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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존재합니다.


1.


2001년 코드네임 47을 시작으로, 히트맨 시리즈는 게임 역사에 있어서 독특한 족적을 남겼다. 씨프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잠입 액션 혹은 암살 게임들이 있었지만 히트맨 시리즈는 변장을 이용한 잠입과 암살이라는 기믹을 통해서 다른 시리즈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자기만의 개성을 구축하였다. 히트맨 시리즈의 본질은, 변장이라는 요소를 통해 타겟에게 접근해서 타겟의 움직임을 관찰 한 뒤, 타겟을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작사인 IO마저 이 창의력 경쟁에 뛰어들어서,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상상도 못한 창의적인 방법을 미션 곳곳에 심어놓기 시작했고 4편인 블러드 머니에서는 사고사 라는 개념을 추가하였다.


하지만 2006년 블러드 머니 이후로, 히트맨 시리즈의 후속작 소식은 없었다. 물론 중간에 IO는 케인 앤 린치 시리즈를 내면서 거하게 프랜차이즈와 제작비를 말아먹어버리는 대사고를 터뜨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트맨 신작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2011년 히트맨 시리즈 10주년을 맞이하여 공개된 히트맨:앱솔루션이 등장한다.



2.


히트맨 시리즈가 만들어내는 스테이지 구조는 여타 게임들과 다르다. 놀 거리는 가득 넣어두는 오픈 월드 게임이나, 콜옵식의 일직선 구조와 다르게, 히트맨 시리즈의 스테이지 구조는 전통적으로 '연극 무대'를 간략하게 다듬고 거기에 게이머가 개입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게임 내의 NPC들은 각기 고유의 대본(스크립트)과 동선을 갖는다. 물론 잠입 액션 게임들의 대부분이 적의 순찰 패턴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히트맨의 NPC들 역시 스크립트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게임들의 NPC들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히트맨의 가장 큰 특징은 이 NPC들의 동선과 패턴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이동 패턴 뿐만 아니라)가 게임 플래이의 핵심이라는 점, 그리고 NPC들 각자에게 조그마한 이야기를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다른 게임들과 차별된다. 게임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NPC의 삶에 끼어든다'라는 표현 그대로이다. 


이런 히트맨 시리즈의 특징상, 변장이라는 개념을 이용한 '사회적 잠입'은 시리즈의 정체성, 그 자체이며 히트맨:앱솔루션도 이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앱솔루션은 여기에 인스팅트 게이지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전작들과 엄청난 차이점을 만들어낸다. 이제 같은 소속(경비원, 법원 서기, 깡패, 경호원 등등...)의 제복을 입고 있을 경우, 상대방의 의심 게이지가 올라가게 되며, 인스팅트 게이지를 소모해서 이 의심 게이지를 지우지 않으면 적에게 곧바로 발각당하게 된다. 물론 전작에서도 너무 NPC와 근접하게 되는 경우, 적들이 47을 눈치 챌 수 있었지만 시야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의심하지는 않았었다. 이제 게이머는 제복을 구하는 과정 뿐만 아니라 그 제복을 이용해서 어떤 루트로 효율적으로 인스팅트 게이지를 소모하며 타겟에게 접근, 암살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의심과 인스팅트 게이지 요소(인스팅트 게이지를 어떻게 수급하고, 얼마만큼 소모해서 적들을 지나칠 것인가? 등등)를 도입해서 게임을 재밌게 만들려는 시도였으나, 그 단점도 명백한 시스템이다. 사실, 후술할 스테이지 구성의 문제에서도 다루겠지만, 게임 반수의 스테이지에는 '하나의 NPC 부류'만이 존재하며 자신들 이외의 복장이나 계층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공격한다. 문제는 이들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인스팅트 게이지 수급-소모 계산이 자칫 삐끗해서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클리어가 불가능하지는 않아서 기존의 전통적인 엄폐-잠입의 플래이 스타일 대로 진행을 하면 무난하게 돌파가 가능하다.(혹은 그냥 쏴 죽여버리거나....) 이럴 경우, 변장이 의미 없지 않느냐 라는 불만이 제기 될 수 있으나, 실제 잠입을 할 때 변장을 하고 엄폐 잠입을 할 경우, 의심 게이지가 올라가는 속도가 줄어들기에 변장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NPC 종류가 혼재되어 있는 몇몇 스테이지의 경우, 이 인스팅트 게이지를 이용한 잠입이 벨런스가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데  실제 두가지 부류가 혼재되어 있는 경우, 서로 다른 부류의 변장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예를 들어 경비-경비 변장은 의심해도, 경비-요리사 변장은 의심하지 않는다) 할 만하다. 하지만 스테이지 구조상 '암살'이 아닌 '잠입'의 경우, 한 종류의 NPC로 도배를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스테이지의 경우, '고유의 변장'이 있어서 모든 장소에 의심없이 드나드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제작자들은 그런 변장이 많이 있으면 재미가 없으리라 생각했는지, 그런 변장은 미션 내내 찾기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렵다.



3.


앱솔루션은 시리즈 전통의 게임 시스템 변화와 함께, 게임 플래이 스타일에 엄청난 변화점을 부여한다. 기존의 히트맨 시리즈들은 게이머에게 47의 장비를 뭘 들고 갈 것인지, 이를 어떻게 반입할 것인가, 혹은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게이머를 시작부터 고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게임 플래이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게 바로 '스나이퍼 라이플 가방'이라는 기믹이었다. 47은 다른 여타 게임의 주인공과 다르게 호주머니에서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지 못하는데 이를 위해서 스나이퍼 라이플을 분해해서 넣어둔 가방을 47이 처음에 들고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보안 검색대들을 제치고 어떻게 저격 포인트까지 가서 스나이퍼 라이플을 조립한 이후에 타겟을 처리하고, 탈출하는가? 이것이 스나이퍼 라이플 가방이 갖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앱솔루션에서는 아쉽게도(?) 여타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도라에몽 주머니를 차용하고, '에이전시를 배신한 47'이라는 설정을 집어넣음으로서 장비 선택이 부자유스러워지는 기믹을 추가했다. 덕분에 47은 모든 장비와 변장을 현지 조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전반적으로 앱솔루션은 주변에 떨어져있는 일상의 도구들을 닥치는대로 주워서(벽돌, 병, 다리미, 훌라걸 조각상, 영수증 꽂이대 등등) 주의를 돌리는 등의 즉석에서 머리를 굴려서 넘어가는 임기응변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 여기에 인스팅트 라는 요소를 도입해서 한 눈에 모든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X레이 시야를 도입함으로서 플래이어게 직관적으로 어디에 도달하면 무엇이 있는지를(사고사 나 특이 포인트들) 표시한다. 전작들에 비해서 너무 직관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이건 또 이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기존의 히트맨 시리즈들이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머리굴리기의 연속이었다면, 앱솔루션은 끝없는 잔머리와 시선 돌리기의 연속이며 X레이 시야로 도달해야할 곳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긴장감 넘치며 설령 그곳에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타겟의 움직임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관찰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47이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절한 벨런스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앱솔루션은 전반적으로 게임 컨셉의 변화와 그에 맞는 시스템적인 벨런스 조절을 거친 느낌이 있으나, 게임의 완성도를 갉아먹는 문제는 게임의 시스템이나 컨셉에서 오는게 아닌 '스테이지의 구성'에서 비롯된다. 일단 전작의 거대한 하나의 맵과 스테이지와 다르게, 본작은 타겟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수많은 작은 스테이지를 거치는 구조를 보여준다. 즉, '잠입'과 '암살'이 분절된 형태로 스테이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잠입이나 암살이나 하나, 하나의 스테이지들의 완성도는 괜찮다고 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암살 파트에 비해 잠입 파트는 상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적고 변장+잠입이 기묘한 배율로 배합되어있다. 재미 없다고는 말은 못하지만, 히트맨이라는 게임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몇몇 암살 파트의 미션의 경우, 잘짜여진 스테이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잠입 파트와 별반 다를바 없이 목표한 지점까지로 '도달'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스테이지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터미너스 호텔의 경우, 목표지점까지 도달하면 플래이어가 암살을 하는 것이 아닌 스토리상의 강제 컷씬 연결로 이어져서 스토리에 따라서 암살이 실패하고 성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문제는 게임 내에 이러한 스테이지가 몇개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인 '다른건 다 좋은데, 왜 내가 암살하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가 암살함???' 여기서 비롯된다.


즉, 게임은 1/3의 잠입과 1/3의 암살, 그리고 1/3의 뻘짓(....)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제작사들이 게임에 있어서 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 이런 기묘한 구조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5.


스토리는...그냥 재앙이다. 47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 쓰여진듯한 아저씨 파쿠리 시나리오는 각종 병신력 쩌는 악역 케릭터들로 넘처나며, 움직이는 살인 병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47은 시나리오상 허무하게 털리는 등 안습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문제는 47의 새로운 인간적인 끈질김과 악에 받친 모습보다는 47 특유의 여유로운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케릭터는 밋밋하고 스토리도 밋밋해지고, 병신같은 악역 때문에 스토리는 개그로 흘러가버린다. 하지만 더욱 열받는 것은 스토리 상 강제로 암살 실패/성공이 결정되고, 게임 플래이의 1/3을 이러한 병신력 쩌는 이야기를 감상하거나 그로 인해 강제 진행된다는 점은 앱솔루션에 있어서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다.




6.


이런저런 아쉬운 부분들을 제쳐두더라도, 앱솔루션의 컨트랙트 모드는 이 모든 단점을 죄다 날려버리는 신개념의 멀티플래이라고 할 수 있다. 컨트랙트 모드는 미션에서 나온 스테이지에 스크립트와 NPC들이 고정으로 나오고, 그 속에서 플래이어는 계약의 내용대로(어떤 변장으로, 어떤 무기를 사용해서, 어떻게 암살한 뒤에, 지정된 장소로 탈출하라) 암살을 수행한다. 언뜻 보기에는 기존의 컨텐츠의 우려먹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암살의 초점이 기존의 타겟이 아닌 그 속에서 움직이는 조연들에게로 옮겨졌을 때, 게임의 진행은 180도 달라진다. 여기에 기존 히트맨 시리즈의 장비 선택이 제한적으로나마(무기+변장 선택) 가능해짐으로써,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의 폭도 넓어진다.


또한 '이게 어떻게 가능함?'이라고 경악할 수 밖에 없는 창의력 넘치는 컨트랙트들(조건과 스크립트를 따져보았을 때, 저것이 가능한가? 싶은)도 많으며, 거의 무한에 가까운 컨트랙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본작의 이러저러한 단점들을 상쇄하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7.


