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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용과 같이 시리즈는 ‘지역적’이고 ‘동시대적’인 특색이 강한 작품이었다.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쉔무에서부터 일본/홍콩의 마을과 거리를 구현하면서 거기서 소일과 활극을 즐긴다는 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용과 같이 시리즈도 카무로쵸, 소텐보리 같은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플레이어가 그 지역의 특산물과 즐길 거리를 즐기는데 방점을 찍었다. 또한 야쿠자와 인협물이라는 시대에 동떨어진 장르와 다르게 게임 내에서 즐기는 소일거리들은 ‘동시대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는데, 제로의 물장사에서부터 전화 데이트, 캬바레 같은 일본식 성인 유흥에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만남어플 등과 같은 신식 문물까지 오랜 시리즈의 역사동안 다양한 동시대의 문화를 게임에 녹여내려 했다.  

흥미로운 점은 용과 같이라는 작품의 지향점일 것이다: 게임은 분명 GTA 같은 게임과 비슷한 소재(범죄자, 일탈의 즐거움)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GTA와 전혀 다른 지향점을 보여준다. GTA식의 메트로폴리스 도시의 구현이었다면 용과 같이는 도시의 한 두 블록을 정밀하게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GTA의 도시가 현대적인 대도시의 풍광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면(물론 발매텀이 매우 긴 것도 한몫할 것이다), 용과같이는 짧은 발매텀과 그때 그때의 유행들을 반영한 미니게임, 트렌드의 변화로 게임 내에 즉각적으로 반영된 게임이었다. 물론 용과 같이가 작은 규모의 게임으로 구현된 것은 에셋을 최대한 재활용한다는 기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은 발매텀 동안 중복되는 미니 게임이나 기믹을 최대한 배제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의 요소들을 최대한 들고온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GTA가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일탈을 구현하는게 핵심이었다면, 용과같이는 약간의 문턱을 넘으면 손에 얻을 수 있는 일탈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런 ‘손에 잡을듯한 일탈’의 개념은 역으로 용과 같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컨셉과는 크게 맞물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용과같이 시리즈의 시작은 인협물으로 한국식 조폭물의 일본판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식 조폭물의 문제답게 야쿠자물 역시 현실 범죄의 미화,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미학과 겉멋든 모습들, 폭력적이고 과격한 묘사 때문에 점차 메이저한 장르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장르적으로 퇴색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서도 야쿠자는 강력한 법적 제재와 단속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문제는 ‘동시대성’과 ‘장르적 베이스’가 상충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야쿠자를 멋지게 표현하는 모습과 야쿠자는 행복하면 안된다는 장르 법칙 간의 모순, 시대가 지날수록 야쿠자는 설 곳을 일어가고 있는데 근 20년 가까이 시리즈를 지속하면서 야쿠자 주인공으로 메인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들 등등은 용과 같이 시리즈가 걸었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용과 같이의 강점은 구체적인 상상력과 지역에 기반한 상세한 요소들이었지만, 동시에 그 요소들을 게임으로 엮어 성립시키는 장르적 문법들이 역으로 게임 프랜차이즈를 옭아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멜로드라마나 소프 오페라 관점에서 본다면 완성도가 높아 세계적으로 팔릴 여지가 있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부분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편의 방향성 변화는 활로를 뚫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단순히 액션 게임에서JRPG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야쿠자’라는 장르적 문법에서 넘어서서 ‘손에 닿을듯한 일종의 어반 판타지’로 넘어갔다. 야쿠자와 불량배들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잡몹이 되고, 하수구는 던전으로, 생활속 다양한 직업들은 판타지에 나올법한 전사, 도적, 마법사들로 치환된다. 사실 원래 용과 같이에서도 이러한 NPC들의 얼척없는 이야기들이나 황당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도 많아서 이러한 변화점이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았는데, 용과 같이 7은 아예 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즉, 손에 잡을 듯한 일탈과 그 일탈을 뒷받침하는 상상력을 어반 판타지의 양식으로 재정립해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야쿠자와 인협물이라는 요소 자체를 일반화된 대중문화 코드로 희석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 용과 같이 7이었던 것이다.

용과 같이 7의 성공은 주인공을 키류 카즈마에서 카스가 이치반이라는 인물로 세대교체하는 주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7편의 등장으로 지난 20년 동안 키류 카즈마란 인물이 쌓아온 용과 같이를 정리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키류 카즈마의 존재는 용과 같이의 기반이 구세대적인 야쿠자 인협물에 기반하는 산 증거이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게임에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용과 같이 제로에서처럼 캬바레를 간다던가, 미니카 대전을 즐긴다던가, 당구를 친다던가 등의 소일거리들은 사실 우리 윗세대들이 주로 하는 소일거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일거리들은 아랫세대로 내려올수록 공감을 얻기 힘들거나 재미가 없게 느끼거나 하는데, 키류 카즈마란 인물이 표상하는 과거의 감수성을 넘어서 게임 콘텐츠를 과거의 영역으로 제약하는 한계가 된다.

용과 같이 7 외전은 키류 카즈마를 떠나보내주기 위한 작은 진혼곡이다. 용과 같이 제로의 시스템(돈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는)을 도입하면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콘텐츠들을 집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용과 같이 7 외전은 7이나 과거작들 같은 메인 시리즈와 같은 야망이나 힘을 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시리즈가 10장 이상의 볼륨을 자랑했다면, 용과 같이 7 외전은 6장 남짓의 분량에 이전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다채로운 반전이나 즐길거리 요소들을 빼고 오로지 구작의 미니게임이나 시스템들을 다듬고 재활용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분량뿐만 아니라 용과 같이 7 외전은 의도적으로 작품의 포부를 줄여버린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애당초에 7에서 ‘키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이야기의 곁가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지만, 8편에서 마지막으로 출연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키류가 걸었던 길과 야쿠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어째서 더 이어질 수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야기에 큰 힘을 쏟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7 외전이 구시대적인 게임 플레이를 다듬기는 하지만 숨기지 않는 부분들은 보면 더더욱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진다:7편에서는 이미 잘려나간 캬바클럽과 같은 미니 게임 요소나 새로운 미니 게임 요소는 넣지 않고 상당수 구작의 미니 게임들을 가져온 점, 격투 스타일을 두가지로 줄여서 다듬어 버린 점들이 그러하다. 7이나 구작들, 특히 4나 5편, 제로 같은 작품에서는 플레이 케릭터 수를 늘려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와 기믹을 보여주려 했었던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어깨에 힘을 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7 외전은 8편을 위한 구작의 앵콜에 가깝다. 애당초에 8편 발매 2개월 전에 게임패스를 통해서 풀린 점이나 풀 프라이스 가격보다 살짝 저렴한 가격으로 나온 점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키류 카즈마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생긴 점이 그러하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키류 카즈마에게서 ‘퇴물이 되어 늙어버린’ 자의 애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 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이번작에서는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조용히 살아가며 과거의 영광과 악명에서 거리를 둔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그의 행동에는 과거를 억누르는 연륜과 동시에, ‘자기는 아직 늙지 않았다’라는 묘한 호승심이 상충되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캐슬 투기장에서 더 높은 등급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이나, 미니카 서킷에 도전을 한다던가 하는 등의 활동에서 과거를 추억하면서 ‘난 아직 늙지 않았다’와 ‘나는 아직도 강하다’라는걸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우리 같은(=야쿠자) 사람들의 꿈이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비하면 쓰레기다 라고 일축하는 모습에서 그런 호승심과 거리를 짓는 성숙함도 보여준다. 

이러한 대비되는 두 감수성이 용과 같이 7 외전의 핵심이자, 동시에 플레이어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키류 카즈마의 모습이 기존 흰 양복의 붉은 셔츠를 입는 전형적인 야쿠자의 모습에서 검은 정복으로 바뀐 점이나 오프닝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장면, 그가 즐기는 미니게임이나 소일거리들이 대부분 용과 같이 제로 때부터 내려오는 40~50대의 추억과 소일거리에 기반한 점들은 그를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고 삶에 지쳐버린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뒤쳐지고 지치고 늙은 키류 카즈마가 하고자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아직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또다른 하나는 너무 늦기전에 뒷세대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 모순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게임은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였고, 용과 같이 7 외전은 분명 작은 스케일에 아주 훌륭한 완성도라 할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잘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에서 용과 같이 제작진들의 강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통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개념이긴 해도 그러한 통속적인 개념들의 대비를 통해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이미지와 스토리를 각인시키는 부분이 용과 같이 시리즈의 강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용과 같이 7 외전은 8편을 위한 기대감을 고취시키는 프롤로그의 관점과 키류 카즈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에필로그의 관점에서 모두 좋은 작품이다. 물론 독자적인 작품이 아닌 ‘무언가’의 끝이자 시작으로 기능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본다면 7편이나 이전 작품에 비해서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용과 같이 7 외전은 용과 같이 제작진들이 소프 오페라의 문법을 다루는 관점에서 완숙미를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7편의 변화나 저지먼트 아이즈 같은 외전들, 키와미 같은 작품들 등등을 통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 시도에서 일본 로컬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에서도 먹힐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관점이 대단히 ‘구시대적’인 부분들은 있지만, 구시대의 사람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현시대 사람이 못되더라도 적어도 현시대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것을 용과 같이 시리즈와 용과 같이 제작진은 증명해냈다.

게임 이야기

 

- 스팀덱 처분하고 레노보 리전 고를 약 2주 정도 사용한 후기입니다.

- 생각보다 들고다닐만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기기라는 인상. 잘 사용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이 기기보다 스팀덱에 대한 평가가 더 올라가는 기묘한 기기입니다.

- 기기 하드웨어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떨어지는게 너무 눈에 보이는 기기.

- 스펙적으로 본다면 스팀덱보다는 훨씬 뛰어나며, 기본적으로 윈도우 기반의 UMPC이기 때문에 더 많은걸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쓴다던가, SSD 용량을 확장한다면 기본적인 사무 업무나 작업을 하는 것이 왠만한 사무용 피씨만큼의 성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펙적으로 본다면 화면 크기가 늘어났기 때문에 영화나 다른 사무용 업무, 웹 서핑을 수행하기 괜찮다. 기본적으로 윈도우 11의 타블렛 UI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무게도 스팀덱 보다 좀 더 무겁긴 하지만, 게이밍 노트북이나 여타 기기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가벼운 축이고 들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경계선에 있다. 

- 성능적으로도 스팀덱 대비해서 더 뛰어난 수준. 당장 몇몇 게임들의 경우, 게임 플레이 프레임이 올랐다는게 느껴질정도로 차이가 난다. 디아블로 4 같은 게임이나 그림 던 같은 게임들 등등 기존 스팀덱에서는 40프레임 정도를 방어하던 게임들이 60프레임 이상을 방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와인 기반의 프로톤이 갖고 있던 윈도우 '에뮬레이션'의 문제를 윈도우 네이티브로 해결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 그러나 스팀덱과 달리 기기 '전용 OS'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꽤 많다. 우선 범용적인 윈도우 OS의 태블릿 UI나 사용감 자체도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데, 레노보 리전 고용 대응 소프트웨어도 완성도가 너무 엉망이다. 특히나 스팀덱 같이 빅픽처 모드와 스팀덱 OS 기반으로 다듬어진 UI/UX 컨트롤러의 조작감과 대비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스팀 외부의 ESD(예를 들면 엑박 게임 패스같은)를 쓰면 키보드와 기본 컨트롤러 사이에서 충돌까지도 발생한다. 

- 컨트롤러 버튼은 많은데 정작 스팀덱 처럼 뒷면 컨트롤러 버튼을 따로 지정하거나 사용못한다는게 좀 치명적이다. 기존 스팀덱 컨트롤러는 후면 컨트롤러 버튼을 매핑하고 쓸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 분리 컨트롤러 기믹은 좋은데 문제는 스위치처럼 컨트롤러 두개를 결합할 수 있는 조립형 지지대 같은것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 전반적으로 덜 무거운 게이밍 노트북이라 생각하고 쓰면 상당히 만족스럽고, 스팀덱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더 좋은 기기를 생각하고 사기엔 좀 애매하다. 무게도 무게고 게임 하나만 하는 용도로 쓰기엔 OS 완성도도 너무 떨어진다. 무엇보다 조금 프레임과 해상도를 희생하면 이미 스팀덱에서도 레노보 리전 고가 할 수 있는 거의 상당수의 것들을 처리할 수 있다. 60프레임이 좋긴 하지만, 30프레임이라는 포멧이 왜 표준이었는가? 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 결론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만(게이밍 "노트북"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모두에게 추천해주기는 어려운 기기. 

