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다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었지만, 6편의 거대한 실패 이후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대한 장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기한 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7의 형식을 취하면서 만들어진 바이오하자드 8의 모양새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바이오하자드 8은 바이오하자드 7을 골격으로 삼은 바이오하자드 넘버링 작품의 최신작이었다. 최근에 나온 리메이크 작들을 제외한다면, 바이오하자드 8은 바이오하자드 중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 리뷰할 바이오하자드 4가 한 때 완벽한 게임을 한 단계 더 진일보 시키는 게임이었다면, 바이오하자드 8은 기존의 바이오하자드들을 7의 포멧으로 옮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8의 핵심 테마는 '7의 포맷으로 재탄생한 바이오하자드 테마파크'다. 바이오하자드는 시리즈의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테마들을 게임으로 옮겼고, 의외로 시리즈 내에서 많은 장르 포멧을 소화한 프랜차이즈였다. 전통적인 저택식 서바이벌 호러인 1편에서부터 대규모 재난 서바이벌이었던 3편, 5편과 6편,  액션 장르를 게임에 접합시킨 4편 등등 프랜차이즈는 하나의 틀에 얽메이기 보다는 다양한 시도와 변주를 만들어내었다. 바이오하자드 8은 7의 기반을 재활용하는 동시에, 7이라는 새로운 포멧(1~3편의 고정 시점의 게임 플레이, 4~6편의 TPS 게임 플레이, 7편의 FPS까지)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를 테스트해보는 자리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확장을 이뤄내기에는 바이오하자드 7의 전투 시스템이 앙상한 뼈대에 가까운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7편에서 전투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A에서 B로 가는 것을 막기위한 길막의 요소이자, 플레이어가 혐오스럽고 역겨운 적들을 강제로 바라보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즉, 전투는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닌 우회하거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서바이벌의 성격이 강했던 바이오하자드 초기 시리즈(1편이나 2편 같은)에서는 이렇게 좀비를 무시하고 달리는 그런 요소들이 어느정도 있었고 바이오하자드 7의 전투도 그러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바이오하자드 7편의 전투 자체가 바이오하자드 6편이나 레벨레이션즈 같은 현대적인 바이오하자드의 영향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1편부터 5편까지 이어지는 근 20년 간의 역사에서 무빙샷이 안된다는 플레이어들의 불만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전투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점은 무빙샷이 추가되면서 상대방과 플레이어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조정하는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7편은 6편이나 레벨레이션즈 같은 바뀐 전투의 요소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고, 어느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기에 8편의 전투는 7편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 좀 더 다듬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8편 역시 FPS 형태의 게임 구조를 취하고 있고, 이는 7편과 유사하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케일'일 것이다:플레이어가 탐색하는 공간은 커졌고, 등장하는 적들도 늘어났으며, 공간도 이전에 비해서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나 8편의 규모가 거대해졌더라도, 본질적으로는 7편의 1대1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적들이 여럿 존재하더라도 '한 번에 한 명씩'만 공격을 하고 좁고 긴 맵 구조에서 벌이는 전투나 이런 부분들은 7편과 이전 작품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 8편에서 재밌는 부분들은 1대1 상황에서 적들이 일종의 '격투 게임 장르'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적들은 플레이어와 싸울 때 좌우 스텝을 밟는 일종의 심리전을 걸면서 접근한다. 적이 총을 맞으면 뒤로 밀려나면서 심리전이 리셋이 되고, 적을 밀어내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 이 때 공격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방어 자세를 취할 수 있는데 방어 자세를 취했을 경우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동시에 상대와의 거리를 강제로 벌리는 밀치기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적들을 한명 한명 격파해 나가는 것이 바이오하자드 8편의 전투 매커니즘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바이오하자드 8은 기존 시리즈들이 갖추고 있었던 다양한 기믹을 하나의 게임에 녹여낼 수 있었다. 우선 8편에서 4대 가주의 스테이지들은 과거 1편, 2편의 대저택(드미트리쿠스), 7편의 호러 기믹(베네비엔토), 5,6편의 대규모 재앙 액션(모로, 하이젠베르크) 같은 기믹들을 8편의 형태로 재해석해서 옮긴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일 건데, 드미트리쿠스의 저택은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에서 보여주었던 미스터 X의 추적 기믹과 저택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거의 바이오하자드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8편은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바이오하자드의 가장 좋았던 부분들을 따와서 8편의 포멧으로 다양하게 즐기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도 생겨난다:각각 저택들의 가장 재밌는 부분이나 가장 좋았던 부분만 다루고 있는데, 그 부분이 감질나게 분량이 조절되어 있고, 통일되지 않아 하나의 게임이라기 보다는 모자이크화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자이크화 되어서 완벽하게 따로 노는 몇몇 작품들과 다르게 바이오하자드 8편은 그래도 8편이라는 틀 안에 모든 테마들을 담아두고 있기 때문에 게임으로써는 완결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바이오하자드 8편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집대성한 작품인 동시에 7편의 포멧으로 할 수 있는 최대를 보여준 작품이다. 