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과거의 글 초안을 AI 도움과 과거글들을 참조해서 부활시킨 겁니다.

인왕 2는 첫인상만 놓고 본다면 다소 심심한 후속작이었다.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사무라이와 요괴들이 뒤엉켜 싸우고, 플레이어는 죽기를 반복하면서 무기와 장비를 주워 모은다. 전작에서 보았던 적과 기술들, 익숙한 스테이지의 풍경까지 생각한다면 게임이 자신의 성공에 안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쉽다. 이미 첫 인왕에서 충분히 경험했던 것들을 굳이 다시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게임을 파고들수록 이러한 첫인상은 상당 부분 수정된다. 인왕 2는 전작에서 만들어놓은 것들이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며, 그 과정에서 팀닌자가 잘하는 것들을 가장 짙게 드러내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첫 인왕을 이야기할 때, 본인은 소울 시리즈와 닌자 가이덴, 그리고 무쌍이라는 서로 다른 게임들의 계보가 만나는 지점에 주목한 적이 있었다. 죽음과 재도전을 통해 적과 스테이지를 학습하는 구조, 빠르고 복잡한 무기 액션, 짧게 나뉜 미션을 반복하면서 장비와 재화를 모으는 방식이 하나의 게임 안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디아블로의 계보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무작위로 떨어지는 장비들 사이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기술과 능력치를 조합해 캐릭터를 완성하는 과정은 인왕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왕의 흥미로움은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동떨어진 채 존재하지 않고, 전투를 하고 캐릭터를 키우는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에 있었다.

물론 이 조합은 생각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소울 시리즈에서 적을 상대하는 긴장감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격을 한 번 더 할 것인지, 회피할 기력을 남길 것인지, 상대의 다음 행동을 기다릴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반면 디아블로식 성장의 쾌감에는 처음에 자신을 가로막았던 제약들을 장비와 기술의 조합으로 넘어서는 과정이 있다. 처음에는 몇 번 쓰지도 못했던 기술을 연달아 사용하고, 한참을 두들겨야 쓰러지던 적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것이다. 행동의 제약에서 오는 긴장과 그 제약을 극복하는 성장의 재미를 함께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수치가 모든 것을 해결하면 액션을 익힐 이유가 줄어들고, 손으로 하는 것만 중요하다면 장비를 모으는 과정은 곁다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인왕은 잔심이라는 시스템으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기본 골격을 만들었다. 공격에 사용한 기력의 일부를 적절한 타이밍에 되찾는 잔심은, 플레이어가 전투 중에도 다음 행동을 위한 자원을 직접 확보하게끔 한다. 요괴가 만들어놓은 영계를 정화해 기력 회복을 방해하는 공간을 지우는 것도 잔심의 역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복이 전투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공격을 하고, 그 공격의 끝에서 기력을 되찾고, 되찾은 기력을 다시 공격과 회피에 사용하는 과정이 하나의 조작으로 이어진다. 플레이어가 잔심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같은 무기를 들고 있어도 전투의 호흡은 크게 달라진다.

이 위에 무기마다 다른 기술과 상중하단의 자세가 얹힌다. 같은 적을 상대하더라도 어떤 자세에서 어느 기술을 이어갈 것인지에 따라서 플레이어가 확보할 수 있는 거리와 공격의 기회가 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적의 공격이 끝난 뒤 칼을 몇 번 휘두르고 도망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익숙해지면 자신이 원하는 거리와 리듬으로 싸움을 끌고 갈 수 있게 된다. 인왕에서 기력을 관리한다는 것은 그렇기에 단순히 게이지가 바닥나지 않게 조심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기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되찾는가가 플레이어의 공격성을 결정하고, 그 공격성을 얼마나 정교하게 통제하는가가 실력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만 첫 인왕은 이 골격이 앞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채운 게임은 아니었다. 전작의 액션은 이미 훌륭했지만, 그 액션을 반복해서 받아줄 적과 상황의 다양성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본적인 전투가 재미있다는 것과 그 전투를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는 과정까지 완성되어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이후 DLC를 거치며 무기와 고난도 콘텐츠, 성장의 가능성이 늘어났고, 게임이 오래 반복될 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정리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첫 인왕은 기본 골격을 확립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 골격 위에 아직 더 쌓아올릴 것이 남아 있었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왕 2는 그 누적된 결과에서 출발한다. 전작의 무기와 적, 전투의 규칙을 이어받았기에 외형상 변화가 작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들 위에 새로운 시스템을 더했을 때, 이전의 요소들이 맡는 역할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게임은 보여준다. 본편의 요괴 스킬과 요괴화, 이후 DLC와 업데이트를 통해 늘어난 무기와 백귀야행 두루마리, 나락옥에 이르는 구성은 그 방향으로 이어진다. 인왕 2의 변화는 새로운 목록이 얼마나 길어졌는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 목록을 구성하는 것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기존 전투를 얼마나 달라지게 만드는가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요괴 스킬과 이를 제공하는 다마시로의 존재다. 플레이어는 요괴를 쓰러뜨리고 얻은 다마시로를 수호령에 동조시켜 적의 기술을 자신의 공격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다마시로는 사용할 요괴 스킬을 결정하는 수단이면서, 각종 특수 효과를 지니고 강화할 수 있는 파밍의 대상이기도 하다. 즉, 어떤 요괴의 기술을 쓸 것인지라는 액션의 선택과 어떤 효과를 모아 캐릭터를 구성할 것인지라는 성장의 선택이 같은 대상으로 모인다. 무기와 방어구에 더해 주워야 할 물건이 하나 늘어났다는 식으로 설명하기에는, 이것이 전투와 성장 양쪽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먼저 액션의 관점에서 보자. 기존의 인왕에서는 무기와 자세, 습득한 기술들이 플레이어가 전투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인왕 2에서도 이 기본은 유지되지만, 요괴 스킬은 그 사이에 무기만으로는 하기 어려웠던 행동을 끼워 넣는다. 떨어진 적에게 공격을 닿게 하거나, 여러 적을 함께 압박하거나, 상대의 기력을 크게 깎는 식으로 자신이 든 무기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 같은 칼이나 창을 들었더라도 어떤 요괴 스킬을 고르는가에 따라서 부족한 사거리를 보완할 수도 있고 적의 기력을 무너뜨리는 데 집중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가 무기의 성격을 받아들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 손댈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요괴 스킬이 기력과 별개인 요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근접 공격으로 요력을 쌓고, 그렇게 확보한 요력을 요괴 스킬에 소비할 수 있다. 무기로 공격하면서 기력이 줄어들었을 때 요괴 스킬을 이어주면, 공세를 유지하는 동안 기력이 회복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다시 무기 기술로 돌아가 공격하고 요력을 쌓는다. 잔심이 무기 공격의 끝에서 기력을 되찾게 했다면, 요괴 스킬은 기력을 회복하는 시간에도 적을 압박할 수 있게 만든다. 기력과 요력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공격을 지속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 음양술과 인술이 들어오면서 전투의 선택지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무기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속성 상태이상을 부여하거나, 자신의 공격과 방어를 보완하고, 상대의 빈틈을 다른 방식으로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법의 가치는 이후의 무기 공격과 요괴 스킬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가에서도 드러난다. 처음에는 외워야 할 것이 많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시스템들이, 익숙해질수록 한 번의 공격 기회에서 더 많은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수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요괴화와 특기도 이 흐름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입한다. 암리타 게이지를 채워 요괴로 변하는 요괴화는 평소의 무기와 다른 전투 방식을 열어주며, 붉게 빛나는 적의 큰 공격에 대응하는 특기는 적이 공세를 취하는 순간에 플레이어가 싸움의 흐름을 되찾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을 요괴 스킬과 모두 같은 기능으로 묶을 수는 없지만, 전작보다 더 많은 순간에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전투에 개입하도록 만든다는 방향은 공유한다. 적이 강한 공격을 준비한다고 해서 항상 물러서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무기로 밀어붙이던 흐름이 끝났다고 해서 전투의 주도권을 그대로 넘겨줄 필요도 없다. 인왕 2는 이러한 선택들을 통해 전작의 빠른 액션을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이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적의 기력과 속성 상태이상을 함께 다루기 시작할 때다. 요괴의 기력을 깎고, 무너진 상태에서 공격을 몰아넣으며, 서로 다른 속성 상태이상을 겹쳐 혼돈을 거는 과정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공격 기회를 하나의 긴 압박으로 연결한다. 혼돈에 걸린 적이 받는 피해의 증가와 기력 회복에 대한 제약까지 활용하면, 상대가 다시 자세를 정비하기 전에 더 많은 공격을 밀어 넣을 수 있다. 처음에는 적의 패턴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 겨우 한두 번 공격하던 싸움이, 익숙해지면 상대가 움직일 기회 자체를 줄여가는 싸움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적에게 같은 순서가 통하는 것은 아니기에, 여기서도 상대의 특성과 자신이 준비한 수단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파밍은 이 연결을 더 안정적이고 강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개입한다.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공격을 강화하거나, 요력을 확보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거나, 속성 상태이상이 걸린 적에게 더 큰 효과를 내는 식으로 장비를 구성하게 된다. 처음에는 공격력이 높은 무기를 고르는 것으로 충분했던 판단이, 이제는 자신이 굴리는 전투의 흐름에 어느 효과가 필요한지를 따지는 판단으로 변한다. 요괴 스킬을 더 자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무기 공격 사이의 틈을 메우기도 쉬워지고, 적의 기력을 빠르게 깎을 수 있다면 긴 기술을 몰아넣을 기회도 늘어난다. 숫자를 올리기 위해 모은 장비가 실제로 손으로 하는 행동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것이다.

