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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현실에서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지만, 동시에 뒷정리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파괴할 때의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파괴되고 남은 잔재들을 치우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파괴’ 효과가 게임의 중요한 콘텐츠이긴 했어도 동시에 파괴 효과만으로 게임 전체를 채워넣은 게임은 의외로 거의 없었다. 파괴효과가 유명했던 크랙다운 시리즈나 저스트 코즈 시리즈를 예로 들어 보자. 빌딩을 부수고 파괴하고, 잔재들이 쏟아져 내리고…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개발자들이나 기획자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스테이지를 만드는 것을 부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수고 난 다음의 게임이 동작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파괴는 파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대립되는 쌍을 전제로할 수 밖에 없다. 파괴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파괴의 카타르시스 이후에도 게임을 붙잡아주는 부서지지 않는 기본 구조와 대립항, 다시 파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시리즈의 신작으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를 만든 제작자들이 만든 게임이다. 게임은 공개당시부터 파괴를 통한 지형지물과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야생의 숨결을, 그리고 플랫포밍 게임이라는 점에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의 결합이라는 이야기나 다양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바난자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발매 이후에 플레이를 해본 사람들의 중론은 야숨이나 오딧세이 같은 게임에 비견될 바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즉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기대에는 못미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이는 비교 대상이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야생의 숨결과 같은 게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둘은 시리즈가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쌓아온 경험의 축적이자 결과물이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시리즈가 나아가야하는 일종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이들 시리즈와 다른 부분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기본적으로 액션 어드벤처, 그 중에서도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다. 기본적인 골격은 일자 진행이긴 하지만, 중간 중간에 숨겨놓은 요소들을 넣어둬서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탐색을 하면서 게임을 진행하게끔 만든다. 요컨데, 툼레이더 리부트 같은 게임에서 보여지는 리플레이가 가능한 일직선 플레이의 구조를 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완전히 복도식의 일직선이 아닌,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큰 공간을 두고 플레이어가 탐색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오픈월드 장르의 영향을 받은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완전한 샌드박스의 형태나 해매는 것을 전제로하는 것이 아닌 ‘출발과 도착’이 명확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이 게임은 지형지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닌,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의도한 대로 얼마나 잘 움직이고 행동하냐가 더 중요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키콩 바난자는 젤다의 전설나 데이어스 엑스 같은 이머시브 심 같은 게임이 아니다. 즉, 정답이 여러갈래로 존재하고, 플레이어의 기량과 준비에 따라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곳까지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플레이어의 기량을 측정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동키콩 바난자가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파괴하고 다양한 것들과 펀치로 상호작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치 이머시브 심이나 샌드박스 류의 게임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설명하였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을 성립시킬 수 없다. 파괴는 필연적으로 혼돈을 수반하고, 혼돈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플레이어가 모든 발판을 다 부서버린 다음에는 그 후에 어떻게 되는가? 게임이 진행이 가능해질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 플레이의 핵심 메카니즘을 구성할 수 없다. 파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파괴에 대칭되는 쌍이 과연 바난자에 어떤식으로 존재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근간이 되는 핵심 장르부터 짚어야 한다: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이고, 게임이 진행되는 양상은 기본적으로 플랫포머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르인 ‘액션’과 좀 더 구체적인 장르인 ‘플랫포머’를 따로 때서 봐야할 것이다. 액션 장르 자체는 힘을 통한 상호작용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규칙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액션의 방점이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것이 폭력이든 정교한 형태든 간에 중요한 것은 게임 내에서 어떠한 형태든 간에 힘이라는 테마는 액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난자는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액션 장르 게임이다:동키콩처럼 강한 힘을 가진 케릭터가 힘을 통해서 사물과 적들을 부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에서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적뿐만이 아니라 ‘지형지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형지물과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플랫포머 게임에서 플랫폼은 일종의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바난자는 그 근간을 흔드는 게임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여타 플랫포머 게임들을 보자. 가령 출발점 A에서 도착점 Z까지 간다고 했을 때, 중간에 다양한 발판들 B,C,D,E… 등이 있을거고 그 사이를 점프나 다양한 행동을 통해서 발판 사이를 오가며 도착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적인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발판을 부숴버린다면 플랫포머 게임은 장르는 성립을 할 수 없다. 그것은 A부터 Z까지의 경로를 구성하는 경로를 단절시키면서 장르의 전제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난자는 플랫폼을 파괴한다는 발상과 함께, 파괴 뿐만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해서 플랫폼을 다시 만들거나 이어주는 일종의 ‘부드러운 플랫폼’들을 만들어서 게임의 스테이지를 이어준다.

예를 들어 보자. 바다가 나오는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주먹으로 적을 쳤을 때, 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서 지형을 생성하는 기믹이 등장한다. 이를 이용해서 기존에 올라갈 수 없는 더 높은 발판들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발판 생성 기믹이 동키콩의 펀치라는 액션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플랫폼을 파괴하는 요소가 역으로 플랫폼을 생성하는 요소로도 사용된다는 것인데, 파괴를 뒤틀어서 창조의 영역으로 이용하는 발상을 한 것이자, 직관적이지만 마냥 쉽지 않은(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잘 생각해서 때려야 하기 때문에) 요소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구성이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때리고 부수고 던지고 하지만 중요한 점은 플랫폼의 총량이 ‘변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A에서 Z까지 가는데 중간에 있는 B나 C라는 플랫폼을 부순다면 이 부순 플랫폼들을 이용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거나 새로운 플랫폼까지 닿는데 필요한 임시 플랫폼을 만들게끔 한다는 것이다. 즉, 플랫포밍 장르 문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의 관계를 딱딱한 형태로 엄정하게 정의내리기 보다는 더 유연하게 접근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에서는 기존 플랫포머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구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땅을 파서 땅속에 파묻힌 보물들을 찾아낸다던가 하는 등의 행위들이 그럴 것이다. 기존 플랫포머에서는 땅을 잘못 파면 다시 복귀하거나 도착점까지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등의 외통수를 두게 되지만, 바난자에서는 벽면이라면 어느 곳이든 짚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수월했다. 어디에나 매달릴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플랫포머의 상식을 파괴하였지만(정교한 점프 등을 수행하지 않고도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플랫포머 장르를 따르고 있고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물론 플랫폼을 파괴하거나 창조하는 행위 자체가 플랫포머 장르에서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시도들은 아니다. 최근에 리메이크되서 나온 스펠렁키 같은 게임들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곧바로 감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바난자가 독특하고 대단한 점은 파괴의 액션을 창조의 행위와 결합하였다는 점이고, 플레이어가 직관적으로 위-수평-아래로 때리면서 길을 만들고 플랫폼을 개척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단순히 부수는 것만이 아니라 바난자 능력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스테이지와 상호작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예를 들어 코끼리 바난자의 경우에는 코로 지형을 빨아들이고 그 파편을 저장했다가 파편을 던지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행위로 이어줄 수 있다. 그리고 바난자 능력 사이에서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개 이상의 바난자 능력들을 활용한 구조도 보여주어서, 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포멧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바난자는 처음부터 이를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닌텐도로써도 이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 시리즈가 갖는 맥락과 다른데, 마리오 시리즈가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3D 마리오가 많이 나옴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64 이후로 나온 첫 3D 동키콩이라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정체성을 정립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처음에는 주먹으로 파괴하면서 발판을 만드는 스테이지를 제공하면서 플레이어가 새로운 컨셉에 적응하게끔 만들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게임의 구조(던지면 자라나는 씨앗, 때리면 날아가면서 발판을 만드는 적 등등)를 복잡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게임 자체가 동키콩 바난자라는 새로운 동키콩 게임의 콘셉을 정립하기 위한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이자 확장 테스트의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확장이 부드럽고 늘어나면서 결국엔 '동키콩 3D 게임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적인 결론과 재미 구조를 구축한다.

