이 탄생 되었고, 게임의 역사에 족적을 남겼죠. 아카라베스, 울티마 시리즈, 위저드리 시리즈,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바드 테일 시리즈,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폴아웃 시리즈, 엘더 스크롤 시리즈 등등 올드 게이머라면 각자 한가지의 추억정도는 갖고 있을 이름들이죠. 하지만, 게임의 중심이 콘솔로 옮겨지고, 게임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RPG 장르는 쇠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RPG 보다는 다른 장르와 섞인 하이브리드 형태의 RPG 장르가 게임의 주류를 이루게 되죠.
근래 콘솔 위주의 게임 시장 이전에도 RPG와 다른 장르, 특히 액션 장르를 섞은 게임은 많이 존재하여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시리즈 입니다. 원래 로그 라이크 라는 고유의 RPG의 하위 장르에서 시작된 디아블로 시리즈는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면서 '핵 엔 슬래쉬 RPG'라는 특유의 장르를 형성하게 됩니다. 디아블로 시리즈와 디아블로의 아류작들은 기본적으로 정통 RPG에서 케릭터 육성과 아이템의 수집이라는 요소를 극대화 시켰고, 이러한 디아블로 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또한 게임 산업이 발달할 수록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한데 섞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특히 액션 게임에서 RPG의 성장과 수집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토타입 같은 경우에는 유전 물질을 지속적으로 습득하여서 이를 통해서 기술을 해제하고, 인페이머스는 선과 악의 선택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등 본격적으로 액션 게임에 RPG 적인 요소를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RPG이면서 액션 장르의 화법을 적용한 게임은 대단히 적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디아블로 시리즈 등의 핵 앤 슬래쉬 RPG가 이러한 게임들의 전부라 할 수 있죠.
물론, 그러한 게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 위대한 명작으로 칭송 받는 데이어스 엑스나 시스템 쇼크 시리즈들은 RPG와 액션, 특히 FPS와의 절묘한 조화로 지금까지도 게이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게임적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판매량입니다. 특히 시스템 쇼크 2 같은 경우에는 엄청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10만장도 팔지 못하였고, 데이어스 액스는 한글화까지 하였음에도 한국 판매량이 2자리 수도 안된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고 있죠. 이는, 이러한 게임들이 가볍게 플래이하기에는 그 당시로서는 너무 헤비한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Paradigm Shift
바이오웨어의 신작인 메스 이펙트 2 는 제작년에 나온 SF TPS RPG 메스 이펙트 의 후속작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전작처럼, 이번작도 Xbox 360과 pc 로 동시 발매함으로써 전작을 뛰어넘는 판매량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정통 RPG를 추구한 전작과 달리 이번 2편은 본격적인 액션 게임을 지향합니다. 인벤토리의 삭제, 스킬시스템의 간소화, 로드아웃 개념의 도입, 미션단위의 게임구성, 동료 지휘 및 스킬 시스템의 간소화 등 일반적으로 rpg 에서는 볼수 없는 액션게임 적인 요소를 상당히 집어넣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메스 이펙트 2는 RPG가 아니라 액션 게임으로 분류해도 뭐라 반박 할 수없는 수준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스 이펙트 2 는 일반적으로 rpg 장르로 분류되죠. 그것은 메스 이펙트가 본질적으로 rpg장르로써 갖추어야할 그 무엇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위에서 언급했던것처럼 액션 게임과 RPG장르 사이의 하이브리드장르로써 대부분의 게임에 전자의 요소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액션 게임에 RPG적 요소를 가미한듯한 게임의 형태를 띄었지만, 메스 이펙트 2는 오히려 그러한 조합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RPG에 액션요소를 가미한 게임으로 평가받죠.
그렇다면 메스 이펙트 2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RPG 요소가 무엇일까요? 메스 이펙트란 게임에서 액션성을 제외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메스 이펙트 2가 RPG로써 강조하는 부분, 그것은 바로 '선택과 그에 반응하는 세계'입니다. 일단 메스 이펙트 2의 기본적인 진행은 액션게임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하지만 미션과 미션이라는 분절적인 게임 진행방식을 취하고 있는 덕분에 게이머의 선택의 폭이나 개입의 요소는 상당히 줄어들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전작에 비해서 자유도는 대폭 줄어들어서 게임의 풀이 방식이 대부분 폭력적인 방식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게이머의 선택을 제한하는 큰 요소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메스 이펙트2 는 바이오웨어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완성도있는 성우의 연기와 탄탄한 대사를 기반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덮고 있습니다. 흔히 RPG 의 본좌로 평가받는 베데즈다의 폴아웃3나 엘더스크롤 오블리비언과 비교했을 때, 이미 성우의 연기 자체에서 이미 엄청난 완성도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실제 바이오웨어는 메스 이펙트 2를 만들기 위해서 트리시아 헬퍼(베틀스타 겔럭티카의 식스로 유명한 미드 전문 배우)를 기용하는 등 성우 자체에서 타게임과추타의추종을 불허할 수준인 겁니다. 이렇게 전문 성우를 기용하는 것으로 게임 내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성격을 잘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에 선과 악 성향을 결정하는 미니 게임을 도입하여서 게임에 집중하도록 하죠.
