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대단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이미 이름에서 차이가 나듯이 장르적으로 이 두 게임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법을 구축하였고, 팬층도 다르고 소비하는 문화도 다르다. 물론 이 둘은 공통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물리적인 컴포넌트와 규칙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을 유사한 가족으로 분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과연 이 둘을 나누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가이다:분명 문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을 구분하는 그 얇지만 선명한 기준에 대해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측정measuring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자를 이용한 측정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작게 축소된 세계miniature에서 거리를 판단하고 행동을 수행해나간다. 물론 각각의 개별 미니어처 게임들이나 보드게임들을 따지면 반례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가령 옵시디언 프로토콜 같은 게임은 미니어처 게임의 장르로 분류되면서도 행동과 이동을 그리드 단위로 구분짓는다. 그러나 단순히 실제의 거리를 측정하는가 아니면 그리드 단위로 하느냐의 행동 문제보다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측정이 갖는 행위의 추상적인 의미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의 연계성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니어처 워게임은 미니어처의 세계, 즉 세계의 축소를 다룬다. 28mm 스케일, 32mm 스케일 등등 세계를 작게 축소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게임의 핵심적인 철학과 문법을 구축한다:세계의 축소이기 때문에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세계의 규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가령 게임 내에서 하나의 모델이 존재한다면 그 모델이 다른 모델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이 아무리 단순화되어 있어도 주사위나 그외의 요소들을 이용해서 상호작용할 수 있게끔 설정한다. 이러한 법칙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미니어처 워게임 인피니티다:인피니티는 미니어처 워게임으로 하는 TRPG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세한 규칙과 시스템들을 자랑하는데, 단순히 공격과 이동에 대한 규칙 외에도 TRPG에서 볼 수 있는 스킬체크 등의 요소들도 충실히 구현되어 있어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것 외에 얼마나 지적으로 유능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수치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TRPG와 미니어처 워게임의 서로 비슷한 요소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들이 있다면 이 바로 축소라는 내용일 것이다. TRPG는 세계 자체가 스킬 체크 형태로 추상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추상화된 행위로 모든 것을 스킬 체크의 형태로 등치시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과 세계 그 자체인 마스터의 존재 때문에 게임 문법이 세계 전체를 다룬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TRPG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와 마스터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협상의 영역도 중요하다. 하지만 미니어처 게임에서는 규칙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거나 세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의 관점에서 본다면 추상화된 TRPG보다는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구조를 띈다.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당연하게도 미니어처라는 요소다:축소된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미니어처라는 컴포넌트를 통해서 세계와 상호작용 한다. 이 상호작용이라는 요소는 위에서 설명한 TRPG 적 요소와 맞물리면서 작은 시뮬레이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세계는 축소되었고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이 존재함으로써 그 세계에 맞게 축소된 미니어처들은 그 나름의 규칙에 따라서 다른 컴포넌트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맥락을 만들어내고 상상속의 치열한 전투와 드라마들을 만들어낸다. 즉, 작아진 세계와 단순화된 규칙이 미니어처라는 매게를 만나서 맞물리면서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갖게 만드는 것이 미니어처 게임의 장르적 특수성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측정한다는 행위는 단순히 거리를 재는 것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 단위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측정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선측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측정을 통한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측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몇몇 게임에서는 선측정Pre-Measuring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떻게 본다면 철저하게 플레이어라 하는 게임 외부의 존재가 아닌, 축소된 세계 속의 미니어처 모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미니어처 게임이 선측정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일례로 인피니티가 선측정 자체를 막지 않는다), 측정과 모델,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다루는 규칙을 이해하는 것으로 미니어처 게임들이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보드게임과 미니어처 워게임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기준이 있다. 보드게임들의 목적은 축소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 분명한 규칙의 흐름에 근거한 게임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도, 규칙간의 충돌도, 플레이어가 측정을 통해 규칙을 판단하거나 하는 등의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미니어처 워게임의 경우, TRPG와 보드게임 사이의 경계에 놓여있다. TRPG와 달리 물리적인 규칙과 시스템의 간소화를 분명하게 요구하지만, 동시에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보드게임에서 보여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미니어처 게임에서는 일어난다.
물론 좀 더 논의를 확장하여 본다면 이러한 점들 때문에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혹은 다른 게임 장르 사이의 장르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게임들도 꽤 등장하기도 한다. 옵시디언 프로토콜과 같은 게임이나, 언더월드 같이 TCG와 보드게임 사이를 오가는 게임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적인 구분이란 철저하게 어떠한 정의를 따라간다기 보다는 비트겐슈타인이 이야기했던 가족 유사성의 관계를 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처음 오큘러스 퀘스트 2(현 메타 퀘스트 2)를 구매하였을 때의 인상은 기기 자체는 완성되어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그만큼 따라오기 힘들다 였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같은 이레귤러 작품들을 제외한다면, VR 게임들의 기믹은 너무 얕고 반복적인 부분들이 많거나 혹은 게임 플레이에 집중한 나머지 VR이라는 요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이는 VR 게임이 플레이 되는 환경에 기반한다:하드웨어 조작의 특수성으로 일반적인 패드/키보드+마우스 기반의 게임 플레이와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서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느정도 운동을 수반하여 체력소모가 심하다는 점, VR 기기 특성상 필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서 기존 콘솔 게임의 게임 플레이를 재현하지 못하고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되는 게임의 역사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걸음마의 단계를 다시 거치는 것이 VR 게임의 현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타 퀘스트 3로 넘어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확하게는 기기가 바뀌었다기 보다는 약 2~3년 간의 소프트웨어의 트랜드들이 바뀌고 노하우가 쌓여서 바뀌었다는게 정확할 것이다. 몇몇 가지 게임들을 예로 들어보자:거대한 메카닉에 타고 권투를 하는 게임 언더독의 경우, 첫 인상은 메카닉을 타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반적인 VR 권투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전 2~3년전 vr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동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공간을 넓게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움직일 때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거나 스틱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두 팔로 땅을 찍어서 마치 고릴라가 팔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이동을 표현하였다.
두 다리나 스틱을 이동 수단으로 쓰는 조작법은 관념적으로 직관적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조작방식이었다. 우리가 실제 움직이는 공간과 게임을 하는 공간이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두 다리와 스틱을 쓰는 이동 방식은 인식되는 공간과 실제 공간 사이의 괴리 때문에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3D 멀미를 유발하거나 제한적인 공간 때문에 한정적인 움직임을 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다리를 바닥에 접지시킨채로 두 팔만 이용한 이동 조작의 등장은 많은 것을 바꾸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다리를 접지시킨다는 점이다. 스웜이라는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360도 상하좌우로 날아다니면서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파쿠르를 하며 총을 쏘는 게임인데 신기하게도 카메라를 이리저리 뒤흔드는데도 3D 멀미를 크게 유발하지 않는다. 이는 카메라 자체를 미세하게 흔들다기보다는 카메라를 움직이는 폭이 시원시원하고 크기 때문에 사람이 인식하고 멀미를 느끼지 않게끔 해준다.