물론 각각 개별 테마가 너무 감질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 하나 잡고 보았을 때 완성도가 있어서 감질난다고 생각한다면 게임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7편과 8편, 그리고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정점에 오른 캡콤의 개발력을 감안한다면, 바이오하자드 9편도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게임 이야기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발매는 격투 게임 장르를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린 작품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개발 철학이 혁신적인 시스템들에 기반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필살기 원버튼 지정, 공방 흐름과 상성을 명확하게 다듬은 시스템 구조 등은 이미 이전부터 많은 격투 게임들이 시도했던 것들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강점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에서 온게 아니고 '이전에 존재했던 개념들을 잘 다듬었다'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을 선행적으로 테스트한 회사가 아크 시스템 웍스일 것이다.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게임들 상당수들은 '아니메 격게'라는 격투 게임 장르와 영역을 개척한 아크 시스템 웍스는 오랫동안 매니아들에게조차 어려운 게임으로 악명 높은 격투 게임들을 만들어왔다. 블레이블루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전형적인 파동승룡 케릭터인 진과 라그나를 빼면 거의 대다수의 케릭터들은 다른 격투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운영과 공방 방식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케릭터들이 마치 다른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기에 콜라보 작품이었던 크로스 태그 배틀이 초기에는 초보와 신규 유입을 위해서 조작 체계를 일신하고, 시스템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한 많은 작업들을 했었다. 그러나 동시에 블레이블루보다도 더 악명 높은 격투 게임이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일 것이다:콜라보로 등장한 다양한 케릭터들과 같이 싸운다는 컨셉의 게임은 상중하단을 동시에 노리는 공격이나 공격 위치를 교란하는 공방 등 격투 게임에 있어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방식의 공방이 존재했다. 태그 배틀이라는 기본 개념 자체가 게임의 공방을 격투 게임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게 만든 점이 크로스 태그 배틀을 기형적으로 만들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쉬운 난이도의 시스템들은 이러한 태그 배틀의 기형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보완하려 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게임들 상당수가 이런 식이라는 점이다:게임의 복잡한 부분들의 문턱을 숨기거나 완화시키기 위해서 쉬운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인 점은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게임들 상당수가 '격투 게임' 관점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이나 지향점이 다소 모호하다는데 있었다. 드래곤볼 파이터즈나 그랑블루 판타지 같은 게임들이나 기본적으로 아크 시스템 웍스가 게임으로 지향한 부분은 일종의 '재현'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강하고 멋있고 빠른 게임 페이스의 재현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이나 격투 게임으로서의 통일성은 다소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 시스템을 격투 게임의 공방 흐름에 맞춰서 일신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잘 다듬었다 하더라도 게임이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폭권 토너먼트의 케이스가 그러하다 할 수 있다. 폭권은 격투 게임의 모든 공방 흐름을 '타격' - '잡기' - '가드 포인트가 달린 타격'으로 나누었다. 타격은 잡기를 이기고, 가드 포인트가 달린 공격은 타격을 이기고, 잡기는 가드 포인트가 달린 공격을 이긴다. 이렇게 직관적인 상성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폭권은 격투 게임의 공방 흐름을 '눈에 보이게끔'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그 흐름을 읽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폭권 토너먼트는 이러한 시스템을 단순화시키고 깔끔하게 쳐내고 다듬으면서 몇몇 부분에서 '비직관적인 흐름'을 만들었다. 필드전과 1대1 대전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고 체력 회복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 그 예시인데, 폭권의 공방 흐름을 계속 유지하였을 때 벽몰이에서 플레이어가 탈출할 수 없다던가, 1대1 대전만 존재할 경우에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포켓몬들의 공방 흐름을 다변화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나눈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인 흐름들이 게임 밸런스나 흐름 측면에서 꼭 필요했다 하더라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위화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위화감이 폭권 토너먼트라는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쉽게 만들고자 한' 격투 게임의 케이스들을 생각한다면, 항상 쉽게 만들기 위해서 시스템을 다듬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6가 '쉬우면서 직관적이지만 깊이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게임 전반을 다듬은 부분은 바로 프레임의 이득과 손실, 일종의 경제학적인 영역이다. 예를 들어서 드라이브 임펙트의 경우, 실제 공격이 발동하는 시점까지 약 20여 프레임 정도의 여유가 있고, 보통은 약손이나 중손으로 히트 스탑을 건 후 역으로 드라이브 임펙트를 걸거나 3히트 이상으로 타격을 걸면 드라이브 임펙트를 깨부술 수 있다. 혹은 점프로 상대를 넘어가서 역가드나 뒤를 노릴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 완벽하게 유리한 선택지는 없어서 플레이어가 '리스크를 지고 선택해야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임의 득실의 경제학을 성립하는 것은 공격 옵션들의 카테고리를 크게 약/중/강과 드라이브 시스템들을 발동 프레임, 발생 프레임, 그리고 가드 딜레이와 리치 등을 활용해서 일종의 '카테고리화' 시킨 것이 핵심이다. 비록 모든 케릭터들의 공격이나 잡기, 심지어는 공통 시스템인 드라이브 시스템의 성능이 서로 다르긴 해도 상대 방어에 대응할 때 있어서 분명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뜯어본다면 모두 다른 성능의 기술들이긴 하지만,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측면에서 '대응 옵션'을 갖추고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프레임의 경제학은 전체 게임 플레이를 유형화 시키지만, 시스템이라는 거시적인 틀로 묶지 않아서 '강제적인 흐름'을 만들지 않았다. 또한 캡콤이 스트리트 파이터 6를 통해서 격투 게임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격투 게임에서 공방의 흐름에서 생기는 재미를 구현하는 것)가 명확했기 때문에, 복잡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도 간단한 프레임의 흐름에서 게임을 구현한다는 수단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바이오하자드 4 RE  (3) 2023.08.27
[리뷰]바이오하자드 8  (0) 2023.08.21
[리뷰]스트리트 파이터 6 : 정점  (0) 2023.07.23
[칼럼]바이오하자드의 짧은 역사  (0) 2023.05.31
[유희왕 덱 후기]육화  (0) 2023.04.22
게임 이야기

