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스타크래프트, 커멘드 앤 컨커 등과 같은 RTS 장르의 흥행은 이제 20년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장르적으로 본다면, 이 장르가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수많은 재미 요소들은 재해석 되서 다양한 게임으로 분화되어 나갔기 때문에 더이상 20년전과 같은 메이저한 장르로 자리매김 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RTS 장르의 쇠락은 장르의 새로운 흐름들을 창조해냈다. 하나의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파생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RTS에 매료되는 것들을 이어받아서 게임을 간소하고 즐기기 쉬운 구조로 만들기 시작했다. 요컨데, RTS는 분화되기 전의 거대하고 복잡한 맥락을 가진 장르였다면, 분화된 이후의 파생 장르들은 좀 더 간소화되고 핵심적인 요소로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RTS 장르의 핵심은 전쟁의 모든 사이클을 관리하고, 승리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RTS 장르는 전통적으로 이 과정들을 자원의 획득과 관리 - 유닛의 생산, 전략의 수립 - 정찰과 교전 - 승리로 이어지는 구조로 구성하였다. RTS 장르가 처음으로 등장하고 인기를 끌기 시작했었던 때에는 이것들을 시뮬레이션, 즉 정교한 구조로 만드는데 집중하지 않았다. 즉 RTS 장르의 핵심은 현실의 복잡한 전쟁의 구조를 단순화 시켜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게임을 즐길 수 있게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게임화를 통한 단순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RTS 장르는 '거대한 구조'를 갖고 있는 장르였다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예를 들어보자. 플레이어는 처음에 주어지는 일꾼 4마리와 전진 기지를 활용해서 자원을 모으고 병력 생산 시설을 짓고, 병력을 생산해서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병력을 보내 적을 격파하고, 최종적으로는 전멸시켜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이 전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내가 어느 시점에 정찰을 해서 상대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고 파악할 것인가, 일꾼을 전혀 생산하지 않고 4개의 일꾼만 이용해서 빠르게 병력만 뽑아서 적이 준비가 되기 전에 끝내버릴 것인가, 내가 어떤 병력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 어느 시점에 보조 기지를 지을 것인가 등의 다양한 선택지와 분기들이 존재한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테크트리로 나뉘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 플레이가 선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선택하고 긴장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신경을 써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게임이 오래될 수록 발견되는 '의도하지 않는 테크닉'(예를 들어 스타크래프트의 버그성 테크닉인 뮤탈 뭉치기 같은 것들)들이 등장하면서 게임 진입 장벽을 크게 높이는 이슈를 만들어냈다.

이런 점에서 RTS들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시뮬레이션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단순화되어 있지만, 동시에 너무 다양한 흐름들이 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플레이어의 피로도가 매우 높은 장르였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생산, 보급, 전략, 전술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단순화 시켰지만, 그 단순화 시킨 요소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게임의 복잡성을 더 올려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RTS의 강점을 이어받은 게임들은 RTS의 매력을 분해하여 다른 요소들을 축소 시키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AOS 장르의 사례를 보도록 하자. AOS 류에서 중요한 것은 장르의 핵심은 플레이어가 성장한다는 것도 있지만, 플레이어를 둘러싼 환경들이 전장이고, 단순하긴 하지만 미니언의 존재가 파밍 대상 이상의 가치(티워의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막아주는 몸빵 역할을 한다던가, 타워를 터뜨린다던가, 넥서스를 무너뜨린다던가 등)를 지니고, 단순화되긴 했지만 전장을 구성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여기서 AOS 장르가 주목한 것은 별동대이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특수부대의 컨셉을 살리는 것이었다. 여기에 RPG 요소를 살려서 성장과 아이템 세팅의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들은 이런식으로 전장의 몇몇 요소들을 더 발전 강화시키고 전장의 나머지 부분을 간소화 하는 트렌드를 통해서 RTS라는 장르가 재발견되기는 했어도, 역으로 '생산'이라는 요소를 강조한 게임은 흔치 않았다. 아무래도 RTS에서 생산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기 시작하면, 심시티와 같은 시뮬레이션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해석이 일어났다:팩토리오는 RTS에서 생산이라는 요소를 더 세분화해서 만든 게임이다. 여기서 핵심은 기존의 생산을 자동화와 공장의 개념으로 재해석 하고, 규모를 키웠다. 팩토리오의 등장은 게임의 재미라는 요소 관점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는데, 그것은 생산을 자원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완성품으로, 완성품에서 더 고차원적인 도구로 이어지는 복잡한 테크트리와 생산 과정이었다. 물론 플레이어가 외계의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방어선을 만들고, 강한 무기를 제작하고. 싸우고 자원을 탐색하는 과정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다른 RTS 게임들에 비교하면 상당히 경량화 되어 있다. 즉, 다른 RTS들의 변종들처럼 팩토리오도 RTS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변형된 형태의 게임을 만든 것이다.