이는 디아블로의 계보에서 파밍이 가장 재미있어지는 순간과도 연결된다. 좋은 장비를 얻는 기쁨에는 데미지가 커지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캐릭터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감각이 있다. 따로 보면 사소했던 효과들이 모여 자원이 부족했던 구간을 메우고, 힘을 쓰지 못했던 기술이 다른 효과와 결합해 핵심 공격이 되는 것이다. 인왕 2는 이 과정을 상당히 정교한 무기 액션 위에서 진행하게 만든다. 어떤 세팅이 좋은지를 이해하는 일과 그 세팅을 전투 중에 제대로 사용하는 일이 계속 맞물리기에, 장비를 맞추는 시간과 실제로 싸우는 시간이 서로의 목적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변화들이 쌓이면 게임의 속도감도 크게 달라진다. 처음에는 잔심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 공격한 뒤 회피할 기력을 남기는 것에 신경을 썼다면, 나중에는 적의 기력을 어느 시점에 무너뜨리고 그 틈에 어떤 공격을 몰아넣을 것인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무기 공격과 요괴 스킬, 술법이 서로의 빈틈을 메우고 장비가 그 효율을 높여주면서, 쉬어야 했던 시간이 점차 공격하는 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기력의 부족을 의식하면서 시작한 게임이 자신이 준비한 공격을 얼마나 밀도 있게 쏟아부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임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느껴지는 속도는 캐릭터의 동작이 무조건 빨라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행동 사이의 공백이 줄어들면서 만들어지는 속도다. 물론 기력 관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관리하는 방법이 몸에 익고 그 위에 세팅의 효과가 더해지면서, 노련한 플레이어가 전투 중에 쏟아낼 수 있는 것들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게임의 매력을 어디까지, 그리고 어떤 속도로 플레이어에게 보여줄 것인가다. 인왕 2의 시스템을 한꺼번에 늘어놓으면 복잡하다는 인상부터 받기 쉽다. 자세와 잔심, 다양한 무기 기술을 익히기도 벅찬데 요괴 스킬과 술법, 장비의 특수 효과까지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지칠 수밖에 없다. 인왕 2는 이 많은 요소들을 여러 회차에 걸쳐 조금씩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구조를 취한다. 첫 회차에서 게임의 모든 가능성을 소진하지 않고, 익숙해진 플레이 방식 위에 새로운 과제를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의 난이도는 첫 엔딩까지 얼마나 많이 죽는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소울 시리즈에서도 회차를 반복하면 적이 강해지고, 플레이어는 이전에 쌓은 지식과 장비를 활용해 다시 도전한다. 하지만 인왕 2에서 회차의 변화는 파밍의 단계가 넓어지는 일과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같은 적이 더 강해졌다는 변화에 더해, 플레이어가 모을 수 있는 장비와 효과, 캐릭터를 구성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다. 은총처럼 여러 장비를 조합해 추가 효과를 얻는 체계가 개입하면서, 개별 장비의 성능뿐 아니라 세팅 전체를 살펴보는 비중도 커진다. 이전까지 잘 통했던 공격이 충분한 효율을 내지 못한다면, 아직 쓰지 않았던 기술이나 장비의 조합을 살펴볼 이유가 생긴다. 회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적의 패턴을 더 잘 아는 것과 자신의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함께 요구된다.

학습의 흐름으로 보자면, 첫 회차는 무기와 잔심을 익히고 적의 행동에 적응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어지는 회차에서는 익숙해진 무기에 장비와 술법을 맞추면서 자신이 편하게 싸울 수 있는 방식을 정리하게 된다. 이후 3회차 전후부터는 속성을 겹쳐 혼돈을 걸거나 요괴 스킬로 기력을 몰아 깎는 식의 연계를 더 적극적으로 의식하게 되고, 4회차와 5회차로 나아가면서 세팅을 다듬는 비중도 커진다. 물론 혼돈이 3회차에 처음 열리는 기능이라는 뜻은 아니다.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었지만 굳이 쓰지 않아도 되었던 수단들이, 더 강해진 상대를 효율적으로 돌파하는 핵심으로 다시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왕 2의 학습곡선은 한 번 배운 것을 끝까지 똑같이 적용하는 형태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 적을 빠르게 처리하다가도 다음 단계에서 자신의 운영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때 아직 활용하지 않은 시스템을 살펴보게 된다. 여기에는 분명 어려워지는 구간과 막히는 순간이 있다. 다만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손댈 수 있는 곳이 무기 조작, 요괴 스킬, 술법, 장비의 조합 등으로 여러 군데 열려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같은 벽을 반복해서 들이받는 동안에도 자신의 무엇을 바꾸어볼 것인지 고민할 수 있고, 그 변화가 실제 전투의 차이로 돌아온다.

이 과정을 지탱하는 것은 인왕 특유의 미션 구조다. 인왕은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대신, 스테이지를 미션 단위로 나누고 그 공간과 전투를 다른 조건에서 반복해서 사용한다. 같은 장소를 다시 방문하고, 이전에 보았던 적을 다시 상대하며, 자신이 필요한 보상을 위해 특정 미션을 고르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런 구조는 처음에는 재활용처럼 느껴질 수 있고, 실제로 전작에서도 반복의 인상을 주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인왕 2에서 게임의 중심이 점차 캐릭터의 운영과 파밍으로 옮겨갈수록, 익숙한 장소는 바뀐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좋은 공간이 된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이전과 지금의 전투를 비교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백귀야행 두루마리나 봉마의 때 같은 콘텐츠는 이 반복을 서로 다른 길이와 조건으로 제공한다. 두루마리는 정해진 전투에 도전해 그 자체를 장비로 활용하고 효과를 다듬는 대상으로 이어지며, 봉마의 때는 더 어려운 미션과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한다. 나락옥과 심부에 이르면 이미 익힌 전투와 구성한 빌드를 더 높은 강도로 시험할 수 있다. 이들 모두가 처음 보는 풍경이나 완전히 새로운 적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플레이어가 자신이 만들어온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더 나은 장비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무엇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준다. 파밍을 할 장소와 그 결과를 확인할 장소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장비를 모으는 과정에 들어가는 재화도 상당하다.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얻었다고 해서 작업이 끝나지 않고, 장비를 강화하거나 효과를 조정하고 다른 장비와 맞추는 데 다시 자원이 들어간다. 다마시로와 두루마리까지 함께 손대기 시작하면 플레이어가 챙겨야 하는 것들은 더욱 늘어난다. 게임은 처음부터 파밍을 오래 할 사람들을 위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만큼 반복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반복으로 얻은 결과들이 여러 방향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당장 원하는 장비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다음 강화를 위한 재화가 쌓이고, 사용하던 무기와 술법에 대한 숙련이 높아지며, 같은 적을 처리하는 방식도 조금씩 정교해진다.

