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항상 액션과 호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기묘한 게임 시리즈였다. 오래된 팬들은 1편과 2편의 호러 분위기를 떠올릴 것이고, 최근 팬들은 4편과 5편 이후로 보여주었던 액션의 분위기를 떠올릴 것이다.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은 4편이라는 걸출한 게임이 나온 이후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호러와 액션이라는 두 컨셉을 보유한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호러와 액션은 겉보기와 다르게 서로 상충되는 지점이 많은 컨셉이라는 점이다:두려운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과연 두려움이 성립할 수 있을까? 파괴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액션이 성립할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항상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액션을 잡자니 호러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호러를 잡자니 액션의 정체성이 약해지는 것이 문제였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의 성공 이후, 시리즈 정체성이 크게 흔들렸던 5편과 6편에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호한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6이 액션으로써, 지금까지의 모든 바이오하자드를 종합하려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게임을 만들었고, 7은 일종의 소프트 리부트로써 시리즈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재밌는 점은 7의 성공 이후 8편이 보여준 행보는 6편으로의 회귀(모든 것에 대한 집대성)이었는데, 캡콤의 머릿속에는 6편의 실패와 별개로 바이오하자드의 정점은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집대성이라 판단한 부분들이 크다.
바이오하자드 9는 바이오하자드 6과 비슷하고 8편보다도 6에 더 가까운 게임이다. 6과 비슷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모든 게임의 집대성을 구성하려 했던 바이오하자드 6을 캡콤 나름대로 다시 재현한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바이오하자드 8편도 어떻게보면 그러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집대성이었는데, 액션과 호러를 어떻게든 분배해서 게임을 만들고자 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편이 놀이공원의 어트랙션으로 4개의 색다른 경험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 배분이나 흐름이 뚝뚝 끊긴다는 한계 또한 명확했는데, 9편의 경우 이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캡콤의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 및 완성도가 올라갔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바이오하자드 9의 핵심은 재밌게도 8편의 어트렉션 구성과 유사하다. 여기서 어트랙션 구성이란, 게임의 구성이 깊이있게 구성되어 있다기 보다는 지나가면서 다양한 것들을 체험하고 경험해볼 수 있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바하 4의 체술 플레이와 업그레이드 등의 기믹들이 그 기믹들로 게임을 풀어나가고 심화시켜 발전시키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면, 바하 8편의 경우 시스템을 간소하게 여러개를 갖춰놓고 플레이어가 모든 경험들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즉, 개별개별 경험의 깊이는 여타 바하보다 얕게 간소화된 기준으로 즐기게 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골고루 체험해볼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분이 불균형하긴 하지만, 바하 8은 최초로 바하 시리즈의 모든 것을 담는데 성공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9는 8편을 더 고도화시키고 다듬어서 6편에 더 가까워진 게임이다. 즉, 시리즈 전체를 모두 아우르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바이오하자드 9은 다른 게임이라면 찾아볼 수 없는 상당히 과감한 시도들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2 주인공 체제를 취하면서 게임의 층위를 서로 다르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3인칭과 1인칭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레온 파트에서는 3인칭을, 그리고 애슐리 파트에서는 1인칭으로 진행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1인칭으로 게임을 할 때는 바이오하자드 7이나 8의 공포 파트를 떠올리게 하지만, 3인칭으로 플레이하는 레온 파트의 경우는 액션이 강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기본적으로 바이오하자드 9의 두 주인공의 시스템은 공통된 시스템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좀비의 경우, 무릎을 쏘거나 머리를 쏘면 경직이 걸리는 것은 레온이나 애슐리 파트나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이후에 할 수 있는 액션이 레온과 애슐리가 서로 다르다는게 핵심이다. 애슐리의 경우에는 적을 밀치는 것 정도의 액션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지만, 레온 같은 경우 전술 도끼로 근접전을 하거나 다양한 액션으로 파생시킬 수 있다. 즉 게임 시스템 자체는 동일한 것을 쓰고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짓고 있다.
