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 게임에 턴이 있다는 발상 자체는 처음 듣는 사람들이면 생소하겠지만, 액션 게임들을 오래해본 사람들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는 묘한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액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실시간으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행동의 단위가 분절되어 있는 턴제 게임과는 완전히 다르며, 즐기는 계층도 소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게임의 단위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분절하여 본다면 원자 단위에서 동일한 부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턴제 게임에서는 턴이라고 하는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단위를 이용하여 게임과 상호작용을 하여 액션 게임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보통 '행동'(공격이든 움직임이든 뭐든)을 함으로써 상호작용을 한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정해놓은 기회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는 턴제 게임과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플레이어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소비한다. 모든 행동들은 프레임 단위로 분절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행동을 했을 때 행동에 대한 애니메이션 프레임을 모두 완료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어는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즉 어떻게 본다면 플레이어는 유연한 단위인 시간이라는 범주에서 행동이 제약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간의 개념도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와 대상은 공간을 점유한다. 3차원의 게임 기준에서 본다면 공격 판정은 공간 내에서 특정 시간 동안만 유효한데, 이 판정이 상대에게 닿는가가 공격이 실제 유효한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공간 내에서 얼마나 상대와 근접할 것인지, 멀리있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도 시간보다는 좀 간접적이지만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액션 게임 내에서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적에게 접근하거나 거리를 벌리거나 하는 등의 기술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공간 역시 액션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유연한 자원 내에서 본다면 액션 게임에는 독특한 턴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공격 행동을 보자. 모든 공격 행동들의 프레임은 버튼을 눌렀을 때 준비 자세를 취하는 프레임, 그리고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마지막으로 공격을 마무리짓고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 프레임 내에서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것은 2번째 단계로 이 프레임을 공간 내에서 적에게 맞춰서 피해를 주는 것이 액션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액션 게임의 턴이 있다는 개념은 이 시공간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 명확해진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들이 시간이라는 시간표와 공간이라는 좌표평면 상에서 일종의 '비용'으로 작동한다. 한번 행동을 하게 되면 그만큼 시간을 소비하고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동시에 공격을 행할 시 생기는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공격을 헛쳤을 경우의 리스크는 매우 큰데, 게임 내에서 공격은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이후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무방비로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깊게 파고든다면 뒤의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을 취소하고 다음 액션으로 이어가는 캔슬 개념이 존재하거나, 적이 가드하고 있을 때 공격을 맞추면 일종의 징벌적 개념으로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더 길어지는 개념이 존재하는 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 헌터는 어떨까? 몬스터 헌터는 어떻게 본다면 액션 게임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액션 게임 장르에서 별의별 변칙적인 게임들이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몬스터 헌터는 근 25년의 역사 속에서 기본적인 골격은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 헌터의 기본 골격은 위에서 이야기한 시공간의 자원을 활용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액션 게임들과 비교해본다면 대단히 명확한데, 하나의 적을 두명이서 팬다는 아스트랄 체인 같은 게임이나 회피의 무적시간을 적의 공격과 겹칠 시 시간을 느리게 하여 프리딜 타임을 주는 베요네타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최근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정직한 시공간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치트키' 무기들을 주는 '하이퍼한 개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핵심이고, 몬스터 헌터는 플레이어에게 시공간 자원을 넘어서는 강력한 무기를 주지 않고 정직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헌터와 몬스터가 서로 턴을 주고 받는다는 게임의 흐름 상에서는 턴제 게임과 비교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몬스터 헌터다.
물론 액션 RPG로써 고전적인 게임 감성을 지니고 있는 소울류 게임이 득세하면서 역으로 큰 변화가 없는 몬스터 헌터 게임이 소울류와 비교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재밌는 점은 몬스터 헌터 게임들이 긴 역사속에서 요즘 액션 게임들과 다른 나름의 하이퍼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몬스터 헌터와 소울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공격에 스테미너가 소비되지 않는다(=공격이 또다른 자원을 소비하지 않는다)인데, 이 때문에 공격과 방어, 생존을 위해서 스테미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느린 페이스로 게임을 이끌어나가야하는 소울류와 달리 몬스터 헌터는 공격에 시공간 외의 자원을 소모하는게 거의 없기 때문에(특정 무기의 특정 기믹들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몬스터 헌터는 게임 내의 독특한 자원들을 추가하여서 턴을 주고 받는 페이스를 올리는 방법을 취한다. 몬헌에서 처음 이것이 등장한 것이 바로 필살기가 등장한 몬헌 크로스와 더블 크로스였다. 몬헌 트라이와 몬헌 4에서 몬헌 더블 크로스로 넘어갔을 때 이야기가 나온 몬헌다움이라는 개념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부분이 바로 이 필살기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과연 몬헌에 필살기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 몬헌다움에서 어긋나지 않을까가 핵심이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건랜스의 용격포나 대검의 모아치기 같은 일격필살 같은 기믹은 이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기믹의 과감한 변화라는 개념에서 연결지어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크로스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이후 몬헌들이 좀 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몬헌 라이즈는 월드와 다른 더블 크로스의 직계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필살기 개념들을 밧줄벌레라는 자원과 밧줄벌레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하였다. 재밌는 점은 낙법과 같은 개념들이 밧줄벌레와 함께 통합되었다는 점이고, 밧줄벌레가 필살기인 동시에 생존기(낙법)로 사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공격을 맞으면 맞을수록 생존기에 밧줄벌레를 써서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반면, 플레이어가 밧줄벌레를 써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하게 된다면 클리어 시간을 단축시키는 높은 리턴을 가진 부분이 된다는 점은 밧줄벌레라는 자원은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이후 나온 와일즈는 몬헌 라이즈의 밧줄벌레 같은 자원들은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라이즈 이전의 월드와 유사한 부분들을 많이 띄게 된 작품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몬헌 월드 아이스본에 있었던 상처 시스템을 좀 더 범용적인(과거에는 클러치 클로라는 기믹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와일즈에서는 일반 공격으로 생성할 수 있게 만든) 개념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라이즈나 이전 몬헌에서 만들어진 기믹들(몬스터 특정 위치에 마크가 찍히고 그 마크를 공격함으로써 이득을 본다)은 여전히 상처 시스템에 적용되는 부분이고, 밧줄벌레와 같은 자원은 없지만 몬스터의 턴을 무시하고 내 턴으로 가져오는 상쇄나 카운터 기능들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는 최근 몬헌 트렌드를 들고 왔다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발라트로 (0) | 2025.02.28 |
---|---|
[칼럼]용과 같이 8에 대하여 (2) | 2025.01.31 |
[리뷰]인디아나 존스 : 그레이트 서클 (0) | 2025.01.15 |
[리뷰]헬블레이드 2 (0) | 2024.12.09 |
[칼럼]미니어처 게임과 보드게임의 차이에 대한 소고 (1) | 2024.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