게임 이야기

 

 

디아블로 2의 등장은 게임 역사의 한 장을 바꾸었다. 수많은 적들을 죽이고, 장비를 획득하고, 스킬과 스탯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케릭터를 키우는 구조를 우리가 아는 형태로 처음 정립한 건 디아블로 2였다. 그리고 좀 더 뒤로 흐름을 넓혀서 본다면 게임의 장르나 방식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폐지 줍기’ 게임으로 일컬어지는 파밍 게임 장르의 큰 틀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 2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갖고 이야기하고 그리워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디아 2의 기록적인 성공은 수많은 아류작과 파생작, 계승작들을 만들어냈고 다양한 시도와 실패, 성공들을 동반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디아블로 2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단순히 게임 하나만의 추억이 아닌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로 진행된 액션 rpg 장르 전체에 대한 추억이자 그 이후의 게임들로 이어지는 계보에 대한 향수이자 집단 기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디아블로 2 본편의 양식과 장르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너무 낡아버렸다. 디아블로 2가 게임 역사의 큰 흐름에서 뒤로 밀려나게 된 이유에는 디아블로 2의 문법들을 많은 게임들이 충실하게 잘 따라했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존재했다:가령, 디아블로의 개발자 중 하나였던 빌 로퍼가 만들고 총을 수집하는 1인칭 디아블로로 시작하여 실패를 겪은 헬게이트 런던은 보더랜드와 데스티니라는 양식으로 완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큰 틀에서의 추상적인 구조는 디아 2를 따르고 있지만, 그것을 fps의 툴셋으로 옮기기 위해서 데스티니와 보더랜드는 수많은 자기 해석과 새로운 방법론, 레벨링 구조, 콘탠츠 구조들을 만들었는데 시작은 디아 2였을지 몰라도 결국 도달한 결과물이 완전히 상이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더이상 디아블로 2라는 거인의 그림자에 숨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화된 디아 2의 장르와 양식은 역설적이게도 디아블로 2 원전을 점점 낡은 양식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는데, 아이소매트릭 카메라 구조의 한계와 유행의 종료, 유저 편의성의 문제, 엔드 콘탠츠와 반복 플레이에서의 문제 등은 아무리 고전이라도 극복할 수 없는 시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즉, 디아블로 2는 분명 시대에 큰 족적을 남기고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현재에 있어 ‘동시대’라 할 수 없는 지나간 흐름의 게임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 4가 디아블로 3 이후로 무려 11년 만에 발매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대와 함께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라는 의문이 섞인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간 블리자드가 겪었던 아노미와 실망스러운 행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디아블로 4가 취하고 있는 디아블로 2 형식의 아이소매트릭 핵 앤 슬래시 액션 RPG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로스트 아크 같은 게임들이 이런 게임 장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고(물론 후술하겠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디아 4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상당수의 트리플 A 게임들이 디아블로 2의 비전을 소화하고 있기에 디아블로의 신작이 지금 시대에 그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것과 별개로 디아블로 4가 취하고 있는 양식, 아이소매트릭 핵 앤 슬래시 액션 RPG라는 장르가 지금 관점에서는 “굳이?”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어느정도 대중의 평가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런 영역들을 제껴두고 보더라도 게임 자체는 준수하게 나온 게임이다. 물론 디아 4가 디아 2 이후의 새로운 혁신의 영역을 열었다던가, 혹은 시대의 명작이라든가를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후술하겠지만 블리자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디아 2의 성공은 아마도 재현될 수도 없고 재현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디아블로 4가 발매 이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우주 최고의 쓰레기 게임’, ‘자기들이 뭘 만드는지도 모르는 게임’이라는 표현들은 너무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2 이후 걸었던 다양한 게임들을 조합하고 절충하여 코어와 캐주얼 사이의 그 어딘가 절충안을 찾으려 한 게임이다. 물론 그것이 어중간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디아블로 4는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없이 만들지도 않았고 골격 자체는 상당히 잘 잡혀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이 많이 사로잡혀 있는 가장 큰 미신 중 하나는 블리자드라는 게임 제작사가 ‘혁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역사를 잘 살펴본다면 블리자드의 성공작들 전후에는 블리자드가 벤치마킹하고 발전시킨 무수히 많은 게임들이 존재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그 장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을 들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은 선각자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블리자드는 이러한 작품들을 벤치마킹해서 자기만의 양념을 몇스푼 얹어서 완성시키는 일종의 트렌드 팔로어 개념에 가까웠다. 비주얼적인 변화와 발전 때문에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디아블로 1이 넷헥 스타일의 게임(흔히들 로그라이크라 불리는)의 경험을 발전 승화시킨 게임이란 걸 감안하고 디아블로 2가 그 디아블로 1의 가능성을 승화시킨 게임이란 점, 그리고 마지막에 팔로잉 할 작품이 없어서 허공에 헛발질하면서 망한 디아블로 3의 케이스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오버워치나 하스스톤의 흥망성쇠도 그렇고, 종합하여 보았을 때 블리자드라는 회사의 오히려 ‘벤치마킹하여 양념칠만한 요소가 있는가?’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회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디아블로 4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디아블로 4가 벤치마킹한 게임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선은 로스트 아크다: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로스트 아크라는 게임이 없었다면 디아블로 4의 게임 구조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와 보스 레이드, 지역단위로 끊어져있는 퀘스트 동선, 카메라를 쓰는 방식 등등 큰 틀이나 자잘한 틀에서 디아블로 4는 로스트 아크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루머에 따르면 디아블로 4가 위처나 다크소울과 같은 RPG를 벤치마킹했다는 루머가 있다. 물론 우리가 그 모습을 알 길이 없고, 디아블로 3 이후로 있었던 디아블로 관련 프로젝트들이 난항을 겪으면서 진상은 오리무중에 빠졌지만 로스트 아크의 발매가 2018년이고 디아블로 4의 첫 공개가 2019년 11월이란 점을 쉽게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스테로이드를 빤 늙은이”다. 기본적으로 로스트아크의 핵심 골자들은 추억에 기반한다. 디아블로 2와 같은 핵앤슬래시나, 와우나 mmorpg 같은 장르 등등 2018년 시점에서는 이미 일부 게임을 제외하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장르였다. 스마일게이트의 대표가 ‘한번 쯤 추억을 집대성한 위대한 게임을 한번 내보자’라는 꿈이 없었다면,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기획서 단계에서도 통과되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추억을 드림장르의 형태로 구현해보자 라는 이 이상한 목표가 “과거를 받아 현재를 구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비전을 가진” 형태의 게임을 만든게 아닌 “현재의 탈을 뒤집어 쓴 뒤 편의성을 갖추고 미래의 가능성도 포섭하려 한 과거의 게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괴이한 이상을 집대성한 부분이 바로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를 쓰는 로스트아크의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콘솔 트리플 a 게임의 도래 이후로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는 게임의 영화적 경험이나 연출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를 등뒤나 어깨 뒤에서 바라보는 3인칭 시점이나 1인칭 시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로아는 여전히 아이소매트릭 카메라 방식을 고수하면서 정작 연출 자체는 고전 아이소매트릭 게임의 연출이 아닌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의 연출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로아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들과 연출들(과격한 줌인, 스테이지의 고저차를 연출하는 간단한 플랫포밍, 카메라 촬영 각도를 틀어서 공간감을 표현하기 등등)을 보여주었다. 로스트아크의 카메라 워크와 연출은 나름 성공적이긴 했지만, 이런 괴이한 조합들로 인해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함을 갖게 되었다.

디아블로 4의 큰 구조와 연출, 게임의 흐름은 분명 이런 점에서 로스트아크를 따왔다. 분명 디아블로 4의 많은 부분들은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의 편의성과 구조, 파밍 흐름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아이소매트릭 카메라와 연출방식, MMO 요소들과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지향점의 괴리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트리플 A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인데, 명백히 로스트 아크를 레퍼런스로 차용한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로스트 아크가 없었다면 과연 디아블로 4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스트아크와 비슷하게도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부분들이 디아블로 4에 잘 어울리기도 하는데, 결국 디아블로 4가 걷고자 하는 길이 원류로의 회귀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블로 3와 같이 디아블로 2를 발전시키되 새로운 아젠다로 게임을 구성한다라는 혁신과 실패의 과정과 다르게 디아블로 2를 배낀 게임들을 최대한 벤치마킹해서 안전하게 게임을 이끈다는 구성을 취한 점이 게임을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블로 3는 실패작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후대 디아블로 2의 정신적 계승작들에게 큰 가이드라인을 준 게임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3의 핵심은 게임의 허들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었다. 기존의 직업별 공용자원이었던 마나를 제거하고, 마나 대신에 각 직업별 자원 및 자원 순환 매커니즘을 집어넣어서 자원을 수집하고 – 딜로 자원을 소비하고 하는 사이클을 무한히 돌리게끔 만드는 구조를 만들었다. 디아 3의 목표는 개성을 주되(자원 순환 구조를 직업별로 달리 주는 것) 그 허들을 낮게 만드는(기술에 문양을 끼우는 방식으로) 것이었다. 디아 3는 전자는 성공적이었지만, 후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고 말았는데 커스터마이즈 영역이 문양과 기술으로 이원화되어 단순화되고 그 결과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명확해져서 커스터마이즈와 성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디아블로 3의 명백한 실패는 결과적으로 게임이 ‘아이템이 없으면 세팅을 완성시킬 수 없다’라는 것이 매우 컸다. 딜 메카니즘을 완성시키는 전설이나 세트 아이템들이 없다면 플레이어가 손을 대거나 차이점을 만들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디아블로 3는 오리지널 초창기에 아이템 거래를 위한 현금 경매장을 도입하고,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오로지 클리어했던 액트를 다시 재클리어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게끔 만들었다. 거기에 살인적인 난이도를 추가하여, ‘옛날 게임의 구조에 돈을 벌기 위해서 현금 경매장이라는 요소를 추가하고, 거기에 냔이도까지 살벌한’ 기이한 게임을 만들어버렸다. 물론 현금경매장의 폐지, 확장팩의 추가와 대균열, 현상금, 정복자 등의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게임은 어느정도 괜찮았던 본바탕을 건져올리는데 성공했지만, 아이템 망겜이라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카나이의 함 같은 시스템을 추가했어도 결국 블리자드가 디아 3의 확장팩 개발을 포기한 것은 디아블로 3가 구조적으로 회생불가능하다는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의 실패에서 학습하고 더 나은 작품들(가장 큰 벤치마킹의 대상은 패스 오브 엑자일이다)을 배껴서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디아블로 4의 핵심은 이전 디아블로 3에서 세트 아이템 한 벌이 했던 딜 메카니즘을 전설과 고유아이템, 정복자 노드와 문양 단위로 쪼게고 그것들을 모아서 딜 매커니즘을 구성하게끔 만들었다. 처음보면 엄청나게 많은 내용에 압도되지만, 디아블로 4 케릭터 육성 및 세팅의 핵심은 결국 고유 및 전설 아이템의 세팅이고, 이 점에서는 디아블로 3와 유사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위상”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원하는 옵션과 세팅의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구제책을 제공한다:가령 내가 만들고자 하는 세팅과 전혀 다른 아이템이지만 전설 능력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온 경우, 전설 능력만 위상으로 추출하여 보존하고 나중에 나온 희귀/전설 아이템에 덧씌워서 원하는 전설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희귀템에 대한 구제책도 되면서 기존 전설 아이템을 다시 재활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파밍 위주의 게임에서 적절한 구제책을 제공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게임은 던전을 완료 시, 위상을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탑재하여서 파밍의 최저한도선을 설정하였다. 아무리 내가 원하지 못하는 아이템을 먹지 못하더라도 최저한도의 옵션의 세팅을 맞출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을 마련해둬서 파밍에 대한 허들을 낮춘 것이다. 또한 정복자 보드의 존재는  그리고 흥미롭게도 개별 전설 문양들로만 보면 다소 번잡하고 느리게 느껴졌던 게임이 전설과 고유 아이템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디아블로 3가 지향했던 무자원+달 사이클 형태의 게임에 가까워 진다. 그 과정에서 고유나 전설이 들어가거나 빠지면서 사이클이 조금씩 바뀌게 되는데 이전 세트템 기반의 게임이었던 디아블로 3보다는 좀 더 세밀한 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와 같이 100마리, 1000마리 학살 같은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는 게임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아블로 4는 핵앤슬래시 느낌이 나지 않는다’라고 혹평한 부분들은 전투의 느린 속도에 기인한 것이다. 디아블로 4는 방어와 공격 메너니즘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보강과 제압이라는 메커니즘을 넣었고, 이걸로 초기 전투를 진입할 때의 진입장벽을 높였다. 보강은 일종의 방어 버프로 생명력 이상의 보강을 두르고 있을 시에 데미지 감소 버프를 주고, 제압은 플레이어가 보강 상태에 도달했을 때 보강된 수치를 데미지에 합산하여 데미지를 주는 시스템이다. 제압과 보강 메커니짐은 각 직업별 딜 사이클 시스템 내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 돌입시 보강을 빠르게 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보강을 채우는 과정이 플레이어 관점에서는 너무 느리고 답답하며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보강을 채우고 나서는 게임은 180도 달라지게 되는데, 보강된 수치가 데미지 메커니즘에 들어오면서 데미지 계수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루이드의 경우, 보강된 수치를 데미지 버프를 받으면서 확정 제압을 더해서 1만 단위 데미지가 10만, 100만 심지어는 1억 단위 한방 데미지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신 보강은 계속 채워주지 못하면 결국 점차 사라지는 버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꾸준히 딜을 넣거나 스킬을 넣어주면서 일정 보강을 채워주는 작업을 해야한다. 즉, 플레이어 딜 고점은 이전보다 엄청 높아졌지만 보강이라는 요소 때문에 플레이어가 신경써야하는 요소가 자원과 쿨타임 외에 새로운 것이 생겨난 것이다.