그것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 바로 최종 보스전이다. 최종 보스전에서 플레이어는 바닥을 모두 공격으로 뒤덮는 최종보스와 싸워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은 최종 보스의 특정 공격을 콩 바난자로 반격하여 주변 지형을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황금(피해를 주지 않고, 플레이어가 집어 던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파괴해서 바난자 능력을 다시 채워주기도 한다)으로 바꾸는 것이다. 바난자의 최종 보스는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말도 안되는 플랫폼 전체 공격을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최종 보스의 공격을 플레이어가 반전시켜서 역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일종의 핑퐁 구조를 만들어서 게임의 균형을 맞춘다. 구조 자체는 단순한 핑퐁처럼 주고-받는 구조로 보이지만, 바난자의 최종보스는 최종보스 답게 플레이어가 여지껏 게임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싸우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가 전반적으로 게임 콘셉의 데몬스트레이션이었던 것에 비한다면, 최종보스는 상당히 도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최종보스의 거대한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서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생각보다 보스의 공격을 받아치는게 까다롭다는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에서 플레이어의 학습 곡선이나 구성을 잘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도전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단히 전통적인 게임의 구조이긴 하지만, 이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통용되는 부분이 있고 닌텐도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일종의 시작점 같은 게임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왕국의 눈물같이 집대성 같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딧세이가 이뤄낸 성과들과 바난자를 비교하는 것은 바난자에게 다소 억울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오딧세이는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지금까지 만들어왔었던  게임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었다면, 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이제 바난자로부터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지형과 상호작용하면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고, 더 나아가 직관적인 파괴와 창조의 개념을 도입한 게임이 이제 바난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재밌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동키콩 바난자는 스위치 2를 구매한 사람이라면 꼭 구매해서 해볼만한 게임이다. 이 게임의 포멧은 앞으로 더 나은 게임 포멧이 될 것이고, 더 발전할 것이다. 스플래툰이나 야생의 숨결, 슈퍼마리오 오딧세이 와 같은 게임들을 만든 닌텐도이기 때문에 더 이 게임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많은 기대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벽돌깨기 라는 장르가 있다. 이 장르는 현재는 마이너하지만 게임 초창기의 역사와 맥이 닿아있는 장르다. 가령, 퐁이라는 최초의 상용 비디오 게임의 문법도 ‘공을 튕겨내어서 넘긴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벽돌 깨기 장르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76년 발매된 최초의 벽돌깨기 게임인 브레이크아웃은 2인용이었던 퐁을 1인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비디오 게임의 태동과 같은 게임에서 갈려져 나온 만큼 벽돌 깨기 장르는 다양한 변종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변종들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알카노이드라는 게임이 유명할 것이다. 아래에 있는 막대를 조작해서 벽돌을 맞고 튀겨져 나오는 공을 튕겨내서 공을 맞추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든 벽돌을 부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 이 게임은 벽돌깨기 류 게임 장르의 고전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알카노이드 등의 영향을 받은 게임 벽돌깨기 게임 장르들이 등장했다. 물론 벽돌깨기 장르가 플랫포밍 게임 등과 비교하여 본다면 더 하위 카테고리의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에, 장르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게임들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의 장르가 갖는 재미와 문법 자체는 공고했기 때문에 수많은 게임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볼핏(Ball X pit)은 벽돌깨기의 문법을 활용한 로그라이크 벽돌깨기 RPG라 할 수 있다. 게임은 간단하다. 적들이라는 벽돌을 깨부수면서 스테이지 끝까지 진행하고, 끝까지 진행한 다음에 보스를 물리치면 된다. 벽돌이 고정되어있는 일반적인 벽돌깨기 장르와 다르게, 벽돌 역할을 하는 적들이 아래로 조금씩 내려오고 플레이어에게 지나치게 가까워졌거나 혹은 맨 마지막 행까지 내려온 경우 플레이어에게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들을 최대한 빠르게 공을 튕겨내어서 벽돌을 부숴야 한다. 플레이어는 최대 두명의 케릭터와 5개의 볼, 5개의 패시브를 조합하여 난관을 해쳐나가야 하며, 볼의 융합, 진화를 통해서 자신만의 볼 조합을 만들어나가면서 적을 격파할 수 있다.

