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I에서 유통 및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 연작, 그리고 4편)는 이제는 전설이 된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새롭게 다듬어서 만든 프랜차이즈입니다. 특히 첫 작품인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 같은 경우는 원작의 제작자인 조던 매크너가 직접 참여하여서 만들었는데,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액션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작품이었죠. 그때까지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 처럼 맨손으로 건물을 오르는 익스트림 스포츠인 파쿠르를 게임에 직접적으로 도입한 작품이 없었으며, 페르시아의 왕자 만큼 게임의 전반적인 진행이 액션 자체가 아닌 복잡하게 구성된 스테이지를 움직이면서 특정한 장소에 도달하는 2D 플랫포머적인 부분을 강조한 독특한 작품 역시 없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액션과 퍼즐 조합의 대표작 툼레이더 시리즈가 있었으나, 사실상 툼레이더 시리즈의 그것은 상당히 코어한(크리스탈 다이나믹스에게로 넘어간 이후로는 아예 그 노선으로 가버렸습니다)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페르시아의 왕자는 간편한 조작과 직관적인 진행(카메라 시점을 통해서 가야할 곳을 알려주며, 기념비적인 1편 같은 경우에는 친절하게도 동영상으로 진행방향을 보여주기까지)으로 툼레이더 보다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또한 파쿠르적인 요소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요소-시간의 모래-를 도입하였죠. 이렇게 2D 플랫포머의 느낌을 3D 액션 게임으로 되살리기 위해서 페르시아의 왕자는 당시 혁신적인 요소들을 많이 차용하였고, 그 결과 지금까지 성공적인 프렌차이즈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두개의 왕좌 이후 시간의 모래 연작의 종결된 뒤에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 4편(혹자는 DS 게임에서 부제를 따와 타락한 왕이라고 칭하는)의 실패 아닌 실패로 인해서(자세한 것은 제 블로그의 페르시아의 왕자 리뷰를 참조) 수많은 페르시아의 왕자 팬들은 시간의 모래 연작으로의 회귀를 요구하였고, UBI는 때마침 나온 디즈니의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의 홍보와 시간의 모래 연작으로의 회귀를 위해 페르시아의 왕자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망각의 모래를 출시하게 됩니다.
망각의 모래는 기본적으로 1편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스토리 라인도 비슷하죠. 왕자가 있고, 누군가 저주받은 모래의 봉인을 풀고, 그 덕분에 왕자는 개고생을 하고, 그리고 공주는, 아 공주는 없구나. 하지만, 망각의 모래는 기존의 시리즈를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다양한 개성을 추구하는 시도를 합니다. 먼저 4편의 단조로운 전투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규모 전투를 많이 삽입하였으며, 시간의 모래 이외에도 물을 굳히거나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날아다니는 등의 요소를 도입하여서 게임의 진행을 다체롭게 만들려는 시도를 합니다. 또한 전작의 단조로웠던 씨앗 노가다를 보완할만한 레벨업 개념과 타임어택 요소 등을 도입하여 리플래이 성을 강화하였습니다. 즉, 결과적으로 망각의 모래란 작품은 기존의 시간의 모래 연작 시리즈로 회귀하면서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시도 자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혁신적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대단히 '안전한' 선택을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게임 자체의 스토리라인과 케릭터, 그리고 심지어는 분위기나 스테이지 구성까지 망각의 모래는 철저하게 전작들을 답습합니다. 1편의 스토리 라인과 배경, 궁궐, 스테이지 구성, 그리고 4편의 분위기(몇몇은 진정으로 데자뷰를 느끼게 할 정도로), 2편의 복장 등을 통해서 작품 자체의 컨셉 보다는 여태까지 나온 작품들의 좋은 컨셉만을 취했다는 사실은 게임을 하면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페르시아의 왕자 전 시리즈는 호불호가 갈리기는 해도 각기 나름대로의 컨셉과 개성이 있었고(1편-동화, 2편-잔혹한 전설, 3편-1편과 2편 사이의 독특한 컨셉, 4편-1편의 동화적 분위기를 신화적으로 재해석), 그렇기에 각기 다른 페르시아의 왕자 작품으로서 성립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망각의 모래는 이 작품 저 작품 좋은점만 뭉뚱그리다 보니, 스스로의 개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작의 단점을 보완하겠다면서 들여놓은 시스템 역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전투의 문제. 전작에서 1:1의 일기토 형식 및 게임오버가 존재하지 않는 전투로 인해 전투가 완전히 망했다는 평가를 듣자, 이번에는 그 반대로 전투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렸습니다. 기본적으로 1:10의 전투가 일어나며, 좀 심하면 1:30, 1:40도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전 시리즈들의 화려한 아크로베틱 액션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적들의 패턴의 너무 단조롭기에 적들은 밋밋하게 밀려오며, 다양한 마법과 기술을 게임에 도입하였지만 전투와는 많이 겉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심지어 전투 자체가 MMORPG에서 버튼 하나로 스킬 쓰면서 사냥하는 느낌이 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죠. 또한 타임 어택이나 서바이벌 같은 요소들은 전작들에 비해 이번작은 전투를 중시하겠다는 의도를 보였지만, 실제로 해보면 그 컨텐츠 자체의 수명이 대단히 짧습니다. 게다가 이번작은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짧은(물론 기존 시리즈를 해본 사람들을 기준으로)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죠.
망각의 모래가 상당히 개성없고 밋밋한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타이틀과 특징은 고스란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작에서는 특히 플랫포머 적인 요소들-물을 얼리는 요소를 이용한 스테이지 등-은 훌륭했다고 봅니다. 또한 몇몇 스테이지의 구성은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마지막 보스와의 일전이라든가 여러 작품의 장점을 혼합한 스테이지 구성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은 아주 큰 단점들(어디서 보았다)에 묻혀 사라지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망각의 모래는 객관적으로는 평작 이상의 작품입니다. 전투 자체가 단조롭지만, 분위기나 기존 시리즈의 플랫포머적인 요소는 더욱 강화되었으니까요.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를 한번도 안 해보신 분이라면, 사서 해도 아깝지 않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팬 입장에서 지적하고 싶은 가장 큰 문제는 성의의 문제입니다. 이미 예전의 좋은 작품들의 장점만 짜집기한 몰개성한 작품이, 거기에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데자뷰를 일으키게 만드는 작품이 과연 팬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전 회의적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시리즈를 정말 재밌게 즐기신 분들이라면, 그냥 손대지 않고 넘어가시는게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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