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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1.찬반 양론이 크게 갈린 에우레카 7 극장판, '포켓속에 무지게가 가득'을 감상했습니다. 일단 보고 나니까, 찬성과 반대 양쪽 다 왜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만, 저는 찬성쪽의 손을 크게 들어주고 싶더군요.

2.사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사상 초유의 독특한 작품(적어도 제 애니 감상사에 있어서)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감독과의 질의 응답 시간에서 감독이 이야기 하기를, '제작은 총집편이 아닌, 음악에 있어서 리믹스와 같은 작업이었다. 원곡에 있는 구절들을 다시 분해하여 변주를 주고, 기존의 작품의 맛이 나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라고 하더군요. 보통 유명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이 극장판으로 총집편 또는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오는데 비해서, 에우레카 7 극장판은 원작 자체를 '리믹스'(정말 적당한 표현이 없군요)한 점에서 정말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3.그래도 원작과의 관계를 밝히자면, 원작의 이전 시기, 즉 인류와 스카브 코랄과의 첫 접촉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일단 감독 자신도 '페러럴 월드로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보지말고 원작과 이어지는 관계라고 봐달라'라고 했고, 극장판 자체가 원작을 '리믹스'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전체적인 이야기 상으로 타당하기 때문입니다(리뷰로 다루도록 하죠)

4.개인적으로 다양한 극장판 애니를 봐왔지만, 극장판이 나옴으로서 원작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품은 이게 처음인듯. 극장판 자체의 퀄리티도 나쁘지는 않지만, 보고 나면 원작의 감흥이 2배로 됩니다.

5.여러가지 설정들로 가지고 말이 많은 듯 한데, 이는 나중에 리뷰로 다루도록 하죠.
(개인적으로 설정 가지고 문제될건 없다고 봅니다.)

6.아쉬운 점은 50화나 되는 시리즈를 2시간 안에 축약해서 리믹스하려고 하다 보니까,
대단히 거친 느낌. 차라리 OVA였으면,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7.그 외, 잡다한 이야기들.

5분정도 늦어서 극장에 들어갔더니, 이미 시작했더군요. 근데 도미닉이 랜튼의 선생으로 나와 앜ㅋㅋㅋㅋ
(사실 극장판 전반적으로 '저기 왜 저케릭이 나와 앜ㅋㅋㅋ'스러운 장면이 많습니다)

니르바슈와 타입 디 엔드가 아키타입이 되기전 유생으로 나오는데, 앜ㅋㅋㅋ 너무 귀여워 앜ㅋㅋㅋ
나중에 배게든 인형이든 나오면 진짜 하나 정도 사줄 용의가 있음.



극장판 마지막에 백치 컨셉의 생머리 에우레카가 나옵니다.

















극장판의 가치가 여기있다고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감독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 질문을 "작품 내에서 신화구조에 대해서 열심히 다루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극장판에서 사용된 신화구조가 원작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감독과 메카닉 디자이너, 통역, 그리고 지위 직책 및 이름을 알 수없는 정체불명의 한 분(죄송, 분명하게 자기소개 하셨지만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근수근 하고는 감독 분이 저를 보면서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인증샷:맨 오른쪽 분이 정체불명의 사나이(......), 오른쪽에서 첫번째 분이 감독,
두번째 분이 메카닉 디자이너, 그리고 마지막 분이 통역.




"대단히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군요."



답변은 만족스러웠지만 순간 제가 질문을 잘못했는지 당혹;;;



사인을 받아왔습니다만, 옆에서 같이 사인 받던 사람의 붓펜을 빌려서 싸인을 받은 덕분에 번졌습니다 앜ㅋㅋㅋㅋ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게 어딥니까 ㅠㅠ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전반부(전편 읽으러가기)는 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 그리고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그 사이의 희망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작품의 후반은 이렇게 삶을 부정하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과 삶을 긍정하는 나키아미의 가르침으로 나누어져서 대립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다.





4.대립-나키아미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핍박받는 민족인 테시크 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히루코를 인도하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히루코를 시체에서 추출하는) 루아콘 교의 무녀로 선발되었다. 어느날 그녀는 시체 더미 속에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루아콘 교의 무녀의 의무를 포기하고 산노바의 곁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세상들과 만난다. 한 때 그녀의 이름은 '구름을 베는 자'였지만, 이제 그녀의 이름은 '나키아미'이다.

망념의 잠드라는 작품에서 나키아미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잠드들(라이교와 아키유키, 얀고)의 어머니이며, 아키유키와 더불어서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 내의 중요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루아콘 교의 무녀일 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잠드들에게 가르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공존과 화해를 가르친다.

전번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잠드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인 존재다. 일단 잠드라는 존재는 작품 내에 등장하는 루아콘 교적인 개념인데, 특이한 점은 잠드에 대한 나키아미의 가르침과 루아콘 교의 가르침이 서로 상반된다는 것이다. 루아콘 교 역시 잠드를 죽은 자와 산 자의 중재자로 본다. 하지만, 루아콘 교는 살아있는 것과 그 현제의 세계 그 자체를 고통이라 보고 이를 죽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잠드는 산 자를 죽음이라는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는 구원자인 것이다.

루아콘 교라는 종교 자체는 불교, 티벳 불교, 이슬람 교, 기독교 등등을 복합적으로 혼합한 종교이다. 루아콘 교의 교리 자체는 '일체는 고통(苦)이다'라는 불교적인 사고방식과 이슬람교의 성지 순례 개념, 기독교의 중보자적인 존재 잠드,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종교적 지도자 '황제'까지 다양한 종교 개념이 혼재되어있다. 이러한 루아콘 교의 교리는 인류 종교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루아콘 교는 인간이 현세적인 고통을 구원받기 위해서 만들어낸 극단적인 종교 개념이다. 즉, 인간은 극단적인 삶의 부정, 즉 죽음으로서 구원하고 새로운 삶은 창출하겠다는 것이다.(물론 현실 종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유의하시길)

그런 루아콘 교를 표상하는 것이 '황제'라는 개념이다. '황제'는 죽은 자에게 히루코를 심어서 만들어진 잠드이다. 그리고 대순례의 때, 황제가 깨어나 태동굴에 있는 순례자들(요호로기)을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좋은 말로 하면 이렇지, 하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때죽음이다), 다시 한번 삶을 만들어내는 대순환을 일으킨다.




