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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대중문화에서 많은 대중들은 정의로운 범죄자라는 관념에 끌린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현대 대중들은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즉, 일상에서 벗어나는 모험이나 일탈 등의 행위들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법과 질서로부터 탈출해서 파괴와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는 범죄자이고, 낭만화된 범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과 다르다. 쉽게 생각해서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일상들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위반과 선은 재미와 즐거움이 될 수 없다. 살인과 폭력은 안하다가 할 때 즐거운 것이지, 늘 하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에서 범죄자는 행복해져서는 안된다. 범죄자가 행복해지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범죄 자체가 삶에 있어서 하나의 목표이자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범죄를 다루는 대중매체들에게는 일종의 선이 있다:그것은 바로 범죄자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일본의 조직 폭력배인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다. 당연하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에는 다양한 일탈들이 허용된다. 도박, 술, 폭력 등등, 밤거리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일탈과 범죄들이 용과 같이이에서는 다루어진다. 그러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분명 용과 같이 시리즈는 범죄를 주요한 모티브로 다루고 있지만, 그 일탈을 표현하고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범죄를 다루는 게임이나 대중매체와 다르게 색다르다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임협물(야쿠자를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대중매체들)들과 용과 같이 시리즈를 비교해보면 좀더 명확해진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용과 같이의 야쿠자들은 과연 진짜 야쿠자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있다. 현실세계에서의 조직 범죄의 특성들이 용과 같이에서는 상당히 모호하게 그려진다. 마약사업은 당연히 안나오고 야쿠자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갈취나 폭력 같은 묘사가 그렇게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폭력이 메인 시나리오 이자 게임을 돌리는 주요한 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에서 그 폭력을 수단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범죄들을 표현의 소재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GTA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다:GTA에서는 차를 훔치고, 부수고, 총을 쏘고, 살인하고, 강도질하는 이 모든 과정이 여과없이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 자체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GTA 자체가 사우스파크나 서구식 풍자극의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노골적으로 사용하면서 거리를 두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어떻게 본다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폭력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에 적당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용과 같이 시리즈는 조직 범죄를 다루면서 동시에 그러한 노골적인 욕망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길거리에서 시비를 거는 양아치를 패고 싶다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용과 같이가 전반적으로 다루는 일탈은 GTA가 다루는 방식에 비하면 매우 소소하다. 양아치를 때리거나 술을 마시거나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 같은' 거리에서 행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용과 같이의 일탈은 이전의 게임 쉔무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쉔무가 만들어낸 세계는 '소소한 현실의 비현실 세계'다. 그러니까 게임 속의 현실은 현실이되 '현실이 아니다'. 손에 잡힐듯한 디테일과 현실감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명백하게 현실과 선을 긋고 과장하여 재현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렇게 분명하게 탄탄한 현실의 기반 위에 비현실을 섞는 과정이 쉔무에서부터 용과 같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GTA와 비교하면 매우 극명하게 다른 부분이다. GTA는 현실조차도 비현실의 문법에 따라 재해석되어 과장된다:게임 속에 나오는 TV 방송이나 인물들 모두 현실의 인물이나 현실에 있을 법하더라도 그것을 비현실적인 문법에 맞춰 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기 보다는 현실에 내제된 비현실의 문법을 비현실적으로 크기를 키운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용과 같이 시리즈가 지향하는 점이 어떤 점인지 분명하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우리가 손에 잡히는 세계 위에 우리가 꿈꾸는 세계를 덧입힌다. 우리가 밥을 먹고, 놀고, 떠들고 하는 공간의 코너를 지나가면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금 느끼는 자유가 확장되어 느껴지는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용과 같이 시리즈는 계속해서 카무로쵸라는 환락가를 끝없이 돌아다닌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길거리의 깡패를 두들겨 패서 돈을 벌고, 놀면서 돈을 버는 이 과정들이 일상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인 이유는 용과 같이가 추구하는 일탈의 재미가 우리가 근거하고 있는 현실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야쿠자라는 소재와 게임 테마 사이의 괴리라는 것이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시리즈가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야쿠자라는 거대한 조직범죄의 일탈을 직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인협이라는 테마를 왕조 내부의 권력다툼처럼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용과 같이 1~3의 스토리 라인 처럼), 이는 조직 범죄보다는 야쿠자가 일탈의 소재로 차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느끼는 세계에 대한 일탈(그러니까 용과 같이가 추구하는 것처럼 현실의 연장선에서의 일탈)은 실제 조직 범죄나 범죄 자체의 자극적인 부분을 다루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사는 일상과 조금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야쿠자라는 조직범죄의 소재와 문화는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수록 반대로 야쿠자라는 소재에 사로잡히는 문제가 발생한다. 키류는 왜 야쿠자를 떠나야 하는가? 흥미롭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 1~3의 경우, 개개인의 악은 있지만 야쿠자라는 집단의 악과 어둠을 보여주지 않기 떄문에 이야기의 문제가 발생한다. 

용과 같이 1~3의 스토리 라인의 한계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결국 우리가 편하게 즐기는 통속극, 멜로 드라마를 구축하기 위해서 야쿠자라는 소재를 끌어왔다는 것이 더 적합하다. 1편의 경우에는 기억을 잃은 연인과 이어지지 못한 안타까움, 그리고 함께했지만 엇갈릴 수 밖에 없었던 친구와의 싸움을 다루고, 2편에서는 배다른 형제와 피로 이어진 숙명에의 저항을 다루고, 3편에서는 데칼코마니처럼 대칭된 운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의 이야기들을 곰곰히 뜯어서 본다면, 야쿠자라는 소재는 거들 뿐 위와 같은 스토리들이 핵심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멜로드라마의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용과 같이 초기작들은 너무 설명에 집착한다. 게임은 중요한 이야기들을 항상 말로풀어내는데 가장 이러한 문제가 심각했던 파트가 3편의 타미야 장관이 카자마 죠지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존재를 설명으로 풀어나는 이 장면은 용과 같이 시리즈 전체가(심지어 최근 작까지) 경험하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는데, 드라마나 감정선, 장면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무리수를 항상 전제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용과 같이 시리즈의 또다른 문제는 키류의 야쿠자를 향한 태도일 것이다. 어째서 키류는 야쿠자를 그만뒀다가 다시 야쿠자의 일에 관여하는가? 메인 스토리가 야쿠자와 관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야쿠자와 동성회에 대한 감상, 그리고 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야쿠자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야쿠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를 설명하지 못한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키류는 자신의 양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카자마 신타로에 대한 충성심과 그의 인의에 감화된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조직에 충성하기 보다는 사람(도지마 다이고나 카자마 신타로 같은)에 충성하는 경우다. 그러나 문제는 이 충성하는 대상들조차 순간순간 장면장면의 사람 됨됨이는 그럴싸해보여도 그래서 야쿠자로써 이 사람을 섬겨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상당히 모호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러한 용과 같이 시리즈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터진 것이 3편이다. 3편의 테마는 두가지 상반된 테마가 혼재되어 있다. 하나는 야쿠자를 그만둔 키류가 추구했던 삶은 무엇인가, 이고 또다른 하나는 그래서 그는 왜 다시 야쿠자의 세계로 돌아와야 했는가 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1~2편의 반복(동성회의 위기와 키류의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메너리즘에 빠진다. 그리고 동시에 구조적으로 취약한(어째서 키류는 야쿠자이면서 야쿠자가 아닌가) 문제를 두고 다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하다보니 3편은 이러한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내는 문제를 갖게 된다.

용과 같이 극3의 문제는 이 두 상반된 테마(야쿠자가 아닌 키류, 야쿠자인 키류)를 동시에 다루려고 하다보니 이야기 전반ㅇ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가 1~2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1~2에서의 키류가 야쿠자였지만 동시에 야쿠자가 아니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이야기(마지막 정리라는 느낌으로)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분명했다. 그러나 용과 같이 3은 섞일 수 없는 이야기를 섞기 위해서 탄탄한 드라마와 연출을 쌓아올리는게 아니라 상술한 설명에 집착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어째서 해바라기는 이전하면 안되는가? 어째서 카자마 죠지가 나왔는가? 어째서 오키나와인가? 등등 이야기에 상식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문제가 터지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본질적으로 서로 섞이지 않는 이이야기를 접합하기 위해서 무리한 설정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다 보니 이야기가 망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용과 같이 4는 이러한 문제를 벗어나고자 했다. 키류 한명에게 이야기를 집중시킨다면 게임의 테마와 이야기를 다변화시키기 어렵다. 3편에서 이미 제작자들은 키류의 이야기가 거대한 모순덩어리임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극3의 추가된 엔딩에서 이야기가 나왔듯이 키류가 찾고자 하는 구원은 어떻게 보면 자가당착적이기 때문이다:스스로 안정을 추구하지만, 그 누구보다 폭력과 일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바라기는 과연 구원일까 아니면 멍에일까? 제작자들은 스스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통해 야쿠자가 행복해지면 안된다라는 결론을 내리려고 했지만, 게임 내에서 그 누구보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즐기는 것은 바로 야쿠자인 키류다. 용과 같이 3은 왜 야쿠자가 행복해지면 안되는가 라는 명제를 스스로 설정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작품이었다.

