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엑박 진영의 상징이며, 태양이고,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지는 더이상 헤일로에 묶여 있기를 원하지 않았고, 헤일로 리치를 마지막으로 헤일로 시리즈를 정리합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고, 여기에 오로지 헤일로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343 스튜디오를 전격 투입합니다. 하지만 오로지 헤일로를 위해서 만들어진 343 스튜디오는 그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으며(헤일로 리치 멀티 개발, 헤일로:애니버서리 에디션 개발) 수많은 팬들은 걱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일로 4는 바로 343 스튜디오의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이자, 시리즈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분수령이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헤일로 4는 혁신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343 스튜디오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헤일로 4는 지난 헤일로 시리즈의 총집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3부작을 여는 게임으로 큰 스토리라인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스토리라인의 불완전성만을 제외하자면, 저는 헤일로 4는 헤일로:리치의 뒤를 잇는 최고의 헤일로라 평하고 싶습니다.
헤일로 4는 전작들과 비슷한 구조를 따릅니다. 거대한 스테이지가 있고, 플레이어의 분신인 마스터 치프는 죽어라고 뛰어다니면서 코버넌트/프로메테안 나이트들을 쳐죽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다양한 차량이나 기기를 운전해서 전장의 규모를 체험하는 스테이지도 있구요. 헤일로 4는 헤일로:리치의 골격을 기본적으로 따릅니다. 아머 어빌리티와 약간의 반동, 암살, 그리고 2편, 3편에 존재했던 듀얼 윌딩의 삭제는 헤일로 4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기본 골격은 헤일로:리치임을 보여주죠. 하지만, 헤일로 삼부작에서 보여주었던 헤일로라는 초현실적인 링월드의 규모를 헤일로 4는 선조들의 거대한 다이슨 스피어(속이 텅 비어있는 천문학적 크기의 구조물)인 쉴드 월드의 형태로 훌륭하게 재구성합니다.
헤일로 4는 전반적으로 '규모'와 '게임성'을 두개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게이머는 시종일관 엄청난 크기의 선조 구조물과 상황을 경험합니다. 실드월드 레퀴엠 내부에 존재하는 다이드엑트의 거대한 감옥 크립텀, 헤일로 3부작에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전함 UNSC 인피니티, 인류판 스케럽이라 할 수 있는 매머드, 스타워즈의 데스스타 전투의 오마주라 할 수 있는 스테이지까지 343 스튜디오는 헤일로에 있어서 연출의 본질이 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4는 콜옵식의 롤러코스터 액션 연출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헤일로 4는 잘 다듬어진 언차티드 시리즈의 액션 연출을 보는 느낌입니다. 일이 일어나면 카메라가 고정되는 것이 아닌, 내가 자연스럽게 그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343 스튜디오는 이런 점에서 번지에게서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게임 플래이에 있어서 헤일로 4는 상당히 안전한 선택만을 합니다. 게임 플래이에 있어서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추가사항은 없죠. 하지만 343 스튜디오는 헤일로의 오랜 숙적인 코버넌트 이외에 프로메테안 나이트라는 선조의 군대를 적으로 추가합니다. 이 프로메테안 나이트라는 존재들은 지난 시리즈에서 나왔던 코버넌트의 군대들보다 더 강합니다. 사이드 스탭을 밟으면서 마스터 치프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는 엘리트에 비하면 이 놈들은 완전한 재앙입니다. 쉴드가 까지면 워프해서 엄폐하고, 근접하면 스캐터 샷+근접공격으로 마스터 치프의 쉴드를 날려버리는 등 다루기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물량에 화력도 만만치 않은 크롤러, 수류탄을 되돌려버리고 나이트를 소생시키는 왓쳐 등등 코버넌트의 조합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안 나이트가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전반적으로 전작들을 총집대성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스토리는 계승자 3부작을 시작하는 의미가 강하며, 343 스튜디오는 계승자 3부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미 구상을 끝내놓은듯 싶습니다. 게임의 초반에서 중반부까지, 치프와 코타나는 전쟁영웅이 아닌 퇴물 취급을 받습니다. 치프는 스파르탄 4로 대체되었으며, 코타나는 AI의 수명이 다되어서 광기 상태에 접어들죠. 하지만, 그러한 그들 앞에 다이드엑트라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지만, 인피니티의 함장인 델 리오는 그것을 직면하지 않고 관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결국, 시리즈 최초로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을 한 치프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죠.
