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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엑박 매거진 12월 호에 등재된 리뷰입니다. 

 

타이틀 . Call Of Duty Modern Warfare II 
출시 . 2022년10월 28일  
개발사 . Infinity Ward 
유통사 . Activision Blizzard 
리뷰기종 . PC  
작성자 . 바이오타이탄

 

필자는 콜 오브 듀티(이하 콜옵)시리즈를 모던 워페어 2(2009)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해도 빼먹지 않고 구매를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의 프랜차이즈를 구매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평가와 별개로 자신만의 의견과 관점이 확고해질 수밖에 없다. ‘<모던 워페어 리부트 1>은 고평가되었다’라던가, ‘의외로 <뱅가드>가 최악의 콜옵은 아니며, <고스트>가 있는 한. 더 이상 밑바닥의 콜옵은 존재할 수 없다’라던가, ‘미래전 콜옵들은 의외로 콜옵답다’ 라는 생각 등등이 그러하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작품을 처음으로 했느냐’에 따라서 이러한 의견들은 다양한 층위를 이룬다는 것이다. <블랙옵스 2>를 최고로 치는 세대가 있는가 하면, 최근 더빙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모던 1편 리부트로 입문한 세대의 경우는 <모던 시리즈>를 더 최고로 쳐 주기도 한다. 오래된 게임인 만큼 팬덤의 층위도 다양하고 팬덤의 견해도 다양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게임을 평가할 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힘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지난 13년간의 콜옵 경험을 통틀어 이번 한 번만큼은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본인이 경험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리부트(이하 MW2) 싱글 플레이 파트는 본인 게임 플레이 경험 역사상 최악의 경험이었다.

MW2 싱글 파트가 어째서 최악이었는가를 논하기에 앞서서 콜 오브 듀티라는 게임의 정체성을 짚어야 한다. 콜 오브 듀티가 어떤 게임인가. 매년 천 만장 단위로 판매고를 가볍게 올리는 게임, 조 단위의 매출을 가볍게 올리는 게임, 그럼에도 매년 발매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정말로 대단한 게임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콜 오브 듀티라는 게임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가장 싸게 만들어서 최대한 많이 파는 자본주의 그 자체인 게임이며, 가장 많이 팔리는 소비 국가인 미국을 대상으로 미국 우월주의 판타지 그 자체를 파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어이없는 버그들과, 자극적이기만 한 연출과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다른 게임들에 이런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콜옵의 그것들은 어떻게 보면 다른 게임들보다도 수준이 떨어져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날 것’에 가깝다.

하지만 콜옵 프랜차이즈의 최대 미덕은 그런 날 것의 자극과 판타지를 효율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는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멀티플레이의 보상 체계일 것이다. 적을 타격할 때 울리는 히트 마커 사운드, 헤드샷의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 경험치가 올라갈 때 들리는 자극적인 사운드 등으로 콜옵은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보상에 대한 자극을 부여한다. 또한 13년 동안 이어져 온 스코어/킬스트릭 시스템은 이러한 자극의 총 집합체이다.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얻는 점수와 킬을 모아서 더 큰 자극을 얻는 과정 자체가 콜옵 프랜차이즈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면 콜옵 프랜차이즈에서 ‘싱글 플레이(이하 싱글)’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콜옵 프랜차이즈를 움직이는 콘텐츠 중 싱글은 가장 삐걱거리고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블랙옵스 4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블랙옵스 4는 최초이자,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콜옵에서 싱글을 제외한 게임이었다. 그때 제작진들은 분명하게 블옵 4의 싱글 제외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했는데, 싱글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많은 자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적은 인원만이 싱글을 클리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러한 자원을 멀티플레이와 좀비 코옵 모드,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배틀로얄 모드인 블랙아웃 모드에 집어넣겠다는 것이 제작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분명 블옵 4 제작자들의 주장은 일견 납득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요즘 시대에 싱글 플레이를 끝까지 플레이하는 경우는 드물고, 콜옵 같이 멀티플레이가 주 구매 요인인 게임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콜옵에서 싱글은 단순히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넘어서, 그 해 나온 콜옵의 '테마'를 구성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콜옵 역사상 가장 이질적인 콜옵이라는 평가를 듣는 <어드벤스드 워페어>에서부터 <블랙옵스 4> 사이의 미래전 콜옵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 당시 콜옵들은 일종의 '테크노 스릴러(정치와 군사 등의 분야와 첨단 기술이 결합되어 있는 서브 컬처 장르)’의 양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어드벤스드 워페어가 기업 국가의 디스토피아를, 블랙옵스3가 음모론과 SF를 결합하고, <인피닛 워페어>는 범 행성간 갈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그 후 그것들은 멀티플레이에 배경이나 능력의 일부로 소개되었다. 전통적으로 콜옵 싱글 플레이 공개 트레일러가 멀티플레이 트레일러보다 더 앞서서 공개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메세지는 더 명확하게 보인다. 콜옵의 싱글 플레이는 멀티플레이에서의 새로운 능력들과 변화점들(오퍼레이터와 특수능력의 추가, 총기의 변화 등등)을 멀티플레이에 들어가기 앞서서 시연하는 무대였으며, 또한 각각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콜옵 싱글의 특징을 두고 논의를 확장 시켜 본다면, 콜옵에서의 싱글 플레이는 존 카멕이 이야기한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와 맥을 함께한다. 존 카멕이 포르노에서의 스토리를 언급한 것은 분명 '있으나 없으나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다'라는 의미인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역으로 포르노에서 스토리가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면, 또 다른 통찰이 시작된다. 포르노에는 듬성듬성하긴 하지만 분명 스토리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성애든, 근친상간이든,  SM이든, 스카톨로지든, 네크로필리아든, 가장 순한 포르노에서 독한 포르노까지 모든 포르노들은 성적인 자극을 구성하는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이미지들은 포르노의 하위 장르의 맥락에 묶여서 단일 형태의 포르노로 구성된다. 포르노의 스토리는 그 이미지를 묶는 맥락 그 자체다. 분명 그 네트워크가 포르노의 본질이 아니더라도, 포르노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포르노의 스토리와 콜옵의 싱글 플레이는 그러한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맡고 있는 역할과 구성, 심지어는 완성도와 미학적인 부분 마저도 맥이 닿아 있다. 어째서 모던 워페어 2(2009)에서 노 러시안 미션에서부터 러시아의 미국침공으로 곧바로 이어지는가? 어째서 프라이스는 감옥에 갇혀 있었는가? 어째서 어드벤스드 워페어에서 플레이어는 x버튼을 눌러 조의를 표했는가? 모던 워페어 리부트 1편에서는 어째서 테러리스트 가옥을 습격한 뒤에 곧바로 중동으로 넘어가 테러리스트들을 작살 냈는가? 콜옵 싱글에서 각각의 이미지들은 하나 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그럴 싸하고 자극적이지만 전체를 연결해 놓고 보면 말이 안 되거나 논리적으로 너무나 성기었다. 마치 포르노의 그것처럼, 콜옵 싱글의 이미지들은 ‘나는 너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이렇게 배치할 거야’라고 플레이어에게 말하듯이 노골적으로 배치되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MW2 싱글은 콜옵 싱글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싱글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최악의 콜옵, 역대 최악의 실적을 낸 콜옵 고스트의 경우에도 싱글이 파시즘적인 이미지와 인종차별적인 스토리로 점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콜옵의 싱글 플레이'라는 틀을 지키고 있었다면 MW2의 싱글 플레이는 기존 콜옵 싱글이 갖고 있던 미덕과 강점을 모두 배제해버리는 이상한 싱글 플레이가 되어버렸다.

전통적으로 콜옵 싱글 플레이의 재미는 총을 쏘면 적이 죽는다는 단순한 쾌감과, 다양한 기믹을 통해 ‘내가 뭐하는지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무언가를 한다’는 만족감을 플레이어에게 주는 데 있다. 기본적으로 콜옵 싱글은 런앤건(달리면서 총을 쏘고, 적들을 처리하고, 체크포인트까지 도달하는)과 일부 QTE와 미니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체크포인트에 도달하거나 트리거를 당기기 전까지는 무한하게 쏟아져 나오는 물량, 버벅거리는 동료와 적 AI, 정해져 있는 길을 벗어나면 칼같이 날아오는 수류탄이나 살인트랩 등등은 콜옵 싱글의 전매 특허였다. 물론 블옵 2,3와 같이 업그레이드와 로드아웃이 존재하거나, 콜드 워의 크레믈린 어드벤처 파트 같은 구간이 존재하여 다양성을 추구하기도 했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들은 미니게임의 일부를 구성할 뿐이었다. 후술할 영역이긴 하지만, 콜옵이 15년동안 바뀌면서 바뀌지 않는 그런 복잡 미묘한 흐름을 보여주었어도 적어도 싱글에서는 런앤건이라는 요소는 근간으로 삼아 기믹을 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MW2의 싱글도 여타 콜옵 싱글과 같이 전통적인 런앤건 플레이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싱글 플레이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기믹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MW2의 싱글은 그러한 기믹이 좀 '과도하게' 잡혀 있는 게임이다. 전체 싱글 미션 중에 잠입 등의 기믹이 들어가지 않은 미션은 순수하게 2개 정도뿐으로 15개의 챕터 중 절대 다수가 기믹이 들어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첫 번째 스테이지를 제외하면 적들 상당수가 멀티 플레이 워존이나 DMZ처럼 장갑판을 둘둘 바르고 나타나기 때문에 기존 런앤건, 레일 슈팅 게임 플레이가 훨씬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물론 갈수록 단순 레일 슈팅만 들어간 스테이지는 줄이면서 다양한 장르 요소들을 넣는 것이 콜옵 프랜차이즈의 추세긴 했다. 그렇기에 MW2가 기믹을 더 추가하였다고 해서 새삼 놀라운 결단인 것도 아니며, 싱글 플레이에 잠입, 플랫포밍, '크래프팅' 요소를 녹여낸 것도 트렌드 팔로어로써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었다. 콜옵은 게임을 넘어서 애플이나 안드로이드 같은 일종의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게임의 대표적 사례가 포트나이트일 것이다;크래프팅+배틀로얄에서 출발한 이 야심 찬 프랜차이즈는 모딩에 다양한 서브컬처와 주류 문화, 심지어는 콘서트와 같은 이벤트까지 게임으로 흡수하였다. '모든 것은 XX가 된다'라는 명제가 포트나이트나 콜옵과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게임들의 플랫폼화의 근간에 놓여있는 명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이야기했듯 콜옵에서의 싱글이 테마를 프레젠테이션 하기 위한 장으로 기능한다면, '플랫폼화 되는 게임인 콜옵'을 프레젠테이션하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 요소들을 집어넣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도 근 몇 년 동안의 콜옵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콜옵과는 많이 달랐단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기믹이 많이 늘어나고, 런앤건 플레이가 답답해졌다고 해서 MW2가 최악의 싱글 플레이 타이틀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MW2의 싱글 플레이가 끔찍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얄팍하기 짝이 없고 중구난방으로 구성된 게임 플레이에서 비롯된다. 기존 콜옵 프랜차이즈의 싱글들은 다양한 것들을 콜옵으로 통합하되,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콜드 워>의 크레믈린 어드벤처 파트를 예로 들어보겠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크렘린의 비밀금고를 들어가기 위해서 잠입, 암살, 모함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 플레이의 흐름은 이미 여타 트리플 A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지만, 콜드워는 이것을 대단히 성긴 형태로 구현하였다. 후한 잠입 판정, 스크립트 진행 등등은 여타 트리플 A 게임에서 보여주는 미션의 구성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이 파트에서 끙끙거리지 않아도 클리어할 수 있게끔 게임을 구성한 점, 그리고 그 후 보상으로 비밀금고에서 수많은 적들과 런앤건 플레이를 즐기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콜드워의 잠입 파트는 여전히 콜옵 싱글 플레이의 연장선에 놓여있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었다.