장르의 큰 틀을 놓고 본다면 볼핏은 벽돌깨기 장르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볼핏이 벽돌깨기를 구성하기 위해 들고 온 세부 장르들의 구성요소들이 일종의 메타 장르적인 경험을 의도하고 구축한다는 점이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점은 공격이 자동과 수동 방식으로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혹자는 볼핏의 게임 플레이가 ‘자동 공격을 전제로 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장르에 맥이 닿아있다고 하고, 자동 공격을 킨 상태에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게임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의 흐름은 큰 틀에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류의 장르와 크게 맥락이 닿아있지만, 포인트는 자동공격만 존재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류와 달리 ‘수동공격’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게임 플레이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다는게 포인트이다. 즉,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해야하는 게임 흐름 상 대부분의 상황에선 자동공격을 키겠지만 몇몇 상황에서는 플레이어가 자동 공격을 끄고 더 정밀하게 게임을 컨트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기꾼의 경우, 플레이어가 베이비볼이라 불리는 일반 공을 쏘지 않는 대신에 플레이어가 들고 있는 무작위의 특수 볼을 여러개 던질 수 있다. 자동공격을 킨 상황에서는 평균적으로 유기꾼을 조합한 조합의 경우 특수볼을 두개씩 던지지만, 수동공격을 통해서 공격할 경우 동일한 특수볼을 5개 이상 발사할 수도 있다. 즉, 자동회수 - 자동발사 라는 메카니즘 내에서는 특수볼을 회수하자마자 던지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2개(1개를 회수하면 두개를 던진다)를 던지는 것에 수렴한다면, 모든 공을 회수한 후에 던지게 되면 던지는 순서가 무작위이긴 해도 5개 이상의 특수볼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로직을 최대한 극대화한 것이 바로 전략가와 유기꾼의 조합이다. 전략가는 게임을 ‘턴제’로 바꾸어버리는데 플레이어가 공격을 할 때만 시간이 흐르고 적들과 투사체가 움직이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의 볼 압축(유기꾼은 특수볼을 무작위로 여러개로 던지기 때문에 여러개의 볼이 있을 경우 내가 원하는 특수볼을 던지지 않을 수 있다)을 한 상태에서 유기꾼을 이용해서 공을 던지는 것을 뻥튀기 하면 엄청난 폭딜을 꽂아넣을 수 있다. 전체 화면 처리에 특화된 대출혈 X 섬광(전체화면에 출혈 데미지를 뿌리는 특수볼 조합) 5개가 튕기는 조합은 실제 마지막 스테이지 타임 어택 기록에도 등재되어 있다(무려 클리어 시간이 2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핏의 특징은 장르 자체만 본다면 벽돌깨기 장르이지만, 벽돌깨기 장르의 전형에서부터 현대적인 뱀파이어 서바이버류의 자동공격 류 게임, 그리고 버블버블이나 자동 사냥 등의 다양한 게임 장르들이 메타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게임이며, 단순하게 벽돌깨기 장르로만 구성된 게임이 아닌 좀 더 독특하고 기괴한 형태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길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RTS 장르를 콘솔 게임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RTS의 조작 구조를 옮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조합은 직관적으로 ‘이 유닛에게는 이러한 명령을 한다’라는 논리를 쉽게 세울 수 있다. 이는 마우스라는 조작 도구의 조작 특성이 강하게 한몫할 것이다. 유닛을 선택하거나(좌 클릭), 단체로 선택하거나(드래그), 명령을 내리고(우클릭), 카메라를 패닝하거나 더 넓게 보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직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우스를 이용한 조작은 ‘신의 위치에서 조작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RTS 특유의 조감도와 위에서 내려보는 풍경 자체가 주는 초월감과 작은 유닛들을 조작하고 통제하면서 큰 환경을 지배하는 우월감의 개념은 RTS 장르 뿐만 아니라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드러나는 강한 감각이었다. 즉, 플레이어가 일종의 신이 된다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특수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패드의 전통적인 조작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특화되어 있다. 현대적인 패드 조작에서 왼쪽 스틱은 조작을, 오른쪽 스틱은 주인공 시점에서 카메라를 조작하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RTS 장르의 신이 된다는 감각을 구현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는데, 패드의 조작이 ‘케릭터를 중심으로 직관적으로’ 플레이어가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데 특화되어 있다면 마우스와 키보드로 조작하는 RTS의 조작은 개개의 개체를 뛰어넘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통제하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조작체계의 상이함이 RTS와 같은 장르의 게임을 콘솔게임에서 구현하게 만들기 힘든 핵심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크민 시리즈는 상당히 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인칭 시점에서 피크민이라는 유닛들을 조작해서 퍼즐을 풀고 전투를 하며 다양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피크민은 기본적으로 RTS 장르로 분류되어 있다. 물론 RTS 장르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스타크래프트나 커멘드 앤 컨커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여보았을 때는 이질적인 부분들이 심하긴 하지만, 자원의 생산과 관리, 행동을 유닛 단위로 쪼게서 통제하고 문제를 해쳐나간다는 큰 골자에서는 기존 RTS와 맞닿아있는 부분들이 많다.

피크민 시리즈의 핵심 경험은 바로 계획이다:플레이어는 피크민에서 제한된 자원들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쳐나간다. 먼저 눈여겨 볼 것은 시간이다. 먼저 플레이어는 하루 낮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맵을 탐색하고 퍼즐을 풀고 전투를 하며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나가야 한다. 피크민 1과 2에서는 제한 시간 내에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빡빡한 조건이었고, 피크민 3과 4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완화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한 스테이지의 호흡은 낮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구조는 고수하고 있다. 즉,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 동안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내에서 ‘무언가를 한다’라는 상호 작용은 피크민을 통해서 수행하게 된다. 피크민은 RTS로 따지면 유닛이라 할 수 있는데, RTS의 유닛 개념에 대응하는 시스템 답게 각기 다른 피크민들이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고 능력치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피크민에서 중요한 것은 각 유닛 종류별로 쌔고 강한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닛별로 역할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행동의 강함과 빠른 문제 해결은 유닛의 수를 많이 투입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강한 유닛 = 문제 해결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얼마나 유닛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서 빨리 끝낼 것인지 아니면 유닛을 분산 투자해서 다양한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를 플레이어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닛의 수가 플레이어의 강함과 할 수 있는 가짓수를 늘려준다는 점에서 피크민을 많이 보유하기 위해 피크민 수를 꾸준히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피크민은 플레이어의 지시가 없으면 개별 개체는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합과 공격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며, 주기적으로 소모된 피크민은 사냥을 통해서 채워넣어줘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조작이나 구성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데도 시간 내에 게임을 플레이한다 라는 개념과 피크민이라는 약한 유닛들을 숫자로 커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으로 인해서 게임이 단순히 퍼즐게임이나 액션 게임과는 다른 방향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게임 플레이의 정답이 정해져있는 퍼즐게임이나 플레이어의 조작 감각이 중요한 액션 게임들의 경우, 플레이어의 기량이 퍼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혹은 조작을 얼마나 잘하는지 등의 기량을 평가한다고 한다면, 피크민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시간 내에 제한된 숫자의 피크민을 배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4편에서는 아예 이를 ‘계획력’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피크민은 플레이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원을 잘 분배하고 투자하고 그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일반적인 RTS가 그러한 자원 배분과 관리를 더 꼼꼼하게 할 수록 플레이어의 손이 바빠지거나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도록 요구하였다면, 피크민은 그러한 것 없이 단순한 조작과 시간/자원의 제한만으로 플레이어의 기량을 테스트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3과 4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이다. 3은 기본적으로 1과 2의 발전형이자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1과 2의 플레이를 상당히 많은 부분 차용하였다. 탑뷰 방식의 카메라나 시간 제한에 식량 자원이라는 자원 개념을 추가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4는 3과 궤를 달리하는데, 카메라와 조작 스타일을 전형적인 3D 액션 게임의 방식을 들고 오면서도 와치라는 강아지를 추가해서 3편에서 3명을 조작하는 시스템을 깔끔하게 다듬고 편의성을 혁신적으로 증대시킨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게임 시스템의 깊이 측면에서 본다면 ‘이렇게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능성을 증대시킨 것도 4편이었다. 우선 기존의 게임 컨셉을 ‘계획력’이라는 키워드로 응축시킨 것 부터가 그러한데, 게임 내내 이 계획력이 무엇이고 계획력있게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자칫 생소해지기 쉬운 게임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는다. 그리고 여기서 계획력 배틀과 지하 컨텐츠를 추가해서 계획력이라는 컨셉에 맞게 게임을 재구성하는데, 기존 게임 플레이가 탐색 - 퍼즐 - 전투 - 보스전의 반복이었다면 여기에 다양한 배리에이션들을 추가해서 게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본다면 ‘게임의 컨셉을 재해석/재정립하여 현대적으로 다듬은 게임’이 바로 피크민 4인 것이다.

피크민 3과 4중에 꼭 하나만 해야한다면 당연히 피크민 4를 해야겠지만, 피크민 3 또한 훌륭한 작품이다. 가장 좋은 것은 3편을 즐겨본 다음에 4편을 하는 것이다. 3편이 재밌는 부분들이 얼마나 발전해서 4편에서 더 가다듬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이야기

 

-아틀라스 특유의 원본에 확장판을 팔아먹는 구조의 게임.

