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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인류 보편의 신화구조를 있다고 규정하고,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나 무의식이 투영된 스토리로 봅니다.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는 신화-이미지-언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경우 Psyche라는 단어가 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로스의 아내인 프쉬케에 대한 신화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에서 이미지(프쉬케)와 스토리(프쉬케에 대한 신화)를 연관지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구조와 이미지는 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 많이 차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구조와 이미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미지 및 반응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헐리웃 상업 영화가 시장을 독점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권에 근저에 깔려있는 신화구조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신화-이미지-언어의 상호보완적인 구조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겪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논리에 의해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몰려 사라진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현대로 계승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주제나 논지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감독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쓰고, 그것들 모두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는 흥행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성과를 한국영화가 드디어 한국 관객들에게 먹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미지 구조를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소위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은 소시민과 무력한 가장과 가족, 위기상황, 그리고 헝그리 정신 등으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공식은 한국적인 사실성과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맞딱트릴 수 있는 당면 과제나 경험, 감정을 표현해서 이미지와 이야기 구조, 주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확보합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론이 대단히 길었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영화입니다. 무력한 가장, 바가지 긁는 아내, 몰려오는 생활고, 구질구질한 일상, 실직의 위험 등등 이러한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정렬 배치하여 영화를 완성합니다. 재밌는 점은 김윤석의 작년 출연작인 '추격자'와 많은 부분에서 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지독한 악덕 포주로 나오지만,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나오더군요. 이는 배우 김윤석의 연기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김윤석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끝냈으면 영화 완성도가 더 올랐을 거라고 아쉬워 하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훌륭하고 긴장의 완급도 좋습니다. 현재 관객 100만을 넘어선 상태이며, 잘하면 제 2의 과속스캔들도 노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영화에 있어서 흥행은 사실 돈이나 CG, 액션을 쳐바르는 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고 완성시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사실 저는 스타트렉 팬도 아니고, 스타트렉 시리즈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스타트렉 설정이나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리뷰는 영화 더 비기닝에 나온 이야기와 각종 언론 매체에서 나온 단평들을 토대로 리뷰를 진행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스토리 진행에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타트렉은 미국의 유명한 SF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서 수많은 팬들이 있고, 수많은 파생작들(ex.베틀스타 겔럭티카 등)과 패러디(ex.겔럭시 퀘스트 등)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그러한 스타트렉의 시리즈의 처음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단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훌륭한 SF 영화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기존의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 가지는 입장입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기존의 트레커(스타트렉의 팬들을 지칭하는 말)들에게는 분노를 살만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더 비기닝'의 시작은 전설적인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 제임스 커크 함장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초반 출생부분 및 오프닝 시퀸스 이후로 사람들(트레커를 포함해서 스타트렉이라는 시리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은 '그 대머리 함장'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완숙하고 노련미 넘치는 중년의 제임스 커크가 아닌, 젊은 풋내기 제임스 커크입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낌세를 보입니다. 물론 젊고 반항적인 제임스 커크를 등장시킨 것은 커크가 어떻게 위대한 함장이 되어가는가의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의도한 바는 기존의 스타트렉 시리즈와 영화 사이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기 위해서는 젊은 커크를 보여주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뭔가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죠. 여기서 감독 J.J. 에이브람스는 영화에 아주 골 때린 설정(동시에 기존의 팬들을 완전히 열받게 만들만한)을 집어넣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여행과 평행세계 이론입니다.

미래에서 온 악역인 네로는 처음 연방과의 접촉에서 커크의 아버지를 죽입니다. 기존의 시리즈의 역사를 따르면, 커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스타 플레트에 들어오고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이 되죠. 하지만 여기에 네로가 개입하면서 영화는 스타트렉 세계관의 평행세계가 됩니다. 여기서 커크의 케릭터나 사고관이 바뀌고, 그리고 스타트렉 내의 역사와 사건들도 다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심지어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까지 바뀝니다.

저는 원작 드라마를 안봐서 뭐라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의 이미지는 사려깊으면서 노련한 지휘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더 비기닝의 커크 선장은 천재적이긴 하지만 반항적이고 문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스팍과 대립하고 갈등하죠. 하지만, 커크와 스팍이 케릭터적으로 서로 맞닿아있다는 것을 영화 말미에 보여주어서 기존의 시리즈와 다른(?) 스팍과 커크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서 작품은 기존의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과거 스타트렉이 서로 다른 종족 간의 생각 차이로 생기는 문제, 그리고 특이한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모험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면, 이번 더 비기닝에서는 모험이나 조우보다는 각각의 케릭터에 더 집중하고, 케릭터성 또한 대단히 현대적입니다(ex.반항아적인 커크, 머리는 차갑지만 가슴은 따뜻한 스팍 등). 즉, 이와 같이 더 비기닝은 예전의 시리즈 보다는 최근의 영화의 흐름을 반영했습니다.

영화에서 전투나 함대전은 대단히 화려하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는 과거 클로버필드를 감독한 J.J. 에이브람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러한 아슬아슬한 전투나 액션 연출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케릭터성의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재창조)은 영화 스타트렉:더 비기닝을 잘 만든 SF 블록버스터로 만듭니다.