흥미롭게도 7과 8의 이야기는 이를 구조적으로 극복한다. 이야기의 테마를 야쿠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밑바닥의 이야기로 바꿔버면서 기어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상 속의 비일상이라는 용과 같이 시리즈의 핵심 테마를 살려내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8편의 키류 부분 엔딩이야 말로 키류라는 인물이 어떤 자세와 의미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밑바닥 인생에서 야쿠자의 임협만을 보고 올곧게 살아온 카스가가 구조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비나)를 키류가 안고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합하자면 용과 같이 시리즈는 범죄물의 속성보다는 멜로 드라마의 속성이 더 강하고, 그 과정에서 야쿠자라는 테마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쿠자라는 테마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용과 같이 시리즈는 20년 동안 거기서 탈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언젠가 키류를 졸업시켜야 할 순간에 졸업 시키지 못하고 이야기를 질질 끌었던 것이다. 7과 7외전, 8은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용과 같이 시리즈 20년에 있어서 거대한 사족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그 사족이 통속 드라마로써는 엄청난 완성도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너무 뻔하지만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척 포장하며 우리 손에 잡힐거 같은 비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는 정말 독특한 시리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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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 용과 같이 극 1과 3 리뷰는 https://leviathan.tistory.com/2680 와 https://leviathan.tistory.com/2687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용과 같이 2의 성공은 용과 같이가 시리즈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보면 쉔무가 이루고자 했었던 것(에셋과 개발 노하우를 축적하여 새로운 게임들을 만들어내는 것)들을 용과 같이 1과 2가 이루었기 때문에 3은 그것을 이어받아서 잘 발전시키기만 해도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그리고 애석하게도) 용과 같이 3은 1과 2와 다르게 사람들의 복합적인 평가를 듣는 용과 같이 시리즈가 되었다. 오죽하면 1과 2의 스토리가 객관적으로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듣는데도 독보적으로 3편의 스토리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 1과 극 2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극 3에 대해서 기대했었던 것은 스토리와 극 시리즈에 걸맞는 게임 플레이의 보완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극 3는 3편의 문제점을 혁신하지는 못했다. 물론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리메이크'라는 평을 듣기에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극 3은 많은 노력을 들이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극 3의 문제가 리메이크 '정도'로도 모자른 정도의 심각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극 3 리메이크 신규 요소로도 커버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재밌는 점은 극 3에서 드러났던 문제들은 결국 4편과 5편의 멀티 주인공 체제로 이어지는 시스템 변경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7편과 8편의 장르 변경과 주인공 교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동기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즉, 3과 극 3은 용과 같이 시리즈의 일종의 소프트 리부트(?)를 설명하는 작품이라는 것이고, 결국은 극 3는 용과 같이 3편이라는 주박에 사로잡혀서 애매해질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라는 것이다.

용과 같이 극 1에서 극 2로 넘어올 때 전투가 많이 바뀌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극 3의 전투 변화점은 일종의 '절충'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류큐 스타일과 도지마의 용 스타일을 오가면서 전투를 플레이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극 3의 두 전투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이는 극 1의 스타일 체인지와도 방향성이 확연하게 다른데, 주변 기물들을 집어던지면서 싸우는 파괴자 스타일이나 스웨이로 피하면서 속도로 농락하는 러시 스타일 등과 같이 속도/파워의 특화 스타일이었다면 극 3의 도지마의 용은 극 2의 스타일을 거의 대부분 계승하고 신규 스타일인 류큐 스타일이 추가되는 형태다. 즉, 어떻게 보면 신규 무브셋이 추가되는 모양새라 할 수 있는데, 도지마의 용 스타일의 전투가 기존 용과 같이 스타일을 그대로 승계한다면 류큐 스타일은 극 3에서 전투의 큰 변화들을 반영하는 부분들을 흡수하였다.

기본적으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전투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는 강한 보스 같은 적들과 싸우는 1대1 싸움, 두번째는 다수의 적과 키류가 싸우는 1대다 난전, 세번째는 키류가 무기를 든 상대들과 싸우는 형태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전투는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기를 든 적들과의 싸움인데, 칼을 든 적이나 총을 쏘는 적의 공격은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두번째 유형의 전투와 세번째 유형의 전투가 같이 섞이게 되는 경우에는 다소 전투를 풀어나가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용과 같이 극 1과 2는 플레이어가 무기와 장비를 장비하여 이러한 데미지를 줄이거나 플레이어가 무기를 사용해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게끔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극 3는 이를 재해석해서 '아예 키류가 기본적으로 무기를 들고 싸우게 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류큐 스타일은 칼날을 사용해서 적을 출혈시키거나 방패로 총알을 막거나 하는 등의 기존 용과 같이 극 1과 2에서 할 수 없었던 액션이나 기존 무기로만 할 수 있었던 액션을 키류의 전투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하여 게임으로 구현하고, 1대다 난전이나 1대1 전투에서 쓸 수 있는 요소들을 추가하였다. 물론 도지마의 용 스타일이 1대다 전투나 무기를 든 상대와 싸울 수 없는건 아니다: 던지기나 약공격을 길게 눌러서 공격하는 훅공격 같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1대다 싸움에서 써먹을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류큐 스타일 만큼 특화되지는 않았다. 저스트 패리(그리고 저스트 패리를 통한 총알 튕겨내기)는 류큐 스타일에, 저스트 회피는 도지마의 용 스타일에 주었다는 것은 게임 내에서 이 둘의 전투 스타일 구분을 분명하게 하는 부분이다. 

사실, 류큐 스타일의 추가는 극 3의 전투 시스템의 큰 변화에 일부에 불과하다. 극 3는 극 1과 극 2에서 보여준 장비와 무기 시스템을 모두 삭제하고 심지어 히트 액션마저도 간소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극 1과 극 2에서 히트액션은 단순히 '조건을 충족하면 X 버튼으로 발동할 수 있는 버튼 액션'이었다면, 극 3에서는 그 '특정 조건'을 맞추는 것이 더욱 빡세졌다:예를 들어 적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발동하는 히트 액션은 극 3에서는 적을 잡고 약 공격을 연타하는 모션 중에 정확히 히트 액션 키를 눌러서 입력해야하는 다소 까다로워진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최대 3~4줄까지 채울 수 있었던 극 2의 히트액션과 다르게, 극 3는 무엇을 하더라도 히트 액션 게이지를 2줄 이상 채울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히트 액션 자체를 약화시킨 것인데, 히트액션을 약화시키는 대신 드래곤 드라이브라는 요소를 추가하여서 각성을 쓰고 있는 동안 강력한 연속 잡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일종의 보상을 제공한다. 즉, 히트 액션의 약화와 각성 게이지를 사용한 일종의 히트 액션 상시화를 보상으로 두고,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패리와 저스트 회피를 사용하며 좀 더 액션 중심의 전투를 구축하고 싶었던 것이 게임의 방향성이다.

