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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영화는 네 멋대로 해라는 기본적으로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와 프랑스 느와르 영화의 패러디였다.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슬래커(현학적으로 노가리를 까며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들)들의 장광설과 점프 컷들, 의식의 흐름과 성에 대한 개방된 의식까지, 60년대라는 배경과 함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장 뤽 고다르라는 영화 감독이 이 세상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순간이자, 그로부터 이어지는 영화의 사조가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영화를 직접 봤던 본인에게 있어서 첫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는 그렇게까지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보는 순서의 잘못일 수 있다:본인은 네 멋대로 해라를 보기 이전에 네 멋대로 해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데이브 홀츠만의 일기, 네이키드, 심플 맨, 스캐너 다클리 같은 작품들을 먼저 봤다. 스타일의 관점에서 본다면 장 뤽 고다르의 스타일을 흡수시켜서 발전시켰기 때문에 네 멋대로 해라는 투박한 작품이었다.

기본적으로 프랑스 느와르의 패러디라는 문법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네 멋대로 해라는 오히려 이후의 작품들에 비해서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보인다:경찰을 죽인 범죄자, 연인, 도주와 파멸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 이전 프랑스 느와르 영화들의 특징이었다. 여기에 고다르는 자신의 스타일을 집어넣으면서 일종의 느와르 영화에 대한 '조롱'을 만들어낸 샘이었다. 가볍고, 횡설수설하고, 섹스를 탐닉하며, 사회를 겉도는 범죄자는 기존 프랑스 느와르의 범죄자와 달랐다. 이러한 괴리가 그 당시 영화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리고 프랑스 느와르의 진중함과 다른 젊은 예술가의 에고와 자의식이 묻어나왔다. 분명 이 영화가 고다르의 시작이긴 했지만, 동시에 느와르의 패러디라는 장르의 형식을 빌었기에 그런 치기 어림이 스타일로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조금 부족했다.

경멸은 그런 의미에서 본인에게 어떻게 보면 '감독으로 고다르'를 확인할 수 있던 작품이었다. 극작가 남성이 아내로부터 경멸 받고 버림 받는 과정을 다루는 이 영화는 고다르가 어째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 다양한 상징들과 장면들이 직교하여 영화의 형태로 컨텍스트를 구축하고, 그것을 관객들에게 다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게끔(번역의 문제, 예술의 문제, 뮤즈의  남자와 여자의 문제 등등) 여지를 만들어 둔 작품이었다.

하지만 경멸의 특이한 부분들은 그렇게 다양한 컨텍스트를 언어로 풀어내기 보다는 영상과 대화의 형태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야망을 가진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영화 내에 우겨넣고 감상자가 소화해내기를 강요한다면, 경멸은 대화의 텍스트가 어렵지 않고 반복적이지만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 속에서 무언가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심한듯이 툭툭 던지는 이미지들(샤워 후 입는 토가의 이미지, 가발 등등)과 서로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엇나감의 골이 깊어지는 과정들, 인물과 컷이 변화하는 과정들까지 미묘한 부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 

경멸의 생뚱맞은 이미지들의 배치(일리어드, 오딧세이, 호메로스 등등)이나 초현실적인 분위기들은 어떤 의미에서 루이스 부뉴엘을 연상케하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부뉴엘에게서 느껴지는 허무감과 극단론과 달리 고다르의 이미지들은 좀 더 정교하고 정제된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고 이미지 중심으로 컷과 시퀸스를 구성하는(필름 통을 원반 던지기 하듯이 갖고 노는 미국인 제작자, 유리없는 뚫린 문을 오가는 주인공 부부 등등) 부분들은 분명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할 수 있다.

후기로 갈수록 실험적인 이미지를 시도한 고다르의 작품을 봐야겠지만, 경멸은 고다르의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