즉, 카메라와 조작에서 신체의 중요한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다리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 다리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팔이 조작의 연장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작은 어디까지나 과도기 적이다. VR 트레드밀이나 신경 조작, 더 나은 조작 방법 등이 등장하게 되면 이러한 연장 방법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과도기의 방법이다. 그러나 VR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한 방식이나 연구한 방식은 앞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현재 알파~베타 테스트 중인 게임으로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 점 유의 바랍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게임들이나 콘셉들은 이미 누군가 시도했거나 테스트의 형태로 구현해본적이 있는 것들이다. 둠이나 울펜슈타인 이전에 1인칭 슈터 게임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둠 이전의 작품들은 둠과 같은 디테일과 완성도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구현을 했다 라는 사실이 아니라 구현을 어떻게 하였는가라는 영역일 것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없다. 최초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잘 구현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데드락은 벨브에서 나온 게임으로 AOS와 소위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히어로 슈터를 섞어놓은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미니언들과 함께 적의 본진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상대 미니언들을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맞춰서 더 강해진다. 이러한 과정들은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나 도타 2에서 봤었던 기본적인 AOS의 흐름이고 데드락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데드락이 구현하려고 하는 게임의 흐름은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 역사가 있다. 데드락이 대단한 이유는 이런 게임이 처음이라서가 아니라 그동안 다양한 게임들이 시도했었던 것들을 얼마나 잘 만들도록 끌어올렸냐가 핵심이었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데드락이 구현하려고 하는 게임의 아이디어는 다른 게임에서 많이 시도한 부분들이 있다. 국내 게임으로는 사이퍼즈 같은 게임이 있을 것이고, 해외의 게임을 사례로 든다면 파라곤이나 스마이트 같은 게임들이 있다. 이러한 게임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3인칭 액션/슈팅 게임들을 AOS의 운영과 한 타로 대표되는 협동을 섞고자 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이 항상 성공적이었다던가, 혹은 메이저한 성공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서비스를 종료한 파라곤의 예를 들어보자. 파라곤의 가장 큰 문제는 매우 느린 호흡이었다. 플레이어는 미니언을 하나 잡기 위해서 많은 평타를 쳐야 했었고, 필연적으로 라인전이 느려지니 한 판 게임 플레이가 한 시간 가까이 걸리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한 시간이 강렬한 경험으로 가득차있기 보다는 그저 느리고 지루한 내용으로 찾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반적으로 데드락은 슈터를 AOS에 섞는 과거의 시도를 따라하면서도, 속도가 빠르고 경쾌하게, 소위 요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하이퍼'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오버워치와 같은 게임과도 비교가 많이 되는 게임이긴 한데, 본질적으로 협동해서 싸우는 전투가 여러번 일어나는 오버워치와 다르게 데드락은 AOS 처럼 라인전이라는 운영 요소를 베이스로 깔면서도 그 운영의 결과물로 나오는 레벨링이나 아이템 파밍 등을 이용해서 협동 전투를 풀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게임이 속도감을 중요시하고 플레이어들의 유기적인 협동 전투를 요구하는 점에서 오버워치와 유사한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밌는 점은 속도감이나 공간을 쓰는 감각(맵의 높낮이 배치나 파쿠르 같은 부분들)은 분명 오버워치보다도 더 하이퍼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AOS의 부분에서 본다면 데드락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 도타 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미니언 파밍에 있어서 디나이 개념이 존재하고, 아이템 트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케릭터의 잠재력이 다르게 드러나는 등 탑-미드-바텀-정글-서폿이라는 틀에 잡혀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눈여겨 보아야하는 점은 디나이의 개념일 것이다: 플레이어 편 미니언이 상대에 의해서 죽었을 때, 상대가 흡수할 영혼의 절반이 허공으로 날아가는데 이걸 상대가 사격해서 획득할 수 있고, 역으로 플레이어가 사격해서 상대가 못먹게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이미 도타 2에서 구현된 적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가 미니언을 파밍하지 못하게하는 동시에 상대에게 돌아갈 일부 영혼을 자신이 먹는 시스템이다.
디나이 시스템의 존재는 데드락에서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라인전 개념을 성립시킨다. 도타 2에서 디나이는 크립의 체력과 내 공격력등을 계산해서 해야하는 행위이다 보니까 게임이 매우 어려운 테크닉이었는데, 데드락에서 디나이는 그럴 필요 없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영혼만 총으로 쏘면 되다보니까 이런 부분에서는 매우 쉬워진 부분이 있다. 그러나 데드락에서 재장전은 느린편이고, 탄창을 상대 플레이어에게 배분할 지, 미니언에게 배분할 지 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탄창을 배분한다는 느낌으로 의식적으로 디나이와 파밍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디나이와 파밍 시스템의 경우, 데드락 만의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도타의 개념을 들고 온 것도 있고, AOS의 양식을 적극 차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례들이 슈퍼 먼데이 나이트 컴벳 같은 게임들을 통해서 우선 구현된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드락이 대단한 이유는 새로운 장르와 플레이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디테일들을 잘 다듬어서 창발적인 플레이를 장려하고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이고 운영하는 게임'을 만든 점이 가장 크다.
다양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데드락에서 자유로운 부분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맵과 움직임이다. 데드락이 의외로 '하이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데, 이는 캐릭터들의 속도감도 있긴 하지만 더블 점프, 대시, 파쿠르 등의 다양한 요소들과 이를 잘 활용하는 맵의 디자인도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게임을 겉으로 볼 때보다 실제 할 때 느껴지는 감각이 다른데, 겉으로 볼 때는 매우 가볍지만 실제 할 때는 내가 생각한대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맵 디자인 역시 옥상에서부터 지하까지 다양한 층위와 높낮이를 가진 맵을 만들고 플레이어가 이를 창발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등(갱킹 루트의 다양화 같은) 눈에 뚜렷하게 띄진 않아도 잘 만들어진 부분들이 많다.
두번째는 케릭터들의 역할군에 한계를 잡아두지 않고, 아이템과 활용에 따라서 다양한 포지션을 잡을 수 있게 설정한 점이다. 롤과 같은 AOS에서는 스킬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영향력 계수(AD, AP 같은)에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데드락은 장비들이 계수뿐만 아니라 도타와 같이 액티브 스킬로 기능하거나 스킬의 범위, 쿨타운, 부가 효과 등에 영향을 끼치게끔 구성을 하였기 때문에 아이템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스킬의 운영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캘빈과 같은 케릭터는 스킬 범위, 쿨다운 등의 모든 아이템 강화를 아크틱 빔에 밀어주게 되면 6초에 한번 씩 상대를 80%까지 느려지게 만드는 광역 슬로우 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데미지를 어느정도 포기해야하는데 구성과 운용에 따라서는 다른 느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케릭터들도 많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데드락은 베타 단계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이 아쉬운 부분들이 있긴 하다. 가장 큰 부분은 랜덤 픽 구성일 것이다:플레이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케릭터를 할 수 있는게 아니고 케릭터 풀을 지정하고 게임이 무작위로 그 풀내에서 플레이어의 케릭터를 지정해준다. 이 때문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조합이 나온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꼭 베타 이후 해결해야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부분들이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데드락의 문제들은 '베타'이기 때문에 납득되는 부분들이 많다.
결론을 내리자면, 데드락은 오랜만에 벨브에서 만든 게임 중 가장 포텐셜이 높고 잘만들어진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벨브는 여전히 게임을 만드는 감각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데드락은 앞으로도 완성된 모습이 더 기대되는 게임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명제는 그리 놀랍지는 않다. 사람들이 오지 않은 미래에 막연한 희망을 갖고, 경험했던 과거들에 기억을 윤색하여 빛 바랜 추억으로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과거나 미래의 사실 자체가 정확히 기억되어 현재와 비교되기 보다는 시간이라는 차이에 의해서 사실은 희미해지거나 모호해지고, 그 희미해진 사실 사이에 사실 자체와는 다른 감수성이 들어차는 것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이 아닌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 다소 ‘편향성’이나 ‘재해석’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편향성과 재해석들이 반영된 의견을 사실이라 믿고 현재를 논하기도 한다. 존재했었던 사실과 우리가 채워넣었던 감수성 속에서 과거는 객관화되기 보다는 안경 렌즈의 바깥쪽처럼 왜곡된 상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가 가장 최근에 불거진 것이 디아블로4(2023, 이하 ‘D4’)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D4가 나오고 나서 ‘디아블로2(2000, 이하 ‘D2’)’ 보다 못하다’느니, ‘핵 앤 슬래시 게임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느니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기록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초기 콘텐츠 부실로 인해 사람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고, 그 여론은 추후에 시즌 3까지 콘텐츠 수정을 거쳤음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욕을 먹으면서도 흥행하는 게임’은 근 몇 년 동안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물론 D4가 전혀 문제가 없는 게임은 아니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콘텐츠 부족이나 여전히 구시대적인 게임 플레이, MMO 형태의 게임 구조 등등을 보면, 분명 사람들이 원했던 디아블로 시리즈 최신작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상태로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사람들의 기대가 모호했기 때문에 D4가 억울하게 저평가 당하는 부분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억울한 부분은 ‘핵 앤 슬래시 게임 답지 않다’라는 평가일 것이다. 애당초에 D3와 4의 간격에는 10년이 넘는 간격이 있고, 그 사이에 디아블로의 맥락은 커녕 탑뷰 형태의 핵 앤 슬래시 장르 자체가 메이저 스트림에서 밀려나는 일들도 있었다. 그 사이의 명맥을 이어줬던 토치라이트나 그림던, 패스 오브 엑자일 같은 게임들도 메이저 스트림에 있었다고 보기 힘든 게임이었다. 사실 핵 앤 슬래시 게임 답다, 라는 논의의 가장 갈피를 잡기 어려운 점은 ‘대체 핵 앤 슬래시 전통을 어디에 둬야 하는가’와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핵 앤 슬래시의 전통이라는게 존재하는가?’의 측면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는 이 장르의 근원이자 시작인 D2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이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1은 로그류의 게임을 ‘그래픽화’시킨데 큰 의의가 있는 게임이다:로그라이크의 가장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로그 같은 게임들이 무작위로 생성되는 미로를 ‘문자열’의 형태로 구현하였다면, 디아블로 1은 그것을 그래픽의 형태로 구현하고 키보드와 마우스의 직관적인 조작으로 완성시켰다.
