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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폴아웃 4의 리뷰는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필자가 이전에 폴아웃 4의 리뷰를 썼을 때는 이것보다 더 엉망인 폴아웃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 적이 있었다. 엉망진창인 서사, 그리고 이야기와 유리된 게임 시스템까지 폴아웃 4는 미인의 시체를 기워 만든 끔찍한 흉물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폴아웃 타이틀과 그해 최악의 게임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게임이 등장할 줄은 몰랐다. 폴아웃 76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무한한 자가 증식과 복제를 통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지만, 폴아웃 76 같이 애시당초에 게임 시스템 자체가 망가져서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경우는 인디쪽의 얼리 억세스 게임에서나 찾아볼 수 없는 조악한 마감에 가깝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폴아웃 76이 이미 오래전부터 논리적으로 예견된 재앙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재앙의 스케일이 논리적으로 예견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규모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재앙의 시작은 토드 하워드와 베데즈다가 생각했던 RPG의 이상향부터였다. 베데즈다를 대표하는 엘더 스크롤 시리즈는 여타 CRPG들과 다르게 거대한 세계에서 퀘스트를 풀어나가는 것을 강조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엘더스크롤이 구체적으로 '무언가 다른' RPG가 구체적으로 되었던 것은 아마도 스카이림이 최초였을 것이다. 게임은 거대한 필드를 던져두고, 그 속에서 채집할 거리와 할 거리를 던져두었다. 플레이어는 할 거리를 알아서 찾아가면서 자신만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후속작으로 나왔던 하스파이어 DLC에서는 불완전하게나마 하우징의 개념까지 도입하였다. 스카이림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RPG의 생활감과 게임 플레이가 함께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여기서부터 폴아웃 4와 76가 갖고 있는 문제의 싹은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RPG에 있어서 핵심은 여정이다:여정에는 목적이 있고, 행선지가 있으며, 그리고 끝이 존재한다. 이야기의 특성상, 좋든 싫든 이야기는 끝을 향해서 달려가는 방향성을 띈다. 플레이어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에 있어서 '특정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며, 이 특정한 역할이란 결국 이야기 내에서 구체화될 수 밖에 없다. 스카이림을 통해서 토드 하워드가 추구한 바는 의도하지 않게도 많은 RPG 장르 문법을 무시한 셈이었다:생활로서의 RPG란 결국 어느 시점에서 이야기 내에서 플레이어의 역할을 버려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용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그런 위급한 상황을 버려둔채 느긋하게 약초를 캐고 마을에서 흥정을 벌이는 셈이다. 


물론 많은 RPG들이 옆길로 세는 것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스카이림의 경우, 그 옆길로 세는 것이 핵심 메인 콘텐츠였던 셈이었다:플레이어는 통상적인 RPG와 달리 다양한 활동들(마법을 쓰거나, 물건을 만들거나 하는 등)을 할 때마다 보상을 받았으며, 게임 역시도 그것을 핵심으로 만들기 위해 게임 메인 퀘스트 동선에 다양한 생활 콘텐츠나 서브 퀘스트 라인을 조밀하게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카이림의 플레이어는 다양한 팩션 퀘스트나 서브 퀘스트, 생활 콘텐츠, 돈벌이 등을 하다보니 알두인과 세계의 위협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심지어 서브 퀘스트를 열심히 하다 메인 퀘스트를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강력한 레벨과 장비, 아이템으로 알두인을 손쉽게 밀어붙여서 싱겁게 게임을 끝내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히려 게임에 있어서 핵심 서사가 곁다리에 잡아먹힌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스카이림의 경우에는 중심 서사가 존재감이 좀 적긴 하더라도 충분한 기능을 하고 있었던 편이었다. 이는 스카이림의 메인 서사가 '어디서 본듯하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스카이림의 이야기는 복잡한 관계나 이야기도 없고,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흘러가는 편이었다(중간에 제국/스톰클록 어느 편을 들건가 결정하긴 하지만) 복잡하고 흥미롭고 재밌는 부분은 플레이어가 자의로 선택하는 서브 퀘스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기에, 메인 서사의 가벼움은 상대적으로 커버가 되는 편이었다.


스카이림은 몇몇 이슈가 있었지만, 베데즈다 RPG 라인업 중 위에서 언급한 문제가 노골적으로 두드려졌었던 것은 폴아웃 시리즈였다:돌이켜 보아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베데즈다가 이 인수한 이후 3편부터 4편을 거쳐 76까지 폴아웃 시리즈는 자사 엘더스크롤 프렌차이즈에 들어갈 요소들을 실험하기 위한 2군 프랜차이즈였다. 폴아웃 3는 기존 쿼터뷰 방식의 시리즈를 탈피해서 엘더스크롤의 엔진과 게임 시스템, 방법론을 적용한 작품이었다. 폴아웃 3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이 갖고 있었던 퀘스트 동선이나 던전 구성의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점이다:1과 2편에 대한 개선이 아닌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비교되었다는 점에서 폴아웃 3는 폴아웃 시리즈의 정통 후계작이 아닌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변종처럼 느껴졌었다. 또한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3편이 참조한 것은 기존 폴아웃 1편과 2편의 테이스트가 아닌, 엘더스크롤 오블리비언식의 전형적인 영웅서사를 따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폴아웃 3는 시리즈 전통 후계작이라기 보다는 엘더스크롤 폴아웃 버전이라고 평가받았어야 했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 CRPG 프랜차이즈가 살아돌아왔다는 점에 더 의의를 두고, 이러한 변화점에 대해서 크게 지적을 하지 않은 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3편 이후, 폴아웃 1과 2편을 만든 제작자들 손에서 폴아웃 뉴 베가스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폴아웃 1과 2편을 절대적인 경전으로 취급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뉴 베가스는 3편의 시스템을 끌어오면서 3편의 밋밋한 스토리 라인을 완전히 뜯어고쳐서 1편과 2편이 가진 매력을 되살린 작품이었다. 플레이어는 자신을 파묻은 악역을 찾아 개인적인 여정을 시작한 배달부를 따라서 거대한 사건에 휩쓸리게 되고 결국은 뉴 베가스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시리즈를 만들었던 제작자들이 DLC를 통해서 내린 이 시리즈의 결론일 것이다:모든 것을 바꾼 배달부의 여정을 통해서 율리시즈는 '전쟁, 전쟁은 바뀌지 않는다....그렇다면 인간이 바뀌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1과 2편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이질적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뉴 베가스를 중심으로 전후의 폴아웃 시리즈를 살펴본다면 무엇이 이질적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때까지만 해도 폴아웃 시리즈는 낯선 세상에 홀로 떨어진 주인공(뉴 베가스의 배달부와 볼트에서 나온 3편 주인공)들이 여정을 통해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결정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스카이림을 거쳐 폴아웃 4로 넘어오면서 이야기는 180도 달라지게 된다.


폴아웃 4의 핵심은 스카이림의 DLC 하스파이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인크래프트와 모딩을 적절하게 섞어서 게임 시스템 자체가 지원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폴아웃 4는 스카이림 이전의 게임들과 완벽하게 다른 골격을 갖고 있는 게임이었다. 게임 내의 모든 아이템은 특정한 자원으로 분해/환원될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잡동사니를 긁어모아서 더 나은 무기와 아이템을 만들거나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폴아웃 4에서 높게 평가할 부분은 마인크래프트에서나 볼법한 시스템이 기나긴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트리플 A RPG에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스카이림부터 내려온 토드 하워드의 RPG관의 문제를 심각하게 터뜨린 기폭제가 되었다. 폴아웃 4에서 서사는 더욱 의미없어지고 산만해졌으며, 게임 내 콘텐츠는 배경과 맞지 않을뿐더러 시스템 상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플레이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지 수는 적었다. 차라리 게임 시스템에 구애받지 않는 모딩이나 모든 것이 자유로운 마인크래프트에 비하면, 폴아웃 4가 거둔 성공은 반쪽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폴아웃 4는 여정과 생활이라는 두가지 게임 플레이 스타일에서 큰 충돌이 일어난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핵전쟁 이후, 모든 것이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자신의 가족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부모의 역할을 맡았다. 폴아웃이나 엘더 스크롤 시리즈 최초로 주인공 케릭터에 목소리가 도입된 것도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이 여정의 서사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려 했었던 것이다. 또한 납치당한 가족을 찾아 황야를 해매다 결국 변해버린 가족을 만나고 거기서 주인공이 결단을 내린다는 점은 존 포드의 고전 서부극 수색자에서 받은 부분이다. 하지만 폴아웃 4가 나름대로 여정의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점에 비해서 게임 플레이의 방점은 생활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플레이어는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마을과 구조물을 만들고, 그 구조물을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들(사람을 구한다던가, 처들어오는 적들을 죽인다던가)을 해야한다. 하지만 여기서 생활에 정착하여 멈추려는 동력과 자식을 찾아 떠나려는 여정의 동력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여정의 서사와 여정의 과정중에 만나는 세력들이 모두 나사 빠진 족속들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폴아웃 4는 스카이림보다 더 강력한 여정의 동력을 부여함에도 불구하고 여정이 진행되지 않게끔 더 큰 족쇄(정착지와 건설 콘텐츠)를 플레이어에게 부과하였다. 그 결과, 실제 게임에 몰입하여 정착지를 꾸미고 사람들을 정착지에 정착시킬수록, 플레이어는 핵전쟁 이후 잃어버린 혈육을 찾고 다양한 팩션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중심 서사가 점점 더 이상하게 느끼게 된다. 정착지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지키는 이러한 과정이 중심 서사를 구성하는 핵전쟁 이후의 세계와는 너무 동떨어진 감각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쓴이는 폴아웃이라는 프랜차이즈와 테마를 빼면 폴아웃 4의 게임 플레이나 시스템이 재밌고, 몇몇 조건 하에서 더 나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도 폴아웃 4의 등장 전후로 베데즈다에서 스타필드라는 코드 네임을 가진 새로운 RPG 프랜차이즈를 만든다는 루머가 돌았을 때(실제 스타필드의 존재는 2018년 E3에 확인되었다), 글쓴이는 폴아웃 4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거쳐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감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스타필드의 루머가 돌던 2015년에서 2016년 경, 스타필드에 멀티플레이가 탑재될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고 실제 이것이 좀 빠르긴 하지만 폴아웃 76에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즉, 내부사정은 알 수 없지만 폴아웃 76은 여전히 베데즈다가 폴아웃 시리즈를 테스트용 2군 프랜차이즈로 보고 써먹는 연장선에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폴아웃 76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최악의 형태로 나왔다. 웃기는 점은 글쓴이는 76의 멀티플레이 아이디어 자체는 이미 폴아웃 4에서 나름 검증되었고, 훗날 4인 정도 규모의 코옵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폴아웃 4기반의 게임이 나온다면 그것 나름대로 훌륭하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실제 등장한 폴아웃 76은 그야말로 수습이 불가능한 형태의 게임이 되었다: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한 세션에 수십명이 들어가는 세미 MMO의 문법을 취했고, MMO 주제에 타인과 상호작용은 거의 무의미해졌으며, 최근 MMO의 성장 곡선 트렌드(재미없는 부분은 빠르게 넘길 수 있게끔, 로스트 아크가 그랬던것처럼)를 무시한 단조롭고 지루한 흐름, 설정 붕괴, 들어갔다 나오면 자동적으로 철거되는 플레이어의 캠프, 쓰레기 같은 UI, 불안정한 서버 환경, 말도 안되는 버그, 실시간으로 옮겨서 재앙이 되어버린 VATS 시스템, 분명 부분 유료화 가챠를 염두에 두고 만든 퍽 시스템 등등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베데즈다가 자사의 엘더 스크롤 온라인을 나름대로 오랫동안 운영한 전력이 있었다는 점, 여타 모딩 커뮤니티에서 멀티플레이 모드나 여타 모드들에 대해서 조사만 했어도 이러한 문제의 80%는 빗겨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폴아웃 76은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심지어 한정판 캔버스 가방을 둘러싸고 플레이어에게 기만적인 행위를 한 점은 게임의 완성도를 넘어서 76을 둘러싸고 베데즈다가 기업으로써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않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러한 폴아웃 76의 엄청난 마감을 설명하는 데는 '외부로는 공개될 수 없지만, 내부적인 문제가 썩어 곪아 터졌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한 것은 폴아웃 4,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베데즈다의 RPG 이상향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기존 RPG 전통인 여정의 서사와 베데즈다가 추구하는 생활로서의 RPG와 이야기 사이를 중재하려는 그 어떤 노력이나 보완없이 스카이림을 넘어서 폴아웃 4, 그리고 76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폴아웃 시리즈를 실험하는 용도로 항상 사용했던 베데즈다의 성향을 비추어보았을 때, 76의 실패는 엘더스크롤 6과 스타필드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 20년 이상 유지되었던 유명 프랜차이즈와 팬덤을 그저 갖다 버리는 패 정도로만 사용하는 회사에게 장기적으로 팬덤과 소비자가 지지를 보낼지는 부정적이다. 








