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최근 새로운 소울류 게임인 와룡:폴른 다이너스티가 나왔다. 그리고 와룡의 발매는 늘 있던 이야기들, ‘과연 이번 와룡은 다른 소울 시리즈에 비해서 얼마나 더 어려운가?’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깃발 시스템의 존재를 들어서 게임이 더 쉽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패링과 공격 중심의 시스템을 들어서 하이 리스크/리턴 구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다양한 논의의 근간에는 ‘소울류’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데몬즈 소울 - 다크소울로 이어지는 프롬소프트들의 게임 계보는 높은 난이도와 옥소독스한 게임 플레이, 독특한 멀티플레이 등등으로 게임계에 한 획을 그었다. 그중에서 ‘높은 난이도’는 수많은 대중들에게 소울 시리즈를 정의내르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울 시리즈의 특징들은 ‘어려운 난이도’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하는 것은 ‘과연 어려운 난이도란 무엇인가?‘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무엇이 어려운 게임을 만드는가?‘이다. 단순히 난이도가 ’게임을 꺠기 어렵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소울류와 달리 깨는 것이 불가능한 게임들도 존재한다:예를 들어 빅리그와 치타맨 같이 애시당초에 클리어가 불가능한 게임들도 있다. 슈퍼맨 64처럼 클리어하는데 많은 시도와 불합리한 고통들이 가득한 게임도 있다. 이런 게임들이 과연 ‘어려운 게임‘이라 할 수 있을까? 단순히 게임을 깨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은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게임에서 높은 난이도들은 플레이어의 숙련도를 테스트하는 목적이 강했다. 콜옵 같은 전통적인 레일 슈터들의 예를 들어보자:이런 게임들에서 어려운 난이도는 적이 플레이어에게 가하는 데미지를 늘리고, 플레이어를 향한 호전성을 늘리거나 하는 등의 변화를 준다. 그 결과, 높은 난이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엄폐를 하면서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 이는 콜옵 싱글의 전통적인 디자인인데, 높은 난이도에서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게임의 디자인을 이해하고 거기 맞춰서 행동하는지를 테스트한다.

이러한 콜옵과 같이 전통적인 높은 난이도(가해지는 데미지가 늘어나거나, 적의 체력이 늘어나거나 하는)는 단조롭다는 문제가 있다. 적의 체력을 늘리고 가하는 데미지를 늘리는 것은 결국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 거의 완벽하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을 클리어 전제로 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최소한의 리스크를 지게 만들기를 강요하고 안전하게 게임을 하게 만드는 이러한 과정들은 때로는 단조로운 경험을 만든다. 콜옵에서 높은 난이도란 항상 이런식이었고, 상당수의 게임에서 높은 난이도는 게임 디자인의 가능성을 수치(적의 체력, 데미지 등등) 관점에서 단순하게 늘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러한 난이도 조절방식은 때로는 잘 작동하지만, 때때로는 플레이어가 단조로운 게임 플레이 경험을 경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울류의 높은 난이도는 전통적인 높은 난이도와 다르다. 소울류의 핵심은 제한된 스테미너와 자원 관리, 그리고 그것을 스테이지 어디서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다루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은 소울류에서 모든 공격/방어 행동들은 스테미너를 소비하고, 회복과 마법은 사용하는데 회수가 제한되어 있고, 스테이지를 돌파 할 때 얼마나 이것을 사용할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스테미너나 자원 관리가 아닌 ‘스테이지’의 구성이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회복 수단과 자원들을 언제, 어떻게 회복할 지를 확인할 수 없고, 스테이지는 숨겨진 적들과 함정들, 공격 받기 전에는 눈치채기 힘든 속임수와 기믹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회복과 자원 수급을 위해 화톳불로 돌아가면 적들과 함정이 다시 재세팅된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서 소울류는 실패와 시도를 통해서 스테이지를 파악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난관을 해쳐나갸아 한다. 