이런 특징 덕분에, 더 비기닝에는 한가지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팬들은 대단히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J.J. 에이브람스가 기존의 시리즈를 재창조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재창조는 기존의 스타트렉 세계관이나 분위기를 무너뜨리고, 극단적으로 기존의 스타트렉의 세계는 평행세계화 시켜버립니다. 이렇게 과격한 영화를 팬들이 썩 좋아할 리는 없죠. 저도 스타트렉은 잘 모르지만, 보는 내내 스타트렉 정도가 되면 전통과 역사가 있는 시리즈인데 이렇게 함부로 막 바꾸어도 되는지는 의문이더군요.

일단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SF 블록버스터로써는 중간 이상은 하는 영화입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들로 영화 내내 관객을 쥐었다 폈다 하니까요. 다만 기존의 드라마의 펜이라면 썩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가 완전히 J.J. 에이브람스 식으로 재창조되서 나왔는데, 보고나서 기분이 좋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동쪽의 에덴은 노이타미나에서 현재 방영중인 09년도 4월 신작입니다. 공각기동대 SAC의 감독인 카마미야 켄지와 허니와 클로버의 원화가인 우미노 치카가 다시 만나서 만든 작품으로 애니의 작화나 분위기, 케릭터에서 허니와 클로버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여태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스펜스와 순정장르의 결합이죠. 줄거리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를 구하는 게임에 참가하고, 그 와중에 기억을 잃은 아키라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가는 추리 및 서스펜스적인 축과 그리고 사회 초년생 사키-기억을 잃은 아키라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연애적인 축으로 나뉩니다.

서스펜스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아키라가 처해있는 부조리한 상황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이미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100억 엔으로 썩어빠진 일본을 구해야 하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기억을 지웠고, 자신이 기억을 지운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행적을 되짚어 올라갑니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ex.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현기증 등)과 제한적인 인식에 근거한 추리극이라는 측면에서 히치콕 영화와 많은 부분 유사합니다.(주1) 아키라가 처해있는 세계를 구하는 게임, 세레손,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리고 스스로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이라는 상황은 아키라 본인으로서는(일단 현재까지는) 부조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으로써 자신이 잃은 기억을 되찾아 올라가기 위해서 제한된 기억과 단서에 근거해서 추리를 하죠.

재밌는 점은, 이러한 기억을 되찾아 올라가는 과정이 아키라가 의도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데스노트에서 L을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멀쩡한 척하는 라이토와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아키라는 세계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기억을 지웠고,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그러한 이유와 마주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키라가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구할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이 세상을 구하기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키와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사회 초년생인 사키가 보는 세상의 부조리함 혹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관계, 혹은 현대사회의 매정함이 주된 이야기의 축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5화 마지막 장면ㅡ사키가 회사 면접에 떨어지고 나서 아키라에게 이야기하는 장면ㅡ에 근거해서 추측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잃기 전 아키라가 2만 명의 니트(2만 니트 대군?)를 사회로 회귀시켰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아키라가 기억을 지웠다는 점(아키라가 사회로 복귀시킨 니트가 '어? 너 결국 기억을 지운거야?'라는 점을 통해서 보았을 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4번 세레손 형사의 죽음 장면(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칼 맞고 죽어가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건립하였지만 세계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은 9번 세레손 등등 애니메이션 내에서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연애 쪽을 살펴봅시다. 사키-아키라의 관계는 좀 묘한 관계입니다. 아키라는 사키에게 있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백마 탄 왕자 같은 느낌입니다. 애니메이션 초반의 사키의 나레이션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키라는 사키에게 대학교라는 안전한 틀을 막 벗어난 사회 초년생의 불안감과 형부에 대한 감정 등에 대한 해결책 같은 존재입니다. 즉, 사키에게 있어서 아키라는 꽉 막힌 세계에서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하지만 아키라에게 있어서 사키는 그 반대입니다. 처음 워싱턴에서 만났을 때, 알몸으로 기억이 없는 자신과 처음 만난 사람이자 도와준 사람입니다. 즉, 기억을 잃고 난 뒤에 맺은 첫 인간관계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키라에게 있어서 사키는 기억이 없는 자신과 세상 사이의 끈을 확인해주는 존재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키와 아키라는 서로에게 있어 각별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키-아키라의 관계를 통해서 위에서 다룬 서스펜스적인 축이 강화(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됩니다. 이렇게 동쪽의 에덴은 서스펜스의 축과 연애의 축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동쪽의 에덴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동쪽의 에덴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쪽의 에덴은 애니의 템포 자체가 서스펜스나 스릴러 장르라기보다는 순정물에 가까운 템포라는 점입니다. 즉, 이야기 진행이 너무 담담해서 보는 사람을 강렬하게 흡인하는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작품 자체는 별로였지만 관객을 쥐었다 폈다하는 서스펜스 측면에서는 대단했던 코드기어스:반역의 루루슈 같은 경우, 매화 매화 관객들은 '다음 화는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으로 애니를 봅니다. 하지만 동쪽의 에덴은 이야기가 진행되도 '어 그런가 보다'라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전개 자체가 감독의 전작인 허니와 클로버 쪽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두번째는 애니가 제기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 또한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애니 내의 사회 문제 해결 과정 및 접근 방법이 맥이 빠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너무 문제 제기 및 해결의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마치 논술 문제를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20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라고 내고, 이에 대한 답안을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심성의 것, 전심전령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라고 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가 5화까지 진행되도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자주 시도되지 않은 서스펜스와 순정 장르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또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어느 정도 눈감아 준다면, 충분히 재밌습니다.