다만 이걸로 인해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히트 액션이 많은 부분 빠진다는 점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기존 3편이 유명했었던 것 중 하나가 SNS 에 웃긴 사진을 업로드하고 그 사진에 힌트를 얻어서 히트액션을 생각해내는 천계 시스템이었는데, 3편에서 몇 안되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천계를 삭제하고 히트 액션을 대거 약체화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팬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또한 저스트 회피나 저스트 패리 같은 액션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한다고 해서 용과 같이의 액션 장르로써의 완성도가 올라가는게 아니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용과 같이가 잘 만든 시리즈 게임이긴 해도, 뭔가 시스템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게임은 아니고 섬세한 게임은 더더욱 아니다. 액션 자체를 못즐기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핵심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또 무기 시스템 자체를 류큐 스타일에 통합한 것은 좋지만, 류큐 스타일 자체가 너무 많은 무기를 써서 난잡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사용처가 너무 극명하게 나뉘어 있어서(무기를 든 적과 대량의 적이 나오는 부분) 호불호가 어느정도 갈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극 3에서는 극 2와 비슷하게 서브 스토리와 별개로 큰 틀에서 즐길 수 있는 미니 게임을 두 종 추가했다. 하나는 극 2의 타워 디펜스였던 클랜 크리에이터와 7 외전의 단체 투기장을 섞어놓은듯한 폭주족 운영 콘텐츠인 반항아의 용이고 다른 하나는 키류가 운영하는 나팔꽃 보육원 콘텐츠이다. 반항아의 용은 처음해보는 사람에게는 신선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극 2와 7 외전의 짜집기라는 인상이 강한데, 가장 문제는 '이 스토리가 어째서 극3에 필요한가' 라는 부분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다대다 패싸움은 분명 매력적인 콘텐츠이긴 하지만, 이미 7편 외전에서 본 적이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싸우러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삼국무쌍의 마이너 열화 카피라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토리를 끝까지 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온다기 보다는 관성으로 클리어하게 되는 부분이 강하다. 용과 같이 7의 회사 운영이나 8의 리조트 운영 같은 막 나가거나 게임에 어울리는 재미도 없고, 어딘가 자가 복제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그러나 대신 나팔꽃 운영은 게임의 스토리 라인에도 적합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요리를 하든가, 애들 숙제를 도와준다든가, 애들과 곤충 잡기 놀이를 한다든가의 소소한 행동들을 금전적인 보상이나 다른 콘텐츠로 이어지게 하는 요소로 적절했다. 가령 극2의 캬바클럽 운영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교한다면 극3의 나팔꽃 운영은 다소 불편한 부분도 있고, 벌리는 돈도 적은 편이다. 그러나 스토리 상 나팔꽃 운영이 키류가 추구했던 평화로운 삶, 가족이 있는 삶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스토리 상 이입이 잘되는 편이고, 기존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키류의 다정한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은 부분들이 있다.

그 외의 미니 게임들은 전반적으로 극 2와 대동소이 하다. 볼링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극 2에 있었던 골프나 배팅 센터 같은 요소들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다만 뼈아픈 점은 기존에 100여개 가까이 있었던 서브 스토리가 30여개 가까이로 줄어버렸다는 것인데, 서브스토리와 히트 액션을 얻는 것들이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삭제 된 것도 있으리라 추측된다. 대신 게임은 핸드폰으로 길거리 통신을 하면서 길거리 사람들과 친해지거나 길거리에 놓여있는 상자들을 통신해서 물품을 얻는 라라라 통신이 추가되었다.

물론 해당 내용 자체는 용과 같이 8편에서 볼 수 있었던 알로하 링크스의 재탕이긴 하지만 라라라 통신 자체는 게임과 상당히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용과 같이 시리즈 게임은 작은 공간에서 복작거리면서 왔다갔다 하는 게임이다 보니, 갔던 곳을 또 가고 봤던 사람을 또 보고 하는 등 반복하는 일들이 많다. 이렇게 반복하는 일이 많은 와중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사람의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는 메인이나 서브 스토리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본 게임과 직접적인 연결 고리들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게임 내의 텍스트들을 읽어보면 여전히 용과 같이 제작진들이 재기발랄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보면 용과 같이 극 3는 좋게 이야기하면 안정적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다소 애매한 구석들이 있는 게임이긴 하지만, 극3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극 3의 새로 추가된 요소들이 아닌 3편 자체가 갖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였던 '스토리'였다. 극 3는 대거 컷씬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망해버린 스토리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이는 다른 글에서 설명하기는 하곘지만, 단순히 야쿠자랑 CIA 가 싸운다 라는 문제에서 정리를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용과 같이 극 3는 대단히 애매한 작품이다.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즐길 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분명 나팔꽃 콘텐츠 같은 부분은 신선한 부분이 있고, 4편 이후로는 게임의 노선이 바뀌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키류 3부작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라 팬으로써는 놓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스토리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작품이고, 이 부분이 모든걸 다 깎아 먹는다. 극 3가 그걸 채우기 위해서 다수의 컷씬을 추가하긴 했지만, 그게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키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극 1과 극 2, 제로를 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3편과 극3은 모두 건너 뛰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 전작의 리뷰는 https://leviathan.tistory.com/2680 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용과 같이 1편은 엄밀하게 따지면, '성공할 줄 몰랐던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1편의 성공은 급작스러웠고, 이야기나 게임의 컨셉 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은 게임이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미니 게임으로 구성된 쉔무의 후계자'라는 타이틀 외에는 그 아무것도 명확한 것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과 같이가 극으로 리메이크 된 것은 돌이켜 보니 비어있었던 공백들을 채우는 행위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용과 같이의 구조는 2에서 완성되었다:극 1편이 제로의 액션 스타일이나 케릭터 재해석을 끌고 왔었다면, 극 2편은 2편에서 확립된 게임 플레이 스타일에 제로에서 보여주었던 미니 게임들을 엮어서 게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용과 같이 극 1편에서 곧바로 극 2편으로 넘어왔을 때 가장 체감이 되는 부분은 바로 전투일 것이다. 극 1편이 1편의 전투를 제로식으로 재해석해서 만들었다면, 극 2편은 극 1편과 기존 용과 같이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전투라 할 수 있다. 극 1편에서 플레이어는 총 4가지의 스타일(도지마의 용, 파괴자, 러시, 불한당)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전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극 2에서는 이러한 스타일 체인지 요소를 빼버리고, 모든 스타일들을 하나의 전투 방식으로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처음에 극 2의 전투를 플레이하면 상당히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극 1의 전투 스타일이 하나의 스타일을 쓰다가 유효한 전략이 아니면 스타일을 바꿔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 4가지의 스타일이 있다 하더라도 전투 방식이 다채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단조로워지는 부분들이 있다. 극 2의 전투는 이러한 문제점을 피해가는데, 가드를 부수기 위해 파괴자 스타일의 훅 휘두르기 같은 스타일을 끌어오고, 가드하기 힘든 공격들은 러시 스타일의 스웨이를 이용해서 거리를 벌리던가 등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극 1편에서 사용했던 모든 스타일들을 한번에 다 사용한다는 느낌이 있다. 극 2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투가 단순해보이지만 극 1에 비해서 많은 부분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데,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늘면 늘수록 자유자재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용과 같이 시리즈 특유의 길거리 싸움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스템들이 바로 히트 액션과 무기 시스템일 것이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길거리에 떨어진 다양한 오브젝트들, 간판이나 벽돌 같은 오브젝트들을 주워서 싸우거나 이것들이나 주변 환경을 이용해서 강한 일격을 날리는 히트 액션을 할 수 있는데, 잘 플레이 된 전투 시스템의 보상으로써(플레이어가 전투를 하면서 히트 게이지가 쌓이게 되고, 히트 액션으로 이것을 사용한다) 작동한다는 점에서 히트 액션은 게임의 연출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미니 게임 같은 속성을 지닌다. 용과 같이 극 2에서는 극1과 달리 히트액션의 연출이 기존 전투에서 끊김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연출 부분이 보완된 부분이 있고, 드래곤 버스트를 통해서 적들을 호쾌하게 날려버리거나 보스에게 피니시 무브를 날리는 극의 연출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연출적인 부분이 보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용과 같이 극2는 기존의 서브스토리를 들고 오면서 제로와 같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미니 게임을 추가하였다. 제로에서는 그것이 부동산 경영과 캬바레 경영이었다면, 극 2에서는 일종의 타워 디펜스와 캬바클럽 경영으로 이어진다. 원판과 다른 극 2의 가장 큰 변화점이라 할 수 있는데, 극 2에서 거리 전투 외에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서브 스토리와 다른 큰 줄기의 스토리를 풀어내는(부동산 투기꾼들과의 싸움과 캬바클럽 인연 스토리까지) 역할을 수행한다. 재밌는 점은 캬바클럽 운영이나 타워 디펜스 같은 부분들은 이전에 나왔던 작품들의 요소들을 차용했다는 것인데(6편의 클랜 크리에이터, 제로의 캬바레 운영) 용과 같이 시리즈는 이러한 미니게임들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용과 같이 시리즈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길거리 강적과의 싸움이나 서브 스토리의 진행은 클랜 크리에이터나 캬바클럽 운영의 신규 인원을 받아들이는 창구로 활용되며, 클랜 크리에이터와 캬바클럽 운영은 장비에 필요한 돈을 확보하거나 추가적인 스토리를 볼 수 있게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용과 같이 극2는 기본적으로 액션을 기반으로 한 미니 게임 덩어리이긴 하지만, 중요한 점은 미니 게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어른들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를 구축한다는데 있다. 그것은 1편과 극 1편에서 제시된 관념이지만, 그 관념을 더욱 유기적으로 촘촘하게 짜서 채워넣은 것이 극2라 할 수 있다:미니 게임 하나나 두개, 혹은 여러개가 게임 내에 삽입되었다 하더라도 그 미니 게임들이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으면 미니 게임을 플레이할 동력을 제공해주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용과 같이 극 2는 미니 게임에서 미니 게임으로 넘어가는 성긴 네트워크들을 구축해서 여러 미니 게임들을 즐겨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들을 트래킹하고 경험치로 보상해주는 달성 목표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미니 게임의 보상들이 다른 미니 게임의 보상으로 활용되거나 돌파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코인 락커 키를 모아서 코인 락커의 아이템을 얻다 보면 필연적으로 꼭 하나 이상의 블랙잭 사기 아이템(일정 시간 동안 21을 만들기 쉬워진다던가, 딜러가 버스트하기 쉬워진다던가) 등의 도박 치트 아이템을 찾을 수 있다던가, 골프나 배팅 센터에서 미니 게임을 잘하면 돈을 효율적으로는 벌 수 없지만, 돈을 벌 수 있는 환금성 아이템이나 다른 치장 아이템으로 바꿀 수 있는 등, 기본적으로 모든 미니 게임들은 다른 미니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게임 플레이 자체를 원활하게 만드는 윤활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용과 같이 극 2는 하나 하나만 뜯어놓고 보면 대단히 하찮은 미니 게임들의 연속이긴 하지만,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동력을 가진 게임이 된다. 길거리에서 싸우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밥먹으로 식당으로 들어가고,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다채롭게 먹고 돈을 쓰고, 경험치를 얻고, 또 배를 꺼뜨리기 위해서 열심히 달리다가 양아치들에게 시비가 붙고, 락커 키를 주으러 다니고, 돈 떨어지면 캬바 클럽 운영이나 타워 디펜스를 하고, 투기장에 가서 전투 좀 즐기다가 간 김에 카지노를 가고...이런식으로 콘텐츠가 다 될때까지 무한하게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재활용이 과한 게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플레이하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게임이 엄청나게 뛰어나거나 독창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지만, 제작자들인 디테일한 곳에 게임들을 연결하는 요소들을 집어넣었고, 그것들이 윤활유가 되어서 게임 전체를 부드럽게 돌려준다. 어떻게 보면 게임으로 용과 같이 시리즈가 어떻게 완성되었는가의 큰 틀을 용과 같이 극 2가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용과 같이 시리즈의 구심점에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성긴 미니 게임들의 흐름인 만큼, 단순히 미니 게임들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의 재미를 구성할 수 없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용과 같이는 미니 게임 천국이나 세게 게임 대전 52 같은 게임이 아니다. 미니 게임만 즐기다 끝나는 것이 아닌, 게임에는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관통하는 스토리 라인이 있고. 어째서 플레이어, 그리고 키류는 게임 내에서 급박한 스토리가 흘러가는 가운데 왜 이런 미니 게임들을 중간에 즐겨야 하는가? 라는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구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용과 같이가 들고오는 것은 야쿠자 인협물의 장르적인 인용과 멜로 드라마, 그리고 유흥가를 배경으로 한 '어른의 일탈'이다. 