게임 이야기


트리플 A 게임들은 다들 비슷비슷하다:오픈월드, 크래프팅, 레벨업, 스킬 등등. 모든 트리플 A 게임들은 서로 닮아가고, 닮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마치 배트맨 아캄 시리즈가 만화 기반의 게임에 대한 새로운 스탠다드를 만들어내고, 스파이더맨 2018은 아캄 시리즈의 구조에 스파이더맨만의 파쿠르 기믹을 집어넣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스파이더맨 2018은 아캄 시리즈의 몇몇 미션 구조를 대놓고 옮겨버리는 바람에 기시감이 들게끔 만든 것도 사실이다. 아캄 시리즈와 스파이더맨의 관계는 트리플 A 게임들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트리플 A 프랜차이즈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트리플 A 프랜차이즈가 보여주는 오픈월드에 대한 사랑은 과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오픈월드는 방대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정작 그 방대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제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파이더맨 같은 경우, 게임의 재미와 별개로 어째서 이렇게 거대한 세계가 필요로 한지 그 텅빈 공간의 간극을 채워넣지 못하였다. 심지어 레드 데드 리뎀션 2도 이런 부분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플레이어는 사냥을 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채집을 하는 등의 크래프팅을 하기 위한 소소한 행위들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게임 플레이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픈월드 게임 내의 콘텐츠에 대해서 노동이라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는 동시에 현재 트랜드를 대변하는 오픈월드/크래프팅/스킬 등의 게임 트랜드의 근본적인 한계라 할 수 있다. 오픈월드의 핵심은 거대한 규모이다. 거대한 규모의 세계가 될수록, 게임 내의 세계는 밀도를 높일 수 없게 되며, 밀도 높은 기획을 게임 내에 구현할 수 없게 된다. 오픈월드 게임에 대비되는 게임을 찾아보면 좀 더 명확할 것이다: 셀레스테와 인투 더 브리치다:이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법칙들을 던져주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게끔 만들었다. 오픈월드 게임이 게임들은 스테이지 식과 같은 치밀한 게임 구성이 힘든 편이다:플레이어가 어떤 방향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오픈월드의 구성은 게임이 어떤식으로든 진행되게끔 열려있는 상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배끼는 데 트리플 A 게임이 열중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방향성을 따름으로 모험을 통해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고, 플레이어 층에게 보장된 재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레스테와 인투 더 브리치가 거둔 성과는 우리에게 단순하지만 이상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어째서 트리플 A 게임들은 인디 게임들에 비해서 시간과 자본, 인력을 더 많이 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픈월드와 같은 방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고 있는가? 오픈월드 게임이 마케팅 측면에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근래 10년간 게임 산업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그래픽과 규모 측면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게임에서 다룰 수 있는 공간은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거대해졌고, 그 사이를 디테일한 풍광으로 가득채울 수 있게 되었다. 쉔무와 GTA3로 오픈월드 장르 게임이 태동하던 순간부터, 게임업계가 꿈꾸던 것은 '살아있는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도 접근해볼 수 있다:오픈월드 개발 방식은 현대 게임 산업의 고용 구조에 최적화된 게임 장르라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픈월드 장르가 시장에서 득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질적인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다크소울 시리즈가 이러한 케이스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분명, 스테이지 형태로 조밀하게 게임을 구성하고,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서 성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규모가 있는 게임 회사에서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 대기업들이 오픈월드 장르 게임들을 고수하는 것은 개발자들이 프로젝트에 따라서 이합집산하는 현 게임 개발 구조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들이 프로젝트 단위로 들어오고 나가다 보니, 구조적인 측면에서 같은 철학을 형성할만한 시간이 부족하게 되고 '분업화된 공장 라인'처럼 주어진 것들만 해냈을 때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구조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추구하다 보니 오픈월드 식의 게임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오픈월드의 개발 방법은 스테이지와 다를수 밖에 없다:플레이어가 어디로 가서 어떤 행동을 할 지, 그것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다. 물론 개발자들이 어느정도 플레이의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면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동선을 세밀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방법론은 특정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깊이가 얕지만 범용적인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픈월드에서 플레이어가 맞딱뜨리는 것은 정확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플레이어의 기량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 레벨링과 아이템을 통한 수치의 싸움으로 귀결되는 것이 다반사인 것은 놀랍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 방법은 노하우와 핵심적인 개발철학이 없더라도, 대량의 개발 인력과 테스트의 수행만으로 제대로 진행되는지 여부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대자본 게임 개발론에 있어서 유효하다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이러한 흐름에서 빗겨나간 특이한 오픈월드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게임 자체가 레벨링이나 크래프팅 보다는 세계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거대한 퍼즐로 구성되게 만들었다는 점, 지형과 구조물을 거의 제약없이 타고 오르게 했다는 점 등에서 게임은 플레이어의 센스와 기량을 수치보다 우선시하는 게임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레데리 2나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이 빈공간을 반복적인 콘텐츠로 채워넣었다면, 야생의 숨결은 공간을 넘어설때마다 플레이어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것들을 배치하고 퍼즐을 풀게끔 만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사람이 모든 곳을 체크해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디자인'이라 이야기하였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본인은 '젤다의 전설이라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젤다의 전설은 오랫동안 플레이어가 어떤 스테이지를 도구를 이용해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구성할 때도, 기존 오픈월드 게임에 비추어보기 보다는 젤다의 전설이라는 전통에 비추어 보아 게임을 구성한 것이다. 간단한 물리법칙과 이를 통한 퍼즐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야생의 숨결은 공간 상에 퍼즐들(신전이나 코록 같은)이 없더라도 불을 질러서 상승기류를 만들거나 번개가 치는데 금속 무기를 집어던져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등 법칙을 활용해 게임을 풀어나간다는 발상을 게임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닌텐도가 후계자를 양성하는 방법과도 크게 맞물려 있을 것이다:스플레툰이나 암즈 같은 물건을 만들어내면서 닌텐도는 젊은 개발자들에게 닌텐도의 철학을 공유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강조하였다. 스플래툰이 만들어지는 과정(두부가 물총 쏘는 게임에서 오징어가 물총을 쏘는 게임이 되는 과정)처럼, 개발자 개개인 역량의 총합 이상을 닌텐도라는 회사와 문화가 만들어 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작은 스튜디오 몇몇에서는 이러한 경향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이스 시리즈를 만드는 팔콤이나, 플래티넘 게임즈나, 프롬 소프트웨어 같은 제작사들은 산업화된 개발 방법과 다른 방식의 게임 개발을 보여주었다. 인디 게임 개발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셀레스테나 인투 더 브리치 제작자들 같은 경우, 같은 멤버들이 오랫동안 함께 게임을 개발하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모든 게임 개발자들이 서로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고 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전체를 구성하는 철학이 존재하는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게임들이 게임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게임들이 될 것이다.





게임 이야기


모탈컴벳 11이 TGA 쇼에서 최초로 공개되었고, 닌텐도 스위치를 포함한 전 플랫폼이 동시에 발매된다. 공개되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온가족의 닌텐도'로 사람을 찌르고 썰고 박살내는 게임이 나온다는 사실에 당혹했지만, 사실 모탈컴벳 시리즈는 SNES에서부터 닌텐도 64, 게임큐브까지 오랜 기간 동안 닌텐도(를 포함한 콘솔들과)와 함께 해온 프랜차이즈였다. 물론 실질적인 9편인 모탈컴벳과 X는 Wii와 Wii U 닌텐도 라인을 넘기기도 했지만, 이는 닌텐도의 정책과 상충하였기에 발매를 포기하였다기 보다는 성능 이슈가 더욱 컸으리라 판단된다. 애시당초에 게임 큐브로 이터널 다크니스와 바이오하자드 4가 나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닌텐도가 성인 지향 콘텐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탈컴벳 11은 전작들과 동일하게 과격한 폭력과 고어 묘사를 동반한다는 것을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혹스러울 정도의 고어 연출이지만, 이 시리즈를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크게 낮설지 않은 모습이었다:패자를 완전히 박살내서 죽여버린다는 페이탈리티 시스템과 과격한 고어 연출은 지난 20년 넘게 모탈컴벳을 상징하는 요소였고 게임 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덕분에 지난 20년 동안 게임에서 폭력 묘사나 심의/등급과 관련한 논의에서 모탈컴벳 프랜차이즈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한 때는 모탈컴벳의 아성에 도전하겠답시고 수많은 격투 게임들이(주로 서구에서 만들어진) 무의미하게 과격한 폭력 묘사와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모탈 컴벳은 게임에서의 고어 묘사에 있어서 태풍의 핵 같은 위치를 차지했었고,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또는 오명?)을 남겼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모탈컴벳의 폭력 묘사는 아주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다. 물론 전면에 대고 사람의 목을 잘라서 표창으로 구멍을 뚫는 짓거리를 시네마틱 트레일러 전면에 공개하는 게임은 여전히 모탈컴벳이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모탈컴벳의 고어 연출은 8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B급 고어영화의 그것과 동일하다. B급 고어영화는 인간을 피와 고깃덩어리로 나누어 쓰레기 취급하는데서 자극적이고 모욕적인 미학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B급 고어 영화는 신체를 훼손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었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고어영화의 문법을 모든 폭력 영화들이 흡수하기 시작하자 갈곳을 잃어버렸다. 훼손 외에는 미학을 구성할만한 뚜렷한 구심점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영화 장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게임들도 폭력과 고어묘사를 통해서 연출에 '방향성'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헤비레인에서 나오는 손가락 절단 씬이나 다크니스의 그 장면이나 바이오쇼크의 엔드류 라이언을 죽이는 장면 등에서 게임은 고어 효과와 스토리 연출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였고, 단순히 인간을 피와 고깃덩어리로 분해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탈컴벳의 경우, 게임 내 고어 연출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신체를 분해하여 힘을 과시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직관적이고 원초적이며 효과적이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깊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탈컴벳의 고어 연출은 때로는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탈컴벳의 고어 연출은 잔인하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분명 등급상으로 성인 이상만이 즐겨야하겠지만,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다소 불쾌하게 느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모탈컴벳이 여지껏 한국에 수입이 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 할 수 있다:앞서 이야기한 헤비레인이나 다크니스 2나(사람을 찢어서 세로로 반토막을 낸다던가) 갓 오브 워 시리즈 같은 게임들도 한국에 정식으로 심의를 받고 정식으로 수입되었다. 그러나 모탈컴벳의 경우, 9편과 X 모두 심의를 신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등급 판정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심의에 통과한 갓오브워 3 같은 경우에는 맨손으로 사람의 목을 뽑고 눈알을 터뜨리는 연출을 넣었음에도 말이다. 모탈컴벳은 분명 20년 전에는 게임의 고어연출에 있어서 신기원을 열었고, 수많은 카피켓을 만들 정도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모탈컴벳은 그저 수많은 폭력 게임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된 자의 권위'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모탈컴벳은 20년전부터 게임 내의 폭력 논쟁을 이끌어온 기수 같은 존재였고, 20년 동안 프랜차이즈를 이끌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모탈컴벳이라는 이름을 세겨놓았다. 심의 위원들이 모탈컴벳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등급 분류를 거부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리고 심의위원들이 동시에 모탈컴벳이 다른 게임에 영향을 미쳤던 고어 묘사 등의 요소를 간과하는 점도 크게 놀랍지만은 않다:예를 들어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의 경우, 멀티플레이에서 빈사 상태에 놓여있는 상대 플레이어를 과격한 폭력으로 마무리 짓는 처형을 가할 수 있다. 이것이 모탈컴벳의 페이탈리티와 폭력묘사와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심의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모탈컴벳과 기어즈 오브 워를 서로 구분짓는 기준은 그저 모탈컴벳이 이 모든 논쟁과 연출을 만들어낸 기원이라는 점 단 하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탈컴벳은 다소 억울하게도 한국 내에서 심의를 공정하게 받지못하고는 있으며, 11도 비슷하게 심의 거부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물론 이 게임이 폭력과 고어 묘사'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여타 폭력 게임들보다 더 과도하게 십자포화를 받는 경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금번 11의 발매에는 적어도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공정한 심의를 받고 정식으로 국내 출시가 되었으면 한다. 다른 폭력 게임들은 다 들어오는데 모탈컴벳만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다소 모순되기 때문이다.