여기서 인왕 2가 제공하는 성장의 두 축이 분명해진다. 한쪽에서는 캐릭터의 레벨이 오르고 무기와 술법의 숙련도가 높아지며 장비의 구성이 좋아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들을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적의 행동과 자신의 기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 둘은 별도로 진행되면서도 서로를 밀어준다. 조작에 익숙해지면 이전에는 써먹기 어려웠던 장비의 효과를 활용할 수 있고, 세팅이 갖추어지면 이전에는 자원이나 공격 기회의 부족 때문에 이어가지 못했던 행동을 시도할 수 있다. 캐릭터가 강해지는 만큼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플레이어가 능숙해지는 만큼 캐릭터의 강점을 더 많이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에는 눈에 띄는 변화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쌓인다. 어제는 잔심을 놓치고 도망치던 구간에서 오늘은 요괴 스킬을 이어주며 공격을 계속하고, 조금 전까지 여러 번 나누어 깎아야 했던 적의 기력을 이제는 한 번의 연계로 무너뜨린다. 장비의 수치가 조금 바뀌고 기술 하나가 손에 익었을 뿐인데, 그것들이 누적되면서 같은 전투를 처리하는 호흡이 달라지는 것이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감각이 유지되기 때문에, 한 번 더 돌아서 무엇을 얻고 어디를 고쳐볼 것인지가 계속 남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야만 인왕 2를 즐겼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첫 회차만으로도 익혀야 할 전투와 상대해야 할 적은 충분히 많다. 다만 엔딩 이후에도 같은 게임을 더 깊게 파고들고 싶은 사람에게, 인왕 2는 자신이 배운 것들을 계속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흔히 이런 게임에서 볼륨이 많다는 말은 비슷한 일을 오래 시킨다는 뜻으로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왕 2의 볼륨은 플레이어가 전투를 이해하고 캐릭터를 완성하는 시간과 상당 부분 겹쳐 있다. 더 오래 플레이하는 이유와 더 잘 플레이하게 되는 과정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 게임의 반복은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인왕 2는 액션과 파밍, 게임 플레이의 깊이와 오래 즐길 수 있는 볼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정교한 액션을 요구하면서 장기간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구조를 함께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게임은 요괴 스킬을 중심으로 무기와 술법, 장비의 효과를 이어붙여 그 조합을 성립시킨다. 전작에서 빌려온 것이 많다는 첫인상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익숙한 것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동안 게임의 속도와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인왕 2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서로 다른 게임에서 가져온 구조들은 정교한 액션을 더 오래, 더 깊게 즐기게 만드는 방식으로 정리되었고, 그 결과는 마침내 '인왕'이라는 이름으로 선명해졌다. 인왕 2는 가장 팀닌자스러운 게임이며, 이들이 만들어온 액션을 성장과 반복의 구조까지 아울러 가장 완성도 높게 정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 엔딩을 포함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과거 초안으로 남겨둔 글을 AI를 활용해서 다시 살려낸 글입니다.

 

1.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참으로 기묘한 게임이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개발 기간, 당대 최고의 기술력과 재능 있는 개발자들을 투입한 트리플 A급 게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그 모든 것들을 집대성한 결과물이 반드시 훌륭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개별적인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표정과 몸짓, 폐허가 된 시애틀의 풍경,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환경과 오브젝트들의 상호작용, 그리고 인간의 신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집요할 정도로 묘사한 폭력적인 연출까지, 너티독은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기술력을 이번 작품에 쏟아부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에는 대단히 훌륭한 장면들도 존재한다. 엘리와 조엘이 함께 방문하는 박물관이나, 애비가 레브와 함께 고층 건물 사이의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는 장면, 그리고 세라파이트의 섬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투와 화재 장면 등은 너티독이 여전히 당대 최고의 연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개별적인 장면들이 아니라, 그 모든 장면들을 하나의 게임으로 엮어놓은 결과물에 있다.

 

돌이켜보면 너티독의 게임들이 보여주었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한 게임 시스템을 정교한 연출과 결합하여, 게이머로 하여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당시 유행하던 엄폐형 TPS와 플랫포밍이라는 평범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거대한 스펙타클을 구현하였고, 라스트 오브 어스는 그러한 기술적인 성취를 인간의 생존과 관계라는 미시적인 주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이 두 프랜차이즈는 서로 다른 방향성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게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게이머가 직접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과 연출을 치밀하게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차티드 4에 이르러 너티독은 이러한 자신들의 강점을 잘못 이해하기 시작했다. 더 거대한 스테이지와 더 많은 디테일, 더 복잡한 인간관계를 모두 하나의 작품에 집어넣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게임이 갖고 있었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매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당시 언차티드 4를 비판하면서 지적했던 문제는 게이머가 게임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슬프게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그때의 문제가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전작보다 더 거대한 게임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너티독이 더 많은 것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게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혼동했다는 데 있다. 전작보다 거대해진 스테이지, 길어진 플레이 타임, 복잡해진 인물들의 관계, 더욱 자극적으로 변한 폭력의 묘사 등등 게임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전작을 뛰어넘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인 팽창을 하나의 유기적인 경험으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게임은 심각한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균열의 중심에는 제작진이 생각하는 게임과 실제 게이머가 경험하는 게임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제작진은 자신들이 준비한 이야기에 따라 게이머가 분노하고,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복수의 무의미함을 깨닫기를 기대했겠지만, 정작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하는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피로감과 짜증,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크게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단순히 전작보다 못한 후속작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너무나 대단하다고 믿은 나머지 게임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잊어버린 교만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2.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게임의 플레이 타임과 그 시간을 채우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전작이 갖고 있었던 선형적인 스테이지 구조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전투 공간을 확장하고, 이동 및 전투 시스템을 개량한 작품이다. 엎드리기와 회피 동작의 추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적에게 접근할 수 있는 스테이지 구성, 인공지능의 개선과 무기의 다양화 등은 분명 전작보다 발전한 부분들이며, 특히 전투 과정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인 상황과 이에 대응하는 플레이어의 행동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근본적인 구조는 전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게이머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스테이지를 진행하고, 적들과 싸우고, 자원을 수집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 자체가 아니라, 20시간 이상 지속되는 게임 전체의 경험을 이러한 반복적인 구조만으로 지탱하려 했다는 것이다.

 

과거 언차티드나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게임들이 10시간에서 15시간 남짓한 선형적인 플레이 타임을 지향했던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당시의 기술적인 제약이나 제작비의 문제와도 관계가 있겠지만, 선형적인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공급해야 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형적인 게임에서 게이머는 제작진이 준비한 순서대로 경험을 소비하며,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자극의 강약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오픈월드 게임이나 시스템 중심의 게임들은 게이머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히 게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시간의 플레이에서 동일한 형태의 자극이 반복되면 그 효용이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한계효용 체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게임이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완급 조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이러한 문제를 개별적인 장면들의 압도적인 완성도와 디테일로 돌파하고자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게이머에게 더 많은 피로감을 안겨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가 지향했던 게임의 핵심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탄약과 제작 재료, 적들의 위협적인 공격과 불친절한 게임 시스템은 게이머로 하여금 조엘처럼 신중하고 현명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혹한 게임의 규칙은 게임의 주제와 정확하게 부합하였다: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하며, 적들을 상대할 때는 자원을 계산하고 자신의 능력과 위험을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작에서의 자원 부족은 단순히 플레이어를 괴롭히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명제를 게임 시스템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트 2에 이르러 이러한 자원 관리 시스템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적들은 더욱 다양해지고 전투 공간은 거대해졌지만, 게이머는 여전히 전작과 비슷한 방식으로 서랍을 뒤지고 탄약을 수집하고 제작 재료를 찾아다녀야 한다. 물론 난이도에 따라서 자원 부족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으며, 게임 내에서 다양한 전투 방식과 생존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원 관리라는 행위가 게임의 진행에 따라서 어떤 새로운 경험으로 변화하는가에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게이머가 아무리 많은 적을 죽이고, 수많은 스테이지를 돌파하고, 자원을 모아서 캐릭터의 능력을 성장시켜도 여전히 게임 초반과 비슷한 형태의 가난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게임 중반부에 애비로 조작 캐릭터가 변경되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엘리의 능력이 실제로 초기화되는 것은 아니며, 애비에게는 별도의 무기와 성장 시스템이 제공된다. 그러나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졌던 전투 방식과 성장의 맥락이 중단되고, 새로운 캐릭터를 조작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자원을 수집하고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자면 그야말로 '평등한 가난'이다. 누가 주인공이 되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든, 게임은 다시금 게이머를 가난한 상태로 돌려놓는다. 물론 이것은 엘리와 애비라는 두 인물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경험하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장치가 이미 장시간의 플레이로 지친 게이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의 완급 조절 역시 이와 유사한 문제를 갖고 있다. 너티독은 전작보다 거대해진 시애틀의 폐허를 대단히 정교하게 구현해 놓았으며, 그곳에 엄청난 양의 디테일과 작은 이야기들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게이머가 이러한 디테일을 모두 소비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전투를 끝내면 탐색을 요구하고, 탐색이 끝나면 새로운 인물들의 대화와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러한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금 전투로 밀어 넣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중간중간 박물관이나 수족관 같은 조용한 장소에서 인물들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 역시 제작진이 의도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용도로 활용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게임은 쉬어가는 듯한 순간에도 끊임없이 게이머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이해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강박은 게임 전체의 흐름을 느슨하게 만드는 동시에, 게이머가 앞서 경험했던 사건들을 곱씹고 소화할 여유를 빼앗는다. 언차티드 4에서 이미 지적했던 문제들이 더욱 거대한 규모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게임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본적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조엘이 엘리를 구하기 위해 파이어플라이의 병원에서 저질렀던 행동은 애비라는 새로운 인물의 복수로 이어지고, 조엘이 애비에게 살해당하면서 엘리 역시 복수를 위해 시애틀로 떠나게 된다. 이후 게임은 엘리와 애비라는 두 인물의 관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피해자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만들어내고, 폭력의 연쇄 속에서는 누구도 완벽한 피해자이거나 가해자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반드시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의 본질은 단순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재앙으로 인류의 문명이 붕괴한 이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이러한 희망은 대단히 미묘하고 불완전한 것이었다. 조엘은 엘리를 구하기 위해 인류 전체의 미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저버렸으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엘리에게 거짓말까지 하였다. 그렇기에 전작의 엔딩은 결코 단순한 해피엔딩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엘과 엘리의 관계는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테마였다:멸망한 세계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제는 게임의 생존 시스템과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에 조엘이 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맥락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파트 2는 전작이 갖고 있었던 이러한 이야기의 방향성을 상당 부분 뒤집어버린다. 전작의 폭력이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후속작의 폭력은 사적인 원한과 복수에서 비롯된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인간의 폭력성을 다루고 있으며, 전작의 조엘 역시 도덕적으로 결코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작품이 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전작이 가혹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후속작은 인간이 타인에게 저지른 폭력의 대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제의 변화 자체보다도, 이를 구현하기 위해 게임이 취하고 있는 대단히 작위적인 이야기의 구조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시애틀에서 벌어지는 3일간의 사건을 엘리와 애비라는 두 인물의 관점에서 반복하여 보여준다. 동일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사건들을 경험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대칭 구조를 형성하며, 게임은 이를 통해서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대칭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서 대단히 많은 이야기들이 짧은 시간 안에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애틀에는 WLF와 세라파이트라는 두 거대한 집단이 존재하며,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종교적 갈등을 겪어왔다. 그리고 게임은 이 두 집단의 전쟁과 몰락을 엘리와 애비의 사적인 복수극에 결합한다. 물론 이들의 갈등이 단 3일 만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오랜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두 집단의 운명을, 엘리와 애비의 개인적인 관계와 함께 3일이라는 제한된 극적 시간 안에서 보여주고자 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시애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제작진이 미리 설계한 이야기의 구조에 따라서 배치된 사건들처럼 느껴진다. 엘리와 애비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지만, 그들의 동선과 사건들은 극적인 대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묘하게 교차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위적인 구조는 두 인물의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애비는 조엘에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그에게 복수하였으며, 엘리는 애비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조엘을 잃었기 때문에 다시 복수를 시작한다. 즉 아버지를 잃은 딸이 또 다른 아버지를 죽이고, 다시 그 아버지를 잃은 딸이 복수의 연쇄에 뛰어드는 구조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설정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두 인물의 감정을 대비시키기에도 적절하다. 하지만 이처럼 선명한 대칭성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게 되면서, 인물들이 각자의 동기에 따라서 행동하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인상이 강해진다.