하지만 유념해야하는 점은 용과 같이 극2는 기존 2편이 스토리 상 많은 무리수를 갖고 있었던 것을 어떻게든 커버하기 위해서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도, 메인 스토리 라인이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정 인물들의 케릭터 변화나 대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하는 모습,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멜로 드라마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 야쿠자 미화물이라는 비난을 부정할 수 없는 스토리 라인 등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인이 용과 같이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7편이나 7편 외전, 8편 같은 스토리 라인을 생각한다면 용과 같이 극2는 용과 같이 7편 이전의 용과 같이가 여전히 '스토리로 무엇을 해내고, 어떤 판타지를 충족시켜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고 본다. 어떻게 본다면 용과 같이 극2는 2와 마찬가지로 아직 자신이 갖고 있는 강점(어른의 일탈과 어른의 멜로 드라마)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게임이나 게임의 콘셉트, 미니 게임 등은 이미 충분히 게임으로써 틀을 갖추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분명했지만, 정작 그 핵심 구심점이 되는 스토리는 여전히 갈팡질팡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이후 다룰 극3와 3편에서 분명하게 불거지게 된다.

결론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용과 같이 극2는 분명히 용과 같이 시리즈의 시작이자 7편 이전의 모범적인 용과 같이 시리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플레이나 경험 상으로는 훌륭한 경험을 제공해도, 경험 만큼의 메인 스토리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옥의 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옛날에 쉔무라는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은 어떻게 보면 지금 있는 오픈월드 샌드박스 장르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이 끼친 영향은 어마무시 했다. 플레이어의 움직임과 별개로 살아움직이는 세계를 구현한 쉔무는 GTA나 레드 데드 리뎀션 같은 기라성 같은 대작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며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레드 데드 리뎀션 2를 보자. 복잡한 상호작용과 조작 버튼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등은 근래 오픈월드 게임들이 간소화되는 과정을 밟는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오히려 쉔무에 근접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본다면 쉔무의 망령은 지금에서까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쉔무의 망령과 달리, 남겨진 세가 제작자들에게 있어서 쉔무는 어떻게 보면 극복해야하는 대상이자 넘어서야 할 과제, 그리고 일종의 멍에이자 족쇄였을 것이다. 쉔무의 제작비와 스케일이 한 때 게임계의 한 축을 주름잡았던 세가에게 큰 타격을 입힌 것도 사실이었고, 쉔무 1&2의 야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어딘가 나사빠진 작품이라는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쉔무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면서 동시에 쉔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끔 하는, 어떻게 본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2나 GTA와 같은 게임과 완전히 다른 게임을 만드는 것이 세가 제작자들의 목표가 되었다. 그 결과, 야쿠자 액션 활극이라는 용과 같이가 탄생하게 되었다.

용과 같이는 기본적으로 쉔무의 영향에 놓인것 처럼 보인다. 플레이어는 카무로쵸를 돌아다니면서 시비를 거는 양아치를 패서 돈을 벌고, 다양한 어른의 유희를 즐긴다. GTA나 레드 데드 리뎀션과 다른 점은 용과 같이는 철저하게 카무로쵸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게임이 전개된다는 것인데, 대신 그 공간에 유흥가를 지나다니는 행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오밀조밀하게 구축한 점에서 공간에 대한 밀도와 구성이 다르다. 요컨데 여타 오픈월드 게임이 '세계'의 구축이었다면, 용과 같이는 '거리'의 구축이라는 점에서 맥락과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카무로쵸라는 공간의 디테일을 올려놓은 대신에 공간을 줄이고, 그 공간을 재활용하면서 시리즈를 구축해나간다. 이는 현대적인 게임 개발의 전략과 유사한 동시에 쉔무의 개발 전략과 동일한 부분들이 있다.

재밌는 점은 용과 같이의 방향성일 것이다. 용과 같이는 쉔무나 여타 오픈월드 게임이 갖고 있는 '규모'와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용과 같이는 규모와 재현을 축소하였다:단순하지만 다양한 미니 게임들을 작고 오밀조밀한 공간에 모아두고 플레이어가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을 강조한다. 오픈월드 게임에 미니게임이 다양하게 들어가지만, 오픈월드 게임들이 세계와 상호작용한다는데 집중한다면 용과 같이는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미니 게임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어른의 놀이'라는 감각을 살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카무로쵸라는 유흥가를 배경으로 다양한 놀거리들을 두고 그 유흥을 즐기는 것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의 유희를 한군데 모으고 사실적인 배경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게임의 구심점을 만들 수 없다. 미니 게임만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는 것은 또다른 컨셉이 필요하다. 용과 같이는 여기서 야쿠자 인협물 장르 클리셰를 들고 온다. 재밌는 점은 쉔무가 일본식 무협물을 스케일을 키웠다고 한다면, 용과 같이는 인협물의 클리셰를 투박한 형태로 구현한다. 투박하다는 평가를 여기에 쓰는 것은 용과 같이 초기작들의 스토리가 '빈말로도 좋다'라고 이야기 힘든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 이야기들을 끌고 가는 동력을 장르적 클리셰(인의에 충실한 야쿠자, 그에 비해 모자라서 열등감을 느낀 친우이자 라이벌, 기억을 잃은 여주인공 등)에서 끌고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초기 용과 같이 시리즈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1편과 2편 자체가 엄청난 흥행을 의식하고 만들어지지는 않고, 아직 전반적인 방향성이 설정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 1편과 같은 작품에서는 이야기를 보완하는 추가 컷씬을 집어넣었는데, 추가 컷씬이 있어도 개연성 부분에서 다소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는걸 생각한다면 좋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다.