D2의 등장은 디아블로 1에서 완성된 양식을 횡적으로 확장한 개념에 가깝다. 직업이 세분화되고 스킬과 육성이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으며, 더 나아가서 다양한 세팅과 옵션이 중요해진 게임이었다. 아마도 핵 앤 슬래시의 원류를 놓는다면 여기서부터 원류를 꼽아야 할 것이며, 후술할 다양한 형태의 핵 앤 슬래시의 변종들 역시 이 게임으로부터 유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점은 D2가 지금와서 다시 플레이하면 상당히 답답한 게임이라는 것이다:플레이어가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 수가 제한된 점이나 육성을 할 때 되돌리기 힘든 점들은 과거 게임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는 요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부분들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 직업들이 공용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서리스가 방패를 끼고 한손 무기를 들고 싸운다던가, 바바리안이 활을 사용하며 싸운다던가 등 기존 직업의 콘셉에서는 벗어나지만 어떻게든 운영을 할 수 있게끔 구성되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는 마나와 스탯 개념 자체가 각 직업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나와 스탯 시스템을 공통으로 두고 그 위에 스킬이라는 요소를 얹음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아블로3(2012, 이하 ‘D3’)’는 D2를 좀 더 접근성이 높게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가장 큰 변화는 공용 자원 개념을 삭제한 것으로, 직업별로 마나를 쓰는 게 아니라 각자 고유의 자원을 쓰며 스킬 메카니즘을 돌리는 형태로 게임이 진행된다. 여기에 세트와 고유 아이템을 통해서 자원과 스킬 메카니즘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하였다. 즉, 스킬 포인트와 스텟 포인트 배분을 배제하고 거기에 아이템 기반으로 게임이 돌아가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D3라는 게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어버리고 말았다:게임의 메커니즘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스탯/스킬 배분)을 빼버리니 결국 남은 것은 아이템의 파밍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확장팩에서 카나이 함에서 고유 장비 능력을 지정할 수 있게 할 수 있게하는 등의 다소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세트템+전설 보석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임이 되었다. D3가 확장팩이 개발되다 취소된 부분도 기본 시스템에서 이러한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 외에 D3에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몇백 마리 몬스터를 학살할 수 있는 ‘물량감’을 최대한 살린 게임이라는 것이다. 자원을 무한히 수급하면서 빠르게 게임을 진행시킨다는 점은 D3가 지향했던 점이긴 했다. 하지만 동시에 D3가 지루한 수면제 게임이라고 불렸던 부분들이 이 물량감과 어느정도 연결되어있다 볼 수 있다. 결국은 정해진 스킬셋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괴물들을 학살하는, 단조롭고 쉬이 지루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D3의 성공과 별도로 D3는 명백히 D2보다도 그 한계가 명확한 게임이었다. 오히려 공용자원 시스템과 룬워드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육성을 지원했었던 D2의 게임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D2의 잠재력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엄청난 것이었다. D3의 문제는 가볍게 만들고 많은 양의 괴물들을 죽이는데 집중해서 오히려 D2가 갖고 있었던 가능성을 줄여버린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핵 앤 슬래시의 느낌이란 본질적으로 D2와 3을 섞어버린 무언가에 가깝다. 자유로운 육성을 하면서 무한히 쏟아져나오는 적들을 죽이는 개념 자체는 2와 3에 동시에 등장하지 않는다. D4가 물량을 썰어내는 느낌이 부족해 핵 앤 슬래시의 느낌이안난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경험에 근거하여 평가를 한 것에 가깝다 이것은 D3과 D4 사이의 공백이 컸기 때문의 문제라 할 수 있다. D3와 D4사이에는 11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다. 즉 중간에 ‘디아블로2 의 적자’라 할 수 있는 게임들이 다양하게 나와서 사람들의 인상에 분명히 장르 공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면 이러한 혼재된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D3 이후로 D2의 후계자들(패스 오브 엑자일 같은)은 메인스트림 장르에서 벗어났다 할 수 있다. 또한 D3 이후로 파밍 중심의 게임들이 루트 슈터와 같은 형태로 변화하면서 D2나 D3의 게임 양식이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것들도 큰 변화점이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핵 앤 슬래시의 장르적인 공감대는 파편화되어 ‘핵앤슬래시 장르는 이것이다’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만들 수 없었다.
이 사이에 나온 ‘D2의 서자’라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은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그림던, 로스트 아크 같은 게임들이었다. 재밌는 점은 D2의 적장자인 D3와 다르게 이들은 모두 D2의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D4는 이들을 다시 벤치마킹하여 D2의 경험을 재구축하려고 시도하였다.
D4는 분명하게 2와 3을 섞은 무언가를 만들려 한다. 분명 처음에는 느리긴 하지만, 아이템과 정복자 문양, 전설 각인들이 갖춰지고 딜 메커니즘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사냥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구조를 취한다. 비유하자면 D3가 자동 변속으로 엑셀만 쭉 밟고 있다면 기어가 계속해서 높은 기어로 올라가는 구조였다면, D4는 중간중간 의식해서 기어를 변경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딜이 오르지 않는 구조인 것이다.
이 점들 때문에 D4는 두 가지 단점을 갖게 되었다. 첫번째는 처음 전투가 진행될 때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문양’이 갖춰지기 전에는 재미가 현저히 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제외한다면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D4는 3편이 빠진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2편의 적장자라고 내세울 수 있을 만큼 개발자들의 고민이 반영된 게임이 되었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지역적’이고 ‘동시대적’인 특색이 강한 작품이었다.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쉔무에서부터 일본/홍콩의 마을과 거리를 구현하면서 거기서 소일과 활극을 즐긴다는 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용과 같이 시리즈도 카무로쵸, 소텐보리 같은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플레이어가 그 지역의 특산물과 즐길 거리를 즐기는데 방점을 찍었다. 또한 야쿠자와 인협물이라는 시대에 동떨어진 장르와 다르게 게임 내에서 즐기는 소일거리들은 ‘동시대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는데, 제로의 물장사에서부터 전화 데이트, 캬바레 같은 일본식 성인 유흥에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만남어플 등과 같은 신식 문물까지 오랜 시리즈의 역사동안 다양한 동시대의 문화를 게임에 녹여내려 했다.
흥미로운 점은 용과 같이라는 작품의 지향점일 것이다: 게임은 분명 GTA 같은 게임과 비슷한 소재(범죄자, 일탈의 즐거움)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GTA와 전혀 다른 지향점을 보여준다. GTA식의 메트로폴리스 도시의 구현이었다면 용과 같이는 도시의 한 두 블록을 정밀하게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GTA의 도시가 현대적인 대도시의 풍광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면(물론 발매텀이 매우 긴 것도 한몫할 것이다), 용과같이는 짧은 발매텀과 그때 그때의 유행들을 반영한 미니게임, 트렌드의 변화로 게임 내에 즉각적으로 반영된 게임이었다. 물론 용과 같이가 작은 규모의 게임으로 구현된 것은 에셋을 최대한 재활용한다는 기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짧은 발매텀 동안 중복되는 미니 게임이나 기믹을 최대한 배제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의 요소들을 최대한 들고온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GTA가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일탈을 구현하는게 핵심이었다면, 용과같이는 약간의 문턱을 넘으면 손에 얻을 수 있는 일탈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런 ‘손에 잡을듯한 일탈’의 개념은 역으로 용과 같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컨셉과는 크게 맞물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용과같이 시리즈의 시작은 인협물으로 한국식 조폭물의 일본판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식 조폭물의 문제답게 야쿠자물 역시 현실 범죄의 미화,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미학과 겉멋든 모습들, 폭력적이고 과격한 묘사 때문에 점차 메이저한 장르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또한 단순히 장르적으로 퇴색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서도 야쿠자는 강력한 법적 제재와 단속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문제는 ‘동시대성’과 ‘장르적 베이스’가 상충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야쿠자를 멋지게 표현하는 모습과 야쿠자는 행복하면 안된다는 장르 법칙 간의 모순, 시대가 지날수록 야쿠자는 설 곳을 일어가고 있는데 근 20년 가까이 시리즈를 지속하면서 야쿠자 주인공으로 메인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들 등등은 용과 같이 시리즈가 걸었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용과 같이의 강점은 구체적인 상상력과 지역에 기반한 상세한 요소들이었지만, 동시에 그 요소들을 게임으로 엮어 성립시키는 장르적 문법들이 역으로 게임 프랜차이즈를 옭아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멜로드라마나 소프 오페라 관점에서 본다면 완성도가 높아 세계적으로 팔릴 여지가 있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부분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편의 방향성 변화는 활로를 뚫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단순히 액션 게임에서JRPG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야쿠자’라는 장르적 문법에서 넘어서서 ‘손에 닿을듯한 일종의 어반 판타지’로 넘어갔다. 야쿠자와 불량배들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잡몹이 되고, 하수구는 던전으로, 생활속 다양한 직업들은 판타지에 나올법한 전사, 도적, 마법사들로 치환된다. 사실 원래 용과 같이에서도 이러한 NPC들의 얼척없는 이야기들이나 황당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도 많아서 이러한 변화점이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았는데, 용과 같이 7은 아예 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즉, 손에 잡을 듯한 일탈과 그 일탈을 뒷받침하는 상상력을 어반 판타지의 양식으로 재정립해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야쿠자와 인협물이라는 요소 자체를 일반화된 대중문화 코드로 희석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 용과 같이 7이었던 것이다.
