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챗 지피티가 마음대로 상상한 영화의 이미지입니다.

 

오즈 퍼킨스 감독의 영화 더 몽키는 유명했던 시리즈 공포 영화 데스티네이션을 연상케 한다: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 없으며, 인물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데스티네이션이 황당한 죽음이 가져다 주는 긴장감(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롯되는)과 영화의 양식에 기반한 일종의 카타르시스(죽을 사람은 결국은 죽는다)에 기반한 양식적인 재미가 있었다면, 더 몽키는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에 리뷰했던 롱레그스처럼(https://leviathan.tistory.com/2661) 영화는 감독의 가장 내밀한 경험(게이였던 아버지와 그걸 숨긴 어머니라는 그의 가족사)에 기반하고 있지만, '살아남는 것을 허락받은 것'이 아닌 독특한 결론으로 이끈다는 것이 인상 깊은 영화다.

오즈 퍼킨스 감독의 가장 큰 모티브는 '어떻게 어린시절의 경험이 다 자란 성인을 지배하고 고통받게 만드는가'이다. 더 몽키도 비슷하다:아버지의 부재, 어머니만 존재하는 편모 가정에서 자란 쌍둥이 중 동생인 주인공은 죽음을 불러오는 원숭이 인형에 의해서 어머니와 친척들을 잃는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영화는 결혼에 실패하고 자식과 아내, 심지어는 아내의 재혼 상대에게도 무시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재밌는 점은 여기서 주인공이 가족을 꾸리고 실패하는 과정 자체가 완전히 통으로 생략이 되었다는 점이다:이는 어떻게 보면 유년기 트라우마를 가진 자들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 내내 그가 과거의 망령인 원숭이 인형에게 쫒기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망령에게 언제고 뒤를 잡힐것이라는 강박 때문에 자신의 인생마저 즐기지 못하고 자식마저도 밀쳐낸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을 쫒아오는 그 망령은 바로 '죽음' 그 자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와 더 몽키는 닮은 부분이 있지만, 고어의 미학에서 본다면 사뭇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죽음 기본적으로 '사고'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일어나는 사고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면서 아무리 준비가 잘 되어 있어도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라는 양식미를 구축한다. 하지만 더 몽키에서 죽음은 부조리함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서 만들어지는 사고와 사뭇 다른 점은, 더 몽키의 죽음은 '말이 되지 않는다'인 것이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는 생각조차 못하는 현상에 가깝다. 단순히 기막힌 우연의 확률로 뇌동맥류가 터져서 죽은 어머니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캠핑하다가 야생마들에게 짓밟혀서 다진 곤죽이 된 외삼촌, 머리에 불붙은 채로 뛰어다니다가 표지판에 머리가 관통 당해 죽은 외숙모, 심지어 수천마리의 벌이 입안에 들어가서 죽어버린 인물까지 더 몽키에서 죽음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가까울 정도로 기이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데스티네이션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끝에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면, 더 몽키에서는 돌이켜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말도 안되는 사건으로 인해서 삶이 불현듯 끝나버리는 것에 가깝다. 즉, 더 몽키는 사람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일상적이면서도 바람을 불면 훅하고 날아가듯이 아주 가느다라고 위태로운 실 위에 지탱되는 곡예사의 곡예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조리한 죽음(원숭이 인형)을 만난 주인공은 그 경험의 포로가 된다. 원숭이 인형이 북채를 치고 북을 칠때마다 사람이 죽어나간다. 그러한 법칙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히는 쌍둥이 형이 죽기를 바라면서 원숭이의 태엽을 감는다. 그러나 그 결과 어머니와 외삼촌이 죽게 되자, 주인공과 쌍둥이 형은 그 인형을 토막내서 우물에 던져버린다. 하지만 그것은 그 경험의 극복은 아니다: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비록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태엽을 돌려서 어머니의 죽음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등이다. 이 와중에 재밌는 점은 원숭이 인형의 작동 방식인데, 태엽을 감아서 작동하는 것도 원숭이의 마음대로이고 죽이는 대상도 원숭이의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엽을 감아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발상은 어떻게 보면 주인공의 죄책감과 무관하게 허구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박스 포장지에 적힌 실물의 삶처럼Like a Life 이라는 문구처럼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즉, 주인공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통제하지도 못하는 것에 휘말렸음에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 유년기에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갇히는 함정에 갇힌 것이다.