그러나 용과 같이 시리즈와 극의 스토리의 강점은 그러한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정합성, 감동에 있다기 보다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데?'를 궁금하게 만드는 부분에 있다. 그리고 게임은 여기에 도시전설이나 도시 풍광에서 볼 수 있는 상상력들, 그리고 자극적인 전개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든다. 용과 같이가 빛나는 부분들은 이 부분들이다. 우리가 미시하게 바라보는 유흥가의 풍광들로부터 이야기를 쌓아올려서 거대한 음모와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그것이 용과 같이 극에서는 다소 투박하기는 했지만, 그 투박함 속에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과 재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용과 같이 극은 용과 같이 시리즈의 첫 작품의 리메이크로 용과 같이 시리즈들 중에서 가장 거칠고 투박한 모습을 자랑하지만(물론 극을 통해서 다듬어지긴 했어도), 그래도 이 작품이 어째서 지금까지 사랑받는지를 알려주는 매력을 가진 게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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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현실에서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지만, 동시에 뒷정리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파괴할 때의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파괴되고 남은 잔재들을 치우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파괴’ 효과가 게임의 중요한 콘텐츠이긴 했어도 동시에 파괴 효과만으로 게임 전체를 채워넣은 게임은 의외로 거의 없었다. 파괴효과가 유명했던 크랙다운 시리즈나 저스트 코즈 시리즈를 예로 들어 보자. 빌딩을 부수고 파괴하고, 잔재들이 쏟아져 내리고…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개발자들이나 기획자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스테이지를 만드는 것을 부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수고 난 다음의 게임이 동작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파괴는 파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대립되는 쌍을 전제로할 수 밖에 없다. 파괴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파괴의 카타르시스 이후에도 게임을 붙잡아주는 부서지지 않는 기본 구조와 대립항, 다시 파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시리즈의 신작으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를 만든 제작자들이 만든 게임이다. 게임은 공개당시부터 파괴를 통한 지형지물과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야생의 숨결을, 그리고 플랫포밍 게임이라는 점에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의 결합이라는 이야기나 다양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바난자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발매 이후에 플레이를 해본 사람들의 중론은 야숨이나 오딧세이 같은 게임에 비견될 바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즉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기대에는 못미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이는 비교 대상이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야생의 숨결과 같은 게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둘은 시리즈가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쌓아온 경험의 축적이자 결과물이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시리즈가 나아가야하는 일종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이들 시리즈와 다른 부분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기본적으로 액션 어드벤처, 그 중에서도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다. 기본적인 골격은 일자 진행이긴 하지만, 중간 중간에 숨겨놓은 요소들을 넣어둬서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탐색을 하면서 게임을 진행하게끔 만든다. 요컨데, 툼레이더 리부트 같은 게임에서 보여지는 리플레이가 가능한 일직선 플레이의 구조를 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완전히 복도식의 일직선이 아닌,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큰 공간을 두고 플레이어가 탐색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오픈월드 장르의 영향을 받은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완전한 샌드박스의 형태나 해매는 것을 전제로하는 것이 아닌 ‘출발과 도착’이 명확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이 게임은 지형지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닌,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의도한 대로 얼마나 잘 움직이고 행동하냐가 더 중요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키콩 바난자는 젤다의 전설나 데이어스 엑스 같은 이머시브 심 같은 게임이 아니다. 즉, 정답이 여러갈래로 존재하고, 플레이어의 기량과 준비에 따라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곳까지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플레이어의 기량을 측정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동키콩 바난자가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파괴하고 다양한 것들과 펀치로 상호작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치 이머시브 심이나 샌드박스 류의 게임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설명하였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을 성립시킬 수 없다. 파괴는 필연적으로 혼돈을 수반하고, 혼돈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플레이어가 모든 발판을 다 부서버린 다음에는 그 후에 어떻게 되는가? 게임이 진행이 가능해질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 플레이의 핵심 메카니즘을 구성할 수 없다. 파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파괴에 대칭되는 쌍이 과연 바난자에 어떤식으로 존재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근간이 되는 핵심 장르부터 짚어야 한다: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이고, 게임이 진행되는 양상은 기본적으로 플랫포머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르인 ‘액션’과 좀 더 구체적인 장르인 ‘플랫포머’를 따로 때서 봐야할 것이다. 액션 장르 자체는 힘을 통한 상호작용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규칙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액션의 방점이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것이 폭력이든 정교한 형태든 간에 중요한 것은 게임 내에서 어떠한 형태든 간에 힘이라는 테마는 액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난자는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액션 장르 게임이다:동키콩처럼 강한 힘을 가진 케릭터가 힘을 통해서 사물과 적들을 부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에서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적뿐만이 아니라 ‘지형지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형지물과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플랫포머 게임에서 플랫폼은 일종의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바난자는 그 근간을 흔드는 게임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여타 플랫포머 게임들을 보자. 가령 출발점 A에서 도착점 Z까지 간다고 했을 때, 중간에 다양한 발판들 B,C,D,E… 등이 있을거고 그 사이를 점프나 다양한 행동을 통해서 발판 사이를 오가며 도착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적인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발판을 부숴버린다면 플랫포머 게임은 장르는 성립을 할 수 없다. 그것은 A부터 Z까지의 경로를 구성하는 경로를 단절시키면서 장르의 전제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난자는 플랫폼을 파괴한다는 발상과 함께, 파괴 뿐만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해서 플랫폼을 다시 만들거나 이어주는 일종의 ‘부드러운 플랫폼’들을 만들어서 게임의 스테이지를 이어준다.

예를 들어 보자. 바다가 나오는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주먹으로 적을 쳤을 때, 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서 지형을 생성하는 기믹이 등장한다. 이를 이용해서 기존에 올라갈 수 없는 더 높은 발판들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발판 생성 기믹이 동키콩의 펀치라는 액션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플랫폼을 파괴하는 요소가 역으로 플랫폼을 생성하는 요소로도 사용된다는 것인데, 파괴를 뒤틀어서 창조의 영역으로 이용하는 발상을 한 것이자, 직관적이지만 마냥 쉽지 않은(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잘 생각해서 때려야 하기 때문에) 요소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구성이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때리고 부수고 던지고 하지만 중요한 점은 플랫폼의 총량이 ‘변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A에서 Z까지 가는데 중간에 있는 B나 C라는 플랫폼을 부순다면 이 부순 플랫폼들을 이용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거나 새로운 플랫폼까지 닿는데 필요한 임시 플랫폼을 만들게끔 한다는 것이다. 즉, 플랫포밍 장르 문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의 관계를 딱딱한 형태로 엄정하게 정의내리기 보다는 더 유연하게 접근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에서는 기존 플랫포머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구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땅을 파서 땅속에 파묻힌 보물들을 찾아낸다던가 하는 등의 행위들이 그럴 것이다. 기존 플랫포머에서는 땅을 잘못 파면 다시 복귀하거나 도착점까지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등의 외통수를 두게 되지만, 바난자에서는 벽면이라면 어느 곳이든 짚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수월했다. 어디에나 매달릴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플랫포머의 상식을 파괴하였지만(정교한 점프 등을 수행하지 않고도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플랫포머 장르를 따르고 있고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물론 플랫폼을 파괴하거나 창조하는 행위 자체가 플랫포머 장르에서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시도들은 아니다. 최근에 리메이크되서 나온 스펠렁키 같은 게임들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곧바로 감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바난자가 독특하고 대단한 점은 파괴의 액션을 창조의 행위와 결합하였다는 점이고, 플레이어가 직관적으로 위-수평-아래로 때리면서 길을 만들고 플랫폼을 개척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단순히 부수는 것만이 아니라 바난자 능력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스테이지와 상호작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예를 들어 코끼리 바난자의 경우에는 코로 지형을 빨아들이고 그 파편을 저장했다가 파편을 던지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행위로 이어줄 수 있다. 그리고 바난자 능력 사이에서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개 이상의 바난자 능력들을 활용한 구조도 보여주어서, 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포멧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바난자는 처음부터 이를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닌텐도로써도 이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 시리즈가 갖는 맥락과 다른데, 마리오 시리즈가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3D 마리오가 많이 나옴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64 이후로 나온 첫 3D 동키콩이라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정체성을 정립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처음에는 주먹으로 파괴하면서 발판을 만드는 스테이지를 제공하면서 플레이어가 새로운 컨셉에 적응하게끔 만들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게임의 구조(던지면 자라나는 씨앗, 때리면 날아가면서 발판을 만드는 적 등등)를 복잡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게임 자체가 동키콩 바난자라는 새로운 동키콩 게임의 콘셉을 정립하기 위한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이자 확장 테스트의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확장이 부드럽고 늘어나면서 결국엔 '동키콩 3D 게임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적인 결론과 재미 구조를 구축한다.