물론 게임의 깊이로만 따진다면 각각의 시스템과 컨셉은 바이오하자드 4편이나 7편 같은 게임들과 비교한다면 그렇게까지 깊이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8편과 같이 바이오하자드 9편의 핵심은 모든 것을 경험으로 즐기게 만드는 것이지, 하나의 경험을 최대한 깊이있게 즐기는 그런 류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4편이나 7편, 혹은 2편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도 분명하게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시리즈의 팬덤이 양분된 상황에서 양쪽의 팬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러니까 액션과 호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 바이오하자드 9편은 많은 시도를 했고, 그리고 성공했다.
물론 구조적으로 본다면 9편은 8편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어트랙션으로서의 완성도는 더 뛰어나진 부분이 있다. 구조적으로는 8편은 비슷하긴 하지만, 4개의 가문 당주가 동일한 비중으로 보여준다기 보다는 각 스테이지간 불균형이 심했었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9 레퀴엠의 경우에는 이 둘 사이에서 스토리나 연출, 게임 플레이 관점에서 상당히 조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8편이 구성하고자 했던 게임의 경험을 9편을 통해서 완성을 시킨 셈이다. 거기에 RE2편부터 지금까지 이어왔던 라쿤 시티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짓는다는 점에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서비스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본인은 스위치 2 버전으로 게임을 클리어하고 플레이하였으며, 생각보다 게임 플레이가 수월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물론 가변 30~60 프레임을 오가는 프레임 페이싱 때문에 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게임 자체가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던가 게임을 즐기는게 힘들 정도로 그래픽 저하나 성능 저하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최고의 바하 9 경험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하 9 스위치 2 버전은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바이오하자드 9 레퀴엠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집대성이자, 바이오하자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깔끔하게 정리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4편과 구작들 사이에서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요소들을 어떻게든 타협을 시키고, 양쪽의 경험 모두 바이오하자드의 게임 플레이라고 포용하고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턴제 액션 게임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마치 모순된것처럼 들린다. 액션 게임 장르는 기본적으로 실시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공격, 방어, 회피의 모든 합들이 실시간으로 흐르면서 진행되고, 플레이어는 그 와중에 빠르게 앞 뒤를 판단하면서 싸워야 한다. 행위들이 실시간으로 물흐르듯이 이어지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턴단위로 모든 행위가 끊겨있는 턴제 게임과는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장르적으로 본다면 턴제 액션 게임이라는 장르는 장르 구분에서 나오지 않는 장르이기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자:아무리 액션 게임의 행동들이 실시간이라는 시계열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는 해도 실제 행동의 개념 자체는 분절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격과 방어라는 행위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행위들이지만, 동시에 같은 시간 내에서 섞이지 않는 분리되며 서로 다른 성질과 특질을 가진 행위이다. 즉, 그렇기에 이 두 행위는 서로 다른 행위이며 구분되는 행위다. 행위 자체가 분절되어 있다는 점에서 턴제 게임의 기본적인 전제를 충족한다. 흥미롭게도, 행위의 분절과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실시간 액션 게임은 턴제 게임과 맥락을 같이하고, 이 덕분에 이 두 장르의 기이한 혼종이 성립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턴제 액션 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둘의 근원적인 결합이 아닌, 상당히 모호한 경계에서의 두 장르의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감각'이다. 턴제 게임과 액션 게임이 행위의 분절이라는 단위에서 서로 같은 레벨의 관념과 시스템을 공유한다면, 그렇다면 이 둘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바로 실시간이라고 하는 타임라인이다. 하지만 실시간 내에서 행동이 분절되고, 행동들이 타임라인을 채워넣는 구조가 된다고 한다면 실시간과 턴제의 턴은 실제로는 개념적으로는 상당히 유사한(실제로도 그러한) 관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정리하는 외부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러한 것이고, 실제로는 실시간은 흘러가는,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 인지와 관계없이 계속 흘러가는 속성 때문에 시간 조차도 분절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는 턴제와는 다른 느낌이 된다. 