 

※ 월간 GPG 매거진 7월호에 실린 리뷰입니다.

 

대전 게임의 역사에서 길이 남는 장면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우메하라 다이고와 저스틴 웡이 EVO 스트리트 파이터 3 준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승패를 가르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저스틴 웡이 춘리로 다이고의 켄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가드 데미지만으로도 다이고는 패배할 수 있을 정도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 때 저스틴 웡이 한 판을 따내기 위해서 춘리의 초필살기인 봉익선을 넣었지만, 다이고가 가드가 아닌 블로킹(공격 타이밍에 맞춰서 스틱을 앞방향으로 튕겨 공격을 가드 데미지 없이 막아내는 스트리트 파이터 3의 시스템)으로 봉익선을 모두 블로킹 하고 거기에 콤보를 시동하여 압도적인 체력 차이를 극복해내는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영상은 유튜브의 태동부터 격투 게임 플레이어들의 심금을 울렸던 명승부였고 격투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아는 격투 게임의 유명한 명장면이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영화처럼 모든 공격들을 쳐내고, 역으로 한판을 따내는 장면은 멋져 보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대단하고 흥미로운 부분은 실제 당시 상황의 흐름이었다. 사실 춘리의 봉익선은 다이고나 정도의 플레이어 수준이면 전타 블로킹하는 것이 가능 했었다. 중요한 점은 저스틴 웡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스틴 윙은 봉익선을 쓰기 전까지 블로킹을 유도하려고 간간이 공격을 허공에 헛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약손 약발 견제나 가드 데미지에도 죽을 수 있는 다이고 적극적으로 블로킹을 노리면서 반격할 것이니, 그런 블로킹을 헛치는 순간을 노려서 게임을 끝내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다이고 그런 흐름에 말려들지 않았고, 웡은 과감하게 봉익선을 걸면서 다이고를 압박했다. 봉익선 전 타를 '지상'에서 블로킹한다고 해서 다이고가 그 체력 차이를 극복할만한 콤보로 이어가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대단한 점은 다이고 역시 그것을 간파하고 봉익선의 마지막 공격들 일부러 점프해서 공중 블로킹을 한 뒤, 바로 강K로 연계되는 콤보를 넣어서 완벽하게 한 판승을 따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이 명장면은 격투 게임 장르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 쉬운 '영화처럼 초필살기를 모두 막았다, 그리고 역전했다’는 화려함은 핵심이 아니다.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서 마지막 공격을 공중에서 막고 내려오면서 강K 콤보로 게임을 따낸 우에하라 다이고의 판단'이 이 승부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었다. 화려한 장면 뒤에는 양 플레이어의 치열한 수싸움과 심리전이 있었고, 양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시스템, 상대방의 심, 체력 계산 등의 모든 것들을 쥐어짜내면서 승부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화려한 콤보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이 아닌, 게임의 시스템과 상대방,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꿰뚫어보면서 극한까지 쥐어짜내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격투 게임 장르의 본질인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23년 6월에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의 최신작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경우 발매 당시부터 배틀 허브나 월드 투어, 파이팅 그라운드 등의 모든 게임 콘텐츠를 들고 발매가 되었다. 전작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5가 지금 와서는 안정 되어있지만 데뷔 당시 여러 이슈들(아케이드 모드의 도입과 스토리의 부재 등)을 들고 발매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자체적으로 완결된 구조와 흐름을 들고 발매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스트리트 파이터 6가 격투 게임의 초심자부터 숙련자, 그리고 달인까지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 콘텐츠부터 시스템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다듬어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종합해서 본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야심은 단순히 전작들을 아우르는 것이 아닌, 격투 게임 장르를 다른 경지의 영역으로 이끄는데 있다. 