그러나 MW2의 싱글 플레이는 기존 콜옵이 13년간 지켜왔단 대원칙을 무너뜨렸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원칙을 망가뜨리고 구성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전작들에 비해 충분히 고민 없이 무리하게 급진적인 변화를 취했기 때문이다 

MW2 싱글 플레이의 문제를 논하는 데는 크게 3개의 미션을 분석해야 한다. 물론 이 미션들이 대표적일 뿐이지, 다른 미션들도 대동소이한 맥락으로 문제를 갖고 있는 편이다.



첫번째 미션은 ‘근접 항공 지원’이다. 이 미션은 모던 워페어 1편부터 간간이 등장하였었던 AC130 미션이다. 상공을 배회하는 AC130의 사수로 지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팀에게 화력 지원을 해주는 컨셉의 미션으로, 모던 워페어 1편 당시의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연출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깊은 인상을 남긴 미션이었다.무감정한 열화상 영상과 압도적인 화력으로 박살나는 적들, 사살이 확인 될 때마다 무감정하게 브리프 해주는 안내까지. 이 미션은 소위 '택티컬'함의  밀리터리 판타지와 파워 판타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MW2는 이걸 완벽하게 망쳤다. MW2의 AC130 미션은 민간인 구역에서 작전을 진행한다. AC130 미션을 이전에 해봤거나 AC130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아연실색할 내용인데, AC130은 기본적으로 섬멸을 위한 물건이지 정교한 핀포인트 제거용 도구가 아니다. 20mm 개틀링은 한 발만 맞아도 사람의 사지를 찢어버릴 것이고, 40mm 포격은 일반 차량을 폭파시키기에 충분하다. LTM 같은 물건은 멀찌감치 쏴도 유탄이 날아가서 사람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아무리 게임적 허용이 존재한다고 해도 AC130이 갖고 있는 파괴력을 감안하면 민간인 사상자를 배제하고 마약 카르텔 인원만 처리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이 걱정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이 미션 내내 40mm와 LTM의 넓은 피격 판정, 20mm 발칸의 공격 판정 때문에 민간인과 민간인이 있는 건물을 피해서 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짜증난다. 

민간인 사상자를 내지 말라고 하면서 스플래시 데미지를 주는 무기를 주는 것도 웃기는 짓이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미션이 AC130을 처음으로 운용하는 미션이란 것이다. 미션 특성상 독특한 무빙(AC130은 작전지역을 원형으로 돌면서 화력을 투사한다)과 공격 방식(상공에 떠있기 때문에 공격이 도달하기 까지의 어느 정도의 시간 지연이 있다) 때문에 어느정도 숙달된 상황에서 이런 고난도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데, MW2는 사전 튜토리얼이나 몸풀기 미션 없이 곧바로 이런 미션을 초심자에서 유경험자 가리지 않고 던져버린다. 재미와 숙련 이전에 짜증을 먼저 느낄 만한 미션 구성이다.

더 어이없는 점은 그 다음 미션은 전형적인 AC130 섬멸 미션이라는 것이다.이 미션에서는 플레이어는 목표 타겟을 실고 탈출하는 지상 팀원들이 마을을 지나다 카르텔의 습격을 받는 걸 보고 화력지원을 감행한다. 이전 미션까지는 민간인 운운하면서 건물에 20mm 개틀링 한발 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게임이 갑자기 작은 규모의 마을 하나는 LTM 수십 발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용인해버린다. 이 간극이 플레이 하는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미치게 만드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차라리 화력지원 섬멸 미션을 앞에 배치하고 뒤에서 좀 더 난이도 높은 정교한 화력투사 미션을 집어넣는 방식이면 좀 짜증났어도 이해가 되었을 부분이었다.



두번째 미션은 “폭력과 타이밍"이다. 요인 구출을 위하여 호송대를 습격한다는 이 미션은 플레이어가 극 초반부 헬기를 타고 호송대를 추적하면서 총으로 화력 지원하는 부분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헬기가 RPG를 맞고 뱅글뱅글 돌다가 플레이어가 떨어지고, 첫번째 트럭을 탈취하면서부터 급격하게 미션 전개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그 때부터 운전을 하는 동시에 차량을 탈취하고 파손된 차량을 하이재킹하면서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먼저 미션의 차량조작과 건 플레이의 결합부터 논해보도록 하자. 플레이어가 운전하는 차량은 자동으로 체력을 회복하지 않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차량을 탈취하여 운전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탈취해야 하는 차량들 에는 플레이어에게 사격을 가하는 적들이 타고 있다. 플레이어는 이 적들을 처리하는 동시에 운전을 해야 하는데, 이 미션의 가장 큰 문제는 사격을 하면서 운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플레이어는 1) 운전을 한다 -> 2) 적을 발견하면 운전석에서 빠져나와서 차량 지붕 위에 올라간다 -> 3) 적들을 총으로 쏴서 제거한다 -> 4) 차량 운전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가 떨어지면 다시 운전석에 들어가서 운전을 해야 한다 -> 5) 다시 1)로 돌아간다의 과정을 미션 내내 해야 한다. GTA 같이 격렬한 자동차 추격전이 있는 게임도 이런 식의 번거로운 과정의 스테이지를 구성하지 않는다. 심지어 GTA 조차도 달리면서 양 옆으로 권총이나 SMG 같은 총을 쏠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공해주는데 MW2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플레이어에게 운전하다 차 지붕으로 기어 나와서 총을 쏘고 다시 운전대로 돌아가라는 일을 시켜버린다. 심지어 차량 조작감도 상당히 둔탁해서 속도감이나 스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연히 잘 돌아갈 리도 없고, 게임 하는 내내 왜? 라는 의문과 짜증만 들 수밖에 없는 미션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MW2 제작진들은 이걸로 부족했는지 미션 중간에 대전차 지뢰를 넣는 패턴을 추가하고, 더 가서는 무조건 차 밖으로 나와서 총으로 쏴서 격추하는 폭탄 드론 날리는 걸 추가하더니, 마지막에는 장갑 차랑 보스전까지 추가한다. 이미 차량 탈취 액션 하나만으로도 과도하다 생각하는데 게임은 너무 많은 것을 추가하려 한다. 심지어 이런 류의 액션을 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운전은 안 하던가 사격은 안 하던가 등의 선택과 집중을 보여주는데 MW2는 이것이 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미션에서 분량 조절 없이 과도하게 기믹과 분량을 늘려버렸다.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이 미션은 기괴할 정도로 분량이 길다.10~20분은 가볍게 육박하는 스테이지에서 차량 탈취, 대전차 지뢰, 폭탄 드론, 장갑차 보스전에 마지막 슈팅까지 포함하면 다양한 기믹들이 들어간 셈인데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지루해서 실제 길이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실적인 감각을 지향하는 모던 워페어 프랜차이즈와의 괴리감인데,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을 모티브로 한 국가와 적대 세력이 무슨 오전 10시쯤의 서울 내부 순환 도로 차량 통행량을 자랑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이전에 미국 소속 용병단이 AC130을 이끌고 카르텔 농장이라 해도 멕시코 영토에 무자비한 폭격을 때려버린 것을 멋지게 표현한 거까지 감안한다면, 적어도 일관성 있게 현실적인 감각을 무시한다고는 볼 수 있다.

 



마지막은 "나 홀로"이다. 대중적으로는 가장 악명 높은 미션으로 오로지 잠입과 크래프팅으로 스테이지를 풀어 나가야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러한 시도가 기존 콜옵의 다양한 시도에 비추어 본다면 그렇게 까지 나쁘다고 본인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존의 요소는 밀리터리 판타지에 있어서 메이저하고 오래된 판타지였고, 그것을 밀리터리 판타지의 총집합인 콜옵에서 구현하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콜옵 프랜차이즈는 본디 트렌드 세터가 아니라 트렌드 팔로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본다면 크래프팅을 콜옵에 도입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처참하다는 것이 문제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크래프팅을 하면서 제한된 무기로 은신하면서 싸운다는 개념은 이미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과 파트 2가 상당히 훌륭하게 정립했다. 잠입게임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그렇게까지 잠입 메카니즘이 깊이가 있진 않지만, 엄폐와 적 AI, 소재 파밍, 한계에 한계까지 쥐어짜서 플레이 해야 하는 구조까지 라오어는 게임으로 나름의 스타일과 재미를 정립하였다. MW2의 문제는 게임 메카니즘(잠입+크래프팅+무기의 제한)이 유기적이지 않고, 스테이지 구성이 엉망진창이라는 데 있다. 우선 MW2의 잠입 플레이 구성을 보자.기본적으로 MW2의 잠입 시스템은 성기기 짝이 없는데, AI 자체가 다른 게임에 비교해서 멍청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본다면 누워 있기만 하면 들킬 만한 요소도 코 앞까지 오지 않는다면 들키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적을 멍청하게 하는 대신에 적들의 화력을 올리고 적의 숫자를 많이 늘려서 배치하여 '들키진 않지만 피해가고 싶으면 무조건 숨어서 가게끔 하는' 플레이를 강요한다. 하지만 문제는 스테이지 구성이 정교하게 짜여진 잠입 스테이지가 아닌 '그냥 좀 더 엄폐물이 많은 콜옵 스테이지'이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많은 멍청한 적들과 엉성한 잠입 메커니즘, 부족한 총알과 자원 등의 문제가 맞물려서 재앙 수준의 경험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잠입 메커니즘이 성기다고 해서 이전 미션들에 서 이번 미션 같은 치명적으로 끔찍한 경험을 제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 미션들이 기본적으로 통상적인 콜옵의 스테이지 규모를 보여주고, 이 미션의 스테이지는 적과 무조건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복도식의 구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력 수색" 미션과 비교하면 이는 좀 더 뚜렷해 진다. 길리 수트를 입고 순찰하는 적들을 피하는 이 미션에서도 잠입이나 AI의 색적 메커니즘은 성기더라도 피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러한 AI와 잠입 판정에 대한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화력 수색” 미션에서는 무조건 적을 마주치고 잠입을 하게끔 하는, 레일 슈팅이라 불리는 콜옵 기준에서도 강제적인 구조를 띄고 있어 더 문제가 부각된다.

