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 이후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판매량 신기록들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스토리와 연출, 게임성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발심리도 점차 고조되었고, 그 반발심리가 최고조에 이르러 터졌던 것이 바로 작년의 모던 3 vs 배필 3 구도였다. 여기에 엑티비전-인피니티 워드 사이의 불화와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 인력이 빠져나가는 불상사가 연달아 겹치면서 수많은 콜옵 빠들은 '내 콜옵은 그렇지 않아!'라고 외쳤고, 드디어 콜옵의 독재가 끝나고 봄이 찾아오나 싶었다.


봄이 찾아오기는 개뿔.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자. 배틀필드 3는 모던 3 대신에 콜옵 모던 3의 싱글 예고편을 고대로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며, 여기에 새로운 미래를 열거 처럼 광고했던 프로스트바이트 2 엔진은 콘솔에서는 정신나간 개적화를, 피씨에서는 정신나간 오류 덩어리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만장 이상 정도 팔았으니까, 뭐...아마 수익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콜옵:모던 3는 그 낮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할만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면서 무난하게 3000만장을 향해 나아갔다. 모던 3를 바를것 처럼 과대광고한 배틀 3와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한 게임성을 보여준 모던 3, 결국 승자는 모던 3였다.


그리고 다시 해가 밝았다. 액티비전(이라 쓰고, 콜옵 공장이라 읽는다)은 어김없이 콜 오브 듀티의 새로운 신작을 발표했다. 트래이아크의 콜옵 신작이자 블랙옵스의 후속작인 블랙옵스 2는 여태까지의 콜옵 시리즈와 다르게 '근미래전'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왔다. 블랙 옵스가 인피니티 워드의 모던 시리즈와 다른 60-70년대의 근현대전(.....)을 표방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트래이아크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게임은 트래이아크가 '콜옵이라는 태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혁신을 한 실로 야심찬 작품이다. 물론 콜옵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참으로 '미묘한' 변화점이지만.


대대로 트래이아크의 콜옵 싱글과 인피니티 워드의 콜옵 싱글은 연출에서 큰 차이가 있다. 혹자는 '인피니티 워드의 콜옵은 하면 내가 전쟁 영웅이 된거 같고, 트래이아크의 콜옵은 하면 내가 사이코패스가 된거 같다.'라고 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피니티 워드의 콜옵의 싱글 연출은 빠르고, 날카로운데다, 기계적이다. No Russian으로 대변되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연출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이를 자극적으로 클로즈업 하는게 아닌, 휙휙 넘기면서 경쾌한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마이클 베이의 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트래이아크의 콜옵은 어둡고 잔인하며 끈적하다. 월드 엣 워의 일본군 참호 속, 블랙옵스의 베트남까지, 트래이아크는 상처를 내고 후벼파서 그 안에 있는 으깨진 뼈마디와 피떡이 된 살점을 여과없이 클로즈업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극사실적인 신체훼손 장면과 빠져나갈 수 없을거 같은 어두운 분위기 등등 트래이아크의 콜옵들은 사람이 파리목숨처럼 넘어지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랙옵스 2 역시 트래이아크 콜옵의 연장선상에 있다, 80년대 앙골라의 정글, 파나마의 마약 카르텔 등등과 2025년의 비오는 미얀마, 홍수로 물이 범람한 파키스탄 등등 트래이아크는 어딘가 습하고 불쾌하며 끈쩍한 분위기의 장소를 선호한다. 연출에 있어서도 트래이아크의 취향은 여전하다 할 수 있다. 상처를 클로즈업하거나 사람이 불에 타죽거나 살인 장면을 과격하게 다루는 등 역시 트래이아크 다운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블랙옵스 2는 전작과 다른 독특한 '규모'와 '연출'을 보여주는데,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연출과 다르게 '미래전에는 이런게 있을거야...!'라는 반쯤은 확신에, 반쯤은 기대로 가득찬 미래형 도구들이 등장한다. 날다람쥐의 그것과 비슷한 윙슈트(실제로 익스트림 스포츠의 일종이기도 하다)나, 등 뒤에 제트 엔진을 달은 제트 슈트, 위장광학 장치, 밀리미터 스캐너, EMP 수류탄, 로봇 드론 군대 등등을 실제로 굴려보는 재미가 많다. 물론 모던 워페어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다양한 무기 연출들이 많았으나, 블랙옵스 2와 같은 유쾌하고 호쾌한 느낌은 거의 없었다. 차라리 현실의 한계에 억메이기 보다는 그냥 막나가자는 식의 블랙옵스 2는 기존의 콜옵 시리즈가 갖지 못한 유쾌함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블랙옵스 2의 스토리는 트래이아크가 야심이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1980년대와 2025년을 오고 가며, 거의 40년에 가까운 간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트래이아크는 이야기를 모던 워페어 시리즈 같은 비약없이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이끌어간다. 주인공 '섹션' 데이빗 메이슨과 '코르티스 디아'의 수장 라울 메넨데즈 사이의 40년 된 악연을 다루면서, 매넨데즈의 미국과 슈퍼 파워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분노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나 블랙옵스에서 같이 딱 더도말고 '머리통에 총알이나 박아 넣어주고 싶은' 악역과 다르게 라울 메넨데즈는 카리스마와 이야기가 있으며, 모든 상황에서 플래이어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자체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본듯한 '시종일관 개털리는 주인공'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굿 엔딩 조건을 정확히 맞추면 메넨데즈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 