즉,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와 같은 짧은 딜사이클을 끊임없이 돌리는 게임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딜사이클을 돌리면서 한방 한방을 묵직하게 꽂아넣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디아블로 3는 컴퓨터가 정해준 대로 자동 변속이 되는 현대적인 스포츠카라면 디아블로 4는 수동 변속으로 꾸준히 속도와 기어 변속을 유지 해줘야하는 스포츠카라 할 수 있다. 손은 더 많이 가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 플레이어의 손을 타거나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게임 자체는 다른 게임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편이긴 하더라도, 그 방향성을 잘 잡고 본바탕은 괜찮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디아블로 4에는 흥미곡선이 하락하는 구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디아블로4에서  플레이어는 레벨 30까진 스킬들을 해금하고, 50 이후에는 정복자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된다. 30까지는 게임의 메커니즘을 익히고, 50부터는 본격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100% 활용하기 시작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0에서 50 사이의 구간에서 플레이어가 비약적으로 강해지거나 게임 메커니즘이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들이 많다. 이 구간에서 플레이어는 스킬을 찍거나 릴리트의 재단을 찾으면서 정복자 레벨이나 스킬 레벨을 올리면서 강해지는 밑밥을 깔아둘 수 밖에 없다. 디아블로 4에서는 이 과정을 스토리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방법말고는 없는데, 시즌 케릭터 같은 경우에는 이 과정 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또한 스킬 포인트를 투자할 때마다 %가 올라가는 것이지 플랫 뎀(고정된 데미지)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레벨이 오른다고 더 강해지는게 체감되지 않는 것이 더더욱 아쉽다.

대신 50렙에서부터는 플레이어의 재미가 지수함수의 형태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더 나은 희귀템을 문양을 활용해서 전설 아이템을 만들고, 스스로 아이템을 세팅하고, 더 나아가서 고유 아이템을 먹을 때마다 어떤 세팅을 맞출건지 연구하고, 문양을 레벨업하고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들이 해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고민하고 바꾼 만큼 게임이 달라지는 구간이기 때문에 디아블로 4는 이전의 밋밋한 구간보다 훨씬 더 재밌어진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종반에 가서 기본 게임 골격은 급격하게 꺾이게 된다. 게임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엔드 콘텐츠는 악몽 던전 100단과 릴리트의 메아리를 잡는 보스전인데, 양쪽다 30~50렙 구간처럼 단계적으로 강해지는 요소도 없고 밋밋하게 레벨을 올리거나 좋은 아이템이 나올 떄까지 노력하는 것 외에는 끝에 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디아블로 4의 구조 자체가 근래의 운영형 게임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운 공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시즌 1과 2에서는 시즌 퀘스트나 콘텐츠들을 통해서 최종 엔드 콘텐츠까지 갈 수 있는 로드맵을 구성해놓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루팅류 게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운영의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모습을 판단하기 보다는 게임에 대해서 얼마나 피드백을 잘 받아주고 잘 운영하는지’가 디아블로 4의 전체 콘텐츠 흐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즌 1과 2는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1에서는 릴리트의 재단을 처음부터 플레이어가 뚫게 만들고 백트래킹을 심하게 유도하여 플레이어가 엔드 콘텐츠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지치게 만들었다면, 시즌 2에서는 엔드 콘텐츠까지 도달하기 까지 플레이어에게 분명한 로드맵을 제공한다(시즌 피의 사냥터  악몽 던전  월드 이벤트  바르샨  지옥물결  두리엘  릴리트  지르의 도살장) 시즌 1과 2의 차이점은 디아블로 4의 제작자들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여 방향성을 잡아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시즌 1의 콘텐츠나 문양을 적절한 부분에 분배한 부분들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이 너무나 ‘당연한’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호평이 다소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오버워치에서 보여준 운영상의 난점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음을 반증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멀리는 디아블로 3의 현금경매장이나 디아블로 이모탈, 오버워치의 운영 등등을 통해서 본다면 블리자드라는 회사는 점점 쇠퇴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시즌 1에서 흔들리긴 했어도 시즌 2를 통해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디아블로 4는 로스트 아크나 패스 오브 엑자일 같은 게임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할 후발 주자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 4는 본 바탕은 괜찮은 게임이다. 디아블로 3마냥 확장팩에도 불구하고 회수 불가능했던 그런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디자인은 아니며, 운영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나아질 여지가 있는 게임이다. 세간에서 시즌 1의 혹평이 심했지만, 시즌 2에서 커버한 모습을 통해 어느정도 신뢰할 여지가 생겼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디아블로 4는 구매해서 손해보지 않을, 오랫동안 놓고 플레이할만한 서비스형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디아블로 2의 등장은 중요한 장르적 개념의 증명이었다:플레이어의 분신인 케릭터를 레벨을 올리면서 성장시키고, 각자 개성을 가진 기술들이나 적이 떨어뜨린 아이템으로 강해진다는 발상은 RPG의 장르의 등장과 태동, 그리고 전작인 디아블로 1편에서부터 형성되어 내려온 장르의 고유 맥락이었다. 하지만 그 맥락이 시스템과 문법을 만나게 되어 하나의 게임으로 정립이 된 것은 디아블로 2였다. 레벨을 올리면서 얻는 제한적인 자원(스탯과 스킬 포인트)들을 사용해 케릭터의 큰 얼개와 개념을 잡고, 그 과정에서 아이템들을 파밍하여 케릭터를 완성시키는 것은 디아블로 2에서 정립되었다. 또한 난이도 설정 방식과 반복 플레이, 랜덤으로 생성되는 맵, 래더 시스템이나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 하드코어 시스템 등도 이 작품에서 대중적으로 정립되었다. 물론 좀더 따지고 놓고 보면 넷핵과 같은 랜덤 생성식의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이미 디아블로 1과 2의 베이스라 할 수 있었지만, ‘던전의 탐색’이 아닌 ’케릭터의 육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의 스타일로 굳게 된 것은 디아블로 2였다.

디아블로 2의 등장은 ‘파밍’과 ‘스킬’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케릭터의 개성을 구성하는 점에서 이후의 게임 장르에 큰 궤적을 그렸다. 당시 나왔던 수많은 실험작들(세이크리드 같은 마이너한 물건에서 헬게이트 런던 같은 실패한 프로토타입까지)의 등장 이후, 디아블로 3가 나오기 전후로 해서 디아블로 2의 스타일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타이탄 퀘스트,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토치라이트, 그림 던 같이 디아블로 2를 받아들이되 자신만의 새로운 색체를 가미하여 성공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디아블로 2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넘어선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작품들이 상당히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것처럼 보여도, 기본적으로는 디아블로 2에서 영감을 얻어서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그림 던 같은 게임에서는 아이템에 스킬이 붙는 ‘아이템 스킬’ 개념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특정한 룬 스톤들을 순서대로 삽입해서 룬 워드 아이템을 만드는 디아블로 2의 시스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스킬과 스탯 배분과 별개로 아이템에 새로운 기능을 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디아블로 2 이후의 소위 핵앤슬래시 게임들은 디아블로 2의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받아들여서 발전 시키는데 더 집중을 하였다.

오히려 디아블로 2의 장르적 개념적 발전은 소위 '폐지줍는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가 발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자면 총 쏘는 디아블로라 불렸던 보더랜드의 등장과 데스티니 같은 게임들의 등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MMO든 패키지든 무엇이든 간에 디아블로 2의 등장은 반복 플레이와 스킬과 스텟을 배분하여 성장하고 아이템을 파밍해서 점점 강해진다라는 개념을 완성시켰다. 디비전 같은 게임이나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루트 슈터류의 게임들이 이러한 디아블로 2의 방계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물론 철저하게 혈통을 따지는 사람들 중에서는 '디아블로 2와 그 직계 후손들'과 루트 슈터 류의 게임들을 분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로스트 아크의 케이스처럼 '이것은 MMO지, 디아블로 2의 핵앤슬래시 류 장르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로스트 아크가 MMO의 큰 장르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그 뿌리를 디아블로 2 스타일의 핵앤슬래시와 파밍 게임에 두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로스트아크 이전 시대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MMO의 뿌리가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에버퀘스트, 울티마 온라인 같은 류의 게임들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로스트아크가 디아블로 2의 베이스를 두고 더더욱 그러하다(물론 여기에 타겟팅 논 타겟팅 등등의 장르 양식까지 고려해서 이야기한다면 복잡해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요소와 제반 상황을 볼때는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면 디아블로 2의 방계이자 서자라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은 무지막지하게 많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무작위로 생성되는 아이템을 주워나가고 레벨을 올리는 형태의 게임들은 상당수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디아블로 4의 리뷰나 디아블로 2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디아블로 2의 구시대적인 양식이 디아블로 3의 실패와 디아블로 4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게임 이야기



바이오하자드 4의 등장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큰 전환점이었다. 심지어 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현대적인 숄더뷰(어깨 너머로 바라보는) TPS의 등장은 바이오하자드 4와 함께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4는 프랜차이즈 전반에 있어서 하나의 ‘성배‘와 같은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4에서 등장한 체술이나 숄더뷰 시점의 게임 플레이, 그리고 B급 액션 영화 같은 QTE와 연출 같은 부분들은 바이오하자드 5편, 6편, 리빌레이션, 심지어는 장르 변화가 일어난 7편의 DLC나 8편 전반에 나왔다. 또한 수많은 서바이벌 호러 게임들 역시 바이오하자드 4의 영향을 받았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데드 스페이스의 게임 플레이가 바이오하자드 4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었다.
바이오하자드 4 RE(이하 4 리메이크)는 바이오하자드 4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바이오하자드 2 RE 이후로 3편을 리메이크한 캡콤이 4편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프랜차이즈에서 어떻게 보면 ‘불가침’ 영역이었던 4편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2편을 리메이크하는 것과 다른 경지였다. 특히나 2편과 같이 오래되서 게임에 대해서 재해석 될 여지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4편은 현대적인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게임 초석을 다진 작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장르 관점에서 본다면 재해석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요약하자면, 바이오하자드 4는 그대로 옮기기에는 그동안 많은 장르의 발전이 이루어진 작품이라 더 나아질만한 요소를 추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그런 점에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성공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의 핵심은 바이오하자드 4의 전투 시스템을 새롭게 양식화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에서 4편의 존재는 체술의 추가였다. 기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총알을 적절한 곳에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체술은 이러한 총알을 아끼고  전투의 흐름을 좀 더 역동적으로 재정의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가령, 적의 무릎을 쏴서 자세를 무너뜨리고 체술로 데미지를 입혀서 적을 쓰러뜨린다면, 그만큼 총알을 아낄 수 있었다. 동시에 상단 하단만 노릴 수 있었던 기존의 조준 시스템을 일신해서 다양한 적들의 부위를 노리게 만든 점도 바이오하자드 4에서 다듬은 부분이었다.
바이오하자드 4에서 체술의 등장은 몬스터 디자인이나 게임 디자인을 일신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게임과 다르게 ‘머리를 노리면 적이 더 강해질 수 있다’라는 개념은 참신한 부분이었다. 또한 총격을 받고 쓰러진 적들이 더 강한 강화체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적들을 틈틈히 칼로 찔러 무력화 시키는 요소를 집어넣는 등 일반적인 슈터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시스템들이 등장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체술을 통해서 편해진 부분들을 다양한 새로운 요소들로 보완해나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의 대부분은 공격 시스템 부분에서 이루어진 변화였고, 바이오하자드 4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 했다.
4 리메이크는 ‘방어적’인 부분을 요소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 4 리메이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나이프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다. 본편에서 나이프는 누운 적들에게 추가타를 입히거나, 총알을 아끼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러나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나이프로 ‘패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적의 근접 공격을 처냄으로 빈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것으로 적의 움직임을 막거나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면 근접공격으로까지 이어줄 수 있다. 막을 수 있는 공격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데, 4편 원작에서 닥터 살바도르의 즉사기도 리메이크에서는 칼 패링으로 막아낼 수 있다. 플레이어에게 전방위적인 방어 수단을 제공해준 대신 4 리메이크에서는 2 리메이크에서 했던 것처럼 칼에 내구도를 추가하여 소모품으로 사용하게끔 만들었다. 나이프를 다 쓰게 되면 패링이나 다양한 액션들이 막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항상 나이프의 수량을 체크해야 한다.
패링 이외에도 패링이 불가능하지만 ‘앉아서 회피할 수 있는 공격‘ 요소를 추가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하다. 나이프 패링과 앉아서 회피 같은 요소가 추가되면서 플레이어가 방어적인 부분을 능동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이 늘어났다. 즉,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공격과 함께 방어를 같이 추가하면서 공수 시스템을 모두 완성했다.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마치 교과서처럼 내려온 게임에서 ‘더 나아질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서 완성시켰다는 점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 4편의 등장 이후, 거의 20년 동안 수많은 게임들이 고민하고 발전시킨 부분을 이어받아서 완성시켰다는 점은 기존의 게임들을 공부한 점도 그러하다. 최근 작에 비추어 본다면 총기와 근접전을 결합시킨 칼리스토 프로토콜 같은 게임들이 있을 것인데, 이런 작품보다 오히려 기존 게임의 강점을 살리며 여지껏 있었던 변화들을 모두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캡콤의 개발 철학과 기술력을 집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리메이크라기 보다는 거의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큰 흐름이나 게임 플레이가 4 원작에서 크게 변화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4 리메이크는 4의 연장선이고, 7과 같이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4의 리메이크는 7과 같이 새로운 바이오하자드의 가능성을 연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서바이벌 호러에서 공격과 방어를 하나로 엮어서 근접 총기 격투(?) 게임 플레이의 한 획을 그었다.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 아니면 4편 리메이크는 꼭 해볼만한 작품이다.

