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와서 좋은 점이 뭐냐면 외부적인 시야를 넓힌다는 것입니다. 이번학기는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배웠는데, 특히 블로그 글에 써먹을만한 소제나 평소에 빠져있던 감상에 대한 딜레마 등을 말끔히 해소하는 이론 틀이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일전의 신화에 대한 레포트나 지금 쓰고 있는 망념의 잠드 리뷰 분석 구조까지 다양한 글에 변형 적용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글도 수업시간에 배웠던 메트릭스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문화 감상론에 적용시키고자 합니다.
메트릭스라는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다양한 철학적 코드와 성경 구조의 차용, 새로운 액션 스타일 등으로 헐리우드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평론가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편만 놓고 따지더라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매트릭스=동굴, 죄수=매트릭스에 꽃힌 인간, 철학자=네오), 데카르트의 전능의 악마(=메트릭스), 장자의 호접지몽, 성경의 구조와 코드, 신화적인 단어와 이미지 등을 차용하여 영화 내에서 훌륭하게 결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메트릭스라는 영화는 철학적인 영화가 아니라, 헐리웃 오락 영화라는 겁니다. 대규모 헐리웃 자본이 투입되어서 완성된 영화이기도 하지만,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는 정작 이 영화를 만들 때 자신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호를 재해석하는 부분을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편에서 네오가 육체적, 정신적 죽음을 통해서 메트릭스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에 대한 각성 및 초월하는 부분은 불교의 해탈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2편에서 각성한 그의 모습이 미국의 히어로 슈퍼맨과 겹쳐보입니다. 이는 슈퍼맨에 대한 워쇼스키 형제의 재해석, 즉 불교적인 색체를 가미한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이나 컴퓨터 용어를 이용해서 메트릭스 세계관을 구축하는 등 기존의 대중문화에 대한 매니아적인 재해석을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즉, 매트릭스는 그 자체가 상업 영화이고, 철학적인 코드는 일종의 기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트릭스가 가지는 철학적인 코드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매트릭스에 삽입된 철학적 코드는 매트릭스의 이야기 구조를 완성시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재 역활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만약, 매트릭스에서 위에서 말한 철학적 코드를 제외한다면, 매트릭스는 지금 같은 평가를 듣는 상업영화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처럼 매트릭스는 철학적 코드가 상업영화에 있어서 주제나 중심 이야기가 아닌 소재로 사용하고 이를 이야기와 결합시킨 훌륭한 사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매트릭스의 구조는 다른 대중문화 작품에서도 적용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혁명적인 작품이었던 에반게리온을 보죠. 에반게리온 자체도 성경이나 신화 코드를 많이 차용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및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한 때 시대를 풍미하였던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존의 슈퍼로봇물 및 애니메이션 자체의 재미를 지향하면서, 여기에 다양한 철학 및 신화적인 코드들을 삽입하면서 이야기의 소재 및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에반게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대중문화에 있어서 철학 및 신화적 코드의 삽입을 통해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다양합니다. 크게 본다면 대중문화 그 자체에 철학 및 신화적인 코드를 삽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쪽과 오히려 이를 반기고 대중문화 작품 자체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쪽으로 나뉘어집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다시피, 대중문화에 있어서 철학 신화 코드는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한 '소재'이지, '주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실상, 철학적 코드가 주제가 되게 된다면 이는 흔히 순수예술 장르로 분류될 겁니다. 하지만 대중 문화는 미디어의 목적-수익을 남긴다-때문에 순수예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진정한 시대의 걸작은 그 두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대의 걸작에 한하는 이야기입니다.
결과적으로, 대중문화 감상에 있어서 철학적 코드는 보완적인 것이지 주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대중문화에서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대중문화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본연의 재미이지 그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철학적 코드가 이야기 자체에 수많은 소재 및 발상, 이야기의 구조, 심지어는 이야기의 반전 등으로 쓰여서 재미를 부각시킨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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