그리고 스트리트 파이터 6는 그 점에서 성공했다. 본 작은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는 매력의 결정체이자 캡콤의 개발 역량의 정점이며, 더 나아가서 지난 20년간 격투 게임 장르가 그동안 실험하고 고민했던 것들 다른 단계로 끌어올린 게임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우메하라 다이고와 저스틴 웡의 경우처럼, 격투 게임의 본질은 화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수면 아래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시스템이 스트리트 파이터 6에 추가되었다, 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한 시스템이 추가됨으로써 게임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가 어떤 격투 게임인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스트리트 파이터 5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5는 스트리트 파이터 4를 완성도 높게, 그리고 단순하게 다듬는 데서 출발하였다. 강제연결(실제 이어지진 않지만, 히트 리커버리 전에 기본기를 넣어서 강제로 콤보로 연결하는 테크닉)과 케릭터별 특징들 때문에 겉보기에는 입문이 쉬워 보이지만 말도 안 되는 옵션 게임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4를 V 스킬과 트리거 시스템으로 통합해서 깔끔하게 다듬는 작업을 한 것이 스트리트 파이터 5였다 강제연결 판정을 여유롭게 하고, 각 케릭터별 시스템은 V 스킬과 트리거로 시스템화 하였다.  

 

 

 

대전 게임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5는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분명 개선해야 하는 점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보는 재미가 없는 게임이었다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5의 기본기에는 가드 했을 때 내가 이득 프레임을 보는 것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화끈하게 치고 받기 보다는 서로 거리를 재면서 기본기를 내밀다가 친 기본기를 붙잡고 역공하는 구조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왜 서로 거리를 재면서 기본기를 내지르는 싶은 극단적인 거리재기 싸움으로 보이게 되었다. 또한 상당수의 기본기가 이득 프레임을 보장해주니 상대의 기본기와 주입(기본기를 캔슬하고 필살기로 이어서 공격을 이어가는 것)을 가드 하면서 상대의 헛치기를 캐치하나가는, 서로 이득을 보는 거리와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플레이해 나가는 흐름이 기본이 돼서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난해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이러한 흐름을 '역동적'으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 가드 시 유리한 이득 기본기들의 수를 줄이고, V스킬과 트리거 시스템을 삭제, 드라이브 게이지를 쓰는 드라이브 패리와 드라이브 임팩트 시스템을 추가하여 공방의 옵션을 통일시키는 등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밑에서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겠지만, 이러한 시스템들의 변화와 정리플레이어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 6 전작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 가장 큰 변화는 드라이브 게이지라는 새로운 자원의 추가와 드라이브 패리, 드라이브 임팩트 시스템이다. 드라이브 임팩트는 슈퍼 아머 상태에서 퍼니시 카운터로 상대를 공격할 시, 상대에게 긴 경직 주는 공격이다. 그리고 드라이브 패리는 패리 버튼을 누르고 있을 시, 상중하단 가리지 않고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전방위 패리를 구사하는 시스템이다. 이 둘은 드라이브 게이지라는 자원을 이용하는데, 이 드라이브 게이지초필살기용 자원과 별개의 독립된 자원이다.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의 추가는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게임 구조를 바꾸었다. 첫 번째로 게임의 편의성을 높이고 입문 허들을 낮추었다. 전신 아머 판정에 카운터 맞추면 강력한 콤보로 이어 나갈 수 있는 공격인 드라이브 임팩트와 상대의 상중하단 이지선다 타격 공방 자체를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드라이브 패리는 공방의 편의와 게임 운영의 허들을 대폭 낮추어 주었다 