위와 같이 세 미션의 예를 들어 본다면, 이번 콜옵의 가장 큰 문제는 '콜옵이 콜옵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랙옵스 1편 포스트 모템(개발 완료 후 그 과정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개발자는 동료 AI가 특정 경로를 지나갈 때마다 게임 전체가 크래시 나는 버그를 해결하기 위해 버그의 근본을 고치는 게 아닌 '그 크래시를 유발하는 장소에 AI가 지나가지 못하게 장애물을 배치하기'라는 임시방편으로 해결한 케이스가 있다. 이러한 해결 방법이야 말로 콜옵의 핵심이다.분명 싸구려고 눈속임이지만 잘 작동하게 만들어서 소비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큰 불편없이 만드는 것. 최저비용 최대효율의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콜옵 프랜차이즈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MW2는 이런 기존 콜옵 프랜차이즈 싱글이 걸어온 '눈가리고 아웅하기'(칭찬)를 덜하고 다양한 장르를 진심으로 인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껏 자신들의 성공이 자기 실력이 좋아서였다고 착각하는 티가 너무 역력하게 나는데, 문제는 그 실력이 다른 장르 게임들로 눈이 높아진 플레이어 눈에는 플레이어 자신과 자신이 사랑했던 장르 그 자체에 대한 모독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101080'이다.MW2에서 플레이어는 총 3번의 금고를 만날 수 있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무기와 아이템들을 확보할 수 있다. 즉, 탐색과 퍼즐 풀기라는 기초적인 어드벤처 파트인 셈이다. 물론 이미 콜드워나 이전 콜옵에서 이러한 탐색의 구조는 보여주었기 때문에 놀랍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퍼즐'이다.콜옵은 머리 쓰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이 그냥 대충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다 끝나 있는 게임이다. 그런데 어떻게 주어진 단서로 답을 추리하는 퍼즐을 게임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까.

"나 홀로" 미션에서 플레이어는 상점의 주인방에 놓여진 금고와 달력에 동그라미 쳐진 2020년 10월 10일, 40번째 생일이라는 정보를 보고 퍼즐을 풀어야 한다. 일단 금고가 2자리 - 2자리 - 2자리니까 연월일 따져서 이번 생일인 20년 10월 10일, 20-10-10인가? 아니다. 그러면 미국에서 주로 쓰는 날짜 표기법인 일월년 형식의 10 - 10- 20 인가? 아니다. 그러면 올해가 20년이니까 40세 기준으로 80년생이니 10 - 10 - 80인가? 정답이다.

일단 40세 자기 생일을 자랑스럽게 동그라미 치고 금고 비밀번호로 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기 어려운 건 부차적인 문제로 넘기고, 이 파트가 필자에게 매우 모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이 퍼즐 파트가 진정 '있을 필요가 없는' 파트였기 때문이다. 탐색이나 좀더 쉬운 퍼즐이나 이런 부분들로 대체되었어도 크게 문제가 없었고, 퍼즐이랍시고 게임 내 스테이지와 어떠한 기믹이나 디자인적으로 통일되지 않고 동떨어진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도 어색했다. 심지어 숫자 빼기 계산할 때 일의 자리를 배제하고 구성한 부분에서는 ‘이거 하는 너희들 수준을 맞춰줬어’라고 말하는 듯한 제작진들의 얄팍한 수가 보여진다. 기존 콜옵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최대한 간결하게 집어넣어서 생색만 냈던 것과는 반대로, MW2에서는 뭔가 본격적으로 기믹을 집어넣었지만 결과적으로 생색내는 것 만도 못한 꼴이 되었다..

사실 콜옵을 싱글만 보고 사는 케이스는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멀티 플레이에 코옵 플레이(좀비, 스펙옵스, 워존 등)을 섞어서 플레이하는 용도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몇시간만 플레이하는 싱글 때문에 게임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MW2의 싱글은 블옵 4의 싱글보다도 못한, 콜옵 싱글 역사상 최악의 싱글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MW2 구매를 추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멀티플레이의 완성도가 여전히 콜옵스럽고, 워존은 여전하며, DMZ도 나름 할 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글 플레이의 완성도가 존재 자체가 마이너스일 정도로 처참하기에, 구매를 하더라도 싱글을 플레이하는 것은 적극 뜯어 말리고 싶다. 13년간 콜옵을 구매한 충성스러운 소비자로서, 볼트 에디션으로 싱글을 미리 플레이 했을 때 느꼈던 절망감은 본인의 20년 게임 라이프에 있어서 손에 꼽는 최악의 경험이었다.

게임 이야기

 

퀘이크나 둠과 같은 협동 플레이와 팀 데스매치의 랜 게임 플레이 이후, 수많은 형태의 경쟁과 코옵 멀티플레이 장르의 변종들이 등장했었고 디비전의 다크존 모드 역시 그러한 게임 중 하나였다. 플레이어는 장비를 파밍하기 위해 무법지대로 들어가고, 몹들과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장비를 파밍 후 탈출해야 한다. 몹과 싸운다는 점에서 코옵 게임 플레이와 유사하게 보여질 수 있지만, 다크존의 핵심은 몹이 아닌 플레이어에 있었다:상대가 나에게 적대적인지 아니면 믿을 수 있는 자인지, 상대 파티나 심지어 파티 내의 다른 인물들까지도 모호한 관계(아군 사격 가능, 쓰러진 플레이어에게서 루팅하기 가능 등)로 정해놓았다. 그렇기에 몹들을 사냥하는 순간에서도 계속해서 등뒤를 바라보고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묘한 긴장감을 게임에 불어넣었던 것이다.

 

다크존의 등장은 '타르코프에서의 탈출'(통칭 타르코프)이라는 게임에 영감을 주게 되었다. 기존 디비전의 다크존보다 현실적이고 밀리터리 서브컬처쪽으로 집중되었던 타르코프는 최적화나 여러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등장 이후 꾸준하게 많은 플레이어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타르코프의 성공은 메이저한 게임들에 비해서 마이너할 수 밖에 없었는데, 최적화 이슈와 함께 게임이 너무 밀리터리 서브컬처 관점에서 하드코어하다는 게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게임의 매력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소비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매니악했다.

 

콜 오브 듀티 DMZ는 타르코프와 디비전 다크존을 재인용한 게임이다. 물론 그 인용의 방식은 기존 배틀로얄 모든 워존이다. 콜옵 제작진들은 배틀로얄 장르를 워존으로 차용할 때부터, 이들의 타 게임 장르에 대한 이해도와 콜옵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는 이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트렌드 팔로어의 입장에서 항상 먼저 성공한 것들을 따라잡기에 새로운 것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콜옵 프랜차이즈의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DMZ 자체도 다크존이나 타르코프가 갖고 있는 급진적인 부분들을 최대한 콜옵식으로 순화시켜 들고 왔기에, 다소 이전 작품들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 옅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Z 모드는 워존과 같이 콜옵 프랜차이즈에 대한 멀티플레이 개발자들의 확고한 철학과 디자인이 느껴져서 만족스러웠던 게임이었다.

 

리뷰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서 언급해야할 부분은 DMZ, 더 나아가서 타르코프와 디비전 다크존을 둘러싸고 있는 장르적 정의다. 분명 DMZ가 다크존과 타르코프의 계보를 잇고 있기는 하지만, 좀 더 포괄적으로 본다면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대 NPC(줄여서 P v P v E라 칭하자) 의 게임들은 다크존이나 타르코프 전후로 해서 존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오퍼레이션 라쿤 시티를 이를 멀티플레이로 발전시킨 엄브렐라 콥스 같은 물건이 있다. 좀비가 있는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들끼리 싸운다는 발상의 엄브렐라 콥스는 게임 플레이가 재미없어서 큰 실패를 거두었는데, 이는 P v P v E라는 포멧 자체가 생각보다 간간이 시도가 있었지만 정작 성공하여 역사에 남은 케이스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이볼브나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같은 비대칭형 멀티플레이는 어느정도 양식화되는데 성공하였지만, P v P v E라는 포멧 자체는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갬빗이나 상술한 타르코프나 다크존 같은 케이스와 같이 '꼭 이것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강세인 포멧은 없었다.

 

그러나 DMZ의 등장은 콜옵이라는 트렌드 팔로어의 기준에서 보면 장르 문법 자체가 정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DMZ의 기본적인 룰은 '적대적인 플레이어와 NPC가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장비를 파밍하고, 장비를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DMZ는 이전 모던 1편 리부트의 스펙옵스나 워존 1.0의 약탈 모드의 양식을 들고 온다:현금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서 플레이어의 행동이나 게임 내의 미션들을 수행할 때마다 보상을 주고, 그것을 다양한 요소들(주로 떨어뜨리면 처음부터 파밍해야하는 장비류)로 바꿔서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DMZ는 큰 틀에서 코옵 장르를 따른다. 기본적으로 DMZ 내의 활동들의 흐름은 '장비의 파밍 -> 더 강한 적(지역 보스 등)에게 도전 ->최종적으로는 워존이나 멀티플레이에서 쓸 수 있는 무기 도안이나 스킨을 획득'하는 흐름이다. 이를 위해서 계속해서 적 AI들을 사냥해야 하는데, 오픈월드 AAA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뛰어난 인공지능과 달리 콜옵의 NPC 인공지능들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편이다. 그 대신 체력과 사격 정확도를 엄청나게 높여서 여러명의 플레이어가 서로 뒤를 봐주면서 화력을 투사하지 않으면 클리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게임 시간이 흐를수록 적들의 체력과 장비가 점점 좋아지기 때문에 코옵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본 흐름에 예측불가능한 변수인 '플레이어'의 존재다:적대적인 플레이어가 교전 중인 플레이어들의 뒤로 파고 들어 양각을 잡거나, 탈출 직전의 상황에서 화력을 투사해서 제압하고 플레이어들의 전리품을 빼앗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DMZ는 어떻게보면 코옵을 기본으로 깔되 여기에 변칙적인 PvP를 넣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워존의 맵을 그대로 쓰고, 워존과 비슷한 교전양상(넓은 맵에서 적은 수의 분대와 교전하는 것, 분대 전멸전까지는 방심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게임 경험은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것이다. 배틀로얄로써의 워존은 숙련되지 플레이어 관점에서 보면 파밍과 색적, 전투 간에 느껴지는 재미나 흥분도의 갭차이가 너무 커서 쉽게 지치거나 피로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DMZ는 기본적으로 NPC를 사냥면서 장비를 맞추거나 하는 등의 기본 흐름이 있고, 이것이 시간에 따라서 강해지는 흐름도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 계속해서 굴러간다'라는 진행 관점에서 재미 요소가 있다. 또한 단순히 시간에 따라 강해지는 NPC 외에도 양각을 잡는 적대 플레이어의 존재는 게임의 상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DMZ의 파밍은 기본적으로 워존과 비슷하지만 다르다:워존 2.0과 같이 게임 기본 흐름은 무기와 장비를 맵에서 파밍하고 점점 더 강해지는 구조다. 하지만 부착물 달린 무장이 많이 나오는 워존과 달리 DMZ는 NPC가 떨어뜨리는 무기 이외에는 필드에 무장이 상시로 발견하기 힘들고, 무기 상자도 잘 없다. 잡동사니들은 많지만 상점에 파는 용도가 아니면 쓰기 힘들고, 돈을 확보해도 탈출시에는 모두 회수되기 때문에 돈이 누적되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기에 DMZ 파밍의 핵심은 '지역 보스 등에 도전할 수 있는 좋은 무기를 파밍하는 것'이고 이것을 보조하기 위해서 장비들(방탄조끼, 가방 등)을 파밍하는 것이 핵심이다.