하지만, 나키아미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반대로 가르친다. 살고 싶다면, 소원하라. 자신을 잃지 마라. 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명백히 루아콘 교의 '황제(잠드)'와는 다르다. 그녀는 죽은 자들의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삶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을 토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그 둘을 아우르는 존재인 잠드를 잉태한다.

나키아미는 자신의 여동생인 쿠지레이카와 한 때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산노바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 끝에 쿠지레이카를 만났지만, 테시크 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잠드가 된 쿠지레이카를 본 나키아미는 더 이상 자신이 고향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타는 고향을 뒤로한 그녀는 산노바를 만나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태동굴로 향한다. 동시에, 하루와 아키유키도 잠드가 모이는 태동굴로 향하고, 이슈와 라이교는 금강탑을 둘러싼 일전에서 승리하여 히루켄 황제를 쓰러뜨리는 듯 하지만, 오히려 황제를 깨우게 된다. 그리고 히루켄 황제가 깨어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으로 흐른다.




5.화해-대단원,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영웅들의 이야기는 막바지로 흘러 죽은 자와 산 자, 삶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극단적인 세계가 화해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인물은 바로 히루켄 황제다. 히루켄 황제는 누구인가? 그는 그 누구도 아니다(Nobody). 그는 죽은 아이며, 이름도 자아도 없는 존재다. 그는 대순례의 때, 태동굴에 모인 순례자들의 영혼을 삼켜 세계를 정화하고 세계를 유지한다(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막중한 의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 내에서 황제는 삶에 대한 고통과 공허감, 일체의 삶의 부정적 모습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대순례의 의무에 얽메여, 누구인지도 모르는 히루코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그(혹은 그들? 아니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자신의 존재의 소멸, 죽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제에게는 '대적자'가 필요하다. 자신과 대칭되는 존재. 황제는 아키유키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그의 '의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자아를 잃었을 때) 도움을 준다.

황제는 금강탑에서 풀려나(아이러니 하게도 이슈가 황제를 죽이기 위해 설치한 폭탄에 의해)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고, 태동굴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선택한 대적자 아키유키와 대결한다. 이 대결은 상징적인 싸움, 삶의 희망과 절망의 대리전이다. 아키유키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은 대단히 작다. 그러나 황제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부정, 고통은 엄청나게 크다. 아키유키와 황제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거대한 슬픔과 작은 희망의 싸움이다.




나키아미는 산노바와 만난다. 거기서 그녀는 산노바에게 자신이 산노바를 떠나서 깨달은 것들ㅡ작은 희망과 삶에 대한 긍정ㅡ을 이야기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긍정은 대단히 지독한 긍정이다. 핍박받는 민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많은 비극을 봐온 그녀가 산노바 앞에서 세상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노바는 나키아미의 의지와 소망을 받아들여,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태동굴을 봉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키아미는 태동굴에 모인 수많은 히루코들을 정화하고 태동굴을 자신과 같이 봉인하면서 천년 동안의 긴 잠을 자게 된다.




나키아미가 태동굴을 봉인할 무렵, 아키유키와 히루켄 황제의 싸움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황제는 아키유키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사라지길 원했지만, 아키유키는 히루켄 황제에게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준다. 희망과 절망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승리하는 것이 아닌, 희망이 절망을 감싸 안으면서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아키유키'라는 소중한 이름)를 부여한다. 결국 황제는 아키유키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자아를 잃고 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어둠은 물러가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게 된다.




6.귀환-Life Goes On.


그리고 영웅은 다시 한번 자신이 구했던 일상으로 귀환한다.




나키아미와 아키유키의 모험은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가? 아니다. 그들의 모험은 세계를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 세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남과 북은 그 이후 휴전을 했지만, 여전히 언제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언제라도 문제는 다시 생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모험은 무의미한 헛수고였을까? 아니다. 이들은 모험을 통해 그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희망'을 찾아냈다.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자신과 함께 태동굴의 히루코를 정화하고, 태동굴을 닫은 것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소망, 그 소망이 있으면 언제든지 세상이 나아질 희망과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그리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일상으로 귀환한다.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고,
계속해서 마음을 전해주려고 했던 소중한 사람, 하루에게로.



※후기


4개월이었다. 리뷰 하나 완성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이었다. 사실, 리뷰 자체를 포기할 뻔도 했었다. 리뷰를 중간까지 썼다가 뒤엎기도 했었다. 사실 4개월만에 리뷰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쁘다기 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실상, 작품의 핵심만을 짚어서 리뷰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적어도 10년 안에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본즈는 그러한 나의 전망을 비웃듯이 약 3년만에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방영 당시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26화 하나 하나가 모두 몇 년간 공을 들인 극장판처럼 느껴졌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사실, 4~5개월 정도를 질질 끈 리뷰를 완성하고 나니까, 뭔가 시원 섭섭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드디어 끝냈으니까, 다른 리뷰를 쓰러 갈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끝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글 솜씨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면 더 축약적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글 솜씨가 후달리는 관계로 글이 장황하게 길어진 점을 좀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올리며, 부족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원래 구매계획에 없었지만, 얼결에 구해버린 블러드+ 박스셋 上. 사실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애니메이션 감상 초기에 본 애니니 미운정 고운정이 박힌 작품입니다. 원래 나올 계획에도 없는 작품이 전설적인 쓰레기 영화 블러드 때문에 나왔다 손 치더라도, 오랜만에 정발된 TVA 박스셋이니(근 2년만?) 반갑기도 합니다만....본편을 꺼내서 보니까...후....




한마디로
'너님들은 정가 3만원 이상 주고도 팬들이 만든 자막보다
 못한 자막을 볼 것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전설이 되어버린 자막. 사실 프랑스 마지막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대략 난감이네요' 라는 신종 유행어를 쓰는 DC인이었다는 사실을 정론화 시킨 소니픽쳐스의 DVD라는 점에서 이 블러드+ DVD를 사신 분이나 가정에서 보시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DVD를 산 시점에서 뭐된겁니다. 넵. 이제부터 밑에서 차근 차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충격을 굳이 비교를 하자면,






'Fire In The Hole!('수류탄이 폭발한다, 조심해!'라는 의미)'가 '구멍에다 쏴'가 된 거 보다 더 큰 충격을 느낄 것입니다. 