 

전작의 조엘과 엘리는 서로의 관계를 통해서 변화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조엘이 내리는 선택은 그러한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파트 2의 엘리와 애비는 복수의 무의미함이라는 결론을 향해서 움직인다. 애비가 겪는 고통과 엘리가 겪는 고통은 서로를 반영하도록 배치되며, 이들의 인간관계와 주변 인물들의 죽음 역시 폭력의 연쇄라는 하나의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도식적이어서, 그것을 구성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독립적인 생명력을 갖기보다는 제작진이 준비한 거대한 서사의 부속품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게임의 플레이 타임과 결합하여 더욱 심각해진다:게이머는 이미 장시간의 플레이를 통해서 엘리의 감정에 몰입한 상태에서, 다시 애비의 입장이 되어 처음부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사건들을 이해해야 한다. 제작진은 이를 통해서 두 인물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 같지만, 정작 게이머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시간과 여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4.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이러한 문제는 게임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폭력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분노가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내고, 그 폭력으로 인해서 새로운 피해자들이 나타나며, 결국 복수의 연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 자체는 대단히 보편적이며, 이미 수많은 문학과 영화, 게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다. 문제는 익숙한 주제를 다룬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주제를 게이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게임이 어떠한 연출과 시스템을 사용하는가에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펙옵스: 더 라인이라는 게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펙옵스: 더 라인은 표면적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군사 슈팅 게임의 문법을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었다. 게이머는 군인인 마틴 워커를 조작하여 두바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고, 다양한 적들과 교전하면서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게이머는 자신이 영웅적인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백린탄을 사용하는 장면이다. 게임은 게이머에게 압도적인 적들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백린탄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이후 자신이 공격한 대상에 민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이 장면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대단히 기만적인 연출이라 할 수 있다:게임은 게이머에게 다른 선택지를 사실상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끔찍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고, 이후 그 결과를 보여주면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펙옵스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기만적인 연출 자체가 군사 슈팅 게임의 문법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군사 슈팅 게임들은 게이머에게 다양한 무기를 제공하고, 수많은 적들을 죽이는 행위를 영웅적인 행동으로 묘사하였다. 적들은 대부분 이름도 없고 인간적인 특징도 없는 목표물로 등장하며, 이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대체로 정당화되거나 무시되었다. 스펙옵스는 바로 이러한 게임의 문법을 뒤집는다. 게이머가 여태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수행해 왔던 행동들이 사실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단순히 게임 속 주인공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라 게이머 자신이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스펙옵스 역시 선택권을 강제로 제한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플레이어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게임은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 게임 시스템과 연출을 일관되게 활용하였다.

 

그렇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어떨까? 게임은 조엘이 애비에게 살해당하는 순간부터 복수라는 명제를 대단히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엘리가 시애틀에서 복수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폭력의 끔찍함을 보여주며, 이후 애비의 관점에서 같은 사건들을 다시 경험하게 함으로써 복수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메시지가 너무나 일찍, 그리고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데 있다. 게이머는 조엘이 살해당한 이후 엘리의 복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애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제작진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사실상 명백해진다. 엘리에게 살해당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었고, 애비 역시 아버지를 잃은 피해자였으며, 엘리가 행하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올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그 자체로 틀린 것이 아니지만, 게임은 마치 게이머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듯이 끊임없이 설명하고 강조한다.

 

인간형 적들에게 이름이 부여되고, 동료가 죽으면 그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고, 엘리에게 살해당했던 인물들이 애비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등의 연출은 분명 폭력의 상대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세부적인 연출들은 기술적으로 대단한 성취이며, 각각의 장면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게이머는 점차 게임 속 세계보다는 화면 바깥의 제작자를 의식하게 된다. 게이머가 어떤 인물을 죽이면 제작진이 뒤늦게 나타나 그에게도 이름과 가족이 있었고, 그 역시 소중한 삶을 살아가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게임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게이머가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폭력의 끔찍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엘리가 노라를 고문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엘리는 애비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노라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게임은 이 과정에서 게이머에게 버튼을 누르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게이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문을 중단하거나 노라를 살려주거나,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 선택지는 제공되지 않는다. 오직 게임이 요구하는 버튼을 눌러야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이 장면을 단순한 컷신으로 처리하지 않고, 굳이 게이머에게 직접 폭력적인 행동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대단히 흥미로운 동시에 기묘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게이머에게 어떠한 실질적인 선택권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에만 게이머를 게임의 행위자로 불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진은 이 장면을 통해서 엘리가 저지르는 폭력에 게이머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이 그 폭력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를 이미 결정해 놓았다는 데 있다. 즉 게임은 게이머에게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을 수행하는 역할만을 부여하고, 이후 그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엘리가 느끼는 죄책감에 게이머를 참여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에서 게이머가 느끼는 것은 반드시 죄책감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행동을 강제로 수행한 뒤에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제작진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말하자면 제작진은 자신들이 준비한 폭력의 결과를 게이머에게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폭력에 대한 감정적인 책임까지 게이머가 공유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갖고 있는 대단히 얄팍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5.

 

폭력과 복수를 다루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제니퍼 켄트의 영화 나이팅게일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와 유사하게 잔혹한 폭력과 복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식민지 시대의 태즈메이니아를 배경으로, 가족을 잃은 한 여성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폭력은 대단히 직접적이며, 관객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폭력이 단순히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로만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클레어라는 인물의 복수를 통해서 식민주의적 폭력의 구조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그녀와 원주민 빌리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복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개인의 원한을 넘어서는 더 거대한 폭력의 구조로 확장되며, 영화는 단순히 복수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대신 그러한 폭력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질문한다.