 

DMZ에서 무기를 파밍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미션 전 로드아웃에서 지정할 때 자신의 개인 물품으로 자유롭게 구성된 무기를 들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자신의 멀티플레이 진행도에 따라서 DMZ 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조합이나 자기 손에 맞는 무기를 갖고 갈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한 번 게임을 플레이한 이후로 재사용까지 2시간의 재충전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항상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DMZ에서의 무기 방법은 두번째 DMZ 내에서 밀수품을 파밍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적을 죽이거나 미션을 수행해서 보상으로 얻거나 혹은 요새 내의 상자를 파밍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무기를 파밍하고 그것을 무사히 탈출 시까지 회수하면, 그 무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특기할만한 점은 이 무기에 대해서 부착물 개인화가 불가능하다는 점, 무기의 희귀도(=부착물 부착 개수) 데미지 차이가 있지 않고 편의성 차이만 존재한다는 점과 한번 죽어서 무기를 드롭하면 무기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단순히 DMZ의 무기 파밍은 영구적이기 보다는 일종의 소모품적 성격을 띄게 된다. 무기를 부착물이 많이 달린 좋은 것을 줍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은 확실히 타르코프와 같은 게임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후술할 몇몇 부분들 때문에 DMZ는 총을 쉽게 모을 수 있고 그것이 최종적인 목표가 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워존의 골격을 상당수 들고 온 덕분에 DMZ에서도 돈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물론 돈을 누적할 수 없기 때문에, 돈의 가장 좋은 사용처는 'DMZ 지역 내에서 모두 소비한다'다. 그리고 이러한 돈들의 소비처들은 분명히 장비를 구매하거나 하는 등의 요소에서 빛을 발한다. DMZ 모드에서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얼마나 데미지를 감당할 수 있는가'(방탄 조끼), '얼마나 잡탭/무기를 챙겨올 수 있는가'(가방), '보스가 있는 방사능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가'(방독면) 라는 3요소가 있다. 이러한 장비들은 플레이어가 NPC를 사냥하는 중에도 얻을 수 있지만, 특정 지역이나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구하기 힘든 것들도 꽤 존재한다. 이럴 때 보상으로 얻은 돈을 상점에서 써서 장비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플레이다. 흥미로운 점은 무기는 쌓아두는게 가능하지만, 장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돈을 통한 장비 구입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데, 돈 역시 DMZ 내에서 용도가 더 큰 것을 생각한다면 팀과 함께 투입 후에 돈을 벌고 돈을 나눠서 장비로 바꿔먹는 것이 기본적인 DMZ 게임 플레이라 할 수 있다.

 

DMZ 모드의 궁극적인 목표는 보스를 잡고 무기 도안이나 스킨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걸 위한 밑작업으로 미션이나 파밍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무기 도안 및 스킨을 획득하는 것에 있어서 보스 몹이 제한된 수만 리젠된다는 것이 핵심이다:즉, 한 두마리 보스몹이 떨어뜨리는 상자를 줍기 위해서 수많은 스쿼드들이 치고받고 하며, 심지어 보스가 떨어뜨리는 상자를 줍는 순간부터 실시간으로 지도에 추적되는 등 다양한 난관이 스쿼드들을 가로막는다. 어떻게 보면 미션을 하거나 적을 잡거나 심지어는 상대 스쿼드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활동이라 할 수 있다.

 

DMZ는 모든 요소들을 합쳐놓고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다. 쉽게 하라면 무한히 쉽게할 수 있겠지만, 어렵게 하라면 한없이 빡세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NPC 사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조고 예측 가능한 난이도 곡선이지만, 플레이어라는 제 3의 요소가 개입하면 이 부분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고, 난이도 곡선을 몸에 익히고 조절하면서 무기나 도안을 챙겨 탈출 시점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션이나 현금과 같이 몇몇 보험들이 있어서 타르코프와 같은 게임같이 지나치게 하드코어하지는 않지만, 게임 내에서 가장 단단한 보스몹을 때려잡고 모든 스쿼드들의 추적을 피해서 50초 동안 버티다가 탈출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줘도 쉽다고 할 수 없는 난이도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들을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난이도 곡선을 선택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DMZ는 배틀로얄의 경량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난이도는 있지만, 예측 가능한 전투가 지속해서 발생하기에 교전없는 지루함은 없고 무기를 자기것을 챙겨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파밍의 난이도는 배틀로얄보다 덜 하다. 그러나 죽으면 모든 것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플레이어라는 제 3의 변수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배틀로얄 같이 적은 수의 스쿼드들이 맵을 넓게 쓰는 여타 콜옵 멀티 골격의 전투 흐름을 보인다. 그렇기에 콜옵 멀티나 워존 2.0과 다른 재미를 보여준다.

 

물론 몇몇 단점들도 존재한다. 우선 진짜 멍청한 AI들이다. 일단 DMZ의 게임 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잠입을 상정하지는 않긴 하지만, 싱글에서 나쁜 인상을 남긴 멍청하고 튼튼한 AI들은 NPC 사냥을 단조롭게 만든다. 여기에 중장갑을 두른 NPC들이 샷건들고 어기적 어기적 기어오면서 한번에 플레이어 장갑판을 까거나 눕혀버리는 것은 처음에는 무섭지만 점점 짜증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추가로 잡탬을 파밍하게끔 하는 구조도 문제가 있다. 퀘스트 등에 필요한 템들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템들이 너무 많다. 더 하드코어하게 크래프팅 개념까지 넣었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현 버전의 DMZ에서는 아이템이 많다.

 

결론을 내리자면 워존 이후 콜옵 멀티 제작자들이 또 다른 잭팟을 쳤다고 할 수 있다. 분명 DMZ가 혁신적이거나 완벽하거나 한 게임은 아니다. 버그는 여전히 본겜과 같이 엄청나게 많고, AI는 멍청하고, 루팅 요소들은 애매하다. 하지만 완벽한 게임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즐길만한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워존 2.0과 콜옵 멀티플레이, DMZ가 맞물려서 돌아간다면 콜옵 모던 2 리부트의 멀티 포멧으로 정말 오랫동안 게임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몸이 안좋아서 개나 안고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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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2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https://leviathan.tistory.com/1907)

베요네타 2 이후로 8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캡콤은 데빌 메이 크라이 5를 만들었고, 플래티넘 게임즈는 아스트랄 체인을 만들었고, 프롬은 세키로와 엘든링을 만들었다. 그외에도 시푸나 롤러드롬 같은 인디 게임 신작들도 등장하였고, 액션 게임은 계속해서 그 명맥을 이어나가며 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요네타 3는 스위치로 발매하겠다는 첫 공개 2017년 이후 2022년 발매까지 기나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동안 플래티넘 게임즈는 아스트랄 체인과 같은 실험작을 만들고 있는 동안, 스케일바운드의 취소, 그랑블루 게임의 취소 등등 여러 악재가 겹쳐지고 있었다. 베요네타 1,2나 뱅퀴시 같은 게임을 만들면서 자리를 잡았던 플래티넘 게임즈는 근 몇년간 개발 역량 자체에 물음표가 찍히고 있었다.

일단 베요네타 3는 베요네타 2에서 다양한 변화점을 둔 게임이고, 몇몇 변화점들은 8년간의 기다림을 만족시켜주는 게임이다. 하지만 플래티넘 게임즈가 그동안 추구했던 비전을 한데 모아서 정리하기 위해서, 베요네타 3는 어느정도 무리수를 둔 부분들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게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긴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요네타 3는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매력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게임이다.