히트맨 앱솔루션의 그래픽 퀄리티는 현세대 콘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차이나타운 레벨의 인파를 프레임 드롭 없이 고정 30프레임으로 훌륭하게 구현한 점, 도시의 무미건조한 네온 사인의 광원 등을 구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앱솔루션의 그래픽 발전은 훌륭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즉석에서 주워드는 무기를 사용하는 일이 많은 덕분에 근접전이나 모션 자체가 전작들에 비해서 훨씬 부드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광원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한 나머지 변장을 한 47의 대머리가 4방향으로 빛을 발하는 모습은 어이없다 못해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다. 총기 발사음이나 타격음도 대단히 좋아서, 총을 쏘는 것이 상당히 즐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게임 플래이 자체는 잠입 위주이기에 총을 쓸 일이 없다는게 슬플 뿐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게임의 그래픽 완성도에 비해서 게임 자체의 버그는 많은 편이다. 특히 세이브 파일의 경우 상당히 심각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적인 결함과 버그가 많다. 현재 본인도 80% 정도 클리어한 게임 세이브 파일이 날려버려서 다시 처음부터 다시 했었고, 체크포인트 시스템의 경우 어떤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할 수 있다. 체크포인트에 저장했을 때, 체크포인트를 불러오면 47의 변장과 장비만 그대로이고 암살 여부만 제외한 모든 스테이지상의 적들 상태 등등이 죄다 리셋 되버린다. 세이브-로드 방식이 이상하다 못해 기괴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8.


히트맨:앱솔루션은 6년 동안 제작진이 생각한 시리즈의 방향성과 고민, 그리고 기술력이 집약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히트맨은 엄청나게 많은 결점을 보유하고 있다. 비슷하게도 '게임 플래이가 완벽하지만, 시나리오 등등에서 게임을 말아먹은' 케이스인 디스아너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결점이라 한숨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앱솔루션은 히트맨 시리즈 부활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오는 시리즈에서 이 작품을 베이스로 좀더 가다듬기를 한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크라이텍의 성공적인(?) 데뷔작이었던 파 크라이가 UBI 개발 및 퍼블리싱으로 넘어간 이후로 시리즈의 미래는 불투명해졌습니다. 사실 파 크라이 2는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형태이었고, 3편은 크라이텍의 손을 떠나 UBI의 개발진에게로 넘어갔으며 이들은 검증받지 못한 상황이었죠. 사실, 파 크라이 3는 게임 발매 전까지는 다른 기대작들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하게 넘어가는 분위기가 강했고 마케팅도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발매 이후 게임에 대한 웹진들의 호평들과 게이머들의 호평이 이어졌죠. 저 역시 유저들의 호평을 보고 산 쪽이었으니까요.


파 크라이 3는 기본적으로 '오픈월드' FPS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오픈월드 게임들이 있었지만, 오픈월드 FPS는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파크라이 3의 기본적인 뼈대는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과 비슷합니다. '섬'이라는 공간을 주고, 여기 저기에 사이드 퀘스트와 수집 요소, 레이싱, 메인 미션 등등을 배치합니다. 사실, 뼈대 자체만 놓고 본다면 파 크라이 3는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에서 FPS라는 요소만 더한 조금 특이한 케이스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 크라이 3가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과 차별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바로 게임의 주요 공간인 '정글'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이 대부분이 강력한 주인공과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막강한 화력이나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혹은 GTA 같이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집어넣거나), 파 크라이 3의 주인공 제이슨 브로디는 상당히 '약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능력을 다 개방한 후반부에는 그 누구도 주인공 제이슨 브로디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 크라이 3의 모호한 체력회복 시스템(과거 FPS 식의 체력 게이지와 구급약을 이용한 회복, 그리고 제한적인 콜옵식의 자동 회복), 그리고 엄청난 화력과 똑똑한 인공지능을 자랑하는 적들 때문에 파 크라이 3는 콜옵이나 여타 다른 FPS 같은 람보식 무쌍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 크라이 3는 신중한 접근을 게이머에게 요구합니다. 침투해야 하는 지역이 있으면, 높은 위치를 잡은 뒤 카메라로 적을 마킹해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들은 강하고, 숫자도 많으며, 아웃포스트 점령전 이나 몇몇 미션의 경우 적들에게 발각될 경우 귀찮은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임 자체가 하드코어한 수준으로 어렵지는 않아요. 파 크라이 3는 다른 게임들 같이 '잠입'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만, 잠입의 컨셉이 여타 다른 게임들과 다릅니다. 덤불이나 자신의 키 높이의 식물 근처에 있으면 바로 적들 바로 코앞이 아닌 이상,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죠. 사실 어찌보면 '사기에 가까운' 잠입요소라고도 볼 수 있지만, 주인공이 정글 먹이사슬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덤불 속의 숨어있는 괴물'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러한 잠입요소는 컨셉과 게임 플래이를 적절히 조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파 크라이 3는 람보식으로 쓸어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놈 한놈 농락하는 게임 진행의 핵심입니다. 실제 '암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테이크다운의 성능이 거의 괴랄할 수준으로 강하고(난간 및 공중 테이크다운, 연속 테이크다운, 테이크다운 후 수류탄 까기, 테이크다운 후 나이프 투척 암살, 테이크다운 후 권총 헤드샷 싹슬이 등등...), 손맛이 짜릿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게임 내내 적을 모두 마킹한 뒤에 덤불속에 숨어서 저놈들 뒤를 어떻게 잡을까 이것만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파 크라이 3는 '정글'이란 환경을 단순한 텍스쳐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생태계로 만듭니다. 물론 복잡한 형태가 아닌 '먹히는 자-먹는 자'라는 아주 단순한 구도지만요. 게임 초반부 사냥이라는 컨텐츠를 반 강제적(?)으로 게이머에게 강요함으로서, 게임의 흐름과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게이머가 체득하게 만듭니다. 탄약 보유량+무기 슬롯+소지금을 늘리기 위해서는 먼저 사냥을 해서 소재를 모으고 슬롯을 늘려야 합니다. 하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아직 어크 3를 안 해봤으니)처럼 말을 이용해서 사냥감을 손쉽게 추적할수도 없고, 정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주인공보다 달리기가 빠르며 일정 거리 내로 접근을 하거나 큰 소리를 내면(총을 쏜다던가...) 재빠르게 도망치기 때문에 사냥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게이머는 몸을 낮추고 사냥감의 최대한 근처까지 살금살금 기어간 다음에 무성 무기로 최대한 빠르게 사냥감을 죽여야합니다. 이러한 사냥의 과정이 상당히 짜릿하다고 할 수 있으며, 딱 '이 짓을 내가 계속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기 전에 사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들을 다 만들 수 있다는 것은 UBI가 컨텐츠 분량 조절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느낌입니다.


파 크라이 3의 스토리는 여타 게임들의 그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양민 주인공이 지상 낙원처럼 보이는 지옥에 던져진 이후, 극한의 레벨업을 거쳐서 섬을 통째로 뒤엎어버린다는 이야기는 사실 게임 스토리 치고는 이제 진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이 아닌 섬이라는 공간과 그 내부의 케릭터 변화입니다. 섬은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지옥입니다. 해적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해적에, 노예무역까지 대놓고 일어나고 있죠. 여기에 원시의 문명을 유지하는 원주민 저항세력까지 합해지면서 섬은 준 내전 상태로 치닫습니다. 


이러한 원주민-해적 사이의 갈등 구조를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들입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놈이라 할 수 있는 바스, 약쟁이 의사, 이국적이고 야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트라, 시트라에게 의존하는 데니스, 게이 살인 청부업자(겸 포르노 제작자), 진짜 CIA 요원인지 의심되는 인간 등등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섬은 점점 개판이 됩니다. 주인공인 제이슨 브로디 역시 시간이 가면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며,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광란에 빠지죠. 파 크라이 3의 환각 묘사는 약을 빨고 난 뒤의 하이한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있으며, 환각 묘사를 통해서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기묘한 공간으로서의 섬(환각 속에서 미래를 본다던가, 앞뒤의 개연성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등등)을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몇몇 부분에서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바스와 환각속에서 싸우고 일어나봤더니 바스가 죽음...적어도 전후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이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시나리오 부분은 다른 블록버스터 게임들에 비해서는 출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콘솔 기준으로, 파 크라이 3의 그래픽은 텍스처 디테일에 있어서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심지어 프레임이 15~30프레임의 가변 프레임이라 뚝뚝 끊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프레임 저하로 인해 게임 플래이가 불가능하다 수준으로 프레임이 떨어지지는 않으며 텍스처의 디테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파 크라이 3가 만들어내는 섬의 분위기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PC 버전의 경우, 극한의 그래픽을 감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유플레이...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죠.


파 크라이 3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게임 내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게임 외적인 요소들입니다. 유플레이와 UBI의 병신 같은 서버 관리가 게임을 망치고 있습니다. 멀티 레벨 20을 찍을 동안 한번도 핑을 빨핑 이상 찍어본적이 없으며, 아무리 유럽/아시아 쪽만 발매했다고는 하지만 멀티에서 사람 구하기가 묘하게 빡셉니다. 멀티는 재밌어요. 콜옵 베이스에 자기 만의 이런저런 것들(단체 버프인 배틀 크라이 등등...) 섞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멀티를 하기 위해서 게임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에, 들어가서도 핑 때문에 에임 제대로 못하게 허공에 총질하기 일수인데.


파 크라이 3는 2012년이 가기 전에 나온 FPS의 대작입니다. 물론,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파 크라이 3는 혁신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겨냥된 컨셉과 컨셉에 맞게 짜여진 게임 플래이, 그리고 이와 맞물려 들어가는 게임 시나리오는 게임을 놀라운 경지까지 이끌어냅니다. 물론 멀티플래이나 코옵 서버를 정하는데 있어서 유플레이라는 사상최악의 단점이 맞물려 들어가서 게임을 망친다는 느낌도 있지만, 싱글 자체만 따지면 훌륭한 게임입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 이후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판매량 신기록들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스토리와 연출, 게임성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발심리도 점차 고조되었고, 그 반발심리가 최고조에 이르러 터졌던 것이 바로 작년의 모던 3 vs 배필 3 구도였다. 여기에 엑티비전-인피니티 워드 사이의 불화와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 인력이 빠져나가는 불상사가 연달아 겹치면서 수많은 콜옵 빠들은 '내 콜옵은 그렇지 않아!'라고 외쳤고, 드디어 콜옵의 독재가 끝나고 봄이 찾아오나 싶었다.


봄이 찾아오기는 개뿔.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자. 배틀필드 3는 모던 3 대신에 콜옵 모던 3의 싱글 예고편을 고대로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며, 여기에 새로운 미래를 열거 처럼 광고했던 프로스트바이트 2 엔진은 콘솔에서는 정신나간 개적화를, 피씨에서는 정신나간 오류 덩어리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만장 이상 정도 팔았으니까, 뭐...아마 수익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콜옵:모던 3는 그 낮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할만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면서 무난하게 3000만장을 향해 나아갔다. 모던 3를 바를것 처럼 과대광고한 배틀 3와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한 게임성을 보여준 모던 3, 결국 승자는 모던 3였다.