 

드라이브 패리/임팩트가 조작을 편하게 만드는데 핵심인 부분은 바로 '(모던 기준)원버튼으로 발동 가능하다' 이다. 모던 조작 기준 패드의 범퍼를 누르는 것만으로 빠르게 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보고도 제대로 입력 못해서 헛치거나 하는 불상사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의 드라이브 임팩트를 보고 드라이브 패리를 치거나, 혹은 좀 늦게 드라이브 임팩트를 쳐서 오히려 압박하는 상대를 먹어버리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심지어 캔슬 가능한 기본기들(대표적으로 약 펀치)에 연결해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약손 견제를 무시하고 드라이브 임팩트를 쓰면 자신도 똑같이 임팩트로 보고 반응하는 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번째 관점은 공방 구조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는 모든 캐릭터들이 고유의 V스킬과 V트리거를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변화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그렇기에 한 캐릭터에서 다른 캐릭터로 넘어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상대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성능 저점을 올려주었다: 예를 들어 잡기 한 번에 모든 사활을 건 캐릭터인 장기에프의 경우, 파동승룡(파동권으로 원거리 견제, 점프해서 파동권을 피하는 적을 승룡권으로 격추)류의 운용법에는 시리즈 전통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드라이브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파동권을 리하면서 잡기 거리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혹은 기본기로 견제하는 상대를 임팩트로 잡아먹고 잡기로 바로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어캐릭터 평가가 시리즈 대비해서 많이 올라갔다. 표준화된 공방 문법의 추가로 특정 패턴에 취약한 캐릭터의 성능을 보완해준 셈이다.  

 

 대신 본작에서 캐릭터들의 개성들은 필살기와 별도 고유 운영 요소들로 남겨 두었다. 마농, 류, 제이미 같이 캐릭터 고유의 버프나 시스템들은 드라이브 시스템과 별도로 필살기나 특수기의 형태로 빠져나왔다. 전작에서 개별 캐릭터들의 개성이 V 트리거라는 시스템 하에 모두 하나로 묶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모두 각자 따로 놀았던 것과 반대로, 본작에서는 캐릭터의 개성은 최대한 살리면서캐릭터별 입문 난이도와 대응 난이도 간극을 줄일 수 있었다.  

 

번째 관점은 자원 관리와 운용의 관점이다. 전체적으로 드라이브 임팩트패리는 운영 난이도를 낮춰주는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드라이브 시스템의 제한점과 리스크들 역시 게임 운영에 큰 영향을 준다. 드라이브 게이지는 기본적으로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 등의 행동을 할 때 쓰여 지기도 하지만, 적의 공격을 가드할 때도 같이 깎여 나가고, 드라이브 게이지가 모두 없어졌을 때는 번아웃 상태가 되면서 가드 경직이 늘어나 -4프레임 손해를 보는 한편,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가 모두 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여타 격투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가드 크러시와 가드 게이지 같은 개념에 가깝다. 방어적인 플레이에 페널티를 주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하라는 게임 디자인의 결과물인데, 스트리트 파이터 6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가드 시스템의 자원 6편 시스템 중심 드라이브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 지어 설계했다는 점이다. 물론, 드라이브 게이지는 생각보 빠르게 잘 차오르는 편이지만, 몇몇 특정한 순간에서는 번아웃이 오거나 최악의 경우 벽 밀치기를 당하여 스턴 경직까지 오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드라이브 임팩트패리는 강력한 도구이긴 하지만, 정석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약점도 존재한다. 패리의 경우, 커맨드 잡기나 기본 잡기에 퍼니싱 카운터로 공략할 수 있으며, 임팩트의 경우 드라이브 패리나 잡기, 역가드 점프 같은 다양한 공략 수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 의존해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례로 공중에서 공격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드라이브 패리를 유지하면서 방어를 한다면 공중 기본기 1타는 막아내더라도 패링을 예측하고 착지 후 바로 이어지는 상대의 잡기 선택지를 피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패리를 먼저 발동시키고 있으면, 상대가 그렇기에 상대가 공중 기본기 1타를 내는 그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기다렸다가 패리를 발동시킨 후, 상대가 공중 기본기에서 이어지는 연속기를 다 입력하는 것을 보고 난 뒤에 패리를 풀거나 대시로 캔슬 시켜서 역공을 이어나가야 한다.   