동쪽의 에덴은 주 애니메이션 시청 대상을 오타쿠 집단이 아닌 일반 여성층으로 삼고 있는 노이타미나 시간대에서 처음으로 '11화+극장판'의 시리즈 구성을 한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그만큼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저는 보고, 극장판 까지 포함해서 애니메이션 끝까지 기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주1. 예를 들어, 영화 현기증 같은 경우, 주인공은 고소공포증으로 인해서 살인 사건을 목격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현기증으로 인해서 환상을 본 것인지에 대해서 햇갈립니다. 이를 통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제한적인 인식에 근거해서 사건을 찾아간다는 것이 영화의 주 내용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제한된 인식과 이를 근거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히치콕 영화의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게임 이야기


-트레일러 공개 당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던 킬링 플로어가 오늘 발매(정확히는 한국 시간 오전 2:00정도?) 되었습니다. 게임 제작사는 레드 오케스트라를 만든 트립와이어입니다. 킬링 플로어는 사실 나오기 전부터 이것저것 말이 많던 게임인데요, 특히 6개월전에 나왔던 트레일러 상 Left 4 Dead와 많은 부분 유사하다는 점ㅡCo-op전용, 좀비, B급 영화의 느낌,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동해야 한다 등ㅡ에서 출시전부터 비교당한 게임입니다. 

 그러나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킬링 플로어는 UT 2004의 모드로서 존재하던 게임으로, 게임 컨셉은 비슷할지는 몰라도 게임의 지향점은 다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L4D와 비교당하는 킬링 플로어쪽이 억울할 수도....

-게임은 L4D보다는 오히려 CS쪽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게임 진행은 '방어전->상점->방어전->상점->방어전->.....->보스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방어전 같은 경우 몰려오는 적들의 수가 정해져 있고(예를 들면 160마리, 이런식으로), 지정된 수를 다 죽이면 상점이 열립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특수능력(Perk)을 설정해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가령 지원 병과 같은 경우에는 문을 용접하는 것과 샷건의 공격력, 관통력 및 탄창, 심지어 가격 세일 보너스를 받고, 버서커 병과는 아예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으며, 코만도 분과는 라이플 및 클록킹 탐지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 혹은 게임 중의 필요 및 상황에 맞추어서 병과를 설정해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게임 내 연출은 L4D와 같은 생존극이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 학살극을 벌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일단 사람 수가 많아서 공포감이 줄어드는 점도 있지만, 게임 내의 연출이 공포 컨셉이 아닙니다. 적들은 느릿느릿하게 기어들어오는데, 이때 느끼는 감정은 L4D의 좀비 무리들이 때지어 달려올 때 느껴지는 절망감 및 공포감(하지만 오래 하면 '저놈들 또 오네'로 바뀌는)보다는 플레이어에 대한 압박감 쪽 입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쓰는 사운드나 음향은 헤비 메탈풍의 강렬한 음악쪽이며(이에 반해 L4D는 사람 신경을 긁는 음악을 썼죠), 스테이지 구성이나 표현도 게임 플레이의 동선을 예측 가능한 형태ㅡ저 쪽에서 저놈들이 몰려오겠구나 등의ㅡ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픽은 준수한 편입니다. 사실 요즘 나오는 콘솔용 게임과 같은 그래픽은 아니지만, 게임 내 스테이지의 질감, 적들의 표현 등은 모드 기반의 게임 치고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운드도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바로 킬링 플로어 모딩(Moding)의 활성화입니다. 출시 때부터 SDK와 함께 나왔고, 게임 자체도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기대할만 합니다. L4D의 SDK를 기다리다가 지친 사람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거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일단 여기까지고...더 추가할만한 사항은 나중에 다루도록 하죠.
리뷰를 쓴다면 L4D와 비교하도록 하죠(위에서는 비교하지 말라더니!)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언리얼 토너먼트 시리즈는 한 때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퀘이크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었던 게임입니다. 물론 시리즈의 시작인 언리얼은 발매 당시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퀘이크 3가 나올 때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언리얼 토너먼트를 발매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멀티플레이 FPS로 쌍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언리얼 토너먼트와 퀘이크 3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기의 강력한 개성과 다양한 활용이었습니다. 벽에 튀기는 원반을 발사하는 리퍼, 바운드되는 산탄을 쏘는 플랙 케논, 모아쏘기와 유탄 발사기로 응용이 가능한 로켓런쳐, 2차 모드와 1차 모드의 조합으로 일명 'Shock Combo'가 가능한 쇼크 라이플 등 그 당시로서는 독특한 무기와 다양한 사용법 등으로 게임하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게임 모드에 있어서 기본적인 데스메치와 CTF 이외에 정복 모드, 미션 모드와 비슷한 어썰트 모드 등을 추가해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내었구요. 여기에 게임의 구체적인 플레이를 변형시키는 '변형 모드'를 통해서 각 모드 마다의 게임 플레이를 다양하게 바꾸게 하였습니다.

이런 언리얼 토너먼트 만의 매력점은 퀘이크 중심의 FPS 계를 양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후에 에픽은 언리얼 토너먼트를 기반으로 탈 것과 화려한 미션 모드를 추가한 언리얼 토너먼트 2004를 발매하게 됩니다. 이는 비평적 상업적인 양쪽 다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FPS의 흐름이 CS 같은 게임으로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언리얼 토너먼트 2004는 기존의 FPS에 새로운 요소를 훌륭하게 접목시킨 작품으로 평가받은 것입니다.