용과 같이 7의 성공은 주인공을 키류 카즈마에서 카스가 이치반이라는 인물로 세대교체하는 주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7편의 등장으로 지난 20년 동안 키류 카즈마란 인물이 쌓아온 용과 같이를 정리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키류 카즈마의 존재는 용과 같이의 기반이 구세대적인 야쿠자 인협물에 기반하는 산 증거이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게임에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용과 같이 제로에서처럼 캬바레를 간다던가, 미니카 대전을 즐긴다던가, 당구를 친다던가 등의 소일거리들은 사실 우리 윗세대들이 주로 하는 소일거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일거리들은 아랫세대로 내려올수록 공감을 얻기 힘들거나 재미가 없게 느끼거나 하는데, 키류 카즈마란 인물이 표상하는 과거의 감수성을 넘어서 게임 콘텐츠를 과거의 영역으로 제약하는 한계가 된다.
용과 같이 7 외전은 키류 카즈마를 떠나보내주기 위한 작은 진혼곡이다. 용과 같이 제로의 시스템(돈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는)을 도입하면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콘텐츠들을 집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용과 같이 7 외전은 7이나 과거작들 같은 메인 시리즈와 같은 야망이나 힘을 준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시리즈가 10장 이상의 볼륨을 자랑했다면, 용과 같이 7 외전은 6장 남짓의 분량에 이전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다채로운 반전이나 즐길거리 요소들을 빼고 오로지 구작의 미니게임이나 시스템들을 다듬고 재활용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분량뿐만 아니라 용과 같이 7 외전은 의도적으로 작품의 포부를 줄여버린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애당초에 7에서 ‘키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이야기의 곁가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지만, 8편에서 마지막으로 출연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키류가 걸었던 길과 야쿠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어째서 더 이어질 수 없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야기에 큰 힘을 쏟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7 외전이 구시대적인 게임 플레이를 다듬기는 하지만 숨기지 않는 부분들은 보면 더더욱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진다:7편에서는 이미 잘려나간 캬바클럽과 같은 미니 게임 요소나 새로운 미니 게임 요소는 넣지 않고 상당수 구작의 미니 게임들을 가져온 점, 격투 스타일을 두가지로 줄여서 다듬어 버린 점들이 그러하다. 7이나 구작들, 특히 4나 5편, 제로 같은 작품에서는 플레이 케릭터 수를 늘려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와 기믹을 보여주려 했었던 용과 같이 시리즈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어깨에 힘을 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7 외전은 8편을 위한 구작의 앵콜에 가깝다. 애당초에 8편 발매 2개월 전에 게임패스를 통해서 풀린 점이나 풀 프라이스 가격보다 살짝 저렴한 가격으로 나온 점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키류 카즈마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생긴 점이 그러하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키류 카즈마에게서 ‘퇴물이 되어 늙어버린’ 자의 애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 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이번작에서는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조용히 살아가며 과거의 영광과 악명에서 거리를 둔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그의 행동에는 과거를 억누르는 연륜과 동시에, ‘자기는 아직 늙지 않았다’라는 묘한 호승심이 상충되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캐슬 투기장에서 더 높은 등급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이나, 미니카 서킷에 도전을 한다던가 하는 등의 활동에서 과거를 추억하면서 ‘난 아직 늙지 않았다’와 ‘나는 아직도 강하다’라는걸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우리 같은(=야쿠자) 사람들의 꿈이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비하면 쓰레기다 라고 일축하는 모습에서 그런 호승심과 거리를 짓는 성숙함도 보여준다.
이러한 대비되는 두 감수성이 용과 같이 7 외전의 핵심이자, 동시에 플레이어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키류 카즈마의 모습이 기존 흰 양복의 붉은 셔츠를 입는 전형적인 야쿠자의 모습에서 검은 정복으로 바뀐 점이나 오프닝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장면, 그가 즐기는 미니게임이나 소일거리들이 대부분 용과 같이 제로 때부터 내려오는 40~50대의 추억과 소일거리에 기반한 점들은 그를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고 삶에 지쳐버린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뒤쳐지고 지치고 늙은 키류 카즈마가 하고자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아직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또다른 하나는 너무 늦기전에 뒷세대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 모순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게임은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였고, 용과 같이 7 외전은 분명 작은 스케일에 아주 훌륭한 완성도라 할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잘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에서 용과 같이 제작진들의 강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통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개념이긴 해도 그러한 통속적인 개념들의 대비를 통해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이미지와 스토리를 각인시키는 부분이 용과 같이 시리즈의 강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용과 같이 7 외전은 8편을 위한 기대감을 고취시키는 프롤로그의 관점과 키류 카즈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에필로그의 관점에서 모두 좋은 작품이다. 물론 독자적인 작품이 아닌 ‘무언가’의 끝이자 시작으로 기능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본다면 7편이나 이전 작품에 비해서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용과 같이 7 외전은 용과 같이 제작진들이 소프 오페라의 문법을 다루는 관점에서 완숙미를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7편의 변화나 저지먼트 아이즈 같은 외전들, 키와미 같은 작품들 등등을 통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 시도에서 일본 로컬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에서도 먹힐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관점이 대단히 ‘구시대적’인 부분들은 있지만, 구시대의 사람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현시대 사람이 못되더라도 적어도 현시대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것을 용과 같이 시리즈와 용과 같이 제작진은 증명해냈다.
- 생각보다 들고다닐만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기기라는 인상. 잘 사용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이 기기보다 스팀덱에 대한 평가가 더 올라가는 기묘한 기기입니다.
- 기기 하드웨어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떨어지는게 너무 눈에 보이는 기기.
- 스펙적으로 본다면 스팀덱보다는 훨씬 뛰어나며, 기본적으로 윈도우 기반의 UMPC이기 때문에 더 많은걸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쓴다던가, SSD 용량을 확장한다면 기본적인 사무 업무나 작업을 하는 것이 왠만한 사무용 피씨만큼의 성능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펙적으로 본다면 화면 크기가 늘어났기 때문에 영화나 다른 사무용 업무, 웹 서핑을 수행하기 괜찮다. 기본적으로 윈도우 11의 타블렛 UI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무게도 스팀덱 보다 좀 더 무겁긴 하지만, 게이밍 노트북이나 여타 기기들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가벼운 축이고 들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경계선에 있다.
- 성능적으로도 스팀덱 대비해서 더 뛰어난 수준. 당장 몇몇 게임들의 경우, 게임 플레이 프레임이 올랐다는게 느껴질정도로 차이가 난다. 디아블로 4 같은 게임이나 그림 던 같은 게임들 등등 기존 스팀덱에서는 40프레임 정도를 방어하던 게임들이 60프레임 이상을 방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와인 기반의 프로톤이 갖고 있던 윈도우 '에뮬레이션'의 문제를 윈도우 네이티브로 해결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 그러나 스팀덱과 달리 기기 '전용 OS'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꽤 많다. 우선 범용적인 윈도우 OS의 태블릿 UI나 사용감 자체도 그렇게까지 좋지 않은데, 레노보 리전 고용 대응 소프트웨어도 완성도가 너무 엉망이다. 특히나 스팀덱 같이 빅픽처 모드와 스팀덱 OS 기반으로 다듬어진 UI/UX 컨트롤러의 조작감과 대비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스팀 외부의 ESD(예를 들면 엑박 게임 패스같은)를 쓰면 키보드와 기본 컨트롤러 사이에서 충돌까지도 발생한다.