 

물론 영화와 게임은 서로 다른 매체이며, 나이팅게일이 취하고 있는 연출 방식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폭력이라는 대단히 자극적인 소재를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는가에 대해서는 비교할 여지가 충분하다. 나이팅게일의 폭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고 식민주의라는 거대한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반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폭력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그로 인해서 복수가 발생하고, 다시 새로운 피해자가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게임은 폭력의 무의미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복은 역설적으로 폭력을 비판하기 위해서 더욱 많은 폭력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구조적인 모순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게임과 영화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영화에서 관객은 등장인물이 저지르는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 행동의 의미를 해석한다. 하지만 게임에서 게이머는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하여 그 사건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게임에서 폭력을 다룰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면, 그 행동은 단순히 이야기 속 인물이 저지른 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가 직접 수행한 행위라는 측면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폭력의 의미를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폭력의 결과를 잔인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 게이머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 행동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이후 게임의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대단히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은 전투 과정에서 게이머에게 상당한 자유도를 제공한다. 적들을 정면으로 공격하거나 잠입을 통해서 우회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교전을 피하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정작 게임의 핵심적인 폭력과 서사적인 선택에 있어서는 게이머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철저하게 차단한다. 물론 선형적인 게임에서 모든 상황에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제작진이 게이머에게 선택할 수 없는 폭력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면서, 그 결과를 통해 게이머가 특정한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도는 게임의 주제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날수록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킨다. 게이머가 폭력의 무의미함을 생각하는 대신, 왜 게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을 수행하도록 만들고 그 결과를 계속해서 보여주는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폭력을 다루는 작품이 반드시 관객이나 게이머를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쾌감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미학적인 요소로 기능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사실과 그러한 불쾌감이 작품의 주제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스펙옵스는 군사 슈팅 게임이라는 장르의 관습을 이용하여 게이머의 인식을 뒤집었고, 나이팅게일은 폭력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구조를 드러내었다. 반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폭력의 끔찍함을 대단히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게이머에게 어떠한 새로운 이해나 성찰을 제공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긴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복수의 무의미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고, 그 결과를 보면서 불쾌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만으로는 깊이 있는 성찰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6.

결국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모든 문제는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플레이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말하는 플레이어란 단순히 게임을 조작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 준비해 놓은 규칙과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행동하며, 그 경험을 통해서 게임의 세계와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대단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놀랍게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게임은 게이머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게이머가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대단히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언차티드 3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차티드 3의 화물 비행기 추락 장면은 너티독이 영화적인 연출과 게임 플레이를 결합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드레이크가 비행기 내부에서 적들과 격투를 벌이고, 화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일련의 과정은 제작진이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한 연출이다. 당연히 게이머는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결과를 바꿀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대부분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은 대단히 훌륭한 게임 플레이를 제공한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적들과 싸우고, 살아남기 위한 방향을 찾아서 움직여야 한다. 제작진은 게임의 시점과 카메라를 치밀하게 통제하면서도, 그 안에서 게이머가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과거 너티독이 갖고 있었던 강점이었다. 언차티드 시리즈는 스크립트에 따라서 진행되는 선형적인 게임이었지만,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제작진이 결정해 놓은 사건에 게이머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연출과 게임 시스템을 하나로 결합하였으며, 그 결과 게이머는 마치 스스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 역시 이러한 특징을 계승하였다. 조엘이 마지막에 엘리를 구하기 위해 파이어플라이를 공격한다는 사실은 게이머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조엘과 엘리의 관계를 직접 경험하고, 가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판단하고 행동했던 경험은 온전히 게이머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조엘의 마지막 선택은 게이머가 내린 결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에 이르는 감정적인 맥락만큼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반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게이머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된다. 게임은 엘리와 애비의 경험을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두 인물의 고통과 복수를 반복하여 보여주면서 이들이 결국 같은 폭력의 연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엘리와 애비의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대칭을 이룬다고 해서, 두 인물을 바라보는 게이머의 감정까지 대칭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게이머는 이미 전작과 파트 2의 초반부를 통해서 엘리와 오랜 관계를 형성한 상태이며, 애비는 그러한 관계를 파괴한 인물로 등장한다. 물론 이후 애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경험하면서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게이머가 게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형성해야 하는 감정이지, 제작진이 두 인물의 이야기를 대칭적으로 배치해 놓았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애비와 레브의 관계는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애비가 자신이 속해 있었던 집단의 적으로 취급받는 레브를 보호하고, 그와 함께 살아남는 과정은 전작의 조엘과 엘리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물론 두 관계의 출발점과 성격은 다르지만, 적어도 가혹한 세계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가 애비라는 인물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충분히 발전하기보다, 엘리와 대비되는 애비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는 인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애비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게이머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며, 실제로 그 과정에서 상당히 훌륭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게이머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미 엘리의 관점에서 장시간의 복수극을 경험한 게이머에게 다시금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형성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하나 더 보여주는 것 이상의 부담을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은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플레이 타임이 짧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게임은 지나치게 길다. 문제는 그 긴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이 제작진이 준비한 사건과 감정을 소비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이머는 조엘을 잃은 엘리의 분노를 받아들여야 하고, 복수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끔찍함을 경험해야 하며, 애비의 관점에서 다시 사건들을 이해하고, 마지막에는 복수의 무의미함이라는 결론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은 제작진이 설정한 순서와 속도에 따라서 진행된다. 게임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게이머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를 요구하지만, 정작 게이머가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여유는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게임은 게이머가 엘리를 조작하는 동안 엘리의 복수에 대한 감정적인 반감을 갖게 만들면서도, 그 복수를 수행하는 행위 자체는 계속해서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선형적인 스토리텔링의 한계라고 보기 어렵다. 게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선형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적어도 그 과정에서 게이머의 감정과 게임이 요구하는 행동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했어야 한다. 하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그러한 간극을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벌려놓는 방식을 선택한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게이머는 엘리와 애비의 행동에 몰입하는 대신, 왜 자신이 이러한 행동을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게임은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한다. 게이머가 게임 속 인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러한 경험을 강요하고 있는 제작진을 바라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7.

그런 의미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비인터랙티브 게임의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게임에 상호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게임의 전투 시스템과 탐색, 자원 관리 등은 여전히 게이머의 판단과 행동을 요구하며, 개별적인 전투 상황에서 제공하는 선택지와 자유도는 전작보다 발전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정작 이 게임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자 했던 폭력과 복수, 인간의 관계와 도덕적인 책임에 있어서는 게이머의 역할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게임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미 결정해 놓았으며, 게이머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준비된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임이 요구하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면,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은 점차 하나의 고역으로 변해버린다.

물론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거나, 모든 게이머들에게 외면받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은 실제로 상당한 상업적 성과를 거두었으며, 평론가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게임이 보여주는 폭력의 연쇄와 인물들의 관계를 충분히 의미 있게 받아들인 게이머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와 평가가 게임의 구조적인 문제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갖고 있는 문제는 개별적인 장면의 완성도가 너무나 높기 때문에 가려지는 측면이 있다. 각각의 장면은 훌륭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게임 시스템은 정교하지만 그 시스템이 게임의 주제와 결합하는 방식은 전작보다 훨씬 서툴다. 게임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집을 키웠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 능력을 상실하였다.

돌이켜보면 언차티드 4에서 드러났던 문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너티독은 자신들의 기술력과 연출 능력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자신감은 게임에 들어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게임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넣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작품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만큼이나 무엇을 보여주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이러한 판단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너티독은 더 정교한 폭력을 구현하였고, 더 복잡한 인물들의 관계를 만들었으며, 더 거대한 세계와 무거운 이야기를 구축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개별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경험으로 통제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게임은 자신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게이머를 몰아붙이지만, 그 주제를 게이머가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무엇보다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가장 큰 문제는 너티독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게이머보다 지나치게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게임의 세계와 인물들은 제작진이 설정한 결론을 향해서 움직이며, 게이머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게이머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떠한 의미를 발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과거 언차티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영화적인 연출을 훌륭하게 구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연출 속에서 게이머가 스스로 행동하고, 그 행동을 통해서 게임의 세계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이러한 미덕을 상실하고, 자신들이 준비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게이머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 게임은 폭력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수많은 폭력을 발생시키고,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수많은 인물들을 희생시키며, 복수의 연쇄를 끊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게이머에게 장시간의 복수극을 강요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엘리가 애비를 살려 보내는 순간, 제작진은 자신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게이머 역시 그 결론에 도달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적어도 이 게임은 게이머가 스스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보다는, 제작진이 준비해 놓은 결론을 뒤늦게 확인하도록 만드는 구조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게임의 이야기는 완결되었을지 몰라도, 그 이야기를 경험했던 게이머의 감정까지 완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분명 대단한 게임이다. 이 게임에 투입된 엄청난 자본과 재능, 기술적인 성취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별적인 장면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완성도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취가 게임 전체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티독은 자신들이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게임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을 간과하고 말았다. 게임은 단순히 제작자가 준비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매체가 아니다. 제작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와 규칙 속에서 게이머가 직접 행동하고, 그 경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이머라는 변수는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존재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바로 그 변수를 제거하려 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작품이다. 제작진은 게이머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까지 통제하려 하였으며, 그 결과 게임은 정교하지만 답답하고, 거대하지만 피로하며, 잔인하지만 정작 그 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는 도달하지 못한 작품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특정한 캐릭터의 행동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구현한 세계와 이야기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과거 라스트 오브 어스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토록 가혹한 세상에서도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게임의 모든 시스템과 연출은 그러한 주제를 향해서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갔다. 하지만 파트 2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면서도 정작 전작이 갖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미덕을 잃어버렸다. 더욱 거대한 세계와 더욱 정교한 연출을 만들어놓고도, 그것을 게이머가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그토록 많은 자본과 재능을 투입하고도 이러한 결과물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그리고 더 씁쓸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창작자의 오만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언차티드 4에서 나타났던 너티독의 창작적 나르시시즘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서 더욱 거대하고 기형적인 형태로 완성되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비인터랙티브' 트리플 A급 게임인 것이다.