그것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 바로 최종 보스전이다. 최종 보스전에서 플레이어는 바닥을 모두 공격으로 뒤덮는 최종보스와 싸워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은 최종 보스의 특정 공격을 콩 바난자로 반격하여 주변 지형을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황금(피해를 주지 않고, 플레이어가 집어 던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파괴해서 바난자 능력을 다시 채워주기도 한다)으로 바꾸는 것이다. 바난자의 최종 보스는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말도 안되는 플랫폼 전체 공격을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최종 보스의 공격을 플레이어가 반전시켜서 역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일종의 핑퐁 구조를 만들어서 게임의 균형을 맞춘다. 구조 자체는 단순한 핑퐁처럼 주고-받는 구조로 보이지만, 바난자의 최종보스는 최종보스 답게 플레이어가 여지껏 게임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싸우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가 전반적으로 게임 콘셉의 데몬스트레이션이었던 것에 비한다면, 최종보스는 상당히 도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최종보스의 거대한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서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생각보다 보스의 공격을 받아치는게 까다롭다는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에서 플레이어의 학습 곡선이나 구성을 잘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도전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단히 전통적인 게임의 구조이긴 하지만, 이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통용되는 부분이 있고 닌텐도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일종의 시작점 같은 게임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왕국의 눈물같이 집대성 같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딧세이가 이뤄낸 성과들과 바난자를 비교하는 것은 바난자에게 다소 억울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오딧세이는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지금까지 만들어왔었던  게임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었다면, 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이제 바난자로부터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지형과 상호작용하면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고, 더 나아가 직관적인 파괴와 창조의 개념을 도입한 게임이 이제 바난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재밌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동키콩 바난자는 스위치 2를 구매한 사람이라면 꼭 구매해서 해볼만한 게임이다. 이 게임의 포멧은 앞으로 더 나은 게임 포멧이 될 것이고, 더 발전할 것이다. 스플래툰이나 야생의 숨결, 슈퍼마리오 오딧세이 와 같은 게임들을 만든 닌텐도이기 때문에 더 이 게임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많은 기대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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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벽돌깨기 라는 장르가 있다. 이 장르는 현재는 마이너하지만 게임 초창기의 역사와 맥이 닿아있는 장르다. 가령, 퐁이라는 최초의 상용 비디오 게임의 문법도 ‘공을 튕겨내어서 넘긴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벽돌 깨기 장르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76년 발매된 최초의 벽돌깨기 게임인 브레이크아웃은 2인용이었던 퐁을 1인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비디오 게임의 태동과 같은 게임에서 갈려져 나온 만큼 벽돌 깨기 장르는 다양한 변종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변종들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알카노이드라는 게임이 유명할 것이다. 아래에 있는 막대를 조작해서 벽돌을 맞고 튀겨져 나오는 공을 튕겨내서 공을 맞추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든 벽돌을 부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 이 게임은 벽돌깨기 류 게임 장르의 고전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알카노이드 등의 영향을 받은 게임 벽돌깨기 게임 장르들이 등장했다. 물론 벽돌깨기 장르가 플랫포밍 게임 등과 비교하여 본다면 더 하위 카테고리의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에, 장르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게임들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의 장르가 갖는 재미와 문법 자체는 공고했기 때문에 수많은 게임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볼핏(Ball X pit)은 벽돌깨기의 문법을 활용한 로그라이크 벽돌깨기 RPG라 할 수 있다. 게임은 간단하다. 적들이라는 벽돌을 깨부수면서 스테이지 끝까지 진행하고, 끝까지 진행한 다음에 보스를 물리치면 된다. 벽돌이 고정되어있는 일반적인 벽돌깨기 장르와 다르게, 벽돌 역할을 하는 적들이 아래로 조금씩 내려오고 플레이어에게 지나치게 가까워졌거나 혹은 맨 마지막 행까지 내려온 경우 플레이어에게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들을 최대한 빠르게 공을 튕겨내어서 벽돌을 부숴야 한다. 플레이어는 최대 두명의 케릭터와 5개의 볼, 5개의 패시브를 조합하여 난관을 해쳐나가야 하며, 볼의 융합, 진화를 통해서 자신만의 볼 조합을 만들어나가면서 적을 격파할 수 있다.

장르의 큰 틀을 놓고 본다면 볼핏은 벽돌깨기 장르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볼핏이 벽돌깨기를 구성하기 위해 들고 온 세부 장르들의 구성요소들이 일종의 메타 장르적인 경험을 의도하고 구축한다는 점이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점은 공격이 자동과 수동 방식으로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혹자는 볼핏의 게임 플레이가 ‘자동 공격을 전제로 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장르에 맥이 닿아있다고 하고, 자동 공격을 킨 상태에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게임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의 흐름은 큰 틀에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류의 장르와 크게 맥락이 닿아있지만, 포인트는 자동공격만 존재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류와 달리 ‘수동공격’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게임 플레이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다는게 포인트이다. 즉,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해야하는 게임 흐름 상 대부분의 상황에선 자동공격을 키겠지만 몇몇 상황에서는 플레이어가 자동 공격을 끄고 더 정밀하게 게임을 컨트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기꾼의 경우, 플레이어가 베이비볼이라 불리는 일반 공을 쏘지 않는 대신에 플레이어가 들고 있는 무작위의 특수 볼을 여러개 던질 수 있다. 자동공격을 킨 상황에서는 평균적으로 유기꾼을 조합한 조합의 경우 특수볼을 두개씩 던지지만, 수동공격을 통해서 공격할 경우 동일한 특수볼을 5개 이상 발사할 수도 있다. 즉, 자동회수 - 자동발사 라는 메카니즘 내에서는 특수볼을 회수하자마자 던지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2개(1개를 회수하면 두개를 던진다)를 던지는 것에 수렴한다면, 모든 공을 회수한 후에 던지게 되면 던지는 순서가 무작위이긴 해도 5개 이상의 특수볼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로직을 최대한 극대화한 것이 바로 전략가와 유기꾼의 조합이다. 전략가는 게임을 ‘턴제’로 바꾸어버리는데 플레이어가 공격을 할 때만 시간이 흐르고 적들과 투사체가 움직이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의 볼 압축(유기꾼은 특수볼을 무작위로 여러개로 던지기 때문에 여러개의 볼이 있을 경우 내가 원하는 특수볼을 던지지 않을 수 있다)을 한 상태에서 유기꾼을 이용해서 공을 던지는 것을 뻥튀기 하면 엄청난 폭딜을 꽂아넣을 수 있다. 전체 화면 처리에 특화된 대출혈 X 섬광(전체화면에 출혈 데미지를 뿌리는 특수볼 조합) 5개가 튕기는 조합은 실제 마지막 스테이지 타임 어택 기록에도 등재되어 있다(무려 클리어 시간이 2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핏의 특징은 장르 자체만 본다면 벽돌깨기 장르이지만, 벽돌깨기 장르의 전형에서부터 현대적인 뱀파이어 서바이버류의 자동공격 류 게임, 그리고 버블버블이나 자동 사냥 등의 다양한 게임 장르들이 메타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게임이며, 단순하게 벽돌깨기 장르로만 구성된 게임이 아닌 좀 더 독특하고 기괴한 형태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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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RTS 장르를 콘솔 게임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RTS의 조작 구조를 옮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조합은 직관적으로 ‘이 유닛에게는 이러한 명령을 한다’라는 논리를 쉽게 세울 수 있다. 이는 마우스라는 조작 도구의 조작 특성이 강하게 한몫할 것이다. 유닛을 선택하거나(좌 클릭), 단체로 선택하거나(드래그), 명령을 내리고(우클릭), 카메라를 패닝하거나 더 넓게 보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직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우스를 이용한 조작은 ‘신의 위치에서 조작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RTS 특유의 조감도와 위에서 내려보는 풍경 자체가 주는 초월감과 작은 유닛들을 조작하고 통제하면서 큰 환경을 지배하는 우월감의 개념은 RTS 장르 뿐만 아니라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드러나는 강한 감각이었다. 즉, 플레이어가 일종의 신이 된다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특수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패드의 전통적인 조작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특화되어 있다. 현대적인 패드 조작에서 왼쪽 스틱은 조작을, 오른쪽 스틱은 주인공 시점에서 카메라를 조작하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RTS 장르의 신이 된다는 감각을 구현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는데, 패드의 조작이 ‘케릭터를 중심으로 직관적으로’ 플레이어가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데 특화되어 있다면 마우스와 키보드로 조작하는 RTS의 조작은 개개의 개체를 뛰어넘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통제하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조작체계의 상이함이 RTS와 같은 장르의 게임을 콘솔게임에서 구현하게 만들기 힘든 핵심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크민 시리즈는 상당히 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인칭 시점에서 피크민이라는 유닛들을 조작해서 퍼즐을 풀고 전투를 하며 다양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피크민은 기본적으로 RTS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물론 RTS 장르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스타크래프트나 커멘드 앤 컨커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여보았을 때는 이질적인 부분들이 심하긴 하지만, 자원의 생산과 관리, 행동을 유닛 단위로 쪼게서 통제하고 문제를 해쳐나간다는 큰 골자에서는 기존 RTS와 맞닿아있는 부분들이 많다.