이 쯤 되면, '이 사람이 왜 하려는 언리얼 토너먼트 3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예전 구작들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제목을 버젓이 '[칼럼]언리얼 토너먼트3' 써놓고 실컷 구작 이야기만 하고 있군요.

근데 언리얼 토너먼트 3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바뀐 게 없다.





자칭 언토 팬이고, 언리얼 토너먼트, 언리얼 토너먼트 2004, 언리얼 토너먼트 3까지 모두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아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픽적인 발전과 기존의 어썰트 모드 삭제, 워페어 모드(라 하고 변형된 CTF라 읽는다)의 추가 이외에는 도저히 예전 구작들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이니까요. 무기가 참신한게 도입된게 아니고, 무기 발사 시스템이 바뀐 것도 아니고, 게임 모드가 혁신적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이렇게 낼 거면, 언토 2004 RE-Birth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언토 시리즈가 기존의 FPS 장르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이고, 2004에서는 이를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킨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기존의 구작들을 넘기 위해서는 무언가 발전이 있으려면 대단히 혁신적이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귀찮다 나 몰라'하면서 대충 2004에서 그래픽적인 발전만 하고 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옮기고 '이걸로 끝'이라고 하면 게이머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기존의 구작들과 차이점을 꼽으라면, 스토리 있는 싱글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정도군요. 다만 그 스토리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라는 걸 제외하면요. 세상에, 여러분들이 사악한 외계인들과 어떤 행성에서 싸웁니다. 근데 전행성에 리스폰 장치들이 깔려 있어서 이 놈들을 죽여도 되살아나고, 우리가 죽어도 되살아 납니다. ...그러면 싸우는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트레이닝 중 주인공과 여동생과 이런 정다운 대화가 오고 가는데...

여동생:오빠 실력이 녹슬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탄으로 연습해보자고!
주인공:너는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을 로켓런쳐로 다시 박살내는게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냐?
여동생:걱정마, 죽어도 리스폰 돼.
주인공:아.....




CTF 싱글 플레이 중에서 우리가 상대편의 리스폰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리스폰 통제 포인트를 빼앗아야 하는데, 생긴게 완벽하게 깃발입니다. 주인공이 이걸 보고 '이거 깃발 아니야?'라고 물어보니까, '뭐 생기기는 그렇게 생겼지'라고 얼버무리는 여동생과 팀원들에게 절망. 그 이후로도 이게 스토리가 있는건지, 아니면 WWE처럼 각본쓰고 언리얼 토너먼트를 진행하는건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예전에 존카멕이 '게임에 있어서 스토리는 포르노에 있어서 스토리와 같은 맥락이야!'라고 이야기한 것을 다시 한번 게임에 고스란히 재현해놓고 있더군요;;

사실 2004하고의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언리얼 토너먼트 3는 대단히 재밌는 게임입니다. 전작의 장점들은 그대로 잘 계승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최근 타이탄 팩이라는 무료 컨탠츠 확장팩이 적용되면서 게임이 전작들과 다른 모드, 다른 탬포를 지니게 되었으나...사실 게임을 하는 인구가 거의 빠져나간 상태에서 나온 때늦은 업데이트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타이탄 모드나 배신, 탐욕 모드는 잘 만든 모드이고 재미는 있습니다.

언리얼 토너먼트 3는 재미는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다만 문제는 2004를 하고 난 다음에 뭔가 혁신적인 것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좀 뭔가 바뀌었으면 좋겠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19세기 유럽은 역사적으로 대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루이 16세 때,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변혁의 바람이 불고, 오랜 기간 지속해 되었던 절대왕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완전하게 붕괴되었으니까요.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과정은 많은 작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수많은 문학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혹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그 초점을 맞춥니다. 슈발리에 또한 이러한 문학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슈발리에는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이하게 프랑스 혁명 직전의 시기인 루이 15세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애니의 내용 자체는 프랑스 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충성심 깊은 4명의 기사들의 여정을 통해서 그들의 왕과 국가에 대한 충정을 시험받고, 결과적으로 '변혁기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의 누나인 리아 드 보몽이 시체가 되어서 파리 센느강변에서 발견되고, 그 동생인 데온 드 보몽은 충직한 왕의 신하였던 누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데온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 누이를 영접(흔히 이야기하는 빙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온은 그 동료들과 함께 누이의 원수를 찾기 위해, 그리고 프랑스 왕조를 위협하는 적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납니다.

재밌는 점은 슈발리에는 많은 부분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의 등극, 루이 15세 때의 오를레앙 공의 반역과 진압, 귀족에 의해서 변두리로 밀려난 영국의 왕조들 등의 유럽 역사에 있어서 절대왕정의 막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절대 왕정의 막바지에서는 다양한 계층(농민, 부르주아, 시민 등)의 계층 의식이 성장하고, 이러한 계층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고 기존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왕이나 귀족 세력에 대해서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떄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이르러서 왕들이 기존의 귀족 세대를 대체하고 새로운 사회 체제를 새우려하고 이에 귀족 체제가 반역하는 과정이 있기도 하거나(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의 에피소드), 이미 귀족에 의해서 내몰린 왕이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부흥하여 다시 절대 왕정을 확립하려는(영국의 왕조의 에피소드) 모습 또한 보여줍니다.