게임 이야기



※ 멀티플레이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http://leviathan.tistory.com/2377 를 참조해주세요


블랙아웃이란 배틀로얄 모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폭발적이었다. 애시당초에 배틀필드와 같이 거대한 맵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임도 아니었고, 게임은 기본적으로 작은 맵에서 빠르게 치고 받고, 빠르게 죽고 빠르게 되살아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또한 시리즈 특유의 퍽/부착물/킬스트릭 시스템 등의 다양한 요소를 배틀로얄에 접합시킬만한 접점이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싱글 플레이가 빠지는 것도 모자라서, 검증되지 않은 물건을 들고나오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블랙아웃의 실제 플레이 영상 등을 공개하지 않고, 심지어 전통적인 마케팅 창구였던 E3까지 건너뛰면서 팬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하지만 베타 이후, 정식 발매된 콜옵의 배틀로얄 모드는 성공적으로 시리즈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다양한 이슈사항들이 있었지만, 블랙아웃의 게임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잘 작동한다. 단순하게 평가하자면, '배틀로얄 장르의 틀을 쓴 콜 오브 듀티'라 할 수 있다. 게임 페이스는 매우 빠르며, 행동 반경이 줄어들고, 파밍 같은 요소들은 여타 배틀로얄 모드에 비해서 간편한 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콜 오브 듀티스러운 배틀로얄'이란 개념 자체는 매우 이상하다:콜옵은 여지껏 큰 맵에서 싸우는 게임이 아니었다. 고스트나 모던 워페어 2의 그라운드 워페어 같은 경우가 거대한 맵에서 일어나는 원/근거리 교전을 다뤘지만, 이 역시도 시리즈 전체 비춰놓고 보았을 때 실패했었다. 즉, 여지껏 콜옵 제작진들은 거대한 전장과 동선, 교전 환경을 성공적으로 구성한 적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블랙아웃에서 콜옵의 게임 경험이 녹아나오는 것은 제작진에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점이었다. 물론 멀티플레이 전반을 다룬 리뷰에서 이미 블랙옵스 4는 콜옵의 틀과 형식을 넘어서서 새로운 콜옵의 경험을 정의내렸다(여기) 그리고 블랙아웃은 그러한 변화의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받은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수동 체력회복 시스템은 아이템을 소비하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초기 파밍 이후에도 꾸준히 체력과 방어구를 챙겨줘야할 상황을 만든다. 붕대나 구급상자, 트라우마 키트 같은 회복템들을 소비하여 체력을 회복하는 시스템은 전투 중에 잠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하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배그나 여타 배틀로얄 게임들과 다르게 블랙아웃에서의 체력회복 및 아이템 소비 속도는 매우 빠르며, 피해를 입더라도 신속하게 전투로 복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반적으로 블랙아웃은 여타 배틀로얄류 게임들에 비해서 아이템이나 탄환 소비속도가 빠르며 이런 점에서는 기존 콜옵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초반 건물 파밍 이후부터는 킬 파밍이라 불리는 상대를 제압해서 아이템을 뺏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PUBG나 포트나이트와 다르게 강력하게 설정된 투척류 아이템이나 퍽과 소모성 아이템은 킬스트릭이 부재한 자리를 대신 채워주는 강력한 요소라 할 수 있다:예를 들어 집속 수류탄은 블랙옵스 4의 베터리가 던지던 것과 동일하게 폭발 후 여러개의 수류탄으로 나뉘어지면서 건물 내의 적들을 청소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은 접근하는 적들을 막고 높은 방호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농성이나 수비적인 플레이를 할 때 매우 유용하다. 그외에도 블랙아웃에는 여타 배틀로얄 게임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맵 탐지 기능을 가진 추적 다트나 이런 소비 아이템이 즐비하다. 하지만 게임은 여기에 더 나아가서 콜옵 시리즈 전통의 퍽 시스템을 소비용 아이템으로 끌어오면서, 여타 배틀로얄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플레이가 가능해진다:사격을 받으면 상대가 총을 쏜 위치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퍽이나, 설치물/탈 것이 사용된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퍽의 존재는 기존 배틀로얄에 비해서 더 빠른 템포로 적을 인지하고 싸울 수 있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블랙아웃 모드는 출시 전 후의 우려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배틀로얄의 문법을 콜옵의 방식대로 효과적으로 구현한 모드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작진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4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리즈 최초로 배틀로얄 모드를 탑재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리즈 최초로 싱글플레이를 제외했다는 점일 것이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은 영화적 스펙타클이 가득한 싱글플레이 게임의 흥행과 빠른 페이스의 멀티플레이에 기반한 것이었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 이후로 콜옵은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 그리고 월드 앳 워부터 추가된 코옵 콘텐츠인 좀비 모드가 콘텐츠의 삼각편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블랙옵스 4는 최초로 이 콘텐츠 구조를 무시하고 싱글 대신에 배틀로얄 모드를 집어넣은 것이다. 심지어 블옵 4는 콜옵 싱글에서 죽을 때마다 전쟁에 대한 격언을 띄우는 전통을 블랙아웃 사망 화면에 구현함으로써 은연중에 블랙아웃 모드가 싱글플레이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어필한다.


물론, 이들이 전통을 무시한 데는 근거가 있었다. 도전과제나 트로피 달성률에 근거하여보았을 때, 플레이어들이 싱글 캠페인을 끝까지 플레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명 배우와 성우 캐스팅, 별도의 개발 인원과 천문학적 예산, 시나리오 라이터를 들여서 만든 콘텐츠를 끝까지 클리어하는 플레이어 인구가 3~5% 정도 수준이라면 회사 입장에서도 제거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블랙옵스 4의 케이스를 다른 프랜차이즈로 비교하자면, GTA 시리즈에서 멀티플레이를 많이 하니 싱글플레이 컨텐츠를 제외하고 게임을 내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에 블랙옵스 4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의 실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멀티플레이의 패러다임은 점점 콜옵식의 멀티플레이에서 벗어나고 있고, 배틀로얄의 등장은 데스매치 중심의 멀티플레이 환경을 다변화시키고 소비자 층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중이었다. 블랙옵스 4의 존재는 더이상 콜옵 시리즈의 전통을 지켰다간 판매량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블옵 4는 오프라인 판매량은 전작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디지털 판매량은 이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늘어났다. 어쨌든 싱글을 빼고 배틀로얄 모드를 집어넣은 초강수가 먹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4의 변화는 콜옵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이제 기존의 게임 판매 모델과 콘텐츠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간 프랜차이즈 자체가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변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콜옵들은 변화를 하더라도 모던 워페어라는 큰 틀에서 게임의 기조를 지키려하였다. 가장 기괴한 콜옵이었던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랙옵스 3 같은 경우에도 어쨌든 콜옵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블랙옵스 4는 콜옵이라는 게임의 기저를 어느정도 바꿔버리고 말았다. 블옵 4는 싱글플레이를 빼버리고 지금 흥행하고 있는 배틀로얄 모드를 게임에 탑재함으로써 콜옵이라는 게임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결론적으로 블랙옵스 4는 모던 워페어 이후로 가장 변화한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모두 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던워페어가 세워놓은 규칙들을 신경쓰지 않고 무시함으로 더이상 모던 워페어의 그늘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무엇도 아니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블랙옵스 4는 분명 트라이아크가 방향성을 잘 잡았기에 성공한 편이지만, 다시금 새로운 방향성을 찾지 못한다면 콜옵의 몰락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워프레임 스위치 버전이 11월 21일 기준으로 스위치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 패닉버튼이 알려지지 않은 트리플 A 게임을 스위치로 포팅한다고 공개하였을 때(대략 E3가 끝나고 난 7월쯤),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적어도 워프레임은 아니었다. 모탈컴뱃, 폴아웃 뉴베가스 등등 다양한 게임들이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워프레임이 거론되지 않은 것은 스위치 트리플 A 게임에 대한 수요도 있었겠지만, 5년간 수많은 업데이트를 통해서 콘텐츠가 쌓인 온라인 코옵 게임을 스위치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생각해보면 워프레임 자체는 이미 5년전 게임으로 처음 등장할 때의 베이스 게임은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와서 결과론으로 이야기하자면, '불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위치 버전 워프레임의 핵심은 엄청난 업데이트와 분량을 가진 게임도 스위치로 이식될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패닉버튼이 있다. 패닉버튼은 일찍이 둠의 포팅과 로켓리그의 포팅을 담당하였고, 최근에는 울펜슈타인 2를 스위치로 포팅하였다. 분명 이들의 초창기 이식은 '그럭저럭 납득할만하지만 여전히 부족하였던' 이식이었다. 그러나 둠과 로켓리그의 퍼포먼스 개선으로 스위치라는 기기의 한계에 도전하는 회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스위치버전 울펜슈타인 2의 퍼포먼스를 상당수 개선하여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패닉버튼의 포팅들은 절대 스위치에서 불가능한 수준의 그래픽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파운드리에서 분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패닉버튼은 말도 안되는 가변해상도에 갖가지 속임수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디지털 파운드리 분석) 그리고 분명 포팅되기전 엑스박스나 플스에서 돌아가던 수준을 생각한다면 스위치 버전의 울펜슈타인 2나 둠은 열화된 부분이 눈에 띌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패닉버튼의 포팅이 여타 게임들의 포팅과 다르게 놀라운 점은 분명 열화된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게임 플레이 자체는 기존 원본 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둠의 사례를 보면 이는 뚜렷하다:둠 신작은 60프레임 기반으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빠른 폭력, 전투가 난무하는 강렬한 게임이었다.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둠 특유의 강렬한 고어 연출은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위치 버전에서 패닉 버튼은 이를 30프레임으로 반토막 내고, 그래픽을 열화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분명 스위치 버전의 둠은 무언가 빠져있는 결격품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스위치 버전 둠은 이러한 다운그레이드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연출이나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거치적 거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열화되기는 하였지만 스위치 버전 둠은 여전히 둠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다.


패닉버튼이 스위치로 트리플 A 게임들을 이식하면서 우리에게 증명한 것은 게임에서 그래픽의 본질이란 눈속임이라는 점이다. 분명 게임에 있어서 그래픽과 안정된 프레임은 게임 플레이와 경험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최근 트리플 A 게임들은 이러한 눈속임을 더욱 많은 예산과 더욱 많은 기술력을 투입하여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결과 예산은 더 많이 들어가고 작품의 실패 리스크는 점점 더 커지는 양태로 바뀌었다. 패닉버튼의 포팅은 오히려 다양한 눈속임을 통해서 디테일을 죽이고, 게임 플레이에 중요한 안정적인 프레임과 애니메이션을 사양에 맞게 잘라내면서 기존 트리플 A 게임들이 나가던 방향성과 정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패닉버튼은 포팅을 통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패닉버튼의 성공적인 포팅은 워프레임에서도 이어졌다:이 게임은 이미 놀라운 최적화로도 유명했고, 5년전에 나올 당시 플포와 엑스박스 원의 초창기 부분유료화 게임이었다. 하지만 패닉버튼은 휴대모드에서도 안정적인 30프레임과 그래픽 디테일을 보여주면서 마치 처음부터 워프레임이 스위치로 나온 게임인것 같이 게임을 구성하였다. 또한 상당수의 디테일을 처냈지만(뭉게지는 텍스처라던가)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는 큰 차이를 못느끼게끔 그래픽 수준을 조정한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물론 워프레임이 실제 스위치로 나왔을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꾸준히 유지가 될지는 미지수인 부분들이 있지만, 워프레임의 존재와 패닉버튼의 포팅은 스위치라는 게임기의 저변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그래픽이라는 눈속임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던져준다.



