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인류사와 지방사의 관계는 단순히 부분과 집합의 관계로 정의내릴 수 없다. 어떤 범인류사의 흐름들은 지방사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며, 어떤 지방사의 사건들은 그 지방만의 특수한 사건들로만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류사와 지방사는 서로 논리적으로 등치 불가능하며 서로의 정합성을 담보하지 않는 독립적인 명제다. 하지만 그러한 범인류사와 지방사를 뒤집어서 등치시키는 예술작품들이 있다:그러한 작품들은 논리적으로 등치될 수 없는 두 명제를 등치시킴으로 이런 예술 작품들은 단순히 한 지방, 집단, 개인의 경험이 아닌 범인류적인 경험과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 논의는 논리학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두 명제, 범인류 보편사를 지방사로 특수화하기, 혹은 지방의 특수사를 범인류사로 보편화하기라는 모순적 명제가 예술 작품의 미학 내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순적 명제들이 참으로 성립할 수 있는데는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거나 특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명제와 조건에 대한 숙고와 통찰력, 더 나아가서 각 보편 명제와 특수 명제 사이의 논리적 관계망을 뛰어넘는 유비추리적 관계망, 미학적 통찰력과 감상, 공감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요컨데 뛰어난 예술적 통찰과 미학적 성취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명제들을 연결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주제와 담론을 생산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에드워드 양이 감독하고 대만 계엄령 시절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는 최초의 대만 청소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고, 어떻게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다루면서 중국 본토에서 도망나온 사람들의 암울했던 삶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점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일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국의 영화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명작으로 칭송받았을 뿐만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가 복원을 지원했을 정도로 영화팬들 사이에서 이 영화에 대한 공감대는 대만을 넘어서 전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기법이나 이야기를 다루는 관점에서 훌륭한 영화였다. 영화는 막막한 미래와 암울한 대만의 분위기를 섬세한 필치로 훌륭하게 다뤄낸다. 예를 들어 청소년 시절의 풋풋한 이미지와 대만의 암울한 상황(지나가는 탱크, 행군하는 군대, 군복을 입은 교련 선생 등등)들을 같은 컷 안에 배치하되 문이나 버스의 차창 같은 하나의 막을 두어 분절시키는 구조를 취하여 주인공들의 청소년 드라마를 둘러 쌓고 있는 암울한 시대상을 드러낸다. 그 외에도 대만을 지배했던 일제의 유산들을 소품처럼 배치하거나,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과 막연한 탈출구로써의 도미 유학, 지식인의 사상검증과 청소년 계층의 갱스터 문화 등등 다양한 것들을 다룬다. 그것들이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영화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4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허나 흥미로운 점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대한 세계적인 찬사일 것이다:분명 영화는 기법적으로 잘 만들어진 부분들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근 40년간의 대만의 계엄령 시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감수성은 대단히 특수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이 영화가 대단히 특수한 감수성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깊이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역으로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에서 가장 의외인 부분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갱스터'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아이들은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불량 서클을 만들고, 거기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친밀감을 갖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단순한 탈선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영화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갖혀 사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위에서 언급한 한 공간을 둘러싼 두 층위의 현실처럼 이 둘은 서로 섞이진 않지만 서로에게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부모 계층은 때로 자식 세대에게 가르침을 주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지만(주인공 아버지가 주인공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모 세대는 이미 시대의 어두운 부분들(사상검증이나 변화해버린 주변 환경, 먹고 살아야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 등)을 감당하기 벅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에 동년배들의 변두리 문화가 들어선다. 영화는 이들이 무대를 잡고 장사를 하거나, 미국 팝송을 부르거나, 당구를 치는 등 마치 '어른인 것마냥' 행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어디까지나 청소년들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암시한다. 가장 단적인 부분들이 '폭력'에 대한 부분들이다. 영화에서 청소년 갱들이 서로를 린치하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들의 폭력들은 대단히 부드럽다. 반대의 사례를 뽑는다면 한국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다루는 한국 영화의 폭력의 사실성과 극단성에 비교해본다면, 이들의 폭력은 어딘가 어설프다. 물론 그것이 점점 고조되면서 살인까지 도달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긴 말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는 갱스터 영화라는 측면에서 단순히 대만사라는 지방사에서 세계사적인 보편성과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회의 변화와 혼란, 부모세대 권위의 몰락,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체 문화들(갱스터에서 서브컬처, 대안 집단 등등)은 세계사의 큰 흐름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대체 문화는 어떻게 본다면 반항인 동시에 그 권위의 공백을 채우는 존재였다. 다른 영화 예재들을 보자. 전설적인 영화 대부는 주인공은 부모의 부도덕한 불법 비즈니스 왕국을 물려받기 싫어하는 반항아에서 왕국의 적장자로 떠오르는 이야기를 다룬다.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 했었던 이민자 사회의 어둠과 결국 부모세대를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숙명론까지 대부 시리즈는 그저 범죄 영화의 교과서를 넘어서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핵심은 각각의 지방적인 영역들(역사, 문화, 이야기, 전설 등등)에 대한 깊은 통찰은 때로는 인간에 맞닿아있는 근원적인 본질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단순히 지방이나 지엽적인 이야기를 넘어서는 번뜩임을 보여주었다.


다시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으로 돌아와보자. 영화는 그러한 시대가 갖고 있는 공백을 채워넣기 위해서 젊은 세대가 방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소년 갱들과의 알력이나 방황이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결국 근원적인 공허를 채워넣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사랑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공허와 방황 끝에서 소년은 우발적으로 소녀를 살해한다. 이는 대만의 젊은 세대에 대한 은유(탈출구 없이 스스로 파멸할 수 밖에 없는)인 동시에, 섬세한 영혼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