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 4가 10월 23일 닌텐도 스위치 2를 포함한 전 기종으로 발매되었다. 닌텐도 콘솔에서 최신 콜 오브 듀티가 발매되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의 일이다. 과거 Wii나 Wii U에서도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발매된 적이 있었지만, 콘솔의 성능 문제와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닌텐도와 콜 오브 듀티의 관계는 한동안 단절된 상태였다. 그러나 스위치 2의 성능 향상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인수 이후 변화한 사업 환경 덕분에 콜 오브 듀티는 다시 닌텐도 콘솔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콜 오브 듀티의 스위치 2 이식이 단순히 닌텐도 콘솔에서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번 이식은 스위치 2가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 그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연산 부하와 안정적인 프레임을 요구하는 멀티플레이 FPS를 어느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스위치 2 버전의 모던 워페어 4는 생각보다 괜찮은 이식이라 할 수 있다. 멀티플레이의 기본적인 목표 프레임은 60프레임이고,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다른 콘솔의 콜 오브 듀티와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게임 플레이 감각을 보여준다. 물론 그래픽 수준은 엑스박스 시리즈 S보다 떨어지고, 텍스처나 그림자, 원거리의 오브젝트 표현 등에서 상당히 많은 타협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그래픽의 열화에도 불구하고 게임 플레이의 핵심적인 감각 자체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스위치 1으로 이식된 둠이나 워프레임과 같이, 그래픽의 수준을 낮추더라도 원작의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이식들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다른 콘솔보다 못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콜 오브 듀티가 아닌 다른 게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와 별개로 기술적인 완성도에는 분명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60프레임에 가깝게 움직이지만, 폭발 이펙트가 집중되거나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교전하는 상황에서는 프레임이 상당히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체감상 40프레임 전후까지 하락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적어도 플레이한 범위에서는 30프레임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상황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물론 이는 별도의 장비로 측정한 수치가 아니라 실제 플레이를 통해 추정한 결과이기 때문에 정확한 하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특이한 현상이 하나 더 있는데, 게임 전체의 프레임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애니메이션이 낮은 프레임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애니메이션 갱신 빈도를 줄이는 최적화의 결과인지, 혹은 다른 렌더링 문제 때문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플레이에 집중하면 충분히 즐길 만한 게임이지만, 그래픽이나 기술적인 요소를 신경 쓰기 시작하면 거슬리는 부분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위치 2 버전의 모던 워페어 4는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엑스박스 시리즈 S는 그래픽 품질에서 앞설 뿐만 아니라 120프레임 성능 모드까지 제공하고 있는데, 스위치 2는 그래픽을 상당히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60프레임을 완벽하게 유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리즈 S 역시 모든 상황에서 완벽한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며, 스위치 2가 휴대용 콘솔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식 과정에서 상당한 그래픽 타협이 있었다면, 그 타협을 통해 확보한 성능이 좀 더 안정적이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즉, 이번 이식의 문제는 그래픽이 다른 콘솔보다 떨어진다는 점보다는, 그래픽을 낮춘 대가로 얻어낸 프레임의 안정성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부분에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일반적인 멀티플레이보다 더 복잡한 전투가 발생하는 그라운드 워의 전초기지 모드에서 생각보다 양호한 성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초기지는 32대32, 총 64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투 모드로, 전차나 차량, 보병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특정 거점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인다. 기존의 그라운드 워가 대규모 전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전을 보여주는 게임이었다면, 전초기지는 거점의 확보와 방어, 공격이라는 구조를 통해서 이러한 전투가 특정 지역에 더욱 집중되도록 만든 게임이다. 그 결과 일반적인 멀티플레이에서는 보기 힘든 극단적인 교전 상황들이 발생하는데, 수많은 보병들이 뒤엉키고 전차가 포격을 가하며 폭발 이펙트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게임이 크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체감상 40프레임 전후의 움직임을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며, 커뮤니티에서도 30프레임보다는 40프레임에 가까운 성능을 보여준다는 의견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도 실제 최저 프레임이 40이라는 사실이 계측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40프레임이라는 수치가 갖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FPS라면 60프레임이 최소한의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만, 40프레임은 30프레임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특히 120Hz 디스플레이에서는 40프레임을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프레임 자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생각보다 양호한 플레이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60프레임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60프레임을 목표로 하면서 극단적인 상황에서 30프레임까지 하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40프레임 부근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실제 플레이에서는 더 일관된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64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투에서 이러한 수준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스위치 2가 콜 오브 듀티의 대규모 전투 구조를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확보했다고 평가할 여지가 있다. 물론 전초기지와 워존은 전장의 규모나 오브젝트 스트리밍, AI와 같은 연산 구조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초기지의 성능을 워존 전체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다수의 플레이어와 차량, 폭발 이펙트가 집중되는 교전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스위치 2의 콜 오브 듀티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콜 오브 듀티라는 프랜차이즈의 성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콜 오브 듀티는 흔히 현대적인 FPS의 기준을 만들어낸 프랜차이즈로 평가받지만, 적어도 최근 10여 년의 흐름에서 콜 오브 듀티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트렌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흡수하는 게임에 가까웠다. 과거 모던 워페어가 영화적인 싱글플레이 연출과 킬스트릭 중심의 빠른 멀티플레이를 대중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다른 게임들이 콜 오브 듀티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키는 동안 콜 오브 듀티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흐름을 다시 자신의 게임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옵스 4의 블랙아웃과 이후 등장한 워존, 그리고 DMZ라 할 수 있다.