 

드라이브 시스템을 통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매번 플레이어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역동적인 공방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흐름의 입문 허들은 낮추고 게임의 깊이는 더하는데 성공하였다. 후술할 내용들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구성은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모든 걸 뒤엎기 보다는 기존에 있던 것들의 템포를 조절하고 다듬어서 정리하는 쪽에 가깝다는 점에서 온고지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드라이브 임팩트패리가 혁신적인 것들처럼 보여도, 당장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가드 포인트가 달려있는 세이빙 스로우와 스트리트 파이터 3의 블로킹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다. 여타 격투 게임들이 프랜차이즈가 커질수록 자신만의 문법을 너무 늘리다 보니 그들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장르의 본질과 시리즈의 전통에 충실하면서 너무 복잡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게 적절한 시스템적 수위를 조절했다. 

 

또한 스트리트 파이터 6 게임 흐름은 플레이어 주도적인 선택을 장려한다: 드라이브 패리와 임팩트, 드라이브 게이지의 운영, 캐릭터별 자원과 개성, 구석에서의 심리전, 역가드 심리전 등은 플레이어 입장에서 '리스크를 지더라도 무언가를 시도해야 이득을 보는 구조'를 만들었다. 수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구석에서의 리스크(구석에서 드라이브 임팩트가드 했을 시, 넉백 - 벽 스턴으로 상대방에게 콤보 기회를 주는 점)나 수비적인 가드 플레이의 난점(가드 시, 드라이브 게이지가 떨어져서 드라이브 게이지 운영에 난점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 번아웃에 빠질 시 가드 경직 증가 등)들이 발생한다. 때문에 '필요한 상황에선 수비를 하되, 내 공격권을 가져올 수 있는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골라야 한다. 특히 이번 작에서는 구석에 몰렸을 때의 리스크가 더 커지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구석을 탈출하기 위해서 과감한 선택지들(슈퍼 아츠, 점프, 잡기 등등)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들 때문에 스트리트 파이터 6에서 하단 가드를 계속 하면서 관망한다 라는 선택지는 때로는 악수가 된다. 

 

본작의 이러한 요소들은 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플레이어들이 즐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본작의 핵심은 '인식하면 할 수 있다'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극단적인 옵션 싸움도 아니고, 스트리트 파이터 5의 기본기 프레임 표를 다 외우고 있어야 후상황 유불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암기보다는 그때 그때 '상대가 무엇을 하는가' 집중하고 그에 따른 대응들을 차근차근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대전에 안착할 수 있다. 격투 게임에서 모르면 맞아야지?알아도 맞아야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한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점진적으로 자신의 플레이를 고쳐 나감으로써 발전할 여지를 남겨준다.  

  

'인식하면 할 수 있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본작에는 플레이어 숙련도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중간 단계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모던 조작이다: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서는 약중강 펀치/킥 6버튼 체계를 전통적으로 지켜왔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조작 체계를 클래식, 모던, 다이나믹으로 쪼어 놓는데, 기존 시리즈 전통인 클래식과 어시스트 콤보만 나가는 다이나믹 조작보다도 더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바로 모던 조작이다: 모던 조작은 펀치/킥의 개념을 삭제하고 ,, 공격 3버튼에 필살기 버튼, 그리고 좌우 범퍼에 드라이브 임팩트와 드라이브 패리, 우측 트리거에 어시스트 버튼(트리거를 당기고 약중강 입력 시 정해진 콤보 루트를 입력하는 어시스트 콤보가 나가고, 필살기를 누르면 강화형 오버 드라이브 필살기가 나간다)을 배정했다. 모던 조작의 필살기는 필살기 버튼 또는 방향키 필살기 조합으로 나가는, 흡사 대난투 시리즈에서나 볼법한 간단한 조작으로 변경된다. 그 결과 조작 실패에 대한 운영 실패를 줄이고, 패드에 자연스럽지 않은(기존 스트리트 파이터 조작 전통은 강펀치 강킥을 쓰기 위해서는 우측 범퍼와 트리거를 써서 상당히 이질적인 조작감이 있었다) 조작을 패드기반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고쳤다. 