-하드모드로 플레이 중인데,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느낌. 확실히 레벨을 20이상 차이를 벌렸음에도 불구하고 상성 몇번 잘못 찔리면 죽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레벨 노가다를 아무리 잘했어도 방심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고, 이게 레벨이 올라가는데 한계가 걸리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때부터 얼마나 다양한 악마를 구비하고 아이템까지 싹다 긁어모아서 게임을 플레이하는가에 따라서 클리어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항상 그렇듯이 진여신 시리즈 난이도 배분 구조는 그 구조가 이해가 되긴 해도 좀 이상하다는 인상이 있다. 악마나 스킬 등 기반이 갖춰지기 전 초반은 상당히 빡센데, 기술이나 악마, 내성이 갖춰지기 시작하는 중반부터는 난이도가 쉬워지기 시작하더니, 레벨 캡에 근접해지고 속성과 내성으로 커버되지 않는 만능 속성 공격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다시 전투에 긴장감이 붙는 구조이긴 하다. 즉, 노가다로 기술과 악마 등을 확보할 수 있는 구간은 쉬운 반면, 노가다가 통용되지 않는 구간은 상당한 긴장감이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큰 차이를 느끼는 부분들이 벤전스의 네 여마 보스전과 원판 시바 보스전의 차이일 것인데, 만능 속성 공격과 딜로 찍어누르는게 가능한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 체력과 탱킹 불가능한 만능 속성 공격, 쫄 소환, 쫄 드리블을 통해 프레스 턴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탱킹하는 모습까지 사용하면서 머리를 굴려야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상당히 전제하고 있는 전투들이 후반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런 기믹 전들 경우에는 모르는 상태에서 들이받을 때는 하드모드에서는 클리어 불가능한 경우들이 있어서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프레스 턴이나 약점을 찔렀을 때/찔렸을 때의 이득과 손해라는 관점에서 이미 게임은 과거에 완성되어 있고 그에 대한 바리에이션으로 지금까지 게임을 이끌어온다는 느낌인데, 4편도 중간에 이러한 상황들이 있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3편 이후 현대적인 진여신전생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1과 2의 리메이크가 4편이고, 3의 리메이크가 5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도 끝까지 플레이하고(지금 마지막 보스 3연전만 남겨놓은 상황) 모든 악마들 레벨이 150으로 고정되는 창생 난이도를 해보려고 계속 플레이하는 중이다. 일단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진여신전생 난이도 구조 상 노가다가 통용되지 않는 게임 영역에서는 벨런스나 게임 플레이가 상당히 재밌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부분을 과연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궁금한 부분이 있고 150 레벨로 올라가면서 육성의 폭도 늘어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기대하고 있긴 하다.

-벤전스 추가 요소들(퀘스트, 악마의 뒤뜰, 숏컷, 퀘스트 내비 종류 추가 등)은 사실 5편 본판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원판 자체가 좀 허전한 것들이 있어서, 그것을 채워넣는 요소들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질수 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원판의 느낌에서 크게 무언가 벗어나지 않는 좋게 이야기하면 확장판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이빨빠진 데를 이제서야 채워넣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확장판이다 보니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스토리는 원판과 확장판이 완전히 분기되어 나뉘어지는 모습이 되었는데, 원판이 구멍이 숭숭 뚫려서 루트 분기도 이해가 안되고 마카를 이용해서 루트를 바꿀 수 있는 얼척없는 모습이 되었던걸 생각한다면 그래도 확장판 스토리는 납득이 되는 모습으로 구성되긴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확장판 스토리가 제로부터 다시 쓰여진게 아니라 원판에 덧대어 있다 보니까 신 케릭터의 존재가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원판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원래 진여신전생 시리즈가 상당히 드라이하고 충격적인 묘사로 유명한 작품이긴 한데, 5편에서는 스토리가 없어지더니 확장판에서는 그 없어진 스토리를 무슨 학창물로 바꾸어 버렸다. 드라이하고 충격적이라기 보다는 2000년대 초반 애니와 같은 느낌이 강하고, 행동으로 무언가 표현하기 보다는 대사로 케릭터와 스토리를 때워버리기 때문에 이야기의 힘이 휘발된다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5편의 스토리가 너무 인상이 별로였는지라 확장판 스토리가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도 별로인건 어쩔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원판보다는 나아지긴 했는데, 나사 빠진걸 겨우 테이프로 땜빵해서 다시 냈다는 인상이 강한 작품. 원판을 해본 사람은 굳이 이걸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긴 하다.

게임 이야기

 

림월드의 초기 게임은 엔딩이 있는 게임을 지향했었다. 엔딩이 있는 게임이란 어떤식으로든 게임의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림월드에서는 그것이 탈출이었고, 우여곡절끝에 어떻게 탈출을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림월드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이 정착지와 폰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엔딩을 보지 않고 오랫동안 플레이하는 스타일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DLC도 게임을 좀 더 ‘장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이오테크의 육아와 같은 케이스일 것이다. 바이오테크의 육아는 한 정착지에서 폰들이 서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강력한(혹은 플레이어가 애착을 갖고 키우는) 폰으로 키우는 콘텐츠인데 이 과정에서 빠른 탈출보다 느긋하게 정착지를 키우고 강화하는 과정을 즐긴다는 측면에서 바이오테크가 갖는 의의는 상당히 컸다. 그 이후 나온 어노말리 같은 콘텐츠는 뭔가 ‘모르면 맞아야 하는’ 일종의 고난이도 고자극 콘텐츠 쪽이었다면, 게임의 방향성을 크게 틀었던 콘텐츠는 바이오테크나 이데올로기 쪽이었다.