베요네타 3의 핵심 변화점은 '괴수'다. 게임 플레이의 큰 틀을 확립한 1편, 1편에서 회피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재정립한 2편과 달리 3편은 2편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괴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접목시킨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위키드 위브와 소환의 개념을 아스트랄 체인에서 소환수를 이용해서 함께 공격하는 시스템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괴수물이라는 점은 괴수의 일부를 이용하는 위키드 위브의 공격방식을 사용하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처형 QTE에서 사용하던 괴수를 실제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게임 플레이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베요네타 3는 이전 게임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왼쪽 트리거를 이용한다. 플레이어는 최대 3마리의 악마를 방향키에 등록하고, 이들을 왼쪽 트리거 버튼을 사용하면서 전작의 위키드 위브에 대응되는 데몬 슬레이브와 데몬 어썰트를 사용한다. 이로써 베요네타는 모든 패드 버튼을 사용하게 되었다. 데몬 슬레이브는 별도 입력 없는 중립 상태에서 왼쪽 트리거를 당겼을 때, 거대한 괴수를 소환하여 적들을 공격하도록 조작한다(이 때 베요네타는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또한 콤보를 이어나가는 중에 마지막 콤보 마무리 공격에서 왼쪽 트리거를 당겨서 전작들의 위키드 위브의 강화판이라 할 수 있는 데몬 어썰트를 발동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베요네타 3는 이전의 시스템을 일부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이전에는 손과 다리에 각각 다른 무기를 달 수 있었는데, 3편에서는 오로지 하나의 무기 세트만 장착이 가능하다. 대신에 이전의 팔 다리에 무기를 장착하던 시절에 비하면 무기간의 개성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1,2편의 무기 장착 시스템이 모든 무기들의 개성을 죽이는 밍숭맹숭한 구성을 보여준 것을 생각한다면 훌륭한 판단으로 보여진다. 기존 무기 시스템이 P에서 파생되는 콤보 루트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면, 3편의 각 무기 시스템들은 그러한 구성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좀 더 개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베요네타 3의 미덕은 규모와 파워 판타지를 게임 메카니즘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1편과 2편은 회피라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게임을 구성하였지만, 상술한 무기 시스템이나 마법 게이지의 존재, 엄브란 클라이맥스 등등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여있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3편은 1~2편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폭발적으로 엮어내고자 한다. 그것이 위키드 위브를 별도의 시스템으로 빼낸 것이고, 기존 전투 매카니즘에서 사용하던 것들을 실제 게임의 형태로 정교하게 풀어내었다. 그리고 각 요소간의 유기적인 연계를 고려하여 다양한 기믹들을 넣어두었다:악마들 간의 연계(판타스마고리아로 거미줄로 묶고, 그걸 불태우거나 고모라 잡기 공격을 한다던가), 악마들로 카운터 공격을 하거나, 위치 타임으로 시간을 느리게 해놓고 악마를 소환해서 공격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하고 유기적인 연계들을 게임은 지원하고, 더 나아가서 플레이어에게 이것들을 자유롭게 구성해서 즐기도록 환경을 구성했다. 1편과 2편의 미덕과 함께 3편의 새로 추가된 시스템과 컨셉의 조화는 베요네타라는 게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베요네타 3의 훌륭한 점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는 다소 '과도하다'. 일단 베요네타 3에는 처형액션과 관련된 미니게임들이나 터렛 액션, 슈팅 게임, 잠입 액션들이 등의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는 전작들에서도 있었던 기믹이긴 했었다. 액션 게임 외의 미니 게임들의 비중이 이전작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너무 많은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카메라 문제'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거대한 소환수와 거대한 적들을 대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하는 만큼, 카메라의 초점을 잡는데 있어서 게임이 심하게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들이 느껴진다. 때때로는 바라보는 초점이나 위치가 매우 혼란스러워서 정상적인 콤보를 넣기 힘들어지거나 보지 못하는 데에서 공격을 받는 등의 이슈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이것들이 치명적이진 않아서 게임을 풀어나가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잊을만하면 이 문제가 튀어나와서 플레이어를 짜증나게 만든다.

결론을 내리자면 베요네타 3는 몇몇 문제를 갖고 있긴 하지만, 갖고 있는 미덕이 확실한 게임이기 때문에 추천할만한 게임이다. 액션 게임 자체의 명맥이 많이 쇠퇴해버린 요즘의 세태에서 이정도나 되는 게임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다음 작에서는 미니 게임을 좀 덜 집어넣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다.

게임 이야기

 

-처음 멀티 베타  비교하여 보았을 때는 상당히 인상이 안좋았는데, 멀티  게임에서는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줘서 당황스러운 기분

-기존 베타가 색적 안됨 + 발소리  들림 이슈 때문에 캠핑하기 편한 게임으로 만들었고, 전반적으로 버그가 난무하고다듬어지지 않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베타 게임이었다. 그러나 본편에서는 오히려 기존 콜옵스러운, 심지어는 모던 1 리부트 보다 더더욱 아케이드 스러운 게임 형태로 변화했다는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결과적으로는 베타 때의 불만스러운 부분들을  다듬어서 나왔다는 점에서 모던 1편보다  이전 콜옵들에  가까운 게임이다.

-본인이 느끼기에는 모던 2 리부트 자체의 TTK(Time To Kill) 짧은 편이다. TTK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상당히다르게 체감되는 편인데, 조준해서 점사로 정확하게 꽂아넣는 플레이 스타일로 진행하면 상당히 적들이  죽는 느낌이다. 배틀라이플(점사류 라이플)이나 DMR(스나이퍼 라이플  단계의 저격용 소총)에서 상반신 2 킬이 잘나는데, 반동조절이 전작들 대비해서 용이하다는 인상이 있다.  

-맵의 디자인 자체는 베타에서 여전히  쓰는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 비대칭의  구조, 복잡하게 잡혀있는 구조물들과 곧바로 눈에 띄지 않는 적들 등등은 고스트 이후로 이어지는 인피닛 워드의 기조이긴 한데, 후술할 색적 메카니즘과맞물리면서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기조 자체는 동일한데 색적 메카니즘 덕분에 그런 기조에도 불구하고  해볼만한 게임이 되었다.

-베타와 색적 메카니즘이 달라진 부분은 '적이 아예 다이아몬드 형태의 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전 콜옵에서도  이름이 뜨는 등의 기본적인 색적 메카니즘이 있었다는걸 보면 예전 기조로 돌아온 셈이긴 한데, 결국 이렇게 돌아올거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체 베타에서는  그랬는지   없는 부분이다. 

모던 2 색적 메카니즘에서 흥미로운 점은 색적 메카니즘을 보조하는 능력들로 게임에 변화를   있는 부분이다:정찰드론이나 감지 수류탄인 스냅샷 수류탄, 심박 감지기, 감지 레이더 등등 능력이 상당히 늘어났다. 이전에는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사용할만한 상황이  안나왔다면, 콜옵 모던 1 리부트 이후 진행된 짬밥이 늘어나면서 이렇게 능력 시스템들이강화된 부분들이 드디어 빛나게 되었다. 점령전이나 주요 거점에서 정찰 드론으로 적을 마킹하거나, 망원경으로 적을 찾아 찍거나, 보안 카메라로 지역 방어를 하는   데스매치 외에서는 상당히 쓸만한 능력들이 많다.   두고 봐야겠지만, 모던 1부터 했었던 시도들이 드디어 결과를 거두는 걸로 보여진다.

-일단은 만족스러운 부분들이  많은 멀티플레이. 다만 싱글이 너무 엉망인게 끔찍하다.

게임 이야기

 

-아는가? 왜 칼에 칼집이 있는지?
-칼의 참 뜻은 죽이는 게 아닌 살리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네 칼은 너무 예리하니 칼집 속에 잘 넣어둬라.
-제 칼집은 바로 사부님이시죠. 사부님이 계시면 함부로 못 덤빕니다.
-너를 담기 버겁구나.

-왕가위, <일대종사> (2013)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장르에 서부극이 있다면 아시아권, 특히 중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장르에는 무협이 있을 것이다. 굽이치는 강과 봉우리들의 배경삼아 무공을 연마한 영웅과 협객들이 자웅을 겨루고 교우 관계를 맺는 무협의 전통은 거슬러 올라가면 수호지로부터 시작하여 김용의 무협소설을 거쳐 고전적인 홍콩 무협영화와 중국 무협영화, 그리고 왕가위의 무협영화나 이안의 와호장룡과 같은 재해석물, 현대적인 중국 무협(드라마와 영화 등등)까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의 무협 문화는 서부극보다도 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거대한 체계를 구축한 대중문화 장르이며, 중국의 다른 문화(시서화 같은 유교문화권 특유의 문화 체계 등등)들과 밀접한 연관을 지으면서 다른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미학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무협과 관련된 전통을 여타 다른 대중문화 전통과 엮어서 접근하는 시도도 많았었다. 한국 영화의 전통에서 바라본다면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나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들을 중국에서 비롯된 무협의 정통 적자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재해석한 무협의 전통과 그들이 창작하면서 쌓았던 배경지식들은 분명 무협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명일방주 역시 무협의 전통을 모바일 소셜 게임과 서브컬처 전통 아래서 재해석한 독특함을 보여준다.

명일방주를 논하기에 앞서서 먼저 무협물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논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협물은 인간이 육체와 내공을 극한으로 단련하여 상대와 무를 겨루는 것을 기본 포멧으로 삼고 있으며, 대중적인 무협물의 인식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이는 무협武俠에 있어서 반절인 무武만 다루고 있는 정의다. 무협물의 중요한 요인과 인물 동력은 협俠이라 하는 특유의 관계망에서 비롯된다.

협의 관계론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강호江湖라는 공간을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다. 강호江湖는 한자어 그대로를 풀이하자면 강과 호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강과 호수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라는 측면은 무협을 벗어난 범유교~중화 문화적인 전통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강호라는 단어는 춘추전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자가 이야기한 魚相忘乎江湖(어상망호강호, 물고기는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人相忘乎道術(인상망호도술, 사람은 도에서 서로를 잊는다)라는 표현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나라 시인 육구몽은 스스로를 강호산인江湖散人이라 자처하였는데, 이 칭호는 속인과 교류하지 않으며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그의 삶의 자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또한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江湖애 病이 깁퍼 竹林의 누엇더니(=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었더니)"라는 문구가 있는데 여기서 강호를 자연이나 속세를 벗어난 공간으로 해석한다. 춘추전국 시대 장자에서 조선시대 송강 정철까지 강호라는 단어는 중화 문화와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는 문화권에서는 합의된 해석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연이자 속세를 벗어난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속세를 벗어난 공간'으로써의 강호가 중앙집권적인 중국 고대 국가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를 동시에 의미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무협물의 시조라고 불리는 수호지가 무법자들 집단인 양산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무협의 시작이 바로 무법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애시당초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武라는 형태의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것 자체가 폭력을 황실과 왕조의 명분 질서 아래 재편하여 법과 기관을 구성하고, 권력과 정당성을 독점하여 통치하는 아시아 전근대 국가의 법 통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근대의 한계상, 모든 곳에는 황실과 왕조의 통치가 미칠 수 없었고 그러한 공백에 자연 그대로의 강호가 존재할 수 있었다. 즉, 속세를 등진다는 것은 번잡한 세상사를 등진다는 것 외에도 황실과 왕조의 통치 질서 변두리로 가서 은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부극의 무법 지대인 서부와 무협의 강호는 맥이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규칙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이 둘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서부극에서 서부는 그야말로 공백의 공간, 가능성의 공간이다. 황무지는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자유, 법 바깥에서 생과 사를 결정하는 강력한 권력과 기존 사회의 질서를 넘어서는 힘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서부극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점은 서부극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법과 제도, 사회의 부제와 그것을 채워넣는 인물들의 힘일 것이다. 그러나 무협에서 강호라는 공간은 단순한 '부재'와 그것을 채워넣는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협俠의 관계론이 대두된다. 강호에 조정 질서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거기에는 느슨한 사회 체계가 존재한다. 강호의 질서는 협의 질서이며, 원초적인 호혜적인 질서다. 은을 받으면 그것을 은인에게 갚고, 해를 입으면 원수에게 복수로 갚는다. 모든 것은 인간 관계로부터 시작되며, 인간 관계로 끝난다. 부모의 원수, 기인을 만나며 사사를 받고, 사사 받은 문파로부터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 되며 적 또한 함께 늘어난다. 단순한 관계론이지만, 주체와 그 사람들이 걸어온 역사로 인해서 단순한 관계망이 아닌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힘과 질서의 공백을 총을 쥔 무법자가 채워넣는 서부극과 다르게 이미 무협에서는 법과 정부는 없을지라도 인간관계로 구성된 독특한 사회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협의 핵심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다루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사람에게 상처 입고, 사람에게 덕을 보고, 그것을 마땅히 돌려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장르지만, 무협은 인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여타 대중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 관계에서 발전된 완숙미와 여운, 혹은 인간사에게서 느끼는 염세와 자조 등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의 오래된 역사와 전통, 문화의 영향과 합쳐지면서 풍부한 레퍼런스를 갖게 된다.