난 경고 했어!














1.우선 OP 부분. 사실 원래 정확한 가사는

悔(く)やみたくないよ生(う)まれた事(こと)
후회하고 싶진 않아,태어난 것을..

인데,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로 번역했습니다. 원래 가사는 도치법이긴 한데, 그냥 '태어난 걸 후회하고 싶지 않아'라는 식으로 번역하신 자막 제작자들도 많습니다만...이제부터 밑에서 나올 4차원 초월번역의 전주를 알리는 부분입니다.






2.원래 가사는

降(ふ)り頻(しき)る空(あおぞら)のナミダ
쏟아지는 창공의 눈물

입니다.  あおぞら에서 あお(파랑)이라고 보고 해석했다면, 별무리가 없습니다. 근데 도대체 '비'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게다가 명사형으로 끝난 노래 가사를 문장으로 끝내다니, 이건 의역의 도를 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3.이제부터가 본 게임, 잇힝★

원래 원 대사는 '간식먹을 시간이야(おやつの時間だ)'입니다....대사의 어느부분이 꼬르륵 소리가 난다는건데? 

사실 일본어 생 초보라도 '~の時間だ'는 들었을거고, 당연히 '~의/할 시간이야'라고 해석을 할건데,
도대체 누가 번역을 했는지.....그냥 장면에 맞게 의역하고 끝낸 듯 합니다.







4.여러분은 여태까지 틀린 일본어를 알고 계셨습니다.

사실 'いただきます'는 '잘 먹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진짜 배고파'입니다. 악센트는 '진짜↗ 배고파↘'입니다.  


...나가 죽어버려








5.일본에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고마움을 표시할 때는 'ごちそさま'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밥먹고 나서 '잘 먹었습니다'라는 의미로 쓰는게 아닙니다. 

....아 시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6.'ごめん'은 '미안합니다' 가 아니라 '곧 갑니다' 입니다.
대사의 흐름상 맞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귀와 눈에 괴리감을 유발하여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듭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들리는 언어를 번역하여 자막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소니픽쳐스에서는 자막을 번역하여 들리는 언어로 만듭니다!





7.제가 대충 들은바로는 '病院に行く前に、おまえが好きの海の前、いってやるよ(병원에 가기전에 네가 좋아하는 바다 앞쪽으로 가줄께)'이고, 자막 제작자 분은 '병원에 가는 길에, 너 좋아하는 바다 쪽으로 들러가주지'로 해석했습니다.





오오 이것이야 말로 초월번역 오오


그러고 보니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오토바이도 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실제 시험하지는 마세요.






 


8.다른 자막을 인용하자면 '기분이 좋아서 효녀가 되셨나?',
제가 듣기로는 '気分で親孝行か?(직역으로 '기분으로 효녀인건가?')









여러분은 지금 효녀가 애인 생긴 딸로 바뀌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야에게 애인이라니!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소니픽쳐스, 사야에게...사야에게 애인이라니! 이건 말도 안돼!






 


9.1화 자막만 초월 번역이라는 사람들의 상상을 철저하게 박살내버리는 2화의 한 장면.
사실 자막 때문에 여기까지 보신 너님이나 나님도 이미 다 끝났어! 안돼 죽고 싶지 않아 으아아아아아





사실 카이는 무모한 열혈 청소년이 아닙니다. 가족 같은건 생각도 안하고 파티, 영화를 좋아하는 비행청소년이에요.










자막 제작자 분의 번역은 '넌 말이지, 더 무모하고,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게 너잖아?'이고, 
대충 듣기에도 이쪽 번역이 더 맞아 보입니다.


    


10.1~2화 총 합해서 최고의 번역 하이라이트. 1화 내용 중에 미군 시설에서 도망나간 익수, 마우스의 행방을 두고 반 아르자노와 오키나와 미군 기지 총사령관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 中

원문은 이렇습니다.

반 아르자노:그런데 타입 B는 지금 어디 쯤 있는거지?
총사령관:아마도 코자 즈음이겠지.
반 아르자노:코자라....





굵게 표시한 부분을 DVD 자막에서는....













오 하나님 안돼, 씨발.



보면서 들었던 생각 두가지....





생각 1)


패배의 ☆★고자★☆,
패배의 ☆★일본어 표준 표기법★☆




소니픽쳐스:저, 그게, 일본어 표준 표기법이 영 좋지 않은 부위를 스쳐서...
Blood+:그게 무슨소리요, 아니, 으사양반, 내가...내가 '고자'라니!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 



생각 2)



마우스 타입 B:요태까지날미행한고야?
소니픽쳐스:물논↗. 그리고 자네가↗ '고자'란곧또↗알고이찌↘.
논'코자'에↗ 잇는개아니야↘.요태까지그래왔고↘,아프로도꼐쏚↗!


원래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참조 링크는 여기), '코자'는 '고자'가 되는게 맞습니다만...애시당초부터 말이 많은 외래어 표기법이고, 그리고 코자를 그냥 코자라고 하는게 보기 좋습니다. 쓸데없이 코자를 엉터리 같은 일본어 표기법을 따른다고 지금까지 개떡을 쳐왔던 번역이 좋아지는게 아니라구요. 그리고 젠장, '고자'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표기법은 무시하고 '고자'를 '코자'로 번역할 겁니다. 애니를 무슨 개그 애니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자막에 대한 전체적인 총평

번역을 정지하겠습니다. 어? 안되자나? 정...정지가 안돼.
미안하지만, 소니픽쳐스,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이런일이 일어날 줄 알았지, 하지만 번역자는 내말을 듣지 않았어.
안녕, DVD 구매자들?

으아아아아아아


 

문자의미 그대로,



 

사실 저게 다라고 안심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2화 중반에 하지가 '아직 눈뜨지 않았군'을 '이제 눈뜨기 시작했군'으로 번역했거나 들리는 말과 자막 사이의 불일치를 일으키는 케이스를 5초단위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막과 들리는 소리가 매치가 안되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애니메이션 감상을 방해합니다. 사실 처음으로 애니 DVD를 돈주고 사서 보는 사람들이 이걸 보았을때,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평생동안 애니 감상을 하지 않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하는 자막 번역입니다.