이러한 절대 왕정의 말기에 있어서 기사(혹은 귀족) 계급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대변해서 일해야 하는가? 자신이 섬기던 국가? 혹은 국가를 대변하는왕? 국가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민중 계급인가, 혹은 자기 귀족계급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가? 데온 일행은 이러한 혼란기에 처하게 됩니다. 충실한 기사 계급인 그들은 가장 정석적인 답, 바로 '왕과 국가를 위해서'라는 일반적인 답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신념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왕이 자신에게 충성했던 충실한 귀족계층을 희생하려는 모습, 혹은 힘없는 왕이 잘 운영되는 국가 체계를 뒤엎고 다시 절대적인 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편하려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 왕정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하려는 왕조와 대면하게 되죠.

작품의 구조는 데온 일행의 기나긴 여정ㅡ오딧세이아ㅡ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데온 일행은 진실(누나를 죽인 원수, 혹은 왕정을 위협하는 적들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원래 자신들이 속해있던 안정적인 프랑스(루이 15세의 시기가 프랑스 혁명 전의 폭풍전야로서 조용한 시기였습니다.)에서 벗어나서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를 들여다 보고, 자신들의 역사적인 위치를 자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정은 대단히 가혹하기 때문에, 그들의 왕조에 대한 믿음을 시험받고, 혹은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슈발리에에서 핵심되는 키워드는 '왕가의 시'입니다. 프랑스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 신비한 힘을 가진 시집은 왕의 미래를 예언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하며, 심지어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절대 왕정 시기의 왕권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절대적이면서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시대 정신 같은 개념이지요. 하지만, 이는 역으로 개개인의 자유와 인간성을 옭아매는 폭압적인 존재기도 합니다. 데온의 누이 리아 같은 경우에는 왕가의 시와 관계되었다는 이유로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막시밀리안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부터 배격당했으며, 루이 15세는 스스로의 의지로 죽을 수도 없는 가련한 상황으로 이끕니다.

데온 일행의 여정은 이러한 가혹한 시대 정신과 흐름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혹한 시대 정신과 조우한 기사들은 국가와 왕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유지하거나, 다른 충성의 대상을 찾거나, 충성보다 기사 사이의 신의를 지키거나, 혹은 이 모든 걸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변혁을 꾀합니다. 슈발리에의 가장 뛰어난 점은 여정의 과정에서 변혁기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역사의 흐름은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뀌게 되고,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왕가의 시편을 찾으려 했던 기사들의 여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초라하게 늙은 데온이 '프랑스여, 영원하라!'라는 글을 바닥에 쓰고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는 제가 여태까지 본 애니메이션의 엔딩 중에서 가장 씁쓸한 느낌을 주는 엔딩인데, 더 이상 지켜야할 가치도 신념도 국가도 없는 상태에서 과거 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힌 가련한 노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발리에는 06년도에 했던 애니메이션의 숨은 걸작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구조, 미려한 작화, 독특한 소재 등 근래 찾아보기 힘든 걸작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사극이라는 마이너한 분야와 탄탄한 드라마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코드 등은 이 작품을 묻히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프로덕션 IG 20주년 기념 작품(맞나?)으로 나온 거 치고는 대단히 조용하게 막을 내린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발리에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며, 기회가 된다면 한번 꼭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이 글은 모 대학교 09학년도 영화로 보는 철학의 중간 대체 레포트인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분석 감상 비평문입니다. 여기 적혀 있는 구문이나 내용에 대한 복제 및 인용은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上편으로 / 中편으로 / 下편으로

1.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분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조셉 캠벨이 1947년에 쓴 책으로 세계 각국의 신화나 전설들에 대한 심리학적인 비교 분석을 통해서, 서로 달라 보이는 세계의 신화 구조가 결과적으로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첫 번째 부분은 영웅의 모험 분석, 두 번째 부분은 신화의 내용에 있어서 우주의 발생학적인 순환, 마지막으로 신화의 기능과 현대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웅의 모험은 크게 분리-입문-귀환의 형태를 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분리의 단계에서 영웅은 모험을 시작할 때, 운명이 영웅을 부르고 이에 의해서 영웅은 그가 속한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영웅은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고 운명에 저항할 수 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혹한 시련이고, 결과적으로 영웅은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만약 영웅이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거기에서부터 영웅은 초자연적인 조력자를 만나서 영웅적인 모험을 시작한다. 이러한 입문의 단계에서는 조력자를 만나 첫 관문을 지나는데, 이는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 즉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입문의 단계서 영웅은 시련의 길을 지난다. 그리고 모든 장애를 극복했을 때, 모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영웅은 여신과 만나나(성스러운 혼례), 아버지로 표상되는 절대적이면서 가혹한 자연 진리와의 화해를 한. 이러한 과정에서 영웅은 신적인 존재로 격상하며, 여기서 깨달음을 얻은 영웅은 다시 일반 사회로 돌아와서 그가 깨달은 것을 전파하여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단계(弘益)에 들어선다.