2018년 블랙아웃을 다루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블랙아웃은 기본적으로 배틀로얄이라는 장르의 틀을 콜 오브 듀티에 접합시킨 게임이었다. 당시 배틀그라운드는 이미 배틀로얄 장르의 대표적인 게임으로 자리 잡았고, 콜 오브 듀티는 여기에 자신들의 빠른 전투 감각과 퍽, 부착물, 다양한 소비 아이템을 결합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블랙아웃이 단순하게 배틀그라운드를 베낀 게임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배틀그라운드가 만들어낸 파밍과 생존, 색적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난 게임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배틀로얄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문법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콜 오브 듀티만의 특징을 집어넣은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등장한 워존은 이러한 관계를 역전시켰다. 워존은 로드아웃과 구매 스테이션, 굴라그와 부활 시스템 등을 통해 배틀로얄 특유의 파밍과 생존 구조를 상당히 간소화하고, 콜 오브 듀티 특유의 빠른 교전과 익숙한 무장을 중심으로 게임을 재편하였다. 블랙아웃이 배틀로얄을 콜 오브 듀티에 융합시킨 게임이었다면, 워존은 배틀로얄을 콜 오브 듀티의 문법으로 다시 해석한 게임에 가까운 것이다.
여기에 워존은 단순히 새로운 게임 모드를 추가한 것 이상의 사업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콜 오브 듀티는 매년 새로운 작품이 발매되는 프랜차이즈이고, 그 과정에서 전작의 무기나 스킨, 시즌 콘텐츠 등이 새로운 작품으로 완전하게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반복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연간 신작 판매라는 사업 모델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게임에 장기간 투자하고 그 결과물을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워존은 서로 다른 콜 오브 듀티 작품들을 하나의 지속적인 서비스 안에서 연결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하고자 한 게임이었다. 물론 실제 콘텐츠의 연동 정책은 작품과 시즌에 따라 달라졌고, 모든 자산이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콜 오브 듀티가 더 이상 매년 새로운 게임을 판매하는 것만으로 장기적인 이용자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워존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DMZ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타르코프로 대표되는 익스트랙션 슈터의 구조를 받아들였지만, 복잡한 장비 관리와 극단적인 손실의 위험을 강조하는 대신 콜 오브 듀티의 빠른 전투와 미션 중심의 플레이를 결합하였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임은 타르코프와 동일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익스트랙션이라는 장르를 콜 오브 듀티의 방식으로 다시 구성한 게임에 가까웠다. 어떻게 보면 이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러한 보수성에 있다. 외부의 장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게임 모드를 만들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콜 오브 듀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보수성이 반드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검증된 게임 플레이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장르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은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난 혁신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는 한계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향후 콜 오브 듀티의 기술적인 발전을 예상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블랙아웃이 등장한 2018년부터 약 8년 동안 콜 오브 듀티는 대규모 전투, 배틀로얄, 익스트랙션이라는 주요 구조를 확보하였다. 물론 그동안 맵이 바뀌고 새로운 모드가 추가되었으며, 다양한 그래픽 기술과 게임 시스템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장르적으로 본다면 현재의 콜 오브 듀티는 이미 상당히 성숙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배틀로얄과 익스트랙션이라는 장르 자체도 등장 초기의 폭발적인 성장기를 지나 기존의 구조를 정교하게 다듬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콜 오브 듀티가 완전히 새로운 대규모 전투 구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확보한 구조를 유지하면서 게임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물론 장르적인 변화가 적다고 해서 기술적인 요구 수준까지 정체되는 것은 아니다. 더 복잡한 그래픽과 물리 효과, AI 등의 도입으로 연산 부하는 얼마든지 증가할 수 있다. 다만 게임이 구현해야 하는 전투의 기본적인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은 개발사가 최적화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스위치 2판 모던 워페어 4의 존재는 흥미롭다. 현재 스위치 2 버전은 인피니티 워드와 Digital Legends가 공동으로 개발하였는데, Digital Legends는 모바일 게임 개발 경험을 갖고 있으며 2021년 액티비전에 인수된 내부 개발 스튜디오다. 즉, 제한된 하드웨어에서 게임을 구현하기 위한 별도의 개발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스위치 2는 DLSS를 활용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내부 해상도를 보완할 수도 있다. 물론 DLSS가 CPU 연산이나 게임 로직의 부하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메모리와 오브젝트 스트리밍, 애니메이션 등의 문제는 여전히 별도의 최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첫 번째 작품에서 스위치 2에 적합한 렌더링 방식과 자원 관리 구조를 구축했다면, 이후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노하우를 재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콜 오브 듀티가 기존의 장르적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라면, 차기작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미 구현한 것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다듬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콜 오브 듀티가 스위치 2에서 더 안정적인 프레임과 개선된 이미지 품질을 보여줄 수 있다는 가설은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콜 오브 듀티는 기술적인 완성도나 사후 관리 측면에서 그리 신뢰할 만한 프랜차이즈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블랙옵스 콜드워가 발매되었을 당시 엑스박스 시리즈 X에서는 멀티플레이 도중 게임이 충돌하는 것을 넘어 콘솔 자체가 강제로 종료되는 현상들이 발생하였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여러 차례 겪었던 만큼 상당히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물론 제작진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년 새로운 작품이 발매되고, 시즌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가 추가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버그와 글리치가 발생하는 콜 오브 듀티의 운영 방식을 생각한다면, 출시 이후 게임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콜 오브 듀티의 연간 출시 구조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하나의 게임을 수년 동안 판매하고 관리하는 게임과 다르게, 콜 오브 듀티는 다음 작품이 발매되면 이용자의 관심과 개발 자원의 상당 부분이 새로운 작품으로 이동하게 된다. 워존처럼 여러 작품에 걸쳐 운영되는 서비스라면 장기적인 최적화와 안정성 확보의 필요성이 크겠지만, 프리미엄 작품의 멀티플레이를 굳이 몇 년에 걸쳐 최적화할 유인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는 수준의 성능을 확보했다면, 개발사는 기존 작품의 프레임을 개선하기보다 차기작을 준비하거나 워존에 개발 자원을 투자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스위치 2판의 40~60프레임이라는 성능은 하드웨어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인 한계라기보다, 액티비전이 상품으로써 허용한 완성도의 기준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전망만으로 이번 이식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액티비전은 사후 관리나 기술적인 완성도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업적인 수익과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특히 스위치 2는 콜 오브 듀티가 오랜만에 복귀한 시장이고, 향후 발매될 작품들의 고객층을 새롭게 확보해야 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기존의 게임을 이식해서 판매하고 끝내는 시장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만약 시즌 업데이트 이후 심각한 프레임 하락이나 크래시가 반복된다면, 이는 단순히 현재 작품에 대한 불만을 넘어 차기 콜 오브 듀티의 판매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개발사가 적극적으로 성능을 개선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기존의 성능이 크게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할 사업적인 유인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가능성의 문제이지, 실제로 그러한 관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스위치 2판 모던 워페어 4는 상업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하였을까? 현재까지의 판매 상황은 적어도 부정적이지 않다. 출시 전후로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의 주요 플랫폼에서 높은 판매 순위를 기록하였고, 스위치 2에서도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의 eShop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순위만으로 압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선 eShop의 판매 순위는 판매 장수가 아닌 매출액 중심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의 게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판매량으로도 높은 순위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닌텐도 콘솔은 각 국가의 게임 소비 특성이 상당히 강하게 반영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닌텐도의 자체 프랜차이즈나 파이널 판타지 같은 일본의 대형 IP가 강세를 보이고, 미국에서도 위 스포츠 시절부터 이어진 닌텐도의 체감형 스포츠 게임들이 높은 구매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게임들은 단순한 판매 경쟁작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닌텐도 이용자들의 취향과 소비 구조를 반영하는 게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콜 오브 듀티가 여러 국가의 eShop에서 상위권에 진입한 것은 긍정적인 성과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닌텐도 게임들을 압도하는 수준의 흥행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와 같이 이미 닌텐도 플랫폼에서 강력한 고객층을 확보한 대형 프랜차이즈라면 출시 첫 달부터 백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닌텐도 시장으로 복귀한 콜 오브 듀티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11월에는 젤다의 전설을 비롯한 주요 신작들이 등장하고, 다른 플랫폼에서도 GTA와 같은 대형 게임들이 출시되면서 게이머들의 관심과 구매 예산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 모던 워페어 4가 스위치 2에서 첫 달부터 백만 장이라는 높은 판매량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보다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장 규모의 판매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상대적으로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정확한 판매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의 추측이며, 실제 판매량이나 이식 비용을 알 수 없는 이상 수익성을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위치 2판 콜 오브 듀티의 성공을 다른 콘솔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콜 오브 듀티는 이미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PC에서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프랜차이즈다. 그런 게임이 닌텐도 콘솔에서 기존 플랫폼과 동일한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플랫폼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개발 비용을 회수하고, 일정한 수익을 창출하면서, 장기적으로 게임을 구매할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스위치 2는 단순히 기존 거치형 콘솔의 열화판이라는 위치만을 차지하는 기기가 아니다. 휴대용으로 트리플 A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고, 닌텐도 게임을 주력으로 즐기는 이용자들에게는 다른 플랫폼을 추가로 구매하지 않고도 콜 오브 듀티를 즐길 수 있다는 가치가 존재한다. 즉, 스위치 2판의 상업적인 성공은 프랜차이즈 전체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매출 규모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에서 확보한 수요와 그 수요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까지의 판매 성과는 상당히 흥미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스위치 2에서 콜 오브 듀티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고, 여러 국가의 eShop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초기 시장 진입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액티비전이 스위치 2를 핵심 플랫폼으로 취급할 만큼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는 이식에 투입한 비용을 회수하고 수익을 남길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전체 콜 오브 듀티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액티비전은 스위치 2판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현재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후속작을 계속 출시하는 방향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예상보다 높은 판매량과 지속적인 이용자 수요가 확인된다면, 스위치 2를 위한 최적화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가능성도 생긴다. 결국 판매량은 기술적인 개선을 보장하지 않지만, 개발사가 그 개선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현재의 모던 워페어 4와 차기 콜 오브 듀티의 전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발매된 모던 워페어 4의 경우에는 현재의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60프레임을 목표로 하는 멀티플레이와 40프레임 전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투가 시즌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더 불안정해진다면, 이는 게임의 상품성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리는 문제가 된다. 특히 온라인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에서 프레임이나 애니메이션의 불안정성은 단순히 그래픽이 좋지 않다는 수준을 넘어 교전 자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차기작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미 스위치 2에 맞는 렌더링 방식과 최적화 기술이 구축되었다면, 후속작에서는 그것을 활용해서 더 높은 완성도를 확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발사가 매년 새로운 작품을 판매해야 하는 구조라면, 오히려 기존 작품의 개선보다 다음 작품의 출시 품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적인 성과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전망에는 전제가 있다. 앞으로의 콜 오브 듀티가 현재의 게임 구조를 상당 부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복잡한 그래픽 기술이나 대규모 전투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기존의 최적화 성과가 새로운 연산 부하에 의해 상쇄될 수 있고, 새로운 작품이 오히려 이전보다 낮은 성능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콜 오브 듀티가 보여준 장르적 보수성과 이미 확보한 대규모 전투의 구조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단기간에 게임의 기술적인 요구 수준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현재의 전투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그래픽이나 세부적인 시스템을 개선하고, 그 과정에서 플랫폼에 맞는 최적화를 더욱 정교하게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차기 콜 오브 듀티가 스위치 2에서 엑스박스 시리즈 S에 좀 더 근접한 게임 플레이 감각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전망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그래픽 품질이나 성능 자체가 시리즈 S와 동일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스위치 2판 모던 워페어 4는 성공적인 출발을 보여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고, 안정적인 60프레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게임 플레이의 핵심적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전투까지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분명 긍정적이다. 더불어 초기 판매 순위 역시 닌텐도 플랫폼에서 콜 오브 듀티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이 압도적인 흥행이나 장기적인 기술 지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콜 오브 듀티라는 프랜차이즈의 장르적 보수성은 향후 최적화를 수행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지만, 연간 출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업 구조와 그동안 보여주었던 사후 관리의 문제는 여전히 불안 요소로 남는다.

