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인류 보편의 신화구조를 있다고 규정하고,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나 무의식이 투영된 스토리로 봅니다.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는 신화-이미지-언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경우 Psyche라는 단어가 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로스의 아내인 프쉬케에 대한 신화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에서 이미지(프쉬케)와 스토리(프쉬케에 대한 신화)를 연관지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구조와 이미지는 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 많이 차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구조와 이미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미지 및 반응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헐리웃 상업 영화가 시장을 독점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권에 근저에 깔려있는 신화구조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신화-이미지-언어의 상호보완적인 구조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겪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논리에 의해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몰려 사라진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현대로 계승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주제나 논지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감독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쓰고, 그것들 모두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는 흥행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성과를 한국영화가 드디어 한국 관객들에게 먹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미지 구조를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소위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은 소시민과 무력한 가장과 가족, 위기상황, 그리고 헝그리 정신 등으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공식은 한국적인 사실성과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맞딱트릴 수 있는 당면 과제나 경험, 감정을 표현해서 이미지와 이야기 구조, 주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확보합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론이 대단히 길었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영화입니다. 무력한 가장, 바가지 긁는 아내, 몰려오는 생활고, 구질구질한 일상, 실직의 위험 등등 이러한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정렬 배치하여 영화를 완성합니다. 재밌는 점은 김윤석의 작년 출연작인 '추격자'와 많은 부분에서 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지독한 악덕 포주로 나오지만,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나오더군요. 이는 배우 김윤석의 연기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김윤석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끝냈으면 영화 완성도가 더 올랐을 거라고 아쉬워 하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훌륭하고 긴장의 완급도 좋습니다. 현재 관객 100만을 넘어선 상태이며, 잘하면 제 2의 과속스캔들도 노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영화에 있어서 흥행은 사실 돈이나 CG, 액션을 쳐바르는 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고 완성시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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