영웅의 모험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는 원래 세계로의 귀환이다. 어떤 영웅은 이 단계를 아예 회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결과 영웅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원래 세계로 귀환하기로 결정한 영웅은 신화적 세계에서 원래 세계로의 불가사의한 탈출을 감행하는데, 이에 대해 영웅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매우 크다. 탈출할 때 영웅은 외부의 구조를 받는 과정을 통해서 원래 세계로 귀환하는데, 신화적 세계에서 귀환한 영웅은 두 세계를 조율하는 스승이자 삶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제 2부 우주의 발생학적 순환에서는 우주의 탄생-분화-소멸의 구조를 살펴본다. 여기서 우주는 거대하고 창조적이지만 동시에 잔인한 어머니로부터 나오게 되는데, 유일한 존재로서 어머니는 영웅이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죽고, 여기에서 세계는 분리된 개개의 존재로 확립된다. 그리고 세계는 처녀 잉태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신화적인 세계에서 인간적인 세계로 구체화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 사회는 신화적 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게 되고, 우주의 순환은 신이나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인간인 영웅의 손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영웅은 다양한 모습(전사, 애인, 구세주, 성자, 폭군 등등)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웅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는 그 자신의 죽음과 화해를 한다.(혹은 저항을 통해서 생명을 연장한다던가) 이러한 개인(영웅)의 죽음은 소우주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우주의 죽음과 더불어서 세계 또한 그 순환적인 반복을 위해서 죽음(혹은 멸망, 종말)을 맞이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인간계에 있어서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영웅의 모험과 세계의 순환 과정이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은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머니나 안락한 세계라는 제한적인 세계에서 자라나다가(청소년, 유년기), 이로부터 분리되어서 세계를 접하게 되고(성인식, 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 여기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다시 자신이 예전에 속한 세계로 돌아와서 세계를 풍족하게 하거나 세계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어머니로 표상되는 안락한 세계에 존재했던 인간(정)과 이를 벗어나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인간(반), 그리고 다시 자신의 떠나온 세계로 돌아와서 새로운 존재가 된 인간(합)과 같이 이런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발생학적인 순환의 같은 경우, 이는 인류가 여태까지 겪어온 미시적, 거시적 역사의 과정과 많은 부분이 맞물린다. 인간의 탄생-성장-죽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그리고 개인이 우주와 인간과 그 균형에 대해서 깨달은 선지자들의 이야기들이 우주의 순환과 영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이야기 형태로 인류가 겪어온 경험들이 구체화되게 되는 것이다.




2. 신화구조를 적용한 대중문화

이러한 신화와 영웅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많은 문명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신체 조건과 환경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파악해서 신화의 공통적인 서사구조를 일찍부터 대중문화의 구조에 적용시킨 것이 바로 헐리우드 영화이다. 특히 1970년대 '스타워즈'를 비롯해서 영웅 영화 등에 조셉 캠벨의 신화 이론과 코드가 적용되었고, 그 결과 헐리우드 영화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였다고 평가받는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데 성공한 대중문화들이나 코드들도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소설 같은 경우에는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조엔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등등의 소설도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데 성공한 대중문화의 장르가 있는데, 그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197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해외로 수출되고, 전 세계적으로 방영된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도 조셉 켐벨이 지적한 영웅 신화의 구조를 많은 부분 따르고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이야기 구조로 예를 들어보면,

“죽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에드워드와 알폰스 형제는 금지되어 있는 연성술을 시행하고 만다. 그러나 연성 실패의 대가로 애드워드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그리고 알폰스는 심지어 육신 자체를 잃고 말았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황급하게 연성을 시도한 애드워드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희생한 대가로 간신히 알폰스의 혼을 철로 된 갑옷에 담아두는데 성공한다. ’등가 교환‘이란 냉혹한 법칙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 두 사람이었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서 형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철로 된 의수를 부착한 에드워드는 주야로 연금술을 공부하여 국가 연금술사의 자격을 획득하고, 강철의 연금술사란 칭호를 얻게 된다. 그들은 몸을 되찾기 위해서 궁극의 연금술 증폭기인 현자의 돌을 찾지만, 그들의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 백년 동안 감춰져왔던 어두운 진실과 음모였는데....”

위의 시놉시스를 보면, 주인공들인 에드워드와 알폰스 형제는 우주의 진리(잔혹하면서 거대한 아버지 같은 우주의 진리)를 보게 됨으로 기존의 속해 있던 세계에서 ‘분리’되게 된다(분리의 단계, 구체적으로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 당한다.) 그리고 일상 세계에서 벗어난 형제는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한 영웅적인 모험을 하게 되는데(입문의 단계), 이러한 과정에서 형제는 세상의 어두운 진실을 발견하고 세계를 위협에 빠트리는 자들과 대적한다. 마지막으로 형제들은 세계를 구하는데 성공하고, 일상적인 세계로 복귀하는 과정(회귀의 단계)에서 형인 에드워드는 동생인 알폰스를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서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조셉 켐벨의 영웅 신화의 구조가 많은 부분 차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은 조셉 켐벨이 이야기한 신화 구조와 차이가 있다.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가 대단히 다양하고 각각의 장르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1970년대 ‘마징가 Z’를 시작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까지의 소위 ‘슈퍼 로봇물’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한 줄로 요약하자면 벨브에 대한 만족과 실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DLC입니다.