그리고 다시 해가 밝았다. 액티비전(이라 쓰고, 콜옵 공장이라 읽는다)은 어김없이 콜 오브 듀티의 새로운 신작을 발표했다. 트래이아크의 콜옵 신작이자 블랙옵스의 후속작인 블랙옵스 2는 여태까지의 콜옵 시리즈와 다르게 '근미래전'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왔다. 블랙 옵스가 인피니티 워드의 모던 시리즈와 다른 60-70년대의 근현대전(.....)을 표방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트래이아크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게임은 트래이아크가 '콜옵이라는 태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혁신을 한 실로 야심찬 작품이다. 물론 콜옵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참으로 '미묘한' 변화점이지만.


대대로 트래이아크의 콜옵 싱글과 인피니티 워드의 콜옵 싱글은 연출에서 큰 차이가 있다. 혹자는 '인피니티 워드의 콜옵은 하면 내가 전쟁 영웅이 된거 같고, 트래이아크의 콜옵은 하면 내가 사이코패스가 된거 같다.'라고 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피니티 워드의 콜옵의 싱글 연출은 빠르고, 날카로운데다, 기계적이다. No Russian으로 대변되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연출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이를 자극적으로 클로즈업 하는게 아닌, 휙휙 넘기면서 경쾌한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마이클 베이의 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트래이아크의 콜옵은 어둡고 잔인하며 끈적하다. 월드 엣 워의 일본군 참호 속, 블랙옵스의 베트남까지, 트래이아크는 상처를 내고 후벼파서 그 안에 있는 으깨진 뼈마디와 피떡이 된 살점을 여과없이 클로즈업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극사실적인 신체훼손 장면과 빠져나갈 수 없을거 같은 어두운 분위기 등등 트래이아크의 콜옵들은 사람이 파리목숨처럼 넘어지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랙옵스 2 역시 트래이아크 콜옵의 연장선상에 있다, 80년대 앙골라의 정글, 파나마의 마약 카르텔 등등과 2025년의 비오는 미얀마, 홍수로 물이 범람한 파키스탄 등등 트래이아크는 어딘가 습하고 불쾌하며 끈쩍한 분위기의 장소를 선호한다. 연출에 있어서도 트래이아크의 취향은 여전하다 할 수 있다. 상처를 클로즈업하거나 사람이 불에 타죽거나 살인 장면을 과격하게 다루는 등 역시 트래이아크 다운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블랙옵스 2는 전작과 다른 독특한 '규모'와 '연출'을 보여주는데,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연출과 다르게 '미래전에는 이런게 있을거야...!'라는 반쯤은 확신에, 반쯤은 기대로 가득찬 미래형 도구들이 등장한다. 날다람쥐의 그것과 비슷한 윙슈트(실제로 익스트림 스포츠의 일종이기도 하다)나, 등 뒤에 제트 엔진을 달은 제트 슈트, 위장광학 장치, 밀리미터 스캐너, EMP 수류탄, 로봇 드론 군대 등등을 실제로 굴려보는 재미가 많다. 물론 모던 워페어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다양한 무기 연출들이 많았으나, 블랙옵스 2와 같은 유쾌하고 호쾌한 느낌은 거의 없었다. 차라리 현실의 한계에 억메이기 보다는 그냥 막나가자는 식의 블랙옵스 2는 기존의 콜옵 시리즈가 갖지 못한 유쾌함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블랙옵스 2의 스토리는 트래이아크가 야심이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1980년대와 2025년을 오고 가며, 거의 40년에 가까운 간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트래이아크는 이야기를 모던 워페어 시리즈 같은 비약없이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이끌어간다. 주인공 '섹션' 데이빗 메이슨과 '코르티스 디아'의 수장 라울 메넨데즈 사이의 40년 된 악연을 다루면서, 매넨데즈의 미국과 슈퍼 파워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분노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나 블랙옵스에서 같이 딱 더도말고 '머리통에 총알이나 박아 넣어주고 싶은' 악역과 다르게 라울 메넨데즈는 카리스마와 이야기가 있으며, 모든 상황에서 플래이어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자체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본듯한 '시종일관 개털리는 주인공'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굿 엔딩 조건을 정확히 맞추면 메넨데즈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 


굿엔딩 하니까 나온 이야기인데, 그렇다. 이번 콜옵에는 '분기'가 있고, '멀티 엔딩'을 체택하고 있다. 세상에 멀티 엔딩이라니! 내후년에 나올 트래이아크의 콜옵은 탱크도 조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게임 전에 멀티에서 처럼 퍽과 장비들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으며, 미션마다 도전 과제를 달성하면 퍽이 해금되거나 장비가 해금되는 등 게이머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게임 플래이 자체는 정진정명 콜옵의 롤러코스터식 게임 플래이 그 자체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선택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서 블랙옵스 2는 콜옵 싱글 치고는 특이하게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블랙옵스 2는 지난 콜옵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장족의 발전'을 한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멀티는 어떠한가? 콜옵 멀티는 모던 워페어 이후로 기나긴 세월 동안 '캠퍼와의 싸움'이었다. FFA 했는데 6명 모두 길리 수트에 저격총 들고 10분 동안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던 모던 워페어 2나, 캠퍼 한번 잡아보겠다고 맵을 꼬아뒀더니 코너에 툭튀어 나와 조준도 안하고 난사한 SMG에 옆구리 긁혀서 죽기 일쑤였던 모던 워페어 3 등등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이빨이 갈릴 정도로 회자된다. 트래이아크는 그래도 이들 사이에서 벨런스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블랙옵스의 경우 그래도 벨런스가 맞은 편이었으며, 블랙옵스 2는 그보다 더 벨런스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맵 구조의 변화, 총기류의 변화 등은 제쳐두고 주요 시스템의 변화만 언급 하자면, 킬스트릭 시스템을 스코어스트릭 시스템을 바꾼 것과 장비 편집의 변화점이 있다. 먼저 스코어스트릭 시스템은 기존의 킬스트릭의 소환 기준인 사살 대신에 게임 내의 '스코어'로 변화시킨 것. 블랙옵스 때와 다르게 스코어스트릭으로 올린 킬도 스코어로 계산이 되면서 스코어스트릭을 연속소환할 수 있게 되었으나 스코어 자체가 짜게(1킬=100 스코어 라면, 스코어스트릭 킬은 1/4로 차감되서 스코어가 들어옴) 들어오기 때문에 더이상 거침없이 킬을 쌓아서 AC 130 두대 부르기 같은 엽기적인 짓은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게임 모드에 따라서 스코어스트릭이 진짜 시원시원스럽게 나오는 모드들이 있다. 킬 컨펌이나 도미네이션의 경우, 살짝만 물이 오르면 스코어스트릭을 신나게 뽑을 수 있다. 스코어스트릭 체제 덕분에 전작과 다르게 킬스트릭을 뽑아보려고 구석에 처박혀서 캠핑질이나 하는 대신에 적극적으로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모드가 요구하는 목표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스코어스트릭을 부르는데 효과적이기에 적어도 전작과도 같이 도미네이션에서 킬수 올리려고 구석에 쳐박혀서 캠핑이나 하는 족속들을 볼일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나아진 부분이다.


또한 전작의 퍽+무기+전술 장비 시스템을 달리 해서, 몇몇 퍽들의 기능을 무기의 부착 장비로 보내고 와일드 카드라는 개념을 적용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무기/전술 장비/퍽을 더 달 수 있는 대신에 다른 무기/전술 장비/퍽 슬롯을 해제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서 심지어는 칼 하나만 달랑 들고 퍽 6개를 달 수 있는 위엄 가득찬 조합도 가능하다. 아마 장비의 커스터마이즈만 놓고 따졌을 때는 블랙 옵스 2가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블랙옵스 2는 콜옵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고, 스스로도 콜옵에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블랙옵스 2는 모던 워페어의 포멧을 토대로 할 수 있는 실험 중에서는 가장 진보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블랙옵스 2가 콜옵 특유의 문제점들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 시나리오를 두번 해보고 싶은 콜옵'이라는 점은 블랙옵스 2를 구매할만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엑박 진영의 상징이며, 태양이고,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지는 더이상 헤일로에 묶여 있기를 원하지 않았고, 헤일로 리치를 마지막으로 헤일로 시리즈를 정리합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고, 여기에 오로지 헤일로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343 스튜디오를 전격 투입합니다. 하지만 오로지 헤일로를 위해서 만들어진 343 스튜디오는 그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으며(헤일로 리치 멀티 개발, 헤일로:애니버서리 에디션 개발) 수많은 팬들은 걱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일로 4는 바로 343 스튜디오의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이자, 시리즈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분수령이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헤일로 4는 혁신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343 스튜디오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헤일로 4는 지난 헤일로 시리즈의 총집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3부작을 여는 게임으로 큰 스토리라인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스토리라인의 불완전성만을 제외하자면, 저는 헤일로 4는 헤일로:리치의 뒤를 잇는 최고의 헤일로라 평하고 싶습니다. 


헤일로 4는 전작들과 비슷한 구조를 따릅니다. 거대한 스테이지가 있고, 플레이어의 분신인 마스터 치프는 죽어라고 뛰어다니면서 코버넌트/프로메테안 나이트들을 쳐죽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다양한 차량이나 기기를 운전해서 전장의 규모를 체험하는 스테이지도 있구요. 헤일로 4는 헤일로:리치의 골격을 기본적으로 따릅니다. 아머 어빌리티와 약간의 반동, 암살, 그리고 2편, 3편에 존재했던 듀얼 윌딩의 삭제는 헤일로 4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기본 골격은 헤일로:리치임을 보여주죠. 하지만, 헤일로 삼부작에서 보여주었던 헤일로라는 초현실적인 링월드의 규모를 헤일로 4는 선조들의 거대한 다이슨 스피어(속이 텅 비어있는 천문학적 크기의 구조물)인 쉴드 월드의 형태로 훌륭하게 재구성합니다. 