오딧세이는 바이오테크나 이데올로기 같은 DLC보다 더 큰 틀에서 게임의 방향성을 바꾸는데, 기존의 DLC들이 정착지 하나에서 생기는 일들을 다루었다면, 오딧세이는 정착지의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면서 플레이하는 유목민 플레이 스타일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쪽이 되었다. 물론 모드나 제한적인 플레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정착지를 버리고 새 정착지를 만들고 하는 과정을 할수도 있었지만, 오딧세이와 같이 장거리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장소를 찾고 자원을 확보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구조로 변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오딧세이에서 중력 부양선은 기본적으로 ‘날아다니는 간이 정착지’ 개념에 가깝다. 한번 착륙하면 다시 날아가기까지 쿨타임이 어느정도 존재하고, 크기 등의 다양한 제한이 존재하긴 하지만, 중력 부양선은 정착지의 인원들을 생활을 백업한다는 점, 무엇보다 지형지물에 구애받지 않는 인프라를 확보해준다는 점과 지상 정착지와 결합하여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강점을 지니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적습이나 위협을 가볍게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정착지 내정이나 플레이와는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오딧세이와 중력부양선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유목민 플레이는 기존의 정착지 내정 플레이와는 상당히 다른 독특한 흐름을 갖는데, 기존의 정착지들이 내부 자원을 모조리 다 소비하게 되면 무역에 의존하여 자원을 확보해야했다면(특히 철이나 부품 같은), 오딧세이의 유목민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족하나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어 원래 한 맵에서 나오는 부품이 100개 정도고, 100개를 다 먹고 나면 그 후에는 재수급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테크트리를 탔어야 했지만, 오딧세이에서는 간단하게 맵을 바꿔서 다른 부품 수급처를 찾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난이도가 훨씬 더 내려간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인프라 공간이 적다는 점과 농사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 때문에 오딧세이의 중력부양선 플레이는 무조건 쉽다고는 할 수 없다. 농사에 제약이 걸려서 어려움이 생기는 부분은 아마도 전통적인 사기 돈벌기 방법인 마약 거래가 막힌다는 점일텐데, 함선 내 인프라에 수경재배를 할당하고 최대한 쥐어짜낸다 하더라도 정착지 대비해서 그렇게까지 효율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돈벌이 수단이나 운영 수단을 확보해야만 한다. 날아다니는 간이 정착지라는 측면에서 완벽하게 정착해서 플레이하는 것의 상위호환이나 하위호환이 아닌 트레이드 오프가 있는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 중 하나라는 점은 오딧세이의 중력 부양선 플레이가 잘 짜여졌다는 증거다.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만큼, 세계에 다양한 생물군계와 랜드마크가 추가된 것도 오딧세이의 특징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들은 고대 유적과 관련된 랜드마크들과 우주일 것이다. 특히 랜드마크들의 경우, 기존의 네모네모난 고대 건축물들에서 탈피해서 ‘말이되는 구조와 내러티브를 가진’ 구조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대의 방폭 쉘터, 연료 저장소, 발사대 등등 종류도 다양하고 보상도 꽤 많아서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강렬하고 멋진 경험이긴 하지만, 아쉬운것들이 있다면 기존 정착지 플레이와 병행한다면 병행 시 상당히 충돌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기존 림월드도 2개 이상의 정착지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고, 오딧세이의 중력부양선이 기본적으로는 간이 정착지이기 떄문에 정착지 플레이 병행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편의성의 문제나 이점이 적다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운송 수단의 기준에서 본다면 중력부양선 보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왕복선이 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중력부양선이 간이 정착지가 아닌 운송 수단의 개념에서도 시스템을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오딧세이는 림월드에 있어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크게 바꿔버린 게임이자, 림월드에 생성된 다양한 콘텐츠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든 DLC라 할 수 있다. 기존 정착지 플레이와 병행하기가 조금 까다롭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있지만, 림월드를 해본 사람이나 이번에 입문한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는 DLC라 할 수 있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날이 너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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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업데이트되는 게임이 많아지면서 테세우스의 배의 난제가 적용되는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다:테세우스의 배란 테세우스의 배를 수리하기 위해서 모든 판자를 교체하였다면, 과연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 할 수 있는가? 라는 난제이다. 즉,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바뀌게 된다면 그것의 동일성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라는 것에 대한 질문이 테세우스의 배이다. 게임에 업데이트가 적용이 되면서 게임이 양적으로 확장하는 경우는 이제 흔해졌지만, 역으로 게임의 본질을 건드리는 업데이트도 같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게임과 과거의 게임의 동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들도 종종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예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스텔라리스이다. 스텔라리스는 게임 내의 자원체계를 변경하고, 인구 시스템이나 문명 시스템을 조정하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연단위 패치로 거대하게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처음 플레이했을 때의 스텔라리스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스텔라리스는 거의 게임이 버전 1.5나 1.7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거기에 DLC까지 연결되면서 게임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모하게 되는데, DLC가 단순히 양적 확장 뿐만이 아니라 게임의 질을 바꾸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는 이러한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게임의 바닐라 파트도 같이 변화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두번째는 디아블로 4다. 디아블로 4는 초창기 시스템과 달리 시즌을 적용할 때마다 콘텐츠를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 하면서 게임의 핵심 코어를 많은 부분 건든 것들이 있다. 가장 큰 부분들은 아이템 레벨과 레벨링, 정복자 시스템들에 대한 다양한 조정인데, 게임의 변화가 시즌마다 워낙 크다보니 게임이 원판 디아 4가 나왔을 때와 같은 구조라고 이야기 힘들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복합적인 평가와 설왕설래가 있어왔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계속해서 변화하는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디아블로 4는 나름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 두 게임들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3~4개월마다 게임의 핵심 메카니즘에 크게 손을 대면서 게임의 내용을 바꿔왔다. 모든 업데이트형 게임들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디아블로 4와 스텔라리스 같은 게임들의 존재는 과연 게임이 업데이트로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의 예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들이 디아블로 4.5, 스텔라리스 1.7 같이 불리는게 아닌 디아블로 4나 스텔라리스로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게임을 관통하는 핵심 경험은 게임의 업데이트를 통해서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 4가 그러한 업데이트를 통해서 바뀌더라도 다크소울이나 다른 RPG 장르 작품과 비교되지 않는 것은 결국은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텔라리스도 그러하다. 스텔라리스가 업데이트를 통해서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스텔라리스는 여전히 스텔라리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이 단순하게 장르적인 정체성이나 가족 유사성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이 게임만의 정체성'에 국한되어 변화한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디아블로 4에서 장르적인 특징인 핵앤슬래시라는 장르 하부에 디아블로 4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세부 시스템들이 있다면 업데이트가 건드리는 것은 이러한 세부 시스템들 뿐이라는 것이다. 즉,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부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인데, 다소 극단적인 변화에서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이 게임은 어떤 게임이다라는 제작자들의 확고한 철학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플레이어가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그 범위 내에서는 다양한 변화들을 일으키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게임에서 업데이트로 인해 발생하는 테세우스 배의 난제는 더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난제가 아닌 셈이라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게임 시스템의 합 이상이자 게임 장르의 하위라는 이 게임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일 것인데, 어떤 게임은 이런 게임이다 라고 문장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핵심되는 개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 레벨 파이브의 강점이 집대성된 게임. 좋은 의미로 얕고 넓은 게임인데, 넓게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여러 게임들을 밴치마킹했다. 각각 요소만 보면 이런게 뭐가 재밌지? 싶지만 계속해서 하다보면 시간이 지나가게끔 만들어 놓았다. 슴슴한 재미인데, 그 슴슴한 재미를 콘텐츠의 분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즉, 플레이어가 지루해하는 타이밍에 새로운 챌린지나 새로운 지역을 제공하고, 각각의 요소들이 모두 모여서 다른 요소에 도전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구조와 기획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게임의 구조는 판타지 라이프와 동일하다. 모든 것은 잡이라는 직업으로 게임 내의 세계를 즐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플레이어는 다양한 잡들을 통해서 게임 내의 세계를 다방면으로 즐기는 것이 판타지 라이프의 핵심이다. 이번작도 결국은 다 비슷비슷한 미니게임과 전투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그 대신에 편의성 측면에서 전작에 비해서 엄청나게 뛰어난 작품이 되었다. 어디서든지 잡 마스터를 향해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던가, 혹은 잡을 편하게 바꿀 수 있다던가 하는 등의 편의성이 강화되었다. 전작도 하다가 포기했던 부분이 이런 편의성에서의 귀찮음이 심했다는 것인데, 본작에서는 그러한 불편함이 많이 줄어들어서 불편함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게임의 구조는 상당히 머리를 썼다고 할 수 있는데, 게임의 시공간을 현재 - 과거 - 무지크지 대륙이라는 구조로 나누어 두고, 마을 꾸미기(현재)와 튜토리얼/스토리 진행(과거), 엔드 콘텐츠(무지크지 대륙)로 나누어서 각 컨텐츠마다 즐길 수 있는 것과 목적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게임이 어떤 특정한 순서대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이 구분된만큼 게임 내의 동선이 깔끔하게 나뉘어지는 부분도 있고, 할거리가 많은 게임인 만큼 공간 분할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인상도 분명하게 잘 심어주고 있는 편이다. 