- 컨트롤러 버튼은 많은데 정작 스팀덱 처럼 뒷면 컨트롤러 버튼을 따로 지정하거나 사용못한다는게 좀 치명적이다. 기존 스팀덱 컨트롤러는 후면 컨트롤러 버튼을 매핑하고 쓸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 분리 컨트롤러 기믹은 좋은데 문제는 스위치처럼 컨트롤러 두개를 결합할 수 있는 조립형 지지대 같은것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 전반적으로 덜 무거운 게이밍 노트북이라 생각하고 쓰면 상당히 만족스럽고, 스팀덱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더 좋은 기기를 생각하고 사기엔 좀 애매하다. 무게도 무게고 게임 하나만 하는 용도로 쓰기엔 OS 완성도도 너무 떨어진다. 무엇보다 조금 프레임과 해상도를 희생하면 이미 스팀덱에서도 레노보 리전 고가 할 수 있는 거의 상당수의 것들을 처리할 수 있다. 60프레임이 좋긴 하지만, 30프레임이라는 포멧이 왜 표준이었는가? 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 결론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만(게이밍 "노트북"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모두에게 추천해주기는 어려운 기기.
디아블로 2의 등장은 게임 역사의 한 장을 바꾸었다. 수많은 적들을 죽이고, 장비를 획득하고, 스킬과 스탯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케릭터를 키우는 구조를 우리가 아는 형태로 처음 정립한 건 디아블로 2였다. 그리고 좀 더 뒤로 흐름을 넓혀서 본다면 게임의 장르나 방식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폐지 줍기’ 게임으로 일컬어지는 파밍 게임 장르의 큰 틀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 2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갖고 이야기하고 그리워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디아 2의 기록적인 성공은 수많은 아류작과 파생작, 계승작들을 만들어냈고 다양한 시도와 실패, 성공들을 동반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디아블로 2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단순히 게임 하나만의 추억이 아닌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로 진행된 액션 rpg 장르 전체에 대한 추억이자 그 이후의 게임들로 이어지는 계보에 대한 향수이자 집단 기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디아블로 2 본편의 양식과 장르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너무 낡아버렸다. 디아블로 2가 게임 역사의 큰 흐름에서 뒤로 밀려나게 된 이유에는 디아블로 2의 문법들을 많은 게임들이 충실하게 잘 따라했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존재했다:가령, 디아블로의 개발자 중 하나였던 빌 로퍼가 만들고 총을 수집하는 1인칭 디아블로로 시작하여 실패를 겪은 헬게이트 런던은 보더랜드와 데스티니라는 양식으로 완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큰 틀에서의 추상적인 구조는 디아 2를 따르고 있지만, 그것을 fps의 툴셋으로 옮기기 위해서 데스티니와 보더랜드는 수많은 자기 해석과 새로운 방법론, 레벨링 구조, 콘탠츠 구조들을 만들었는데 시작은 디아 2였을지 몰라도 결국 도달한 결과물이 완전히 상이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더이상 디아블로 2라는 거인의 그림자에 숨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화된 디아 2의 장르와 양식은 역설적이게도 디아블로 2 원전을 점점 낡은 양식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는데, 아이소매트릭 카메라 구조의 한계와 유행의 종료, 유저 편의성의 문제, 엔드 콘탠츠와 반복 플레이에서의 문제 등은 아무리 고전이라도 극복할 수 없는 시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즉, 디아블로 2는 분명 시대에 큰 족적을 남기고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현재에 있어 ‘동시대’라 할 수 없는 지나간 흐름의 게임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블로 4가 디아블로 3 이후로 무려 11년 만에 발매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대와 함께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라는 의문이 섞인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간 블리자드가 겪었던 아노미와 실망스러운 행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디아블로 4가 취하고 있는 디아블로 2 형식의 아이소매트릭 핵 앤 슬래시 액션 RPG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로스트 아크 같은 게임들이 이런 게임 장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고(물론 후술하겠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디아 4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상당수의 트리플 A 게임들이 디아블로 2의 비전을 소화하고 있기에 디아블로의 신작이 지금 시대에 그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것과 별개로 디아블로 4가 취하고 있는 양식, 아이소매트릭 핵 앤 슬래시 액션 RPG라는 장르가 지금 관점에서는 “굳이?”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어느정도 대중의 평가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런 영역들을 제껴두고 보더라도 게임 자체는 준수하게 나온 게임이다. 물론 디아 4가 디아 2 이후의 새로운 혁신의 영역을 열었다던가, 혹은 시대의 명작이라든가를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후술하겠지만 블리자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디아 2의 성공은 아마도 재현될 수도 없고 재현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디아블로 4가 발매 이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우주 최고의 쓰레기 게임’, ‘자기들이 뭘 만드는지도 모르는 게임’이라는 표현들은 너무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2 이후 걸었던 다양한 게임들을 조합하고 절충하여 코어와 캐주얼 사이의 그 어딘가 절충안을 찾으려 한 게임이다. 물론 그것이 어중간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디아블로 4는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없이 만들지도 않았고 골격 자체는 상당히 잘 잡혀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이 많이 사로잡혀 있는 가장 큰 미신 중 하나는 블리자드라는 게임 제작사가 ‘혁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역사를 잘 살펴본다면 블리자드의 성공작들 전후에는 블리자드가 벤치마킹하고 발전시킨 무수히 많은 게임들이 존재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그 장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을 들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은 선각자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블리자드는 이러한 작품들을 벤치마킹해서 자기만의 양념을 몇스푼 얹어서 완성시키는 일종의 트렌드 팔로어 개념에 가까웠다. 비주얼적인 변화와 발전 때문에 자주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디아블로 1이 넷헥 스타일의 게임(흔히들 로그라이크라 불리는)의 경험을 발전 승화시킨 게임이란 걸 감안하고 디아블로 2가 그 디아블로 1의 가능성을 승화시킨 게임이란 점, 그리고 마지막에 팔로잉 할 작품이 없어서 허공에 헛발질하면서 망한 디아블로 3의 케이스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오버워치나 하스스톤의 흥망성쇠도 그렇고, 종합하여 보았을 때 블리자드라는 회사의 오히려 ‘벤치마킹하여 양념칠만한 요소가 있는가?’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회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디아블로 4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디아블로 4가 벤치마킹한 게임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선은 로스트 아크다: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로스트 아크라는 게임이 없었다면 디아블로 4의 게임 구조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와 보스 레이드, 지역단위로 끊어져있는 퀘스트 동선, 카메라를 쓰는 방식 등등 큰 틀이나 자잘한 틀에서 디아블로 4는 로스트 아크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루머에 따르면 디아블로 4가 위처나 다크소울과 같은 RPG를 벤치마킹했다는 루머가 있다. 물론 우리가 그 모습을 알 길이 없고, 디아블로 3 이후로 있었던 디아블로 관련 프로젝트들이 난항을 겪으면서 진상은 오리무중에 빠졌지만 로스트 아크의 발매가 2018년이고 디아블로 4의 첫 공개가 2019년 11월이란 점을 쉽게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스테로이드를 빤 늙은이”다. 기본적으로 로스트아크의 핵심 골자들은 추억에 기반한다. 디아블로 2와 같은 핵앤슬래시나, 와우나 mmorpg 같은 장르 등등 2018년 시점에서는 이미 일부 게임을 제외하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장르였다. 스마일게이트의 대표가 ‘한번 쯤 추억을 집대성한 위대한 게임을 한번 내보자’라는 꿈이 없었다면,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기획서 단계에서도 통과되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추억을 드림장르의 형태로 구현해보자 라는 이 이상한 목표가 “과거를 받아 현재를 구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비전을 가진” 형태의 게임을 만든게 아닌 “현재의 탈을 뒤집어 쓴 뒤 편의성을 갖추고 미래의 가능성도 포섭하려 한 과거의 게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괴이한 이상을 집대성한 부분이 바로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를 쓰는 로스트아크의 독특한 방식일 것이다. 콘솔 트리플 a 게임의 도래 이후로 아이소매트릭 카메라는 게임의 영화적 경험이나 연출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를 등뒤나 어깨 뒤에서 바라보는 3인칭 시점이나 1인칭 시점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로아는 여전히 아이소매트릭 카메라 방식을 고수하면서 정작 연출 자체는 고전 아이소매트릭 게임의 연출이 아닌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의 연출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로아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들과 연출들(과격한 줌인, 스테이지의 고저차를 연출하는 간단한 플랫포밍, 카메라 촬영 각도를 틀어서 공간감을 표현하기 등등)을 보여주었다. 로스트아크의 카메라 워크와 연출은 나름 성공적이긴 했지만, 이런 괴이한 조합들로 인해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함을 갖게 되었다.
