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대단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이미 이름에서 차이가 나듯이 장르적으로 이 두 게임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법을 구축하였고, 팬층도 다르고 소비하는 문화도 다르다. 물론 이 둘은 공통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물리적인 컴포넌트와 규칙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을 유사한 가족으로 분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과연 이 둘을 나누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가이다:분명 문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을 구분하는 그 얇지만 선명한 기준에 대해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측정measuring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자를 이용한 측정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작게 축소된 세계miniature에서 거리를 판단하고 행동을 수행해나간다. 물론 각각의 개별 미니어처 게임들이나 보드게임들을 따지면 반례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가령 옵시디언 프로토콜 같은 게임은 미니어처 게임의 장르로 분류되면서도 행동과 이동을 그리드 단위로 구분짓는다. 그러나 단순히 실제의 거리를 측정하는가 아니면 그리드 단위로 하느냐의 행동 문제보다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측정이 갖는 행위의 추상적인 의미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의 연계성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니어처 워게임은 미니어처의 세계, 즉 세계의 축소를 다룬다. 28mm 스케일, 32mm 스케일 등등 세계를 작게 축소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게임의 핵심적인 철학과 문법을 구축한다:세계의 축소이기 때문에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세계의 규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가령 게임 내에서 하나의 모델이 존재한다면 그 모델이 다른 모델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이 아무리 단순화되어 있어도 주사위나 그외의 요소들을 이용해서 상호작용할 수 있게끔 설정한다. 이러한 법칙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미니어처 워게임 인피니티다:인피니티는 미니어처 워게임으로 하는 TRPG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세한 규칙과 시스템들을 자랑하는데, 단순히 공격과 이동에 대한 규칙 외에도 TRPG에서 볼 수 있는 스킬체크 등의 요소들도 충실히 구현되어 있어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것 외에 얼마나 지적으로 유능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수치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TRPG와 미니어처 워게임의 서로 비슷한 요소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들이 있다면 이 바로 축소라는 내용일 것이다. TRPG는 세계 자체가 스킬 체크 형태로 추상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추상화된 행위로 모든 것을 스킬 체크의 형태로 등치시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과 세계 그 자체인 마스터의 존재 때문에 게임 문법이 세계 전체를 다룬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TRPG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와 마스터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협상의 영역도 중요하다. 하지만 미니어처 게임에서는 규칙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거나 세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의 관점에서 본다면 추상화된 TRPG보다는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구조를 띈다.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당연하게도 미니어처라는 요소다:축소된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미니어처라는 컴포넌트를 통해서 세계와 상호작용 한다. 이 상호작용이라는 요소는 위에서 설명한 TRPG 적 요소와 맞물리면서 작은 시뮬레이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세계는 축소되었고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이 존재함으로써 그 세계에 맞게 축소된 미니어처들은 그 나름의 규칙에 따라서 다른 컴포넌트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맥락을 만들어내고 상상속의 치열한 전투와 드라마들을 만들어낸다. 즉, 작아진 세계와 단순화된 규칙이 미니어처라는 매게를 만나서 맞물리면서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갖게 만드는 것이 미니어처 게임의 장르적 특수성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측정한다는 행위는 단순히 거리를 재는 것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 단위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측정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선측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측정을 통한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측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몇몇 게임에서는 선측정Pre-Measuring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떻게 본다면 철저하게 플레이어라 하는 게임 외부의 존재가 아닌, 축소된 세계 속의 미니어처 모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미니어처 게임이 선측정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일례로 인피니티가 선측정 자체를 막지 않는다), 측정과 모델,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다루는 규칙을 이해하는 것으로 미니어처 게임들이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보드게임과 미니어처 워게임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기준이 있다. 보드게임들의 목적은 축소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 분명한 규칙의 흐름에 근거한 게임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도, 규칙간의 충돌도, 플레이어가 측정을 통해 규칙을 판단하거나 하는 등의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미니어처 워게임의 경우, TRPG와 보드게임 사이의 경계에 놓여있다. TRPG와 달리 물리적인 규칙과 시스템의 간소화를 분명하게 요구하지만, 동시에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보드게임에서 보여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미니어처 게임에서는 일어난다. 

물론 좀 더 논의를 확장하여 본다면 이러한 점들 때문에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혹은 다른 게임 장르 사이의 장르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게임들도 꽤 등장하기도 한다. 옵시디언 프로토콜과 같은 게임이나, 언더월드 같이 TCG와 보드게임 사이를 오가는 게임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적인 구분이란 철저하게 어떠한 정의를 따라간다기 보다는 비트겐슈타인이 이야기했던 가족 유사성의 관계를 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