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에서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지만, 동시에 뒷정리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파괴할 때의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파괴되고 남은 잔재들을 치우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파괴’ 효과가 게임의 중요한 콘텐츠이긴 했어도 동시에 파괴 효과만으로 게임 전체를 채워넣은 게임은 의외로 거의 없었다. 파괴효과가 유명했던 크랙다운 시리즈나 저스트 코즈 시리즈를 예로 들어 보자. 빌딩을 부수고 파괴하고, 잔재들이 쏟아져 내리고…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개발자들이나 기획자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스테이지를 만드는 것을 부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수고 난 다음의 게임이 동작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파괴는 파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대립되는 쌍을 전제로할 수 밖에 없다. 파괴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파괴의 카타르시스 이후에도 게임을 붙잡아주는 부서지지 않는 기본 구조와 대립항, 다시 파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시리즈의 신작으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를 만든 제작자들이 만든 게임이다. 게임은 공개당시부터 파괴를 통한 지형지물과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야생의 숨결을, 그리고 플랫포밍 게임이라는 점에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의 결합이라는 이야기나 다양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바난자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발매 이후에 플레이를 해본 사람들의 중론은 야숨이나 오딧세이 같은 게임에 비견될 바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즉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기대에는 못미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이는 비교 대상이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야생의 숨결과 같은 게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둘은 시리즈가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쌓아온 경험의 축적이자 결과물이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시리즈가 나아가야하는 일종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이들 시리즈와 다른 부분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기본적으로 액션 어드벤처, 그 중에서도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다. 기본적인 골격은 일자 진행이긴 하지만, 중간 중간에 숨겨놓은 요소들을 넣어둬서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탐색을 하면서 게임을 진행하게끔 만든다. 요컨데, 툼레이더 리부트 같은 게임에서 보여지는 리플레이가 가능한 일직선 플레이의 구조를 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완전히 복도식의 일직선이 아닌,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큰 공간을 두고 플레이어가 탐색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오픈월드 장르의 영향을 받은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완전한 샌드박스의 형태나 해매는 것을 전제로하는 것이 아닌 ‘출발과 도착’이 명확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이 게임은 지형지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닌,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의도한 대로 얼마나 잘 움직이고 행동하냐가 더 중요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키콩 바난자는 젤다의 전설나 데이어스 엑스 같은 이머시브 심 같은 게임이 아니다. 즉, 정답이 여러갈래로 존재하고, 플레이어의 기량과 준비에 따라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곳까지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플레이어의 기량을 측정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동키콩 바난자가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파괴하고 다양한 것들과 펀치로 상호작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치 이머시브 심이나 샌드박스 류의 게임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설명하였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을 성립시킬 수 없다. 파괴는 필연적으로 혼돈을 수반하고, 혼돈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플레이어가 모든 발판을 다 부서버린 다음에는 그 후에 어떻게 되는가? 게임이 진행이 가능해질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 플레이의 핵심 메카니즘을 구성할 수 없다. 파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파괴에 대칭되는 쌍이 과연 바난자에 어떤식으로 존재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근간이 되는 핵심 장르부터 짚어야 한다: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이고, 게임이 진행되는 양상은 기본적으로 플랫포머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르인 ‘액션’과 좀 더 구체적인 장르인 ‘플랫포머’를 따로 때서 봐야할 것이다. 액션 장르 자체는 힘을 통한 상호작용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규칙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액션의 방점이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것이 폭력이든 정교한 형태든 간에 중요한 것은 게임 내에서 어떠한 형태든 간에 힘이라는 테마는 액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난자는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액션 장르 게임이다:동키콩처럼 강한 힘을 가진 케릭터가 힘을 통해서 사물과 적들을 부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에서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적뿐만이 아니라 ‘지형지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형지물과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플랫포머 게임에서 플랫폼은 일종의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바난자는 그 근간을 흔드는 게임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여타 플랫포머 게임들을 보자. 가령 출발점 A에서 도착점 Z까지 간다고 했을 때, 중간에 다양한 발판들 B,C,D,E… 등이 있을거고 그 사이를 점프나 다양한 행동을 통해서 발판 사이를 오가며 도착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적인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발판을 부숴버린다면 플랫포머 게임은 장르는 성립을 할 수 없다. 그것은 A부터 Z까지의 경로를 구성하는 경로를 단절시키면서 장르의 전제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난자는 플랫폼을 파괴한다는 발상과 함께, 파괴 뿐만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해서 플랫폼을 다시 만들거나 이어주는 일종의 ‘부드러운 플랫폼’들을 만들어서 게임의 스테이지를 이어준다.