 

 

 

모던 조작의 핵심은 '반응'이다. 애초에 파동 승룡으로 요약되는 4분의 1회전이나 승룡 커맨드 같은 것들이 일단 초심자 입장에서 입력하는 것들부터가 어렵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적재적소에 반응하여 활용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심지어 반회전이나 1회전 같은 입력 도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커맨드들은 캐릭터 입문의 난이도를 대폭 올려버리는 문제도 만들었다. 모던 조작은 이러한 문제들을 20% 데미지 감소라는 페널티를 주되 원 버튼 입력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캐릭터 운영의 정수만 뽑아서 플레이어가 상대 플레이에 반응하여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아무리 초심자라도 상대가 뜨는 궤적을 보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승룡권을 칠 수 있게 된다. 

 

모던 조작의 반응은 결국 운영으로 이어진다. 상대가 선택한 행동에 반응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은 결국 상대가 선택지를 선택할 때, 나도 거기에 대응되는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격투 게임을 하는 초심자 ~ 중급자의 의식의 흐름이 '상대가 공중에 떠올랐다' - '궤도를 읽는다' - '승룡권 커맨드를 정확하게 입력한다' 라는 3단계에서, '상대가 공중에 떠올랐다' - '궤도를 읽는다' 이 2단계로 간단해지는 것이다. 이 의식의 흐름과 뇌내 연산 완화는 그 연산량 자원을 다른 건설적인 자원으로(셋업이나 상대 공격과 수비를 어떻게 막고 내가 반응하는가) 재분배를 하게 하여, 결국 게임이 나가고자 하는 공방의 운영과 능동적인 플레이어의 선택이라는 경지까지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모던 조작이 클래식 조작의 열화 버전이자 클래식 조작으로 이행하기 위한, 언젠가는 도태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모던 조작에서 약 30% 정도의 기본기들이 잘려 나가고, 몇몇 필살기들에는 제약 사항이 걸리거나(=클래식 커맨드 입력으로도 발동할 수 없는), 데미지 제약이 걸리는 등의 다양한 제한이 있다. 그러나 모던 조작은 때로는 '반응 불가능한 타이밍에서 반응할 수 있는' 기회들을 열어 주기도 하는데, 클래식 조작에서 커맨드를 입력하다 놓치는 반응들을 칼같이 입력하게 만들어서 운영 요소와 불가능한 반응의 영역을 파고 들게 만들어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중잡기 상황일 것이다: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공중잡기는 칼같이 타이밍을 입력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커맨드에 신경 쓰지 않고 원버튼 조작으로 공중잡기 타이밍에 신경 쓰면 되서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오르게 되고, 공중잡기 견제가 운영 전체에 유의미한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이런 점 덕분에 랭크 최고 등급인 마스터 등급에서 모던 조작을 쓰는 플레이어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잘려 나간 부분과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이라는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에 모던 조작은 스트리트 파이터와 격투 게임의 조작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었다. 

 

 

 

조작, 운영, 선택지, 공방의 흐름 등등 다양한 것들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가장 놀라운 점들은 이 모든 것들이 이미 다른 격투 게임에서 다 한 번씩은 시험해보고 거쳐간 개념들이었다는 것이다. 간단조작의 경우에는 이미 아크 시스템 웍스의 격투게임에서 주로 들고 나온 실험들이었고, 공방의 흐름을 단순화하거나 하는 부분은 폭권에서 이미 보여줬던 개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실험들이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초보 친화적으로 조작을 개선한 것처럼 보이는 아크 시스템 게임들은 여타 시스템들 때문에 격투 게임 악귀나찰을 위한 게임이 되었고, 폭권이나 다른 게임들도 몇몇 컨셉에서는 확실하게 잘 작동되지만 다른 쪽에서는 어딘가 삐걱거리는 아쉬움을 보여주었다. 허나 원래 있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격투 게임 중에 가장 완벽에 근접한 비율로 다듬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는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 6가 최근 격투 게임유일하다. 

