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뿐."
보통 게임 등에서 '프랜차이즈' 혹은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 재산권)등의 의미는 잘 만든 1편의 이미지를 토대로 그것을 반복하여 팔아먹는, 게이머 입장에서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였지만 보수적인 게임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피파나 위닝 같은 스포츠 게임들(한번 시스템이 완성되면 더이상 발전이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없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리즈 게임들은 시리즈 내내 시스템에 이런저런 추가점, 보완점을 가합니다. 그리고 어떤 프랜차이즈들은 전작을 더욱 발전시키고 가다듬어서 말그대로 '전작보다 더 뛰어난 후속작'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메탈기어 시리즈(소소한 게임적인 시스템을 추가하여 게임의 완성도를 더함)와 헤일로 시리즈라 할 수 있죠.
헤일로 시리즈는 '프랜차이즈'는 사실 팔리는 것으로만 따진다면 세계 최고인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PC까지 합쳐서 2000만장을 팔아재끼는 콜옵이라던가, 기네스 기록도 보유중인 GTA, 영국에서는 이혼 사유로도 적용가능한 피파 시리즈까지(.....) 게임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후로는 성공한 IP는 수도없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헤일로'라는 IP가 갖는 특수성은 다른 게임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엑스박스 진영의 하드 견인 타이틀이었으며, 당시는 생소했다 할 수 있는 거대한 스토리 흐름을 지닌 시리즈 물이었으니까요. 물론 요즘도 메이저 제작사에서 큰 스토리라인을 지닌 시리즈 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헤일로 시리즈 만큼이나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게임 완성도를 보여주는 시리즈 물은 극히 찾기 힘듭니다. 또한 엑박만으로 팔림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4가 24시간 만에 헤일로 3의 판매량 1억 달러를 뛰어넘는 2.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점은 헤일로 시리즈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가 높은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헤일로 1편, 컴뱃 이볼브드
사실, 헤일로의 역사는 엑스박스의 역사와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헤일로:컴뱃 이볼브드의 위치를 PS1 당시로 따지자면 FF7에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헤일로를 하기 위해서 엑박을 구매했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으며, 지금도 헤일로를 해보기 위해서 엑박을 구매한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헤일로 애니버서리 에디션 기준으로 본 헤일로 1편은 시리즈의 기틀을 다잡았다고 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 관점에서 보더라도 헤일로 1편은 다른 게임과 다른 상당히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FPS가 상당히 협소한 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베이스로 삼고 있다면, 헤일로에서의 스테이지나 공간의 개념은 대단히 넓은 '스테이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게임 진행에 있어서 탈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해서는 헤일로는 오픈 월드가 아닙니다. 오히려 헤일로의 스테이지 개념은 일직선 진행이며, 게이머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즉, 헤일로는 기존의 FPS 스테이지를 확대하였고, 게이머가 상쾌하게 그 스테이지를 뛰어다니면서 총을 쏠 수 있게 구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번지는 이 스테이지를 단순하게 확장시키지 않았습니다. 헤일로에서의 스테이지나 공간의 개념은 '규모' 측면에서 다른 게임들과의 확고한 차별성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링월드에 드넓은 초원과 숲, 바다, 설원, 크기에서부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선조의 건물들 등등 헤일로 1편은 배경의 스펙트럼을 다양화 해서 사람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규모 측면에서 본다면, 헤일로는 당시 나온 게임들 뿐만 아니라 지금 게임들과 비교해서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직과 직선으로 우뚝 선 인공의 선조 구조물이 주변 자연경관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며,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이를 인식할 수 있는 구조는 번지의 스테이지 구성력이 거의 장인 수준으로 까지 가다듬은게 아닌가 싶은 정도입니다.
하지만, 번지는 심지어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이 스테이지를 더 세심하게 다듬습니다. 게임은 넓은 스테이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게임 하는 동안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 거대한 스테이지 내에서도 조밀한 구조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버넌트들이 언덕 위에 포탑과 바리케이드를 치고 진을 치고 있고, 이러한 진 안에서도 플레이어가 엄폐하고 무기를 보충할 수 있게 구성되어있습니다. 게임을 잘 보면, 게이머가 어디서 탄약을 보충해야하는지, 어디서 무엇을 타고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스테이지가 무슨 초등학교 운동장 3~4개를 합쳐놓은거 마냥 넓은 게임에서 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구성을 했다는 점은 번지의 장인정신이 돋보입니다.