예를 들어 보자. 바다가 나오는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주먹으로 적을 쳤을 때, 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서 지형을 생성하는 기믹이 등장한다. 이를 이용해서 기존에 올라갈 수 없는 더 높은 발판들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발판 생성 기믹이 동키콩의 펀치라는 액션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플랫폼을 파괴하는 요소가 역으로 플랫폼을 생성하는 요소로도 사용된다는 것인데, 파괴를 뒤틀어서 창조의 영역으로 이용하는 발상을 한 것이자, 직관적이지만 마냥 쉽지 않은(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잘 생각해서 때려야 하기 때문에) 요소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구성이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때리고 부수고 던지고 하지만 중요한 점은 플랫폼의 총량이 ‘변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A에서 Z까지 가는데 중간에 있는 B나 C라는 플랫폼을 부순다면 이 부순 플랫폼들을 이용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거나 새로운 플랫폼까지 닿는데 필요한 임시 플랫폼을 만들게끔 한다는 것이다. 즉, 플랫포밍 장르 문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의 관계를 딱딱한 형태로 엄정하게 정의내리기 보다는 더 유연하게 접근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에서는 기존 플랫포머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구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땅을 파서 땅속에 파묻힌 보물들을 찾아낸다던가 하는 등의 행위들이 그럴 것이다. 기존 플랫포머에서는 땅을 잘못 파면 다시 복귀하거나 도착점까지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등의 외통수를 두게 되지만, 바난자에서는 벽면이라면 어느 곳이든 짚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수월했다. 어디에나 매달릴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플랫포머의 상식을 파괴하였지만(정교한 점프 등을 수행하지 않고도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플랫포머 장르를 따르고 있고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물론 플랫폼을 파괴하거나 창조하는 행위 자체가 플랫포머 장르에서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시도들은 아니다. 최근에 리메이크되서 나온 스펠렁키 같은 게임들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곧바로 감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바난자가 독특하고 대단한 점은 파괴의 액션을 창조의 행위와 결합하였다는 점이고, 플레이어가 직관적으로 위-수평-아래로 때리면서 길을 만들고 플랫폼을 개척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단순히 부수는 것만이 아니라 바난자 능력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스테이지와 상호작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예를 들어 코끼리 바난자의 경우에는 코로 지형을 빨아들이고 그 파편을 저장했다가 파편을 던지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행위로 이어줄 수 있다. 그리고 바난자 능력 사이에서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개 이상의 바난자 능력들을 활용한 구조도 보여주어서, 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포멧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바난자는 처음부터 이를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닌텐도로써도 이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 시리즈가 갖는 맥락과 다른데, 마리오 시리즈가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3D 마리오가 많이 나옴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64 이후로 나온 첫 3D 동키콩이라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정체성을 정립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처음에는 주먹으로 파괴하면서 발판을 만드는 스테이지를 제공하면서 플레이어가 새로운 컨셉에 적응하게끔 만들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게임의 구조(던지면 자라나는 씨앗, 때리면 날아가면서 발판을 만드는 적 등등)를 복잡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게임 자체가 동키콩 바난자라는 새로운 동키콩 게임의 콘셉을 정립하기 위한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이자 확장 테스트의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확장이 부드럽고 늘어나면서 결국엔 '동키콩 3D 게임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적인 결론과 재미 구조를 구축한다.
그것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 바로 최종 보스전이다. 최종 보스전에서 플레이어는 바닥을 모두 공격으로 뒤덮는 최종보스와 싸워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은 최종 보스의 특정 공격을 콩 바난자로 반격하여 주변 지형을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황금(피해를 주지 않고, 플레이어가 집어 던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파괴해서 바난자 능력을 다시 채워주기도 한다)으로 바꾸는 것이다. 바난자의 최종 보스는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말도 안되는 플랫폼 전체 공격을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최종 보스의 공격을 플레이어가 반전시켜서 역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일종의 핑퐁 구조를 만들어서 게임의 균형을 맞춘다. 구조 자체는 단순한 핑퐁처럼 주고-받는 구조로 보이지만, 바난자의 최종보스는 최종보스 답게 플레이어가 여지껏 게임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싸우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가 전반적으로 게임 콘셉의 데몬스트레이션이었던 것에 비한다면, 최종보스는 상당히 도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최종보스의 거대한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서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생각보다 보스의 공격을 받아치는게 까다롭다는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에서 플레이어의 학습 곡선이나 구성을 잘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도전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단히 전통적인 게임의 구조이긴 하지만, 이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통용되는 부분이 있고 닌텐도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일종의 시작점 같은 게임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왕국의 눈물같이 집대성 같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딧세이가 이뤄낸 성과들과 바난자를 비교하는 것은 바난자에게 다소 억울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오딧세이는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지금까지 만들어왔었던 게임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었다면, 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이제 바난자로부터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지형과 상호작용하면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고, 더 나아가 직관적인 파괴와 창조의 개념을 도입한 게임이 이제 바난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재밌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동키콩 바난자는 스위치 2를 구매한 사람이라면 꼭 구매해서 해볼만한 게임이다. 이 게임의 포멧은 앞으로 더 나은 게임 포멧이 될 것이고, 더 발전할 것이다. 스플래툰이나 야생의 숨결, 슈퍼마리오 오딧세이 와 같은 게임들을 만든 닌텐도이기 때문에 더 이 게임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많은 기대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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