소울류가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은 것은 플레이어가 스테이지를 능동적으로 학습하고 이해하는데 있다. 다른 게임이었다면 게임 진행 중에 난이도를 낮추거나, 다양한 난이도 옵션을 제공하는 등의 보험을 집어넣는다. 하지만 소울류의 게임은 조절 가능한 난이도도 없고, RPG에서 흔히들 통하는 레벨 노가다 같은 요소도 없다. 즉, 수치로 난이도를 조절하기 보다는 스테이지를 관찰하고 하나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방법을 플레이어가 익혀야 한다. 크게는 스테이지의 구조, 몬스터의 배치, 함정의 위치에서부터 작게는 보스의 공격 패턴, 스테미너는 어떻게 관리하는 등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학습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소울류 게임들을 어렵게 만든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게임을 클리어해야 하기 떄문이다.

하지만 소울류의 대단한 점은 플레이어의 이런 능동적인 학습 곡선을 보조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방법‘들이었다. 플레이어가 죽은 곳에 다잉 메세지와 같은 잔영을 보여주어 어떻게 죽었는지, 메세지를 남겨서 앞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요소를 집어넣었다던가, 다른 플레이어를 코옵 파트너로 불러서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넣었다. 또한 임의의 플레이어가 침입해서 몬스터와 함께 협공하는 등의 경쟁 플레이도 집어넣어서 난이도가 올라가는 요소도 넣었다. 이러한 점들은 이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난이도 조절방식이었고, 능동적으로 스테이지를 이해하는 게임의 구성을 보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어려움을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다.

소울류의 영향을 받은 게임들은 이러한 것들을 변주한다. 인왕 같이 전투 시스템을 공격적으로 다듬는 경우도 있고, 엘든링 같은 작품이나 로드 오브 폴른 같은 작품들도 있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중요한 것은 스테이지 구성과 자원의 관리, 그 사이에 게임을 익힐 수 있게끔 학습 곡선을 가속하는 안전장치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있어야 소울류라 할 수 있다.

다시 소울류 게임들이 어렵다, 쉽다의 난이도 측면에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당연히 일반적인 게임 장르들과 비교해서 보면 소울류가 쉽다고는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울류는 너무 어려워서 아무나 클리어할 수 없는 게임은 아니다. 단지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게임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사용해야하는 것들을 모두 사용해나가면 클리어할 수 있다. 즉, 소울류에서 어려운 난이도는 게임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학습 곡선을 따르는 것, 더 나아가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사용한다면 게임 클리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특히 이번 와룡의 경우, 깃발을 최대한 사용하면서 클리어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 엑스박스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대중 음악은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의 등장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문화와 하위 문화에 영향을 끼쳤던 주요한 요소 중 하나였으며, 한 세대를 정의내리는 주요한 문화적 요소였다. 게임에서도 음악은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허나 게임에서 배경 음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케이스들은 있어도, 음악 자체가 게임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케이스들은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음악을 게임을 관통하는 메커니즘으로 구성하기에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이 워낙 방대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EZ2DJ’ 나 ‘비트매니아’, ‘OSU’, ‘DJMAX’ 같은 리듬 게임들이 음악 게임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긴 했다. 하지만 이들 게임의 메커니즘은 ‘정해진 악보에 맞춰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서 오랫동안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오디오 서프’는 자기가 갖고 있는 MP3를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악보로 변환해주어 게임용 트랙으로 구성해 주었다. ‘비트하자드’는 음악 파일을 슈팅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재구성하였다.  ‘썸퍼’는 테크노와 강렬한 이미지 및 속도감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단순히 ‘음악을 연주한다’의 개념을 넘어서 ‘음악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시도는 장르에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은 분명했다. 
 
