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동물이 아니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생기는 다양한 관계성과 위계들이 다양한 맥락들을 만들어가며 우리가 다양한 것과 정치적 상호작용을 이끌어내게 만든다. 정치란 것을 단순히 어떤 슬로건이나 계파성, 당파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표면적인 흐름이다. 더 깊게 살펴본다면 당파나 계파로 대표되는 정치가 아닌 우리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정체성이나 생각, 무의식에 의한 정치도 가능하며, 그것에 의해서 종종 우리는 무의식적인 정치에 지배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헬블레이드 2는 정치적인 게임이다:전작은 신화에 대한 재해석이자 깨져버린 정신이 어떻게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는지, 트라우마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조셉 캠벨의 뒤틀린 버전의 신화학이었다. 헬블레이드 1은 그 자체로 깔끔하게 완결된 작품이었는데, 신화와 현실의 경계가 개인의 트라우마와 깨진 정신에 의해서 모호하게 바뀌고 재해석 되는 과정을 조현병 환자의 병증과 신화적인 모티브들을 연결지어놓고 신화와 개인적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다뤄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완결된 작품이었다. 즉, 헬블레이드 1편에서 이미 개인과 신화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완결되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테마로 이야기를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좋아했던 작품의 2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흥분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걱정이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부분이기도 하였다.
헬블레이드 2는 신화가 어떻게 정치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헬블레이드2는 신화를 더이상 세누아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사실로 만들어야 했다. 헬블레이드 1편과 2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편에서 모든 인물들이 세누아의 머릿속과 기억, 환상에서만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외부의 인원이 등장한다는 것은 1편의 대전제를 흔드는(개인의 트라우마와 신화와의 혼동, 그리고 그것의 극복) 구조다. 하지만 1편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트라우마는 극복하고 치유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깨달음을 토대로 타인과 교류한다는 점에서 2편의 이야기는 실제 살아있는 인물과의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1편과 다른 양상을 띌 수 밖에 없었다.
헬블레이드 2의 메인 플롯이 일종의 ‘정치적인 해방서사’라는 점에서 헬블레이드 2의 정치성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헬블레이드 2에서 바이킹이 지배하는 땅은 거인들에 의해서 황폐화 되고, 거인들을 달래기 위해서 바이킹들은 픽트족 노예를 잡아다 바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무적으로 보였던 거인들은 각자 사연이 있는 인간들이 크나큰 원한으로 변한 신화적인 존재며, 세누아는 이들의 진명을 불러 화해함으로 거인을 잠재우고 더이상 노예와 희생없는 세상이 온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노예상이었던 자와 현자, 여전사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구조는 희망에 근거한 연대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누아의 역할일 것이다. 재밌는 점은 조현병에 대한 표현이 1편과 사뭇 달라졌다는 점인데, 1편에서 조현병은 깨져버린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분열된 음성을 집어넣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면, 2편에서의 조현병은 세누아의 다양한 모습을(약한 모습에서 강한 모습까지) 드러낸다. 1편에서 세누아의 정신이 트라우마에 의해서 없는 환상을 만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과정이었다면, 2편에서는 그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장애는 오히려 세상을 달리 보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리잡는다. 재밌는 점은 머릿속의 목소리들이 약한 소리를 내거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유일한 무기인 칼을 건내주는 시퀸스라던가) 세누아가 종종 거기에 거스르고 앞으로 나서는 모습은 그녀가 더이상 트라우마나 자신의 장애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닌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이러한 점이 그녀를 다른 인물들보다 더 멀리 보고 이끌어줄 수 있는 위치에 놓는 사람으로 만든다.
세누아가 그녀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화의 세계는 신화가 아버지로 대변되는 잔인하고 냉혹한 질서의 세계가 아닌 각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비극과 연대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세계다. 그리고 아버지로 대변되는 압제가 어떻게 신화를 이용해 공동체를 억압하고 탄압하는지를 게임 초반에 이를 중요하게 다룬다. 신이 떠난 세계에 아버지로 대변되는 억압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의 세계에 똑같이 파괴와 억압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화해함으로써 그들이 이 세상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구도는 1편의 논의를 적절하게 확장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점에서 마지막 거인이 압제자 자신이었다는 점은 어느정도 예측되는 반전이었다. 압제자가 자신의 압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거인을 만들고, 거인을 통해서 자신의 압제를 정당화하는 과정은 여러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헬블레이드 2는 아비저를 따르는 압제자의 아들인 노예상이 세누아와 여행을 하면서 점차 변하는 과정도 함께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노예상의 케릭터는 세누아와 여러가지 점에서 대비되게 만들어두었다(남자와 여자, 억압자와 해방자 등) 그렇기에 그것은 억압 받는 자와 해방하는 자 사이 뿐만 아니라 억압하는 자의 각성과 연대를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기서 논하는 것은 헬블레이드 2가 정치적으로 첨예한 논리와 논쟁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헬블레이드 2는 신화에 근거하여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정치, 사람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단순한 형태의 상징과 정치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한다. 물론 완성도 측면에서는 헬블레이드 1이 더 높지만(다양한 신화적 맥락을 엮어서 새로운 신화적 맥락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헬블레이드 2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확장시켜서 고민할 거리를 늘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다만 게임 플레이 관점에서 보면, 헬블레이드 1편의 퍼즐보다 더 단순해지고 전투도 단조로워져서 이걸 게임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워킹 시뮬레이터에 가까워진 부분이 있다. 물론 게임의 스토리나 연출, 그리고 플레이어가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징은 갖고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그래도 게임으로 냈어야 제대로 이야기 전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의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몇몇 부분은 전작보다 후퇴한(퍼즐 푸는 재미나 이런 점에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헬블레이드 2는 1편의 담론을 이어받아 확장시킨 작품이고, 고민이나 생각을 많이 한 작품이다. 경험하기로는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모두에게 추천할 수는 없는 것이 게임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1편 자체도 이미 호불호가 너무 심하게 갈리는 작품이라 모두에게 추천하기에는 좀 그런 작품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게임 패스를 통해서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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