 

 

모든 무협영화들이 그렇지 않지만, 이런 완숙미가 드러나는 몇몇 예를 보자:소오강호의 이야기는 강호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림 비공(규화보전)이 적혀있는 책과 휘말리게 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초반에 무림을 떠나려 하는 두 강호의 선배를 만나는데, 여기서 소오강호지곡笑傲江湖之曲이라는 곡의 악보와 규화보전이 서로 뒤바뀌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앞으로는 근엄한척 하지만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제자를 버리는 주인공의 위선자 스승이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주인공과 엮이게 되고, 주인공은 기연을 얻어 독고구검을 깨치고 마지막에 스승을 물리치며 강호를 떠나게 된다. 여기서 '강호의 속박을 비웃어버린다笑傲江湖'라는 이름을 가진 곡의 악보를 두고 사람들이 무림 비공이라 잘못 속아서 서로 힘대결을 하는 웃지못할 상황들은 그야말로 강호의 민낯을 다룸과 동시에 인간사의 아귀다툼을 초월해버린듯이 이야기하는 완숙미가 훌륭한 작품이었다.

서극의 칼(원전은 장철 감독의 독비도로, 김용의 신조협려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은 좀 더 독특하다.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영화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복수와 오른팔을 잃어버린 후,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외팔의 상태에서 반쯤 불타버린 무공 비급을 얻게 되는데, 아무리 연마해도 팔을 한쪽을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와 반쯤 타버린 비공 때문에 반푼어치 깨달음 밖에 못얻는다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에도 주인공은 그 처지에서 깨달음을 얻어 비공도 아닌 자신의 무를 창시하여 원수를 쓰러뜨리고 멀리 여정을 떠난다. 서극의 칼은 결함과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있는 영화로 원전인 신조협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무협이 단순히 무예를 겨루는 장르가 아닌 인간사와 인간관계를 베이스로 한 작품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왕가위의 동사서독이나 일대종사, 허우샤오셴의 자객 섭은낭, 이안의 와호장룡 등등의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무협의 장르 문법을 깊이있게 보여주었다. 물론 일반적인 무협에서도 이러한 장르적 문법(무로써 강호를 종횡무진 거니며, 협의 정신으로 사람과 만나다)을 다루었다.

하지만 근래의 중국 본토의 무협물들은 이러한 무협물의 장르 문법과 다소 동떨어져있는데, 이는 장이머우의 영웅의 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사기의 자객열전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웅은 진시황의 천하통일과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자객이 마지막에 진시황의 천하통일 대업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의 복수하고자 하는 감정을 내려놓고 진시황을 살려주는데, 이것이 일견 무협의 문법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것과 동떨어져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즉,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사의 은원보다 더 거대한 가치(=천하통일)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협의 관계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은 고전적 무협의 종말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인데, 이후 나오는 중국 대중문화의 무협이 중앙 진출하여 조정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무협의 문법에서 보자면 이질적인 일들이 발생한 것인데, 서부극으로 따지면 법과 정부가 존재하는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무법자들이 총을 쏘며 돌아다니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말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나온다면 그것의 저의가 의심될 수 밖에 없는 묘사다.

 

 

그러면 위와 같은 논의를 전제로 하고 명일방주로 돌아가보자. 가장 노골적인 무협의 인용인 염국의 사이드 스토리들(장진주 같은)을 제외한다면 명시적으로 무협 문법을 접합하여 스토리를 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잘 살펴본다면 뼈대가 되는 부분에서 무협의 이야기와 깊이 맞닿아 있다. 명일방주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메인스트림으로부터 살짝 벗어나 있으며 동시에 재능있는(그것이 무력이든, 아니면 다른 형태의 재능이든) 오퍼레이터들이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성긴 연대를 통해서 의를 행하는 것에 있다. 세상의 부조리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뿌리깊고 이들은 강하긴 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그것을 바꾸기엔 너무나 모자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를 행한다는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것인데, 그 목표를 위한 구심점이 박사라 하는 한 인물의 인품과 인간관계라는 점은 독특한 부분이다. 즉, 이들은 질서와 규율, 위계가 아닌 박사라는 구심점을 둔 성긴 인간관계에 기반(≒ 협)하여 법이 없는 틈새 공간(≒ 강호)에서 실력 행사(≒ 무)로 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놓고만 보면 무협의 문법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명일방주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법과 질서가 외면한 사람들(광석병 감염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둘러싼 세계는 현실 세계의 거대한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신흥 초 강대국 컬럼비아(=미국), 오래된 강국 빅토리아(=영국), 동방의 강자 염국(=중국)과 경제의 중심 도시 용문(=홍콩), 넓은 영토를 지닌 북방 제국 우르수스(=러시아), 광륜을 가진 천사들이 만든 세계종교의 도시 라테라노(=바티칸, 가톨릭),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핍박 받는 민족 카즈델(=유대인)까지, 명일방주는 현실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과 갈등 사이의 무법지대와 그레이존을 경험한 자들이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원이 되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명일방주 이야기의 핵심이다. 독특한 점은 무협의 강호가 법과 질서가 없이 인간관계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면, 명일방주는 법과 질서가 없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의를 행하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주축으로 한 대안 공동체로 강호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 오퍼레이터들이 현실의 문제를 온몸으로 경험한다는 것인데, 법과 질서가 없는 곳의 폭력을 경험하긴 했지만 거기서 좌절하여 염세로 빠져들어 강호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법 바깥에 서서 사회 내부를 지향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부분은 무협물의 양태와 다르지만, 의를 추구한다는 의협義俠의 전통에서 보면 무협의 변주로도 읽힐 수 있다:강호의 협의 네트워크 내에서도 단순히 협을 넘어서 더 큰 대의를 따른다는 의협의 관점이 강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도 공경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들과 박사는 단순히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것도, 사회를 스스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주변부에 머무르며 의협을 행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양태이다. 고전적인 무협에서 강호인이 조정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강호와 속세 사이의 벽세우기의 전통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고전 무협 특유의 '분수를 안다'라는 관념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일방주의 인물들은 여타 서브컬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숙미가 보여진다. 인물들은 이미 법이 없는 곳에서 구르고 굴러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회의론자들이 무엇을 회의론적으로 바라보는지조차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반동인물마저도 공감 가능하게끔 묘사하고(프로스트노바, 패트리어트와 세뇌 전 탈룰라, 가이딩 어헤드의 안도아인 같은), 주역 인물들마저도 서로의 입장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액트 1,2의 첸과 아미야의 관계처럼)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를 추구하는 주역 인물들의 곧은 자세일 것이다. 명일방주는 상당히 성숙한 자세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고, 이러한 태도는 중국 무협에서 보여주는 인간사에 대한 관조와 통찰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 물론 명일방주의 이야기가 대단히 사변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끝난다는 점에서 대단히 편의주의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박사라는 인물이 있다. 천재적인 지휘 능력과 놀라운 지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박사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인망일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하거나 심지어는 적대한 이력이 있는 인물들이 박사를 구심점으로 모이는 것은 코레류 게임(칸코레나 소녀전선 같이 케릭터들을 모으고)에서 주역 인물들에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 문법이 독특하게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코레류 게임에서의 주역 인물이 이성(절대다수가 여성인)으로부터 유사 연애감정 ~ 연애감정을 갖는것과 달리, 명일방주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박사가 보여주는 통찰력과 로도스 아일랜드가 추구하는 의에 대한 믿음을 신뢰하며 그의 지휘를 따른다.

이는 무협에서 협의 관계망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데, 단순히 무협에서 무공이 높냐 낮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성품 됨됨이를 따지는 것, 그걸로 인해 마치 향기로운 난초에 나비가 이끌리는 것처럼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를 행하는 명분 이상으로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반동 세력들 마저도 박사라는 인간 아래 모일 수 있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부분은 추후 별도 리뷰로 다루겠지만, 명일방주는 무협의 현대 서브컬처적인 변주인 동시에 세상사를 축소하여 거기에 넣고 의를 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보겠다는 야심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것이 성공적이진 않고(탈룰라에 관한 스토리 텔링이나), 모바일 게임의 한계 상 지나치게 텍스트에 의존해 사변적인 묘사에 천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일방주 스토리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고, 무엇보다 게임을 하는 동안 사람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스토리텔링이라 평하고 싶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스포일러 있습니다.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다른 문화'와 '우리 문화'를 다원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 고대와 중세의 신화들은 지역과 부족 단위로 쪼개져 있었고, 세상에 대한 설명은 지역적이었다. 심지어 같은 신화와 종교를 믿는 부족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같은 뿌리를 두되 다른 신화와 해석을 믿는 타인으로 분화되었다. 볼 수 있는 세계가 한정되고, 교류할 수 있는 반경이 작기 때문에 중세와 고대 사회는 현대사회에 비교해서 지역적이고 특수하며 폐쇄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특수성과 폐쇄성이 현대 사회에 비해 중세와 고대사회가 더 '다양하고 잘게 쪼개진 사회'가 될 수 있었다는 점도 존재한다: 현대사회가 세계적이고 과학에 기반한 해석,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믿음 등에 기반하여 '보편적인 뿌리 위에 세워진 다양성'이라는 가치 체계를 만들었다면, 고대와 중세는 오로지 '우리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는/혹은 무가치한' 가치 체계에 기반하여 자기 믿음을 수립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고대 중세 사회의 개개인이 타인과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별개로 고대 중세 사회가 갖는 다양한 집단으로 만들어진 스펙트럼이란 현대사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현대사회가 빛이 다양한 색상과 파장을 지닌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걸 안 상태에서 빛을 다양성을 지닌 구조체로 인식한다면, 고대 중세 사회는 빛의 한 색상만 보고 그것이 빛의 전체라고 인식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부분은 빛이란 서로 다른 색상(붉은색이다, 푸른색이다)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섞이거나 충돌할 때 발생하는 일들일 것이다.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노스맨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모티브가 된 암레트 왕자의 전설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기독교 중세 봉건 왕조의 이미지를 베이스로 한 4대 비극의 햄릿과 다르게 영화는 바이킹 문화권인 암레트 왕자의 원전 이야기를 다루는데 주력한다. 감독의 주 관심사가 현대 이전의 시대(더 위치 - 중세~근대, 라이트하우스 - 근대)의 이미지들을 다루는 것인만큼, 바이킹 문화를 다루는 노스맨 역시 감독의 주 관심사의 연장선에 놓인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노스맨은 감독의 전작들(더 위치, 라이트하우스)에 비해서 미학과 서사적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노스맨은 기본적으로 신화를 다루는 작품이다. 하지만 노스맨의 '신화'의 개념은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신화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에서 신화란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이라 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같은 작품들은 특수효과나 분장들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묘사한다. 기괴한 것, 웅장한 것, 아름다운 것 등등 인간의 상상력과 첨단 기술들이 신화적 세계를 구축하는데 사용되었다. 노스맨에도 그러한 비현실적인 요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노스맨의 신화에 대한 묘사는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과 거리가 멀다.