근 2년만에 TV 애니메이션 DVD 나왔다는 꼬라지가 이 꼬라지라면, 정말 대한민국 DVD 시장의 미래는 밝군요.
그리고 만약 이걸 돈주고 사실 계획이신 분들은 차라리 다른 DVD를 사세요. 그게 정신건강에 좋을 겁니다, 넵.


마지막으로 OP 가사에서 한마디 따오자면,

난 이 DVD를 구한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고!
(이미 후회하고 있다는 소리)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0.들어가면서

애니 감상은 이미 5개월 전에 끝이난 작품이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도대체 어떤 틀에 기초해서 리뷰를 써야 할지 막막했었다. 처음 글을 요한 갈퉁의 평화 이론에 근거해서 전개하려고 했으나, 거의 반 논문처럼 변해버린 리뷰를 보고는 기겁해서 중도하차(.....)하였다. 여러 가지 분석틀이나 글 구조를 생각했었지만, 결국은 조셉 켐벨의 영웅 신화 구조를 통해서 분석하기로 결정했다.

1.세계로의 입문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세계 정세나 전략적인 측면에서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는 조그마한 섬에서 태어나 자라고, 친구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등의 평범한 삶은 살았다. 항상 타고 다니던 통학 버스에서 자살 테러가 일어난 그 날까지는.

망념의 잠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타 다른 애니메이션과 같이 갑작스런 사건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서 주인공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은 그 성격이 각기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모험의 길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고, 혹은 복수의 길이다. 각자는 자신만의 사명을 띄고 원래 속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세계, 비일상적이고 비정상적인 세계로 나선다.

망념의 잠드가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아키유키가 일상을 떠나 당도한 세계는 보통 사람들이 잊어버린 공간이다. 전쟁과 차별, 증오, 죽음, 테러 등의 비극적인 사건이 넘쳐나는 세계,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일부이자 세계의 추한 면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러한 타인의 고통과 비극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심지어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재'로써 소비한다. 수잔 손텍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미지 과잉의 세계에서는 타인의 고통은 스펙터클로 변해버린다고.

망념의 잠드의 세계 또한 그렇다. 세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싸우고, 폭력과 차별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통학버스에서 일어난 자폭테러는 아키유키에게 일상적인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통해 아키유키의 몸에 죽은 자의 혼인 히루코가 깃들고, 그는 잠드, 일상적인 세계와 어두운 세계의 양쪽을 동시에 아우르는 존재로 화한다.

그가 처음 잠드로 화했을 때, 그는 무의식 중에 자신을 공격하는 인형과 전투를 벌이고 폭주하여 돌로 변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나키아미가 아키유키에게 외친다.




살고 싶다면, 그렇게 맹세하라!

이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는 돌이 되어 죽어가는 아키유키에게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어서 원혼이 된 히루코에게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잠드란 존재 자체가 죽음과 삶의 양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키유키는 소망한다. 살고 싶다고.

나키아미는 아키유키를 데리고 센탄도를 떠난다. 이는 아키유키에게 있어서 기나긴 모험의 시작이었다.

2.소명의 인식

처음 잔바니 호에 승선한 아키유키는 자신이 왜 일상을 떠나야 하는지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반항한다. 이는 영웅의 모험에 있어서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는 단계인 것이다. 물론 영웅은 결과적으로 소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나, 아키유키가 소명을 거부하는 경우는 좀 특이하다. 아키유키는 위대한 영웅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고, 그의 생각에는 자신과 무관한 폭탄테러에 휘말린 다음 영문도 모른체 이역만리 우편선에 끌려와서 이상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왼팔에 깃든 존재, 히루코와의 공존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명을 알아간다.

아키유키가 받아들인 히루코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원혼이다. 산 사람에게 히루코가 깃들게 되면, 인간은 죽은 자의 원념에 휩싸이고 잠드-다른 말로는 人形(히토카타)-로 화한다. 그렇기에 잠드란 존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서있는 중재자이다. 자신의 팔에 깃든 히루코 존자 자체를 받아들이고 잠드는 히루코와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히루코에서 나오는 원념 및 부정적인 감정만을 받아들인다면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먹혀서 살아있는 자신을 잊고 돌이 되어 죽을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과 히루코, 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잠드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키유키의 팔에 깃든 원념이 누구인지는 작중에서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아키유키의 팔에 깃든 히루코는 전쟁에서 죽은 일반적인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즉, 아키유키가 잔바니 호에서 히루코와 자신 사이의 공존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일반적인 세계 및 산 사람과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나 전쟁의 비극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조정하는가의 문제이다.

잔바니호 승선 초기에 아키유키는 '자신이 왜 여기있는가?' 에 대해서 반항한다. 이는 영웅에 있어서 소명의 거부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깃든 다른 존재 혹은 세상에 만연한 비극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아키유키만의 이기심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이다. 왜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나 하나, 가족 챙겨서 살기도 바쁜 인간이라고.

하지만 비극은 외면할 수 없고, 설령 외면한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러한 비극을 화해할 수 밖에 없다. 아키유키가 잔바니 호에서 배운 것은 보통의 세계에서 부정당한 존재들과의 화해였다. 그리고 아키유키는 자신에게 깃든 또다른 존재를 긍정하면서 새로운 존재, 잠드로 화한다. 그리고 그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의 기적이자 희망ㅡ망자와 산 자를 아우르고, 이들을 중재하여 세계를 평화로 이끈다ㅡ이 된다.

3.귀환의 실패와 위기

아키유키가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히루코와의 조화를 이루어내었을 때, 그는 나키아미와 함께 자신의 고향 센탄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깨달음을 얻은 영웅이 자신이 떠나온 일상적 세계와 조우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귀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고향에서 마주친 것은 일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부정적 기운과 존재ㅡ후루이치의 잠드화ㅡ였다. 그는 친구와의 대면 이후, 나키아미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된다. 그리고 그는 군의 ASP에 요격당해서 살아있는 자신과 기억을 잃는다.

영웅의 귀환 단계에서 영웅이 귀환을 거부하거나 귀환의 과정에서 외부적인 시련이 흔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키유키가 겪은 경우는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이는 귀환의 거부나 외부의 시련에서 오는 갈등이 아닌, 자신이 깨달음을 전파하려는 일상적 세계 자체로부터 거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아키유키에게 그 어떤 시련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이로 인해 아키유키는 잠드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자아를 잃는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절망 속에 빠진 아키유키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아키유키의 친구, 니시무라 하루이다. 그녀는 아키유키가 센탄도를 떠난 뒤에도 계속 그와 소통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이 그에게 닿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루는 아키유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아키유키를 만나기 위해서 군에 입대하기도 한다.