헤일로 4는 전반적으로 '규모'와 '게임성'을 두개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게이머는 시종일관 엄청난 크기의 선조 구조물과 상황을 경험합니다. 실드월드 레퀴엠 내부에 존재하는 다이드엑트의 거대한 감옥 크립텀, 헤일로 3부작에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전함 UNSC 인피니티, 인류판 스케럽이라 할 수 있는 매머드, 스타워즈의 데스스타 전투의 오마주라 할 수 있는 스테이지까지 343 스튜디오는 헤일로에 있어서 연출의 본질이 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4는 콜옵식의 롤러코스터 액션 연출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헤일로 4는 잘 다듬어진 언차티드 시리즈의 액션 연출을 보는 느낌입니다. 일이 일어나면 카메라가 고정되는 것이 아닌, 내가 자연스럽게 그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343 스튜디오는 이런 점에서 번지에게서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게임 플래이에 있어서 헤일로 4는 상당히 안전한 선택만을 합니다. 게임 플래이에 있어서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추가사항은 없죠. 하지만 343 스튜디오는 헤일로의 오랜 숙적인 코버넌트 이외에 프로메테안 나이트라는 선조의 군대를 적으로 추가합니다. 이 프로메테안 나이트라는 존재들은 지난 시리즈에서 나왔던 코버넌트의 군대들보다 더 강합니다. 사이드 스탭을 밟으면서 마스터 치프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는 엘리트에 비하면 이 놈들은 완전한 재앙입니다. 쉴드가 까지면 워프해서 엄폐하고, 근접하면 스캐터 샷+근접공격으로 마스터 치프의 쉴드를 날려버리는 등 다루기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물량에 화력도 만만치 않은 크롤러, 수류탄을 되돌려버리고 나이트를 소생시키는 왓쳐 등등 코버넌트의 조합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안 나이트가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전반적으로 전작들을 총집대성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스토리는 계승자 3부작을 시작하는 의미가 강하며, 343 스튜디오는 계승자 3부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미 구상을 끝내놓은듯 싶습니다. 게임의 초반에서 중반부까지, 치프와 코타나는 전쟁영웅이 아닌 퇴물 취급을 받습니다. 치프는 스파르탄 4로 대체되었으며, 코타나는 AI의 수명이 다되어서 광기 상태에 접어들죠. 하지만, 그러한 그들 앞에 다이드엑트라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지만, 인피니티의 함장인 델 리오는 그것을 직면하지 않고 관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결국, 시리즈 최초로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을 한 치프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죠.


우리는 이전 3부작에서 헤일로와 은하계에 닥친 위협을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3편에서 선조의 유지를 잇는 계승자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했었죠. 헤일로의 소설, 크립텀 연작과 헤일로 4 터미널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선조의 유지, 맨틀을 잇는다는 의미는 은하계의 평화를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다이드엑트는 과거 인류 제국의 만행을 보고 인류라는 종족에 대한 극렬한 반감을 드러내고 그들이 맨틀을 이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인류야 말로 은하계를 위협하는 최대의 문제라 생각하고 이들을 없애려하구요. 343 스튜디오는 계승자 3부작을 통해서 '과연 인류에게 맨틀을 이을 자격이 있는가?'를 보여주려하고, 이를 위해 치프라는 케릭터들 중심에 둡니다. 오프닝에서 '전쟁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존재'로서의 스파르탄 2를 드러내지만, 마스터 치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어떻게 그가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팬들은 마스터 치프가 말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지만, 저는 앞으로 계승자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케릭터인 치프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좀더 그의 케릭터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는 343 스튜디오가 훌륭한 판단을 했습니다.


헤일로 4는 싱글 플레이 보다 멀티와 코옵 쪽에서 놀라울만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기존의 헤일로 시리즈의 멀티플레이가 과거 퀘이크나 언리얼에서 볼 수 있는 구조(기본 무기를 든 상태에서, 맵 전체에 흩어져있는 무기를 주으러 다니는)였다면, 헤일로 4는 콜옵식의 퍽과 로드아웃 시스템을 채택합니다. 즉, 과거 시리즈에서는 DMR이나 배틀라이플을 주워서 싸워야 했었고, 이걸 주으러 다니다가 죽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면 이번 작에서는 기본적인 무기 자체는 들고 시작할 수 있기에 무기를 주으러 다니다 죽는 짜증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죠. 그리고 일정 포인트를 쌓거나 킬수를 쌓을 경우, 콜옵의 킬스트릭 처럼 특수 무기들(니들러, 레일건 등등)이나 강화 버프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콜옵의 킬스트릭 처럼 어떤 무기가 나올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게임 내내 랜덤으로 맵 곳곳에서 특수 무기를 리스폰해주죠. 343 스튜디오는 전작의 굇수들이 난무하는 멀티 체제를 초보도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춥니다. 아, 물론 굇수들은 여전히 게임 내에서 넘쳐나지만요.


스파르탄 옵스는 헤일로 4의 또다른 야심찬 프로젝트 입니다. 헤일로 4의 본편에서 6개월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스파르탄 옵스는 싱글 스토리에 이야기를 더해주는 한편, 미국 드라마처럼 일주일 마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죠. 물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스파르탄 옵스는 계획 자체는 343 스튜디오의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박과 플삼 모두 황혼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래픽적인 측면에서는 헤일로 4는 엑박이 보여줄 수 있는 정점을 보여준듯 합니다. 다양한 기후, 숲과 정글들이 금속성으로 새끈하게 구성되어 있는 선조의 구조물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장면은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일로 4는 343 스튜디오의 신중한 접근에 기초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343 스튜디오는 이번 헤일로 4를 이용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자신만의 헤일로를 만들어내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멀티를 통해서 보여준 헤일로 4의 변화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으니까요. 또한 스토리를 마스터 치프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끌고 간 것도 훌륭했습니다. 이번 세대 최후의 헤일로 넘버링 타이틀이지만, 헤일로 4는 343 스튜디오의 모든 것이 종합된, 새로운 헤일로 시리즈를 여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주의.


엑스컴 시리즈는 하드코어 턴제 시뮬레이션의 최고봉이라 불릴만한 게임이었다. 한턴만 삐끗해도 전멸하기 일쑤인 하드코어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이었다. 한번 죽은 대원은 돌아오지 않고, 게임 자체가 빠듯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특유의 하드코어 성과 중독성은 도스 시절 수많은 게이머들을 매료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3편 아포칼립스 이후로, 엑스컴은 3D 액션 게임으로 나오거나 하는 등의 변절(?)을 거쳤으며 심지어 40-50년대로 돌아간 FPS XCOM까지 만드는 등 한마디로 원작의 본질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껍데기 같은 프렌차이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엑스컴 시리즈는 완전히 끝난 추억속의 게임 시리즈가 되었다.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이 나오기 전까지는.


결론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나름 선방한 작품이기도 하다. 게임은 과거 작품들의 하드코어한 본질을 간략하게 요약을 해서 정리하는데 성공하였고, 체스나 장기 같은 게임을 정교하고 거대하며 복잡한 스케일을 가진 게임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전적으로 '실패한' 작품이다.


게임에 있어서 전투 시스템은 '엄폐'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유닛들은 벽이나 차폐물 근처에 있으면 자동적으로 엄폐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엄폐물의 방향에 따라서 유닛은 방어 보너스를 받게 된다. 플래이어는 이에 기반하여 유닛을 어디에 배치해서 엄폐 보정을 받을 것인지, 어떻게 적들을 우회해서 측면을 공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일단 엄폐를 잘못하거나 위치선정을 안 좋을 경우, 유닛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죽은 유닛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로인해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감과 잘 짜여진 전투 시스템 설계는 게임에 상당한 몰입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좋은 것은 여기까지일 뿐이다.


턴전략이든 실시간 전략이든, 전략 시뮬레이션들은 유닛이나 장비들의 조합, 혹은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마치 문명에서 세계정복, 문화 승리, 외교 승리 등등의 목표를 향해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물론 몇몇 가장 효율적인 방법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뮬레이션 게임들에는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에는 그러한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테크 트리는 일방향 적이며, 병과의 전문화 분야도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장비는 티어에 따라 몇개 되지도 않는다. 즉, 플레이어의 전략은 더 좋은 장비를 개발하고, 이 장비를 착용해서  물론, 과거 시리즈들이 이러한 구성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옛 시리즈들은 거의 2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2편이나 3편이 갖고 있었던 고유의 특징들(2편은 수중전 개념, 3편은 다양한 도시 세력들과의 관계)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의 진행은 대부분 외계인과 싸우고, 잡고, 연구하고, 잡고, 싸우고, 연구하고....의 영원한 반복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유닛만 죽으면 돌아오지 않을 뿐, 이게 파엠보다 나은게 뭐있냐?'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보다도 못하다고 본다. 유닛의 성장은 최소한의 선택지만 주어질 뿐,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본인으로서는 스나이퍼의 대령 계급 능력인 더블탭, 무아지경 정도에서만 차이를 느꼈을 뿐, 능력의 차이가 운용에 있어서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 소소한 차이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결국, 게임의 진행은 획일화 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파엠 시리즈의 최근작 각성의 경우, 케릭터 육성 및 잡체인지를 통한 스킬 공유 등 다양한 요소를 도입하였다. 다른 일본식 턴전략 시뮬레이션이라 할 수 있는 SRPG 장르들은 비록 쇠락하기는 했지만, 육성이나 시스템 적으로 플레이어가 다른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단순하게 파엠이나 다른 게임들과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전투의 깊이에 비해 플레이어가 전략에 손을 댈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과거에 비해서 케주얼 성을 추구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케주얼 성은 둘째치더라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건덕지가 없다. 하지만, 게임은 묘하게 다회차 플레이를 강조하는데....다회차 플레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회의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스토리 자체도 엉망이고, 분기나 선택지 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경우, 성의없음의 문제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결국 외계인들의 리더들인 이터리얼들이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새로운 몸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문제는 이야기 내내 서스펜스도 감동도 없으며 심지어는 뭘 이야기하고 싶은건지 감조차 안온다. 그저 미션을 하고, 하고, 또 하고...또한 게임의 템포가 예전 시리즈와 비교하더라도 너무 빨라졌다는 문제도 있다. 게임에 재미가 들려서 좀 하다 보면 '어..어? 이제 끝?'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전투 자체는 재밌으나, 결국은 그걸로 땡인 게임이다. 스토리, 시스템, 전략 부분에 있어서 게이머가 뭔가 끼어들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1편인 UFO 디펜스의 리메이크 수준에 불과한 게임이다. 옛날의 게임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기대할만 하지만, 문명이나 다른 턴제 전략을 하다가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을 하면 뭔가 한참 모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뿐."


보통 게임 등에서 '프랜차이즈' 혹은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 재산권)등의 의미는 잘 만든 1편의 이미지를 토대로 그것을 반복하여 팔아먹는, 게이머 입장에서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였지만 보수적인 게임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피파나 위닝 같은 스포츠 게임들(한번 시스템이 완성되면 더이상 발전이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없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리즈 게임들은 시리즈 내내 시스템에 이런저런 추가점, 보완점을 가합니다. 그리고 어떤 프랜차이즈들은 전작을 더욱 발전시키고 가다듬어서 말그대로 '전작보다 더 뛰어난 후속작'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메탈기어 시리즈(소소한 게임적인 시스템을 추가하여 게임의 완성도를 더함)와 헤일로 시리즈라 할 수 있죠.


