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나 충격이 생긴다. 분명 세계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화들은 쪼개지고 분절되어 있으며, 같은 도구를 다르게 쓰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가령,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아이폰 같은 현대 문물들을 쉽게 접하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것이 그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서비스, 혹은 관계 이런 것들이 우리가 보는 것들과 많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은 분명 우리에게 공통된 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우리를 우리라는, 세계 시민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두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자이크와 같은 집합체임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동남아시아의 영화 미학과 우리의 영화 미학이 어떻게 다른가 이다 :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극장에서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밌는 점은 베트남의 영화관들은 사시사철 공포영화를 틀어주고 있다는 게 있다. 처음에는 신기하지만, 나중에 되면 익숙해지는 광경이라 할 수 있는데, 베트남 영화관에서 보여주는 영화들의 예고편들은 적어도 하나 정도는 공포 영화 예고편이 틀어진다. 물론 모든 영화들이 우리가 국제 영화계나 이런데서 볼법한 거창한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재밌는 점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포영화들이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이 '이것은 한국이나 다른 세게에서 경험하는 공포 영화 와는 다르다' 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독특한 느낌은 한국영화나 다른 세계 공포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끈적함이다. 땀, 체액, 벌레 등등 다양한 것들이 뒤섞여서 묘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동남아시아 영화들은 이러한 분위기들이나 표현 방식들이 등장하는데, 서구 영화의 고어와는 사뭇 다르다. 서구영화의 고어들이 인간을 사물로 만들면서, 거기서 생겨나는 격차와 모독을 즐기기 위한 장치라면, 동남아시아의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끈적함은 고어와 조금은 다른, 일종의 감수성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서구영화들의 고어가 인간과 시체 사이의 개념적인 분절이 일어난다면, 동남아시아의 영화들에 드러나는 끈적함에는 일종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하나의 인간이 시체에서부터 시작해서 썩어서 정글이 되기까지, 그 과정이 동적이고 유기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등장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벌레다. 썩어가는 시체, 훼손된 신체에 벌레가 결합하면서 단순히 피를 내뿜고 무너지는 존재가 아닌, 작은 생명들이 움트고 죽음을 분해해 새로운 생명으로 만드는 그로테스크 함은 다른 세계의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경험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느낌들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언뜻언뜻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버려진 쓰레기, 길에 돌아다니는 거대한 바퀴벌레나 쥐, 해충들,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붙이, 끈적하게 비가 내리고 있면서 흙탕물을 만들어내는 환경들, 습기와 온도에 따라서 빠르게 풍화되고 노후화된 폐허들이나 구축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동남아시아의 미학들, 모든 것이 빠르게 낡고 물에 스며들며 물에 침윤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동남아시아 문화가 위생이 안좋다 라는 것이 아니라(그들과 함께 생활해보면 그들이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최대한으로 위생적이다. 그들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에서 바라보는 것들, 모든 것들이 빠르고 변화 무쌍하게 변화하며, 죽음이란 개념이 아닌 일종의 스펙트럼이라는 관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습기야말로 동남아시아 공포 영화의 핵심을 짚는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습기가 어떻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동남아시아 공포 영화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습기에 대한 이해가 한국 영화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 특유의 과장된 리얼리즘들(초창기 영화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이나 소위 땀냄새, 눈물냄새 난다는(흥미롭게도, 이 둘은 '물'을 매개로 한다) 느낌들을 어딘가 동남아시아 공포영화나 동남아시아 영화를 연상케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영화와 다르게 한국 영화에는 무언가 '날카로운 변화'들이 있다. 그 날카로운 변화라는 것은 엇박자로 불리는 뽕짝과 같은 것들인건데, 동남아시아 공포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르적인 특성들, 벌레나 습기 이런 것들이 한국 영화에서는 갑작스러운 국면 전환과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 합쳐지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어진다. 괴물의 주차장 탈출 장면을 보듯이, 딸을 놓치고 뻘줌하게 다른 곳에서 딸을 태우는 장면이나, 마치 싸울 것처럼 나서다가 도망가는 장면, 뱅글뱅글 돌면서 어지럽게 만드는 주차장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독특한 리듬감과 개념으로 변화한다. 조금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동남아시아인들이 습기와 온도가 모든 것을 나이들게 만들거 침윤시키는 과정을 보았다면, 한국인들은 극단적인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삶의 리듬과 이어짐, 모순된 것의 연결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 모순된 박자감을 익힌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다시 동남아시아 영화들로 돌아와보자. 인도네시아 영화나, 베트남 영화나, 태국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이 습기와 온도들은 외부인들이 보면 신기하지만, 동시에 자국인들이 보면 그것이 삶의 일부이자 표현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라는 하나의 동일한 장르를 점유하면서도 결국은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분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분절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가능성이다. 모두가 하나 되는 세계가 아니라 분절된 여럿이 모두가 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술이 만들어낸 디아스포라이자, 우리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일련의 편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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