재밌는 점은 팩토리오 자체가 자동화된 생산 라인을 만드는 게임에 대한 유행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물론 AOS나 다른 RTS의 변종들만큼의 엄청난 인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디 게임에서는 계속해서 꾸준히 아종들과 변종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재밌는 점은 그것이 생산과 자동화라는 수단이 핵심이지만, 동시에 그 수단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서로 다르고, 컨셉들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팩토리오의 등장은 이러한 수단들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흥미로운 변종들도 있다. 킹 이즈 와칭  같은 경우에는 게임의 거의 대부분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원이 만들어지고, 병력들은 자동으로 생성되며, 그리고 병력들은 자동으로 전투를 수행한다. 킹 이즈 와칭에서 플레이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은 왕의 시선(보고 있는 동안은 자원과 병력을 생산할 수 있는 일정 영역)을 조작하고, 추가적으로는 병력들이나 생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마법을 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팩토리오의 흥미로운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자동으로 진행하는 대신, 플레이어가 어떤 테크 트리로 어떻게 진행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게끔 하는 부분이 있다. 킹 이즈 와칭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자원과 병력들을 생성하는 테크트리를 로그라이트 형식으로 해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인데, 손에 잡히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이용해서 웨이브를 막고 살아남아야 한다. 자원과 병력의 생성, 테크 트리를 임기응변식으로 구성하되 구성을 상당히 단순하게 구성했다.

킹 이즈 와칭은 대담한 시도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잘 작동하는지는 좀 더 테스트를 하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RTS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생산과 병력 관리라는 영역만 집중해서 게임을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자원과 병력을 구성하기 위해서 상당히 선택지가 많은 점, 그리고 생산 외에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엔드 게임에서 게임이 구성하고 싶은 바를 정확하게 끝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는 조금은 미지수다. 게임이 재미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처음 3~4시간은 게임을 이해하는데 쏟아부어야 하는데, 문제는 해금해야하는 요소들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의 그림을 보고 어떤 게임인지 이해하는데는 꽤나 러닝 커브가 들어가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아이디어는 톡톡 튀지만, 플레이어가 배우고 컨트롤하는 과정이 너무 많다. 재밌는 점은 제작사가 게임을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하는 동시에, 비슷한 컨셉의 크랩 이즈 워킹이라는 게임을 새롭게 개발 중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계보가 생겨날거라 생각한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나 충격이 생긴다. 분명 세계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화들은 쪼개지고 분절되어 있으며, 같은 도구를 다르게 쓰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가령,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아이폰 같은 현대 문물들을 쉽게 접하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것이 그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서비스, 혹은 관계 이런 것들이 우리가 보는 것들과 많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은 분명 우리에게 공통된 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우리를 우리라는, 세계 시민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두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자이크와 같은 집합체임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동남아시아의 영화 미학과 우리의 영화 미학이 어떻게 다른가 이다 :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밌는 점은 베트남의 영화관들은 사시사철 공포영화를 틀어주고 있다는 게 있다. 처음에는 신기하지만, 나중에 되면 익숙해지는 광경이라 할 수 있는데, 베트남 영화관에서 보여주는 영화들의 예고편들은 적어도 하나 정도는 공포 영화 예고편이 틀어진다. 물론 모든 영화들이 우리가 국제 영화계나 이런데서 볼법한 거창한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재밌는 점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포영화들이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이 '이것은 한국이나 다른 세게에서 경험하는 공포 영화 와는 다르다' 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독특한 느낌은 한국영화나 다른 세계 공포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끈적함이다. 