하이파이 러시는 탱고 게임 웍스에서 만든 액션 게임일 뿐 아니라, 음악을 게임의 주요한 메커니즘으로 삼으려 했던 여러 게임들의 시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리듬 액션 게임’이라는 장르의 편견에서 벗어나서 하이파이 러시(이하 하파러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후술하겠지만 하파러시를 리듬 액션 게임으로 분류하는 것은 꽤 적확한 분류이긴 하다. 그러나 보통 리듬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에서 게이머들이 받는 일반적인 인상들은 ‘정해진 악보에 맞춰 곡을 연주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분류로 자칫 성급하게 게임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자는 이야기다. 하파러시는 전통적인 음악 게임과 많이 다른 게임이기 떄문이다. 본 게임은 어쩌면 새로운 음악 게임 장르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파러시의 큰 얼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닌 ‘크립트 오브 더 내크로댄서(2015)’에서 나온 것이다. 크립트 오브 더 내크로댄서(이하 크오댄)는 무작위로 생성된 던전을 탐험하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이 게임은 음악에 맞춰서 게임이 진행되는데, 플레이어가 박자에 맞춰서 캐릭터를 움직이거나 공격하면 이득을 얻는 메커니즘이 있다. 따라서 음악은 이 게임의 플레이에 핵심이다. 일반적인 리듬 액션 게임과 크오댄이 크게 다른 부분이라면. 이 게임에서는 정해진 악보에 맞춰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용도로서 음악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이동, 공격, 적의 움직임, 보스의 특수 패턴 등등이 박과 박자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 맞춰서 플레이어가 공격을 할지, 피할지 등등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오댄의 주요 게임 메커니즘은 음악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음악을 최소이자 기본으로 구성하는 단위는 ‘박’이며,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단위 소리가 ‘박자’, 박자 단위가 구성하는 음악의 흐름이 ‘리듬’이다. 박자에 맞춰서 이동과 공격 등 모든 것이 행해지고 거기에 맞춰서 효과음이 나오기 때문에 크오댄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리듬감이 생긴다. 이 게임 플레이의 리듬감은 크오댄이 음악을 주요 메커니즘으로 삼은 게임이지만 정해진 악보를 플레이하는 게임이 아니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음악의 악보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만, 박자와 리듬감은 더 작고 유연한 개념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행동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다. 이 악보와 박자/리듬감 사이의 간극에서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행동이 보장된다. 또한 크오댄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테크노, 레게, 블루스 등등)을 추가하면서 음악의 하부 장르 전체를 인용하려는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하파러시의 큰 얼개는 크오댄에서 들고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음악의 박자와 리듬으로 완결되고 일관성 있는 법칙성을 갖고 있고, 플레이어는 그 박자와 리듬감에 맞춰 적들을 처리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파러시의 포부는 비단 음악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 본 게임에서는 적들의 움직임, QTE, 패링, 플랫포밍 등등 게임을 구성하는 것들뿐만 아니라 스테이지들에 배치된 작은 환경이나 기물, 사물까지 박자에 맞춰 리듬감 있게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규칙(박자와 리듬감)이 음악이라는 더 거대한 구조물을 구성하고, 완성된 형태의 게임으로 이어진다. 이는 어떻게 보면 크오댄과 비슷한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산이 더 투여된 만큼 더 섬세하게 짜여진 게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파러시는 장르적인 부분에서 크오댄과 다른 고민을 하고 더 섬세하게 다듬은 부분이 있다. 하파러시는 크오댄과 달리 ‘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공격 모션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공격 모션과 버튼 입력의 괴리를 고려했을 떄, 모든 공격들은 ‘반 박자 늦게’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장르 특성상 의도치 않은 엇박이 발생하게 된다. 이 엇박은 게임 플레이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게임에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하파러시에서 박자와 리듬은 절대적인 ‘법칙’이지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아니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일종의 ‘예측 가능성의 영역’에 가깝다. 물론 박자에 맞춰서 약공격과 강공격을 섞어 쓰고, 회피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박자와 리듬을 맞추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이 본 게임에선 존재한다. 적의 근거리, 원거리 공격, 다수의 적들을 보호하는 실드 버퍼, 특정한 동료 호출 공격으로만 파훼 가능한 적들 등등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기에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행동을 해야 한다. 단순히 흘러나오는 박자에 맞춰서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타이밍에 맞춰서 공격하면 회피가 가능할지, 혹은 내가 안전한지 등등의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면서 싸워야 한다. 리듬과 박자는 게임의 주요 메커니즘이고 정확하게 입력할 시에 보상을 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무조건 지켜야하는 것이 아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내가 할 일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예측가능성의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바로 ‘패링’이다. 빡빡한 판정과 프레임을 요구하던 여타 액션 게임의 패링과 달리 하파러시의 패링은 누르는 즉시 즉발적으로 발동한다. 즉 플레이어는 패링으로 자유롭게 공격모션을 캔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공격은 박자와 리듬에 맞춰서 이뤄지기에 공격하는 도중에도 상대방의 공격을 수월하게 예측하여 튕겨낼 수 있어, 패링을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흐름이 끊기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러한 부분은 플레이어가 공격과 회피 이외에 패링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패링을 통해서 얻는 보너스 점수는, 플레이 중 종종 플레이어가 놓친 박자로 얻지 못한 점수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패링은 플레이어의 리듬감을 유지시켜 주는 동시에 숨 고르기를 할 수 있게 하여 주고, 플레이어의 운신의 폭을 늘려 준다.
 