전문 성우 기용 및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짜임세 있는 게임의 구성으로 인해서 메스 이펙트 2는 게이머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하죠. 그 덕분에 게이머의 선택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는 게임 내의 선택의 순간 순간에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바이오웨어는 게이머의 선택으로인해 세계가 아떻게 반응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동료의 반응, 변화하는 세계 등을 통해서 게이머는 확실히 알 수있죠. 이와같이 게이머의 선택과 그에대해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메스 이펙트 2를 RPG로 분류하는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스 이펙트 2 같은 작품을 '혁명적'이라 평한다.
전작인 매스이펙트는 사실 액션 자체로는 썩 괜찮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TPS라는 액션 고유의 장르와 rpg라는 요소를 SF적인 세계관 아래서 통합한 시도는 높게 평가 받을 수 있지만, 각 직업군 간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점, 엄폐와 사격이 상당히 껄끄러웠다는 점, 동료의 특색이 없다는 점 등은 메스 이펙트에 있어서 액션적인 부분을 상당히 깎아 먹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2편은 이러한 전작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바이오웨어에 의해서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쓸데없이 많았던 무기 수를 10개 남짓하게 줄였으며, 각 직업 간의 스킬 차이를 두어 게임의 진행을 바꾸려 했으며, 동료들의 성격 및 특징을 분명하게 하여서 게임의 진행을 판이하게 만들고, 엄폐와 사격, 동료 위치지정과 같은 인터페이스의 보완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로인해서 게임내에서 액션부분은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되고, 게이머는 액션에 더욱 집중 할 수 있게 됩니다.
게임은 전작의 액션이 대부분 무한탄창을 이용해서 목 좋은 코너에 숨어서 무한히 총질만 하다 끝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탄창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액션 파트의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서 게임 내에서 적들에 바리에이션을 둡니다. 스텔스를 이용하는 게스 디스트로이어, 바이오틱을 이용하는 용병의 뱅가드들, 근접전 중심의 허스크와 베런 등 적들의 다양화를 통해 게임 공략에 다양한 방법을 쓰게 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분위기의 맵들과 오브젝트들을 사용하여 게이머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이와같이 액션 파트의 완성도를 높이고, 상대적으로 줄어든 rpg 파트를 영화적 연출과 성우들의 연기로 커버한 매스 이펙트 2는 지금까지 나왔던 그 어떤 rpg도 하지 못한 액션과의 성공적인(작품적인 부분 및 흥행적인 부분) 조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게임이 등장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후대의 게임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보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하나의 지침을 마련했다는 의미에서 메스 이펙트 2는 혁명적인 작품으로 기록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혁명에는 반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매스 이펙트 2가 혁명적이면서 동시에 평론 및 상업적인 측면에서 성공한 게임이라도,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매스 이펙트 2는 나왔을 당시에 일부 올드 게이머에게서 비판 또는 미묘하다는 평을 받았지요. 이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1편과 판이한 게임성, 즉 액션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게임의 구성까지도 액션 게임화 되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
전작, 매스 이펙트는 기본적으로 SF TPS RPG를 지향하는 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RPG적인 요소가 강했습니다. 탐사, 발견, 조우, 아이템의 수집, 다양한 퀘스트의 해결방식 등 기존 바이오웨어 표의 RPG에 충실한 작품이었죠. 하지만, 매스 이펙트 2는 이러한 RPG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액션과 대화로만 이루어진 작품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상, 미션 단위의 게임 진행으로 인해서 아이템의 수집이나 다양한 해결 방식이라는 RPG 적인 요소는 거의 대부분 무시되어서 전통 RPG를 기대한 올드 게이머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작품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스 이펙트 2는 미션 단위의 게임 진행으로 인해서 전반적으로 게임의 스토리가 뚝뚝 끊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게임의 주된 스토리는 콜렉터를 막는 내용인데, 실제 콜렉터와 싸우는 부분은 게임 상에서 30%가량을 차지할 뿐이고, 나머지는 주로 동료들을 모으고 동료와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할애하고 있죠. 그 덕분에 진정한 셰퍼드의 적이 콜렉터인지 아니면 용병들인지 햇갈릴 정도로 게임의 구성이 상당히 치우친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반의 '자살 미션' 이거 하나만으로 전반적으로 부족한 모든 스토리를 커버하지만, 스토리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현상입니다. 물론 전작도 상당히 난잡(?)한 시나리오를 자랑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런 이라는 한 인물의 궤적을 따라간다는 의미에서는 훌륭한 구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저는 2편에서 동료들의 개성이 상당히 강하고, 그들과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케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이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편과도 같은 그런 스토리의 중심을 확실히 하는 것이 게임의 완성도를 더욱 올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결론을 내리자면, 매스 이펙트 2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게임의 재미면에서도 그렇지만, 게임의 완성도나 바이오웨어가 게임 내에서 시도한 액션과 RPG의 조합 등은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물론 전작에 비해서 스토리 텔링의 구조나 RPG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 이펙트 2는 근래 나온 액션 RPG 중에서는 당연 독보적인 걸작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