게임 이야기


*대악마판 - 영혼을 거두는자 리뷰 : http://leviathan.tistory.com/1916 , 디아블로 3 원본 리뷰 - http://leviathan.tistory.com/1587


디아블로 이모탈의 공개 이후, 디아블로 프랜차이즈는 나락으로 추락하였다. 물론 현재 시장 트렌드에서는 중국과 모바일 시장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러할지라도 프랜차이즈에 오랫동안 충성하였던 팬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관람하던 현장에서 기대감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프랜차이즈를 이용해서 카피게임을 만들고, 소비자들을 우롱한 회사와 협업한 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망발이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이모탈의 선택은 프랜차이즈의 연명을 위한 단기 수혈로서는 적절하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프랜차이즈를 망가뜨리는 일이었다:이미 중국권에서는 디아블로나 MMO의 문법을 복제하고 그 위에 나름대로의 연출과 시스템적 개선사항을 덧입히고 있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PC를 통해서 전통을 쌓아올린 디아블로는 이모탈을 통해 자신의 어드벤티지를 버리고 자신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발전한 카피겜들과 싸워야 하는 멍청한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디아블로 3는 처음 나올때부터 삐걱거리는 게임이었다:현금 경매장을 기억하는가? 디아 2 시절부터 조던링을 이용한 물물 교환이나, 현금을 이용해서 게임 아이템을 사고 파는 거래는 흔한 개념이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덜해졌지만, 게임 내 화폐를 구매해서 파밍 단계를 넘어서는 것은 당시 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디아블로 3는 이러한 현금 거래를 게임의 일부로 통합하고자 하였다:여기에는 분명 다양한 법적 이슈가 있었겠지만, 현금 경매장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디아블로 3가 구작에 비해서도 아이템 비중이 더 올라간 게임이었다는 점이었다. 스킬 세팅과 스텟 세팅으로부터 게임이 자유로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아이템의 중요성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는데, 아이템 나올 확률은 극악하고 난이도도 극악하며 게임 구조는 반복적이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지칠 수 밖에 없었다. 스킬 셋 구성과 스텟 구성을 제거하여 플레이어가 케릭터 육성에 들일 시간을 최소화시킨 것도 좋았고, 처음 클리어까지는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거기까지만' 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게임을 되살린 것은 파밍의 속도를 올리고 로그라이크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게임을 반복 플레이할 수 있게끔 만든 대균열과 모험모드가 추가된 영혼을 거두는 자는 디아블로 3라는 게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시즌제의 도입과 정벌 등의 요소는 주기적으로 새 케릭터를 키우고 도전하는 재미를 주는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거두는 자는 디아블로 3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게임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투명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디아블로 3는 전작들과 다르게 스텟치의 분배와 스킬 포인트의 분배로 케릭터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이 아닌, 6가지 스킬의 선택과 룬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아이템으로 구성하여 케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스킬셋 자체는 그 누구라도 쉽게 구성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었고, 아이템 역시도 착용하는데 제한이 없었다. 그렇기에 케릭터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정체성은 스킬셋의 구성이나 육성이 아닌 '그 케릭터가 어떤 장비를 입고있느냐'라는 장비 파밍의 개념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게임은 기존 패시브 스킬이 갖고 있었던 스킬 증폭이나 보조 효과를 유니크 아이템에 붙어있는 옵션의 형태로 옮겼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스킬셋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뺑뺑이를 게임이 된 것이다.


특히 이는 세트 아이템 파밍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세트 아이템은 유니크 아이템을 넘어서 각 케릭터마다 특정 스킬들의 성능을 엄청나게 강화시키기 때문에 엔드 콘텐츠에 들어서는 세팅 자체를 고정시킨다는 문제를 만들었다. 특히 엔드 콘텐츠인 대균열이 정해진 시간에 빠르게 클리어를 해야하는 콘텐츠이다보니 극한의 효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구조고, 이로 인해서 세트 아이템에 유니크 몇개를 섞고 스킬 셋도 거기 맞춘 고정된 형태의 세팅이 지배하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스텟 배분과 스킬 포인트 배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더니 게임이 아이템에 종속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게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파밍 속도를 올리고 수단을 다양하게 만드는 등 보험 장치를 마련하였지만, 그것이 고착화된 세팅을 무너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그림 던 같은 작품은 디아블로 3가 갖고 있는 딜레마(고정된 세팅)를 벗어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림 던의 사례를 보자:그림 던은 기본적인 엑티브-패시브 스킬 구조를 넘어서 별자리 시스템을 통해 엑티브 스킬 효과에 또다른 효과를 부여하거나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패시브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타이탄 퀘스트 때부터 나왔던 두개의 직업 스킬트리를 조합해서 자신만의 직업 조합을 만들 수 있는 구조도 많은 각광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크루시블 모드나 육성에 편리한 세팅과 스킬트리가 있긴 있지만, 여전히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스킬트리와 육성 방법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만큼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림 던은 디아블로 3보다 더 뛰어난 게임일까? 물론 그림 던은 정말로 훌륭한 게임이긴 하다. 오래 즐길만하고,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며, 클리어 이후에도 꾸준히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림 던은 기본적으로 디아블로 2의 변종이며 동시에 불친절하고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어떤 아이템을 입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스텟 포인트를 소비해야하는지, 별자리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서 재단을 뚫어야 하고, 스킬을 마스터하기 보다는 시너지를 주는 스킬을 딱 필요한 만큼만 배분해야 하는 등 육성에 있어서 상당히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게임이다. 이런 섬세한 덕분에 게임은 선택지가 많지만, 플레이어에게 독자적인 연구를 사실상 반강제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게임에 들이는 시간이 많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좋은 게임이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게는 어필하기 힘든 게임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3의 성공과 실패, 복고적인 그림 던이 보여준 성취와 한계는 그라인딩(반복적인 게임 플레이가 핵심인 게임) 게임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육성의 폭을 줄이는 대신 아이템을 통해 케릭터의 개성과 정체성을 결정 지으면 아이템 중심의 게임이 되다 보니 육성이 정형화된다는 문제가 있고, 모든 요소들을 세부적으로 조정하게 하면 플레이어가 쉽게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디아블로 3와 '같은 장르'로 게임이 나오는 것이 대신에 '디아블로 3의 문법'을 차용한 게임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즉, 게임 플레이 시간을 늘리면서 게임 인구를 유지해야하는 MMO 형태의 게임에서 이러한 장르 문법을 차용하는 것이 두드러진 것이다. 보더랜드 시리즈와 같은 실험작의 성공 이후, 데스티니 시리즈나 디비전 같은 게임들이 플레이타임을 늘리고 플레이어의 개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파밍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와 다르게 이들 게임은 좀더 다양한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디비전은 엄폐 슈팅을, 데스티니는 트리플 A FPS의 문법을 도입함으로써 디아블로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디아블로가 쿼터뷰 RPG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을 때, 디아블로의 문법을 따르는 경쟁자들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장점을 취합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공고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디아블로 형태의 쿼터뷰 액션 RPG는 자신이 갖고 있는 미덕들을 여타 장르에 이양함으로써 조용히 쇠퇴하고 있는 중이다. 디아 3는 그저 그 역사의 끄트머리에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디아블로 이모탈의 존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다만 그것이 오랫동안 장르를 이끌어온 프랜차이즈의 추한 종말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게임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편 리뷰는 다음(http://leviathan.tistory.com/1713)을 참고해주세요.


상당수 트리플 A 게임 프랜차이즈는 핵심이 되는 콘셉으로부터 출발하며, 시퀼들은 이 콘셉을 구축한 게임들로부터 장점은 복제하고 추가할 부분은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복제와 확장은 프랜차이즈 게임에서 기본이다. 그러나 몇몇 작품들은 추가되는 내용 없이 전작의 안일한 복제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기존 리부트 작품에 대한 소소한 변주로써, 게임의 큰 구성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테마가 이전작과 많은 부분 비슷한 게임이었다. 탐색이나 퀘스트 등의 부분은 분명 전작에 비교하여 개선되었긴 하지만, 게임의 근본적인 플레이(전투, 파쿠르, 퍼즐 같은)를 바꿀 정도로 인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잘 작동한 게임이었다. 이야기에 있어서 꼭 매듭지어야 하는 필수적인 부분을 매듭지었고, 전작보다 더 뛰어난 그래픽으로 눈호강을 시켜주었다. 적어도 구매한 돈값 정도는 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글로 써서 남길 가치는 없는 게임이었다.


그렇다면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어떠한가?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툼레이더 리부트 시리즈의 완결작이며,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와 달리 무언가 생각하고 기록해서 남길만한 거리를 제공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좋은 의미가 아니다: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트리플 A급 재앙을 의미한다. 이는 언차티드 4나 폴아웃 4가 경험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때 발생한 문제들'과 다르다.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 게임이 어떻게 초라하게 끝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트리플 A 게임 답게 어느정도의 품질을 보장해주고 있지만,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게임이다.


시리즈를 마무리 짓는 게임들은 항상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갖고 있었다. 이는 프랜차이즈를 종료시키면서, 동시에 프랜차이즈를 이어나가야하는 모순된 상황에 봉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이다. 매스 이펙트 3와 그 전후에 발매된 게임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강하게 겪었었고, 이런 문제점에 대응해 게임 업계는 주기적인 리부트와 프리퀼 등의 확장을 통해서 프랜차이즈를 관리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어세신 크리드 시리즈의 사례를 보자:어크 1편에서 신디케이트까지, 프랜차이즈는 끊임없이 시스템을 확장하고 다듬었지만 결국 1편이 갖고 있었던 내재적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UBI 소프트가 선택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프리퀼에 RPG의 문법을 적용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리진과 오딧세이이며, 이 둘은 여전히 어크 프랜차이즈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어크 시리즈나 여타 프랜차이즈들의 관리법을 보았을 때, 이들의 방법론은 일종의 보수적인 변증법에 가깝다:기존의 프랜차이즈가 있고, 여기에 검증된 요소들(어크 오리진과 오딧세이의 경우에는 RPG의 문법이)을 섞어서 프랜차이즈에 '색다르지 않은 변화'를 주는 것이 이 보수적인 변증법의 주요 골자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덜어내고 다듬는 변화'(배틀필드 1이나 콜옵 WW2 같은) 방법론도 등장하였지만, 이들의 수는 상당히 적은 편이다. 이와 같이 보수적인 변증법의 방법론은 새롭지 않고 때로는 지겹긴 하지만, 대부분 실패하지 않고 잘 작동하는 편이다.


