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리치 립스키의 해피엔드는 한 사형수가 사형당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생애를 거슬러올라가는 것을 역재생의 문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사형은 탄생으로, 감옥은 학교가 되고, 결혼의 과정은 역으로 이혼을 위한 과정이 된다. 역재생의 논리는 이미 고전적인 흑백영화나 영화의 테크닉에서 꽤나 많이 사용되었던 테크닉이자 문법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역재생은 ‘기존의 것을 낯설게 한다’ 라는 측면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코미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역재생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왜냐면 역재생의 변칙적인 흐름은 어디까지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라는 개념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흐름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서 흐름을 예측하게 된다. 흐름을 예측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상식으로 예측 불가능한 엉뚱함과 논센스야말로 코미디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논센스가 상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해피엔드의 강점은 역재생과 시간을 역으로 구성하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역재생의 변주에 정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흐름을 섞어넣는 것이다. 한 시퀸스를 예로 들어보자:주인공의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을 피기 위해서 외간 남자를 불러놓고 티타임을 갖는 이 장면에서 아내와 남자는 음료를 마시면서 과자를 계속해서 먹어치운다. 이것이 역재생으로 진행되는만큼 이 둘이 과자를 계속해서 뱉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점은 과자를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차를 뱉어내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지만, 불투명한 찻잔 때문에 차를 마시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를 마신다‘라는 정방향의 흐름과 ’과자를 뱉어낸다’라는 역방향의 흐름이 공존하게 되면서 예측불가능한 논센스들을 만들어낸다.
해피엔드는 장면 장면을 이렇게 정방향과 역방향의 흐름을 엮어서 묘사하는 것 외에도 역순으로 진행되는 인물의 대사나 큰 이야기의 흐름에서도 말이 되면서 말이 안되는 모순된 흐름을 같이 구성하고 있다. 해피엔드의 시작은 치정살인을 한 주인공의 사형에서 시작되서 주인공의 출산을 끝으로 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치정살인의 대상이었던 두번째 사랑이자 아내가 주인공의 첫 사랑이자 벗어나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가 되고, 첫번째 사랑이 주인공이 되찾아야 하는 사랑으로 묘사한다. 해피앤드는 큰 틀에서 첫 사랑에서 느끼는 불완전함을 두번째 사랑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치정극의 구조로 표현한다. 중요한 점은, 정방향과 역방향 모두 이야기가 상식적인 흐름에서 말이 되게끔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재생의 기묘함과 비교되는 정방향의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역재생에서 나오는 코미디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해피엔드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코미디 영화이자, 코미디 영화의 교보재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프로메테우스, 코버넌트, 그리고 로물루스 (0) | 2024.08.16 |
---|---|
[칼럼]주술회전에 대한 생각들 (0) | 2024.03.31 |
[감상]사이버펑크 엣지러너 : 몰락 (0) | 2023.09.29 |
[칼럼]풀 한포기 없이와 B급 영화의 매력 (0) | 2023.04.22 |
[짧은 감상]경멸과 장 뤽 고다르에 대하여 (0) | 2023.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