재밌는 점이자 이 영화의 가장 거친 부분은 바로 쌍둥이 형의 존재다:주인공의 쌍둥이 형은 주인공이 자신을 죽이려고 인형의 태엽을 감았다는 사실을 알고,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인형의 태엽을 감아 사건을 일으킨다. 하지만 막상 주인공과 어색한 화해 장면에서 어색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인형이 북을 치는 바람에 죽어버리고 마는데, 이 시퀸스는 어색하고 불편하고 찝찝한 기류가 계속 흐르는 영화의 결과 맞지 않는 이상한 장면이다. 영화 전체는 주인공이 자신의 편집증과 강박으로 인해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고 그 과정에서 주변사람과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면, 이 장면에서는 그 화해하는 장면을 대단히 어색하게 희화화 함으로써 대체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쌍둥이 형의 존재는 이 영화의 인물들과 맥을 달리하는 부분들이 있다. 롱레그스나 더 몽키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자면, 다들 평면적이긴 하지만 어떤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서 뒤틀려버린, 강한 유압프레스에 눌려버린 시체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짓눌려버린 모습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이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는 강렬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모습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다양한 면모들을 캐치하는 것이 오즈 퍼킨스 감독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쌍둥이 형은 살아있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케릭터가 '비어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하나의 인물로 보기에는 인물과 서사가 비어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는 쌍둥이 형이 처음부터 인물이었다기 보다는 동생인 주인공의 인격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활발하고 잘 놀았지만, 동시에 그 어린 시절의 유치함에 사로잡힌 존재, 그리고 똑같이 죽음이라는 강렬한 경험을 했지만 죽음에 다른 방식으로 집착한 존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혐오와 체벌을 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라 한다면 앞뒤가 맞게 된다. 즉, 쌍둥이 형이 화해를 하는 척 하면서 어설픈 장난을 치는 모습이나 쌍둥이 형과 끝끝내 화해를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장면은 자신의 유년 시절과 작별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쌍둥이 형이 죽고, 인형을 다시 찾은 주인공은 앞으로 이제 어떡해야하냐는 아들의 질문에 가족의 의무니 뭐니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신이 겪었었던 강박과 편집의 대물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 앞을 지나가는 죽음(흰 말을 타고다니는 창백한 기수)을 보고서 주인공은 생각을 바꾸고 이야기를 한다. 춤추러 가자고. 그것은 죽음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바뀐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이전까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 고립시켰다면, 이제는 죽음이 있음을 담담이 받아들이고(더불어 자신의 유치했고 죽음에 집착했던 자신의 모습도 버리고) 삶을 최대한 즐기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오즈 퍼킨스의 더 몽키는 공포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 부를 수는 없다. 영화는 어딘가 삐걱거리고 비약으로 차있으며, 쌍둥이 형과의 화해 장면은 기괴하다할 수 있을 정도로 어색하다. 그러나 오즈 퍼킨스 영화에는 진정성이 있다. 그것은 카메라나 플롯에서 자신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부터 어떻게 자신이란 인간이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이상을 더 나아가려고 한다. 공포 영화 감독으로 최고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했고 하기로 함...