 

심지어 스트리트 파이터 6는 싱글 플레이 콘텐츠 마저도 마지막 로드맵의 끝(플레이어와의 심도 있는 공방 싸움과 심리전 흐름)을 바라보고 거대한 튜토리얼로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 스트리트 파이터 6를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입할 수 있는 스토리 콘텐츠를 제공하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싱글 플레이 모드인 월드 투어(스트리트 파이터 6의 싱글 플레이)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를 체험하 과정이다. 게임이 크게 취하고 있는 구조는 특이하게도 '용과 같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행인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거나 음식을 먹어 회복하거나 평범한 스타일 패션 옷들을 마치 장비 마냥 구매해서 RPG 등의 큰 구조 자체는 용과 같이를 연상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면서도 스트리트 파이터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RPG처럼 레벨링을 하는 요소가 있더라도, 정역가드나 심리전, 공방의 흐름 같은 기본 흐름들은 기존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게임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월드 투어의 적 NPC들의 행동이 특정 상황에서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는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장풍으로 압박하거나 가드를 굳히거나 잡기를 막 하거나 하는 등의 패턴들을 보여주는데 일반 아케이드나 컴퓨터 대련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패턴을 섞기 보다는 하나의 패턴에 천착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해당 패턴을 천천히 익히고 배울 수 있게끔 만든다. 또한 드라이브 패리 3번 하기’, ‘드라이브 임팩트 3번 하기등의 다양한 과제를 주고, 플레이어가 해당 행동을 해서 보상을 받게끔 구조를 설계한 점도 눈 여겨 볼만 하다. 즉, 패턴의 학습과 행위에 대한 보상을 통해서 월드 투어 자체가 더 낮은 난이도의 튜토리얼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6는 튜토리얼을 이원화시켜 놓아 사람들이 입문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격투 게임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일반 튜토리얼을 통해서 게임의 큰 흐름을 배우고, 격투 게임 장르가 처음인 사람은 월드 투어를 통해 퀘스트와 RPG 통해서도 천천히(약 20~30시간 이상의 반복 퀘스트와 파밍을 통해) 게임을 배우게끔 만든 것이다. 이렇게 튜토리얼을 이원화시켜 놓고 동일한 목표(대인전)을 바라보게 만든 점은 게임의 구조가 목표를 향해서 탄탄하게 짜여 있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월드 투어의 스토리텔링 역시도 눈여겨 만하다. 기존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나 여타 격투 게임들의 싱글 콘텐츠들은 아케이드 모드와 같이 일직선으로 진행되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월드 투어는 다양한 스승(=플레이어블 격투 캐릭터)들을 만나서 격투를 배우고 강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단순히 거대한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플레이어가 답을 찾아가고 다양한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면서 게임의 세계관에 이입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다루었다.  

 

월드 투어는 그러한 튜토리얼의 역할 외에도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강화하고 아바타 의상을 파밍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금번 월드 투어의 아바타 생성은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정밀한 수준까지 아바타를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다양한 의상과 격투 스타일을 조합해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가 확실히 있다. 그리고 배틀 허브 매치나 배틀 허브 같은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서도 아바타 매치와 아바타 자랑을 할 수 있게 만든 점은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싱글 플레이에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끔 제작사가 배려한 부분이다. 

 

종합하자면 스트리트 파이터 6은 격투 게임의 정점인 동시에, 근 몇 년 동안 나왔던 트리플 A 게임의 정점에 선 작품이다. 깊이 있는 게임 시스템과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학습하는 곡선을 다변화시키고, 여러가지 완충장치들(모던 조작 )을 제공하는 모습은 여지껏 나온 게임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 6 이후로도 더 좋은 게임이 안 나온다든가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스트리트 파이터 6는 대전 게임의 숙련자든 입문자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 구성과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은 비단 격투 게임 장르를 벗어나서 트리플 A 게임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 격투 게임에 관심이 있고, 오랫동안 플레이할 게임을 찾는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6 추천한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개인사가 여러가지로 겹쳐서 글을 못쓰고 있는데, 정신 차리려고 최대한 노력중입니다.

 

글 소재만 머릿속에서 썩고 있고, 완성을 못시키네요.

 

최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글과 함께 6월 끝나기 전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1202  (0) 2023.12.03
231001  (0) 2023.10.01
221211  (0) 2022.12.11
221130  (0) 2022.11.30
220808  (0) 2022.08.08
1 2 3 4 5 6 7 ··· 570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