게임 이야기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다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었지만, 6편의 거대한 실패 이후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대한 장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기한 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의 형식을 취하면서 만들어진 바이오하자드 8의 모양새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바이오하자드 8은 바이오하자드 7을 골격으로 삼은 바이오하자드 넘버링 작품의 최신작이었다. 최근에 나온 리메이크 작들을 제외한다면, 바이오하자드 8은 바이오하자드 중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 리뷰할 바이오하자드 4가 한 때 완벽한 게임을 한 단계 더 진일보 시키는 게임이었다면, 바이오하자드 8은 기존의 바이오하자드들을 7의 포멧으로 옮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8의 핵심 테마는 '7의 포맷으로 재탄생한 바이오하자드 테마파크'다. 바이오하자드는 시리즈의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테마들을 게임으로 옮겼고, 의외로 시리즈 내에서 많은 장르 포멧을 소화한 프랜차이즈였다. 전통적인 저택식 서바이벌 호러인 1편에서부터 대규모 재난 서바이벌이었던 3편, 5편과 6편,  액션 장르를 게임에 접합시킨 4편 등등 프랜차이즈는 하나의 틀에 얽메이기 보다는 다양한 시도와 변주를 만들어내었다. 바이오하자드 8은 7의 기반을 재활용하는 동시에, 7이라는 새로운 포멧(1~3편의 고정 시점의 게임 플레이, 4~6편의 TPS 게임 플레이, 7편의 FPS까지)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를 테스트해보는 자리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확장을 이뤄내기에는 바이오하자드 7의 전투 시스템이 앙상한 뼈대에 가까운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7편에서 전투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A에서 B로 가는 것을 막기위한 길막의 요소이자, 플레이어가 혐오스럽고 역겨운 적들을 강제로 바라보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즉, 전투는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닌 우회하거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서바이벌의 성격이 강했던 바이오하자드 초기 시리즈(1편이나 2편 같은)에서는 이렇게 좀비를 무시하고 달리는 그런 요소들이 어느정도 있었고 바이오하자드 7의 전투도 그러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바이오하자드 7편의 전투 자체가 바이오하자드 6편이나 레벨레이션즈 같은 현대적인 바이오하자드의 영향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1편부터 5편까지 이어지는 근 20년 간의 역사에서 무빙샷이 안된다는 플레이어들의 불만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전투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점은 무빙샷이 추가되면서 상대방과 플레이어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조정하는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7편은 6편이나 레벨레이션즈 같은 바뀐 전투의 요소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고, 어느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기에 8편의 전투는 7편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 좀 더 다듬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8편 역시 FPS 형태의 게임 구조를 취하고 있고, 이는 7편과 유사하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케일'일 것이다:플레이어가 탐색하는 공간은 커졌고, 등장하는 적들도 늘어났으며, 공간도 이전에 비해서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나 8편의 규모가 거대해졌더라도, 본질적으로는 7편의 1대1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적들이 여럿 존재하더라도 '한 번에 한 명씩'만 공격을 하고 좁고 긴 맵 구조에서 벌이는 전투나 이런 부분들은 7편과 이전 작품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8편에서 재밌는 부분들은 1대1 상황에서 적들이 일종의 '격투 게임 장르'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적들은 플레이어와 싸울 때 좌우 스텝을 밟는 일종의 심리전을 걸면서 접근한다. 적이 총을 맞으면 뒤로 밀려나면서 심리전이 리셋이 되고, 적을 밀어내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 이 때 공격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방어 자세를 취할 수 있는데 방어 자세를 취했을 경우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동시에 상대와의 거리를 강제로 벌리는 밀치기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적들을 한명 한명 격파해 나가는 것이 바이오하자드 8편의 전투 매커니즘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바이오하자드 8은 기존 시리즈들이 갖추고 있었던 다양한 기믹을 하나의 게임에 녹여낼 수 있었다. 우선 8편에서 4대 가주의 스테이지들은 과거 1편, 2편의 대저택(드미트리쿠스), 7편의 호러 기믹(베네비엔토), 5,6편의 대규모 재앙 액션(모로, 하이젠베르크) 같은 기믹들을 8편의 형태로 재해석해서 옮긴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일 건데,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은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에서 보여주었던 미스터 X의 추적 기믹과 저택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거의 바이오하자드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8편은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바이오하자드의 가장 좋았던 부분들을 따와서 8편의 포멧으로 다양하게 즐기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도 생겨난다:각각 저택들의 가장 재밌는 부분이나 가장 좋았던 부분만 다루고 있는데, 그 부분이 감질나게 분량이 조절되어 있고, 통일되지 않아 하나의 게임이라기 보다는 모자이크화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자이크화 되어서 완벽하게 따로 노는 몇몇 작품들과 다르게 바이오하자드 8편은 그래도 8편이라는 틀 안에 모든 테마들을 담아두고 있기 때문에 게임으로써는 완결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바이오하자드 8편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집대성한 작품인 동시에 7편의 포멧으로 할 수 있는 최대를 보여준 작품이다. 물론 각각 개별 테마가 너무 감질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 하나 잡고 보았을 때 완성도가 있어서 감질난다고 생각한다면 게임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7편과 8편, 그리고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정점에 오른 캡콤의 개발력을 감안한다면, 바이오하자드 9편도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게임 이야기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발매는 격투 게임 장르를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린 작품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개발 철학이 혁신적인 시스템들에 기반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필살기 원버튼 지정, 공방 흐름과 상성을 명확하게 다듬은 시스템 구조 등은 이미 이전부터 많은 격투 게임들이 시도했던 것들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강점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에서 온게 아니고 '이전에 존재했던 개념들을 잘 다듬었다'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을 선행적으로 테스트한 회사가 아크 시스템 웍스일 것이다.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게임들 상당수들은 '아니메 격게'라는 격투 게임 장르와 영역을 개척한 아크 시스템 웍스는 오랫동안 매니아들에게조차 어려운 게임으로 악명 높은 격투 게임들을 만들어왔다. 블레이블루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전형적인 파동승룡 케릭터인 진과 라그나를 빼면 거의 대다수의 케릭터들은 다른 격투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운영과 공방 방식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케릭터들이 마치 다른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기에 콜라보 작품이었던 크로스 태그 배틀이 초기에는 초보와 신규 유입을 위해서 조작 체계를 일신하고, 시스템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한 많은 작업들을 했었다. 그러나 동시에 블레이블루보다도 더 악명 높은 격투 게임이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일 것이다:콜라보로 등장한 다양한 케릭터들과 같이 싸운다는 컨셉의 게임은 상중하단을 동시에 노리는 공격이나 공격 위치를 교란하는 공방 등 격투 게임에 있어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방식의 공방이 존재했다. 태그 배틀이라는 기본 개념 자체가 게임의 공방을 격투 게임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게 만든 점이 크로스 태그 배틀을 기형적으로 만들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쉬운 난이도의 시스템들은 이러한 태그 배틀의 기형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보완하려 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게임들 상당수가 이런 식이라는 점이다:게임의 복잡한 부분들의 문턱을 숨기거나 완화시키기 위해서 쉬운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인 점은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게임들 상당수가 '격투 게임' 관점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다소 모호하다는데 있었다. 드래곤볼 파이터즈나 그랑블루 판타지 같은 게임들이나 기본적으로 아크 시스템 웍스가 게임으로 지향한 부분은 일종의 '재현'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강하고 멋있고 빠른 게임 페이스의 재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이나 격투 게임으로서의 통일성은 다소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 시스템을 격투 게임의 공방 흐름에 맞춰서 일신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잘 다듬었다 하더라도 게임이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폭권 토너먼트의 케이스가 그러하다 할 수 있다. 폭권은 격투 게임의 모든 공방 흐름을 '타격' - '잡기' - '가드 포인트가 달린 타격'으로 나누었다. 타격은 잡기를 이기고, 가드 포인트가 달린 공격은 타격을 이기고, 잡기는 가드 포인트가 달린 공격을 이긴다. 이렇게 직관적인 상성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폭권은 격투 게임의 공방 흐름을 '눈에 보이게끔'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그 흐름을 읽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폭권 토너먼트는 이러한 시스템을 단순화시키고 깔끔하게 쳐내고 다듬으면서 몇몇 부분에서 '비직관적인 흐름'을 만들었다. 필드전과 1대1 대전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고 체력 회복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 그 예시인데, 폭권의 공방 흐름을 계속 유지하였을 때 벽몰이에서 플레이어가 탈출할 수 없다던가, 1대1 대전만 존재할 경우에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포켓몬들의 공방 흐름을 다변화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나눈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인 흐름들이 게임 밸런스나 흐름 측면에서 꼭 필요했다 하더라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위화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위화감이 폭권 토너먼트라는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쉽게 만들고자 한' 격투 게임의 케이스들을 생각한다면, 항상 쉽게 만들기 위해서 시스템을 다듬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6가 '쉬우면서 직관적이지만 깊이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게임 전반을 다듬은 부분은 바로 프레임의 이득과 손실, 일종의 경제학적인 영역이다. 예를 들어서 드라이브 임펙트의 경우, 실제 공격이 발동하는 시점까지 약 20여 프레임 정도의 여유가 있고, 보통은 약손이나 중손으로 히트 스탑을 건 후 역으로 드라이브 임펙트를 걸거나 3히트 이상으로 타격을 걸면 드라이브 임펙트를 깨부술 수 있다. 혹은 점프로 상대를 넘어가서 역가드나 뒤를 노릴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 완벽하게 유리한 선택지는 없어서 플레이어가 '리스크를 지고 선택해야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임의 득실의 경제학을 성립하는 것은 공격 옵션들의 카테고리를 크게 약/중/강과 드라이브 시스템들을 발동 프레임, 발생 프레임, 그리고 가드 딜레이와 리치 등을 활용해서 일종의 '카테고리화' 시킨 것이 핵심이다. 비록 모든 케릭터들의 공격이나 잡기, 심지어는 공통 시스템인 드라이브 시스템의 성능이 서로 다르긴 해도 상대 방어에 대응할 때 있어서 분명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뜯어본다면 모두 다른 성능의 기술들이긴 하지만,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에서 '대응 옵션'을 갖추고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프레임의 경제학은 전체 게임 플레이를 유형화 시키지만, 시스템이라는 거시적인 틀로 묶지 않아서 '강제적인 흐름'을 만들지 않았다. 또한 캡콤이 스트리트 파이터 6를 통해서 격투 게임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격투 게임에서 공방의 흐름에서 생기는 재미를 구현하는 것)가 명확했기 때문에, 복잡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도 간단한 프레임의 흐름에서 게임을 구현한다는 수단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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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 월간 GPG 매거진 7월호에 실린 리뷰입니다.