재밌는 점은 우리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 보는 타임라인이라는 하나의 벡터의 관점과, 시간과 선택 행동을 모두 턴의 단위로 분절하고 바라보는 턴제의 관점 모두 게임의 외부(게임의 바깥, 그러니까 게임의 구조를 관망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동일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체감하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 둘은 전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 대칭되는 무언가로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시간의 개념과 우리 머릿속 관념화되고 개념화된 시간의 개념은 같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서로 완전히 다른 느낌과 감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의 차이는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근본적인 차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들은 시간의 흐름이 불가피하게 흘러감을 느낀다. 이 불가피성, 도래하는 시간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끊임없이 흐른다는 감각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모든 행위에 독특한 감각을 부여한다. 매순간 순간 스쳐지나가는 느낌과 압박, 긴장감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게임들에서 느껴지는 일반적인 감각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턴제 액션 게임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은 치환하여 본다면 어떻게 해야 턴제의 구조를 들고 오면서 액션 게임에서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구현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즉, 턴제 액션 게임이라는 것은 장르적인 모순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불가능한 게임이 아니라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감각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라는 일종의 공감각적인 장르라 할 수 있다. 즉, 불가능한 장르가 아닌 우리의 인식을 가지고 노는 대단히 전위적인 장르인 것이다.
샷건 킹즈와 쇼군 쇼다운은 이러한 장르들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샷건 킹즈는 자신이 유일하게 조작할 수 있는 흑말의 왕이 되어서 백말 전체와 싸우는 게임이고, 쇼군 쇼다운은 수평선 위에서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적들과 싸우는 게임이다. 양쪽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턴제 액션 게임의 양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분명 턴으로 분절되어있는 게임 구조지만, 실제 플레이되는 감각은 액션 게임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이 두 게임이 서로 다른 전통과 서로 다른 표현방식,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사한 방법론을 취한다. 우선 샷건 킹즈를 보자. 플레이어는 상하좌우대각선 모두로 이동할 수 있지만 한 칸만 이동하는 기물인 왕을 이용하는 대신 산탄총으로 상대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게임의 흐름(상대방에게는 모든 체스 기물이 있고 말이 여러개가 있기 때문에 왕 기물 하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을 게임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산탄총이라는 기믹을 이용해서 풀어나간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기존 턴제 게임에서 느끼지 못하는 슈퍼 플레이(산탄총으로 한번에 여러 기물을 잡아내는 것)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체스의 룰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게임은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적들은 계속해서 몰려오지만 플레이어는 단 한번이라도 체크메이트를 허용하면 죽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쇼군 쇼다운은 간소화된 인투 더 브리치 같은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수평선 위에서 좌와 우 밖에 없고, 전투도 주어진 무기들만 사용할 수 있는 등 게임 자체만 놓고 본다면 대단히 단순한 게임이다. 그러나 쇼군 쇼다운의 진가는 게임을 단순하게 만드는 동시에 단순화된 흐름을 통해서 게임에 속도감을 부여했다는 것인데, 자리를 바꿔서 상대의 공격을 피한다던가 혹은 상대의 공격을 다른 적이 대신 받게 만든다던가 여러명의 적을 한번에 처치하던가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그랬던 것처럼 게임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표시해주는데, 미래에 적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언제 적이 리필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플레이어가 이 과정과 상황들을 자유롭게 통제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게임의 핵심은 바로 턴제이지만 실시간 게임에 준하게 빠른 속도감을 게임 전체 템포에 부여함으로써 액션게임의 감각을 비슷하게 구현했다는 점에 있다. 재밌는 점은 이 속도감과 턴제 특유의 시간을 숙고하면서 고려하는 감각이 공존한다는 것인데, 빠르게 진행될 때는 빠르게 진행되다가도 어렵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되면 게임의 속도가 갑자기 급격하게 느려진다. 즉, 시간이라는 개념이 이 두 게임에서는 상대적이고도 절대적인 개념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플레이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시간의 흐름이 유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게임 모두 인디 게임으로써 훌륭한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무작위성에 의존하지 않고 전략적이면서도 플레이어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