노스맨의 신화적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가 고대 ~ 중세 사회의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고대~중세인들에게 있어서 신화란 단순히 거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 위대한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다. 신화는 세계를 인식하는 도구였다. 대중문화와 신화의 관계를 논한 조셉 켐벨의 신화학이나 기독교와 이단 종교 사이의 관계를 다룬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인간의 믿음과 공간이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에 대한 공간 미학 담론 토포필리아까지, 수많은 저서들과 분석들이 과거인들의 신화가 그저 단순한 우상숭배나 미개한 믿음이 아닌 그 시대의 사유방식을 다룬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고대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속성들이 있지만, 그중 여기서 눈여겨 보고자 하는 것은 신화의 '강박적'인 속성일 것이다. 신화에서의 강박이란 신화가 정의내리고 있는 구조에 대한 집착이자 모든 것을 그 구조 아래 묶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주문처럼, 반복적이고 특정한 언어 사용을 통해 자연과 정령, 더 고차원적인 존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인간의 강한 믿음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믿음은 신화적 구조 아래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애거스의 작품들은 현대 이전의 인물 군상들의 심리와 세계를 강박적인 이미지의 구조로 재해석하고 다룸으로써 현대인들도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드는데 맞추고 있다. 더 위치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기독교적인 차별과 착취로 어떻게 근~중세 시대의 여성이 마녀가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는지를, 라이트하우스에서는 고립된 환경에서 어떻게 근대인들이 미쳐가는지를 다루었다. 이들 작품의 핵심은 현대 이전의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았다'였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단순히 대사나 서사가 아닌 이미지의 형태로 구현하여 여타 작품들과 다른 독자적인 작품들을 구축하였다. 

노스맨 역시 그런 작품이다. 분화하는 화산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끝을 암시하는 영화는 대칭적인 이미지들과 상징들을 보여주면서 신화 이전의 강박을, 더 나아가 강박이 어떻게 신화를 구축하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장면에서 이는 두드러지는데, 대표적인 장면은 영화의 초반 시퀸스에서 아버지가 삼촌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암레트가 주문처럼(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어머니를 구하고, 원수를 죽인다) 자기 암시를 거는 부분일 것이다. 강박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되새김질하면서 먼 바다로 출항하는 장면에서 장면은 바다로 나가는 바위가 좌우로 놓여 있어 마치 소년 암레트가 관문을 지나 어른이 되는듯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또한 그 좌우 대칭의 구조를 통해서 반복적이고 대칭적인 구조와 강박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도 주력한다.

노스맨에서의 신화의 강박증은 비단 작품의 컷이나 주인공의 심리를 구성하는 것 이상의 영향력이 있다. 그것은 신화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스맨에서도 신화를 다룰 때 필수로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이 다소 모호하게 그려진다는 것이 흥미롭다:가령, 복수를 위한 칼을 가지기 위해 시체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컷의 모호한 구성(되살아난 시체의 목을 내려친 후,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칼을 줍는 첫 상황으로 돌아와 마치 그것이 인물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환상처럼 다루었다)이라든가, 처마에 묶인 암레트를 구하는 까마귀(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세계수에 스스로를 교수형하였으며, 까마귀는 오딘의 상징이기도 했다) 같은 것들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암시하지만 그것이 실제 초자연적인지 아니면 그저 인물의 믿음에 따라 세상을 그렇게 해석한 것인지 알 수 없게끔하는 모호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모호함이 신화의 장엄함과 위대함보다도 신화의 가장 뼈대라 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강박적인 믿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는 암레트 왕자의 복수극을 영화는 여러 신화를 믿는 공동체의 충돌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암레트는 오딘을 주신으로 믿는 오딘 계열을 따르지만, 복수의 대상인 삼촌은 오딘이 아닌 여신 프레이야를 믿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화를 분석하는 일부 학계에서는 원래 아스 계열(오딘이 주신인)과 바냐르 계열(프레이야가 주신인)이 서로 나뉘어져있다가 합쳐진 것으로 해석하는데(구체적인 근거가 없기에 어디까지나 가설로만 존재하는 학설이다), 영화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암레트와 삼촌의 대립을 남성적인 오딘과 여성적인 프레이야의 대립으로 치환시킨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암레트의 어머니다. 어머니를 구하겠다는 암레트의 다짐은 사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삼촌을 끌어들여 왕위를 찬탈했다는 사실에 무너진다. 세계에 대한 하나의 설명(아버지에 대한 복수, 어머니의 구출, 배신자의 복수)이 무너지는 순간인데, 영화는 도입부의 어머니 방의 장면과 아버지의 가르침(여자는 방에 비밀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 교차하면서 복선을 깔아두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것이 하나의 문화권 내에서도 모계(어머니와 프레이야를 모시는 바나르 신족 계열)와 부계(아버지와 오딘을 모시는 아스 신족 계열)의 싸움으로 치환되어 들어온다. 하나의 세계와 사건을 두고 두가지 상반된 진실이 충돌한다는 점을 감독은 일종의 고대인들의 다문화(?)적 관점으로 다뤄내고 있다.

하지만 노스맨이 로버트 애저스의 다른 영화보다 뛰어난 점은 비단 이미지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묶어서 하나의 독특한 메세지로 만드는데 있다. 세계를 설명하는 신화와 기저에 깔린 강박은 새로운 해석을 만나면서 흔들리고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다. 암레트와 같이 노예로 팔려온 슬라브 족 여인이 그의 복수를 돕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지고, 그 복수와 파멸이라는 결말에서 다른 길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 역시 암레트의 미래를 점칠 때 신화적인 관점을 곁들여서 바라본다는 것인데, 북구 신화가 아닌 슬라브 계통의 신화에 근거하여 신탁을 듣는다. 서로 다른 두 믿음을 가진 세계가 화합하여 공존하는 점에서 신화적 이미지가 가진 편협함과 강박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암레트는 여인이 자신의 쌍둥이 자식을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본 신탁을 재해석한다:처음에 그는 주신 오딘의 신탁에 따라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어머니를 구출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인이 자식을 회임한 후에는 자신의 원수인 삼촌으로부터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위협을 제거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강박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 자식이라는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발견하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해석으로 바뀔 가능성을 가진 운명을 재해석 하여 바뀌지 않는 결말을 가진 숙명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점은 신화와 삶을 받아들이는 고대인의 독특한 시각이자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만든다.