 

대전 게임의 역사에서 길이 남는 장면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우메하라 다이고와 저스틴 웡이 EVO 스트리트 파이터 3 준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저스틴 웡이 춘리로 다이고의 켄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가드 데미지만으로도 다이고는 패배할 수 있을 정도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 때 저스틴 웡이 한 판을 따내기 위해서 춘리의 초필살기인 봉익선을 넣었지만, 다이고가 가드가 아닌 블로킹(공격 타이밍에 맞춰서 스틱을 앞방향으로 튕겨 공격을 가드 데미지 없이 막아내는 스트리트 파이터 3의 시스템)으로 봉익선을 모두 블로킹 하고 거기에 콤보를 시동하여 압도적인 체력 차이를 극복해내는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영상은 유튜브의 태동부터 격투 게임 플레이어들의 심금을 울렸던 명승부였고 격투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아는 격투 게임의 유명한 명장면이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영화처럼 모든 공격들을 쳐내고, 역으로 한판을 따내는 장면은 멋져 보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대단하고 흥미로운 부분은 실제 당시 상황의 흐름이었다. 사실 춘리의 봉익선은 다이고나 정도의 플레이어 수준이면 전타 블로킹하는 것이 가능 했었다. 중요한 점은 저스틴 웡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스틴 윙은 봉익선을 쓰기 전까지 블로킹을 유도하려고 간간이 공격을 허공에 헛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약손 약발 견제나 가드 데미지에도 죽을 수 있는 다이고 적극적으로 블로킹을 노리면서 반격할 것이니, 그런 블로킹을 헛치는 순간을 노려서 게임을 끝내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다이고 그런 흐름에 말려들지 않았고, 웡은 과감하게 봉익선을 걸면서 다이고를 압박했다. 봉익선 전 타를 '지상'에서 블로킹한다고 해서 다이고가 그 체력 차이를 극복할만한 콤보로 이어가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대단한 점은 다이고 역시 그것을 간파하고 봉익선의 마지막 공격들 일부러 점프해서 공중 블로킹을 한 뒤, 바로 강K로 연계되는 콤보를 넣어서 완벽하게 한 판승을 따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이 명장면은 격투 게임 장르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 쉬운 '영화처럼 초필살기를 모두 막았다, 그리고 역전했다’는 화려함은 핵심이 아니다.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서 마지막 공격을 공중에서 막고 내려오면서 강K 콤보로 게임을 따낸 우에하라 다이고의 판단'이 이 승부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었다. 화려한 장면 뒤에는 양 플레이어의 치열한 수싸움과 심리전이 있었고, 양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시스템, 상대방의 심, 체력 계산 등의 모든 것들을 쥐어짜내면서 승부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화려한 콤보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이 아닌, 게임의 시스템과 상대방,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꿰뚫어보면서 극한까지 쥐어짜내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격투 게임 장르의 본질인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23년 6월에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의 최신작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경우 발매 당시부터 배틀 허브나 월드 투어, 파이팅 그라운드 등의 모든 게임 콘텐츠를 들고 발매가 되었다. 전작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5가 지금 와서는 안정 되어있지만 데뷔 당시 여러 이슈들(아케이드 모드의 도입과 스토리의 부재 등)을 들고 발매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자체적으로 완결된 구조와 흐름을 들고 발매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스트리트 파이터 6가 격투 게임의 초심자부터 숙련자, 그리고 달인까지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 콘텐츠부터 시스템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다듬어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종합해서 본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야심은 단순히 전작들을 아우르는 것이 아닌, 격투 게임 장르를 다른 경지의 영역으로 이끄는데 있다. 그리고 스트리트 파이터 6는 그 점에서 성공했다. 본 작은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는 매력의 결정체이자 캡콤의 개발 역량의 정점이며, 더 나아가서 지난 20년간 격투 게임 장르가 그동안 실험하고 고민했던 것들 다른 단계로 끌어올린 게임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우메하라 다이고와 저스틴 웡의 경우처럼, 격투 게임의 본질은 화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수면 아래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시스템이 스트리트 파이터 6에 추가되었다, 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한 시스템이 추가됨으로써 게임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가 어떤 격투 게임인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스트리트 파이터 5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5는 스트리트 파이터 4를 완성도 높게, 그리고 단순하게 다듬는 데서 출발하였다. 강제연결(실제 이어지진 않지만, 히트 리커버리 전에 기본기를 넣어서 강제로 콤보로 연결하는 테크닉)과 케릭터별 특징들 때문에 겉보기에는 입문이 쉬워 보이지만 말도 안 되는 옵션 게임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4를 V 스킬과 트리거 시스템으로 통합해서 깔끔하게 다듬는 작업을 한 것이 스트리트 파이터 5였다 강제연결 판정을 여유롭게 하고, 각 케릭터별 시스템은 V 스킬과 트리거로 시스템화 하였다.  

 

 

 

대전 게임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5는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분명 개선해야 하는 점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보는 재미가 없는 게임이었다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5의 기본기에는 가드 했을 때 내가 이득 프레임을 보는 것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화끈하게 치고 받기 보다는 서로 거리를 재면서 기본기를 내밀다가 친 기본기를 붙잡고 역공하는 구조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왜 서로 거리를 재면서 기본기를 내지르는 싶은 극단적인 거리재기 싸움으로 보이게 되었다. 또한 상당수의 기본기가 이득 프레임을 보장해주니 상대의 기본기와 주입(기본기를 캔슬하고 필살기로 이어서 공격을 이어가는 것)을 가드 하면서 상대의 헛치기를 캐치하나가는, 서로 이득을 보는 거리와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플레이해 나가는 흐름이 기본이 돼서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난해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이러한 흐름을 '역동적'으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 가드 시 유리한 이득 기본기들의 수를 줄이고, V스킬과 트리거 시스템을 삭제, 드라이브 게이지를 쓰는 드라이브 패리와 드라이브 임팩트 시스템을 추가하여 공방의 옵션을 통일시키는 등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밑에서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겠지만, 이러한 시스템들의 변화와 정리플레이어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 6 전작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 가장 큰 변화는 드라이브 게이지라는 새로운 자원의 추가와 드라이브 패리, 드라이브 임팩트 시스템이다. 드라이브 임팩트는 슈퍼 아머 상태에서 퍼니시 카운터로 상대를 공격할 시, 상대에게 긴 경직 주는 공격이다. 그리고 드라이브 패리는 패리 버튼을 누르고 있을 시, 상중하단 가리지 않고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전방위 패리를 구사하는 시스템이다. 이 둘은 드라이브 게이지라는 자원을 이용하는데, 이 드라이브 게이지초필살기용 자원과 별개의 독립된 자원이다.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의 추가는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게임 구조를 바꾸었다. 첫 번째로 게임의 편의성을 높이고 입문 허들을 낮추었다. 전신 아머 판정에 카운터 맞추면 강력한 콤보로 이어 나갈 수 있는 공격인 드라이브 임팩트와 상대의 상중하단 이지선다 타격 공방 자체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드라이브 패리는 공방의 편의와 게임 운영의 허들을 대폭 낮추어 주었다 

 

드라이브 패리/임팩트가 조작을 편하게 만드는데 핵심인 부분은 바로 '(모던 기준)원버튼으로 발동 가능하다' 이다. 모던 조작 기준 패드의 범퍼를 누르는 것만으로 빠르게 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보고도 제대로 입력 못해서 헛치거나 하는 불상사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의 드라이브 임팩트를 보고 드라이브 패리를 치거나, 혹은 좀 늦게 드라이브 임팩트를 쳐서 오히려 압박하는 상대를 먹어버리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심지어 캔슬 가능한 기본기들(대표적으로 약 펀치)에 연결해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약손 견제를 무시하고 드라이브 임팩트를 쓰면 자신도 똑같이 임팩트로 보고 반응하는 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번째 관점은 공방 구조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는 모든 캐릭터들이 고유의 V스킬과 V트리거를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변화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그렇기에 한 캐릭터에서 다른 캐릭터로 넘어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상대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성능 저점을 올려주었다: 예를 들어 잡기 한 번에 모든 사활을 건 캐릭터인 장기에프의 경우, 파동승룡(파동권으로 원거리 견제, 점프해서 파동권을 피하는 적을 승룡권으로 격추)류의 운용법에는 시리즈 전통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드라이브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파동권을 리하면서 잡기 거리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혹은 기본기로 견제하는 상대를 임팩트로 잡아먹고 잡기로 바로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어캐릭터 평가가 시리즈 대비해서 많이 올라갔다. 표준화된 공방 문법의 추가로 특정 패턴에 취약한 캐릭터의 성능을 보완해준 셈이다.  

 

 대신 본작에서 캐릭터들의 개성들은 필살기와 별도 고유 운영 요소들로 남겨 두었다. 마농, 류, 제이미 같이 캐릭터 고유의 버프나 시스템들은 드라이브 시스템과 별도로 필살기나 특수기의 형태로 빠져나왔다. 전작에서 개별 캐릭터들의 개성이 V 트리거라는 시스템 하에 모두 하나로 묶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모두 각자 따로 놀았던 것과 반대로, 본작에서는 캐릭터의 개성은 최대한 살리면서캐릭터별 입문 난이도와 대응 난이도 간극을 줄일 수 있었다.  

 

번째 관점은 자원 관리와 운용의 관점이다. 전체적으로 드라이브 임팩트패리는 운영 난이도를 낮춰주는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드라이브 시스템의 제한점과 리스크들 역시 게임 운영에 큰 영향을 준다. 드라이브 게이지는 기본적으로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 등의 행동을 할 때 쓰여 지기도 하지만, 적의 공격을 가드할 때도 같이 깎여 나가고, 드라이브 게이지가 모두 없어졌을 때는 번아웃 상태가 되면서 가드 경직이 늘어나 -4프레임 손해를 보는 한편,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가 모두 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여타 격투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가드 크러시와 가드 게이지 같은 개념에 가깝다. 방어적인 플레이에 페널티를 주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하라는 게임 디자인의 결과물인데, 스트리트 파이터 6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가드 시스템의 자원 6편 시스템 중심 드라이브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 지어 설계했다는 점이다. 물론, 드라이브 게이지는 생각보 빠르게 잘 차오르는 편이지만, 몇몇 특정한 순간에서는 번아웃이 오거나 최악의 경우 벽 밀치기를 당하여 스턴 경직까지 오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드라이브 임팩트패리는 강력한 도구이긴 하지만, 정석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약점도 존재한다. 패리의 경우, 커맨드 잡기나 기본 잡기에 퍼니싱 카운터로 공략할 수 있으며, 임팩트의 경우 드라이브 패리나 잡기, 역가드 점프 같은 다양한 공략 수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 의존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례로 공중에서 공격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드라이브 패리를 유지하면서 방어를 한다면 공중 기본기 1타는 막아내더라도 패링을 예측하고 착지 후 바로 이어지는 상대의 잡기 선택지를 피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패리를 먼저 발동시키고 있으면, 상대가 그렇기에 상대가 공중 기본기 1타를 내는 그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기다렸다가 패리를 발동시킨 후, 상대가 공중 기본기에서 이어지는 연속기를 다 입력하는 것을 보고 난 뒤에 패리를 풀거나 대시로 캔슬 시켜서 역공을 이어나가야 한다.   

 

드라이브 시스템을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매번 플레이어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역동적인 공방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흐름의 입문 허들은 낮추고 게임의 깊이는 더하는데 성공하였다. 후술할 내용들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구성은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모든 걸 뒤엎기 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들의 템포를 조절하고 다듬어서 정리하는 쪽에 가깝다는 점에서 온고지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드라이브 임팩트패리가 혁신적인 것들처럼 보여도, 당장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가드 포인트가 달려있는 세이빙 스로우와 스트리트 파이터 3의 블로킹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다. 여타 격투 게임들이 프랜차이즈가 커질수록 자신만의 문법을 너무 늘리다 보니 그들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장르의 본질과 시리즈의 전통에 충실하면서 너무 복잡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게 적절한 시스템적 수위를 조절했다. 

 

또한 스트리트 파이터 6 게임 흐름은 플레이어 주도적인 선택을 장려한다: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 드라이브 게이지의 운영, 캐릭터별 자원과 개성, 구석에서의 심리전, 역가드 심리전 등은 플레이어 입장에서 '리스크를 지더라도 무언가를 시도해야 이득을 보는 구조'를 만들었다. 수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구석에서의 리스크(구석에서 드라이브 임팩트가드 했을 시, 넉백 - 벽 스턴으로 상대방에게 콤보 기회를 주는 점)나 수비적인 가드 플레이의 난점(가드 시, 드라이브 게이지가 떨어져서 드라이브 게이지 운영에 난점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 번아웃에 빠질 시 가드 경직 증가 등)들이 발생한다. 때문에 '필요한 상황에선 수비를 하되, 내 공격권을 가져올 수 있는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골라야 한다. 특히 이번 작에서는 구석에 몰렸을 때의 리스크가 더 커지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구석을 탈출하기 위해서 과감한 선택지들(슈퍼 아츠, 점프, 잡기 등등)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들 때문에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 하단 가드를 계속 하면서 관망한다 라는 선택지는 때로는 악수가 된다. 

 

본작의 이러한 요소들은 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플레이어들이 즐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본작의 핵심은 '인식하면 할 수 있다'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극단적인 옵션 싸움도 아니고, 스트리트 파이터 5의 기본기 프레임 표를 다 외우고 있어야 후상황 유불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암기보다는 그때 그때 '상대가 무엇을 하는가' 집중하고 그에 따른 대응들을 차근차근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대전에 안착할 수 있다. 격투 게임에서 모르면 맞아야지?알아도 맞아야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한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점진적으로 자신의 플레이를 고쳐 나감으로써 발전할 여지를 남겨준다.  