툼레이더 시리즈는 게임 프랜차이즈에 있어서 대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였다:트리플 A 게임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이미 툼레이더는 판매량과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게임 및 문화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3차원 액션 어드벤처 게임 장르와 파쿠르를 이용한 플랫포밍 등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언차티드라는 프랜차이즈가 인디아나 존스의 연출 등을 이어받으며 영화적 게임의 정통 후계자를 자처하지만, 언차티드가 존재하기도 전에 툼레이더는 이미 인디아나 존스의 경험을 게임에 옮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PS1 시절을 풍미하였던 프랜차이즈인 툼레이더 시리즈는 PS2 시절 엔젤 오브 다크니스로 인해 프랜차이즈 전체가 망할뻔한 위기를 겪었다. 물론 크리스탈 다이나믹스가 레전드와 언더월드로 프랜차이즈 자체를 수렁의 구렁텅이에서 꺼냈지만, 기존 프랜차이즈의 시스템을 유지보수 하는 것만으로는 시대를 따라가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 이미 레전드와 언더월드가 나올 당시, 언차티드 2와 같은 영화적 연출과 손쉬운 파쿠르를 섞은 게임들이 득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툼레이더 프랜차이즈를 이어받은 크리스탈 다이내믹스는 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었다:이미 언더월드와 같은 기존 프랜차이즈의 유지 보수만으로는 툼레이더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게다가 툼레이더에게는 분위기가 겹치는 언차티드와 같은 쟁쟁한 후속작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크리스탈 다이내믹스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프랜차이즈를 리부트 시켰다. 툼레이더 리부트는 기존 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색다른 테마에 초점을 맞추었다:툼레이더 리부트는 문명에서 벗어난 야만과 호전적 환경,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벗겨내고 살아남는 생존자라는 콘셉트를 부각한다. 이는 비일상과 과거의 유적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기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계승하며, 언차티드와 같은 경쟁자들과도 차별화된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툼레이더 리부트 성공의 핵심은 콘셉트의 승리에 기반하고 있었다:게임은 언차티드식의 전투와 파쿠르,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의 스테이지 구성(일자형 진행, 백트래킹이 가능한 스테이지, 스테이지에 숨겨진 요소 등등)을 적절하게 섞은 혼종이었으며, 동시에 트리플 A 게임 특유의 안전함으로 가득찬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게임 시스템 요소들은 하나 하나 잘 작동하였지만, 동시에 대단히 얕고 단순하였다. 이 단순함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게임의 야만과 생존이라는 콘셉트였다:플레이어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원을 모으고 장비를 임시방편으로 수선하고, 네 발로 기어다니면서 암벽등반용 도끼로 적에게 대항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리부트는 혁신을 꾀한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안전한 작품이었다. 게임 시스템의 많은 요소들은 이미 검증된 게임으로부터 따오고 있었고, 가장 신선해보이는 게임 테마 역시도 기존 툼레이더 프랜차이즈의 재발굴이었다. 또한 이전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연출 부분에서의 과격함은 이미 아포칼립토나 최근 호러영화 특유의 고어 연출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검증된 요소들의 조합이었더라도, 툼레이더 리부트는 콘셉트 측면에서 플레이어에게 변화된 매력을 어필하고 납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숨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툼레이더 리부트는 툼레이더 프랜차이즈의 시작으로서는 좋은 게임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시작으로써만 뛰어났다는 점이다. 게임은 테마와 배경을 분명하게 제시하였지만, 이 테마와 배경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는 미완성이었다. 혹자는 이를 '되다만 코스믹 호러'라고 표현하였다:라라가 생존자라면, 그녀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았단 말인가? 게임은 이를 위해서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미지의 존재(히미코 여왕과 스톰가드 같은)와 야만의 존재를 설정한다. 


하지만 툼레이더 리부트는 게임의 끝까지 이것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않는다. 사실, 코스믹 호러 장르의 전통에서 본다면 공포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장르 특유의 공포와 절망을 반감시킬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이 '어찌할 수 없는 우주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툼레이더 리부트에서도 이러한 어찌할 수 없는 공포로서의 초자연적 존재와 야만을 설정하고, 플레이 타임 내내 플레이어가 이것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하는 것을 다루었다. 하지만 라라는 초자연적인 재앙의 근원과 대면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근원의 면상을 쌍권총으로 박살내면서 재앙과 게임을 다 함께 끝내버린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꺠어난 포스에서 레이에게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광선검을 주고는 마지막 제다이에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30초만에 그 광선검을 집어던지면서 '이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외치며 기원을 무시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마지막 제다이가 전통의 파괴와 콘셉트의 변환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중요한 복선들을 맥거핀으로 만들었다면, 툼레이더 리부트 시리즈의 문제는 그 맥거핀이 맥거핀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설명을 뒤로 미루고 감추려 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역시도 결국 테마와 게임 플레이의 재탕이자 반복이었다. 분명 라라는 파묻힌 고대 도시 키테즈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찾으러 러시아의 설원으로 모험을 떠난다. 하지만 라라가 밝혀낸 것은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 그리고 트리니티라는 존재뿐이었다. 라라는 전편과 같이 또다시 모든 문제의 근원을 바닥에 내팽겨쳐버리면서 이야기를 허무하게 끝내버린다.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리부트의 구조와 테마를 재탕함으로(물론 게임 자체는 어느정도 보완되었지만) 이 테마와 콘셉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라라 크로프트라는 개인의 생존과 드라마지 세계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납득할만한 게임이었다:시리즈는 언젠가 아버지의 죽음을 다뤄내고 그것을 극복하는 라라의 이야기를 다뤄낼 필요가 있었고,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그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결말(아버지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포기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라라)을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테마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라라 크로프트의 개인적인 드라마,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고대의 존재들)를 후속작으로 보내버린 채, 시리즈는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폭탄 돌리기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폭탄 돌리기가 실패로 끝난 결과물이 바로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다. 이미 툼레이더 리부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 알려진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이하 쉐오툼)는 리부트와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가 이뤄낸 것을 끝내려하였다. 게임은 야만스러운 정글을 배경으로 라라가 갖고 있는 어두운 면모를 다루면서 시리즈가 다뤄내지 못했던 가장 깊숙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다:초반 시퀸스처럼 라라가 단검을 들어 세상의 종말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쉐오툼의 문제는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었던 여러가지 테마를 뒤섞어서 테마를 구성하던 중, 앞서 언급하였던 리부트 시리즈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노출시켜버렸다.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말그래도 툼레이더의 그림자, 즉 라라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는 게임이다. 라라의 어두운 면모(거침 없이 살인을 한다던가, 목표를 향해 앞뒤 안가리고 돌진한다던가 등)는 리부트에서 뿐만 아니라 기존 프랜차이즈에서도 갖고 있었던 부분이며,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번 회자된 유명한 소재였다. 물론 라라 크로프트가 시리즈 내내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는 묘사를 통해 보았을 때, 살인광이니 사이코패스니 하는 논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언차티드 시리즈의 네이트 같은 쾌활한 광대 사이코패스와 다르게, 라라가 살인을 즐긴다는 것은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 오히려 자신이 목표하는 바로 나아갈 때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불도저 같은 케릭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이러한 라라의 불도저 같은 성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서부터 테마를 구성한다:첫 단검을 뽑는 시퀸스처럼 세상이 종말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탐구심과 트리니티를 향한 증오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라라 크로프트라는 것이다. 게임은 이외에도 이러한 라라의 불도저 같은 성격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시퀸스를 여럿 넣어서 '실제 라라 크로프트라는 인물은 선한 인물이 아닌 위험한 인물이 아닌가?'라는 위태로운 상황을 여럿 만들어낸다.


이렇게 원래 존재하던 소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쉐오툼의 문제는 그 테마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설득력 있는 구성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있다. 이는 게임이 여지껏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전 리부트 시리즈의 연출과 방향성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었다. 시리즈가 갖고 있는 어두운 소재를 다루면서, 정작 이전작에서나 쓰일법한 동일한 전략과 연출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쉐오툼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다시 첫번째 시퀸스로 돌아와보자:라라가 단검을 뽑는 것으로 세상의 종말이 시작된다. 즉, 라라가 세상의 종말의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돌아가게끔 서사를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라라가 단검을 뽑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하게도 곧바로 따라오고 있던 도밍게스 박사가 단검을 뽑고 다시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게 된다. 즉, 라라가 단검을 뽑던 뽑지않던 세상의 종말은 시작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이다. 물론, 결과 여부와 관계없이 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로 도덕적인 책임은 갈려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라라가 단검을 뽑은 것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비난을 하는 사람이 바로 '곧 단검을 뽑을 사람인' 도밍게스 박사였다는 점에서 게임의 작위적인 구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원래부터 툼레이더 시리즈는 악역이 라라가 겪는 고난과 드라마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쉐오툼은 도밍게스 박사라는 악역에게 라라의 도덕적 결함을 고발하는 역할을 맡겼다. 하지만 앞서 서술하였듯이, 게임은 그의 고발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작위적인 상황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방향으로 케릭터를 구성하고 말았다. 도밍게스 박사라는 인물을 살펴보면, 사실 그가 라라의 그림자shadow와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그는 문명과 야만의 숨겨진 중재자이며, 이전의 목소리만 내리깔고 협박만 하던 악역들과 다르게 신념을 갖고 세상이 멸망할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신의 힘을 이용하려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 그림자가 라라를 고발하는 것은 라라 크로프트라는 케릭터의 어둠을 드러내고자하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쉐오툼은 큰 그림만 좋게 잡아두고, 이전작들의 연출을 그대로 인용하는 나태한 모습을 보이며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그 결과,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납득이 될만한 동인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라라 크로프트가 다 잘못했다'라는 작위적인 연출과 전개로 게임을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그 작위적 연출을 전작으로부터 인용함으로써 게임은 더더욱 엉망진창이 된다. 


이런 문제들이 대표적으로 발현되는 시퀸스가 바로 조나가 죽은 줄 알고 폭주하는 라라가 정유소와 헬기를 격추시키는 시퀸스일 것이다. 이미 리부트에서 솔라리에게 당할대로 당하다가 결국 훼까닥 하고 유탄발사기로 솔라리를 작살내놓던 장면을 재탕한 이 시퀸스는 시종일관 무전기로 연락을 하던 라라의 잘못이라 이죽거리고 비난하는 루크를 삽입하면서 '이 모든 것이 라라(=플레이어)의 잘못이다'라는 논조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그 논조를 만들기 위해서 쉐오툼은 라라가 겪는 좌절이나 상실, 혹은 죄책감의 내면의 드라마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리부트의 통쾌한 복수를 찝찝한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심지어 정유소와 헬기를 박살낸 뒤 뻘줌하게 조나를 등장시키면서 게임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는 어두운 부분을 끝까지 밀어붙이지도 못하는 어정쩡함까지 보여준다. 


어째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였을까. 물론 크리스탈 다이내믹스가 현재 알려지지 않은 어벤저스 게임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제작자들이 해매는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이것은 트리플 A 특유의 보수적인 게임 개발론과 안일함이 불러온 재앙이다:게임 프랜차이즈는 크게 변할 수 없고,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불확실한 가능성에 걸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작의 성공만을 바라본 채, 자신들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르는 채로 서로 섞일 수 없는 것들을 뒤섞어버렸다. 


결국 쉐오툼은 라라의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면서, 그에 걸맞는 악역이나 사건을 제시하지 못했다. 도밍게스 박사와 루크의 설정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납득시키려 했다면, 게임은 여기에 충분히 많은 시간을 들였어야 했다. 그 대신 게임은 전작에 있었던 시퀸스들과 장면들을 죄다 한번씩 재탕하고(조난당하는 장면이나 초반에 살아남기 위해서 물자를 모으는 장면이나 좁은 틈에 끼어서 고통받는 장면이나) 플레이어가 고통받고 남는 시간에 플레이어가 잘못했다고 고발하고 앉은 것이다. 파크라이 5가 그러했었던 것처럼,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것과 서사가 이야기하는 것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괴리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머릿속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닐 생각을 하면서 정작 뛸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안일한 결과물이 바로 쉐오툼이다.





쉐오툼은 여기에 한술 더뜬다:테마와 방향성이 일치하지 않으니, 게임 내의 씬과 시퀸스들은 목적성을 잃고 어지러이 흩어진다. 은상자를 빼앗기는 시퀸스를 예로 들어보자:은상자의 발견과 함께 산사태와 화산이 폭발하고, 라라는 은상자를 되찾기 위해서 도밍게스의 헬기를 추격한다. 마을은 산사태로 무너지고, 플레이어는 무너지는 마을을 발판삼아서 헬기를 뒤쫒아야 한다. 하지만 이 산만한 추격씬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애시당초에 이 시퀸스 자체를 통채로 덜어내고 곧바로 파이티티로 돌아가서 게임을 진행하는 전개로 갔어도, 사실 별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클라이맥스 시퀸스를 예로 들어보자:시리즈 내내 크로프트 일가를 괴롭히고 세계를 해집어놓았던 트리니티 교단 수뇌부는 무전으로 도착했다라는 이야기를 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군이 된 식인종 야만인들 무리에 전멸당한다. 라오툼 이후 크로프트 일가를 수십년동안 괴롭혀온 악역 집단의 수괴들이 등장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야만인 무리에 갈가리 찢겨진 것이다. 이와 같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너무나 쉽게 의미가 없어지고 엉망진창이 된다. 마치 이들의 존재는 스펙타클을 위한 땔감 정도 수준에 불과하였듯이 말이다.