우리는 이전 3부작에서 헤일로와 은하계에 닥친 위협을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3편에서 선조의 유지를 잇는 계승자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했었죠. 헤일로의 소설, 크립텀 연작과 헤일로 4 터미널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선조의 유지, 맨틀을 잇는다는 의미는 은하계의 평화를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다이드엑트는 과거 인류 제국의 만행을 보고 인류라는 종족에 대한 극렬한 반감을 드러내고 그들이 맨틀을 이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인류야 말로 은하계를 위협하는 최대의 문제라 생각하고 이들을 없애려하구요. 343 스튜디오는 계승자 3부작을 통해서 '과연 인류에게 맨틀을 이을 자격이 있는가?'를 보여주려하고, 이를 위해 치프라는 케릭터들 중심에 둡니다. 오프닝에서 '전쟁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존재'로서의 스파르탄 2를 드러내지만, 마스터 치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어떻게 그가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팬들은 마스터 치프가 말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지만, 저는 앞으로 계승자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케릭터인 치프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좀더 그의 케릭터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는 343 스튜디오가 훌륭한 판단을 했습니다.
헤일로 4는 싱글 플레이 보다 멀티와 코옵 쪽에서 놀라울만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기존의 헤일로 시리즈의 멀티플레이가 과거 퀘이크나 언리얼에서 볼 수 있는 구조(기본 무기를 든 상태에서, 맵 전체에 흩어져있는 무기를 주으러 다니는)였다면, 헤일로 4는 콜옵식의 퍽과 로드아웃 시스템을 채택합니다. 즉, 과거 시리즈에서는 DMR이나 배틀라이플을 주워서 싸워야 했었고, 이걸 주으러 다니다가 죽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면 이번 작에서는 기본적인 무기 자체는 들고 시작할 수 있기에 무기를 주으러 다니다 죽는 짜증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죠. 그리고 일정 포인트를 쌓거나 킬수를 쌓을 경우, 콜옵의 킬스트릭 처럼 특수 무기들(니들러, 레일건 등등)이나 강화 버프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콜옵의 킬스트릭 처럼 어떤 무기가 나올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게임 내내 랜덤으로 맵 곳곳에서 특수 무기를 리스폰해주죠. 343 스튜디오는 전작의 굇수들이 난무하는 멀티 체제를 초보도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춥니다. 아, 물론 굇수들은 여전히 게임 내에서 넘쳐나지만요.
스파르탄 옵스는 헤일로 4의 또다른 야심찬 프로젝트 입니다. 헤일로 4의 본편에서 6개월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스파르탄 옵스는 싱글 스토리에 이야기를 더해주는 한편, 미국 드라마처럼 일주일 마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죠. 물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스파르탄 옵스는 계획 자체는 343 스튜디오의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박과 플삼 모두 황혼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래픽적인 측면에서는 헤일로 4는 엑박이 보여줄 수 있는 정점을 보여준듯 합니다. 다양한 기후, 숲과 정글들이 금속성으로 새끈하게 구성되어 있는 선조의 구조물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장면은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헤일로 4는 343 스튜디오의 신중한 접근에 기초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343 스튜디오는 이번 헤일로 4를 이용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자신만의 헤일로를 만들어내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멀티를 통해서 보여준 헤일로 4의 변화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으니까요. 또한 스토리를 마스터 치프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끌고 간 것도 훌륭했습니다. 이번 세대 최후의 헤일로 넘버링 타이틀이지만, 헤일로 4는 343 스튜디오의 모든 것이 종합된, 새로운 헤일로 시리즈를 여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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