땀, 체액, 벌레 등등 다양한 것들이 뒤섞여서 묘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동남아시아 영화들은 이러한 분위기들이나 표현 방식들이 등장하는데, 서구 영화의 고어와는 사뭇 다르다. 서구영화의 고어들이 인간을 사물로 만들면서, 거기서 생겨나는 격차와 모독을 즐기기 위한 장치라면, 동남아시아의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끈적함은 고어와 조금은 다른, 일종의 감수성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서구영화들의 고어가 인간과 시체 사이의 개념적인 분절이 일어난다면, 동남아시아의 영화들에 드러나는 끈적함에는 일종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하나의 인간이 시체에서부터 시작해서 썩어서 정글이 되기까지, 그 과정이 동적이고 유기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등장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벌레다. 썩어가는 시체, 훼손된 신체에 벌레가 결합하면서 단순히 피를 내뿜고 무너지는 존재가 아닌, 작은 생명들이 움트고 죽음을 분해해 새로운 생명으로 만드는 그로테스크 함은 다른 세계의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경험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느낌들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언뜻언뜻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버려진 쓰레기, 길에 돌아다니는 거대한 바퀴벌레나 쥐, 해충들,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붙이, 끈적하게 비가 내리고 있면서 흙탕물을 만들어내는 환경들, 습기와 온도에 따라서 빠르게 풍화되고 노후화된 폐허들이나 구축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동남아시아의 미학들, 모든 것이 빠르게 낡고 물에 스며들며 물에 침윤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동남아시아 문화가 위생이 안좋다 라는 것이 아니라(그들과 함께 생활해보면 그들이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최대한으로 위생적이다. 그들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에서 바라보는 것들, 모든 것들이 빠르고 변화 무쌍하게 변화하며, 죽음이란 개념이 아닌 일종의 스펙트럼이라는 관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습기야말로 동남아시아 공포 영화의 핵심을 짚는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습기가 어떻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동남아시아 공포 영화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습기에 대한 이해가 한국 영화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 특유의 과장된 리얼리즘들(초창기 영화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이나 소위 땀냄새, 눈물냄새 난다는(흥미롭게도, 이 둘은 '물'을 매개로 한다) 느낌들을 어딘가 동남아시아 공포영화나 동남아시아 영화를 연상케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영화와 다르게 한국 영화에는 무언가 '날카로운 변화'들이 있다. 그 날카로운 변화라는 것은 엇박자로 불리는 뽕짝과 같은 것들인건데, 동남아시아 공포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르적인 특성들, 벌레나 습기 이런 것들이 한국 영화에서는 갑작스러운 국면 전환과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 합쳐지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어진다. 괴물의 주차장 탈출 장면을 보듯이, 딸을 놓치고 뻘줌하게 다른 곳에서 딸을 태우는 장면이나, 마치 싸울 것처럼 나서다가 도망가는 장면, 뱅글뱅글 돌면서 어지럽게 만드는 주차장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독특한 리듬감과 개념으로 변화한다. 조금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동남아시아인들이 습기와 온도가 모든 것을 나이들게 만들거 침윤시키는 과정을 보았다면, 한국인들은 극단적인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삶의 리듬과 이어짐, 모순된 것의 연결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 모순된 박자감을 익힌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다시 동남아시아 영화들로 돌아와보자. 인도네시아 영화나, 베트남 영화나, 태국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이 습기와 온도들은 외부인들이 보면 신기하지만, 동시에 자국인들이 보면 그것이 삶의 일부이자 표현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라는 하나의 동일한 장르를 점유하면서도 결국은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분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분절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가능성이다. 모두가 하나 되는 세계가 아니라 분절된 여럿이 모두가 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술이 만들어낸 디아스포라이자, 우리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일련의 편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운동하고...글쓰고...재활하고...

