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The 'Modern Warfare'

서구 문명 역사에 있어 파괴적이고 광적인 정점이자 결과인 2차 세계 대전은 현대 국가 간의 총력전(Total War)이 '누가 전쟁에서 이기든 더이상 승자는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준 전쟁이었습니다. 수백만명의 민간인 피해, 명백히 자행된 인권 유린, 학살, 숙청, 군국주의 등의 참혹한 결과는 현대 국가가 효율적이고 이성적, 합리적으로 인간을 멸종 시킬 수 있는가를 자명하게 드러내었죠.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말, 두 번의 폭격, 두 개의 폭탄이 국가들의 전쟁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게 됩니다. 바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죠. 단 두방의 폭탄에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원폭의 중심지를 아직까지 불모지로 만들어버린 이 사건은 만약 현대에 있어 총력전(=핵전쟁)은 승자나 패자는 커녕 세계 자체를 멸망 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이후, 이러한 두려움은 미소 양 진영간의 몇 번의 대리전과 정치적 외교적 신경전 및 무한 군비 증강으로 드러나는 냉전(Cold War)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죠.

여기서 현대전(Mordern Wafare)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현대전은 국가의 모든 국민, 산업, 과학 기술력을 쏟아 붓는 전쟁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병사를 훈련하는데 오랜 기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소수 정예 부대와 최첨단 과학 기술력만을 집어 넣어서 만든 값비싼 무기 및 장비들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적군을 제압, 살상하는 전문화, 첨단화된 전쟁 개념인 것이죠. 이러한 전쟁 개념이 잘 드러난 사례가 두 번에 걸친 이라크 전입니다. 이라크 전은 스커드 미사일을 이용한 정밀 폭격, 지하 벙커를 폭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벙커버스터, UAV 무인 정찰/폭격기 프레데터 드론, M1 에이브럼스 전차 등 각종 첨단기술이란 첨단 기술은 모두 이용한 전쟁이었고, 실전 '결과'에 있어서도 놀라운 전공을 거두었죠.

현대전이 전쟁사에서 갖는 또다른 특징은 바로 '전쟁의 엔터테인먼트 화'입니다. 물론 과거 역사에서도 군대나 군사 관련 소재를 인간이 취미로 삼았다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전이 과거의 취미로써 군사학과는 다른 점은 바로 매스컴을 통한 대중문화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전쟁의 오락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례가 바로 이라크 전입니다. CNN의 실시간 보도를 통한 전쟁의 '스펙타클'한 면모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고, 이 때 많은 사람들이 CNN 보도를 마치 안방 드라마 보듯이 즐겼죠.

그 후, 이와 같은 현대전의 개념은 게임, 영화, 만화 등의 다양한 대중문화에 흘러 녹아들었고, 지금은 밀리터리 물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조류가 되었습니다.




Call Of Duty:Modern Warfare 2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엑티비전에서 유통하는 전쟁 FPS입니다. 트라이아크와 인피니티 워드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작품을 만들고, 만든 작품마다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주면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죠. 이 덕분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근 1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인기 프랜차이즈입니다.

전통적으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07년에 인피니티 워드는 기존 시리즈 공식을 깨고 최초로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모던 워페어를 개발했습니다. 결과는 공전의 유래 없는 대성공이었죠. 현대전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한 현장감,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싱글 플레이,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멀티플레이까지 모던 워페어는 당시 게이머에게 있어 완벽한 게임이었죠. 모던 워페어 2가 나오기 전까지의 2년 동안 총 판매 누계 1300만장, Xbox 라이브 동시 접속자 수 Top 3 등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2009년, 모던 워페어의 후속작 모던 워페어 2가 발매 됩니다. 그리고 모던 워페어 2는 지금까지의 존재해왔던 게임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 치워버립니다. 첫날 판매량, 첫주 판매량, 예상 판매량, Xbox 라이브 동시 접속자 수 등등 한 때 넘을 수 없는 기록으로까지 취급 받았던 GTA의 기록을 거침없이 깨버리고 말았죠.






