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대중문화에서 유행의 중요한 속성은 죽음과 일시성이다:죽지 않는 유행이란 결국은 상수로 자리잡기 때문에 어디에도 존재하여 모두가 향유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모두가 향유하는 상수로써 문화란 고유성과 개성이 없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유행을 따라서 즐긴다는 것은 문화를 향유하면서 자기 또는 집단만의 개성을 가지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에서 유행은 환경과 변수를 잘 만나면 화려하게 불타오르지만, 동시에 환경과 변수가 사라지게 되면 덧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행을 잘 타서 흥행하는 작품은 가볍고 화려하며, 세태를 정확하게 찌르는 맛이 있다.

주술회전은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었듯이 주술회전은 흥행했던 유명한 작품들을 상당수 오마주 하거나 모티브를 따오는 등 다른 작품의 콜라주 같은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흥행작들을 배꼈다는 사람들의 인상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 1~2년 동안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대중문화 유행의 한 꼭지를 차지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독창성이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엮는 작가의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가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멋진 것은 멋진 것이야'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접근 했기 때문에 한계가 생긴 작품이기도 하다.

주술회전의 핵심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멋지게 엮는 것'에 있다. 다양한 작품의 요소들과 모티브를(헌터 헌터, 블리치 같은 소년만화에서 호러만화의 연출 등등까지) 취하고 있지만, 그것을 배끼기만 했다면 이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사람들이 의외로 무시하는 것은 대중문화가 서로 서로 모티브와 요소들을 주고 받는다는 점이다. 성공한 작품이든 실패한 작품이든 서로의 좋은 점은 배끼고 나쁜 점은 배제하는 일종의 수렴 진화와 거기에 자신만의 요소를 집어넣는 실험을 반복해나간다. 중요한 점은 배꼈다, 배끼지 않았다의 영역이 아닌 '그것을 어떻게 하나로 엮는가'라는 작가의 역량과 철학의 영역이다. 주술회전의 강점은 '어떻게 하면 멋지게 엮을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 작가가 좋은 센스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가 고죠 사토루라는 인물이다. 작품 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물이고, 세계의 법칙과 흐름을 바꿀 정도로 강하지만 강한만큼의 무게감이나 진중함, 사명감은 없고 가볍고 촐싹거리지만 동시에 멋쟁이인 고죠 사토루는 작품의 미학을 관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오히려 주인공인 이타도리 유지와 그 동료들이 성장하거나 겪는 모험보다 '고죠 사토루가 어떻게 되는가?'라는 이야기의 흐름을 구성하고 있고, 그만한 강렬한 연출과 설정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좀 매니악한 작품이긴 해도 고죠 사토루라는 케릭터의 조형 자체는 바키 시리즈의 한마 유지로와 맥이 닿아있다는 점이다. 한마 유지로 역시 세계관과 작품을 구성하는 강한 인물이고, 모든 인물과 이야기, 설정의 중심에 존재해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을 제공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바키 시리즈의 한마 유지로와 고죠 사토루의 큰 차이점이 있다면, 한마 유지로는 작가의 강함에 대한 철학과 미학에 의해서 과대포장된 인물이라면 고죠 사토루는 어디까지나 '팔릴만한 가벼움'으로 무장한 인물이라는 점이다:과격한 근육으로 무장을 한 한마 유지로와 달리 훤칠한 키와 미모, 잘 빼입는 패션 스타일로 포장된 고죠 사토루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좋은 인물 조형이라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흐름들이 기존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주술회전은 "일종의 엇박"을 통해서 정형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데 주력한다. 이타도리 유지가 주술고전에 입학한 이후로 첫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이나 마히토와의 첫 싸움, 시부야 사변에서 신주쿠 결전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작품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형성을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예측하기 힘들어서 사람들을 흡입하는 매력을 가졌다. 

그러나 주술회전의 문제는 감각적인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작품을 과한 것들로 채워넣었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시부야 사변 같은 경우 고죠 사토루를 잡기 위해서 악역들이 꾸민 음모와 악행의 규모가 너무 커서 과연 '이 이후에 이야기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연출로 가득차 있다. 마허라와 스쿠나의 대결이 바로 그 예인데, 연출의 화려함과 강렬함과 별개로 '이후에 이걸 수습할 수 있나?', '이게 전개에서 꼭 필요했는가?' 라는 의문이 가득찰 수 밖에 없는 전개였고, 시부야 사변 이후 사멸회유에서 신주쿠 결전까지 이어지는 흐름에서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떨어지는 부분도 그런 구심점을 잡고 작품을 통제하지 않은 채 강렬함을 추구하다 보니 작품 전체 이야기의 균형이 깨지게 된 것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주술회전 자체는 즐기기에 훌륭한 대중문화 작품이지만, 동시에 너무 가벼운 나머지 잊혀지기 쉬운 유행 그 자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작가가 작품에 개똥철학을 갖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많지만, 역으로 작가가 작품에 개똥철학이라도 집어넣어 균형 맞추었으면 하는 기이한 작품이 바로 주술회전이다. 점점 뒤로 가면 갈수록 그 힘을 잃어가는게 느껴져 아쉽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