  

'인식하면 할 수 있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본작에는 플레이어 숙련도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중간 단계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모던 조작이다: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서는 약중강 펀치/킥 6버튼 체계를 전통적으로 지켜왔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조작 체계를 클래식, 모던, 다이나믹으로 쪼어 놓는데, 기존 시리즈 전통인 클래식과 어시스트 콤보만 나가는 다이나믹 조작보다도 더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바로 모던 조작이다: 모던 조작은 펀치/킥의 개념을 삭제하고 ,, 공격 3버튼에 필살기 버튼, 그리고 좌우 범퍼에 드라이브 임팩트와 드라이브 패리, 우측 트리거에 어시스트 버튼(트리거를 당기고 약중강 입력 시 정해진 콤보 루트를 입력하는 어시스트 콤보가 나가고, 필살기를 누르면 강화형 오버 드라이브 필살기가 나간다)을 배정했다. 모던 조작의 필살기는 필살기 버튼 또는 방향키 필살기 조합으로 나가는, 흡사 대난투 시리즈에서나 볼법한 간단한 조작으로 변경된다. 그 결과 조작 실패에 대한 운영 실패를 줄이고, 패드에 자연스럽지 않은(기존 스트리트 파이터 조작 전통은 강펀치 강킥을 쓰기 위해서는 우측 범퍼와 트리거를 써서 상당히 이질적인 조작감이 있었다) 조작을 패드기반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고쳤다. 

 

 

 

모던 조작의 핵심은 '반응'이다. 애초에 파동 승룡으로 요약되는 4분의 1회전이나 승룡 커맨드 같은 것들이 일단 초심자 입장에서 입력하는 것들부터가 어렵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적재적소에 반응하여 활용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심지어 반회전이나 1회전 같은 입력 도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커맨드들은 캐릭터 입문의 난이도를 대폭 올려버리는 문제도 만들었다. 모던 조작은 이러한 문제들을 20% 데미지 감소라는 페널티를 주되 원 버튼 입력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캐릭터 운영의 정수만 뽑아서 플레이어가 상대 플레이에 반응하여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아무리 초심자라도 상대가 뜨는 궤적을 보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승룡권을 칠 수 있게 된다. 

 

모던 조작의 반응은 결국 운영으로 이어진다. 상대가 선택한 행동에 반응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은 결국 상대가 선택지를 선택할 때, 나도 거기에 대응되는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격투 게임을 하는 초심자 ~ 중급자의 의식의 흐름이 '상대가 공중에 떠올랐다' - '궤도를 읽는다' - '승룡권 커맨드를 정확하게 입력한다' 라는 3단계에서, '상대가 공중에 떠올랐다' - '궤도를 읽는다' 이 2단계로 간단해지는 것이다. 이 의식의 흐름과 뇌내 연산 완화는 그 연산량 자원을 다른 건설적인 자원으로(셋업이나 상대 공격과 수비를 어떻게 막고 내가 반응하는가) 재분배를 하게 하여, 결국 게임이 나가고자 하는 공방의 운영과 능동적인 플레이어의 선택이라는 경지까지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모던 조작이 클래식 조작의 열화 버전이자 클래식 조작으로 이행하기 위한, 언젠가는 도태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모던 조작에서 약 30% 정도의 기본기들이 잘려 나가고, 몇몇 필살기들에는 제약 사항이 걸리거나(=클래식 커맨드 입력으로도 발동할 수 없는), 데미지 제약이 걸리는 등의 다양한 제한이 있다. 그러나 모던 조작은 때로는 '반응 불가능한 타이밍에서 반응할 수 있는' 기회들을 열어 주기도 하는데, 클래식 조작에서 커맨드를 입력하다 놓치는 반응들을 칼같이 입력하게 만들어서 운영 요소와 불가능한 반응의 영역을 파고 들게 만들어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중잡기 상황일 것이다: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공중잡기는 칼같이 타이밍을 입력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커맨드에 신경 쓰지 않고 원버튼 조작으로 공중잡기 타이밍에 신경 쓰면 되서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오르게 되고, 공중잡기 견제가 운영 전체에 유의미한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이런 점 덕분에 랭크 최고 등급인 마스터 등급에서 모던 조작을 쓰는 플레이어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잘려 나간 부분과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이라는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에 모던 조작은 스트리트 파이터와 격투 게임의 조작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었다. 

 

 

 

조작, 운영, 선택지, 공방의 흐름 등등 다양한 것들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가장 놀라운 점들은 이 모든 것들이 이미 다른 격투 게임에서 다 한 번씩은 시험해보고 거쳐간 개념들이었다는 것이다. 간단조작의 경우에는 이미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격투게임에서 주로 들고 나온 실험들이었고, 공방의 흐름을 단순화하거나 하는 부분은 폭권에서 이미 보여줬던 개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실험들이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초보 친화적으로 조작을 개선한 것처럼 보이는 아크 시스템 게임들은 여타 시스템들 때문에 격투 게임 악귀나찰을 위한 게임이 되었고, 폭권이나 다른 게임들도 몇몇 컨셉에서는 확실하게 잘 작동되지만 다른 쪽에서는 어딘가 삐걱거리는 아쉬움을 보여주었다. 허나 원래 있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격투 게임 중에 가장 완벽에 근접한 비율로 다듬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는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 6가 최근 격투 게임유일하다. 

 

심지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싱글 플레이 콘텐츠 마저도 마지막 로드맵의 끝(플레이어와의 심도 있는 공방 싸움과 심리전 흐름)을 바라보고 거대한 튜토리얼로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 스트리트 파이터 6를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입할 수 있는 스토리 콘텐츠를 제공하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싱글 플레이 모드인 월드 투어(스트리트 파이터 6의 싱글 플레이)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를 체험하 과정이다. 게임이 크게 취하고 있는 구조는 특이하게도 '용과 같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행인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거나 음식을 먹어 회복하거나 평범한 스타일 패션 옷들을 마치 장비 마냥 구매해서 RPG 등의 큰 구조 자체는 용과 같이를 연상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면서도 스트리트 파이터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RPG처럼 레벨링을 하는 요소가 있더라도, 정역가드나 심리전, 공방의 흐름 같은 기본 흐름들은 기존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게임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월드 투어의 적 NPC들의 행동이 특정 상황에서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는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장풍으로 압박하거나 가드를 굳히거나 잡기를 막 하거나 하는 등의 패턴들을 보여주는데 일반 아케이드나 컴퓨터 대련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패턴을 섞기 보다는 하나의 패턴에 천착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해당 패턴을 천천히 익히고 배울 수 있게끔 만든다. 또한 드라이브 패리 3번 하기’, ‘드라이브 임팩트 3번 하기등의 다양한 과제를 주고, 플레이어가 해당 행동을 해서 보상을 받게끔 구조를 설계한 점도 눈 여겨 볼만 하다. 즉, 패턴의 학습과 행위에 대한 보상을 통해서 월드 투어 자체가 더 낮은 난이도의 튜토리얼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튜토리얼을 이원화시켜 놓아 사람들이 입문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격투 게임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일반 튜토리얼을 통해서 게임의 큰 흐름을 배우고, 격투 게임 장르가 처음인 사람은 월드 투어를 통해 퀘스트와 RPG 통해서도 천천히(약 20~30시간 이상의 반복 퀘스트와 파밍을 통해) 게임을 배우게끔 만든 것이다. 이렇게 튜토리얼을 이원화시켜 놓고 동일한 목표(대인전)을 바라보게 만든 점은 게임의 구조가 목표를 향해서 탄탄하게 짜여 있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월드 투어의 스토리텔링 역시도 눈여겨 만하다. 기존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나 여타 격투 게임들의 싱글 콘텐츠들은 아케이드 모드와 같이 일직선으로 진행되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월드 투어는 다양한 스승(=플레이어블 격투 캐릭터)들을 만나서 격투를 배우고 강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단순히 거대한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플레이어가 답을 찾아가고 다양한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면서 게임의 세계관에 이입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다루었다.  

 

월드 투어는 그러한 튜토리얼의 역할 외에도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강화하고 아바타 의상을 파밍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금번 월드 투어의 아바타 생성은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정밀한 수준까지 아바타를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다양한 의상과 격투 스타일을 조합해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가 확실히 있다. 그리고 배틀 허브 매치나 배틀 허브 같은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서도 아바타 매치와 아바타 자랑을 할 수 있게 만든 점은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싱글 플레이에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끔 제작사가 배려한 부분이다. 

 

종합하자면 스트리트 파이터 6은 격투 게임의 정점인 동시에, 근 몇 년 동안 나왔던 트리플 A 게임의 정점에 선 작품이다. 깊이 있는 게임 시스템과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학습하는 곡선을 다변화시키고, 여러가지 완충장치들(모던 조작 )을 제공하는 모습은 여지껏 나온 게임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 6 이후로도 더 좋은 게임이 안 나온다든가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6는 대전 게임의 숙련자든 입문자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 구성과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비단 격투 게임 장르를 벗어나서 트리플 A 게임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 격투 게임에 관심이 있고, 오랫동안 플레이할 게임을 찾는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 엑박 메거진 5월호에 투고한 글입니다.

2023 바이오하자드 4 RE 성공은 딱히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17 , 바이오하자드 4원작이 거두었던 성공과, 게임 역사에 남겼던 발자취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바이오하자드 4 RE 원작의 성공에 의존하지 않고, 강점을 재해석하여 새롭게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전체 역사에서 이러한 변화의 시초들을 찾아볼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바이오하자드의 27 역사와 전통은 단순히 기존의 것들을 답습함으로써 쌓아올려진 것이라기보단 오히려 발전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이오하자드 1편부터 바이오하자드 4 RE까지의 바이오하자드의 간략한 역사다. 과정에서 캡콤이 겪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하나의 게임이 걸어온 발자취를 간략하게 다루며, 게임의 성공과 실패의 맥락에는 역사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1편의 제작자 후지와라 토쿠로는 바이오하자드의 프로토타입이라 있었던 스위트 이라는 영화를 기반으로 동명의 패미콤 게임을 만든 사람이었다. 우리는 게임에서 바이오하자드의 원형이라 있는 모티브들을 확인할 있다. 본래 드래곤 퀘스트 형태의 JRPG 전제하고 만들어졌던 스위트 부활 개념의 삭제, 행동과 소지의 제한, 현대 배경, 귀신들린 저택에 풍기는 으스스한 분위기 많은 부분들에서 바이오하자드의 프로토타입이라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1편은 최신 하드웨어인 플레이스테이션과 최신 3D 어드벤처 게임 였던 어둠속의 나홀로 밴치마킹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때의 바이오하자드는 고전적인 어드벤처 요소들을 일부 차용했다: 게임의 다음 스테이지로 이행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저택에 숨겨진 퍼즐을 풀어야 하는데, 마치 당시의 포인트 클릭 어드벤처 게임들처럼 플레이어가 이것 저것 눌러보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확인할 있는 다른 좋은 예시는 바이오하자드 2 RE. 플레이어는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경찰서나 연구소, 하수도 등등을 탐험해야 하는데, 게임은 스테이지별로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끼워넣거나 상호작용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배치하여 궁금증을 자아낸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주어지는 메모를 읽거나 인벤토리에 들어간 아이템을 자세하게 살펴보거나 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들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를 추리해야 한다. 흔히 서바이벌 호러 또는 액션 게임으로 알려져 있는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가 초기에는 이런 클래식 어드벤처 게임적인 요소들이 탑재된 게임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단순히 어드벤처 요소만으로 바이오하자드를 설명할 없다. 또다른 중요한 플레이 요소는 스테이지의 경로 탐색이다:바이오하자드 2 RE 경우, 게임 스토리 진행을 위해 이전에 있었던 장소를 다시 방문해야 하거나, 인벤토리 공간이 부족해서 이전의 위치를 백트래킹 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이러한 백트래킹은 스테이지의 재활용이라는 점에서 개발 공수를 줄여주는 이점이 있지만, 역으로 플레이어에게 경험한 것을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플레이어 경험에 역효과를 있다.   

 하지만 초창기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들(1~3) 이런 이슈를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결하였다:각각의 퍼즐들은 장소들에 배치 되어 있고, 장소들은 좁은 복도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좁은 복도들에 좀비나 몬스터들을 배치한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최소한의 탄약과 회복 자원만을 주고 플레이어가 이걸 헤쳐나가게끔 만든다. 플레이어는 복도의 코너를 때마다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다음 퍼즐과 진행 루트를 가려고 하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떻게 하면 탄약을 아낄 있나? 아까 복도에서 내가 좀비를 죽였었던가? 복도가 안전한가? 어디에서 아이템을 파밍할 있을까?