하파러시는 음악이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게임의 세계를 구축하고, 박자와 리듬감이라는 음악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였다. 음악, 박자, 리듬감과 같은 요소들이 오랫동안 음악을 구성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지만, 그것을 액션 게임 장르에서 전체적이고 통일성 있게 녹여내어 구성한 케이스들은 흔치 않았다. 하파러시는 그것을 이전의 프로토타입 없이 단번에 구현해낸 작품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게임들에 비교해서 더더욱 빛난다.



지금까지 본 게임에서 음악이라는 문화를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어떻게 녹여냈는지를 보았다. 이제 본 게임의 OST와 그래픽에 대한 평가를 하며 리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선 OST를 보자. 음악이 핵심인 게임인 만큼, 하파러시는 훌륭한 OST 라인업으로 플레이어의 귀를 만족시킨다. 게임 특성상 모두 4박자로 통일되어 있긴 있지만, 특히 유명 락밴드나 뮤지션의 곡을 게임의 주요한 순간마다 배치해서 청각적인 만족도를 올린다. 나인 인치 네일스나 프로디지, 넘버 걸 등등 락을 좋아한 사람들이라면 알 법한 사람들을 데려와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악에서 좀 더 다양한 장르를 선택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다. 크오댄이 레게, 블루스 등 다양한 박자와 장르의 음악을 소화한 데 비해서 하파러시는 4박자 록 음악에 집중하여 게임을 구성하였다. 물론 크오댄의 경우에는 박자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면, 하파러시의 대원칙은 4박자 리듬감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박자를 포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추후에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탱고 게임웍스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더 기대된다.

본 게임의 그래픽 또한 매우 화려하고 개성 넘친다. 원색 톤의 색깔을 쓰면서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 물론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에 비하면 디테일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게임에서는 훌륭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총평: 하파러시는 이제껏 나왔던 음악 관련 게임들이 했던 실험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장르 문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탄탄한 기본기, 잠재력 있는 게임 플레이 가능성 등은 앞으로 하파러시 기반의 게임이 나올 가능성을 열었다. 가격대(3~4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게임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더 나아가서 게임 패스의 라인업을 빛내는 게임이다. 게임패스를 구독하면 꼭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 인왕 2의 하드코어함을 생각하면 대단히 어려운 게임이거나 극단적인 게임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쉬운 편에 속한 게임이라 놀랐다. 오히려 몇몇 부분에서는 인왕 1이나 2보다 더 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게임이다.

