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심각한 엔딩/진엔딩 스포일러, 반전, 네타가 있습니다.
PS2와 엑박, 큐브의 시대가 끝나고 PS3와 엑박 360의 시대가 도래한 뒤, 한때 세계 시장을 선도했던 일본 게임들은 순식간에 시대에 뒤쳐져버렸다. 여기에는 수많은 원인과 담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본 제작자들이 서양식의 블록버스터 스케일의 게임을 자기식으로 재해석하고 스케일링 하는 과정에서 심한 판단착오가 일어난 것이라고. 일례로 파판 13은 헐리웃 블록버스터 스타일에 일본 특유의 중2병과 애니메이션 연출을 섞었더니, 되지도 못한 중2병과 병신력 쩌는 마이클 베이의 사이에 끼어서 이것도 저것도 되지 못하는 시지푸스의 실존적 고뇌를 드러내는 게임이 되버리고 말았다. 사실, 파판 13의 실패 아닌 실패(세계적으로 400만장 팔았는데, 실패라고 하기는 미묘하지 않은가?)를 전후로 나온 수많은 JRPG들의 대실패들은 파판 13과 똑같이 일본의 기술개발에 대한 안일함, 스케일의 미스매치, 스토리에 대한 고민의 부재 등이 극적으로 드러난 케이스들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게임들이 있었다. 디스가이아 시리즈(3편과 4편)는 시리즈의 전통을 지켜나가면서 SRPG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성공했고, 세가와 트라이 에이스의 엔드 오브 이터니티는 총질과 독특한 전투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JRPG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니어 레플리컨트는 중2병을 뛰어넘은 암울한 스토리로 게이머에게 충격을 주었고, 제노블레이드는 JRPG 버전 스카이림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자본이 투입되는 휴대용 기기 RPG들은 예상외의 선전을 거두었다.
브레이브리 디폴트도 역시 이러한 잘만든 JRPG에 속하는 게임이다. 제작진 스스로가 고전으로의 회귀라고 선언하면서 AR 마커를 이용한 체험판과 서너차례에 걸친 체험판 피드벡, 심지어 게임 발매 이후 후속작 개발을 위한 설문조사까지 벌이는 등 JRPG 개발사상 전례없는 피드벡(사실 체험판 피드벡이나 발매 이후 피드벡은 전세계를 통털어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판매량이나 평가 양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브레이브리 디폴트의 게임성은 철저하게 고전 JRPG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턴제 전투와 파판 시리즈 특유의 잡체인지 시스템에 심지어 직업들 모티브의 대부분이 파판 시리즈에서 따왔다. 어찌보면 지금의 파판 시리즈 보다도 더 파판 시리즈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전반을 파판과 고전 JRPG에서 빌어오는 브레이브리 디폴트지만, 게임은 '고전 배끼기'가 아닌 브레이브리/디폴트 라는 신 시스템을 추가해서 고전 JRPG의 느릿한 흐름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행동 기회를 한턴에 몰아서 쓰는 '브레이브리' 개념과 턴을 넘기는 대신 다음 턴에 행동기회를 몰아주는 '디폴트' 개념은 쟈코 전에서는 첫턴에 브레이브리 로 몰아쳐서 끝내는 원턴 전술과 스피디함을, 보스전에서는 방어의 디폴트와 공격의 브레이브리를 서로 균형있게 고려하면서 전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동시에 잡기 힘든 두마리의 토끼를 훌륭하게 잡았다.
스토리 자체는 왕도 JRPG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정석적이다. 사실, 근래의 JRPG 스토리의 대부분은 부조리한 세계와 아직 미성숙한 주인공, 그리고 왜 세계를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인공의 개인적인 고민과 고뇌로 이루어진, 그냥 툭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중2병적인 요소가 지배했었다. 하지만, 브레이브리 디폴트는 그러한 요소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으며, 살짝이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려는 순간 쿨하게 지나감으로써 상당히 깔끔하고 안정적인 스토리라인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5장의 살짝 작위적인 이야기 흐름이라던가, 보스들의 중2병 쩌는 헛소리들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항시 보는 것도 아니고 중2병 바리에이션이 많다고 생각하면(.....) 재밌게 봐줄 수준이기는 하다.
브레이브리 디폴트에서 가장 혁신적인, 그리고 참신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소셜' 요소의 도입이다. 브레이브리 디폴트는 엇갈림 친구 추가와 노르엔데 마을 부훙, 친구 소환, 어빌링크 등등의 소셜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3DS의 스펙과 온라인 기능이 강화되어서 가능한 부분이다. 사실, 노르엔데 마을 부흥의 경우, 반강제적으로 소셜 기능을 사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짜증난다고 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 친구 수급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는 점, 그리고 친구 소환 개념이 초반에 상당히 쓸만한 점 등(필살기를 등록한 친구를 얻었다면, 그야말로 히든카드로 쓸 수 있다) 때문에 큰 단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게임의 반전이자 컨셉이라 할 수 있는 '평행세계의 수많은 용자들' 컨셉을 생각해 본다면, 브레이브리 디폴트의 소셜 요소는 단순한 곁다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끌어온 친구들(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노예 라고 읽지만....)이 마을 부흥시키고, 1회용 어텍커로 출연하고, 친구의 어빌리티 도움을 주다가 막판에 친구 추가가 된 용자들이 하나되어 모든 평행세계를 구해낸다는 진엔딩은 그야말로 멋지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은 깔끔하고 이쁘며, 안정적이다. 물론 3D 기능은 거의 장식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와 별개로 BGM이 대단히 좋다. 사운드 호라이즌의 Revo가 담당한 음악은, 고전적인 JRPG의 이미지와 웅장함을 동시에 잡아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우들 연기도 별다른 태클을 걸 곳 없이 괜찮다.
브레이브리 디폴트는, 아이러니 하게도 스퀘어 에닉스가 거치용 콘솔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JRPG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작진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발매후 피드백에서 이미 본작에서 파판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적인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데미지 9999 라던가 등등)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지에 대한 자기 포부가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속작은 대단히 기대가 되며, 더 다듬어서 나온다면 휴대용 기기에서 파판의 브랜드 네임에 필적하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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