하루가 아키유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가 도달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은 단순히 아키유키에 대한 연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다른 존재와 간절하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하루의 소망은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폭력이 만연하며,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세계에서 아키유키와는 다른 또 하나의 작은 희망이다.

그러한 그녀의 소망은 그녀에게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아키유키의 목소리, 잠드나 인형의 감정들, 그리고 모든 비극의 상징이자 북쪽을 대표하는 히루켄 황제까지. 이렇게 그녀는 다른 인물들 보다 세계의 비극이나 문제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판단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는 정상의 세계에서 비정상으로 몰리고,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탈출한 그녀는 다양한 조력자와 북쪽으로의 모험을 통해서 아키유키에게 도달한다. 아키유키가 자아를 잊고 추락하는 도중, 하루는 아키유키의 이름을 힘껏 부르고, 아키유키는 다시 자아를 되찾는다. 하루의 소망이 아키유키를 다시 한번 구원한 것이다.


나머지 부분을 下편에서 이어집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대학교 와서 좋은 점이 뭐냐면 외부적인 시야를 넓힌다는 것입니다. 이번학기는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배웠는데, 특히 블로그 글에 써먹을만한 소제나 평소에 빠져있던 감상에 대한 딜레마 등을 말끔히 해소하는 이론 틀이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일전의 신화에 대한 레포트나 지금 쓰고 있는 망념의 잠드 리뷰 분석 구조까지 다양한 글에 변형 적용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글도 수업시간에 배웠던 메트릭스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문화 감상론에 적용시키고자 합니다.

 메트릭스라는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다양한 철학적 코드와 성경 구조의 차용, 새로운 액션 스타일 등으로 헐리우드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평론가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편만 놓고 따지더라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매트릭스=동굴, 죄수=매트릭스에 꽃힌 인간, 철학자=네오), 데카르트의 전능의 악마(=메트릭스), 장자의 호접지몽, 성경의 구조와 코드, 신화적인 단어와 이미지 등을 차용하여 영화 내에서 훌륭하게 결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메트릭스라는 영화는 철학적인 영화가 아니라, 헐리웃 오락 영화라는 겁니다. 대규모 헐리웃 자본이 투입되어서 완성된 영화이기도 하지만,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는 정작 이 영화를 만들 때 자신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호를 재해석하는 부분을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편에서 네오가 육체적, 정신적 죽음을 통해서 메트릭스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에 대한 각성 및 초월하는 부분은 불교의 해탈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2편에서 각성한 그의 모습이 미국의 히어로 슈퍼맨과 겹쳐보입니다. 이는 슈퍼맨에 대한 워쇼스키 형제의 재해석, 즉 불교적인 색체를 가미한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이나 컴퓨터 용어를 이용해서 메트릭스 세계관을 구축하는 등 기존의 대중문화에 대한 매니아적인 재해석을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즉, 매트릭스는 그 자체가 상업 영화이고, 철학적인 코드는 일종의 기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트릭스가 가지는 철학적인 코드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매트릭스에 삽입된 철학적 코드는 매트릭스의 이야기 구조를 완성시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재 역활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만약, 매트릭스에서 위에서 말한 철학적 코드를 제외한다면, 매트릭스는 지금 같은 평가를 듣는 상업영화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처럼 매트릭스는 철학적 코드가 상업영화에 있어서 주제나 중심 이야기가 아닌 소재로 사용하고 이를 이야기와 결합시킨 훌륭한 사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매트릭스의 구조는 다른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적용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혁명적인 작품이었던 에반게리온을 보죠. 에반게리온 자체도 성경이나 신화 코드를 많이 차용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및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한 때 시대를 풍미하였던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존의 슈퍼로봇물 및 애니메이션 자체의 재미를 지향하면서, 여기에 다양한 철학 및 신화적인 코드들을 삽입하면서 이야기의 소재 및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대중문화에 있어서 철학 및 신화적 코드의 삽입을 통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다양합니다. 크게 본다면 대중문화 그 자체에 철학 및 신화적인 코드를 삽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쪽과 오히려 이를 반기고 대중문화 작품 자체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쪽으로 나뉘어집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다시피, 대중문화에 있어서 철학 신화 코드는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한 '소재'이지, '주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실상, 철학적 코드가 주제가 되게 된다면 이는 흔히 순수예술 장르로 분류될 겁니다. 하지만 대중 문화는 미디어의 목적-수익을 남긴다-때문에 순수예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진정한 시대의 걸작은 그 두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대의 걸작에 한하는 이야기입니다.

 결과적으로, 대중문화 감상에 있어서 철학적 코드는 보완적인 것이지 주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대중문화에서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대중문화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본연의 재미이지 그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철학적 코드가 이야기 자체에 수많은 소재 및 발상, 이야기의 구조, 심지어는 이야기의 반전 등으로 쓰여서 재미를 부각시킨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1.엔하위키를 보다가 배틀스타 겔럭티카 관련 항목을 보고 난 뒤에 끌려서 시즌 0를 감상하였습니다. 원래 미드같은 건 잘 찾아보지도 않고 기대도 하지않는 편이지만, 시즌 0 자체로는 대단히 좋은편입니다. 원작은 20년전에 했었던 동명의 드라마로, 몇년전인가 뜬금없이 원작의 리메이크인 시즌 0를 방영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 시즌 4로 완결이 났습니다만...시즌 4 평이 참 뭐랄까...

특이하게 보기전에 이미 4기까지 다 네타 당한 상태에서 보는 작품입니다(.....)

2.스토리는 인류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계인 사일런과의 전쟁에서 패해 거의 멸망당한 인류가 자신들의 선조가 살았다는 전설상의 행성 지구를 찾아서 긴여정을 떠난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시즌 0는 12 식민지에 살았던 인류가 사일런의 침공에 의해서 한순간에 멸망하는 모습과 그 와중에서 배틀스타 겔럭티카와 기타 생존자들이 살아남어서 결집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마크로스 원작이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멸망한 인류, 압도적인 외계의 힘,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인류, 그리고 생존자 사이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마크로스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마크로스가 가벼운 연애 드라마를 지향했던 것과 달리 배틀스타 겔럭티카는 어두운 정치물 및 종교물을 지향합니다.