헤일로 시리즈는 '프랜차이즈'는 사실 팔리는 것으로만 따진다면 세계 최고인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PC까지 합쳐서 2000만장을 팔아재끼는 콜옵이라던가, 기네스 기록도 보유중인 GTA, 영국에서는 이혼 사유로도 적용가능한 피파 시리즈까지(.....) 게임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후로는 성공한 IP는 수도없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헤일로'라는 IP가 갖는 특수성은 다른 게임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엑스박스 진영의 하드 견인 타이틀이었으며, 당시는 생소했다 할 수 있는 거대한 스토리 흐름을 지닌 시리즈 물이었으니까요. 물론 요즘도 메이저 제작사에서 큰 스토리라인을 지닌 시리즈 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헤일로 시리즈 만큼이나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게임 완성도를 보여주는 시리즈 물은 극히 찾기 힘듭니다. 또한 엑박만으로 팔림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4가 24시간 만에 헤일로 3의 판매량 1억 달러를 뛰어넘는 2.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점은 헤일로 시리즈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가 높은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헤일로 1편, 컴뱃 이볼브드


사실, 헤일로의 역사는 엑스박스의 역사와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헤일로:컴뱃 이볼브드의 위치를 PS1 당시로 따지자면 FF7에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헤일로를 하기 위해서 엑박을 구매했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으며, 지금도 헤일로를 해보기 위해서 엑박을 구매한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헤일로 애니버서리 에디션 기준으로 본 헤일로 1편은 시리즈의 기틀을 다잡았다고 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 관점에서 보더라도 헤일로 1편은 다른 게임과 다른 상당히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FPS가 상당히 협소한 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베이스로 삼고 있다면, 헤일로에서의 스테이지나 공간의 개념은 대단히 넓은 '스테이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게임 진행에 있어서 탈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해서는 헤일로는 오픈 월드가 아닙니다. 오히려 헤일로의 스테이지 개념은 일직선 진행이며, 게이머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즉, 헤일로는 기존의 FPS 스테이지를 확대하였고, 게이머가 상쾌하게 그 스테이지를 뛰어다니면서 총을 쏠 수 있게 구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번지는 이 스테이지를 단순하게 확장시키지 않았습니다. 헤일로에서의 스테이지나 공간의 개념은 '규모' 측면에서 다른 게임들과의 확고한 차별성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링월드에 드넓은 초원과 숲, 바다, 설원, 크기에서부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선조의 건물들 등등 헤일로 1편은 배경의 스펙트럼을 다양화 해서 사람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규모 측면에서 본다면, 헤일로는 당시 나온 게임들 뿐만 아니라 지금 게임들과 비교해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직과 직선으로 우뚝 선 인공의 선조 구조물이 주변 자연경관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며,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이를 인식할 수 있는 구조는 번지의 스테이지 구성력이 거의 장인 수준으로 까지 가다듬은게 아닌가 싶은 정도입니다. 


하지만, 번지는 심지어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이 스테이지를 더 세심하게 다듬습니다. 게임은 넓은 스테이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게임 하는 동안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 거대한 스테이지 내에서도 조밀한 구조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버넌트들이 언덕 위에 포탑과 바리케이드를 치고 진을 치고 있고, 이러한 진 안에서도 플레이어가 엄폐하고 무기를 보충할 수 있게 구성되어있습니다. 게임을 잘 보면, 게이머가 어디서 탄약을 보충해야하는지, 어디서 무엇을 타고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스테이지가 무슨 초등학교 운동장 3~4개를 합쳐놓은거 마냥 넓은 게임에서 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구성을 했다는 점은 번지의 장인정신이 돋보입니다.


또한 헤일로의 적들 디자인이나 AI는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사이드스텝을 밟으면서 플레이어의 공격을 피하고, 쉴드가 터졌을 때 분노하며 호전성을 보이는 엘리트나 주변의 동료가 죽으면 도망가는 그런트, 방패나 스나이퍼 라이플을 들고 플레이어를 끝없이 성가시게 만드는 자칼 등등 각각 개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뭉쳐있을 때는 플레이어를 효율적으로 압박하는 훌륭한 적 디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번지는 여기에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무기 체계를 인간-코버넌트로 이원화 하여서 게이머가 다양한 무기를 선택해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듭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놀란 것이, 인간-코버넌트의 무기 체계가 서로 완벽하게 다른데다가 각각의 무기가 각자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절대 똑같은 느낌으로 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헤일로 1편의 스토리는 FPS의 왕도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 내내 문제가 발생하고, 마스터 치프가 나서죠. 1편이라서 그런지, 게임은 자세한 설정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거대한 컨셉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는데 헤일로의 무식한 사정거리나 선조의 말도 안되는 과학기술력, 끝없이 몰려오는 플러드, 코버넌트의 위협 등등을 게이머가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고, 이는 실제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보여주는 헤일로, 선조의 기술, 플러드, 코버넌트의 규모는 게이머에게 스토리텔링의 당위성을 설파합니다. 실제 게임은 누군가 이야기하기 보다는 치프가 시도때도 없이 적들과 치고 받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헤일로 1편의 완성도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기도 한데, 실내에서의 전투의 경우 텍스처와 구조 자체가 비슷비슷한 나머지 길을 잃고 해매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닥에 표시를 했지만, 잠시만 정신줄 놓고 있으면 해매기 딱 쉬운 구조입니다. 






헤일로 2


헤일로 2는 실제 구하기도 힘들고, 1편 처럼 리마스터링 버전도 안나왔기 때문에 뭐라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사실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은 뭐랄까, 사기에 가까운 짓거리죠. 하지만, 이와 별개로 헤일로 2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구 엑박 시절의 마지막을 빛낸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죠. 그리고 인간쪽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코버넌트 쪽의 이야기도 동시에 다루면서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고, 3편 및 결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편에 비해서 달라진 점은 듀얼 윌딩, 즉 아킴보의 추가입니다. 몇몇 한손으로 들 수 있는 총기들에 대해서 치프가 양손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총을 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전작의 체력+에너지 쉴드의 체력 개념이 아닌 에너지 실드+콜옵식 체력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전작에서처럼 실드+딸피인 상태에서 허무하게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죠. 하지만 헤일로 2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코버넌트의 입장, 특히 게이머를 진저리치게 만든 엘리트의 입장에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헤일로 2는 코버넌트라는 집단을 입체적으로 다룹니다. 게임은 가슴에 낙인이 찍히는 아비터와 가슴에 훈장을 다는 치프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인상적인 인트로와 함께 시작합니다. 아비터의 입장에서 선조들의 유산이자 위대한 고행으로 나아가기 위한 헤일로가 사실은 대량살상 병기였음을 알게 되는 이 과정은 시리즈의 이야기를 복잡하게 구성하는데 성공합니다. 단순히 쳐죽여야할 적에서 치프와 함께 협력해서 우주를 구하는 새로운 동지이자 주인공의 등장을 헤일로 2는 설득력있게 다룹니다. 하지만, 전작의 스토리텔링의 미덕이라 할 수 있었던 '체험하면서 느끼는 스토리'라는 컨셉은 이러한 듀얼 주인공 체제 때문에 흔들렸다고도 할 수 있죠. 실제로 몇몇 플레이어들은 왔다갔다 해서 오히려 스토리 이입에 방해가 되었다고도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소한 단점들을 제외하면 헤일로 2는 1편을 잇는 훌륭한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전반적으로 스토리와 이런저런 평가들, 플래이 영상을 기반으로 봤을 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헤일로 3


헤일로 3는 헤일로 3부작의 완성이며 결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몇가지 유념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프렌차이즈 게임들은 후속작이나 외전, 파생작들을 내기 위해서 어딘가 느슨한 매듭을 지어놓는다는 점을 말이죠. 사실 치프가 플러드와 코버넌트로부터 우주와 인류를 구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고 시리즈를 끝내기에는 런칭 데이 판매량이 1억불을 넘는 시리즈가 되어버렸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번지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3부작에 대한 나름대로의 깔끔한 엔딩을 내면서도 무언가 뒤에 이어갈만한 건덕지를 남겨야하는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헤일로 3는 결론 자체가 어설프다기 보다는 느슨한 형태로 마무리됩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에는 살짝 부족하죠.


헤일로 3는 2편의 아킴보, 콜옵식 체력 회복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여기에 '도구' 개념을 추가합니다. 거품 방어막, 휴대용 엄폐물, 중력 리프트 등등 직접적으로 전투에 쓰이지는 않지만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데 쓸 수 있는 물건들입니다. 몇몇 도구들은 상당히 쓸만하지만, 몇몇은 좀 많이 잉여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 싱글 내에서의 도구는 유용하게 쓴다기 보다는 '내가 필요할 때 나오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적용되서 아끼다 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거품 방어막이나 휴대용 차폐막의 경우, 한번 쓰고 없애기는 아까워서 그대로 들고 있다가 쓸 타이밍을 놓치는 문제가 왕왕 발생하기도 하구요. 이는 리치에서 묠니르 방어구에 도구 시스템이 합쳐지는 것으로 해결되긴 합니다.


헤일로 3의 주무대는 크게 두군데입니다. 초반은 아프리카의 뉴 몸바사 유적, 후반은 전작과 다르게 헤일로가 아닌 헤일로 건조 시설인 '아크'입니다. 무려 우리 은하로부터 수만 광년 떨어진 외우주에 세워진데다가, 크기도 정신이 나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큽니다. 뉴 몸바사의 포탈을 통해서 아크로 넘어왔을 때, 게이머들은 헤일로를 능가하는 그 정신나간 크기에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크에 도착해서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 은하가 하늘을 수놓고 있구요. 문제는 헤일로 3는 이러한 정신나갔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크의 규모를 성공적으로 묘사하지 못합니다. 사실, 선조의 구조물이나 다양한 기후대의 아크 시설들, 그리고 전반적인 게임 묘사는 여전히 훌륭하게 헤일로 특유의 규모를 묘사하고 있지만 문제는 게임의 구성에 있어서는 기존의 헤일로 시설들이나 아크 시설들이나 비등비등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벼룩의 입장에서는 아차산 꼭대기에서 세상을 보나, 백두산 꼭대기에서 세상을 보나 비슷하게 보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헤일로 특유의 '규모'에 대한 치열한 묘사를 보았으면 했던 것이 제 바람이었습니다. 