디아블로 4의 큰 구조와 연출, 게임의 흐름은 분명 이런 점에서 로스트아크를 따왔다. 분명 디아블로 4의 많은 부분들은 현대적인 트리플 A 게임의 편의성과 구조, 파밍 흐름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아이소매트릭 카메라와 연출방식, MMO 요소들과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지향점의 괴리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트리플 A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소인데, 명백히 로스트 아크를 레퍼런스로 차용한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로스트 아크가 없었다면 과연 디아블로 4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스트아크와 비슷하게도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부분들이 디아블로 4에 잘 어울리기도 하는데, 결국 디아블로 4가 걷고자 하는 길이 원류로의 회귀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블로 3와 같이 디아블로 2를 발전시키되 새로운 아젠다로 게임을 구성한다라는 혁신과 실패의 과정과 다르게 디아블로 2를 배낀 게임들을 최대한 벤치마킹해서 안전하게 게임을 이끈다는 구성을 취한 점이 게임을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아블로 3는 실패작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후대 디아블로 2의 정신적 계승작들에게 큰 가이드라인을 준 게임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3의 핵심은 게임의 허들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었다. 기존의 직업별 공용자원이었던 마나를 제거하고, 마나 대신에 각 직업별 자원 및 자원 순환 매커니즘을 집어넣어서 자원을 수집하고 – 딜로 자원을 소비하고 하는 사이클을 무한히 돌리게끔 만드는 구조를 만들었다. 디아 3의 목표는 개성을 주되(자원 순환 구조를 직업별로 달리 주는 것) 그 허들을 낮게 만드는(기술에 문양을 끼우는 방식으로) 것이었다. 디아 3는 전자는 성공적이었지만, 후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고 말았는데 커스터마이즈 영역이 문양과 기술으로 이원화되어 단순화되고 그 결과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명확해져서 커스터마이즈와 성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디아블로 3의 명백한 실패는 결과적으로 게임이 ‘아이템이 없으면 세팅을 완성시킬 수 없다’라는 것이 매우 컸다. 딜 메카니즘을 완성시키는 전설이나 세트 아이템들이 없다면 플레이어가 손을 대거나 차이점을 만들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디아블로 3는 오리지널 초창기에 아이템 거래를 위한 현금 경매장을 도입하고,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오로지 클리어했던 액트를 다시 재클리어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게끔 만들었다. 거기에 살인적인 난이도를 추가하여, ‘옛날 게임의 구조에 돈을 벌기 위해서 현금 경매장이라는 요소를 추가하고, 거기에 냔이도까지 살벌한’ 기이한 게임을 만들어버렸다. 물론 현금경매장의 폐지, 확장팩의 추가와 대균열, 현상금, 정복자 등의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게임은 어느정도 괜찮았던 본바탕을 건져올리는데 성공했지만, 아이템 망겜이라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카나이의 함 같은 시스템을 추가했어도 결국 블리자드가 디아 3의 확장팩 개발을 포기한 것은 디아블로 3가 구조적으로 회생불가능하다는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의 실패에서 학습하고 더 나은 작품들(가장 큰 벤치마킹의 대상은 패스 오브 엑자일이다)을 배껴서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디아블로 4의 핵심은 이전 디아블로 3에서 세트 아이템 한 벌이 했던 딜 메카니즘을 전설과 고유아이템, 정복자 노드와 문양 단위로 쪼게고 그것들을 모아서 딜 매커니즘을 구성하게끔 만들었다. 처음보면 엄청나게 많은 내용에 압도되지만, 디아블로 4 케릭터 육성 및 세팅의 핵심은 결국 고유 및 전설 아이템의 세팅이고, 이 점에서는 디아블로 3와 유사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위상”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원하는 옵션과 세팅의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구제책을 제공한다:가령 내가 만들고자 하는 세팅과 전혀 다른 아이템이지만 전설 능력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온 경우, 전설 능력만 위상으로 추출하여 보존하고 나중에 나온 희귀/전설 아이템에 덧씌워서 원하는 전설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희귀템에 대한 구제책도 되면서 기존 전설 아이템을 다시 재활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파밍 위주의 게임에서 적절한 구제책을 제공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게임은 던전을 완료 시, 위상을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탑재하여서 파밍의 최저한도선을 설정하였다. 아무리 내가 원하지 못하는 아이템을 먹지 못하더라도 최저한도의 옵션의 세팅을 맞출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을 마련해둬서 파밍에 대한 허들을 낮춘 것이다. 또한 정복자 보드의 존재는 그리고 흥미롭게도 개별 전설 문양들로만 보면 다소 번잡하고 느리게 느껴졌던 게임이 전설과 고유 아이템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디아블로 3가 지향했던 무자원+달 사이클 형태의 게임에 가까워 진다. 그 과정에서 고유나 전설이 들어가거나 빠지면서 사이클이 조금씩 바뀌게 되는데 이전 세트템 기반의 게임이었던 디아블로 3보다는 좀 더 세밀한 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와 같이 100마리, 1000마리 학살 같은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는 게임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아블로 4는 핵앤슬래시 느낌이 나지 않는다’라고 혹평한 부분들은 전투의 느린 속도에 기인한 것이다. 디아블로 4는 방어와 공격 메너니즘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보강과 제압이라는 메커니즘을 넣었고, 이걸로 초기 전투를 진입할 때의 진입장벽을 높였다. 보강은 일종의 방어 버프로 생명력 이상의 보강을 두르고 있을 시에 데미지 감소 버프를 주고, 제압은 플레이어가 보강 상태에 도달했을 때 보강된 수치를 데미지에 합산하여 데미지를 주는 시스템이다. 제압과 보강 메커니짐은 각 직업별 딜 사이클 시스템 내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 돌입시 보강을 빠르게 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보강을 채우는 과정이 플레이어 관점에서는 너무 느리고 답답하며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보강을 채우고 나서는 게임은 180도 달라지게 되는데, 보강된 수치가 데미지 메커니즘에 들어오면서 데미지 계수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루이드의 경우, 보강된 수치를 데미지 버프를 받으면서 확정 제압을 더해서 1만 단위 데미지가 10만, 100만 심지어는 1억 단위 한방 데미지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신 보강은 계속 채워주지 못하면 결국 점차 사라지는 버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꾸준히 딜을 넣거나 스킬을 넣어주면서 일정 보강을 채워주는 작업을 해야한다. 즉, 플레이어 딜 고점은 이전보다 엄청 높아졌지만 보강이라는 요소 때문에 플레이어가 신경써야하는 요소가 자원과 쿨타임 외에 새로운 것이 생겨난 것이다.
즉,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3와 같은 짧은 딜사이클을 끊임없이 돌리는 게임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딜사이클을 돌리면서 한방 한방을 묵직하게 꽂아넣는 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디아블로 3는 컴퓨터가 정해준 대로 자동 변속이 되는 현대적인 스포츠카라면 디아블로 4는 수동 변속으로 꾸준히 속도와 기어 변속을 유지 해줘야하는 스포츠카라 할 수 있다. 손은 더 많이 가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 플레이어의 손을 타거나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게임 자체는 다른 게임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편이긴 하더라도, 그 방향성을 잘 잡고 본바탕은 괜찮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디아블로 4에는 흥미곡선이 하락하는 구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디아블로4에서 플레이어는 레벨 30까진 스킬들을 해금하고, 50 이후에는 정복자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된다. 30까지는 게임의 메커니즘을 익히고, 50부터는 본격적으로 게임 시스템을 100% 활용하기 시작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0에서 50 사이의 구간에서 플레이어가 비약적으로 강해지거나 게임 메커니즘이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들이 많다. 이 구간에서 플레이어는 스킬을 찍거나 릴리트의 재단을 찾으면서 정복자 레벨이나 스킬 레벨을 올리면서 강해지는 밑밥을 깔아둘 수 밖에 없다. 디아블로 4에서는 이 과정을 스토리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방법말고는 없는데, 시즌 케릭터 같은 경우에는 이 과정 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또한 스킬 포인트를 투자할 때마다 %가 올라가는 것이지 플랫 뎀(고정된 데미지)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레벨이 오른다고 더 강해지는게 체감되지 않는 것이 더더욱 아쉽다.