또한 헤일로의 적들 디자인이나 AI는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사이드스텝을 밟으면서 플레이어의 공격을 피하고, 쉴드가 터졌을 때 분노하며 호전성을 보이는 엘리트나 주변의 동료가 죽으면 도망가는 그런트, 방패나 스나이퍼 라이플을 들고 플레이어를 끝없이 성가시게 만드는 자칼 등등 각각 개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뭉쳐있을 때는 플레이어를 효율적으로 압박하는 훌륭한 적 디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번지는 여기에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무기 체계를 인간-코버넌트로 이원화 하여서 게이머가 다양한 무기를 선택해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듭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놀란 것이, 인간-코버넌트의 무기 체계가 서로 완벽하게 다른데다가 각각의 무기가 각자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절대 똑같은 느낌으로 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헤일로 1편의 스토리는 FPS의 왕도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 내내 문제가 발생하고, 마스터 치프가 나서죠. 1편이라서 그런지, 게임은 자세한 설정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거대한 컨셉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는데 헤일로의 무식한 사정거리나 선조의 말도 안되는 과학기술력, 끝없이 몰려오는 플러드, 코버넌트의 위협 등등을 게이머가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고, 이는 실제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보여주는 헤일로, 선조의 기술, 플러드, 코버넌트의 규모는 게이머에게 스토리텔링의 당위성을 설파합니다. 실제 게임은 누군가 이야기하기 보다는 치프가 시도때도 없이 적들과 치고 받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헤일로 1편의 완성도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기도 한데, 실내에서의 전투의 경우 텍스처와 구조 자체가 비슷비슷한 나머지 길을 잃고 해매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닥에 표시를 했지만, 잠시만 정신줄 놓고 있으면 해매기 딱 쉬운 구조입니다.
헤일로 2
헤일로 2는 실제 구하기도 힘들고, 1편 처럼 리마스터링 버전도 안나왔기 때문에 뭐라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사실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은 뭐랄까, 사기에 가까운 짓거리죠. 하지만, 이와 별개로 헤일로 2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구 엑박 시절의 마지막을 빛낸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죠. 그리고 인간쪽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코버넌트 쪽의 이야기도 동시에 다루면서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고, 3편 및 결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편에 비해서 달라진 점은 듀얼 윌딩, 즉 아킴보의 추가입니다. 몇몇 한손으로 들 수 있는 총기들에 대해서 치프가 양손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총을 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전작의 체력+에너지 쉴드의 체력 개념이 아닌 에너지 실드+콜옵식 체력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전작에서처럼 실드+딸피인 상태에서 허무하게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죠. 하지만 헤일로 2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코버넌트의 입장, 특히 게이머를 진저리치게 만든 엘리트의 입장에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헤일로 2는 코버넌트라는 집단을 입체적으로 다룹니다. 게임은 가슴에 낙인이 찍히는 아비터와 가슴에 훈장을 다는 치프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인상적인 인트로와 함께 시작합니다. 아비터의 입장에서 선조들의 유산이자 위대한 고행으로 나아가기 위한 헤일로가 사실은 대량살상 병기였음을 알게 되는 이 과정은 시리즈의 이야기를 복잡하게 구성하는데 성공합니다. 단순히 쳐죽여야할 적에서 치프와 함께 협력해서 우주를 구하는 새로운 동지이자 주인공의 등장을 헤일로 2는 설득력있게 다룹니다. 하지만, 전작의 스토리텔링의 미덕이라 할 수 있었던 '체험하면서 느끼는 스토리'라는 컨셉은 이러한 듀얼 주인공 체제 때문에 흔들렸다고도 할 수 있죠. 실제로 몇몇 플레이어들은 왔다갔다 해서 오히려 스토리 이입에 방해가 되었다고도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소한 단점들을 제외하면 헤일로 2는 1편을 잇는 훌륭한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전반적으로 스토리와 이런저런 평가들, 플래이 영상을 기반으로 봤을 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헤일로 3
헤일로 3는 헤일로 3부작의 완성이며 결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몇가지 유념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프렌차이즈 게임들은 후속작이나 외전, 파생작들을 내기 위해서 어딘가 느슨한 매듭을 지어놓는다는 점을 말이죠. 사실 치프가 플러드와 코버넌트로부터 우주와 인류를 구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고 시리즈를 끝내기에는 런칭 데이 판매량이 1억불을 넘는 시리즈가 되어버렸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번지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3부작에 대한 나름대로의 깔끔한 엔딩을 내면서도 무언가 뒤에 이어갈만한 건덕지를 남겨야하는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헤일로 3는 결론 자체가 어설프다기 보다는 느슨한 형태로 마무리됩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에는 살짝 부족하죠.