-이번 DLC:서바이벌 팩의 주요 골자는 뭐니뭐니 해도 서바이벌 모드 추가입니다. 사실 이번 DLC에 사망자와 데드 에어의 대전 맵이 추가되었기는 했지만, 사실 이는 서바이벌 모드의 곁다리라는 느낌이 강하고(해봤자 맵 좀 수정하고, 대전이 가능하게 고쳤겠지 뭐...) 실제 게임 포럼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것이나 게이머들이 하는 것은 서바이벌 모드입니다. 서바이벌 모드 자체는 한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기어즈 오브 워 2의 호드 모드(때거리로 몰려오는 로커스트들을 방어하는 모드)에 가깝습니다. 게이머들은 무기 및 구급약을 챙기고, 가스통/기름탱크/프로판 탱크 등을 적절히 배치한 뒤에 오브젝트를 작동시키고 몰려오는 좀비들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만 호드 모드와는 다르게 좀비는 끝도 없이 몰려오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서바이벌 모드의 맵은 기본적인 맵들을 이용합니다. 다만 전체맵을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좀비와의 대치전을 벌였던 기존 맵의 특정 장소에서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존의 맵과 다르게 거의 4~5배에 가까운 물자량을 보여주는데(파이프 폭탄, 화염병, 구급팩, 진통제 등등이 문자 그대로 발에 채일정도로 많습니다), 이게 모여있는게 아니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서바이벌의 게임 플래이는 문자 그대로 '발악의 절정'입니다. 이제 게임이 나온지 6개월이 다되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아 대충 어디 짱박혀서 일점사 하면 되지'나 '높은데나 구석을 찾아야지', '적당히 좀비 러쉬의 길목에 화염병/파이프 폭탄/가스통 등등을 뿌려야지' 등의 잔머리를 굴리게 되고, 그 결과 게이머들이 게임을 설렁설렁 깨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서바이벌 모드에서는 이런 잔머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좀비들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헌터나 부머 등의 특수 좀비는 일반 게임의 3배 가까이 더 나옵니다. 예를 들어 헌터 3마리, 스모커 2마리, 부머 2마리 나오는게 일상 다반사고, 심지어는 탱크 두마리 및 좀비 때거지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 서바이벌 모드입니다. 게다가 몰려오는 좀비의 양도 일반적인 게임의 2배~3배가 되다 보니까, 탄약이나 무기가 소모되는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지게 됩니다.



(도표를 따르면, 서바이벌 모드 중에서 4분 이후로는 특수 좀비가 노 딜레이 리스폰 된다는
어이없는 상황을 게이머는 접하게 된다.)

 뭐, 결론적으로 서바이벌 모드가 지향하는 목표는 바로 '극단적 상황에서의 생존'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은 게이머의 계획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게 만듭니다. 처음 몇분은 구석에서 좀비들을 죽이면서 깔짝댈 수 있지만, 무기나 폭탄물이 떨어진 그 후에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 이리저리 달리면서 아이템을 주워먹고 발버둥을 치는 문자 그대로의 '광란의 Saturday Night Fever'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팀원들 사이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게 됩니다. 서바이벌 모드는 이러한 광란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악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에 재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째서 이 단순한 게임 형식을 개발하는데 거의 6개월 정도가 걸렸느냐 라는 겁니다. 사실 서바이벌 모드 자체가 재미는 있어도, 대단히 거칠고 단순한 모드이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브는 이번 DLC의 포함되었던 SDK(모드 제작을 위해 사용되는 키트)의 공개를 뒤로 미루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들의 서비스 정신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이 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건 사실입니다. 당분간 L4D는 이걸로 버틸 수 있겠다는 느낌이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1.시험준비기간에 게임하기는 좀 뭐해서, 그냥 미루어두었던 창궁의 파프너를 감상 완료했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그림체 때문에 은근히 숨겨진 명작이랄까, 내가 왜 이 작품을 여태까지 스킵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좀 아쉬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구조적으로 13화 기준으로 초반부-중반부-중후반부-후반부 이렇게 4단계로 구성 되어있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아 구조적으로 훌륭하게 짜여져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초반부에 갑작스런 페스튬과의 인카운터와 죽어가는 등장인물들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 카즈키, 그리고 중반부에는 카즈키가 섬이라는 유토피아를 나가서 진실을 보고 자신이 있을 장소를 깨닫습니다. 중후반부에서는 카즈키를 비롯한 파프너의 파일럿들과 섬의 어른들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지막 후반부에는 그러한 깨달음과 공감대를 통해 인류와 페스튬, 그리고 세계와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와 이유를 확립하게 됩니다.

초반 13화와 후반 13화가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고, 초반부의 암울함과 후반부의 희망의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냥 막장같이 암울하지도, 유치하게 밝지도 않고 그 중간에서 중도를 유지하는 것이 이 애니의 진정한 묘미라고 저는 봅니다. 

3.포스트 에바(Post Eva, 에반게리온 이후의 작품들)의 작품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려운 철학용어나 설정을 함부로 남용한다는 것입니다. 창궁의 파프너도 복잡함이 아슬아슬 하게 위험수위를 오가고 있지만, 작품 내내 스토리만 잘 따라갔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정도의 이야기를 유지합니다. 사실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은 일종의 세계와 나의 존재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서 이야기 안하고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이 작품의 백미라면 백미입니다. 물론 너무 직설적이어서 유치하다는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묘하게 초반 13화의 암울함이 거기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어서 직설적이지만 유치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방대한 양의 상징과 심리학적 분석,신화적 구조의 왜곡 변형, 프로이트 적인데다가 자기 부정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에반게리온(요즘 신화 관련 레포트 때문에 분석 중입니다)에 비해서는 창궁의 파프너는 정말이지 양반입니다(.....)