대신 50렙에서부터는 플레이어의 재미가 지수함수의 형태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더 나은 희귀템을 문양을 활용해서 전설 아이템을 만들고, 스스로 아이템을 세팅하고, 더 나아가서 고유 아이템을 먹을 때마다 어떤 세팅을 맞출건지 연구하고, 문양을 레벨업하고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들이 해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고민하고 바꾼 만큼 게임이 달라지는 구간이기 때문에 디아블로 4는 이전의 밋밋한 구간보다 훨씬 더 재밌어진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종반에 가서 기본 게임 골격은 급격하게 꺾이게 된다. 게임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엔드 콘텐츠는 악몽 던전 100단과 릴리트의 메아리를 잡는 보스전인데, 양쪽다 30~50렙 구간처럼 단계적으로 강해지는 요소도 없고 밋밋하게 레벨을 올리거나 좋은 아이템이 나올 떄까지 노력하는 것 외에는 끝에 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디아블로 4의 구조 자체가 근래의 운영형 게임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운 공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시즌 1과 2에서는 시즌 퀘스트나 콘텐츠들을 통해서 최종 엔드 콘텐츠까지 갈 수 있는 로드맵을 구성해놓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루팅류 게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운영의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모습을 판단하기 보다는 게임에 대해서 얼마나 피드백을 잘 받아주고 잘 운영하는지’가 디아블로 4의 전체 콘텐츠 흐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즌 1과 2는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1에서는 릴리트의 재단을 처음부터 플레이어가 뚫게 만들고 백트래킹을 심하게 유도하여 플레이어가 엔드 콘텐츠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지치게 만들었다면, 시즌 2에서는 엔드 콘텐츠까지 도달하기 까지 플레이어에게 분명한 로드맵을 제공한다(시즌 피의 사냥터 악몽 던전 월드 이벤트 바르샨 지옥물결 두리엘 릴리트 지르의 도살장) 시즌 1과 2의 차이점은 디아블로 4의 제작자들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여 방향성을 잡아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시즌 1의 콘텐츠나 문양을 적절한 부분에 분배한 부분들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이 너무나 ‘당연한’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호평이 다소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오버워치에서 보여준 운영상의 난점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음을 반증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멀리는 디아블로 3의 현금경매장이나 디아블로 이모탈, 오버워치의 운영 등등을 통해서 본다면 블리자드라는 회사는 점점 쇠퇴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디아블로 4는 시즌 1에서 흔들리긴 했어도 시즌 2를 통해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디아블로 4는 로스트 아크나 패스 오브 엑자일 같은 게임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할 후발 주자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 4는 본 바탕은 괜찮은 게임이다. 디아블로 3마냥 확장팩에도 불구하고 회수 불가능했던 그런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디자인은 아니며, 운영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나아질 여지가 있는 게임이다. 세간에서 시즌 1의 혹평이 심했지만, 시즌 2에서 커버한 모습을 통해 어느정도 신뢰할 여지가 생겼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디아블로 4는 구매해서 손해보지 않을, 오랫동안 놓고 플레이할만한 서비스형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디아블로 2의 등장은 중요한 장르적 개념의 증명이었다:플레이어의 분신인 케릭터를 레벨을 올리면서 성장시키고, 각자 개성을 가진 기술들이나 적이 떨어뜨린 아이템으로 강해진다는 발상은 RPG의 장르의 등장과 태동, 그리고 전작인 디아블로 1편에서부터 형성되어 내려온 장르의 고유 맥락이었다. 하지만 그 맥락이 시스템과 문법을 만나게 되어 하나의 게임으로 정립이 된 것은 디아블로 2였다. 레벨을 올리면서 얻는 제한적인 자원(스탯과 스킬 포인트)들을 사용해 케릭터의 큰 얼개와 개념을 잡고, 그 과정에서 아이템들을 파밍하여 케릭터를 완성시키는 것은 디아블로 2에서 정립되었다. 또한 난이도 설정 방식과 반복 플레이, 랜덤으로 생성되는 맵, 래더 시스템이나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 하드코어 시스템 등도 이 작품에서 대중적으로 정립되었다. 물론 좀더 따지고 놓고 보면 넷핵과 같은 랜덤 생성식의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이미 디아블로 1과 2의 베이스라 할 수 있었지만, ‘던전의 탐색’이 아닌 ’케릭터의 육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의 스타일로 굳게 된 것은 디아블로 2였다.
디아블로 2의 등장은 ‘파밍’과 ‘스킬’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케릭터의 개성을 구성하는 점에서 이후의 게임 장르에 큰 궤적을 그렸다. 당시 나왔던 수많은 실험작들(세이크리드 같은 마이너한 물건에서 헬게이트 런던 같은 실패한 프로토타입까지)의 등장 이후, 디아블로 3가 나오기 전후로 해서 디아블로 2의 스타일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타이탄 퀘스트,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토치라이트, 그림 던 같이 디아블로 2를 받아들이되 자신만의 새로운 색체를 가미하여 성공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디아블로 2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넘어선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작품들이 상당히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것처럼 보여도, 기본적으로는 디아블로 2에서 영감을 얻어서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그림 던 같은 게임에서는 아이템에 스킬이 붙는 ‘아이템 스킬’ 개념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특정한 룬 스톤들을 순서대로 삽입해서 룬 워드 아이템을 만드는 디아블로 2의 시스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스킬과 스탯 배분과 별개로 아이템에 새로운 기능을 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디아블로 2 이후의 소위 핵앤슬래시 게임들은 디아블로 2의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받아들여서 발전 시키는데 더 집중을 하였다.
오히려 디아블로 2의 장르적 개념적 발전은 소위 '폐지줍는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가 발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자면 총 쏘는 디아블로라 불렸던 보더랜드의 등장과 데스티니 같은 게임들의 등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MMO든 패키지든 무엇이든 간에 디아블로 2의 등장은 반복 플레이와 스킬과 스텟을 배분하여 성장하고 아이템을 파밍해서 점점 강해진다라는 개념을 완성시켰다. 디비전 같은 게임이나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루트 슈터류의 게임들이 이러한 디아블로 2의 방계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물론 철저하게 혈통을 따지는 사람들 중에서는 '디아블로 2와 그 직계 후손들'과 루트 슈터 류의 게임들을 분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로스트 아크의 케이스처럼 '이것은 MMO지, 디아블로 2의 핵앤슬래시 류 장르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로스트 아크가 MMO의 큰 장르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그 뿌리를 디아블로 2 스타일의 핵앤슬래시와 파밍 게임에 두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로스트아크 이전 시대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MMO의 뿌리가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에버퀘스트, 울티마 온라인 같은 류의 게임들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로스트아크가 디아블로 2의 베이스를 두고 더더욱 그러하다(물론 여기에 타겟팅 논 타겟팅 등등의 장르 양식까지 고려해서 이야기한다면 복잡해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요소와 제반 상황을 볼때는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면 디아블로 2의 방계이자 서자라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은 무지막지하게 많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무작위로 생성되는 아이템을 주워나가고 레벨을 올리는 형태의 게임들은 상당수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디아블로 4의 리뷰나 디아블로 2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디아블로 2의 구시대적인 양식이 디아블로 3의 실패와 디아블로 4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이오하자드 4의 등장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큰 전환점이었다. 심지어 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현대적인 숄더뷰(어깨 너머로 바라보는) TPS의 등장은 바이오하자드 4와 함께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4는 프랜차이즈 전반에 있어서 하나의 ‘성배‘와 같은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바이오하자드 4에서 등장한 체술이나 숄더뷰 시점의 게임 플레이, 그리고 B급 액션 영화 같은 QTE와 연출 같은 부분들은 바이오하자드 5편, 6편, 리빌레이션, 심지어는 장르 변화가 일어난 7편의 DLC나 8편 전반에 나왔다. 또한 수많은 서바이벌 호러 게임들 역시 바이오하자드 4의 영향을 받았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데드 스페이스의 게임 플레이가 바이오하자드 4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었다. 바이오하자드 4 RE(이하 4 리메이크)는 바이오하자드 4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바이오하자드 2 RE 이후로 3편을 리메이크한 캡콤이 4편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프랜차이즈에서 어떻게 보면 ‘불가침’ 영역이었던 4편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2편을 리메이크하는 것과 다른 경지였다. 특히나 2편과 같이 오래되서 게임에 대해서 재해석 될 여지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4편은 현대적인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게임 초석을 다진 작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장르 관점에서 본다면 재해석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요약하자면, 바이오하자드 4는 그대로 옮기기에는 그동안 많은 장르의 발전이 이루어진 작품이라 더 나아질만한 요소를 추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그런 점에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성공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의 핵심은 바이오하자드 4의 전투 시스템을 새롭게 양식화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에서 4편의 존재는 체술의 추가였다. 