리부트에서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로 이어지는 잔혹한 고어 연출의 전통은 여전히 쉐오툼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작들에 비교해서 본다면 매너리즘의 그 자체다. 리부트부터 전매특허였던 좁은 곳에 시체와 바위를 끼워놓고 폐소 공포증을 유발하는 연출은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가끔씩은 대체 왜 저기에 저렇게 많은 시체들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전작들은 다양한 시대들이 엇갈리고 수많은 시체가 나오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를 제공하기도 하였다:리부트는 야마타이 시대부터 2차세계대전, 현대까지 끊임없이 배가 좌초하는 마의 구역이라는 설정을 넣었고, 라오툼은 키테즈의 설립과 몽골의 침략,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계보를 가지고 있었다. 리부트 시르즈의 고어 연출에는 나름의 설정과 설명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쉐오툼은 대체 이렇게 많은 시체들이 라라와 같이 처박히게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분리수거날 아파트 쓰레기장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 폐지 덩어리들 같이, 의미없고 지저분하며 그냥 의무적으로 거기에 놓여있을 뿐이다. 가장 심각한 케이스는 지하 비밀 성당 시퀸스일 것이다. 폐허가 된 평온한 수도원 밑에 시체로 성당 전체를 리모델링과 데코레이션을 해놓은 이 스테이지는 정리 안된 지저분함과 엉망진창인 미적 조감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대체 어떻게 이 좁은 공간에 뉴욕 브로드웨이 길거리를 뺨치는 시체 인구 밀도를 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압도적인 의구심이 들 뿐이다.


그리고 리부트 시리즈의 끝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는 여전히 맥거핀에 불과하다. 하지만 쉐오툼의 경우, 라라로 인해서 세상이 멸망하고 모든 일이 꼬인다는 연출 등으로 인해서 이 맥거핀이 더 이상하고 낯설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단검을 뽑아서 대체 무슨일이 발생하는건가. 해일과 지진과 화산 폭발과 태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실제로 이게 전세계가 멸망하는건지 아니면 남아메리카 주변만 대충 망하는건지 알수 없다. 그리고 쿠쿨칸은 대체 뭐였고 은상자와 단검은 뭐하는 용도의 물건이었을까. 게임은 그저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라고만 이야기할 뿐,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내적 논리조차 설명하지 않는다. 전작들이 최소한의 인과관계(대체 어째서 이런일이 초자연적 존재와 법칙과 맞물려서 벌어지게 되었는가, 예를 들어 태풍과 히미코의 관계 같은 리부트의 내적 논리라던가)를 설명했던것을 생각한다면 매우 작위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형태이다.


게임플레이는 전작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스테이지 구조가 일직선으로 바뀌어 백트레킹이 아닌 다회차 요소로 바뀐 점은 눈여겨 볼만하지만, 탐색의 재미가 줄어들고 가뜩이나 심란한 스토리를 여러번 보게끔 한다는 점에서는 감점 요인이 되었다. 전투 부분은 언차티드 4와 같이 잠입과 전투를 어떻게든 한데 엮으려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투 자체가 전작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도 없고 스테이지 수도 줄어들고 규모도 작아졌으며, 이전과 같이 인상적인 부분은 거의 없어졌다. 몇몇 추가요소들(진흙변장의 추가라던가)이 있지만, 보통 난이도에서는 실제 어떤 효과를 갖고 있는지 체감되는 부분이 적다.


결론적으로 쉐도우 오브 툼레이더는 툼레이더 리부트 프랜차이즈가 갖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순식간에 터져나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품질검수 조차 되지 않아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엉망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 가능하며, 게임 플레이 개별은 나름 재밌는 편이기도 하다. 어쨌든 리부트가 설정해놓은 게임 시스템은 그럭저럭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쉐오툼은 추구하는 포인트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그저 기계적으로 몰아붙이고, 전작들의 연출들을 덕지덕지 발랐을 분이다. 다행인 점은 이게 엔젤 오브 다크니스와 같은 게임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프랜차이즈 자체를 끝낼 정도의 치명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쉐오툼을 해보고 나서 툼레이더 프랜차이즈를 다시 하고 싶다라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지만 말이다.



게임 이야기


* 관련된 내용은 이 글(http://leviathan.tistory.com/2375)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 스위치 버전을 토대로 쓰여졌습니다.


스타링크:아틀라스를 위한 전투는 스마트 토이를 사용하는 게임이다. NFC 태그를 이용하는 스마트 토이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아미보와 스카이랜더스, 디즈니 인피니티, 레고 디멘션 등의 다양한 작품들과 라인업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스타링크가 지금 이 시점에 스마트 토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무모해보인다:왜냐면 이제 과거 몇년 전과 다르게 스마트 토이라는 게임 시장이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5000만개 이상을 판매한 아미보를 제외하면, 스마트 토이 라인업은 모두 절멸하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디즈니 인피니티 라인업 개발과 지원의 중단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레고 디멘션 라인업의 종료, 스카이랜더스 프랜차이즈의 침묵 등은 한 때 스마트 토이라는 새로운 상품에 대한 열기를 한순간에 죽이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일견 이는 예견된 실패이기도 하였다:성향이 매니악하냐 대중적이냐 여부를 떠나서 스마트 토이 게임들은 대부분 피규어라는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서 게임이 개발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디즈니 인피니티는 게임 자체로는 상당히 단순하고 반복적이었으며, 게임 내의 콘텐츠를 해금하기 위해서 실물 피규어를 구매해야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디즈니 인피니티를 넘어서 다양한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문제였다. 즉, 스마트 토이 라인업 게임들은 일반적인 게임보다 비용은 배로 들면서, 콘텐츠 자체는 반복적이고, 피규어의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게임으로서 많이 부족하였다. 그리고 아미보는 이러한 문제를 닌텐도의 모든 게임에 적용되는 유료 DLC 개념으로 시장에 정착함으로써 스마트 토이 게임들의 문제들을 빗겨나가고, 피규어로써의 가치를 더 강조함으로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아미보의 성공과 여타 스마트 토이 라인업의 실패는 스마트 토이 게임이 살아남기 위한 명제를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게임으로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피규어 구매 동기를 부여하는 것. 이 두가지 동기를 한꺼번에 사로잡아야지만 스마트 토이 게임은 일반적인 게임들과 경쟁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스타링크는 이런 점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우선 스마트 토이 게임이 아닌 일반적인 게임으로써 스타링크를 본다면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에 노 맨즈 스카이의 특징을 섞었다. 플레이어는 아틀라스 항성계 내에서 행성과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대기권으로 들어가서 행성 내에서 적들과 싸우거나 우주로 나가서 적들의 모함과 싸우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눈여겨 봐야할 점은 스타링크의 맵 전환은 매우 부드럽다는 것이다:행성과 우주 맵을 전환할 때 그 어떤 로딩도 존재하지 않으며, 행성과 우주 맵을 오가는 진입 루트도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행성의 경우, 작지만 완벽하게 구형의 오픈월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독특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행성과 행성 사이, 혹은 우주에 존재하는 적의 모함으로 이동할 때 별도의 로딩없이 고속이동만으로 부드럽게 모든 것을 로딩하여 구현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현세대 기종인 PS4나 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0.5세대 ~ 1세대 뒤쳐진 '스위치' 버전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빠른 이동을 할 때 생기는 로딩도 매우 짧다는 점은 스위치의 성능에 비교하여 볼 때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이다. 게임 내에서도 다수의 적들과 전투하거나 화면 가득 공격과 이펙트가 가득차더라도 프레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마지막 보스전이나 프라임과의 전투중 공중전 페이즈 같이 프레임이 떨어지더라도 게임이 가능할 정도로 프레임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타링크에서 높게 평가할만한 부분은 콘텐츠가 쌓여나가는 구조가 상당히 잘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각 행성을 탐험하면서 전초기지들을 스타링크의 깃발 아래 끌어모아야하며, 각 전초기지들이 주는 퀘스트들을 클리어하거나 부품과 돈을 들여 업그레이드해서 행성에서의 지배력을 확보하여야 한다. 하지만 각 행성에는 프라임이라 불리는 중간 보스가 있고, 이 보스들이 플레이어가 행성의 지배력을 올리지 못하게끔 제동을 건다. 플레이어는 행성에 꽂혀 있는 리전의 추출기나 임프 소굴 등을 제거하면서 야금야금 지배력을 넓혀나가고, 마지막에는 프라임을 잡음으로써 행성을 리전의 손아귀로부터 탈환할 수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프라임을 행성에 투입하는 드레드노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행성을 완벽하게 탈환하기 위해서는 그 권역의 보스인 드레드노트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역으로 드레드노트들은 프라임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강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그 권역 내에 있는 행성의 프라임을 모두 제거하거나 프라임의 강화를 받은 드레드노트와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스타링크의 모든 콘텐츠들은 유기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전초기지 - 프라임 - 드레드노트), 플레이어애개 게임 내의 다양한 요소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런 점에서 스타링크는 여지껏 나왔던 스마트 토이 게임들과 비교하였을 때, 그나마 주류 트리플 A 게임 플레이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은 분명 스타링크라는 게임이 지향하는 바, '단순한 게임에 피규어를 팔겠다'라는 기존 스마트 토이 게임 공식을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스타링크의 미덕은 여기까지다. 분명 스마트 토이를 다루는 게임 치고는 가장 '게임다운 게임' 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지만, 실제 트리플 A 게임이나 여타 게임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쉬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콘텐츠의 다양성 문제다:분명 스타링크의 모든 콘텐츠들은 유기적으로 잘 설계되었다. 그러나 모든 콘텐츠들은 심각하게 반복적이다. 프라임과 드레드노트 보스전은 완벽하게 재탕에 재탕이며, 전초기지를 해금하는 것이나 전초기지에서 주는 퀘스트나 각 행성에서 일어나는 이벤트 등은 모두 반복적이다. 


전투 시스템은 부드럽게 작동하지만 깊이가 얕다. 전투는 크게 공중전과 지상전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상전의 경우, 지상에서 호버링하는 상태로 상하좌우를 움직이며 적과 싸우는 형태고, 공중전의 경우 일반적인 플라이트 슈팅 게임에서 속도를 줄여놓은 형태다. 하지만 지상전이든 공중전이든 전투 시에 플레이어가 고려해야하는 것은 적의 약점 속성 뿐이다. 단지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총알을 피해주는 것만으로 왠만한 전투는 클리어 가능하며, 난이도를 대폭 올렸을 경우에도 강해지는 것은 입는 데미지 정도만 신경쓰일 뿐이지 변화하는 점은 거의 없다(매우 높은 난이도 기준 클리어) 물론, 나름 파고들기 요소로 기체의 모드를 파밍할 수 있는 요소를 게임에 도입하였다. 예를 들어, 코어 모드의 경우 플레이 스타일 자체에 영향을 주는 부가 효과들(쉴드로 적의 공격을 반사할 시, 체력을 회복하는 탱커 모드나 지상전에서 더블점프가 가능하게 만든 워리어 모드 등등)이 부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드들은 수치적인 증감만 존재하며, 코어 모드에 따른 스타일 다변화 요소는 상당히 떨어진다.


이는 UBI 소프트 게임 특유의 게임 개발 사이클과 맞물려 있다 판단된다. 즉, 초기에 완성된 시스템과 적당한 분량의 콘텐츠를 넣은 파일럿 형태의 게임을 만들고 이것이 성공하였을 시 후속작에서 전작의 단점을 보완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스타링크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전형적인 UBI 소프트의 파일럿 게임 작품이다.