그렇기에 이번 모던 워페어 4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프레임이 얼마나 더 올라갈 것인가보다는, 현재의 성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차기작에서는 이번 작품을 통해 확보한 기술적인 성과를 어느 정도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스위치 2가 콜 오브 듀티를 어느 정도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일정 부분 확인되었다. 그러나 액티비전이 그 가능성을 어디까지 활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기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판단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장기적인 성공을 확신할 만한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스위치 2에서 콜 오브 듀티의 출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튕겨내기가 액션 게임의 메인 트렌드가 된 것은 세키로 전후라 할 수 있다. 물론 계보학적으로 정확히 따지면,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세키로가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부분이 있다. 튕겨내기가 핵심인 게임들이 만들어낸 게임의 로직은 방어와 공격을 엄밀하게 분리하기보다는 방어도 공격의 일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어를 능숙하게 해내면, 체력과 별개로 상대의 스태미나를 깎아내고, 공격에 들어가는 스태미나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고 난 다음에는 공격 전환까지의 텀이 짧다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게임의 방어 옵션을 좀 더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게임은 세키로가 처음은 아니었다.(물론 계보학적으로도 그렇긴 했다) 약 20년 전에 플레이스테이션 2로 나왔던 캡콤의 귀무자라는 게임은 액션 게임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공격이 바로 닿기 전에 공격을 하면 강력한 반격기가 나가는 형태로 게임의 기믹을 구성한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귀무자가 데빌 메이 크라이와 함께 캡콤의 액션 게임 완성도를 높여주는 게임이었지만, 이후 귀무자는 새로운 기믹들을 발굴하지 못했고 게임 자체가 후속작 없이 약 20년간 동결 상태로 유지되었다.

귀무자 검의 길은 거의 20년 만에 새롭게 나온 귀무자의 신작이다. 어떻게 보면 시류를 잘 탄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세키로 이후 수많은 게임들이 공격적인 게임 운영과 패링 위주의 방어 옵션을 보여주면서 귀무자 역시 새롭게 재해석해서 낼 부분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후술할 내용들을 보자면 검의 길은 단순히 트렌드에 올라탄 작품은 아니고, 캡콤이 그동안의 노하우와 자신만의 해석을 집어넣어 훌륭하게 다듬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귀무자 검의 길은 겉보기에는 상당히 잡스러운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게임에 이것저것 집어넣은 게 많아서 첫인상이 매우 난잡하다는 뜻이다. 튕겨내는 것은 기본이고, 연타나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QTE, 회피 반격이나 회피로 가드 불가 공격을 카운터 치는 등등은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많이 본 시스템이다. 물론 시리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일섬이나 전투 중에 혼을 모으는 액션 등은 여전히 고유의 개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재밌는 점은 혼을 모으는 액션 그 자체라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업그레이드 자원을 수집하기 위해서 수동으로 흡입하는 게 아니라 적과의 싸움에서 적이 혼을 흡수해서 버프를 받는 것을 차단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고 또한 귀신 무기를 쓰기 위해서 혼을 모아야 하는 것들과 전투 중 체력 회복도 있기 때문에 혼 흡수는 중요한 기믹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귀무자 검의 길은 겉보기에는 잡스러워 보이긴 해도, 시스템을 활용하는 배분들이 예술적인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단순하게 공격을 반복하고 튕겨내기를 반복하는 방식을 반복하지 않는다. 이는 이 장르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세키로에서도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세키로도 튕겨내기를 하다가도 점프나 회피로 상대 공격을 반격하거나 회피하는 등의 기믹을 넣어서 일방적인 흐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무자 검의 길은 세키로보다 더 복잡하고 유연한 구조를 갖고 있다. 플레이어가 공격을 이어나가다가 갑자기 버튼 연타 QTE 등으로 넘어가고, 단순히 가드하는 걸 넘어서 상대의 체간을 깎아내기 위해 튕겨내기를 선택하거나 받아내기로 공격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귀신 무기를 이용해서 강제로 경직을 만들어내거나 하는 등 다양한 상황들과 이어지는 후상황, 플레이어들의 선택을 중요하게 구성해 놓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매우 대응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게임은 여러 가지 점에서 편의성을 제공하고 독특한 템포를 설정해서 게임이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되도록 만들었다. 일단 속도 측면에서 보자. 일반적으로 세키로류의 패링이 중심이 되는 게임들은 대부분 정확하게 쳐내기를 성공하는 게 아니면 내 체간이 깎여 나가서 나도 상대와 동일하게 자세가 무너지고 강한 일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취한다. 검의 길도 비슷하긴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이걸 구현하는 감각이 특이하다는 것이다. 검의 길은 일견 보면 상당히 널럴한 구조를 보여준다. 체력 회복 아이템이 구성에 따라서 체간도 회복시켜 주고, 체간이 회복되는 속도도 빠르다. 세키로의 경우에는 게임 구성상 체간이 회복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고, 적들도 공격적인 부분이 있어서 체간이 항상 무너지기 직전까지 유지된다는 아슬아슬한 감각이 있는데, 검의 길의 감각은 그런 식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렇다고 검의 길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검의 길은 세키로나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가드백이 상당히 강하고 체간을 한 번에 뭉텅이로 깎아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플레이어가 방어 옵션을 제대로 고르는 데 실패하면(쳐내기나 받아내기에 실패해서 일반 가드가 되는 경우), 쉽게 밀려버리는 부분들이 있다. 즉, 체간이나 체력 관리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동시에 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의 패널티가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패널티가 곧바로 전투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체간의 회복이 빠르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잘못된 대응으로 발생한 불리한 상황을 이후의 행동으로 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옵션을 가진 게임에서 방어 옵션을 제대로 못 골랐을 때 얻는 패널티가 크다고 한다면 게임이 너무 어려워서 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검의 길은 이런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서 몇 가지 안전장치를 주는데(음성으로 패턴을 알려준다든가 등), 그중 눈여겨볼 만한 것이 바로 어시스트 기능이다. 처음에 시스템에 적응하기 전에 어떤 옵션이 정답인지를 보여주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스템 덕분에 게임의 난이도가 낮아지는 부분들이 있다. 물론, '모든 패턴에 정답만 인정한다'라는 기조는 아니기 때문에 피하기가 답인 공격에 쳐내기를 하거나 회피를 하는 등의 행위도 할 수 있지만(힘들긴 해도), 이 어시스트 기능이 게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재밌는 점은 게임의 디자인이 상당히 일관되게 구성되어 있어서, 게임에 익숙해지면 이런 어시스트 기능이 없더라도 게임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결 QTE 같은 경우, 한손 공격으로 대결에 들어가면 양손 공격으로, 양손 공격으로 들어갔다면 한손 공격으로 전환하면 된다. 즉, 인디케이터가 무조건 나와서 그걸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관찰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일종의 정보를 소화하고 반응을 유도하는 과정 자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시스트 기능도 어떤 게 정답인지는 보여주지만 동시에 '어느 타이밍'에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제공하지 않아서 플레이어가 정보를 소화하고 반응하는 과정 자체는 남겨두는데, 이런 식으로 게임은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상황에 반응하고 통제하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만들어지는 게임은 게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역동적인 칼싸움이다. 세키로가 불러일으켰던 센세이션을 생각한다면 검의 길이 보여주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역동성이며, 추가적으로는 단순히 특정 패턴에 특정 대응을 한다는 일방향적인 흐름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여러 개의 선택지 중 정답지를 능동적으로 고르는 과정이다. 물론 실제로는 특정 패턴에 정답에 가까운 대응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의미에서는 상당히 일방향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스스로 정답을 고른다는 감각이 이러한 일방향성을 덮어버린다. 게다가 정답을 고르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게임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행동에서 자신의 실수를 교정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진다. 결국 정해진 대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플레이어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한다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검의 길이 엄청나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건데, 이미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이 정도까지 게임을 완성시킨 점은 매우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본인은 스위치 2 버전으로 플레이했고, 30프레임 고정인 상태로 게임을 했는데, 물론 플스 5나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스위치 2 버전은 캡콤의 스위치 2를 다루는 방식이 물이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고정 30프레임에 조작성이나 반응 속도 그 어떤 것도 모자라지 않다. 여러 플랫폼이 있고 스위치 2가 메인 플랫폼이라 한다면, 구매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긴 하다.

결론적으로 귀무자 검의 길은 뭔가 색다른 게임은 아니지만, 모두가 합쳐져서 놀라운 게임이 되는 작품이다. 몇몇 흠이 있긴 하지만(오버월드의 단순함, 부족한 퀘스트, 살짝 부족한 적들이나 보스들), 그것이 게임의 재미를 깎아먹진 않는다. 재밌는 게임인 만큼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

1 2 3 4 ··· 586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