기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총알을 적절한 곳에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체술은 이러한 총알을 아끼고 전투의 흐름을 좀 더 역동적으로 재정의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가령, 적의 무릎을 쏴서 자세를 무너뜨리고 체술로 데미지를 입혀서 적을 쓰러뜨린다면, 그만큼 총알을 아낄 수 있었다. 동시에 상단 하단만 노릴 수 있었던 기존의 조준 시스템을 일신해서 다양한 적들의 부위를 노리게 만든 점도 바이오하자드 4에서 다듬은 부분이었다. 바이오하자드 4에서 체술의 등장은 몬스터 디자인이나 게임 디자인을 일신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게임과 다르게 ‘머리를 노리면 적이 더 강해질 수 있다’라는 개념은 참신한 부분이었다. 또한 총격을 받고 쓰러진 적들이 더 강한 강화체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적들을 틈틈히 칼로 찔러 무력화 시키는 요소를 집어넣는 등 일반적인 슈터류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시스템들이 등장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체술을 통해서 편해진 부분들을 다양한 새로운 요소들로 보완해나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의 대부분은 공격 시스템 부분에서 이루어진 변화였고, 바이오하자드 4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 했다. 4 리메이크는 ‘방어적’인 부분을 요소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 4 리메이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나이프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다. 본편에서 나이프는 누운 적들에게 추가타를 입히거나, 총알을 아끼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러나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나이프로 ‘패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적의 근접 공격을 처냄으로 빈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것으로 적의 움직임을 막거나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면 근접공격으로까지 이어줄 수 있다. 막을 수 있는 공격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데, 4편 원작에서 닥터 살바도르의 즉사기도 리메이크에서는 칼 패링으로 막아낼 수 있다. 플레이어에게 전방위적인 방어 수단을 제공해준 대신 4 리메이크에서는 2 리메이크에서 했던 것처럼 칼에 내구도를 추가하여 소모품으로 사용하게끔 만들었다. 나이프를 다 쓰게 되면 패링이나 다양한 액션들이 막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항상 나이프의 수량을 체크해야 한다. 패링 이외에도 패링이 불가능하지만 ‘앉아서 회피할 수 있는 공격‘ 요소를 추가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하다. 나이프 패링과 앉아서 회피 같은 요소가 추가되면서 플레이어가 방어적인 부분을 능동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이 늘어났다. 즉,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공격과 함께 방어를 같이 추가하면서 공수 시스템을 모두 완성했다.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마치 교과서처럼 내려온 게임에서 ‘더 나아질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서 완성시켰다는 점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 4편의 등장 이후, 거의 20년 동안 수많은 게임들이 고민하고 발전시킨 부분을 이어받아서 완성시켰다는 점은 기존의 게임들을 공부한 점도 그러하다. 최근 작에 비추어 본다면 총기와 근접전을 결합시킨 칼리스토 프로토콜 같은 게임들이 있을 것인데, 이런 작품보다 오히려 기존 게임의 강점을 살리며 여지껏 있었던 변화들을 모두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캡콤의 개발 철학과 기술력을 집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는 리메이크라기 보다는 거의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큰 흐름이나 게임 플레이가 4 원작에서 크게 변화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4 리메이크는 4의 연장선이고, 7과 같이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4의 리메이크는 7과 같이 새로운 바이오하자드의 가능성을 연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서바이벌 호러에서 공격과 방어를 하나로 엮어서 근접 총기 격투(?) 게임 플레이의 한 획을 그었다.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 아니면 4편 리메이크는 꼭 해볼만한 작품이다.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다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었지만, 6편의 거대한 실패 이후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대한 장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기한 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의 형식을 취하면서 만들어진 바이오하자드 8의 모양새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바이오하자드 8은 바이오하자드 7을 골격으로 삼은 바이오하자드 넘버링 작품의 최신작이었다. 최근에 나온 리메이크 작들을 제외한다면, 바이오하자드 8은 바이오하자드 중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 리뷰할 바이오하자드 4가 한 때 완벽한 게임을 한 단계 더 진일보 시키는 게임이었다면, 바이오하자드 8은 기존의 바이오하자드들을 7의 포멧으로 옮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8의 핵심 테마는 '7의 포맷으로 재탄생한 바이오하자드 테마파크'다. 바이오하자드는 시리즈의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테마들을 게임으로 옮겼고, 의외로 시리즈 내에서 많은 장르 포멧을 소화한 프랜차이즈였다. 전통적인 저택식 서바이벌 호러인 1편에서부터 대규모 재난 서바이벌이었던 3편, 5편과 6편, 액션 장르를 게임에 접합시킨 4편 등등 프랜차이즈는 하나의 틀에 얽메이기 보다는 다양한 시도와 변주를 만들어내었다. 바이오하자드 8은 7의 기반을 재활용하는 동시에, 7이라는 새로운 포멧(1~3편의 고정 시점의 게임 플레이, 4~6편의 TPS 게임 플레이, 7편의 FPS까지)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를 테스트해보는 자리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확장을 이뤄내기에는 바이오하자드 7의 전투 시스템이 앙상한 뼈대에 가까운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7편에서 전투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A에서 B로 가는 것을 막기위한 길막의 요소이자, 플레이어가 혐오스럽고 역겨운 적들을 강제로 바라보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즉, 전투는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닌 우회하거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서바이벌의 성격이 강했던 바이오하자드 초기 시리즈(1편이나 2편 같은)에서는 이렇게 좀비를 무시하고 달리는 그런 요소들이 어느정도 있었고 바이오하자드 7의 전투도 그러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바이오하자드 7편의 전투 자체가 바이오하자드 6편이나 레벨레이션즈 같은 현대적인 바이오하자드의 영향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1편부터 5편까지 이어지는 근 20년 간의 역사에서 무빙샷이 안된다는 플레이어들의 불만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전투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점은 무빙샷이 추가되면서 상대방과 플레이어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조정하는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7편은 6편이나 레벨레이션즈 같은 바뀐 전투의 요소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고, 어느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기에 8편의 전투는 7편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 좀 더 다듬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8편 역시 FPS 형태의 게임 구조를 취하고 있고, 이는 7편과 유사하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케일'일 것이다:플레이어가 탐색하는 공간은 커졌고, 등장하는 적들도 늘어났으며, 공간도 이전에 비해서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나 8편의 규모가 거대해졌더라도, 본질적으로는 7편의 1대1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적들이 여럿 존재하더라도 '한 번에 한 명씩'만 공격을 하고 좁고 긴 맵 구조에서 벌이는 전투나 이런 부분들은 7편과 이전 작품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8편에서 재밌는 부분들은 1대1 상황에서 적들이 일종의 '격투 게임 장르'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적들은 플레이어와 싸울 때 좌우 스텝을 밟는 일종의 심리전을 걸면서 접근한다. 적이 총을 맞으면 뒤로 밀려나면서 심리전이 리셋이 되고, 적을 밀어내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 이 때 공격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방어 자세를 취할 수 있는데 방어 자세를 취했을 경우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동시에 상대와의 거리를 강제로 벌리는 밀치기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적들을 한명 한명 격파해 나가는 것이 바이오하자드 8편의 전투 매커니즘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바이오하자드 8은 기존 시리즈들이 갖추고 있었던 다양한 기믹을 하나의 게임에 녹여낼 수 있었다. 우선 8편에서 4대 가주의 스테이지들은 과거 1편, 2편의 대저택(드미트리쿠스), 7편의 호러 기믹(베네비엔토), 5,6편의 대규모 재앙 액션(모로, 하이젠베르크) 같은 기믹들을 8편의 형태로 재해석해서 옮긴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일 건데,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은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에서 보여주었던 미스터 X의 추적 기믹과 저택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거의 바이오하자드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8편은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바이오하자드의 가장 좋았던 부분들을 따와서 8편의 포멧으로 다양하게 즐기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도 생겨난다:각각 저택들의 가장 재밌는 부분이나 가장 좋았던 부분만 다루고 있는데, 그 부분이 감질나게 분량이 조절되어 있고, 통일되지 않아 하나의 게임이라기 보다는 모자이크화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자이크화 되어서 완벽하게 따로 노는 몇몇 작품들과 다르게 바이오하자드 8편은 그래도 8편이라는 틀 안에 모든 테마들을 담아두고 있기 때문에 게임으로써는 완결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바이오하자드 8편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집대성한 작품인 동시에 7편의 포멧으로 할 수 있는 최대를 보여준 작품이다. 물론 각각 개별 테마가 너무 감질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 하나 잡고 보았을 때 완성도가 있어서 감질난다고 생각한다면 게임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7편과 8편, 그리고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정점에 오른 캡콤의 개발력을 감안한다면, 바이오하자드 9편도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