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제임스 그레이만큼 하나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감독도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마치 지알로의 거장인 다리오 아르젠토처럼 그의 영화는 단 하나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타자로 살기, 우울함과 축축함, 가족과 자신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등등까지 리틀 오데사에서부터 아마겟돈 타임까지 제임스 그레이는 일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 재생산했다. 보는 사람으로써는 그의 일관성에 질릴 때도 있기도 하고, 그의 집념에 존경을 느낄 때도 있는, 그야말로 양가적인 감정을 제공해주는 것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묘미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 중 아마겟돈 타임은 가장 근원이자 변칙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어떻게 제임스 그레이라는 인간이자 예술가가 만들어진 최초의 모티브를 다룬다:벗어나고 싶은 현실, 부모의 사랑과 감정적인 억압, 자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 탈출하고자 하지만 좌절하고 다시 중력에 사로잡혀 떠내려올 수 밖에 없는 무겁고 축축한 슬픈 결말까지. 제임스 그레이가 실제 겪었던 자신의 삶의 사건들이자 모든 자신의 영화의 모티브를 다루는 영화인 만큼 여지껏 나왔던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다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가장 변종과도 같은 작품이며, 자신의 삶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는 작품이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다.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통상적으로 보여주던 유대계 이민자의 문화 외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도 주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펑크, 디스코, 레게나 아프리카계 미국 빈민층들의 하위 문화들, 차별받고 억압받는 문화 등등까지 이러한 이야기들이 서브 플롯으로 주요하게 등장한다. 엄밀하게 보자면 비주류긴 해도 백인이기에 덜 차별받고 주류 사회에 낄 수 있는 이주 유대인들의 위치와 다르게 아프리카 미국인들은 절대 주류에 낄 수 없었고, 그러한 차별들을 공공연하게 받았다. 주인공과 친구는 탈출하는데 실패하고 절도로 경찰에 잡히지만, 주인공이 운좋게 빠져나가고 주인공 친구가 잡혀서 소년원에 가는 것은 이 둘의 계급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단순히 가족 공동체를 넘어서서 세대 간의 공감대와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중재자와 희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본적으로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드러나던 중재자인 어머니의 역할을 더 넘어서 세상을 알려주는 동시에 주인공에게 롤모델 역할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이 할아버지라는 것이다:할아버지의 존재를 통해서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았었던 서로 다른 두 성향의 조화(아버지와 어머니, 부성과 모성의 갈등)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골암으로 죽었을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가족에서 구심점을 잃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독특한 점은 아마겟돈 타임 이전까지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는 유대계 이민자의 삶만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였고,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다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종, 문화적인 특수성에 천착하여 영화를 만들었고, 모든 이야기들이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유대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마겟돈 타임에서는 자신의 문화적, 인종적인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집단을 벗어나서 새로운 존재인 또래 친구 집단을 등장시킨다. 함께 일탈을 하고,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주류 사회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 등등까지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느끼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영화는 섬세하게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배치하면서 제임스 그레이가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아마겟돈 타임이 다른 제임스 그레이 영화보다 높게 비상하는 부분은 단순히 타집단에 소속된 사람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집단이 격차를 느끼는 것, 그리고 부조리하고 무례한 세상까지 넓게 바라봤다는 것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에 선역, 악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게끔 양가적인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과거를 형성했던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는 과정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마겟돈 타임에서는 제임스 그레이가 '거부'하고자 하는 요소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사립학교와 트럼프를 위시한 상류층 인물들의 차별적인 발언들, 유대인이 고통받았던 역사 등까지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종의 '악'의 개념이 등장한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임스 그레이가 경험했던 백인 상류층과 엘리트의 무지이자, 편견, 그리고 억압이다. 이들이 드러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들은 단순히 오해와 선의, 혹은 그레이가 이전까지 다뤘던 문화적 무거움과 공동체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과 완전히 다르다. 제임스 그레이가 이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절망이다:레이건이 당선되었을 때 핵전쟁Amaggedon Time이 일어날 것이라고 절망하던 가족들의 모습처럼 세상에 무지와 차별이 승리할 때마다 거기에 대해서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주인공은 어리고, 나아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파멸적인 상황을 벗어난 것 뿐이다. 세상에 무지와 무례는 넘쳐나고 할아버지는 죽어 가족은 구심점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좋았던 기억들을 간직한 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지와 무례함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강당의 연사를 뒤로 하고 주인공이 떠나는 장면과 지나쳤던 다양한 사건들이 오버랩 되는 장면은 그의 유년시절을 뒤로한 채 성장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연장에 있지만, 가장 크게 변화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제임스 그레이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자기 인생의 모티브에 맞춰서 우울하고 축축하며 무거운 감수성으로 다뤄왔다. 그러나 아마겟돈 타임은 그러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질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서 그 세계를 넓히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모티브가 이어지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그의 영화에서 나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드러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를 본다면 꼭 추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