The Campaign:For The Record

싱글 플레이는 전작의 5년 후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5년전 러시아 신 국수주의자인 자카예프의 죽음 이후로 러시아는 국수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자카예프의 충실한 부하였던 마카로프를 쫒던 도중, 러시아 공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의 주모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고 이로써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죠.

싱글 플레이는 짧고 강렬합니다. 총 6시간이라는 액션 게임의 평균 싱글 플레이 시간보다 짧은 시간(F.E.A.R. 2만 해도 10시간 가까이 되었습니다)을 보여주지만, 그 6시간을 아주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싱글 플레이는 시리즈 특유의 현장감과 영화적 연출을 잘 살려내는데, 케릭터의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진행합니다. 또한 정신없는 총격전과 이벤트들 게임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훌륭하게 설계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출과 재미를 제외하고 스토리의 완성도는 상당히 엉성합니다. 미션마다의 완결성은 높지만, 미션 모두를 모아놓고 본다면 미션이 각각 따로 놉니다. 예를 들어 보죠. '굴라크' 미션은 전쟁의 주범이자 초 국수주의자인 마카로프가 미국인 보다 더 증오한다는 죄수를 확보, 탈출시키는 미션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미 미국-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발발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이 죄수가 무슨 소용이 있죠? 그리고 죄수를 확보했다손 치더라도, 마카로프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 덫에 걸릴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의 스토리 라인은 구멍이 난 치즈 마냥 허점투성이입니다. 또한 싱글 플레이 역시 재미에 비해서 단조롭습니다. 1자형 단선 진행은 FPS 게임이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지만, 게임 내용 죄다 숨고 총 쏘고 숨고 총쏘고 숨고 총쏘고.....엔딩을 보고 난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한건 총쏘는 거 말고는 한 게 없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정말 재밌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됩니다.




하지만 게임 내적 요인보다 게임 외적으로 보았을 때, 모던 워페어 2는 문제가 많은 게임입니다. '현대전'이란 개념이 대중문화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로서 자리잡은지 꽤 되었습니다만, 모던 워페어 시리즈 만큼 이를 잘 풀어낸 경우는 찾기 힘들죠. 문제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제작사인 인피니티 워드가 이러한 '현대전'의 엔터테인먼트 적인 개념에만 집중을 하고, 전쟁의 잔학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현대전'의 개념에서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를 극한으로 이끌어내어 만든 것이 모던 워페어 시리즈입니다.

이번 작에서는 주요 작전지역 중에서 미국이 나옵니다. 미국의 테러 행위에 분노한 러시아가 미국 본토를 침공하기 때문이죠. 즉, 게임 내에서 미국이 '불타는 모습'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련의 미션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멋지게 나오지만,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얼마나 이 미션들이 소름끼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전화(戰火)에 휩싸이는 것, 그것은 현재 국제 질서의 중심축이자 경제의 중심인 공간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국제 질서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컨대, 미국이 불탐으로 세계 정세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물론, 지금까지 게이머들은 수많은 세계적 위기 상황(?)을 다루어왔죠. 외계인, 템플 기사단, 악마, 괴물, 미치광이 과학자, 인류를 말살하려는 사이보그 등등, 하지만 실존하는 국가간의 충돌, 그것도 실존하는 '공간'에서 충돌한 적은 극히 드물었죠. 특히 게임에 있어 현대 미국 본토에 대한 타 실재 국가의 침공은 전무후무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자국을 공격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문제는 미국 본토에 대한 침공은 여러 가지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하게 재미를 위해서 미국 본토를 불태우기에는 미국의 붕괴로 세계가 입을 피해가 너무 많죠. 그런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단순하게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기엔 게임을 만든 제작사가 무책임하거나, 자각이 없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현대전이 흥행이 잘되는 엔터테인먼트 요소이기는 하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풀어낼 때 그 오싹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습니다.