하지만 스타링크에는 단순하며 반복적인 것보다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피규어를 구매하게 만드는 동력을 구성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점이다:우선, 게임의 피규어는 조립가능한 전투기와 전투기 날개, 그리고 무기와 파일럿의 형태로 구성되었다. 원래 기획 의도는 파일럿과 무기, 전투기, 전투기 날개를 자유롭게 구성하여서 자신만의 전투기를 구성하고 같이 성장하며 게임을 풀어나가게끔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일단, 피규어의 퀄리티와 기믹 자체는 괜찮은 편이며 다른 전투기의 부품(날개 부분)을 뜯어서 자기만의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기믹은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링크는 전투기를 피규어로 내세운 요소 때문에 안그래도 반복적인 게임을 더 반복적이고 단조롭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버렸다. 우선 플레이어가 레벨업 할 수 있는 주된 방법은 각 전투기별로 숙련도 레벨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체별 숙련도 레벨은 올라갈수록 무지막지한 경험치를 요구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단순하게 전투기 한 대와 파일럿, 무기만 구매하였을 경우 레벨업에 들어가는 공수가 심각하게 늘어나버리게 된다. 또한 무기 세팅에 있어서도 약점 공격 및 속성 결합 공격이 주는 이점이 상당하며, 약점을 찌르지 못하는 경우 전투 시간이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안그래도 단조로운 전투를 더 지루하고 단조롭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


즉, 스타링크에 있어서 스마트 토이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주요한 수단이자 게임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요소'며, 이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하다못해 기체만 피규어로 팔고 무기만 해금 되는 형태로만 팔았어도 이렇게까지 게임 플레이를 단조롭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체는 전체 게임 플레이를 결정하는 피지컬적인 부분을, 무기는 플레이 스타일을 결정하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링크는 굳이 무기까지 피규어의 형태로 팔아버림으로써 '스타터 팩만으로는 안그래도 지루한 게임을 더 지루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를 단점을 만들었다. 심지어 피규어를 추가 구매하였다고 해서 게임의 '양적인 부분'이 증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가는 더욱 박해질 수 밖에 없다.


제작진들도 이러한 피규어 구입 모델에 문제가 있었다고 느꼈는지, 모든 콘텐츠를 시즌패스의 형태로 언락해서 해금할 수 있는 디지털 판매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즉, 실물 피규어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플레이어는 여전히 디지털로 모든 콘텐츠를 구매해서 해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배려 역시도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약 2만원 상당의 비용을 들이면 플레이어는 거의 10~15만원 어치의 피규어를 구매하지 않고도 콘텐츠를 해금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여기에서 UBI 측의 계산이 들어갔으리라 보지만 이 덕분에 스타링크는 '굳이 더 싼 값으로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는데 왜 피규어를 구매해서 콘텐츠를 해금해야하는가?' 라는 이상한 모순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론 피규어 하나 하나는 조형이 잘만들어진 편이며, 수집 가치가 있는 편이지만 이제 막 출범한 게임에 매력을 느끼고 게임을 구매할 사람은 적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패드 위에 피규어를 올려놓는' 동기화 방식은 게임을 즐기는데 물리적인 불편함을 제공한다:날개와 무기의 자유로운 조합으로 자신만의 기체를 만드는게 중요한 게임에 '물리적으로 올려놓는게 불가능한' 조합이 있다면 실제 피규어를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디지털로 구매할 경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사항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UBI는 스타폭스 프랜차이즈를 스타링크에 콜라보시키려 했었던 것처럼 보인다. 자기들이 봐도 스타링크는 파일럿 게임이라 할지라도 후속작으로 이어질 정도의 수익을 내기는 힘들어보였기 때문이다. 스타폭스 프랜차이즈는 전반적으로 게임에 잘 어울리는 편이며, UBI는 어떻게든 컷씬 등에 스타폭스 맴버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자신만의 퀘스트 라인을 가진 점도 괜찮은 추가 요소였다. 하지만 추가된 스타폭스 콘텐츠를 생각해보면 모든 파일럿+전투기들이 각자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졌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스타링크는 UBI 특유의 파일럿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게임이다.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은 스마트 토이라는 요소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스타링크는 UBI 게임 답게 시리즈가 가면 갈수록 자연스럽게 게임이 더 나아질 것이지만, 스마트 토이라는 물리적인 한계가 게임 프랜차이즈 전체의 발목을 잡을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스위치로 구매할 시 타 콘솔과 비슷한 형태로 트리플 A 오픈월드 게임을 휴대하면서 즐길 수 있다는 점과 그걸 스타폭스 케릭터들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가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더 오랫동안 살아남고 싶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게임 이야기



유명 IP를 바탕으로 수집형 카드 게임Collectible Card Game; CCG들이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다:하스스톤에 이어서 엘더스크롤 프랜차이즈를 활용한 엘더스크롤 레전드, 위처의 미니게임 궨트를 손을 봐서 게임으로 옮긴 쓰론 브레이커와 궨트, 도타를 카드 게임으로 옮긴 아티펙트와 심지어 원조 TCG인 메직 더 게더링도 아레나라는 작품을 냈다. CCG는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메인 스트림이라 할 수는 없지만,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하스스톤이 아시안 게임에서 비디오 게임 부분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점이나 트위치 방송에서 시청자수 10위권 내에 하스스톤이 들어가는 점은 CCG 장르가 나름대로 탄탄한 소비자 층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무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CCG는 여타 비디오 게임 장르에 비해서 화려하지도 않으며, 여타 비디오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들도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손패가 꼬이는 문제일 것이다:대부분의 카드 게임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전략을 위한 덱을 구성하고, 덱에서 카드를 드로우하고 카드를 손패에서 발동시킴으로 게임 플레이 사이클을 완성한다. 그러나 덱에서 자신이 원하는 카드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부터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하스스톤이 게임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카드가 나오길 신에게 빌어야 하는 '종교'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크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치명적인 하자사항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생각한대로 움직이고 통제되고 그에 맞춰서 도전적인 과제를 부여할 때 재밌어 진다. 하지만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게임으로써 재미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치명적인 하자 사항에도 불구하고 CCG는 꾸준하게 플레이어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어째서일까? 이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보드게임과 TCG의 사례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많은 CCG들은 매직 더 게더링의 규칙을 조금 뒤틀거나 강한 영향을 받았다. TCG라는 보드게임 장르를 확립한 매직 더 게더링은 자신만의 덱을 구축하고, 랜드를 지속적으로 필드에 깔아 자원을 확보하여 몬스터와 마법을 사용하고, 종국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형태의 카드 게임이다. 매직 더 게더링의 핵심은 자신만의 덱을 구축한다는데 있다:플레이어는 제각기 다른 효과를 지닌 카드를 이용해 덱을 구성하고, 섞은 뒤, 드로우함으로써 자신의 손패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손패를 이용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전략을 구체화시킨다.


하지만 손패는 뒤섞인(셔플된) 덱으로부터 구성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구성을 한번에 구하기는 힘들다. 이게 보통 이야기하는 '손패가 꼬인다'라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기에 덱 구성에서 중요한 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끔 카드의 구성과 비율을 조정하고 손패가 꼬였을 때의 백업 플랜을 갖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TCG는 자신만의 전략을 구성하는 점, 그리고 끌려나오는 무작위성을 어떻게 전술적으로 통제하고 승리를 쟁취할지의 양측면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전략과 전술 양측면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TCG의 게임으로서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항상 적시에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은 TCG 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능력이었다:덱의 구성을 통한 통제(적절한 랜드 수, 정해진 비율의 1-2랩 위니 카드의 사용 등) 불구하고 손패가 꼬이는 사고는 TCG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며, 드로우와 덱서칭을 통해 원하는 카드를 뽑아내고 자신이 원하는 전략을 빠르게 발동시키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거머쥘 수 있었다. 메더게 판에 내려오는 '진남불용청'(진짜 남자는 청덱을 쓰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부분일 것이다:청덱은 오랫동안 드로우와 서고 등 카드와 관련된 규칙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었고, 그 결과 때에 따라서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또한 유희왕에서 대대로 악명을 떨쳤던 카드들이 대대로 빠른 덱서칭과 드로우로 필드를 지배하고 게임을 폭파시키는 카드들이었다는 것도 이러한 특징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몇몇 카드 게임들은 드로우와 관련된 능력보다는 덱 이외의 보조덱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도 하였다:FFG에서 만든 LCG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왕좌의 게임 LCG의 경우, 셔플되는 카드 덱과 플레이어가 임의로 설정하여 사용할 수 있는 플롯 덱으로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드 덱은 말그대로 전통적인 LCG에서 사용되는 게임 플레이용 덱이지만, 플롯 덱의 경우에는 다소 특이하다:플롯은 한 라운드에만 영향을 끼치며, 그 라운드 동안 다양한 영향들(자원 수급이나, 카드 제거 등)을 끼치는 일종의 버프/디버프 형태의 카드다. 또한 플롯의 수치에 따라서 선공/후공의 턴순서를 정하기 때문에 상당히 역동적인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덱과 드로우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TCG 에 있어서 일종의 트랜드라고도 할 수 있다.


TCG가 흥미로운 점은 게임 규모가 손에 닿을 정도로 '스케일링'되었다는 점일 것이다:가령 비디오 게임이나 여타 게임에서는 숫자들의 연산은 컴퓨터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연산의 규모는 거대화되고 복잡화되는 특징이 있다. 디스가이아 시리즈의 예를 들어보자:이 SRPG 시리즈는 오랫동안 노가다로 케릭터와 장비의 규모를 증폭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삼아온 게임이었다. 단지 숫자의 규모만으로 게임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클리커류의 게임에서도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의 경우, 사람이 컴퓨터의 역할을 대신해 연산을 하기 때문에 연산의 규모를 늘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드게임이나 카드 게임에서 토큰과 수치, 계산 등은 항상 플레이어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모로 조정되었다. 대신 보드 게임과 카드 게임은 규모를 늘리는 것이 아닌 규칙과 게임 요소들(카드나 토큰들)이 직간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부분을 통해서 재미를 추구하였다. 이런 점에서 카드 게임들을 일종의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말싸움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도 장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전략을 구현하기 위한 단어 풀을 카드 덱으로 구성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단어들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 순서에 맞게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단어는 각각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단어와 단어, 그리고 게임 전체를 구성하는 문법을 통해서 각각의 단어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비디오 게임의 장르로 옮겨간 CCG들은 이러한 TCG만의 매력을 살리는데 집중한다:자신만의 단어 사전(덱)을 구성하고, 단어(카드)와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카드 콤보 등)울 만들어 상대를 압도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으로 옮겨간 CCG에는 TCG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이는 규칙이나 카드 상호작용의 편의성이 증대되어 기존 TCG에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매직 더 게더링의 예로 돌아와 보자:플레이어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마나 자원을 갖고 있고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랜드를 탭하는(90도 방향으로 꺾는) 형태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하스스톤은 랜드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가 알아서 계산해주는 마나 개념을 사용하여 실제 얼마나 자원을 사용하였는지를 직관적으로 인지/관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그리고 하수인 카드별로 체력을 별도로 설정하여서 데미지를 입었을 때마다 개별 체력을 트래킹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기존의 카드 게임이었다면 수많은 양의 토큰과 숫자를 추적하느라 관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 했을텐데 말이다. 또한 카드 간의 상호작용을 분명하게 하여 에러 플레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였다. 이런 부분들에서 비디오 게임으로 옮겨진 CCG들은 보드게임 TCG와 다른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는다.


또한 카드 크래프팅 기능도 눈여겨 볼만하다:기존 TCG들이 카드가 무작위로 들어간 부스터 팩을 구매함으로써 카드 풀을 늘려나갔다면, 비디오 게임 기반 CCG는 플레이어가 필요없는 카드를 분해하고 나온 자원으로 새로운 카드를 만들 수 있는 크래프팅 기능을 도입하였다. 기존의 TCG들이 트레이딩을 통해서 실제 카드를 구매하게끔 하였다면, CCG는 무의미한 구매를 막고 플레이어가 덱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게끔 장벽을 낮춰준 셈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로 만들어진 CCG들은 여전히 카드와 덱의 포멧에 기반하여 게임을 구성하였고, 카드와 카드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대신 비디오 게임으로 옮겨간 CCG들은 기존 TCG에 있어서 필요하지만 지루한 부분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TCG의 매력은 단순히 그래픽이나 연출, 혹은 액션 등의 동적인 부분에서 오는 것이 아닌 플레이어가 스스로 덱을 구성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게끔 하는 부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블랙 아웃 리뷰 및 블옵 4가 갖는 의미에 대한 글은 별도로 뺍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의 등장 이후로, 콜옵에 있어서 멀티플레이는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빠른 페이스의 전투와 자동회복, 킬스트릭 등등은 시리즈 멀티플레이 뿐만 아니라 여타 게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시리즈가 오래되면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팬들의 상충된 요구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하나는 새로운 것을 보여달라는 요구, 또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콜 오브 듀티였으면 한다는 요구였다. 특히나 매년 발매되는 게임인 만큼 프랜차이즈가 짊어지는 부담은 매우 컸었고, 때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실패히가도 했었다(고스트, 인피닛 워페어)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망한 프랜차이즈들의 리스트를 복기하여본다면, 콜 오브 듀티는 매우 잘 버티는 편이라 할 수 있다.