3.배틀스타 겔럭티카의 모티브는 거의 대부분 성서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엑소더스(인류가 멸망한 뒤에 인류 선조가 태어난 땅이자 약속된 땅인 지구로 정처없이 떠나는 모습), 유대인 12부족(12개의 식민지와 12개의 사일런 타입), 에덴 동산(인간이 떠나온 공간, 지구), 모세(아다마 제독?) 등등 다양한 성서적 이미지와 스토리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후반부로 갈수록 SF물이라기 보다는 종교물에 가까워진다고 하니, 이는 확신범인 셈.

4.마지막으로 가이우스 발터, 이 찌질한 인간....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인류 보편의 신화구조를 있다고 규정하고,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나 무의식이 투영된 스토리로 봅니다.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는 신화-이미지-언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경우 Psyche라는 단어가 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로스의 아내인 프쉬케에 대한 신화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에서 이미지(프쉬케)와 스토리(프쉬케에 대한 신화)를 연관지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구조와 이미지는 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 많이 차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구조와 이미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미지 및 반응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헐리웃 상업 영화가 시장을 독점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권에 근저에 깔려있는 신화구조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신화-이미지-언어의 상호보완적인 구조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겪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논리에 의해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몰려 사라진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현대로 계승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주제나 논지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감독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쓰고, 그것들 모두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는 흥행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성과를 한국영화가 드디어 한국 관객들에게 먹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미지 구조를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소위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은 소시민과 무력한 가장과 가족, 위기상황, 그리고 헝그리 정신 등으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공식은 한국적인 사실성과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맞딱트릴 수 있는 당면 과제나 경험, 감정을 표현해서 이미지와 이야기 구조, 주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확보합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론이 대단히 길었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영화입니다. 무력한 가장, 바가지 긁는 아내, 몰려오는 생활고, 구질구질한 일상, 실직의 위험 등등 이러한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정렬 배치하여 영화를 완성합니다. 재밌는 점은 김윤석의 작년 출연작인 '추격자'와 많은 부분에서 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지독한 악덕 포주로 나오지만,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나오더군요. 이는 배우 김윤석의 연기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김윤석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끝냈으면 영화 완성도가 더 올랐을 거라고 아쉬워 하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훌륭하고 긴장의 완급도 좋습니다. 현재 관객 100만을 넘어선 상태이며, 잘하면 제 2의 과속스캔들도 노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영화에 있어서 흥행은 사실 돈이나 CG, 액션을 쳐바르는 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고 완성시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1.말이 많았던 다크 시그너, 통칭 다그너 편이 64화로 끝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장이라고 까는거 같은데, 저는 일단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다크 시그너 편 자체의 스토리나 케릭터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끝마무리가 대단히 성급했다는 느낌입니다.

2.다크 시그너 편에서 애니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마지막에 렉스 고드윈이 다크 시그너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실, 애니메이션 내내 분위기가 있는 케릭터로 나와서 뭔가 한방 크게 터트릴거 같았는데, 결국은 마지막 보스로 나오더군요. 막판 보스로 등장하는 것이나 왜 고드윈이 다크 시그너와 시그너의 힘을 갈구 했는가 등의 동기 부분은 크게 문제가 없으나, 문제는 그러한 동기가 어떻게 결과로 나타나는가 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제작진은 렉스 고드윈이 다이달로스 브릿지를 만들려던 전설의 D-휠러라는 것은 반전이라고 제시하고 싶었으나,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차라리 렉스 고드윈=전설의 D-휠러 라는 반전에 치중하지 말고, 왜 렉스 고드윈이 다크 시그너와 시그너의 힘을 갈구 했는가와 그리고 형이자 다크 시그너의 우두머리인 루드거와의 관계 조명에 좀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았다고 봅니다. 사실 렉스 고드윈이 그 두 힘을 갈구 하는 것은 

5000년 주기로 반복되는 전설의 붉은 용과 사신의 싸움
->여기서 형인 루드거가 다크 시그너와 시그너의 힘을 동시에 가지고, 이로써 렉스는 형을 잃게 됨.
->새틀라이트에 남은 렉스는 새틀라이트와 시티의 통합을 위해서 다이달로스 브릿지를 건설하기 시작.
->다이달로스 브릿지를 만들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한쪽 팔을 잃게 됨.
->시티로 건너가서 치안유지국 장관이 되고, 일리아스텔의 들어가게 됨(이 부분은 애니에서 언급 X)
->결국 현실에 절망하여 붉은 용의 힘과 명계의 힘을 동시에 이용해서 세계를 파괴한 뒤에 재구축하려 함.

이런 이유 때문인데, 정작 렉스 고드윈의 과거 장면들은 본인의 회상이나 과거 장면은 일체 없고 제 3자의 간단한 언급으로만 진행됩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아스텔에 들어선 계기나 치안유지국의 장관이 되는 경위는 일절 생략. 듀얼 부분을 좀 줄이더라도 이런 부분을 강조하고 다듬었다면, 마지막에 렉스 고드윈이 '인간 같은 건 때려치고 신세계의 신이 되겠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설득력있게 다가왔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가능성이 엿보인 케릭터였는데 마지막이 너무 3류 악당같이 끝나는 바람에 아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3.대체적으로 다크 시그너 편의 듀얼은 대부분 머리를 쓰는 듀얼이 아니라 이벤트적 성격을 가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아예 안쓰고 사기 드로 사기 카드 남발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지만, 1기의 머리쓰는 맛은 좀 줄어들어서 아쉬운 느낌. 그래도 듀얼의 연출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키류-유세이 1차전 및 2차전, 칼리-잭 전, 보마-크로우 전이 이번 2기에서 멋진 듀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케릭터로 본다면, 이번 2기는 당연 키류 쿄스케와 크로우의 승리.

사실 어떤 의미에서 다크 시그너의 대표자는 키류입니다. 첫 등장에서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그 어떤 다크 시그너 보다도 박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최고의 명대사는....