스토리적인 관점에서 헤일로 3는 말그대로 '헤일로'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코버넌트를 이끄는 진실의 사제가 모든 헤일로를 가동시켜서 은하계를 문자 의미 그대로 리셋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왜 사제들이 헤일로를 작동시키는데 목숨을 거는가라는 동기를 헤일로 3는 중요하게 다룹니다. 바로, 선조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잇는 계승자로서 인류를 선택했고, 사제들은 이를 숨기기 위해 헤일로 시설을 작동시켜 모든 것을 은폐시키고자 하죠. 그리고 자신들의 번영에 가장 방해가 되는 헤일로의 작동을 막기 위해 그레이브마인드(2편에서 첫등장한 플러드의 정신 집합체) 등장하고...우리의 치프와 아비터는 플러드들을 손쉽게 아크 채로 날려버리면서 우주의 평화를 지켜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딘가 느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무려 시리즈 내내 등장했던 중요 조연인 애이버리 존슨 상사를 죽이며 343 길티 스파크가 이야기한 '너희는 계승자야, 너희가 바로 선조라고.'라는 중대한 떡밥을 던지기만 하고 회수하지는 않습니다. 도대체 선조와 인간의 관계가 뭐죠? 그리고 왜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 외우주로 통하는 거대한 포탈이 숨겨져 있죠? 게임은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합니다. 물론, 헤일로 3는 3부작의 결론으로서는 납득할만한 수준이지만, 살짝만 게이머가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면 헤일로 3은 뭔가 수수깨끼를 잔뜩 던져놓을 뿐입니다. 거기에 마지막 엔딩 크레딧 이후, 쉴드 월드로 다가가는 여명호의 모습으로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헤일로 3가 훌륭한 게임이란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헤일로 3는 뭔가 미적지근한 작품인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3편이 끝이라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말이죠. 4편의 존재를 생각하면, 3편의 이야기 고리는 어느정도 납득할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Revenge solves everything."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FPS(First Person Shooter, 일인칭 슈터)가 시장을 지배하는 장르가 된 이유를 다양하게 뽑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FPS의 흥행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직관성'이라는 요소가 크게 개입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일인칭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일인칭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합니다. 즉, 비실재적이고 허구적인 액션 장르의 경험을 최대한 플래이어에게 어필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일인칭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요즘 게임들에서 많이 보이는 파쿠르(벽타기, 건물 오르기 등등)나 화려한 공중콤보와 근접전(DMC 등) 등등의 경험을 할 수 없고, 전지적인 시점이 아닌 움직이는 케릭터의 시점에서 이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일인칭 시점에서 게임을 구성하기 쉬운 슈터 장르기 일인칭 시점 게임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콜옵의 블록버스터적인(+일자 진행형 롤러코스터 방식의) 연출 방식 덕분에 FPS는 하나의 흥행공식이자 페러다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콜옵의 성공 이후, '일인칭 시점=콜옵식 롤러코스터 슈터'라는 장르적 도식이 확고하게 굳어졌구요.


하지만 이러한 조류에 반하는 흐름 역시 존재합니다. 시스템 쇼크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바이오쇼크 시리즈는 이야기 구조 장치, 랩처라는 장소의 구성, 그리고 독특한 양손 사용 전투 시스템 등으로 기존의 FPS와는 차별적인 노선을 걸었습니다. FPS+잠입+RPG라는 독특한 조합을 보여준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의 최신작 데이어스 엑스:휴먼 레볼루션은 능력의 해금에 따른 진행 방식의 다양화, 잠입에 있어 일인칭 시점이 시야확보의 불편함을 부분적인 3인칭 시점의 체택을 통해 해결한 점 등은 훌륭했죠. 그외에 1인칭 슈터에 콤보 개념을 도입한 블릿스톰, 일인칭 시점 퍼즐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버린 포탈 시리즈 등등...'FPS'라는 페러다임을 깨기 위한 시도는 콜옵의 성공 이전에도, 콜옵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


콜옵식 FPS가 판치는 시대에서 디스아너드의 위치는 독보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이 '페러다임'을 깨부수는데 가장 근접한 게임이기도 하구요.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디스아너드라는 게임은 FPS가 아닙니다. 일인칭 시점 '액션'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죠. 잠입 암살 게임을 표방하는 디스아너드는 비슷한 게임 컨셉을 표방했던 데이어스 엑스:HR의 타협노선(일인칭에 엄폐 시 3인칭 시점을 섞은)을 취하지도 않고, 복잡한 스킬트리 형식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스킬 구성과 스킬 효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이들을 교묘하게 엮어서 다른 1인칭 액션 게임들이 넘지 못했던 벽을 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디스아너드의 컨셉은 단순합니다:잠입 그리고 암살.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여태까지의 잠입 액션 게임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기존의 잠입 액션 게임들이 게이머에게 한 두가지 루트를 던져주고, 어떻게 들키지 않고(혹은 전투를 감수해서라도) 목표지점까지 도달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만들죠.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한 두가지의 루트를 던져준다기 보다는 거대한 공간을 던져주고, 플레이어에게 '자신만의' 잠입, 암살 루트를 찾아낼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데이어스 엑스:HR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데이어스 엑스나 다른 게임들과 크게 구별되는 큰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연성'의 존재입니다. 디스아너드의 레벨 디자인은 '스테이지의 구조'를 먼저 생각하고 레벨을 디자인 한 것이 아닌, '하나의 장소'를 먼저 구상하고 난 뒤에 그 위에 레벨로서의 튜닝을 거쳤다고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디스아너드의 레벨 구성은 처음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당혹스럽기 그지 없는데, 목표물을 가르키는 표시 HUD를 제외하고 웨이포인트 등의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플레이어 스스로가 어떻게 잠입할 지를 결정해야되죠. 


디스아너드는 여기서 '블링크'라는 순간이동 기술과 파쿠르 요소를 도입해서 실제 플래이어가 갈 수 있는 공간을 넓힙니다. 사실 '블링크'라는 요소는 디스아너드란 게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한 지점으로 빠르게(거의 순간이동 수준의 속도이지만, 빠르게 이동한다는 점 때문에 막힌 벽은 통과할 수 없음) 이동하는 블링크는 게임 내에서 주인공인 코르보의 움직임과 행동 반경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킵니다. 제작진들이 '디스아너드의 잠입은 적들이 나를 못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블링크) 미쳐 못보는 것'이라고 표현한 만큼 디스아너드의 잠입은 빠르고 호쾌합니다. 그리고, 1인칭 엑션 게임에서는 불가능했던 파쿠르의 요소를 접목시키는데 성공했구요. 사실 예전까지 일인칭 액션 게임에서 파쿠르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좁은 시야와 자칫 잘못하면 게이머가 죽도밥도 아닌 곳에 끼어서 빈번히 세이브&로드 노가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죠.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블링크라는 요소를 이용해서 손이 닿지 않는 지형 지물에 쉽고 빠른 접근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블링크 난타로만 게임을 진행하기에 디스아너드는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블링크로 순간이동 하는 지점에 적이 몇명 있는지, 무슨 보안장치가 달려있는지, 혹은 코너 너머의 상황이 어떤지 등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게임은 다크 비전이라는 투시+시야 확보 기술과 빼꼼샷을 게이머에게 줌으로써 게이머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줍니다. 재밌는 점은 다크비전의 투시 및 감지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은 점, 게임 내의 맵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디스아너드의 게임의 흐름이나 완급은 다른 잠입 게임들과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은 뷰포인트를 차지한 후에, 적들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움직임을 결정합니다. 시야를 확보하고 적들을 관찰할 때의 묘한 긴장감, 그리고 순식간에 파고드는 상쾌함과 쾌감은 다른 게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4.


사실, 게임 자체는 다크비전+블링크만 잘 사용하면 다른 기술은 안쓰고도 쉽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게이머에게 매력적인 마법과 기술들을 보여주면서, 게임 풀이에 의무적으로 '필요하다기' 보다는 '게임을 하면서 한번 써보고 싶어지는' 그런 구조를 보여줍니다. 


디스아너드의 '마법' 개념은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대단히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간이동인 블링크, 시야확보 기술인 다크 비전, 영혼 빙의 기술인 포제션, 장풍(......) 윈드 블라스트, 적들을 갉아먹는 쥐때 소환, 시간 멈추기 정도가 다입니다. 게다가 패시브 스킬은 4개(체력 강화,근접전 강화,민첩성 강화,암살시 적 시체 소멸) 밖에 안되구요. 여기에 작은 변화점을 추가해주는 요소인 '부적'을 집어넣었습니다. 같은 컨셉의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데이어스 엑스의 경우, 아무리 열심히 프락시 노가다를 해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파츠가 60%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디스아너드의 스킬들은 간결하다 못해 단순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디스아너드는 스킬의 수를 극단적으로 축소한 대신에, 그 스킬들로 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수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플레이어는 흰 쥐를 섭취하면 마나를 회복하게 만드는 부적과 흰쥐를 만날 확률을 올릴 부적을 동시에 장착하고 쥐때 소환으로 적들을 조용히 처리하면서 동시에 쥐때에 섞여있는 흰쥐를 먹어서 마나를 회복하는 플래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플레이어는 시간을 멈춘 뒤에, 자신에게 총을 쏜 적에게 빙의한 뒤에 총알 앞으로 걸어가게 만든 뒤 다시 시간을 흐르게 하여서 스스로 쏜 총에 스스로 맞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죠. 이와 같이 다양한 능력과 부적들을 조합하여 자신이 원하는 진행과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디스아너드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저 그 순간만 다양한 능력을 한꺼번에 쓰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게임은 오히려 그러한 다양한 능력의 사용을 장려합니다. 물고기나 쥐에 빙의하는 것이 잉여스러운 발상이라구요? 실제로 게임은 사람이 가지 못하는 작은 통로들이 많으며, 위급한 상황에는 자신의 모습 자체를 숨길 수 있습니다. 시간 정지는 문자의미 그대로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적들 입장에서는 게이머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으로 인식되어 잠입에 상당히 유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쥐때 소환은 최강의 공격 스킬이자, 시체와 소음을 남기지 않는 훌륭한 처리 기술로 쓰이기도 하구요. 즉, 각각의 기술이 게임내 스테이지와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함으로서 게이머는 게임 내에서 다른 사람들의 공략 또는 다른 사람들의 루트와 경험과는 차별되는 자신만의 경험을 발견합니다.



5.


디스아너드는 잠입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전투 부분이 상당히 호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석궁 또는 권총, 스킬 등을 장비해서 싸우는 스타일은 바이오쇼크나 언다잉 등에서 본 방식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디스아너드 전투의 가장 기본은 바로 '칼을 사용한 근접전'이라는 건데요, 자칫 잘못하면 대단히 어려워질 수 있는 부분을 게임은 아주 단순하게 극복합니다. 가드와 공격, 이렇게 두개가 근접 공격의 전부이지만 공격 타이밍을 딱 맞춰 가드할 경우 경직을 유도해서 원킬을 낼 수 있다던가, 스킬들과의 조합을 통해서 전투 경험 자체가 뒤바뀌기도 하구요. 예를 들어보죠. 적이 가드를 풀고 있는 상황에서 적 앞으로 블링크+근접공격을 연타하면 어새신 크리드 처럼 즉사 공격이 나가기도 합니다. 이래나 저래나 적들이 귀찮으면 그냥 쥐때같은걸 끼얹고 총으로 조질 수도 있구요. 



6.


디스아너드의 그래픽과 음악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그건 기술적으로 훌륭하다기 보다는, 분위기나 미적인 관점에서 훌륭하다는 겁니다. 디스아너드는 게임 내 세계를 그래픽적으로 정교하고 디테일이 넘치는 세계로 만들기 보다는 하나의 인상과 이미지로 만들려 했습니다. 유화의 느낌이 나는 텍스처는 언뜻 보기에는 덕지덕지 쳐바른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만, 멀리서 보면 이것들이 뭉그러져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모네의 연꽃 처럼 말이죠. 인물들도 텍스처 자체에서는 차이가 많이 안나지만, 개개인의 인상을 놓고 따졌을 때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구요. 음악이나 효과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잔하면서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죠. 하지만 몰아칠때는 확실하게 몰아칩니다.