 

앞으로 정신좀 차리고 바쁘게 살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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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현실에서 무언가를 부순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지만, 동시에 뒷정리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파괴할 때의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파괴되고 남은 잔재들을 치우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파괴’ 효과가 게임의 중요한 콘텐츠이긴 했어도 동시에 파괴 효과만으로 게임 전체를 채워넣은 게임은 의외로 거의 없었다. 파괴효과가 유명했던 크랙다운 시리즈나 저스트 코즈 시리즈를 예로 들어 보자. 빌딩을 부수고 파괴하고, 잔재들이 쏟아져 내리고…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개발자들이나 기획자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스테이지를 만드는 것을 부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수고 난 다음의 게임이 동작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파괴는 파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대립되는 쌍을 전제로할 수 밖에 없다. 파괴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파괴의 카타르시스 이후에도 게임을 붙잡아주는 부서지지 않는 기본 구조와 대립항, 다시 파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시리즈의 신작으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를 만든 제작자들이 만든 게임이다. 게임은 공개당시부터 파괴를 통한 지형지물과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야생의 숨결을, 그리고 플랫포밍 게임이라는 점에서 슈퍼마리오 오딧세이의 결합이라는 이야기나 다양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물론 바난자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발매 이후에 플레이를 해본 사람들의 중론은 야숨이나 오딧세이 같은 게임에 비견될 바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즉 ‘훌륭한 게임이긴 하지만 기대에는 못미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이는 비교 대상이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야생의 숨결과 같은 게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둘은 시리즈가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쌓아온 경험의 축적이자 결과물이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시리즈가 나아가야하는 일종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이들 시리즈와 다른 부분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기본적으로 액션 어드벤처, 그 중에서도 액션 플랫포머 게임이다. 기본적인 골격은 일자 진행이긴 하지만, 중간 중간에 숨겨놓은 요소들을 넣어둬서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탐색을 하면서 게임을 진행하게끔 만든다. 요컨데, 툼레이더 리부트 같은 게임에서 보여지는 리플레이가 가능한 일직선 플레이의 구조를 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완전히 복도식의 일직선이 아닌,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큰 공간을 두고 플레이어가 탐색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오픈월드 장르의 영향을 받은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완전한 샌드박스의 형태나 해매는 것을 전제로하는 것이 아닌 ‘출발과 도착’이 명확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이 게임은 지형지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닌,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의도한 대로 얼마나 잘 움직이고 행동하냐가 더 중요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키콩 바난자는 젤다의 전설나 데이어스 엑스 같은 이머시브 심 같은 게임이 아니다. 즉, 정답이 여러갈래로 존재하고, 플레이어의 기량과 준비에 따라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곳까지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플레이어의 기량을 측정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동키콩 바난자가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파괴하고 다양한 것들과 펀치로 상호작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치 이머시브 심이나 샌드박스 류의 게임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설명하였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을 성립시킬 수 없다. 파괴는 필연적으로 혼돈을 수반하고, 혼돈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플레이어가 모든 발판을 다 부서버린 다음에는 그 후에 어떻게 되는가? 게임이 진행이 가능해질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파괴만으로는 게임 플레이의 핵심 메카니즘을 구성할 수 없다. 파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파괴에 대칭되는 쌍이 과연 바난자에 어떤식으로 존재하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근간이 되는 핵심 장르부터 짚어야 한다: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이고, 게임이 진행되는 양상은 기본적으로 플랫포머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르인 ‘액션’과 좀 더 구체적인 장르인 ‘플랫포머’를 따로 때서 봐야할 것이다. 액션 장르 자체는 힘을 통한 상호작용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기본적으로 규칙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액션의 방점이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것이 폭력이든 정교한 형태든 간에 중요한 것은 게임 내에서 어떠한 형태든 간에 힘이라는 테마는 액션 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난자는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액션 장르 게임이다:동키콩처럼 강한 힘을 가진 케릭터가 힘을 통해서 사물과 적들을 부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난자에서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적뿐만이 아니라 ‘지형지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형지물과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플랫포머 게임에서 플랫폼은 일종의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바난자는 그 근간을 흔드는 게임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여타 플랫포머 게임들을 보자. 가령 출발점 A에서 도착점 Z까지 간다고 했을 때, 중간에 다양한 발판들 B,C,D,E… 등이 있을거고 그 사이를 점프나 다양한 행동을 통해서 발판 사이를 오가며 도착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적인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발판을 부숴버린다면 플랫포머 게임은 장르는 성립을 할 수 없다. 그것은 A부터 Z까지의 경로를 구성하는 경로를 단절시키면서 장르의 전제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난자는 플랫폼을 파괴한다는 발상과 함께, 파괴 뿐만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해서 플랫폼을 다시 만들거나 이어주는 일종의 ‘부드러운 플랫폼’들을 만들어서 게임의 스테이지를 이어준다.