- 결국은 와룡도 세키로와 같이 '스테미너가 없는' 액션 게임인데, 스테미너를 없앤 대신 체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해서 방어와 튕겨내기로 체간을 깎아내거나 관리하게끔 만들었다. 와룡은 스테미너라는 요소를 삭제하는 대신, '기세'라는 자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기세가 단순히 방어적인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양의 영역과 음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공격을 계속해서 성공시키면 기세가 점점 올라서 도술을 쓰거나 다양한 활동들로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음의 영역으로 떨어졌을 경우 공격을 추가적으로 받았을 시 자세가 무너져서 위험한 공격에 노출되기도 한다. 

기세 자원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직관적인데,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서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다. 공격이 무자원으로 나가기 때문에 계속해서 적을 밀어붙일 수 있고, 한번 기세 좋게 밀어붙이면 적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역으로 단순히 공격만으로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없고, 중간 중간 가드 불가능한 공격을 가할 때도 있기 때문에 패링을 중간 중간 섞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패링의 경우, 와룡도 세키로와 유사하게 상당히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기존 가드버튼에 통합되어 있었던 세키로의 패링 버튼과 달리 와룡의 패링은 회피 버튼과 연결되어 있다. 패링 버튼 난사를 막기 위해서 일부러 패링과 회피를 통합한 것으로 보이고, 때로 패링을 헛칠 때 짜증나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패링을 했을 때의 리턴이 상당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패링은 와룡의 주요 메커니즘 중 하나다.

-특이하게도 스테이지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사기 시스템이 있다. 적을 격파하면 할수록 사기가 점점 올라서 적들을 상대로 강해지게 되는데, 역으로 죽으면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간다. 대신 게임은 곳곳에 깃발을 설치하여 떨어지는 사기의 최저 한도를 설정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게임의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꼼꼼하게 맵을 탐색하며 플레이하면 계속 죽어도 깃발로 최소 한도 사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어렵게 느껴지면 맵을 꼼꼼히 탐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맵 상의 깃발을 모두 점령했다는 전제 하에서 게임 플레이는 그렇게 어렵진 않다. 오히려 기세 자원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침착하게 패링하면 보스도 많은 시도 없이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왕 1에서 2로 넘어갔던 케이스를 생각하면 게임 난이도를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들려고 다양한 요소를 집어넣은 것들이 있고, 이 때문에 전작들과 상당히 다른 게임으로 변화했다는 인상이 있다. 물론 최종 완성본을 하기 전까지는 확답하긴 힘들겠지만, 상당히 독특한 변종이 나온 느낌이 있다.

-기대한 것과 다르긴 하지만, 특이한 게임이라는 인상이 있고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제임스 그레이만큼 하나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감독도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마치 지알로의 거장인 다리오 아르젠토처럼 그의 영화는 단 하나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타자로 살기, 우울함과 축축함, 가족과 자신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등등까지 리틀 오데사에서부터 아마겟돈 타임까지 제임스 그레이는 일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 재생산했다. 보는 사람으로써는 그의 일관성에 질릴 때도 있기도 하고, 그의 집념에 존경을 느낄 때도 있는, 그야말로 양가적인 감정을 제공해주는 것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묘미다. 