7.


하지만 디스아너드에는 몇몇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있고, 이 문제점들은 자칫 잘못하면 게임이 쌓아올린 모든 업적을 송두리채 파괴할 정도입니다. 이는 게임 플래이보다는 게임 스토리와 게임 구성에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는 뭔가 실제 개발 단계에서 뒤엎어서 원래의 스토리 위에 무난한 스토리로 덮어씌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던월이라는 19세기 산업혁명을 배경으로한 가상의 공간, 고래 기름과 산업의 발전,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지와 대역병이 파괴한 던월의 편린들은 제작진들이 던월이라는 공간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스토리는 평범하다 못해 병맛까지 느껴지는 배신과 추격의 이야기입니다. 누명을 쓴 호국경 코르보가 충성파에게 구출되서 반역자들을 처단한 뒤에...충성파에게 배신당합니다. 응? 사실 뭔가 여기에 뒷 이야기를 덧붙이면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나버리고 플레이어가 자신을 통수친 멍청한 놈들을 묻어버리면서 게임이 끝나버립니다. 세상에, 도대체 어떤 시나리오 작가가 돈받고 이런 스토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라면요.


또한 게임은 흐름상 기묘한 구조를 몇몇 부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위 감찰관 암살과 황금고양이 암살 스테이지는 공통된 입구에서 출발해서 그곳에 도달하는 루트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이드퀘스트도 존재했습니다. 즉 게이머가 두번 이상 오는 장소를 만들었다는 거죠. 하지만 미션 2 이외에는 게이머는 단 한번만 그 장소에 머무릅니다. 마치 단발성 스테이지(규모를 생각하면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처럼요. 마치, 미션 2까지는 반쯤은 오픈월드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아케인 소프트의 패기가 엿보이지만, 뭔가의 사정에 의해서 엎어질 수 밖에 없었던것 같습니다. 


심지어 엔딩의 경우는 그때까지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최종흑막 또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코르보의 여생 이야기를 해주면서 끝냅니다. 이게 도대체 뭐죠? 마치 용사의 여생이야기를 마왕이 나레이션 해주면서, '용사...너는 멋진 놈이었어 ㅠ'라고 하는거 같아요. 게다가 고래잡이라는 코르보와 같은 부류(아웃사이더에게 선택받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없구요. 사실상 고래잡이들은 게임내에서 그저 돈받고 일하는 청부살인업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공개된 트레일러에서는 게임의 진행과 다르게 충성파가 아닌 아웃사이더가 코르보를 구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최종 흑막의 포스를 풍겼습니다. 이건 확실하게 한번 엎었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엎었던 엎지 않았던, 디스아너드가 시간에 쫒겨서 낸 게임이라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심지어 앞으로 DLC 발매 계획에 따르면 아캄시티 같은 첼린지 맵 요소를 DLC로 추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까요. 이건 분명하게 게임과 함께 나왔었거나, 아무리 못해도 초회한정으로 뿌렸어야하는 DLC였습니다. 여기에, 아케인 소프트는 포경 산업과 고래 이야기, 그리고 고래잡이들의 수장인 다우드를 주인공으로 한(!) DLC를 낸다고 했습니다. 이쯤되면 확신범이에요.



8.


뭐 엎어지든 엎어지지 않았든 디스아너드는 재밌는 포인트도 분명한 작품이고, 단점도 극명한 작품입니다. 사실, 장점이 너무 대단해서 왠만한 단점은 커버해주고 싶지만, 단점이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아쉽게도 있는걸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스아너드가 제공하는 게임의 경험은 너무나도 독특해서 외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랫동안 새로운 것을 갈구한 게이머라면 이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구요. 만약 아케인 소프트가 다음 작품을 만들 생각이 있다면, 다음번에는 좀 제대로 만들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바이오하자드, 혹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현재의 캡콤을 만들어준 일등 공신입니다. B급 좀비물을 지향하여 만든 1편은 양옥이라는 고색창연하며 기괴한 장소와 이제는 흔해빠진 좀비라는 개념을 접목시켜 그때 당시로서는 신선했던 영화적 감수성에 입각한 호러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4의 혁신과 바이오하자드 5 이후로, 수많은 바하 팬들은 바하 시리즈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걱정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미카미 신지가 4편으로 시리즈의 새로운 스탠다드를 제시한데 반해서 5편은 그저 4편의 반복 재생산에 불과하며, 웨스커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중2병으로 망쳐버렸으며, 호러라는 시리즈의 본질은 규모와 액션성에 의해서 흐려져버렸죠. 심지어 4편 당시에도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라 취급받았던 '무빙샷의 부재' 역시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5편이 나올 당시, 호러 액션의 걸작 데드 스페이스가 나와버리는 바람에 5편은 비참하리만치 무시당했죠.(물론 판매량은 대단했지만...) 하지만, 제가 데드 스페이스 2 리뷰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공포란 장르는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먹히는 장르가 될 수 없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1편에서 2편으로의 변화를 살펴보더라도,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호러 장르 역시 여타 블록버스터에서 볼 수 있는 규모를 확보하고 적당하게 공포를 거세해야합니다. 결국 이것이 호러 게임이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빌레이션은 이런 호러 게임들의 숙명을 교묘하게 피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4편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5편에 무빙샷을 추가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리빌레이션은 아주 기묘한 컨셉 위에서 성공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바이오하자드를 섞어놓은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하자드 1편의 성공은 양옥이라는 기묘한 장소가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음침하면서 고색창연한 저택과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들 등등 플레이어에게 공포를 주는 동시에 그 속의 비밀을 파해치고 싶은 욕구가 들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리벨레이션은 이러한 1편의 컨셉을 이어받아서 '괴물들이 들끓고 비밀을 간직한체 유령선이 된 호화 유람선'이라는 컨셉을 보여줍니다. '유령선'이라는 컨셉은 데드 스페이스와 유사하며, 데드 스페이스 같이 유람선 내부의 파트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와 컨셉을 보여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리빌레이션의 스테이지나 게임 구조는 바이오하자드 1편이나 데드 스페이스와는 다릅니다. 리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게이머들에게 깊은 탐색보다는 빠르고 급박한 진행을 할 것을 요구하며, 실제 무언가를 발견하고 퍼즐들이 다양하게 숨겨진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는 휴대용이라는 기기 자체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자체가 길거리에서 20-30분 정도로 가볍게 즐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재밌는 점은 각각 미션들이 하나당 플래이 시간이 20-30분 정도라는 점입니다.

바이오하자드 5 제작진은 무빙샷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갖는 호러의 본질을 해친다고 변명했지만, 데드 스페이스의 등장으로 이는 아주 쉽게 반박되었죠. 하지만 재밌는 점은 무빙샷을 집어넣은 리빌레이션은 호러 장르 따위는 아득하게 벗어나버린 본가 넘버링 시리즈에 비해서 더 호러 장르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본가가 제시한 딜레마에 대해서 리빌레이션은 무빙샷을 집어넣되, 그 움직임을 매우 느릿하게 재현했습니다. 동시에 본작의 적들인 오즈들의 움직임 역시 대단히 느릿하게 묘사하였구요. 덕분에 리빌레이션은 상당히 느릿한 템포를 보입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느린 적 덕분에 게임 진행이 편해졌지만, 동시에 무빙 역시 느려졌기 때문에 상당히 신경쓰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로써 적과 나 사이의 기묘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공간적인 배경 역시 호러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는데, 폐쇄공포증마저도 느껴질정도로 꽉막힌 배경에 두사람 이상이 나란히 설 수 없는 통로나 방에서 거의 대부분 보내는 게임은 어쩔 수 없이 지근거리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상대로 싸울 수 밖에 없는 환경과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거기에 게임 내의 호러연출들은 구태의연하지만, 극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미잘, 멍게, 해삼, 개불, 갯강구(.....) 등으로부터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따온 괴물들이 스멀스멀 환풍구에서 기어나오는 장면은 아무리봐도 등골이 섬찟해지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여기저기 스토리텔링을 위한 일지나 문서들을 통해 호러 분위기를 만들고 있구요. 사실, 가장 기본적인 호러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유령선이 된 유람선, 퀸 제노비아 호 그 자체입니다. 캡콤과 제작진들이 이 기괴한 장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비주얼적으로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게임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무빙샷이 있는 호러 서바이벌 액션 게임인 데드 스페이스에 비교하자면 바이오하자드 리빌레이션이 지향하는 바는 완전히 다릅니다. 데드 스페이스는 전략적 사지절단과 살아남기 위한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액션 게임의 변용이라면, 리빌레이션은 그보다는 좀더 소규모에 느릿한 미니게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데드 스페이스가 더 좋은것처럼 보이지만, 휴대용-거치형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의 존재를 상기하자면 리빌레이션의 컨셉은 타당해보입니다.

휴대기기용 게임이라는 숙명 때문에 한 미션 단위가 짧고, 본편 내용만 다 합쳐서 7~8시간 밖에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만, 캡콤은 이를 절묘하게 보완합니다. 본편의 맵과 스테이지 구조를 이용한 러쉬 모드인 레이드 모드가 바로 그것입니다. 게임 자체도 한 스테이지에 짧고 빠르게 진행되며, 레벨 개념과 장비의 강화 개념등을 통해서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합니다. 실제 이걸 본편으로 치는 사람도 꽤 있으며, 이로써 게임 분량이 40~50시간까지 늘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그래픽이나 음향은 거치형 게임기에 살짝 모자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주얼적인 측면이나 게임의 묘사, 연출 등은 5편 베이스이며 화면만 축소되었을 뿐인 5편이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규모 측면에서는 5편 보다는 훨씬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군데군데 프레임드랍이 있는 편이기도 하구요. 에리어에서 에리어로 넘어가는 부분의 프레임드랍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건 에리어 간 연결 부분에서만 그렇습니다. 전반적으로는 프레임 자체는 안정적인 편. 사실 휴대기기인데다가, 캡콤의 실질적인 3DS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물론 머셔너리즈도 있지만...) 게임이기에 앞으로 가능성은 더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D 효과도 좋은 편이기도 하구요(문제는 항시 3D 온! 상태라 베터리 소모속도가-_-)

사실 리빌레이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게임 자체라기 보다는 게임 조작 체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게임 패드들이 듀얼 아날로그 스틱을 이용해서 왼쪽 스틱은 움직임을, 오른쪽 스틱은 시야 조정을 하는데 3DS 자체가 스틱이 하나밖에 없기에 기존 조작 체계에 있어 문제가 발생합니다. 웃기게도, 리빌레이션의 가장 큰 특징인 무빙샷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스틱을 하나 추가해주는 확장 슬라이드 패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만 오천원 정도 들여서 슬라이드패드를 하나 사야하는데...이게 솔직히 이야기해서 가격이 비싸기 보다는 그냥 생겨 쳐먹은게 거대한 똥덩이(.....) 같이 생겼다는게 문제입니다. 이걸 달면 거의 3DS가 휴대용 기기라고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해외 웹진의 저평가나 악평들(조작체계가 이상하다) 자체가 거의 여기서 오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결론적으로 바이오하자드:리빌레이션은 휴대용 기기에 걸맞는 호러 장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1편의 컨셉으로 회귀했지만, 무빙샷등의 요소를 추가해서 그대로 시리즈에 그대로 머무르지 않은 점은 게임 제작진이 나름대로 고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 따라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6편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저는 리빌레이션 제작팀이 앞으로 이런 컨셉의 작품을 또 만들어주었으면 하네요.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보더랜드 1편은 빈말로도 훌륭한 게임이라 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사실 까놓고 이야기해서 게임 내에서 판도라의 대부분은 동적인 공간이라기 보다는 정적인 풍경화에 가까우며, 적들도 무슨 조선의 선비마냥 느릿느릿하게 걸어다니면서 별 긴장감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었죠. 무슨 진경산수화에서나 나올법한 '싸이코는 싸이코고, 풍경은 풍경이로세'라는 상황이죠. 사실 옵션이 각기 다른 총들을 모으는 재미와 코옵의 재미는 쏠쏠했지만, 그 뿐 사실상 게임자체가 너무나 원패턴이었기에 쉽게 단조로워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물론 총기를 모으는 재미가 훌륭했고, 무한한 총기 생성이라는 태마 자체는 훌륭한 컨셉이기는 했지만요.