후으흐흐흐흐흐헤헤헤헤헤헤헤!!!듸↑얼이다!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을 위한 증거 자료



크로우 같은 경우에는 2기에 처음 등장해서 유세이 조차 받지 못했던 온갖 주인공 보정 및 잔머리와 유세이보다 더 강해보이는 카드 전개력과 화력, 라이딩 듀얼하다가 늑골이 3개 나가고 수십미터를 추락했는데도 멀쩡한 강철 같은 신체 등으로 도대체 누가 주인공인지를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시그너까지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참고로 현실의 OCG에서 크로우의 주력인 BF(블렉 페더) 시리즈는 극악한 전개력과 사기적인 능력으로 수많은 인간들을 경악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금지를 하나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크로우가 시그너가 되면서 코나미가 BF 덱 및 크로우를 확실히 밀어주고 있는게 분명한 상황. 앞으로도 이런 추세면 다섯번째 용은 BF에서 나올지도(......)

5.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 결말이 대단히 미적지근 하다는 겁니다. 다른건 몰라도 렉스-루드거 형제를 제외한 모든 다크 시그너들이 살아돌아온 것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칼리나 키류 같은 경우에는 죽여버리는게 오히려 여운이 길게 남을거 같았는데, 살려서 아쉬운 느낌. 

6.2기 자체가 막장이라고 보고 다크 시그너 편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그런데 저는 딱히 막장인 구석을 찾지못하겠습니다;

7.결론을 내자면 전반적으로 놓았을 때는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으나 마지막 끝마무리 및 렉스 고드윈에 대한 이야기가 대단히 아쉬웠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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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약간 정신이 나간게, 기금까지 나온 61화를 약 2주간에 걸쳐서 다 보았습니다. 딱 공부에 지장이 안갈 정도로 게임 대신에 5D's를 봤다는 정도? 다른 애니도 밀린게 많은데 이걸 다보다니 저도 참 징하네요;

*6/22부터 시험이라서 다음주는 아마 잠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댓글은 관리합니다.



1.들어가면서

 최근 유희왕 NDS용 월드 쳄피언쉽 2009에 자극을 받아서 보고 있는 5D's입니다. 생각보다, 아니 기대(?) 했던 것보다 잘 만들었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작년 4월에 처음 방영할 때, 엄청나게 호평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그래봤자 유희왕이라고 넘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장기연재작이란 점 등을 감안했을 때 꽤 괜찮습니다.

 유희왕 시리즈는 DM->GX->5D's 이렇게 넘어갑니다. 일단 제가 본 유희왕은 원작 만화 정도였습니다. 만화 자체는 재미는 있으나, 패턴이 항상 비슷비슷. "상대방이 강한 카드를 꺼냈다->근데 나는 패가 말렸네?->근데 나는 내 카드를 믿어!->우왕 ㅋ 굿 ㅋ 더 강한 사기 카드가 나왔네!" 이 패턴을 만화 끝날 때까지 반복합니다.




사실 보고 있으면, 좀 어안이 벙벙해지는 전개


사실, 만화 테마 자체는 "게임"입니다만, 어쩌다 만들어낸 '듀얼'과 카드 게임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내서 결국 만화의 테마가 카드 게임 듀얼로 변하였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만화 유희왕의 작품 내 카드 게임인 듀얼몬스터즈(Duel Monsters, 통칭 DM)의 룰과 실제 유희왕 DM의 룰이 엄청난 갭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만화 속의 DM은 뭐랄까...진짜 룰도 뭣도 없는 완전 '내 맘대로!'입니다.

덕분에 만화 내용이나 게임 내용도 중구난방이고, 컨셉도 왔다갔다 하고...총체적인 난국입니다만, 그래도 만화 자체는 상황 연출이 그럭저럭 좋아서 봐줄만 합니다....만 사실 연출도 대단히 전형적인 소년만화풍의 열혈입니다. 카드 게임이나 머리굴리기 같은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저는 5D's 이전의 유희왕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뭐가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원작 만화를 애니로 만들고(참고로 원작 유희왕은 애니화가 두번 되었음) 그 뒷이야기를 이어간 것이 유희왕 DM, 그리고 DM 이후의 스토리가 GX, 그리고 GX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것이 이번 5D's입니다. 사실 GX나 DM은 직접 본 것이 아니나, GX를 직접 보고 감명을 받아서 엘레멘틀 히어로 네오스 덱을 돌린 친구(.....)의 설명을 들어보면 사실 원작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본격적으로 카드를 팔아먹어야 하니까, 룰이나 카드 구성이 점점 짜임새가 있어지더군요(이는 나중에 유희왕 게임 부분을 다룰 下에서....)



2.유희왕 5D's:원작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사실 5D's는 나오기 전부터 말이 많은 작품이었는데, 코나미가 5D's가 나오기 전 5D's에 맞추어서 카드 게임의 룰을 개편하였고(실제 게임에서는 못 느낄 정도의 변화지만, 그래도 근 10년 가까이 유지한 룰을 바꾼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D휠이라는 바이크를 타고 듀얼을 하는 라이딩 듀얼의 도입으로 기존의 팬들에게서부터 많은 반발을 샀습니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의 가벼운 노선에 비해서 진지하고 무거운 노선으로 갈아탄 점도 전작과의 큰 차이점입니다. 이러한 변화점들은 코나미가 이번 유희왕 5D's에서 기존의 유희왕의 시리즈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5D's는 장기연재작(4쿨을 넘어서 2~4년 방영하는 작품)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예전 유희왕 시리즈가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서 떨어지는 부분을 5D's는 훌륭하게 보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 부분에서 유희왕 5D's는 기존의 시리즈에 비해서 무겁습니다. 경제적, 계급적으로 이원화 된 공간인 도미노 시티와 새틀라이트, 그리고 단지 새틀라이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주민들, 범죄자들에게 과거 고대의 죄인들처럼 얼굴에 새겨넣는 마커라는 문신, 듀얼의 솔리드 비전이 실체화되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이킥 듀얼리스트들 등등... 5D's는 분위기 전반에 차별이라는 코드를 깔아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무겁다는 느낌입니다.