게임이 결국은 높은 레벨의 잡 레벨, 재료 찾기 등을 하기 위해서는 챌린지를 해금해야지 다음 단계로 나가야하는데, 그 다음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동선이 과거와 현재에 적절하게 배분시켜놓았다는 점은 머리를 잘 썼다고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게임의 엔드 콘텐츠인 무지크지 대륙은 구역별로 레벨업을 하면서 단계별로 파밍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마다 목표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상이한게 확실히 잘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길을 해맬 일이 없다는 점, 그 길을 해맬일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이상한데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구조를 잘 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얄팍한 대신에 10개가 넘는 직업을 모두 마스터해서 게임 콘텐츠를 즐긴다는 구조로 만들어 놨다. 즉, 게임 자체는 이미 이런데 많은 레퍼런스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놀랍지는 않은 구조고,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게임을 처음해봐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다. 대신 생활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보니, 게임 내에서 '전체론적인 구성'을 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하우징에서 전투, 이 모든 것들의 제작부터 플레이까지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고 즐긴다 라는 점에서), 이런 부분에서 게임은 전체 직업을 골고루 키워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게임 스토리 마지막 퀘스트에서 모든 직업이 힘을 합쳐서 최종 보스와 싸우기 위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레벨을 올리거나 챌린지를 클리어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레벨을 1에서부터 올려도 상관없지만 게임은 동료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좀더 쉽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특히 제작에서 제작 품질을 올리거나 미니 게임을 좀 더 쉽게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등 편의성 측면에서 동료가 하는 역할이 막중하고 또 플레이어의 노가다를 대폭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전투나 제작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동료를 영입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벨 파이브 게임 답게 패러디나 이상한 개그 코드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요괴워치 3이나 4 같이 이상하거나 또 전연령 기준으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내용은 전혀 없다. 레벨 파이브 특유의 뇌절이 없기 떄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얕고 넓은 게임이지만 원판보다 더 뛰어나진 편의성과 게임 디자인 떄문에 오래즐기고 플레이하기에는 괜찮은 게임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할인할 때나 한번 가볍게 즐겨도 괜찮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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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The sky above the port was the color of television, tuned to a dead channel."*
항구의 하늘은 방송이 끝난 텔레비전의 색이었다.

-뉴로맨서 도입부

 

도시라는 풍광과 산업 사회의 등장은 우리에게 도시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의 등장으로 연결되었다. 이전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도시의 풍광과 대중의 풍광, 그리고 그 대중이라는 존재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실체화 되는 것 등을 통해서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탐정 소설들과 하드 보일드, 필름 느와르와 같은 장르들이 흥하게 되었다:진실과 가치는 도시의 무정한 흐름속에 삼켜지고, 오로지 현실에 찌들었지만 동시에 고귀한 마음을 가진 자들(혹은 그보다 더 악에 받쳐 싸우는 악인들)이 진실을 찾아 올라간다. 진실을 찾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주인공과 독자들은 바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말도 안되는 일상의 기적들이나 작은 가치의 소중함을 찾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19세기 ~ 20세기 초의 탐정물과 도시를 풍광으로 하는 작품들이 고전 명작들이 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교과서인 동시에 낡고 퇴색한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요즘의 대중은 삶에 찌든 고귀한 탐정 이야기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 모든 노력과 고생 끝에 찾아낸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드 보일드 소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필립 말로 마지막 작품인 기나긴 이별과 같은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탐정이 찾고자하는 가치는 무가치하고, 탐정 역시 지쳐서 일을 그만두려 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다. 즉, 이러한 대중문화의 흐름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사람의 패배에 대해 은연중의 무기력감과 패배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와 동시에 20세기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대중 일각으로부터 드러난 우울한 세계의 이미지였다. 20세기 후반, 우리를 구원해줄 것 같은 과학과 기술은 환경을 파괴하고 삶을 옥죄었고, 물질적인 풍요는 기업의 조직적인 착취와 억압이라는 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도시라는 풍광은 더이상 대중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였고, 사람들은 그 속에 무력하게 삼켜져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가리에 박힌 삐죽삐죽한 이빨들은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가 등장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이었다. 네트워크라는 기술이 가져다 줄 가능성이 새로운 인류 사회에 대한 가능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착취와 억압의 도구가 되며, 국가라는 가치 체계가 붕괴하고 기업이 그 자리에 들어서며 노골적으로 인간을 착취하는 세계, 더 나아가서 거기서 찾아야 하는 가치도 없고 끝없이 방황하며 떠도는 인간이라는 관점이 들어간 대중문화는 1970~80년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받으면서 장르화되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사이버펑크 장르가 지향하고 있는 시대가 상당수 지금 현재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아닌 1980년대에 상상한 미래, 촌스럽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이미지를 띄고 있는 일종의 레트로 퓨처리즘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버펑크의 초기작들이 1980년대의 암울했던 미국의 경제 상황이나 일본에 대한 공포, 80년대 스타일을 당시에는 업데이트된 상상력으로 그렸다면, 이제 이러한 이미지를 인용하는 것은 그러한 미래가 일부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고, 또 언젠가는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사이버펑크는 현재의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이버펑크에 열광하는 것이다.

사이버펑크 2077은 문자 의미 그대로 사이버펑크 장르의 작품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SF 하부 장르였던 사이버펑크 장르에 비추어본다면 사이버펑크 2077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는 SF 하부 장르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다. SF, 사이언스 픽션이라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상상에 기반하여 쓰여지는 장르다. 하지만 작품의 핵심 이야기 흐름인 렐릭이라는 요소는 ‘인격의 복제’라는 요소를 들고오긴 했지만 그것으로 사회가 어떻게 바뀐다 라는 상상력을 제공하진 않는다. 브레인댄스나 인채 개조 등의 다양한 SF 요소들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믹으로써만 동작할 뿐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 동력이 되지 못한다.

사이버펑크 2077 이야기의 핵심 동력은 욕망이고, 그것의 배경으로 거대한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나이트 시티라는 무대를 제공해준다. 이 점에서 오히려 사이버펑크 2077의 장르적 맥락은 SF나 때때로 사이버펑크 그 자체의 장르보다는 20세기 초의 필름 느와르나 하드보일드 장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욕망이 들끓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 사이버펑크 2077의 핵심 테마인 것이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기존 하드보일드 소설이나 필름 느와르의 작품에서 도시는 흑백영화에서 드러나는 어둠처럼 항상 존재하면서 진실과 추악함을 덮어버리는 암막처럼 작용했다. 그 암막을 들춰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20세기 초반 대중문화의 특징이었다면,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그러한 암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트 시티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은 도덕과 가치의 기준이 없이 오로지 욕망만이 긍정되는 극단적인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진실과 믿음, 가치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주인공 V의 직업이 용병인 것도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기존 느와르 장르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직업 이상의 의미였다. 실제로는 돈을 받으면서 불륜이나 조사하고, 남의 뒤나 캐고 다니는 천박한 직업이지만, 동시에 ‘도시의 어둠속에 가려진 진실을 찾는다’라는 점에서 대중문화가 탐정에게 주는 가치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진창을 굴러다니더라도, 지켜야 하고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이라는 진리가 있고, 그걸 탐정이 찾아나선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에서 탐정은 실제와 다르게 기사이자 십자군, 고행수도사처럼 묘사되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V가 용병인 것은 이러한 탐정의 안티테제를 취한다고 볼 수 있는데, ‘돈을 주면 무엇이든지 한다’라는 명제로 인해서 V는 도저히 벗어나올 수 없는 골치아픈 상황에 직면한다.