'No Russian' - Remember, No Russian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발매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No Russian' 미션입니다. 게이머는 미국 CIA 잠입 요원이 돼서 마카로프가 러시아 공항을 테러하는 것을 돕게 되죠. 즉, 총기로 비무장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을 돕는 것이 게임의 주요 미션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던 워페어 2의 이 공항 학살 미션은 가장 잔혹한 장면으로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도 비무장의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테러리스트(물론 잠입한 CIA 요원이라는 설정이지만)가 돼서 말이죠.

물론 GTA 같은 경우에는 범죄자가 돼서 자신이 기분 내키는 데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아예 인간을 찢어 발겨서 채력 회복 용도로 쓰고, 더 심한 맨헌트나 포스탈 같은 경우에는 인간을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죽일 수 있죠. 하지만, 모던 워페어 2가 이들보다 더 잔인한 이유는 모던 워페어 2는 바로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테러라는 소재를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테러는 과거의 개념도 아니고 소멸된 개념도 아닙니다. 지금 현재,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심지어 자신까지도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테러는 소름끼치는 개념입니다. 또한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현대전 및 근대전에서 금기시 되었던 사항이고, 테러의 효과는 일반 대중에게 '공포'를 확실히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확실합니다. 그렇기에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표현하기 위하여 테러라는 수단을 빈번하게 사용하죠.

'No Russian' 미션이 더더욱이나 소름끼치는 이유는, 그 테러의 목적이 정치적 사상의 표현이나 요구가 아닌 미국과의 더 큰 전쟁을 위한 초국수주의자의 희생제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국민을 제물로 바쳐서 전세계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 큰 전쟁을 일으키고자 한 것은 이미 일반적인 테러의 범주를 뛰어넘었습니다. 이건 테러가 아니라 순전한 광기입니다.

더군나나 이 미션에서 게이머인 CIA 잠입 요원은 죽어서 미국-러시아 전쟁의 불씨를 제공합니다. 즉, 미션이 갖는 논란성에도 불구하고 게임 내에서의 미션의 중요성과 게이머의 역할은 지극히 수동적입니다. 분명 게임 내에서 주인공은 게임 내에서 테러를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이 수십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을 팔짱끼고 지켜보는, 아니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No Russian' 미션은 사실 전체 미션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 가장 의미가 없는 미션이고, 꼭 플래이할 필요도 없죠. 이러한 사족과도 미션을 만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전에도 인피니티 워드는 '현대전'이란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전작 모던 워페어에서 핵을 터트리고, 피폭자의 시점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상황을 게임 내에 넣었습니다. 그 미션은 2007년도 가장 역겨웠던 미션으로 뽑혔죠.

이번 모던 워페어 2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전이란 소재를 자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테러라는 개념을 게임 내에 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언론들이 이 미션에 대해 보도하였고, 하는 사람마다 이 미션을 거론하였죠. 마케팅 전법으로서는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던 워페어 2는 재밌죠. '현대전'이란 개념이 주는 파괴적이며 중독적인 매력과 전장의 긴박감, 영화 같은 연출은 다른 게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에 있어 재미를 떠나서 좀 더 게임을 팔아먹겠다고 게임 내에 수많은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미션을 집어넣는 것이 과연 옳은가의 문제는 별개로 보아야 합니다. 이건 도의적인 문제입니다.

일전에 사실적 폭력과 고문을 보여준 '마터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자극에, 자극에 의한, 자극을 위한 대중문화는 결국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자극(사드의 소돔 120일 처럼)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모던 워페어 2 같이 현대전이란 실재하는 개념이 갖고 있는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배제하고 극한의 자극과 재미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테러라는 개념을 게임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은 큰 문제입니다.

'No Russian' 같은 충격을 주는 게임들이 쉽게 나올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문제는 모던 워페어 2라는 아주 '성공적인 선례'가 등장하였고 이런 내용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인기를 끌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군요.



멀티플레이 및 스펙옵스에 대한 리뷰는 下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