 여기에 최신작인 바이오하자드 2 RE 플레이어를 적극적으로 추적하는 미스터 T’ 둬서 플레이어가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있더라도 게임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게 만들었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플레이어들은 다시 게임을 플레이했으며, 클래식 바이오하자드 타이틀들은 빛날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4 등장으로 인한 변화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바이오하자드 3편까지의 만악의 근원이었던 엄브렐라를 해체해 버리는 충격적인 도입부처럼 말이다. 게임은 고정 시점에서 플레이어를 조작하는 방식이었던 기존의 노선을 버리고 현대적인 숄더뷰 TPS 구조를 채택했다. 또한 탄약을 아끼는 체술의 존재나 B 테이스트와 같은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오하자드 4 이러한 변화는 이전의 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있었던 부분이라는 것이다. 고정된 카메라 시점이 아닌 카메라가 플레이어와 함께 움직이는 스타일은 이미 드림캐스트로 출시되었던 코드 베로니카에서 등장했던 있다. 체술의 경우는 이미 3편에서 긴급회피 시스템을 통해 간접적으로 테스트한 부분이 있었다. 3편의 긴급회피는 좀비나 몬스터가 공격할 , 특정 버튼 입력을 통해서 공격을 회피하고 짧은 시간 동안 공격 속도 버프를 얻는 시스템인데, 플레이어가 숙달되면 긴급회피로 상당수의 상황을 풀어낼 있을 정도로 강력한 시스템이었다.   

 바이오하자드 4 플레이어의 어깨 뒤로 카메라를 돌려서 좀비의 약점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조준하게 만들었으며, 이로서 플레이어가 전투에서 선택할 있는 선택지를 크게 늘려주었다. 좀비의 무릎을 쏴서 경직을 걸고 돌려차기로 적들을 체술로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플라가 기생체가 노출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머리를 쏴서 빠르게 적들을 제압할 것인가? 누구를 먼저 것인가? 어디서 플레이어가 위치를 잡을 것인가? 등등의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이 생겨났다.

 지금에 이르러서 이런 요소들은 데드 스페이스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확인 가능하게 되었다. 바이오 하자드4 무려 18 전에 플레이어의 선택과 숙련도를 테스트하는 이러한 요소들을 정립하였고, 그로 인해 게임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남겼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5부터 캡콤의 선택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바이오하자드 5 협동 요소를 추가하고(이미 아웃브레이크라는 외전에서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멀티플레이, 코옵 요소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퍼즐 요소를 최소한도로 줄여서 액션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멀티플레이가 게임의 미래다라는 기조가 게임계를 지배했었다. 더욱이 체술을 도입해 액션성을 강화한 4편은 엄청난 성공 거두기까지 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5에서 보여준 캡콤의 판단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5 문제는 백트래킹이나 자원 정리, 탐색 등의 요소들을 최소화 시켰다는 것이었다. 바이오하자드 5 어떻게 보면 4보다 훨씬 극단적이라 있다. 4편에서 긴급회피나 체술이 등장하여 액션성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원을 아끼기 위한 부가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있는 요소들이었던 반면, 5 액션을 전면에 내세워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달랐던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5 당시 더욱 낮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데드 스페이스라는 걸출한 신예가 치고 올라왔던 것도 있다. 당시 데드 스페이스에 비교하여 바이오하자드 5 비판했던 이들의 주된 논지는 무빙샷이 되지 않는다, ‘서바이벌 호러 스럽지 않다 라는 등이었지만 그것은 표면상 이유였으며, 실상 주된 불만의 원인은 데드 스페이스가 오히려 바이오하자드 4 직계 후손으로 여겨질 만큼 게임 플레이 핵심 철학이 맞닿아있었다는 때문이었다. 좁은 복도에서 덤벼드는 적들, 전략적으로 적의 부위를 파괴해서 게임에서 이점을 챙기는 등등은 바이오하자드 4에서 이미 체술 등을 통해서 기본적인 골격을 보여준 부분이었다. 데드 스페이스는 거기에 개성 넘치는 공구와 바이오하자드에서 느낄 없었던 극악한 악의와 신경을 긁는 듯한 연출 등으로 자기만의 독자성을 찾는 성공하였다.  

반면 바이오하자드 5 모든 것을 그저 바보 같은 크기로 키워 넣었을 뿐이었다. 썬글라스를 공중에 던지고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크리스와 쉐바를 두들겨 패는 웨스커나, 함선 크기로 커져버리는 우로보로스 바이러스 감염체 등등 하나 같이 거대하고 막가는 규모와 연출을 자랑했다. 기존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그런 것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당장 전작인 바이오하자드 4에서는 움직이는 살라자르 석상 같은 것도 있었다), 그게 본질은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주객이 전도되었다 있다. 크리스가 집채만한 바위에 붕권을 날리는 장면이나 맨손으로 RPG 탄두를 잡는 웨스커 등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그나마 특유의 쌈마이한 맛은 남아 있긴 했다.  

불행하게도 바이오하자드 5 성공은 바이오하자드 6라는 희대의 괴작을 탄생시켰다. 바이오하자드 6 단적으로 말해 너무 욕심이 지나쳤다:적어도 2 이상의 게임 분량을 하나의 게임으로 욱여 넣고, 체술 메카닉을 마치 격투 게임마냥 복잡하게 다듬었으며, 사상 최대 볼륨의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를 자랑했다. 문제는 QTE 너무 남발되었고, 시스템은 너무 난잡했으며, 기믹은 산만했기에, 처음 발매 수많은 사람들은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재밌는 점은 바이오하자드 6 실패는 게임을 못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체술의 시스템이나 메카닉은 여타 액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수준으로 승화시켰고, 게임 내의 스케일이나 분량 등등은 분명 좋게 볼만한 부분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좋게 볼만한 부분들이 있다고 해서 게임이 갖고 있는 난잡함이나 그로 인한 정체성 상실을 용서받을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게임들, 심지어 바보같았던 5조차도 지켰던 시리즈의 정체성들(좀비나 서바이벌, 퍼즐, 효율적인 싸움과 액션 ) 6 와서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지금 와서 액션 부분이 재발굴되어 평가가 나아진 게임이긴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바이오하자드 27년의 역사에서 가장 이상한 게임을 꼽자면 바이오하자드 6 것이다

오히려 바이오하자드 6 기괴한 흐름과 별개로 리벨레이션이라는 외전 시리즈에서 바이오하자드는 구작과 신작의 묘한 시너지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호화유람선을 탐사한다는 1편의 컨셉으로 돌아오면서 유저들의 오랜 요청이었던 무빙샷을 최초로 도입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바로 리벨레이션인데, 3DS라는 휴대용 기기의 소품 형태로 나온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5,6편에 비하여 더욱 이전 4편과 이전 시리즈의 모습에 가깝다

리벨레이션의 실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은 바이오하자드 7 이후의 현대적인 바이오하자드와 유사하기도 하다. 매우 느린 무빙샷과 골목에서 적과 대치했을 때의 게임 플레이, 뒤로 슬슬 빼면서 적을 신중하게 겨누고 쏘고 제압한다는 게임 플레이는 분명 바이오하자드 7이나 8, 리메이크 버전 2,3,4 게임 플레이 느낌과 같다. 오히려 체술로 많은 것을 처리하고 액션을 위주로 돌리는 6편과 다르게, 현대적인 바이오하자드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잡은 것은 외전인 리벨레이션이었던 것이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의 폐가를 배경으로 바이오하자드 7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간 작품이었다. 전작들의 액션적인 요소들(체술 ) 최대한 배제를 했다. 전작들이 구세대적인 B 호러와 크리처물, 액션의 혼합이었다면, 바이오하자드 7 공포는 최신 호러 트렌드들(쏘우와 같은 거친 기계와 육체의 결합이라던가) 섞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비현실적인 고어보다 현실적인 끈적거림과 부패를 게임 전반에 깔아둠으로써 신세대의 호러, 새로운 바이오하자드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7편의 가장 의외인 부분으로 TPS에서 FPS 형태로 바뀐 것을 꼽지만, 막상 게임 플레이에서 보면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바이오하자드 7 핵심이다:전작들에서도 플레이어가 좀비를 상대할 , 가만히 서있는 상태에서 차분히 공격할 적을 노리고 쏴야 한다. 이러한 대면 과정들은 플레이어에게 강렬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는 제한된 자원으로 적들을 처리해야하는 부담감과 보기 싫은 그로테스크한 적들의 이미지들 덕분이다. 결국은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었을 , 본질적인 부분들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7 통해서 시리즈의 리브랜딩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8 만들면서기존 시리즈들을 모두 하나의 작품에 집어넣겠다라는 거대한 야심을 보여주었다. 바이오하자드 8 본질적으로는 7 4 혼종에 가깝다. 호러보다는 서바이벌 액션의 영역에 보다 방점을 찍었으며, 권총-샷건 이외에도 강력한 무기들을 제공해줌으로써 플레이어가 화려하게 날뛸 있게끔 판을 깔아 주었다

 바이오하자드 8 전작들의 요소들을 일부분씩 따와서 만들어진 게임이다.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은 바이오하자드 1 저택 구조를 차용하였고, 베네비엔토 저택은 7편이나 기존 작들의 호러 파트 부분을 차용하였다. 모로의 구역이나 하이젠베르크 구역은 4 5편에서 있었던 규모의 액션 파트와 맥락이 닿아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합쳐놓았다는 점에서 6편의 방대하고 야심 찼던 컨셉의 연장선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8편은 각각의 파트의 분량을 줄이고 7편과 같이 게임의 기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폴리싱하였다. 덕분에 8편은 전반적으로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리메이크 작품인 RE들의 경우, 어떻게 보면 그전까지 발전시켜 것들을 다시 가지치기하고 좋은 부분은 좋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RE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2편은 바이오하자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만들어졌다. 흥미롭게도 현대적인 바이오하자드(무빙샷 )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경찰서와 저택을 돌아다니면서 퍼즐을 풀고 최단의 루트로 공략을 하는 것은 동일하다. 바이오하자드 2 본질적인 재미를 그대로 가져 RE 2 성공은 아직도 시대에 클래식의 미덕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였다.  

결론적으로 바이오하자드의 역사는 다양한 성공과 시도, 실패들이 종합된 역사였다. 캡콤은 과정에서 게임을 수없이 다듬고 다듬어 왔으며, 최종적으로 더이상 나아질 없을 같은 성역과도 같은 게임들조차 나은 버전으로 승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바이오하자드는 캡콤의 개발 역량이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프랜차이즈이다.  

게임 이야기

 

1. 개요

'릴리스'라는 룰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식물족 엑시즈 테마. 유희왕에서 기존 어드벤스 소환을 위해서 코스트의 지불 행위를 릴리스로 통칭한다. 하지만 동시에 특수소환 위주로 빠르게 돌아가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오히려 잘 사용되지 않는 개념과 룰이 바로 릴리스다. 그렇기 때문에 초창기 카드들에서 간간이 보이는 '이 카드는 릴리스 할 수 없다'와 같은 제약 조건이 후기 카드들로 넘어가면서 안보이는(=상대적으로 안쓰이기 때문에) 트렌드가 생겨났는데, 이 덕분에 거의 상당수의 카드들이 이 '릴리스' 행위에 대해서 내성을 갖지 않고 있다. 육화는 이 릴리스를 중심으로 기믹이 돌아가는데, 육화의 상당수 카드들이 릴리스를 코스트로 하는 것 치고는 효과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었기 때문에 약소 테마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육화의 신규 지원인 육화콩콩의 등장으로 상황이 급반전되게 되었다. 육화콩콩의 효과로 기존 코스트로 자신의 필드 몬스터 한 채를 릴리즈 하는 것을 상대 필드 몬스터 한장에 전가시킬 수 있는데, '코스트로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체인을 걸 수도 없고(이미 효과 발동 전에 코스트로 상대 몬스터를 릴리즈 했기 때문), 릴리즈이기 때문에 왠만한 내성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한 턴에 한 번뿐이지만, 이걸로 육화의 필드와 몬스터 견제력은 왠만한 덱 테마들을 상회하는 강력함을 갖게 되었다.

2. 강점

1) 릴리스 라는 기믹과 맞물려 돌아가는 독특한 덱 기믹

대량 파괴, 제외, 무덤으로 보낸다 등등의 요소들이 판을 치는 유희왕이지만 릴리스 자체를 상대 견제 기믹으로 삼는 경우는 적었다. 하지만 그런 기믹이 들어간 카드들은 내성을 뚫고 들어가기 쉬워서, 카드 한 장 한 장의 가치가 상당했다. 대표적인 예가 파괴수 인데, 상대 필드 몬스터를 릴리즈 하는 파괴수 카드의 기믹은 상대 필드에 특수소환 한다는 디메리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범용 견제로 자리매김 했다. 릴리스 내성이 있는 카드들도 있지만, 과거 어드벤스 소환을 위한 환경에서의 디메리트를 주기 위해 릴리스 할 수 없다 식의 제정이 아니면 뚫을 수 없는 기믹이 릴리스였다. 또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릴리스 하는 기믹들이 있어서 육화의 '릴리스하면 발동할 수 있다' 기믹을 충족시킨다.

