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매우 혼란스러운 영화다. 어떻게 보면 장르적 문법이나 레퍼런스가 분명하게 있었던 유전이나 미드소마와 다르게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철저하게 '아리 에스터의 영화다:아리 에스터가 유전이나 미드소마에서 장르적인 재미나 문법을 따르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장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보다 아리 에스터가 갖고 있던 주제의식이나 테마에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장르적으로 영화를 이해하려고 하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역설적이게도 아리 에스터가 가장 하고 싶었고 그의 가장 큰 강점이 나오는 영화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강점에 빠져서 자신만의 언어에 갇혀있다는 인상을 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이해하려면 우선 아리 에스터의 영화들이 '자폐'라는 테마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폐란 스스로 가두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면서, 공감 기능 결여, 의사 소통의 어려움과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발달 장애의 일종으로 본다. 정신병적인 현상 뿐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을 자폐로 할 수 있는데, 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상황 자체가 아리 에스터 영화에서 주요한 테마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리 에스터는 그것을 미니어처라는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유전과 미드소마를 보자. 영화 유전에서 주인공은 미니어처를 만드는 예술가다. 미니어처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녀는 미래에 일어난 일 또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미니어처의 형태로 구현하는데, 영화는 이를 통해 단순히 미니어처가 미니어처가 아닌 세상의 축소판이자 일어나고 벗어날 수 없는 운명들을 암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미니어처가 등장한 유전과 달리 미드소마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미니어처가 나오지 않지만, 첫 시퀸스에서 영화의 모든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모습을 통해서 '세계 안의 작은 세계'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드소마에서 보여주는 것은 닫힌 세계와 그 닫힌 세계에 매료되는 주인공, 그리고 정신병과 공진하는 공동체라는 이미지들을 통해서 반복과 빠져나올 수 없음이라는 독특한 미학을 구축한다.
아리 에스터의 자폐의 핵심은 바로 미니어처를 이용한 반복과 빠져나올 수 없음이다. 반복과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은 자폐의 단어 뜻 그대로 스스로 갇혀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스스로 만들어놓은 완벽한 논리의 세계 속에 갇혀서 끝없이 똑같은 말과 단어들을 곱씹다 파멸하는 것이다. 영화 유전과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던 것 처럼 주인공들이 그 이미지와 논리에 갇혀있다가 피하지 못하고 파멸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외부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멸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유전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그리스 비극 처럼 묘사되었고, 미드소마에서는 작은 커뮤니티에 사로잡혀 갇혀버린 이미지로 끝났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어떻게 보면 더 원류인, 정신병 특유의 자폐적인 이미지의 원본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 정신병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정신병자의 핵심은 바로 머리 내의 어떠한 생각이나 망상에 빠져서 객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말도 안되는 망상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근원적인 감정이나 경험(망상이나 불안 같은)에 맞물려서 보았을 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정신 질환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대적인 정신병리학과 심리학의 개념이라 한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통해서 아리 에스터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정신병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맞춰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이야기는 합리적이나 장르적 정합성에 맞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자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생각해야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뒤틀린 버전의 트루먼 쇼라는 점인데, 그것이 실제로 트루먼 쇼처럼 모든 것을 보 하나를 괴롭히기 위한 몰래카메라였다고 이해한다기 보다는 보가 상상하는 불안과 공포가 세상 전체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망상이 영화의 서사로 발현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영화 극초반에 보여주었던 복선과(물없이 항불안제를 먹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알약을 씹어삼키는 모습)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정합적이지 않고 한 사람을 향한 무수한 불합리와 불안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즉,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불안과 관계에 대한 방어 기제, 공포들이 만들어낸 환영이란 것을 이해한다면 영화가 좀 더 '정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병자의 단순한 읊조림과 공포라는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할 수 없다. 영화의 중반부 주인공은 고아들의 극단들을 만나서 자신의 인생을 형상화한 독특한 연극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는 특이하게도 영화를 지배하는 '자폐적'인 이미지로 해석할 수 없는 이질적인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연극을 하듯이 담담하게 자기가 살고 싶었던 인생과 살지 못했던 인생, 마지막에는 그것이 허구인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영화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미지가 아닌 '일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아리 에스터의 가장 특이한 점이자 이런 미학에 사로잡힌 사람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그것은 바로 '자기 객관화'이다. 정신병자가 스스로 살고 싶었던 인생을 망상하면서 그 과정을 돌아보다가 자신이 여성과 관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스로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은 모든 정신병자들이 갖고 있는 소양인 동시에 정신병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요소다.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유를 고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모습을 통해서 자폐의 세계를 더욱 강렬하게 묘사하면서, 그 너머의 세계를 인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폐적인 세계를 다루는 예술가들은 많았지만 아리 에스터가 독특한 이유는 바로 자폐 너머의 세계를 인지하고 그것 역시 영화의 미학의 범주에 넣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 에스터의 영화에서 미니어처의 미학은 상당히 중요하고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그것은 세상의 축소판이고 반복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세상 그 자체'는 아니다. 미니어처 자체가 세상의 축소판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 작은걸 바라보는 자신이라는 시선을 인지할 수 밖에 없듯이, 미니어처의 미학은 일종의 자기 객관화를 담보한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이를 본다면 중간에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TV속 영상 처럼 말이다:주인공은 거기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갇혀있는 폐곡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미니어처를 통해서 세상의 축소판처럼 갇혀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부딪히기 전까지는 확정된 사실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 끝까지 나가서 파멸할 때까지 나가고 반복한다. 마치 불길한 징조처럼 세계의 곳곳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고 있지만, 그것은 주인공들이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서야 완성이 되는 폐곡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자기 객관화와 '바깥'의 가능성을 인지하지만 동시에 다시 미니어처의 세계에 사로잡히는 독특한 미학과 논리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많은 창작자들이 틀릴 수 있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리 에스터는 독특하게도 바깥을 인지하면서도 바깥으로 향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아리 에스터의 강점이 묻어나온 동시에 아리 에스터가 더이상 일반적인 장르 문법과 타협하지 않고 더 먼길을 떠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분명 영화적 재미나 즐거움은 없는 영화라 할 수 있지만, 아리 에스터라는 감독을 이해하고 그의 원류를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는 꼭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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