개인적으로 카논이 했던 대사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기 존재한다."가 가장 마음에 와닿더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카즈키 만큼의 성격 변화가 일어난 케릭터 이니....)

4.거대 로봇물이니 메카나 전투 장면도 애니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단, 작화가 나빴다 좋았다를 떠나서 묘하게 전투가 묘하게 박력이 없다는 게 좀 흠이군요. 메카닉 디자인도 솔직히 인상적이라기 보다는, 보고 있으면 그냥 나중에 정들게 되는 그런 타입입니다(.....)

5.이 애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인물 작화. 까놓고 이야기해서 창궁의 파프나 최고의 안티는 히라이 히사시. 그냥 제 상상이지만, 히라이 히사시가 케릭터 디자인만 안 맡았어도 이거 감상한 사람이 1.5 배로 늘었을 듯...

6.개인적으로는 추천작품입니다. 스토리나 내용, 케릭터도 괜찮고, 전투나 메카 디자인도 어느 정도 유지 되고, 다만 케릭터 디자인만 눈감고 참을 수 있다면(.....) 한번쯤 도전해도 괜찮을 작품입니다.


덧.그래도 초반 3화는 에반게리온하고 너무 겹쳤어....
덧2.나중에 정식 리뷰 갑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놀라운 부분도 많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정도?

-일단 FLAG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미덕은 현대 전쟁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내의 우디아나 내전은 말그대로 기술전과 이미지를 이용한 전쟁입니다. 평화의 상징 FLAG를 이용해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UN군, 그리고 FLAG 탈환 작전에 있어서 최첨단의 무기 HAVWC를 이용, 무기 테스트를 하는 모습이나, 전세계적인 도청 감청 기관인 에셜론과 정보 분석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합니다.

현대전은 기존의 화력과 전략 전술적인 전쟁 개념보다 정보전략전과 기술전의 중요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걸프전은 CNN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첨단 무기를 이용한 전쟁 과정을 그대로 생중계하였고, 최근 이라크 전은 생화학 무기 공장의 존재에 대한 첩보를 토대로 수행된 전쟁입니다. 이런식으로 현대전에서는 압도적인 화력보다 상대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최첨단 무기, 혹은 전세계적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한 정보전 등으로 전쟁이 점점 더 영리해지는 것입니다. FLAG는 이러한 전쟁 양상의 변화를 잘 짚어내고 있습니다.

-FLAG는 특이하게 종군 기자의 카메라라는 제 3자의 시선을 애니의 시선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시라스가 남긴 데이타에 대해서 다른 등장인물이 나레이션을 취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이로써 애니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라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군 기자의 기록'은 애니의 내용을 의미심장하게 만듭니다.

 기본적으로 전쟁 사진이나 고발 사진 같은 사진들은 전쟁이나 고난, 착취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이런 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라는 것을 고발하기 위한 고발과 상기의 성격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유대인 학살의 이미지는 겁먹은 듯이 손을 들고 있는 유태인 어린아이이고, 배트남 전이라고 하면 하노이 시내에서 즉결처형 당하는 순간에 울먹이는 베트콩이고...이런식으로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미지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종군 기자나 사진가 같은 사람들은 사진의 뷰파인더 뒤에서 시선으로만 존재할 뿐 그 사진에 있어서 실재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전쟁 사진은 바로 사진가라는 요소가 배제되었을 때만 전쟁 사진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 사건의 현장에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엄연히 사진의 프레임 뒤에, 뷰파인더 뒤에 존재하고 있죠. 이렇게 사진 속과 사진 바깥에서의 사진가라는 존재의 괴리는 FLAG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FLAG 탈환 작전을 기록하기 위한 시선으로서 시라스는 그 모든 사건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그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요(그녀가 애니 내에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은 극히 일부입니다) 이러한 시선과 케릭터 사이의 괴리, 그리고 전쟁 사진에 대한 통찰이 있기 때문에 FLAG는 독특한 시선을 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부분은 여기까지고, 여기서부터는 아쉬운 부분 이야기.

사실 FLAG는 뭐랄까...좀 전쟁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FLAG라는 만들어진 평화의 상징, 그리고 이러한 만들어진 상징을 빼앗고 이 땅에 일시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일을 마무리 하려는 UN군 등등 이런 식으로 전쟁에 있어서 실제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것과 다른 추악한 현실이 애니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FLAG는 이러한 현실 보다는 뷰파인더 뒤의 시라스가 FLAG 탈환팀과 교류하면서 카메라 바깥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시당초부터 전쟁 사진이나 기록이라는 것은 그 기록자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에서부터 객관성을 잃고,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스는 한 사람의 사진가로써라기 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행동하기를 선택합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널리스트의 기록 형식으로 인해 만들어진 작품의 의미심장함을 깎아먹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차라리 좀더 시니컬하게 현실에서 물러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카메라의 시선까지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더 완성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우디아나라는 나라...완전히 티벳+이라크 더군요. 현재 티벳은 시위로, 이라크는 전쟁을 거치면서 뒤집어졌다는걸 생각하면 약간 오싹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덧.만약 6화까지 봤는데, 내용이 크게 변하면 정식 리뷰가 나가고,
아니면 그냥 거기서 감상완료 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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