굿엔딩 하니까 나온 이야기인데, 그렇다. 이번 콜옵에는 '분기'가 있고, '멀티 엔딩'을 체택하고 있다. 세상에 멀티 엔딩이라니! 내후년에 나올 트래이아크의 콜옵은 탱크도 조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게임 전에 멀티에서 처럼 퍽과 장비들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으며, 미션마다 도전 과제를 달성하면 퍽이 해금되거나 장비가 해금되는 등 게이머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게임 플래이 자체는 정진정명 콜옵의 롤러코스터식 게임 플래이 그 자체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선택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서 블랙옵스 2는 콜옵 싱글 치고는 특이하게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블랙옵스 2는 지난 콜옵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장족의 발전'을 한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멀티는 어떠한가? 콜옵 멀티는 모던 워페어 이후로 기나긴 세월 동안 '캠퍼와의 싸움'이었다. FFA 했는데 6명 모두 길리 수트에 저격총 들고 10분 동안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던 모던 워페어 2나, 캠퍼 한번 잡아보겠다고 맵을 꼬아뒀더니 코너에 툭튀어 나와 조준도 안하고 난사한 SMG에 옆구리 긁혀서 죽기 일쑤였던 모던 워페어 3 등등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이빨이 갈릴 정도로 회자된다. 트래이아크는 그래도 이들 사이에서 벨런스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블랙옵스의 경우 그래도 벨런스가 맞은 편이었으며, 블랙옵스 2는 그보다 더 벨런스가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맵 구조의 변화, 총기류의 변화 등은 제쳐두고 주요 시스템의 변화만 언급 하자면, 킬스트릭 시스템을 스코어스트릭 시스템을 바꾼 것과 장비 편집의 변화점이 있다. 먼저 스코어스트릭 시스템은 기존의 킬스트릭의 소환 기준인 사살 대신에 게임 내의 '스코어'로 변화시킨 것. 블랙옵스 때와 다르게 스코어스트릭으로 올린 킬도 스코어로 계산이 되면서 스코어스트릭을 연속소환할 수 있게 되었으나 스코어 자체가 짜게(1킬=100 스코어 라면, 스코어스트릭 킬은 1/4로 차감되서 스코어가 들어옴) 들어오기 때문에 더이상 거침없이 킬을 쌓아서 AC 130 두대 부르기 같은 엽기적인 짓은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게임 모드에 따라서 스코어스트릭이 진짜 시원시원스럽게 나오는 모드들이 있다. 킬 컨펌이나 도미네이션의 경우, 살짝만 물이 오르면 스코어스트릭을 신나게 뽑을 수 있다. 스코어스트릭 체제 덕분에 전작과 다르게 킬스트릭을 뽑아보려고 구석에 처박혀서 캠핑질이나 하는 대신에 적극적으로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모드가 요구하는 목표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스코어스트릭을 부르는데 효과적이기에 적어도 전작과도 같이 도미네이션에서 킬수 올리려고 구석에 쳐박혀서 캠핑이나 하는 족속들을 볼일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나아진 부분이다.


또한 전작의 퍽+무기+전술 장비 시스템을 달리 해서, 몇몇 퍽들의 기능을 무기의 부착 장비로 보내고 와일드 카드라는 개념을 적용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무기/전술 장비/퍽을 더 달 수 있는 대신에 다른 무기/전술 장비/퍽 슬롯을 해제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서 심지어는 칼 하나만 달랑 들고 퍽 6개를 달 수 있는 위엄 가득찬 조합도 가능하다. 아마 장비의 커스터마이즈만 놓고 따졌을 때는 블랙 옵스 2가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블랙옵스 2는 콜옵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고, 스스로도 콜옵에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블랙옵스 2는 모던 워페어의 포멧을 토대로 할 수 있는 실험 중에서는 가장 진보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블랙옵스 2가 콜옵 특유의 문제점들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 시나리오를 두번 해보고 싶은 콜옵'이라는 점은 블랙옵스 2를 구매할만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