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주의.


엑스컴 시리즈는 하드코어 턴제 시뮬레이션의 최고봉이라 불릴만한 게임이었다. 한턴만 삐끗해도 전멸하기 일쑤인 하드코어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이었다. 한번 죽은 대원은 돌아오지 않고, 게임 자체가 빠듯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특유의 하드코어 성과 중독성은 도스 시절 수많은 게이머들을 매료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3편 아포칼립스 이후로, 엑스컴은 3D 액션 게임으로 나오거나 하는 등의 변절(?)을 거쳤으며 심지어 40-50년대로 돌아간 FPS XCOM까지 만드는 등 한마디로 원작의 본질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껍데기 같은 프렌차이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엑스컴 시리즈는 완전히 끝난 추억속의 게임 시리즈가 되었다.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이 나오기 전까지는.


결론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나름 선방한 작품이기도 하다. 게임은 과거 작품들의 하드코어한 본질을 간략하게 요약을 해서 정리하는데 성공하였고, 체스나 장기 같은 게임을 정교하고 거대하며 복잡한 스케일을 가진 게임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전적으로 '실패한' 작품이다.


게임에 있어서 전투 시스템은 '엄폐'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유닛들은 벽이나 차폐물 근처에 있으면 자동적으로 엄폐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엄폐물의 방향에 따라서 유닛은 방어 보너스를 받게 된다. 플래이어는 이에 기반하여 유닛을 어디에 배치해서 엄폐 보정을 받을 것인지, 어떻게 적들을 우회해서 측면을 공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일단 엄폐를 잘못하거나 위치선정을 안 좋을 경우, 유닛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죽은 유닛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로인해 시종일관 유지되는 긴장감과 잘 짜여진 전투 시스템 설계는 게임에 상당한 몰입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좋은 것은 여기까지일 뿐이다.


턴전략이든 실시간 전략이든, 전략 시뮬레이션들은 유닛이나 장비들의 조합, 혹은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마치 문명에서 세계정복, 문화 승리, 외교 승리 등등의 목표를 향해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물론 몇몇 가장 효율적인 방법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뮬레이션 게임들에는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에는 그러한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기술의 테크 트리는 일방향 적이며, 병과의 전문화 분야도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장비는 티어에 따라 몇개 되지도 않는다. 즉, 플레이어의 전략은 더 좋은 장비를 개발하고, 이 장비를 착용해서  물론, 과거 시리즈들이 이러한 구성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옛 시리즈들은 거의 2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2편이나 3편이 갖고 있었던 고유의 특징들(2편은 수중전 개념, 3편은 다양한 도시 세력들과의 관계)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의 진행은 대부분 외계인과 싸우고, 잡고, 연구하고, 잡고, 싸우고, 연구하고....의 영원한 반복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유닛만 죽으면 돌아오지 않을 뿐, 이게 파엠보다 나은게 뭐있냐?'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보다도 못하다고 본다. 유닛의 성장은 최소한의 선택지만 주어질 뿐,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본인으로서는 스나이퍼의 대령 계급 능력인 더블탭, 무아지경 정도에서만 차이를 느꼈을 뿐, 능력의 차이가 운용에 있어서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 소소한 차이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결국, 게임의 진행은 획일화 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파엠 시리즈의 최근작 각성의 경우, 케릭터 육성 및 잡체인지를 통한 스킬 공유 등 다양한 요소를 도입하였다. 다른 일본식 턴전략 시뮬레이션이라 할 수 있는 SRPG 장르들은 비록 쇠락하기는 했지만, 육성이나 시스템 적으로 플레이어가 다른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단순하게 파엠이나 다른 게임들과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전투의 깊이에 비해 플레이어가 전략에 손을 댈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과거에 비해서 케주얼 성을 추구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케주얼 성은 둘째치더라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건덕지가 없다. 하지만, 게임은 묘하게 다회차 플레이를 강조하는데....다회차 플레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회의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스토리 자체도 엉망이고, 분기나 선택지 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경우, 성의없음의 문제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결국 외계인들의 리더들인 이터리얼들이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 새로운 몸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문제는 이야기 내내 서스펜스도 감동도 없으며 심지어는 뭘 이야기하고 싶은건지 감조차 안온다. 그저 미션을 하고, 하고, 또 하고...또한 게임의 템포가 예전 시리즈와 비교하더라도 너무 빨라졌다는 문제도 있다. 게임에 재미가 들려서 좀 하다 보면 '어..어? 이제 끝?'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은 전투 자체는 재밌으나, 결국은 그걸로 땡인 게임이다. 스토리, 시스템, 전략 부분에 있어서 게이머가 뭔가 끼어들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1편인 UFO 디펜스의 리메이크 수준에 불과한 게임이다. 옛날의 게임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기대할만 하지만, 문명이나 다른 턴제 전략을 하다가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을 하면 뭔가 한참 모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