보더랜드 2는 어떨까요? 엄밀하게 이야기하죠. 솔직히 보더랜드 2는 보더랜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게임이 전작처럼 컨텐츠 패턴이 단조롭다고 이야기하고 싶은건 아니에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뀐건 없어요. 다만, 달라진 것은 제작진들이 전작의 의외의 성공(800만장 가까이 팔았으면 훌륭한거 아닌가요?)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은 잔뜩 채워넣을만한 예산과 시간을 얻어냈다는 점 뿐이구요. 그 결과물은 '예상대로' 훌륭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건, 전작에 비해서 총기 브랜드의 세분화 및 특징이 뚜렷해졌다는 점입니다. 이름과 수치뿐이었던 브랜드는 이제 각자 고유의 외형과 다른 브랜드가 갖지 않는 고유의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싱글 액션 총기에서부터 원반형 탄창을 가진 곡선형 SF 총기, 남자의 마초심을 자극하는 레이싱 체크무늬 총기까지 1편과 2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 정도로요. 거기에 전작과 비슷하게 이름과 총기 부품에 따라서 다양한 수치를 지닌 총기들 역시 등장하죠. 전작의 총기 모으는 재미는 문자의미 그대로 '몇 배'가 되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작과 다르게 적들의 종류와 기동 역시 다양화되었습니다. 전작에서는 우어어 달려오는 좀비들을 상대로 싸웠다면, 본작에서는 지능적으로 엄폐하고 회피를 하는 적들을 상대로 싸웁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적들의 기본적인 패턴은 플래이어를 향한 개돌입니다. 하지만, 적들의 호전성과 화력이 전작에 비해 대폭 증가해서 게임의 전반적인 난이도를 올립니다. 레벨이나 장비면에서 확실하게 상대를 압도하더라도, 순식간에 뻗어버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 비례해서 케릭터들도 강해졌습니다. 전작의 스킬트리가 하나의 스킬에 다양한 패시브로 버무린다는 느낌이었다면, 본작에서는 스킬트리에 따라서 스킬의 효용 자체가 달라집니다. 건저커의 경우, 건저킹이 딜링기에서 생존기로, 총기 특화용으로 바꿀 수 있죠. 다른 케릭터들도 스킬트리에 따라서 케릭터 운용이 완벽하게 달라집니다. 


코옵 멀티는 전작에서 부족한 부분을 체워넣었습니다. 특히 이번작에서는 게임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간 덕분에 몇몇 부분은 코옵 없이는 상당히 힘듭니다. 다만, 엑박 기준으로는 뭔가 문제가 있는지 북미쪽 게이머들로 연결을 많이해주더군요. 그리고 매치매이킹 때는 항상 최적의 게임을 찾지 못해서 게임 리스트를 불러서 찾아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코옵 게임 자체가 친구 끼리 하는데 최적화가 되었지만 말이죠.


스토리 역시 보강되었습니다. 물론 엄청난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작의 있는듯 없는듯 했던 스토리와 케릭터를 강화해서 '풍경만 그럴듯한 막장 세계'를 '풍경과 내용이 일치하는 세계관'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전작에 부재했었던 메인 악역을 채워넣음으로서, 스토리의 구심점을 만드는데 성공하는데요, 핸섬 잭은 근래 나왔던 악역 케릭터 중에서 인상적인 케릭터입니다. 자기중심적에 싸구려같은 헛소리와 플래이어를 시도 때도 없이 갈구는 핸섬잭은 보더랜드라는 게임 프랜차이즈에 가장 어울리는 악역일겁니다. 게임 자체가 B급 테이스트가 물씬 풍기는 게임이니까요.


여기까지 본다면 보더랜드 2는 상당히 재밌는 게임이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보더랜드 2는 결과적으로 보더랜드 1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은 작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죠. 결국, 전작이나 이번작이나 무기 파밍 및 무기 모으는 재미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전작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전작을 재밌게 한 사람이나, 디아블로식 파밍에 재미를 느끼는 분이라면 보더랜드 2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결론부터 이야기하죠. 철권 태그 토너먼트 2는 대단히 훌륭한(컨텐츠나, 즐길 거리, 시스템 적인 요소에 있어서) 게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근래 격투게임이 갖는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게임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제가 초등학교~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철권은 축구와 더불어서 동네 공식 스포츠 수준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가 태그 토너먼트 1이 나와서 한창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오락실 문화가 죽고, PC방이나 콘솔로 즐기는 게임들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기는 하지만, 여전히 철권 시리즈는 콘솔 판매량으로 전 시리즈 판매량이 2000만장에 육박하는 프랜차이즈입니다. 오락실이나 아케이드 문화가 쇠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권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죠. 상당수 격투게임들이 오락실의 쇠퇴와 함께 사라진것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격투게임은 가위-바위-보와 비슷합니다. 기술마다 상, 중, 하단 판정의 기술들을 이용하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어떻게 피해를 줄 것인가가 관건인 장르입니다. 법칙은 간단합니다. 서서 가드는 상단과 중단 공격을 막을 수 있으며, 앉아 가드는 상단을 피하고 하단을 가드 할 수 있지만 중단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지선다'라는 개념인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한가지 선택(서서 가드할 것인가, 아니면 앉아서 가드할 것인가)을 강요하게 해서 상대방이 피해를 입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죠. 모든 격투게임의 기본이기도 하고, 철권 역시 이러한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뭐, 철권의 경우, 이 이지선다 자체를 무시하고 공격을 피하는 횡이동이라는 개념과 이를 추격하여 자신의 전방, 그리고 횡방향을 공격하는 호밍기의 개념이 있습니다. 뭐 초보가 다루기는 이지선다도 힘들지만요.


이후, 어떤 공격을 막고 반격을 하느냐 등의 문제는 '프레임 이득/손실'의 문제를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각각 기술마다 공격 판정, 그리고 그 판정을 거두면서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는데까지 들어가는 딜레이 프레임, 이 딜레이를 잡아내서 반격을 하는 딜레이 케치 등등...사실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넣고 본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프레임'이라는 요소입니다. 사람의 눈은 보통 움직임을 초당 30 또는 60 컷의 정지된 '사진'으로 연속 재생하여 보여줄 때, 이를 '영상'으로 인지합니다. 그런데 기술의 모션의 판정, 딜레이 등은 보통 몇 프레임 단위로 계산됩니다. 즉 1초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에 이 모든것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죠. 기술 입력에 있어서도, 저스트 프레임(더도 말고 딱 그 프레임에 정확하게 입력하는 것) 개념이 있어서 조작이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철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콤보 시스템은 전작 TT에 비해서 훨씬 더 강화되었는데, 전작에서는 한 라운드에 두명이 동시에 싸운다 라는 느낌뿐, 조합에 있어서 고려사항이 적었다면 이번작은 태그 어썰트라는 신요소를 집어넣어서 케릭터 선택을 더욱 전략적으로 해야하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철권의 콤보 개념은 상대가 가드할 수 없도록 띄워 놓고, 공중에서 상대를 농락하는 개념인데 여기에 바운드 능력이 있는 기술을 집어넣고 정확한 타이밍에 태그버튼을 누르면, 태그 파트너가 나와서 대신 적을 공격합니다. 한정된 시간(체감상 1~2초?)만 조작이 가능하지만, 이걸 쓰고 안쓰고에 따라서 콤보 데미지가 달라집니다.


케릭터별 벨런스는 크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만, 어차피 거의 대부분의 케릭터가 나오는 '꿈의 제전'이라는 느낌이니까요. 하지만 수십명의 케릭터가 나오는데 쓰는 케릭터는 일부였던 전작에 비해서는 쓸만한 케릭터들이 많아진것도 사실입니다.


TT2는 재밌고, 잘만든 게임임에 분명합니다. 한가지만 인정하면 말이죠:게임의 진입장벽이 오라지게 높습니다. 대전 액션게임은 기본적으로 '대인전'입니다.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가하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1:1 심리전으로 귀결됩니다. 이지선다 또는 횡이동 그리고 프레임 손실/이득이나 조작의 경우, 연습모드를 통해서 감으로 익힐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무슨 공격을 할건지, 그리고 쓰러졌을 때 기상 공방, 이정도 떳을 때 어떤 콤보가 확정적으로 들어가는지 등등 너무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고, 게다가 고려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짧습니다. 저 모든 것이 60초 내에 모두 일어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물론 고수들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느끼고 순식간에 반응하지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얄짤 없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머리로라도 이해를 해야 덜 맞죠.


아마 처음 입문하는 사람한테는 해수면에서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보는 기분이라도 들거에요. 콜옵이나 다른 멀티 게임들은 하수가 뽀록으로라도 고수를 잡을 수 있지만, 철권 TT2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고수랑 하수랑 300판 정도 붙여도, 고수가 지겨워서 져주지 않는한 이길 수 가 없어요. 하다못해 DOA는 타격-잡기-홀드 사이에서 뽀록으로라도 이길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철권은 그런것도 없으니까요. 결국, 초보가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사람에게 털리거나, 아니면 혼자서 연습모드만 잡고 미친듯이 연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태그 어설트 개념이나 벽몰이 개념을 집어넣은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시스템적인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이 때문에 난이도가 훨씬 더 올라가버린 것도 있으니까요.


물론 위의 비판점들은 대부분 '게임을 하던 시리즈의 팬'과 '시리즈에 입문한 초보'의 대결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일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철권 TT 2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수준의 초보라면 서로 치고받을 수 있겠지만,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결국은 거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진입장벽이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게임이 나름대로 유쾌하고 다시 반복해서 플래이할만한 요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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