예를 들어 보자. 바다가 나오는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처음으로 주먹으로 적을 쳤을 때, 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서 지형을 생성하는 기믹이 등장한다. 이를 이용해서 기존에 올라갈 수 없는 더 높은 발판들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발판 생성 기믹이 동키콩의 펀치라는 액션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플랫폼을 파괴하는 요소가 역으로 플랫폼을 생성하는 요소로도 사용된다는 것인데, 파괴를 뒤틀어서 창조의 영역으로 이용하는 발상을 한 것이자, 직관적이지만 마냥 쉽지 않은(적이 날아가는 궤적을 잘 생각해서 때려야 하기 때문에) 요소들이 있다. 

동키콩 바난자는 구성이 이런식으로 되어 있다. 때리고 부수고 던지고 하지만 중요한 점은 플랫폼의 총량이 ‘변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A에서 Z까지 가는데 중간에 있는 B나 C라는 플랫폼을 부순다면 이 부순 플랫폼들을 이용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거나 새로운 플랫폼까지 닿는데 필요한 임시 플랫폼을 만들게끔 한다는 것이다. 즉, 플랫포밍 장르 문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의 관계를 딱딱한 형태로 엄정하게 정의내리기 보다는 더 유연하게 접근하는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에서는 기존 플랫포머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구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땅을 파서 땅속에 파묻힌 보물들을 찾아낸다던가 하는 등의 행위들이 그럴 것이다. 기존 플랫포머에서는 땅을 잘못 파면 다시 복귀하거나 도착점까지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등의 외통수를 두게 되지만, 바난자에서는 벽면이라면 어느 곳이든 짚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수월했다. 어디에나 매달릴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플랫포머의 상식을 파괴하였지만(정교한 점프 등을 수행하지 않고도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플랫포머 장르를 따르고 있고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물론 플랫폼을 파괴하거나 창조하는 행위 자체가 플랫포머 장르에서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시도들은 아니다. 최근에 리메이크되서 나온 스펠렁키 같은 게임들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곧바로 감이 올 것이다. 그러나 바난자가 독특하고 대단한 점은 파괴의 액션을 창조의 행위와 결합하였다는 점이고, 플레이어가 직관적으로 위-수평-아래로 때리면서 길을 만들고 플랫폼을 개척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단순히 부수는 것만이 아니라 바난자 능력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스테이지와 상호작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예를 들어 코끼리 바난자의 경우에는 코로 지형을 빨아들이고 그 파편을 저장했다가 파편을 던지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행위로 이어줄 수 있다. 그리고 바난자 능력 사이에서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개 이상의 바난자 능력들을 활용한 구조도 보여주어서, 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포멧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바난자는 처음부터 이를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닌텐도로써도 이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 시리즈가 갖는 맥락과 다른데, 마리오 시리즈가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3D 마리오가 많이 나옴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 모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동키콩 바난자는 동키콩 64 이후로 나온 첫 3D 동키콩이라는 점에서 게임 장르의 정체성을 정립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처음에는 주먹으로 파괴하면서 발판을 만드는 스테이지를 제공하면서 플레이어가 새로운 컨셉에 적응하게끔 만들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게임의 구조(던지면 자라나는 씨앗, 때리면 날아가면서 발판을 만드는 적 등등)를 복잡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게임 자체가 동키콩 바난자라는 새로운 동키콩 게임의 콘셉을 정립하기 위한 일종의 프리젠테이션이자 확장 테스트의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확장이 부드럽고 늘어나면서 결국엔 '동키콩 3D 게임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적인 결론과 재미 구조를 구축한다.