그렇기에 로버트 애저스의 영화 노스맨은 신화적 이미지의 재해석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고대인들이 신화를 남겼을 때, 가장 근저에 남아있는 세계를 향한 강박과 삶에 대한 희로애락,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성숙해지고 더 나아가서 끝에 남은 파국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뒷세대에게 자신의 유산을 남기는 거대한 드라마다. 노스맨은 강렬하고도 강박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며 그것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고대인을 다룸으로써 대중문화에서 신화들을 교차하여 재해석한다. 이전작들이 이미지를 정교하게 다루는데 집중하였다면, 이제 감독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넘어서 이미지로 독특한 감수성과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감독들이 자신이 잘하는 것에 천착하다 커리어를 마무리 짓는걸 생각한다면 로버트 애저스는 노스맨을 통해 한 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노스맨은 훌륭한 영화다. 물론 캐스팅에 비해서 대중적이지 않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고, 일반적인 신화를 다룬 영화를 생각한다면 대단히 낯설고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그 낯섬과 생소함 속에서 영화는 신화의 근저에 깔려있는 감수성을 다루고, 그것을 신화의 특수성이 아닌 좀더 인간사의 보편 타당한 경험으로 승화시키는데 주력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은 아닐진 몰라도, 노스맨은 대단히 인상적이고 한번쯤은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하는 영화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인류사와 지방사의 관계는 단순히 부분과 집합의 관계로 정의내릴 수 없다. 어떤 범인류사의 흐름들은 지방사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며, 어떤 지방사의 사건들은 그 지방만의 특수한 사건들로만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류사와 지방사는 서로 논리적으로 등치 불가능하며 서로의 정합성을 담보하지 않는 독립적인 명제다. 하지만 그러한 범인류사와 지방사를 뒤집어서 등치시키는 예술작품들이 있다:그러한 작품들은 논리적으로 등치될 수 없는 두 명제를 등치시킴으로 이런 예술 작품들은 단순히 한 지방, 집단, 개인의 경험이 아닌 범인류적인 경험과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 논의는 논리학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두 명제, 범인류 보편사를 지방사로 특수화하기, 혹은 지방의 특수사를 범인류사로 보편화하기라는 모순적 명제가 예술 작품의 미학 내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순적 명제들이 참으로 성립할 수 있는데는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거나 특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명제와 조건에 대한 숙고와 통찰력, 더 나아가서 각 보편 명제와 특수 명제 사이의 논리적 관계망을 뛰어넘는 유비추리적 관계망, 미학적 통찰력과 감상, 공감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요컨데 뛰어난 예술적 통찰과 미학적 성취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명제들을 연결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주제와 담론을 생산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에드워드 양이 감독하고 대만 계엄령 시절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는 최초의 대만 청소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고, 어떻게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다루면서 중국 본토에서 도망나온 사람들의 암울했던 삶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점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일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국의 영화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명작으로 칭송받았을 뿐만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가 복원을 지원했을 정도로 영화팬들 사이에서 이 영화에 대한 공감대는 대만을 넘어서 전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기법이나 이야기를 다루는 관점에서 훌륭한 영화였다. 영화는 막막한 미래와 암울한 대만의 분위기를 섬세한 필치로 훌륭하게 다뤄낸다. 예를 들어 청소년 시절의 풋풋한 이미지와 대만의 암울한 상황(지나가는 탱크, 행군하는 군대, 군복을 입은 교련 선생 등등)들을 같은 컷 안에 배치하되 문이나 버스의 차창 같은 하나의 막을 두어 분절시키는 구조를 취하여 주인공들의 청소년 드라마를 둘러 쌓고 있는 암울한 시대상을 드러낸다. 그 외에도 대만을 지배했던 일제의 유산들을 소품처럼 배치하거나,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탈출구로써의 도미 유학, 지식인의 사상검증과 청소년 계층의 갱스터 문화 등등 다양한 것들을 다룬다. 그것들이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영화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4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허나 흥미로운 점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대한 세계적인 찬사일 것이다:분명 영화는 기법적으로 잘 만들어진 부분들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근 40년간의 대만의 계엄령 시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감수성은 대단히 특수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이 영화가 대단히 특수한 감수성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깊이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역으로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에서 가장 의외인 부분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갱스터'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아이들은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불량 서클을 만들고, 거기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친밀감을 갖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단순한 탈선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영화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갖혀 사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위에서 언급한 한 공간을 둘러싼 두 층위의 현실처럼 이 둘은 서로 섞이진 않지만 서로에게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부모 계층은 때로 자식 세대에게 가르침을 주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지만(주인공 아버지가 주인공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모 세대는 이미 시대의 어두운 부분들(사상검증이나 변화해버린 주변 환경, 먹고 살아야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 등)을 감당하기 벅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에 동년배들의 변두리 문화가 들어선다. 영화는 이들이 무대를 잡고 장사를 하거나, 미국 팝송을 부르거나, 당구를 치는 등 마치 '어른인 것마냥' 행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어디까지나 청소년들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암시한다. 가장 단적인 부분들이 '폭력'에 대한 부분들이다. 영화에서 청소년 갱들이 서로를 린치하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들의 폭력들은 대단히 부드럽다. 반대의 사례를 뽑는다면 한국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다루는 한국 영화의 폭력의 사실성과 극단성에 비교해본다면, 이들의 폭력은 어딘가 어설프다. 물론 그것이 점점 고조되면서 살인까지 도달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긴 말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는 갱스터 영화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대만사라는 지방사에서 세계사적인 보편성과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회의 변화와 혼란, 부모세대 권위의 몰락,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체 문화들(갱스터에서 서브컬처, 대안 집단 등등)은 세계사의 큰 흐름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대체 문화는 어떻게 본다면 반항인 동시에 그 권위의 공백을 채우는 존재였다. 다른 영화 예재들을 보자. 전설적인 영화 대부는 주인공은 부모의 부도덕한 불법 비즈니스 왕국을 물려받기 싫어하는 반항아에서 왕국의 적장자로 떠오르는 이야기를 다룬다.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 했었던 이민자 사회의 어둠과 결국 부모세대를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숙명론까지 대부 시리즈는 그저 범죄 영화의 교과서를 넘어서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핵심은 각각의 지방적인 영역들(역사, 문화, 이야기, 전설 등등)에 대한 깊은 통찰은 때로는 인간에 맞닿아있는 근원적인 본질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단순히 지방이나 지엽적인 이야기를 넘어서는 번뜩임을 보여주었다.


다시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으로 돌아와보자. 영화는 그러한 시대가 갖고 있는 공백을 채워넣기 위해서 젊은 세대가 방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소년 갱들과의 알력이나 방황이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결국 근원적인 공허를 채워넣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사랑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공허와 방황 끝에서 소년은 우발적으로 소녀를 살해한다. 이는 대만의 젊은 세대에 대한 은유(탈출구 없이 스스로 파멸할 수 밖에 없는)인 동시에, 섬세한 영혼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기도 한 것이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맨(2022)은 엑스 미카나와 서던 리치 영화를 찍었던 알렉스 가랜드의 신작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폭력적이고 가스라이팅을 하던 남편이 아내 앞에서 자살을 하고, 아내는 기분 전환을 위해 시골으로 휴양을 갔다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맞이한다. 불쾌한 남성의 미소가 알려주듯이, 영화는 유해한 남성성을 소재로 한 영화다. 엑스 마키나나 어떻게 보면 서던 리치까지 여성의 관점과 이야기를 다루어내려고 한 감독의 일관성이 느껴지는 부분인데, 멘은 그것이 매우 노골적이다. 2000 ~ 2010년 이후로 수위로 떠오른 여성 혐오와 유해한 남성성,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는 멘은 한가한 영국의 시골과 아름다운 풍광들, 고대의 이미지와 종교, 더 나아가서 문자 의미 그대로 재생산되는 남성성의 유해함을 하나로 엮으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진 않다.

멘은 유해한 남성성의 그로테스크함을 드러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물론 영화는 장면마다 유해한 남성성에 대한 사례들을 충실하게 넣어두었고, 이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감 불쾌한 느낌을 주게 만든다. 시골에 도착하는 시퀸스를 예로 들어 보자: 사과를 주워먹는 주인공을 보면서 금지된 과일이니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불쾌해하다가 갑자기 농담이라고 이야기하는 제프리의 모습은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가스라이팅인 성경의 선악과(=사과)에 대한 이야기다. 제프리의 수동 공격성이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편견들 등등은 이 영화가 무엇을 다루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스토커하는 알몸의 남성의 그로테스크함, 종교적인 이야기를 들먹이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신부, 이유없이 여성에게 욕하는 소년, 스토커를 죄없이 풀어주는 경찰 등등까지 모든 것이 유해한 남성성의 전형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유해한 남성성들(소년 역을 제외하고)을 하나의 배우(제프리 역의 배우)에게 1인 다역을 맡김으로써 '결국은 하나의 남성성의 전형'에 집중한다. 이 부분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아키타입들이 같은 페이스를 공유함으로 유해한 남성성이라는 분명한 이미지를 관객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지는 유해한 남성성의 재생산 장면은 문자의미 그대로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집약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멘에서 눈여겨 볼 또다른 점들은 영국 시골의 자연풍광을 영상으로 잡아내는 감독의 시선이다. 멘에서 보여지는 영국 시골의 풍광은 유해한 남성성의 '역사성'을 부여한다. 폐허가 된 터널, 교회, 흐르는 구름과 밭들, 더 나아가서 석상과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 썩어가는 사슴의 사체 등등을 유해한 남성성 테마 아래 하나로 엮는다.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을 일종의 정액과 정자의 메타포로 이용하여 사슴의 사체 새까만 눈구멍 속으로 들어가서 석조에 새겨진 고대 남성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장면 등 상당히 강렬하다. 이는 감독의 전작인 서던 리치에서 보여준 강렬한 이미지를 이어받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의 강점이 거기서 끝난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강렬하지만 이것을 하나로 묶는 맥락Context는 상당히 부족하다. 엑스 마키나의 예를 들어보자. 엑스 마키나는 인형의 집을 SF와 가이노이드(여성형 안드로이드)라는 아키타입, 그리고 백마 탄 왕자라는 판타지를 뒤트는데 집중한다. 영화는 여성 서사와 남성성의 유해함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너무 크게 벌리지 않고 유기적으로 잘 엮어냈다. 엑스 마키나에서 중요한 부분은 자신을 구해주려는 판타지(성적인 것과 함께)를 가진 남성을 거부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하는 주동적인 여성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이 주동적인 여성의 존재가 엑스 마키나의 성정치적인 맥락들(남성의 시선으로 극을 이어나가다가 반전을 맞이하는 것)을 완성하며 무기질의 영상 톤과 서사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하지만 멘은 그렇지 못하다. 멘에서 여성 주인공은 유해한 남성성의 피해자이지만, 남성성의 가해에 맞서서 그 여성 주인공을 위한 서사는 마련되지 않았다. 멘에서 여성 주인공의 서사는 자살한 남편을 떨쳐내는 과정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유해한 남성성이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유해한 남성성은 고대(알몸의 남성)로부터 중세(성경과 종교)로, 그리고 현대의 시스템(경찰)으로까지 이어자고, 여성에 대한 구애와 사랑, 왜곡된 관계에의 요구로 이어진다. 그것이 남성의 출산과 재생산을 거쳐서 자살한 남편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하지만 유해한 남성성이란 분명한 메세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유해한 남성성에 천착하여 그의 대척점인 여성 주인공을 단순한 피해자으로만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분명히 친구가 이야기했듯이 '그 망할 남자놈의 거시기를 도끼로 잘라주겠어'라고 한 말을 주인공이 실현 했으리라 보여지는 엔딩의 장면은 전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유해한 남성성의 재생산을 보여주면서 성기 절단씬을 보여주지 않은데는 어떤 '모호성'을 엔딩에 주기 위한 감독의 복안이 있으리라 느껴지긴 하지만, 그러기에는 영화의 맥락은 풍광의 모호한 이미지들과 남성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묻혀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유해한 남성성의 반대편에 놓여있는 여성 주인공에 대한 서사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멘은 샘 페킨파의 인간 혐오 영화 스트로우 독의 남성 혐오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멘과 비슷하게 영국 시골을 배경으로 한 스트로우 독에서 샘 페킨파가 여성을 혐오하긴 했지만 남성 마초의 파괴성과 광기로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을 다루었고, 멘 역시도 여성을 향한 남성의 유해함과 그로테스크에 맞서 여성이 남성의 성기를 도끼로 절단한다로 결론 내리기 때문이다. 다만 스트로우 독 자체가 갖고 있었던 깊은 니힐리즘이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준것에 반해, 멘의 유해한 남성성의 재생산이란 그로테스크한 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어딘가 밋밋하다. 스트로우 독이 샘 패킨파의 니힐리즘과 인간 혐오이라는 강렬한 테마에 갖고 있었던 것에 반해, 멘의 테마는 분명 그로테스크하긴 하지만 어딘가 트위터의 '핸냄저 썰 푼다 ㅡㅡ'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영화 멘이 결국 위에서 이야기한 주동 세력과 반동 세력 모든 것을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 없이 한쪽을 향한 혐오로 구성하였기 때문이다. 엑스 마키나처럼 유해한 남성성의 대척점에 저 너머를 바라보는 희망과 비전, 혹은 그것 조차 압도하는 공허함과 분노가 있었다면 영화가 그로테스크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멘은 남성성의 그로테스크함과 기분 나쁜 부분들을 잘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렬한 이미지들과 풍광들은 존재하지만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무게감있게 다루지 않은 부분이 패착이라 할 수 있다. 서던 리치나 엑스 마키나 같은 작품들을 찍은 감독인 만큼 그 다음 작들은 기대해볼만 하지만, 이후에는 좀 더 작품에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복안을 두고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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