케릭터들도 원작에 비하면 대단히 무게가 있습니다. 동료와의 유대를 중시하는 유세이나, 프라이드가 강한 잭, 남들과 다른 능력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과의 소통을 단절한 아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서로를 보완하는 쌍둥이 루카 루아 등등...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등장한 클리셰 같은 인물들이지만,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와 사건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무게감이 생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형적이지만 잘 쓴 모범 답안’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장기연재작 치고는 이야기 완급이 대단히 좋습니다. 사실 이야기의 흐름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흘러 간 것은 아니지만(현재 61화까지 감상), 작품의 큰 테마인 듀얼이라는 소재를 두고 통일성 있게 그러면서 동시에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케릭터들 간의 듀얼로 때우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의 주요 테마가 듀얼이기도 하고 또 듀얼로 왠만한 이야기의 전개와 케릭터성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습니다. 게다가 밑에서도 다루겠지만, 듀얼 자체가 재밌기는 재밌으니 보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이 애니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야기의 모든 것이 듀얼 몬스터즈, 즉 카드 게임과 결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카드 게임으로 저 세상의 악마나 신들이 나오고, 카드 게임으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고, 카드 게임으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등등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설정들이 난무합니다만...원래 원작이 그런 작품이었고, 이 부분에서 적응하면 묘한 키치적인 맛이 있습니다. 피구왕 통키로 예를 들어 보죠. 피구왕 통키에서 피구공이 불타고, 세계 피구 대회가 있고, 피구공을 맞으니까 사람이 날아다니는 것에 대해서 ‘세상에 저딴 만화가 어딨어? 현실성이 없다니! 저 만화는 쓰레기야!’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그만한 병맛이 없지만, 아무 생각없이 보면 재밌습니다. 그리고, 사실 만화가 좀 거짓말을 심하게 깐다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재밌자고 보는 만화인데, 재밌으면 그만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기존 시리즈와 다른 진지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이야기의 완급이나 케릭터의 완성도 등은 장기연재작 치고는 수준급이며 보는 내내 이야기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카드 게임으로 세상이 멸망하고 구원받고 하는 문제만 일단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건 원래 작품 자체가 그런거니까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3.유희왕 5D's:작품 내의 듀얼에 대해서



(유세이의 주력 몬스터, 스타더스트 드래곤)

사실 작품 내의 분석에서 하고자 했지만, 너무 기니까 밖으로 뺐습니다.

기존의 유희왕 만화 시리즈에서는 듀얼 과정은 강한 카드->더 강한 카드->더, 더, 강한 카드->사기 카드의 형식으로 전개합니다. 사실 유희왕 실제 초기 TCG도 이렇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下편에서 보기로 하죠. 사실 기존의 소년 만화에서 강대한 적을 앞에 둔 주인공들은 적들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더 강한 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파워인플레이션입니다. 근데 원작에서 파워 인플레이션은 그 도를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희왕 원작을 보면서 강한 카드를 더 사기적인 카드로 받아치는 모습에 기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 타이밍에 딱 맞게 저 카드가 나오지?’ 하는 사기 드로우 문제는 일단 이야기 전개상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더라도, ‘저 카드는 도대체 어디다 숨겨놓았다가 꺼내쓰는거야?’라고 느낄 정도로 강한 카드가 핀치에 몰릴 때마다 튀어나오는 건 보는 사람으로써 황당하게 느껴지더군요. 항상 ‘난 내 카드를 믿어!’라고 하는데, 설마 그게 사기 카드를 뽑아내는 주문인가?(......) 오히려 상황에 맞추어서 사기 카드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더군요.

덕분에 원작에서의 듀얼은 전략도 뭣도 없는 사기카드 나열 대전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핀치에 몰리고, 역전하는 건 재밌기는 재밌지만, 곰곰이 되씹어보면 이런 병맛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단 ‘GX도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안 보았으니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핀치에 몰린 주인공을 위해, 어렸을 때 자신의 소망을 담은 카드들을 담은 캡슐을 우주로 쏘아올려 보냈는데 그게 우주에서 거시기 해서 졸 짱쌘 카드(네오 스페이시언, 줄여서 네오스)가 되어 돌아왔더라 하니 말 다한거 같습니다만....그래도 원작보단 덜한 거 같네요.

하지만 5D's는 원작과 다르게 전작에서 심하게 일어났던 파워 인플레가 안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마법이나 함정카드가 엄청나게 많이 바뀐거 같은 느낌이지만 덱이 지향하는 전략이나 전술은 명확하고, 애니메이션 내에서의 듀얼은 카드 간의 상성, 효력, 상대의 전략 등을 파악->이용->반격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공들 보다 적들이 더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들은 대단히 압도적인 능력으로 주인공들을 압박하는데 반해서, 주인공들은 정말 그 타이밍 아니면 의미가 없는 날카로운 한수로 적들을 이깁니다. 문자 의미 그대로의 ‘신의 한수’ 인 것이죠.

물론 여전히 ‘저 타이밍에 저 카드가 나오냐’ 싶은 드로우나 전개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 일어나는 패말림이나 게이머의 실수 같은 거 까지 다루기에는 애니메이션의 분량이 너무 부족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해칠 수 있기에 이 정도까지는 눈감아 줄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번작에서는 케릭터의 성격이나 특징에 맞게 덱과 카드가 정해져있다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유세이의 주력 몬스터인 스타더스트 드래곤은 자신을 희생해서 필드 파괴 효과를 무효로 하고, 그 턴의 엔드 페이즈에 돌아옵니다. 이는 유세이의 케릭터, 동료를 위해서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라는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잭의 주력 몬스터인 레드 데몬즈 드래곤은 스타더스트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공격력과 무시무시한 특수능력ㅡ이 카드가 공격한 때, 상대 필드위의 수비표시 몬스터들을 모두 파괴한다.ㅡ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턴 공격 선언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을 파괴하죠. 이와 같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킹이라는 지위에 대해 자존심이 강한 잭의 성격을 잘 대변하는 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5D's에서 듀얼 게임의 진행은 대단히 재밌습니다. 확실히 전작에 비해서는 머리 굴려가면서 게임 진행을 만들었구나 싶더군요. 게다가 전작에서는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일어났던 사기적인 파워 인플레가 현재까지 없다는 것도(물론 언젠간 하게 되겠지만) 인상깊더군요. 물론 최근의 유희왕 TCG의 흐름도 이렇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나중에 下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에...下편은 시험끝나고 올라가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서는 카드 게임 및 DS 게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리뷰:

철수를 시작하겠습니다. 어? 안되잖아? 철...철수가 안돼.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 하지만 제작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지.

난...난 죽고 싶지 않아!

안녕, 관객.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에코)

지금 한 일을 후회하게 될거야(피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정도로 리뷰 써준 것도 영광으로 생각해라 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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