그것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 바로 최종 보스전이다. 최종 보스전에서 플레이어는 바닥을 모두 공격으로 뒤덮는 최종보스와 싸워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은 최종 보스의 특정 공격을 콩 바난자로 반격하여 주변 지형을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황금(피해를 주지 않고, 플레이어가 집어 던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파괴해서 바난자 능력을 다시 채워주기도 한다)으로 바꾸는 것이다. 바난자의 최종 보스는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말도 안되는 플랫폼 전체 공격을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최종 보스의 공격을 플레이어가 반전시켜서 역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일종의 핑퐁 구조를 만들어서 게임의 균형을 맞춘다. 구조 자체는 단순한 핑퐁처럼 주고-받는 구조로 보이지만, 바난자의 최종보스는 최종보스 답게 플레이어가 여지껏 게임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싸우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가 전반적으로 게임 콘셉의 데몬스트레이션이었던 것에 비한다면, 최종보스는 상당히 도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최종보스의 거대한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서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생각보다 보스의 공격을 받아치는게 까다롭다는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에서 플레이어의 학습 곡선이나 구성을 잘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도전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단히 전통적인 게임의 구조이긴 하지만, 이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통용되는 부분이 있고 닌텐도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일종의 시작점 같은 게임이다. 슈퍼마리오 오딧세이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왕국의 눈물같이 집대성 같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딧세이가 이뤄낸 성과들과 바난자를 비교하는 것은 바난자에게 다소 억울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오딧세이는 슈퍼마리오 64 이후로 지금까지 만들어왔었던  게임의 노하우가 집대성되었다면, 바난자의 게임 장르는 이제 바난자로부터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지형과 상호작용하면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고, 더 나아가 직관적인 파괴와 창조의 개념을 도입한 게임이 이제 바난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난자는 재밌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동키콩 바난자는 스위치 2를 구매한 사람이라면 꼭 구매해서 해볼만한 게임이다. 이 게임의 포멧은 앞으로 더 나은 게임 포멧이 될 것이고, 더 발전할 것이다. 스플래툰이나 야생의 숨결, 슈퍼마리오 오딧세이 와 같은 게임들을 만든 닌텐도이기 때문에 더 이 게임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많은 기대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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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벽돌깨기 라는 장르가 있다. 이 장르는 현재는 마이너하지만 게임 초창기의 역사와 맥이 닿아있는 장르다. 가령, 퐁이라는 최초의 상용 비디오 게임의 문법도 ‘공을 튕겨내어서 넘긴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벽돌 깨기 장르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76년 발매된 최초의 벽돌깨기 게임인 브레이크아웃은 2인용이었던 퐁을 1인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비디오 게임의 태동과 같은 게임에서 갈려져 나온 만큼 벽돌 깨기 장르는 다양한 변종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변종들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알카노이드라는 게임이 유명할 것이다. 아래에 있는 막대를 조작해서 벽돌을 맞고 튀겨져 나오는 공을 튕겨내서 공을 맞추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모든 벽돌을 부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 이 게임은 벽돌깨기 류 게임 장르의 고전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알카노이드 등의 영향을 받은 게임 벽돌깨기 게임 장르들이 등장했다. 물론 벽돌깨기 장르가 플랫포밍 게임 등과 비교하여 본다면 더 하위 카테고리의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에, 장르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게임들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의 장르가 갖는 재미와 문법 자체는 공고했기 때문에 수많은 게임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볼핏(Ball X pit)은 벽돌깨기의 문법을 활용한 로그라이크 벽돌깨기 RPG라 할 수 있다. 게임은 간단하다. 적들이라는 벽돌을 깨부수면서 스테이지 끝까지 진행하고, 끝까지 진행한 다음에 보스를 물리치면 된다. 벽돌이 고정되어있는 일반적인 벽돌깨기 장르와 다르게, 벽돌 역할을 하는 적들이 아래로 조금씩 내려오고 플레이어에게 지나치게 가까워졌거나 혹은 맨 마지막 행까지 내려온 경우 플레이어에게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들을 최대한 빠르게 공을 튕겨내어서 벽돌을 부숴야 한다. 플레이어는 최대 두명의 케릭터와 5개의 볼, 5개의 패시브를 조합하여 난관을 해쳐나가야 하며, 볼의 융합, 진화를 통해서 자신만의 볼 조합을 만들어나가면서 적을 격파할 수 있다.