사이버펑크 2077의 스토리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잘 쓰여진 안티-느와르, 하드보일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오로지 돈과 욕망, 전설이 되고자 하는 명예욕, 그리고 시한부 인생으로부터 살고자하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동기에 따라서 움직인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러한 동기에 얽메이면 얽메일수록 일은 점점 꼬여가고 해어나올 수 없는 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선인도 없지만 악인도 없고, 오로지 돈과 욕망에 따라서 움직이는 시궁창만이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이며 나이트 시티라는 공간의 본질인 셈이다. 이러한 구도는 메인 퀘스트 뿐만 아니라 서브퀘스트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특히 서브퀘스트 라인에서 주인공이 어떤 의뢰를 받거나 행위를 하는 것들은 대부분 ‘시작’이나 ‘끝’이 아닌 어떤 일의 중간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해결사 역할로 투입이 되는 것인데, 플레이어가 중간에 그 행위의 결과를 바꾸거나 하지 못한다는 구조를 띈다. 즉,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톱니바퀴로써 그 행위를 수행하고 돈을 받아가는 것이다. 

물론 사이버펑크 2077의 본편 사이드 퀘스트들은 이러한 미션들로 구성된것들이 많아서 다소 질리는 부분들이 있다. 정확히는 게임 스토리의 테마는 분명하게 잡혀있는데, 미션들이 너무 분절적이라(=한번 하면 끝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사이드 퀘스트가 반복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 DLC 팬텀 리버티의 스토리라인과 서브퀘스트들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팬텀 리버티는 존 르 카레 또는 톰 클랜시 같은 첩보물 혹은 테크노 스릴러의 구조를 띄고 있는데, 거대한 힘들이 알력다툼을 벌이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요원들이라는 톱니바퀴들이 마모되고 박살나는 과정들을 긴장감있게 다루고 있다. 

팬텀 리버티 DLC에서 주목해야하는 점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답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그때 그때 선택하는 최선의 선택들이 큰 힘들의 충돌 사이에서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DLC 스토리라인에서 소미의 편을 들것인가, 리드의 말을 들을 것인가라는 선택지 양쪽 모두 나름 지지할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무엇을 선택해도 완벽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깨름칙한 여지를 남겨놓는다. 소미는 살아남기 위해서 주인공을 끝까지 등쳐먹는 인간이고(그런 점에서 가장 순수하긴 하지만), 리드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공감할만하지만 그 원리원칙을 지키는 성격과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속이며 임무에 매몰되는 모습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 

결국 팬텀 리버티 DLC의 엔딩은 독특한 ‘지침’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게임이 지루하거나 너무 길어서 지친다기 보다는, 이 지저분한 이전투구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다. 마치 송버드를 살려내서 다시 대통령에게 가져다 바친 뒤,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는거야를 이야기하는 리드의 모습처럼 함께 돌아갈 사람도, 집도 없고, 모든 걸 잃어버리고 지쳐버린 사람이 자기 위로를 하는 모습은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수성을 구성한다. 즉, 이 모든 일이 있고 난 뒤에 우리가 얻을 것은 허울 뿐인 명예, 구하지 못한 실리, 무너져버린 명분, 복잡하고 쓰라린 감정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두가 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도시 문명의 어둠이자 숙명이라는 것이다.

사이버펑크 2077의 특유의 이 지저분한 난장판에서 고생해서 모든 것을 끝내버렸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형태로 얻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독특한 페이소스는 본편 게임의 엔딩에서 빛을 발한다. 게임의 마지막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서 아라사카 타워에 자살 특공을 감행하게 되고, 거기서 살아남아 후일담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후일담에서 주인공이 원하는 모든 것을 잡을 수 없다. 자유를 포기하든가, 명예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삶을 포기하든가, 무엇인가를 대가로만 해야 플레이어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사는 없다 하더라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이트 시티를 등지고 떠나는 별 엔딩일 것이다. 주인공은 명예를 찾아서 온 나이트 시티를 등지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데, 거기서 V는 확정적인 죽음이 아닌 ‘삶의 연명’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물론 그것이 시한부라 할 지라도 욕망의 구렁텅이였던 나이트 시티를 등지는 것으로 욕망의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불타오르는 전설이 될 것인가(태양), 적과 타협하고 신념을 굽힐 것인가(악마), 아니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탑)의 엔딩과는 다른 묘한 희망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왜냐하면, 태양이나 악마, 탑 엔딩은 우리가 이미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고 이미 이해하고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별의 엔딩은 우리가 절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도피이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버펑크 2077의 스토리는 매우 훌륭하며, 스토리 하나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트리플 A 게임들이 플레이어에게 힘을 강하게 주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에 집중하였다면, 사이버펑크 2077은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도 아니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그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씁쓸하고도 양가적인 감정들을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하였고, 도시 문명의 욕망의 휘황찬란함과 그 속에서 지치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채워넣은 게임이다. CD 프로젝트가 후속작을 만든다면, 이러한 기조는 꾸준히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