그런 점에서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 중 아마겟돈 타임은 가장 근원이자 변칙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어떻게 제임스 그레이라는 인간이자 예술가가 만들어진 최초의 모티브를 다룬다:벗어나고 싶은 현실, 부모의 사랑과 감정적인 억압, 자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 탈출하고자 하지만 좌절하고 다시 중력에 사로잡혀 떠내려올 수 밖에 없는 무겁고 축축한 슬픈 결말까지. 제임스 그레이가 실제 겪었던 자신의 삶의 사건들이자 모든 자신의 영화의 모티브를 다루는 영화인 만큼 여지껏 나왔던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다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가장 변종과도 같은 작품이며, 자신의 삶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는 작품이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다.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통상적으로 보여주던 유대계 이민자의 문화 외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도 주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펑크, 디스코, 레게나 아프리카계 미국 빈민층들의 하위 문화들, 차별받고 억압받는 문화 등등까지 이러한 이야기들이 서브 플롯으로 주요하게 등장한다. 엄밀하게 보자면 비주류긴 해도 백인이기에 덜 차별받고 주류 사회에 낄 수 있는 이주 유대인들의 위치와 다르게 아프리카 미국인들은 절대 주류에 낄 수 없었고, 그러한 차별들을 공공연하게 받았다. 주인공과 친구는 탈출하는데 실패하고 절도로 경찰에 잡히지만, 주인공이 운좋게 빠져나가고 주인공 친구가 잡혀서 소년원에 가는 것은 이 둘의 계급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또한 단순히 가족 공동체를 넘어서서 세대 간의 공감대와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중재자와 희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본적으로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드러나던 중재자인 어머니의 역할을 더 넘어서 세상을 알려주는 동시에 주인공에게 롤모델 역할을 수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이 할아버지라는 것이다:할아버지의 존재를 통해서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았었던 서로 다른 두 성향의 조화(아버지와 어머니, 부성과 모성의 갈등)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골암으로 죽었을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자신이 그런 역할을 대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가족에서 구심점을 잃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독특한 점은 아마겟돈 타임 이전까지 제임스 그레이 영화에서는 유대계 이민자의 삶만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였고,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다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인종, 문화적인 특수성에 천착하여 영화를 만들었고, 모든 이야기들이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유대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마겟돈 타임에서는 자신의 문화적, 인종적인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집단을 벗어나서 새로운 존재인 또래 친구 집단을 등장시킨다. 함께 일탈을 하고,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주류 사회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 등등까지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느끼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영화는 섬세하게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배치하면서 제임스 그레이가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아마겟돈 타임이 다른 제임스 그레이 영화보다 높게 비상하는 부분은 단순히 타집단에 소속된 사람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집단이 격차를 느끼는 것, 그리고 부조리하고 무례한 세상까지 넓게 바라봤다는 것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에 선역, 악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게끔 양가적인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과거를 형성했던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는 과정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마겟돈 타임에서는 제임스 그레이가 '거부'하고자 하는 요소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사립학교와 트럼프를 위시한 상류층 인물들의 차별적인 발언들, 유대인이 고통받았던 역사 등까지 이전의 제임스 그레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종의 '악'의 개념이 등장한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임스 그레이가 경험했던 백인 상류층과 엘리트의 무지이자, 편견, 그리고 억압이다. 이들이 드러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들은 단순히 오해와 선의, 혹은 그레이가 이전까지 다뤘던 문화적 무거움과 공동체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과 완전히 다르다. 제임스 그레이가 이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절망이다:레이건이 당선되었을 때 핵전쟁Amaggedon Time이 일어날 것이라고 절망하던 가족들의 모습처럼 세상에 무지와 차별이 승리할 때마다 거기에 대해서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주인공은 어리고, 나아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파멸적인 상황을 벗어난 것 뿐이다. 세상에 무지와 무례는 넘쳐나고 할아버지는 죽어 가족은 구심점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좋았던 기억들을 간직한 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지와 무례함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강당의 연사를 뒤로 하고 주인공이 떠나는 장면과 지나쳤던 다양한 사건들이 오버랩 되는 장면은 그의 유년시절을 뒤로한 채 성장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의 연장에 있지만, 가장 크게 변화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제임스 그레이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자기 인생의 모티브에 맞춰서 우울하고 축축하며 무거운 감수성으로 다뤄왔다. 그러나 아마겟돈 타임은 그러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질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서 그 세계를 넓히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모티브가 이어지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그의 영화에서 나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드러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영화를 본다면 꼭 추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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