장르의 큰 틀을 놓고 본다면 볼핏은 벽돌깨기 장르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볼핏이 벽돌깨기를 구성하기 위해 들고 온 세부 장르들의 구성요소들이 일종의 메타 장르적인 경험을 의도하고 구축한다는 점이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점은 공격이 자동과 수동 방식으로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혹자는 볼핏의 게임 플레이가 ‘자동 공격을 전제로 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장르에 맥이 닿아있다고 하고, 자동 공격을 킨 상태에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게임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의 흐름은 큰 틀에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류의 장르와 크게 맥락이 닿아있지만, 포인트는 자동공격만 존재하는 뱀파이어 서바이버 류와 달리 ‘수동공격’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게임 플레이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다는게 포인트이다. 즉,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해야하는 게임 흐름 상 대부분의 상황에선 자동공격을 키겠지만 몇몇 상황에서는 플레이어가 자동 공격을 끄고 더 정밀하게 게임을 컨트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기꾼의 경우, 플레이어가 베이비볼이라 불리는 일반 공을 쏘지 않는 대신에 플레이어가 들고 있는 무작위의 특수 볼을 여러개 던질 수 있다. 자동공격을 킨 상황에서는 평균적으로 유기꾼을 조합한 조합의 경우 특수볼을 두개씩 던지지만, 수동공격을 통해서 공격할 경우 동일한 특수볼을 5개 이상 발사할 수도 있다. 즉, 자동회수 - 자동발사 라는 메카니즘 내에서는 특수볼을 회수하자마자 던지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2개(1개를 회수하면 두개를 던진다)를 던지는 것에 수렴한다면, 모든 공을 회수한 후에 던지게 되면 던지는 순서가 무작위이긴 해도 5개 이상의 특수볼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로직을 최대한 극대화한 것이 바로 전략가와 유기꾼의 조합이다. 전략가는 게임을 ‘턴제’로 바꾸어버리는데 플레이어가 공격을 할 때만 시간이 흐르고 적들과 투사체가 움직이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의 볼 압축(유기꾼은 특수볼을 무작위로 여러개로 던지기 때문에 여러개의 볼이 있을 경우 내가 원하는 특수볼을 던지지 않을 수 있다)을 한 상태에서 유기꾼을 이용해서 공을 던지는 것을 뻥튀기 하면 엄청난 폭딜을 꽂아넣을 수 있다. 전체 화면 처리에 특화된 대출혈 X 섬광(전체화면에 출혈 데미지를 뿌리는 특수볼 조합) 5개가 튕기는 조합은 실제 마지막 스테이지 타임 어택 기록에도 등재되어 있다(무려 클리어 시간이 2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핏의 특징은 장르 자체만 본다면 벽돌깨기 장르이지만, 벽돌깨기 장르의 전형에서부터 현대적인 뱀파이어 서바이버류의 자동공격 류 게임, 그리고 버블버블이나 자동 사냥 등의 다양한 게임 장르들이 메타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게임이며, 단순하게 벽돌깨기 장르로만 구성된 게임이 아닌 좀 더 독특하고 기괴한 형태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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