피크민 시리즈의 핵심 경험은 바로 계획이다:플레이어는 피크민에서 제한된 자원들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쳐나간다. 먼저 눈여겨 볼 것은 시간이다. 먼저 플레이어는 하루 낮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맵을 탐색하고 퍼즐을 풀고 전투를 하며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나가야 한다. 피크민 1과 2에서는 제한 시간 내에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빡빡한 조건이었고, 피크민 3과 4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완화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한 스테이지의 호흡은 낮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구조는 고수하고 있다. 즉,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내에서 ‘무언가를 한다’라는 상호 작용은 피크민을 통해서 수행하게 된다. 피크민은 RTS로 따지면 유닛이라 할 수 있는데, RTS의 유닛 개념에 대응하는 시스템 답게 각기 다른 피크민들이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고 능력치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피크민에서 중요한 것은 각 유닛 종류별로 쌔고 강한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닛별로 역할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행동의 강함과 빠른 문제 해결은 유닛의 수를 많이 투입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강한 유닛 = 문제 해결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얼마나 유닛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서 빨리 끝낼 것인지 아니면 유닛을 분산 투자해서 다양한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를 플레이어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닛의 수가 플레이어의 강함과 할 수 있는 가짓수를 늘려준다는 점에서 피크민을 많이 보유하기 위해 피크민 수를 꾸준히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피크민은 플레이어의 지시가 없으면 개별 개체는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합과 공격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며, 주기적으로 소모된 피크민은 사냥을 통해서 채워넣어줘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조작이나 구성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데도 시간 내에 게임을 플레이한다 라는 개념과 피크민이라는 약한 유닛들을 숫자로 커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으로 인해서 게임이 단순히 퍼즐게임이나 액션 게임과는 다른 방향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게임 플레이의 정답이 정해져있는 퍼즐게임이나 플레이어의 조작 감각이 중요한 액션 게임들의 경우, 플레이어의 기량이 퍼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혹은 조작을 얼마나 잘하는지 등의 기량을 평가한다고 한다면, 피크민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시간 내에 제한된 숫자의 피크민을 배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4편에서는 아예 이를 ‘계획력’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피크민은 플레이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원을 잘 분배하고 투자하고 그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일반적인 RTS가 그러한 자원 배분과 관리를 더 꼼꼼하게 할 수록 플레이어의 손이 바빠지거나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도록 요구하였다면, 피크민은 그러한 것 없이 단순한 조작과 시간/자원의 제한만으로 플레이어의 기량을 테스트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3과 4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이다. 3은 기본적으로 1과 2의 발전형이자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1과 2의 플레이를 상당히 많은 부분 차용하였다. 탑뷰 방식의 카메라나 시간 제한에 식량 자원이라는 자원 개념을 추가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4는 3과 궤를 달리하는데, 카메라와 조작 스타일을 전형적인 3D 액션 게임의 방식을 들고 오면서도 와치라는 강아지를 추가해서 3편에서 3명을 조작하는 시스템을 깔끔하게 다듬고 편의성을 혁신적으로 증대시킨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게임 시스템의 깊이 측면에서 본다면 ‘이렇게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능성을 증대시킨 것도 4편이었다. 우선 기존의 게임 컨셉을 ‘계획력’이라는 키워드로 응축시킨 것 부터가 그러한데, 게임 내내 이 계획력이 무엇이고 계획력있게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자칫 생소해지기 쉬운 게임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는다. 그리고 여기서 계획력 배틀과 지하 컨텐츠를 추가해서 계획력이라는 컨셉에 맞게 게임을 재구성하는데, 기존 게임 플레이가 탐색 - 퍼즐 - 전투 - 보스전의 반복이었다면 여기에 다양한 배리에이션들을 추가해서 게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본다면 ‘게임의 컨셉을 재해석/재정립하여 현대적으로 다듬은 게임’이 바로 피크민 4인 것이다.

피크민 3과 4중에 꼭 하나만 해야한다면 당연히 피크민 4를 해야겠지만, 피크민 3 또한 훌륭한 작품이다. 가장 좋은 것은 3편을 즐겨본 다음에 4편을 하는 것이다. 3편이 재밌는 부분들이 얼마나 발전해서 4편에서 더 가다듬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이야기

 

-아틀라스 특유의 원본에 확장판을 팔아먹는 구조의 게임.

-하드모드로 플레이 중인데,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느낌. 확실히 레벨을 20이상 차이를 벌렸음에도 불구하고 상성 몇번 잘못 찔리면 죽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레벨 노가다를 아무리 잘했어도 방심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고, 이게 레벨이 올라가는데 한계가 걸리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때부터 얼마나 다양한 악마를 구비하고 아이템까지 싹다 긁어모아서 게임을 플레이하는가에 따라서 클리어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항상 그렇듯이 진여신 시리즈 난이도 배분 구조는 그 구조가 이해가 되긴 해도 좀 이상하다는 인상이 있다. 악마나 스킬 등 기반이 갖춰지기 전 초반은 상당히 빡센데, 기술이나 악마, 내성이 갖춰지기 시작하는 중반부터는 난이도가 쉬워지기 시작하더니, 레벨 캡에 근접해지고 속성과 내성으로 커버되지 않는 만능 속성 공격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다시 전투에 긴장감이 붙는 구조이긴 하다. 즉, 노가다로 기술과 악마 등을 확보할 수 있는 구간은 쉬운 반면, 노가다가 통용되지 않는 구간은 상당한 긴장감이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큰 차이를 느끼는 부분들이 벤전스의 네 여마 보스전과 원판 시바 보스전의 차이일 것인데, 만능 속성 공격과 딜로 찍어누르는게 가능한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 체력과 탱킹 불가능한 만능 속성 공격, 쫄 소환, 쫄 드리블을 통해 프레스 턴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탱킹하는 모습까지 사용하면서 머리를 굴려야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상당히 전제하고 있는 전투들이 후반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런 기믹 전들 경우에는 모르는 상태에서 들이받을 때는 하드모드에서는 클리어 불가능한 경우들이 있어서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프레스 턴이나 약점을 찔렀을 때/찔렸을 때의 이득과 손해라는 관점에서 이미 게임은 과거에 완성되어 있고 그에 대한 바리에이션으로 지금까지 게임을 이끌어온다는 느낌인데, 4편도 중간에 이러한 상황들이 있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3편 이후 현대적인 진여신전생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1과 2의 리메이크가 4편이고, 3의 리메이크가 5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도 끝까지 플레이하고(지금 마지막 보스 3연전만 남겨놓은 상황) 모든 악마들 레벨이 150으로 고정되는 창생 난이도를 해보려고 계속 플레이하는 중이다. 일단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진여신전생 난이도 구조 상 노가다가 통용되지 않는 게임 영역에서는 벨런스나 게임 플레이가 상당히 재밌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부분을 과연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궁금한 부분이 있고 150 레벨로 올라가면서 육성의 폭도 늘어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기대하고 있긴 하다.

-벤전스 추가 요소들(퀘스트, 악마의 뒤뜰, 숏컷, 퀘스트 내비 종류 추가 등)은 사실 5편 본판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원판 자체가 좀 허전한 것들이 있어서, 그것을 채워넣는 요소들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질수 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원판의 느낌에서 크게 무언가 벗어나지 않는 좋게 이야기하면 확장판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이빨빠진 데를 이제서야 채워넣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확장판이다 보니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스토리는 원판과 확장판이 완전히 분기되어 나뉘어지는 모습이 되었는데, 원판이 구멍이 숭숭 뚫려서 루트 분기도 이해가 안되고 마카를 이용해서 루트를 바꿀 수 있는 얼척없는 모습이 되었던걸 생각한다면 그래도 확장판 스토리는 납득이 되는 모습으로 구성되긴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확장판 스토리가 제로부터 다시 쓰여진게 아니라 원판에 덧대어 있다 보니까 신 케릭터의 존재가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원판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원래 진여신전생 시리즈가 상당히 드라이하고 충격적인 묘사로 유명한 작품이긴 한데, 5편에서는 스토리가 없어지더니 확장판에서는 그 없어진 스토리를 무슨 학창물로 바꾸어 버렸다. 드라이하고 충격적이라기 보다는 2000년대 초반 애니와 같은 느낌이 강하고, 행동으로 무언가 표현하기 보다는 대사로 케릭터와 스토리를 때워버리기 때문에 이야기의 힘이 휘발된다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5편의 스토리가 너무 인상이 별로였는지라 확장판 스토리가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도 별로인건 어쩔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원판보다는 나아지긴 했는데, 나사 빠진걸 겨우 테이프로 땜빵해서 다시 냈다는 인상이 강한 작품. 원판을 해본 사람은 굳이 이걸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긴 하다.