게임 이야기



게임 심즈는 심이라는 개개인의 삶을 구현하고 조작한 게임 이다. 장르로 표현하자면 라이프 시뮬레이터라 부를 수 있는 심즈는 개인들의 욕구와 삶을 시뮬레이션 요소로 구현하여 삶이라는 것을 게임화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공전절후의 인기를 끌었던 이 게임이 흥미롭게도 다양한 장르적 파생없이 오로지 심즈 라는 프랜차이즈 하나만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물론 세컨드 라이프나 최근의 인조이 같은 게임이 있기는 하지만, 심즈가 누렸던 흥행에 비교하자면 심즈라는 게임이 다양한 아류작과 파생을 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심즈라는 게임이 장르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숨어있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목적성의 부재다. 게임 심즈에는 목적이 없다. 삶이라는 여행에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하기 힘들듯이, 심즈라는 게임은 게임에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목표와 목적의식의 부재가 심즈라는 게임을 장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족쇄가 되었다. 어떤 게임이든 심즈와 차별점을 부여하려면 무언가 게임에 목적이나 목표를 제시해야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심즈라는 게임의 골격을 크게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완성도와 공전절후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심즈는 오로지 심즈만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림월드는 게임 트렌드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심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삶에 목적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삶과 게임의 목적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물과 기름을 반발없이 섞는데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수사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림월드가 만들어놓은 게임 트렌드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해서, 림월드 장르의 등장 뿐만 아니라 림월드 이후에 나온 게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크루세이드 킹즈 3 같은 물건일 것이다. 가문의 영광과 개인의 삶, 그 사이를 오고가는 정치와 음모라는 테마를 다룬 이 게임은 게임의 세부적인 요소들은 다르지만 큰 골격에서는 림월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림월드에서 게임의 시점은 크게 두개로 나뉘어져있다. 첫번째는 거시적 관점에서 플레이어가 기지를 만들고 물건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시뮬레이션의 차원이 있고, 두번째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 림들의 욕구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림들의 자유 행동들이 있다. 이 두 관점은 언뜻보기에는 서로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두 관점이 씨줄과 낱줄이 되어서 교차하여 직조되는 것이 림월드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관점의 결합은 이전의 게임들과는 서로 다른 맥락을 지닌다. 예를 들어 파엠 풍화설월을 보자. 여기서 플레이어는 전투라는 거시적인 관점과 학원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미시적인 관점을 배치해둔다. 언뜻 본다면 이 두 관점이 서로 공존한다는 측면에서 림월드와 파엠 풍화설월은 비슷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결합되는 방식일 것이다. 파엠 풍화설월은 거시적인 파트가 끝나면 미시 파트로, 미시 파트가 끝나면 거시 파트로, 그리고 이 파트들이 순환하면서 다른 파트의 요소를 넘겨주는 분리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림월드는 다르다. 처음 봤을 때는 서로 다른 두 흐름이 병존하면서 유리되어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림월드의 특징은 거시적 관점의 효율이 미시적 관점에서 비효율화 되는 것, 그리고 미시적 관점에서의 비효율이 거시적 관점에서 효율화 되는 것이라는 두 층위의 모순적인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명제이지만, 이것을 상호 보완의 단계로 이끌고 때로는 시너지를 내게 만드는 것이 림월드의 가장 핵심 묘미라 할 수 있다.

우선 거시적 관점에서 효율이 미시적 관점에서 비효율화 되는 명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림월드에서 1차적인 가장 큰 목표는 생존 및 행성에서의 탈출이다. 이를 위해서 자원을 생산하고, 인원을 할당하고, 기지를 만들며, 식량확보 → 기술연구 → 방어전투… 식으로 이러한 흐름을 계속해서 굴리는 것이 목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은 상당히 단순하다. 식량 생산이나 기술 연구, 방어 전투 등의 각각 요소들은 다른 전문적인 게임에 비해서 아주 고난이도거나 복잡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계획만 잘 세우면 문제없이 이야기가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림월드의 핵심은 이것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과 달리 미시적 관점에서 보자. 림들 개개인에게는 개개인의 욕구와 개성, 작업 범주가 있다. 가령 림 A는 방화벽에 약물중독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온다면 불을 지르거나 마약을 빠는 등의 파괴적인 행동을 한다. 반면 림 B는 실내 선호 특성이 있어서 야외에 나갈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다. 물론 플레이어가 처음 어떤 림들을 데리고 정착지를 세울지 결정할 수 있지만, 그렇게 엄선(?)한 림들이 미세한 환경들(작업 동선, 랜덤 인카운터, 확률, 심지어는 애정 관계까지 등등)에 의해서 스트레스나 각종 요인들이 스노우볼링 되고 그 스노우 볼링 된 것들이 중요한 순간에 터져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 그렇기 떄문에 거시적 관점에서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머릿속에서만 작동할 뿐이다. 매번 정착지를 생성할 때마다 사고치는 림들 때문에 다양한 문제가 터지게 되고, 심지어 세이브 로드할 때마다도 예측못한 다양한 사고들이 터지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정착지에서 효율을 잘 낼 수 있는 수단은 림 밖에 없다는 것(물론 노예나 메카노이드 같은 것들이 있지만, 투입 대비 효율이 뛰어나지 않다)과 림을 생존시켜서 탈출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특히 림을 생존시켜서 탈출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는 점이 중요한데,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하는 요소(림의 욕구와 인간관계 등의 통제불가능한 변인들)들이 역으로 게임의 목표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게임은 다소 역설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애물단지들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만드는 것이 이 미시적인 방해요소들이고, 더 나아가서 효율저하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게임을 터뜨리지 않고, 오히려 게임을 보완하는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미시적 관점의 비효율을 거시적 관점에서 효율화시키는 것이다. 림월드에서 림 개개인은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애정, 드라마, 스토리 등등 인간적인 비효율에서 비롯된 다양한 불순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목표를 달성하는데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하는 과제와 더 나아가 게임의 세부 목표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림과 림 사이의 애정관계가 있다면 결혼식이나 동거, 출산 등의 행위를 통해서 이러한 애정관계를 강화하고 보완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효율이 존재할 수 있지만(출산이나 육아 같은) 그런 과정에서 림의 돌발행동을 억제하고(관계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관리)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든다. 이와 같이 플레이어가 인간적으로 애정할 수 있는 요소들을 추가하고, 그것이 플레이어의 통제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굴러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림월드의 미시적 관점의 인생은 잘 짜여져있다.

심지어는 비효율적인 욕망들을 효율적으로 하는 행위들도 존재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림월드가 과거 게임들과 다르게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방문자와 정착민의 눈알을 뽑는 컬트 집단을 만들어서 운영한다고 쳐보자. 눈알을 뽑는다는 점에서 게임의 난이도를 자체적으로 어렵게 만들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이 맹인 컬트 집단의 작업들을 최대한 효율화하여 구성할 수 있다. 즉, 비효율적이고도 비합리적인 행위들을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재미에 맞춰서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산지 동굴 정착민 플레이, 툰드라 에스키모 플레이 등의 다양한 콘셉트 플레이가 가능하다. 즉, 림월드는 플레이어가 비효율적인 욕망과 행위들을 효율적으로 행하고 관리하면서 거기서 재미를 찾을 수 있게끔 하는 자유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림월드는 효율과 비효율이 서로 씨줄가 낱줄이 되면서 직교하여 새로운 재미라는 맥락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결합이 게임 장르 트렌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림월드는 인간이라는 요소가 게임의 흐름과 목적 아래 비효율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플레이어는 인간이라는 요소와 목표라는 요소 사이를 저글링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해야한다는 구성을 제시했다. 이는 인생이라는 요소를 게임화 시키는데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였는데, 인간이라는 변수가 방해 요인이자 목표라는 모순된 상황에서 큰 게임을 끌고 나가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팀버본과 같은 도시 건설 게임에서 볼 수 있듯이, 림월드처럼 세밀하지 않지만 비버라는 도시 정착민들을 전체가 아닌 개개인의 욕구로 쪼게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이 개개인의 비버 정착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게임을 플레이 해나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림월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림월드 라이크라 할 수 있는 노랜드나 클랜포크 같은 게임들도 함께 출시되는 것을 보면 림월드가 게임의 모티브 뿐만 장르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고도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림월드는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작품이자 동시에 인간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게임에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답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DLC로 계속 게임의 외연을 확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드 커뮤니티나 모딩도 잘 구성되어 있어서 모딩 관점에서도 게임이 편리하게 되었다는 점은 게임의 재플레이 가치를 높이는 부분이다. 게임에 있는 요소들이 어느정도 관심이 가는 부분들이 있다면 꼭 플레이해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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