헤일로 3는 2편의 아킴보, 콜옵식 체력 회복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여기에 '도구' 개념을 추가합니다. 거품 방어막, 휴대용 엄폐물, 중력 리프트 등등 직접적으로 전투에 쓰이지는 않지만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데 쓸 수 있는 물건들입니다. 몇몇 도구들은 상당히 쓸만하지만, 몇몇은 좀 많이 잉여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 싱글 내에서의 도구는 유용하게 쓴다기 보다는 '내가 필요할 때 나오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적용되서 아끼다 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거품 방어막이나 휴대용 차폐막의 경우, 한번 쓰고 없애기는 아까워서 그대로 들고 있다가 쓸 타이밍을 놓치는 문제가 왕왕 발생하기도 하구요. 이는 리치에서 묠니르 방어구에 도구 시스템이 합쳐지는 것으로 해결되긴 합니다.
헤일로 3의 주무대는 크게 두군데입니다. 초반은 아프리카의 뉴 몸바사 유적, 후반은 전작과 다르게 헤일로가 아닌 헤일로 건조 시설인 '아크'입니다. 무려 우리 은하로부터 수만 광년 떨어진 외우주에 세워진데다가, 크기도 정신이 나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큽니다. 뉴 몸바사의 포탈을 통해서 아크로 넘어왔을 때, 게이머들은 헤일로를 능가하는 그 정신나간 크기에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크에 도착해서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 은하가 하늘을 수놓고 있구요. 문제는 헤일로 3는 이러한 정신나갔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크의 규모를 성공적으로 묘사하지 못합니다. 사실, 선조의 구조물이나 다양한 기후대의 아크 시설들, 그리고 전반적인 게임 묘사는 여전히 훌륭하게 헤일로 특유의 규모를 묘사하고 있지만 문제는 게임의 구성에 있어서는 기존의 헤일로 시설들이나 아크 시설들이나 비등비등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벼룩의 입장에서는 아차산 꼭대기에서 세상을 보나, 백두산 꼭대기에서 세상을 보나 비슷하게 보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헤일로 특유의 '규모'에 대한 치열한 묘사를 보았으면 했던 것이 제 바람이었습니다.
스토리적인 관점에서 헤일로 3는 말그대로 '헤일로'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코버넌트를 이끄는 진실의 사제가 모든 헤일로를 가동시켜서 은하계를 문자 의미 그대로 리셋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왜 사제들이 헤일로를 작동시키는데 목숨을 거는가라는 동기를 헤일로 3는 중요하게 다룹니다. 바로, 선조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잇는 계승자로서 인류를 선택했고, 사제들은 이를 숨기기 위해 헤일로 시설을 작동시켜 모든 것을 은폐시키고자 하죠. 그리고 자신들의 번영에 가장 방해가 되는 헤일로의 작동을 막기 위해 그레이브마인드(2편에서 첫등장한 플러드의 정신 집합체) 등장하고...우리의 치프와 아비터는 플러드들을 손쉽게 아크 채로 날려버리면서 우주의 평화를 지켜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딘가 느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무려 시리즈 내내 등장했던 중요 조연인 애이버리 존슨 상사를 죽이며 343 길티 스파크가 이야기한 '너희는 계승자야, 너희가 바로 선조라고.'라는 중대한 떡밥을 던지기만 하고 회수하지는 않습니다. 도대체 선조와 인간의 관계가 뭐죠? 그리고 왜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 외우주로 통하는 거대한 포탈이 숨겨져 있죠? 게임은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합니다. 물론, 헤일로 3는 3부작의 결론으로서는 납득할만한 수준이지만, 살짝만 게이머가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면 헤일로 3은 뭔가 수수깨끼를 잔뜩 던져놓을 뿐입니다. 거기에 마지막 엔딩 크레딧 이후, 쉴드 월드로 다가가는 여명호의 모습으로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헤일로 3가 훌륭한 게임이란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헤일로 3는 뭔가 미적지근한 작품인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3편이 끝이라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말이죠. 4편의 존재를 생각하면, 3편의 이야기 고리는 어느정도 납득할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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