결혼전까지 정신 좀 차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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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기본적으로 우리가 게이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당연하게도 게임을 돌릴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이 될 것이다. 게임기, 디스플레이, 패드 등등의 다양한 물리적인 기기들이 게임을 돌릴 수 있는 최소의 구성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두 요소들이 게임을 한다는 활동을 할 때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두 요소로 자리 매김한다. 하지만, 게임의 역사가 증가하면서 이 필수 불가결한 존재 외의 제 3의 요소들이 끼어들게 되었다.

게임이 발전하게 되면서 게임을 즐기는 커뮤니티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은 게임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다크소울 시리즈의 암령이나 잔상 같은 존재들은 싱글플레이 게임인 다크소울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단순히 협력과 경쟁의 요소를 넘어서 새로운 경험을 구축하는 장이 되었다. 게임의 경험이라는 핵심을 둘러싸는 '문화'가 게임의 일부이자 시스템으로 편입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커뮤니티를 게임의 일부로 통합하려는 시도들은 새로운 물리적인 장벽을 만들게 되었다. 커뮤니티를 게임 내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게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외부의 요소들과 게임이 연결되어야 한다. 즉, 인터넷의 존재가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필연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멀티플레이를 하지 않는 게임들도 항시 게임 연결을 요구하고 게임의 경험이 달라지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인터넷 연결이 모든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프라인 모드의 존재라는 미니멀리즘적인(?) 게임 플레이 스타일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게임들은 게임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인터넷 연결을 항시해야지만 완결된 구성을 보여주는 구조를 띄게 되었다. 즉,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고, 업데이트와 항사 서버로부터 정보를 받아오는 것이 당연하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게임을 즐기는 거실 또는 책상앞의 게이밍 환경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항시 연결되어있는 환경과 로컬에서 돌아가는 강력한 하드웨어는 게임의 경험을 항상 완결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조금만 바깥을 돌아다녀보면 느낄 수 있게 된다. 모든 상황을 열거할 수 없지만, 인터넷 연결이라는 개념은 평등하지 않다. 예를 들어서 본인이 출퇴근하는 지하철의 특정 구간은 신호가 약해져서 접속이 어려워지는 구간이 존재한다. 이런 구간에서 접속은 매우 불안정해져서 게임 자체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환경이 좋은 한국에서도 이러한데, 해외에서 체감하는 게이밍 환경은 훨씬 더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다.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는지, 와이파이가 얼마 만큼의 대역폭을 제공해주는지, 특정 아이피가 막혀있는지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해외 게이밍에 개입된다. 인터넷은 이제 사람의 삶에 있어서 필수 공공재가 되었지만, 게임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최소 사양과 인프라는 일반적인 인터넷 환경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어서 갭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시 인터넷 연결을 전제로 하는 게이밍 환경과 별개로 주변부로 갈 수록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난 독특한 게이밍 환경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동 쪽의 철권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보자. 이들 같은 경우, ps4나 ps5 같은 기기들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사우디 쪽으로 메카 성지 순례를 가는 사람들이 이를 구매해서 돌아오는 루트 등을 통해), 동시에 인터넷 연결이나 전력의 불안정성 때문에 게임 플레이하는 문화가 여타 세계와는 다른 독특한 부분을 지니게 되었다.

뭔가 두서없는 글이지만 그렇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평등하게 분포할거라 생각했던 인프라의 존재가 생각보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차이들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 미세하고 분명한 차이들이 문화적인 차이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분명 현대 게임 문화에도 존재한다. 앞으로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 좀 더 다양한 곳과 교류하면서 이러한 문화들이 재발굴되거나 발견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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