게임 이야기

 

림월드의 초기 게임은 엔딩이 있는 게임을 지향했었다. 엔딩이 있는 게임이란 어떤식으로든 게임의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림월드에서는 그것이 탈출이었고, 우여곡절끝에 어떻게 탈출을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림월드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이 정착지와 폰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엔딩을 보지 않고 오랫동안 플레이하는 스타일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DLC도 게임을 좀 더 ‘장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이오테크의 육아와 같은 케이스일 것이다. 바이오테크의 육아는 한 정착지에서 폰들이 서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강력한(혹은 플레이어가 애착을 갖고 키우는) 폰으로 키우는 콘텐츠인데 이 과정에서 빠른 탈출보다 느긋하게 정착지를 키우고 강화하는 과정을 즐긴다는 측면에서 바이오테크가 갖는 의의는 상당히 컸다. 그 이후 나온 어노말리 같은 콘텐츠는 뭔가 ‘모르면 맞아야 하는’ 일종의 고난이도 고자극 콘텐츠 쪽이었다면, 게임의 방향성을 크게 틀었던 콘텐츠는 바이오테크나 이데올로기 쪽이었다.

오딧세이는 바이오테크나 이데올로기 같은 DLC보다 더 큰 틀에서 게임의 방향성을 바꾸는데, 기존의 DLC들이 정착지 하나에서 생기는 일들을 다루었다면, 오딧세이는 정착지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면서 플레이하는 유목민 플레이 스타일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쪽이 되었다. 물론 모드나 제한적인 플레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정착지를 버리고 새 정착지를 만들고 하는 과정을 할수도 있었지만, 오딧세이와 같이 장거리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장소를 찾고 자원을 확보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구조로 변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오딧세이에서 중력 부양선은 기본적으로 ‘날아다니는 간이 정착지’ 개념에 가깝다. 한번 착륙하면 다시 날아가기까지 쿨타임이 어느정도 존재하고, 크기 등의 다양한 제한이 존재하긴 하지만, 중력 부양선은 정착지의 인원들을 생활을 백업한다는 점, 무엇보다 지형지물에 구애받지 않는 인프라를 확보해준다는 점과 지상 정착지와 결합하여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강점을 지니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적습이나 위협을 가볍게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정착지 내정이나 플레이와는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오딧세이와 중력부양선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유목민 플레이는 기존의 정착지 내정 플레이와는 상당히 다른 독특한 흐름을 갖는데, 기존의 정착지들이 내부 자원을 모조리 다 소비하게 되면 무역에 의존하여 자원을 확보해야했다면(특히 철이나 부품 같은), 오딧세이의 유목민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족하나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어 원래 한 맵에서 나오는 부품이 100개 정도고, 100개를 다 먹고 나면 그 후에는 재수급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테크트리를 탔어야 했지만, 오딧세이에서는 간단하게 맵을 바꿔서 다른 부품 수급처를 찾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난이도가 훨씬 더 내려간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인프라 공간이 적다는 점과 농사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 때문에 오딧세이의 중력부양선 플레이는 무조건 쉽다고는 할 수 없다. 농사에 제약이 걸려서 어려움이 생기는 부분은 아마도 전통적인 사기 돈벌기 방법인 마약 거래가 막힌다는 점일텐데, 함선 내 인프라에 수경재배를 할당하고 최대한 쥐어짜낸다 하더라도 정착지 대비해서 그렇게까지 효율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돈벌이 수단이나 운영 수단을 확보해야만 한다. 날아다니는 간이 정착지라는 측면에서 완벽하게 정착해서 플레이하는 것의 상위호환이나 하위호환이 아닌 트레이드 오프가 있는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 중 하나라는 점은 오딧세이의 중력 부양선 플레이가 잘 짜여졌다는 증거다.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만큼, 세계에 다양한 생물군계와 랜드마크가 추가된 것도 오딧세이의 특징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들은 고대 유적과 관련된 랜드마크들과 우주일 것이다. 특히 랜드마크들의 경우, 기존의 네모네모난 고대 건축물들에서 탈피해서 ‘말이되는 구조와 내러티브를 가진’ 구조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대의 방폭 쉘터, 연료 저장소, 발사대 등등 종류도 다양하고 보상도 꽤 많아서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강렬하고 멋진 경험이긴 하지만, 아쉬운것들이 있다면 기존 정착지 플레이와 병행한다면 병행 시 상당히 충돌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기존 림월드도 2개 이상의 정착지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고, 오딧세이의 중력부양선이 기본적으로는 간이 정착지이기 떄문에 정착지 플레이 병행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편의성의 문제나 이점이 적다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운송 수단의 기준에서 본다면 중력부양선 보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왕복선이 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중력부양선이 간이 정착지가 아닌 운송 수단의 개념에서도 시스템을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오딧세이는 림월드에 있어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크게 바꿔버린 게임이자, 림월드에 생성된 다양한 콘텐츠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든 DLC라 할 수 있다. 기존 정착지 플레이와 병행하기가 조금 까다롭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있지만, 림월드를 해본 사람이나 이번에 입문한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는 DLC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업데이트되는 게임이 많아지면서 테세우스의 배의 난제가 적용되는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다:테세우스의 배란 테세우스의 배를 수리하기 위해서 모든 판자를 교체하였다면, 과연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 할 수 있는가? 라는 난제이다. 즉,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바뀌게 된다면 그것의 동일성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라는 것에 대한 질문이 테세우스의 배이다. 게임에 업데이트가 적용이 되면서 게임이 양적으로 확장하는 경우는 이제 흔해졌지만, 역으로 게임의 본질을 건드리는 업데이트도 같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게임과 과거의 게임의 동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들도 종종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예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스텔라리스이다. 스텔라리스는 게임 내의 자원체계를 변경하고, 인구 시스템이나 문명 시스템을 조정하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연단위 패치로 거대하게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처음 플레이했을 때의 스텔라리스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스텔라리스는 거의 게임이 버전 1.5나 1.7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거기에 DLC까지 연결되면서 게임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모하게 되는데, DLC가 단순히 양적 확장 뿐만이 아니라 게임의 질을 바꾸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는 이러한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게임의 바닐라 파트도 같이 변화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두번째는 디아블로 4다. 디아블로 4는 초창기 시스템과 달리 시즌을 적용할 때마다 콘텐츠를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 하면서 게임의 핵심 코어를 많은 부분 건든 것들이 있다. 가장 큰 부분들은 아이템 레벨과 레벨링, 정복자 시스템들에 대한 다양한 조정인데, 게임의 변화가 시즌마다 워낙 크다보니 게임이 원판 디아 4가 나왔을 때와 같은 구조라고 이야기 힘들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복합적인 평가와 설왕설래가 있어왔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계속해서 변화하는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디아블로 4는 나름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 두 게임들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3~4개월마다 게임의 핵심 메카니즘에 크게 손을 대면서 게임의 내용을 바꿔왔다. 모든 업데이트형 게임들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디아블로 4와 스텔라리스 같은 게임들의 존재는 과연 게임이 업데이트로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의 예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들이 디아블로 4.5, 스텔라리스 1.7 같이 불리는게 아닌 디아블로 4나 스텔라리스로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게임을 관통하는 핵심 경험은 게임의 업데이트를 통해서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 4가 그러한 업데이트를 통해서 바뀌더라도 다크소울이나 다른 RPG 장르 작품과 비교되지 않는 것은 결국은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텔라리스도 그러하다. 스텔라리스가 업데이트를 통해서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스텔라리스는 여전히 스텔라리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이 단순하게 장르적인 정체성이나 가족 유사성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이 게임만의 정체성'에 국한되어 변화한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디아블로 4에서 장르적인 특징인 핵앤슬래시라는 장르 하부에 디아블로 4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세부 시스템들이 있다면 업데이트가 건드리는 것은 이러한 세부 시스템들 뿐이라는 것이다. 즉,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부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인데, 다소 극단적인 변화에서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이 게임은 어떤 게임이다라는 제작자들의 확고한 철학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플레이어가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그 범위 내에서는 다양한 변화들을 일으키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게임에서 업데이트로 인해 발생하는 테세우스 배의 난제는 더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난제가 아닌 셈이라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게임 시스템의 합 이상이자 게임 장르의 하위라는 이 게임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일 것인데, 어떤 게임은 이런 게임이다 라고 문장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핵심되는 개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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