육화는 릴리스가 될 때 카드 발동 조건을 만족시키거나, 릴리스 자체를 상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쓰는 테마다. 프리체인 대상 릴리스를 날리거나(티어드롭), 내가 릴리스 할 때 상대 플레이어도 강제로 릴리스하게 만든다던가(육화의 풍화), 내 필드 몬스터를 릴리스 하고 파괴를 보호하거나(칸자시), 상대 몬스터 효과를 막고 컨트롤을 탈취해 상대 필드를 견제하는(육화의 박빙) 등등 육화는 릴리스와 관련된 독특한 기믹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육화의 릴리스 기믹은 결국 내 필드 어드벤티지 -1을 전제로 하고 있고, 다른 육화 마법/함정 카드들이 내 필드 어드벤티지를 소비하면서 까지 강력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파워 오브 더 엘리멘츠에서 추가된 두 지원(육화의 하얀공주와 육화 콩콩)으로 육화의 어드벤티지 맞교환이 비약적으로 강해졌고, 다른 덱과 차별되는 강점을 가진 테마가 되었다.

2) '육화콩콩'

현재 육화 덱 테마의 핵심에 있는 카드이며, 육화의 핵심 엔진이라 할 수 있는 필드 마법 카드다. '자신의 필드 식물족 카드를 코스트로 릴리스할 때, 대신 상대 필드의 몬스터 하나를 릴리스 할 수 있다'라는 기믹으로 상대의 필드 몬스터 하나를 릴리스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코스트'로 릴리스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카드 발동 시에 코스트로 상대 몬스터를 릴리스 한 뒤라 카드의 효과 발동은 무효로 막을 수 있어도 해당 릴리스 자체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이로 인해서 육화 테마는 자신의 필드 몬스터 릴리스 -1 어드벤티지 후 카드 효과로 +2 어드벤티지를 끌어오는 것이 아닌, 내 어드벤티지 +2를 끌어오면서 상대 필드 어드벤티지를 -1을 하여 어드벤티지 격차를 끌어낸다. 한 턴에 한 번 제약이 있지만, 그럼에도 육화콩콩을 통한 육화 테마의 견제는 몬스터를 중심으로 전개를 진행하는 현 유희왕의 환경에서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육화콩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마법 함정 카드를 필드로 끌어와 세트하는 서치 기믹도 갖고 있는데, 노 코스트로 하루 우라라에 견제 당하지 않고 필드에 육화 마법 함정을 끌고 오는 육화콩콩의 서치는 탁월한 덱 압축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육화 마법 함정들이 스트레나에로 회수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법 함정 카드를 한 장씩만 넣고 나머지는 범용 함정이나 식물족 전개 지원 몬스터들로 구성하게끔 할 수 있어 덱 구성에 많은 도움을 준다.

3) 식물족 범용 지원들과 맞물리는 전개력과 견제폭

식물족은 드래곤족이나 전사족 같은 메이저한 종족 카드군은 아니지만, 강력한 종족 범용 지원과 전개요원들이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성능을 자랑하는 종족 카드군이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들 종족 범용 지원들이 상당수 '릴리스' 행위와 맞물렸다는 점이다:자신 필드 위의 식물족 몬스터 하나를 릴리스하고 덱에서 식물족 하나를 특수소환하는 론 파이어 블로섬, 스스로 릴리스 해서 불어나는 이블 손, 스스로 묘지에서 튀어나오는 1랩 튜너 그로우업 벌브, 묘지에서 몬스터 하나를 제외하고 그 몬스터의 레벨만큼 자신의 레벨을 올리고 소환되는 스포어, 일반소환/특수소환 시 식물족 카드 하나를 서치하는 빛의 제너레이드 마르델 등등 찾아보면 식물족 전반을 지원하는 강력한 범용 지원들이 많다. 심지어 특수 소환을 메타하는 선인장 클로저, 마법 함정을 메타 하는 나츄르 로즈휩 등과 같은 메타 카드들도 존재한다. 순수 육화 축을 타더라도, 육화콩콩으로 세이브한 자리 만큼을 범용 지원과 전개 요원들을 투입하는 것도 가능해서 전개가 유연해지고 필드가 단단해진다.

가장 유명한 보조 축은 생아발론 축 육화가 있는데, 생시드 게니우스 로키 한 장에서 시작해서 회생의 뱅갈렌제스와 스트라네에 한 장을 깔고 프리체인 바운스와 견제를 까는 결과물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그리고 삼라 테마에서 끌고오는 용병들(무답랑, 오레이아, 아르세이, 희아궁)이나 식물 전반을 보조 지원하는 아로마 세라피 재스민 등등 전개와 견제 등에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결과물들이 있어 구색은 상당히 갖춰진 편이다.

4)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필드 몬스터 견제력 및 몬스터 퍼미션

결국 1)과 2)와 맞물리는 영역인데, 육화콩콩으로 꽂히는 코스트로 릴리스 하는 견제와 몬스터 퍼미션을 제공해주면서 필드에서 식물족 몬스터 릴리스(육화콩콩을 이용해서 상대 필드 견제 가능)하고 덱으로 돌아가 후속을 준비해주는 육화의 하얀공주, 상대 플레이어 강제형 릴리스인 육화의 풍화 등등 몬스터 견제를 꽂아넣기 시작하면 상대 플레이어를 정신 못차리게 만드는 것이 육화의 몬스터 견제력이다. 심지어 상대에게 강한 견제를 꽂으면서 후속까지 챙겨오는 어드벤티지 교환은 초반부터 종반까지 덱 운영을 유연하게 만든다.

3. 약점

1) '육화콩콩'

아이러니하게도, 육화 덱의 강함은 대다수 육화콩콩의 강력함에서 나오기 때문에 육화콩콩이 막히면 덱 플랜이 상당수 꼬인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상대 플레이어는 육화콩콩에 접근하는 움직임들(보탄으로 서치, 테라포밍으로 서치 등등)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투입하는데, 여기서 육화 플레이어가 육화콩콩에 접속하는데 실패하면 상대 플레이어 견제가 어려워 진다. 육화콩콩이 없던 시절 육화가 자기 필드 어드벤티지를 깎아 먹음에도 애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덱 테마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은 육화콩콩에 필드에 깔려는 플레이어와 그걸 막으려는 상대 플레이어의 싸움이 육화의 게임 플레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범용과 부가 축을 잘 활용해서 허를 찌르거나 등의 숙련도가 상당히 요구된다. 그래서 육화 플레이어는 육화콩콩이 통과되지 않았을 때의 저점 플랜을 항상 생각해둬야 한다.

3) 전무한 마법 함정 견제

육화 덱의 마법/함정 퍼미션이나 제외, 하다 못해 파괴나 발동을 막는 카드 자체가 없다. 갤럭시 사이클론, 아니 사이클론 한 장만 잡혀도 순수 육화 축 위주의 덱은 그대로 육화콩콩에 대한 견제를 통과시킬 수 밖에 없다. 육화콩콩 한 장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육화콩콩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은 육화에게 많이 주어지지 않은 샘이다. 물론 유희왕은 몬스터 전개 위주로 결과물을 내는 경우가 많아서 몬스터 퍼미션과 견제의 한 축을 꽉 잡고 있으면 상대의 플레이를 말리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강력한 견제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화의 필드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울며 겨자먹기로 춘희 티타니얼(대상 파괴 시, 자신 필드의 식물족 하나를 릴리즈 하고 카드를 무효로 하고 파괴)이나 하이페리톤(상대 턴에 엑시즈 소재를 하나 제거하고, 그 종류와 동일한 카드의 효과를 무효로 파괴) 같은 몬스터 카드를 쓰거나, 폴리노시스, 신의 심판 같은 카운터 함정 카드를 쓸 수도 있겠지만 다른 테마군에 비해서는 부족하고 아쉬울 수 밖에 없다.

3) 범용 용병 채용이 어려운 소환 제약과 열악한 식물족 고랭크 피니셔들

우수한 서치 카드인 육화의 한 조각이나 조건 없는 자체 패 특수소환이 되는 육화의 하얀공주, 식물족이랑 같이 나오면서 자체 엑시즈 소재를 충당하고 엑시즈 레벨 조정을 하는 스노드롭까지 육화 각각 몬스터 카드들은 나름 성능은 준수한 편이지만, 주요한 카드 전개 루트를 탈 때마다 식물족 제약이 걸리기 때문에 식물족 고랭크 엑시즈나 링크 몬스터를 결과물을 내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이 고랭크, 고링크 엑스트라 덱의 식물족 몬스터들은 실제 범용적이고 실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카드들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육화 엑스트라 몬스터들과 삼라 테마 엑시즈 몬스터들, 신수수 하이페리톤 정도가 범용적으로 채용 가능한 몬스터들이다. 이들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엑시즈 8축 범용 용병(타이타닉 갤럭시, 딩기르수 - 페인게이너 - 세븐신즈 같은)이나 4축, 6축 범용 용병, 링크 피니셔(엑세스 코드 토커 같은)들을 채용할 수 없어서 전략과 대응의 폭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다.

범용 용병 채용이 어려운 점은 전술할 문제와 맞물리게 되는데, 마법/함정 카드 퍼미션이나 파괴/제외 카드가 필요한 육화의 가려운 부분을 더 가렵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타이타닉 갤럭시의 1회 마법 퍼미션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한데 식물족 소환 제약에 걸려서 상대에게 마법과 함정 견제를 활짝 열어주게 된다. 심지어 메인 덱에 춘희 티타니얼이나 폴리노시스 같은 카드까지 투입을 절실히 고려해야 할 정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항상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며 게임을 플레이할 수 밖에 없다.

4. 운영 핵심 포인트

육화콩콩이 없을 때의 저점 플레이를 고려, 육화콩콩의 보호

육화콩콩의 등장 이후, 육화의 덱 압축 능력, 서치 능력, 견제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올라갔다. 상대 턴에 프리 체인 릴리즈와 코스트로 상대 몬스터 릴리즈 같은 어드벤티지 격차를 벌리는 플레이를 계속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턴 킬 각을 잡을 수 있고 이는 육화 덱의 강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육화콩콩이라는 명백히 보이는 덱의 엔진과 마법/함정 퍼미션이 없다는 점은 육화콩콩에 대한 견제를 너무 쉽게 허용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렇기에 육화 덱 플레이어는 항상 육화콩콩을 깔아두거나 패에 잡고 있더라도 '육화콩콩이 없을 때의 저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난한 저점은 스트레나에를 소환한 뒤에 하얀공주를 묘지에 두거나 패에 들고 있다 몬스터 견제가 날아올 때, 소재를 가진 스트레나에를 육화의 하얀공주의 효과 발동 코스트로 릴리즈하여 5렙 이상의 식물족 엑시즈 몬스터를 상대/자신의 턴에 깔아두는 것이다. 상대 몬스터 효과를 육화의 하얀공주 1퍼미션으로 빼면서 스트레나에의 릴리즈 효과를 이용하여 후속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이 저점은 생각보다 어드벤티지 소모가 적고(육화의 하얀공주는 덱으로 돌아가서 후속을 준비해주며, 보통 육화의 하얀공주를 엑시즈 소재로 한 스트레나에가 엑시즈 소재로 하얀공주를 버리고 묘지의 육화 카드를 한 장 패로 회수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자원 소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후속을 꺼낼 수 있기 때문에(몬스터 퍼미션이 필요하면 신수수 하이페리톤을, 프리 체인 릴리즈 견제가 필요하면 티어드롭) 괜찮은 저점 필드라 할 수 있다. 스트레나에의 소환을 위한 4렙 엑시즈 소재 두 채를 소환하는 것은 육화와 범용 식물 전개에서 충분히 쉽게 해낼 수 있다.

육화콩콩을 보호하기 위해서 육화 플레이어는 육화콩콩에 꽂힐 수 있는 파괴 제외 견제들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다행이도 스트레나에가 육화콩콩을 묘지에서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이고, 일반소환/특수소환된 보탄이 육화 마법 함정 카드를 서치하기 때문에 육화콩콩에 접속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좀 무식한 방법이지만 차라리 육화콩콩을 두 장 이상 잡고 있다던가, 상대의 세트 카드나 플레이 패턴을 관찰하면서 견제를 케어하는 플레이를 취해야 한다.

5. 결론

최고 티어권 끼리 붙는 환경이 아니면 적당히 강력한 파워의 덱.

육화는 충분히 좋은 덱이고 상대하는 테마와 플레이 성향에 따라서는 강력한 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티어덱과 같은 폭발적인 강력함이나 완절무결함을 갖추고 있는 테마는 아니라서, 자신의 약점을 케어하면서 플레이하는 것이 중요한 테마라 할 수 있다. 오프라인 모임을 같이 진행하는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적당히 강하면서 적당히 재밌고 머리굴리는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육화는 충분히 좋은 테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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