블랙옵스 4는 여지껏 프랜차이즈가 시도해본적이 없었던 담대한 시도를 행한다. 월드 앳 워 이후로 싱글플레이와 경쟁 멀티플레이, 코옵 모드(스펙 옵스나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대체로는 좀비모드였다)라는 콜옵 시리즈 전통의 구성 요소를 탈피하여 싱글플레이를 버리고 여기에 PUBG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배틀로얄 모드를 삽입한 것이었다. 물론 싱글플레이의 부재에 대해서 팬들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싱글플레이를 클리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모던 워페어 이후로 콜옵 프랜차이즈가 오랫동안 새워놓은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옵 4의 런칭 실적과 흥행은 이러한 트레이아크의 무모한 도전이 근거없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 더이상 모던워페어 식의 멀티플레이의 틀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콜옵의 세대로 이행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콜옵 시리즈의 멀티플레이는 기본 개념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게임 플레이 요소들을 손을 보는 형태 였었다. 이러한 공식이 유지되지 않았던 것은 어드벤스드 워페어가 거의 처음이었을 것이다:엑소 수츠의 과격한 움직임과 점프/부스터의 개념은 콜 오브 듀티식 데스매치가 아닌 공중전과 아머드 코어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외의 콜옵 게임들은 다양한 변화점에도 불구하고 '콜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게임이었다:벽타고 달리기 개념을 넣은 블옵 3의 경우, 첫인상은 파쿠르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입체적인 사격과 전투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벽타고 달리기 속도가 느린 점 등의 제약조건으로 입체적인 기동보다 '기존 맵에 새로운 루트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확장시켰다. 콜옵 신작들은 매번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추가하였지만, 프랜차이즈의 경계(빠르게 치고 받는 데스매치, 퍽/부착물 시스템, 킬스트릭)에 게임을 안착시키는데 집중하였다.




하지만 이번 블옵 4는 다르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어드벤스드 워페어의 과격한 비틀기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게임 플레이의 공식을 뒤바꿨다'라는 평가를 내려도 될 정도로 본질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크게 체력 및 회복 시스템의 변화, 점수 시스템의 변경, 스코어스트릭 및 능력/장비 시스템의 재편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첫번째는 체력 회복 시스템의 변화다:기존 콜옵 시리즈에서 체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회복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멀티플레이 중에 피해를 입으면 엄폐를 하고 숨을 고르면서 체력이 회복되기까지를 기다려야 했었다. 하지만 이번 블랙옵스 4에서는 체력을 수동으로 회복하게끔 만들었다:플레이어는 L1 버튼(PS4 기준)을 눌러서 수동으로 주사를 놓아서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한번 주사를 놓은 뒤에는 회복 주사가 재충전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게 됨으로 신중하게 회복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본 체력이 100이었던 콜옵과 달리 체력을 150으로 늘려줌으로써 TTK(Time to Kill, 사살까지 걸리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체력을 수동으로 회복하는 부분과 체력이 늘어난 부분은 콜옵 게임 플레이에 많은 변화를 준 부분이다. 우선 플레이어는 교전 후에 체력을 수동으로 회복해야하는 '리스크'를 져야만 한다. 플레이어가 주사를 놓는 순간에는 총을 쏘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플레이어가 체력 회복 탬포를 조절해야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플레이어가 내려줘야만 한다. 전작들에 비해서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판단해야 하는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전투를 진행할 때, 팀단위로 뭉쳐서 다니는 것이 중요해졌다:상대의 체력이 늘어났기 때문에 화력을 집중시킬 필요도 있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엄호해줄 팀원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졌다.


두번째는 점수 시스템의 변경이다. 다양한 변경점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어시스트를 킬과 동일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경 점은 프랜차이즈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부분이다. 상대를 죽여서 전장을 제압하는 강력한 장비를 부르는 킬스트릭 시스템은 모던 워페어 이후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멀티플레이를 대표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킬스트릭 덕분에 팀 데스매치 이외의 다양한 모드들(깃발 뺏기나 지역 점령 등)에서 조차도 게임 모드의 본래 목적보다 킬스트릭을 부르는게 더 중요해지는 모순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를 위해 도입된 스코어 스트릭 개념은 다양한 게임 모드의 목적에 맞는 행동들(지역 점령, 군번줄 회수 등등)을 했을 때 부여되는 점수로 장비를 부르는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를 죽였을 때 얻는 스코어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스코어 스트릭은 킬스트릭의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콜옵 멀티플레이는 스코어 스트릭 시스템을 따르든 킬스트릭 시스템을 따르든 결국은 모든 멀티플레이 모드에서 목적을 수행하는 것보다 상대를 데미지를 입혀서 마무리를 가하는게 더 중요해지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즉, 기존 콜옵 시리즈는 협업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닌 나 개인이 얼마나 상대를 압도하고 킬스트릭을 챙기는 것이 중요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콜옵 멀티플레이가 오랫동안 다양한 게임 플레이 모드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팀 데스매치 모드의 인구수가 가장 많았던 건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블옵 4는 킬스트릭과 게임플레이의 근간을 뒤집어버린다:이제 플레이어는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마무리를 짓지 않아도, 팀원과 함께 동일한 스코어를 획득한다. 과거에는 어시스트 판정으로 1/2 차감되어서 스코어가 들어오던 것이 이제는 킬로 인정된다. 물론 플레이어가 복귀 메달(3번 연속 죽은 뒤, 적을 죽여서 마무리지었을 때 주어지는 메달) 등을 통해서 보았을 때, 완전히 상대를 마무리 지은 경우와 이렇게 어시스트로 킬이 인정되는 경우를 게임은 구분하기는 한다. 하지만 모던 워페어 1편 이후 근 10년 이상 '킬=상대를 마무리 지었을 때 인정되는 것'이라는 시리즈의 핵심 공식을 블옵 4는 뒤집은 것이다. 또한 게임 모드와 상황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더 세부적으로 잘게 쪼개고, 모드의 목표에 맞는 게임 플레이를 유도하는 등 블옵 4는 이전작에 비해서 더 잘게 게임 플레이 점수 시스템을 쪼개고 죽이는 것 이외에(물론 죽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플레이어가 목적에 맞는 행위를 하게끔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스코어스트릭 및 능력/장비 시스템의 개편이다. 블옵 4는 블옵 3의 스페셜리스트 개념을 계승 발전시킨다:스페셜리스트들은 시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장비들이 있으며, 킬스트릭과 달리 일정한 시간이 흘렀을 때 무조건 사용을 보장해주는 기믹을 지니고 있었다. 즉, 블옵 3에서 스페셜리스트의 존재는 '킬스트릭 외에도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플레이어에게 보장해줌으로써 킬스트릭에 매몰되어 게임이 일방향적으로 흐르지 않게하는 안전장치이자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또다른 수단을 준 것이다.  하지만 블옵 3는 스페셜리스트의 능력의 선을 분명하게 그어두었다:스페셜리스트 능력은  프로펫의 템페스트나 리퍼의 사이드 같이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무기의 형태로 구현됨으로써 킬스트릭의 하위호환이자 플레이어가 능숙하게 조작하였을 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


하지만 블옵 4의 스페셜리스트 능력은 블옵 3와 유사하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양태를 보여준다:우선, 장비와 능력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던 블옵 3와 달리 블옵 4는 기본적으로 고유 무기와 고유 장비 양쪽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옵 4의 스페셜리스트 에이젝스의 경우 9연발 섬광탄을 고유 장비로, 방탄 방패와 연발 권총을 고유 무기로 사용한다. 고유 장비의 경우, 고유 무기에 비해서 더 빠르게 재충전되고 자주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전작들의 수류탄이나 전술 장비를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화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유 장비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은 고유 무기일 것이다:에이젝스의 방탄 방패와 연발 권총은 모던 워페어 3에서 나온 저거너트 리콘과 비교될 정도로 강력한 탱킹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10여 킬 이상의 킬스트릭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저거너트 리콘과 달리 에이젝스의 방탄 방패는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블옵 4의 고유 무기는 킬스트릭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하며, 심지어 몇몇 고유 무기(에이젝스의 방탄 방패나 노마드의 군견 소환 등등)는 이전작들의 킬스트릭에서 편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장비 시스템도 일신되었다. 블옵 4에서는 1회 한정으로 탄환에 의한 피해를 경감시키는 방탄 갑옷이나, 고유 장비를 더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나 체력회복 주사를 더 빠른 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팀팩 장비 등등 이전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장비들도 등장하였다. 또한 공용 부착물을 무기 레벨에 따라 해금해서 싸우던 전작들과 달리, 이제 무기는 각자 고유의 부착물 테크트리를 지니며 더 나아가서 무기의 운영 방식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 모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블옵 4의 장비 시스템의 변화는 기존 시리즈의 퍽과 장비 시스템의 원칙을 깨부수는 것이다:기존 콜옵 멀티플레이의 퍽과 장비 시스템의 대원칙은 플레이어가 가하는 데미지의 총량이나 받아내는 데미지의 총량 등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제한적이지만 추가 체력을 가질 수도 있고, 무기에 따라서는 가슴 위로 데미지를 더 줄 수 있는 추가 대구경 부착물을 부착할 수 있는 등 기존 장비 시스템에서는 미쳐 상상하지 못한 요소들이 추가가 된 것이다.


종합하여 본다면, 블옵 4의 변화점은 전반적으로 이전작들의 개인 플레이보다도 뭉쳐서 함께 협력하는 팀플레이와 게임 모드에 맞게 행동하는 플레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게임의 핵심적인 기조(빠른 페이스의 전투, 킬스트릭, 퍽과 장비의 커스터마이즈 등)는 여전하나, 플레이어가 팀을 의식하고 뭉쳐서 다니면서 서로 시너지를 내게끔 하며, 맵 리딩을 더 철저하게 하는 등의 협업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 것이다. 이전의 콜옵들의 변화가 어떻게든 콜옵의 게임 플레이 내에서 최대한 뒤틀어보는 방향이었다면, 블옵 4는 콜옵 프랜차이즈를 벗어나서 여타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인 게임이다:실제 블옵4가 개발될 당시, 오버워치 등의 협동 게임을 너무 의식하고 만들어진 나머지 콜옵 스럽지 않아서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 루머가 사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만들어진 블옵4는 콜옵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콜옵의 유전자에 다른 무언가를 뒤섞은 혼종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블옵 4의 이러한 변화는 콜옵을 계승하는 동시에, 오히려 상대를 죽이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콜옵 멀티플레이의 한계를 최대한 비껴나가보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콜옵에서는 다양한 모드가 추가되었어도 결국은 팀 데스매치나 확인 사살 모드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블옵 4에서는 강탈 모드(리스폰 없이 현금을 확보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모드)나 지역 장악(티켓을 소비하며 빠르게 공수 교대를 하면서 지역을 장악하는 모드) 등의 팀 협동을 강조하는 모드들을 대거 추가하였다. 오히려 블옵 4는 콜옵이 의례 그랬듯이 '팀 데스매치'로 회귀하는 것을 피하고, 최대한 다양한 모드들이 플레이되게끔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의 결과가 과연 성공적일지 여부는 시간만이 알려주겠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블랙옵스 4는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물론, 이 게임에 들어간 요소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이미 오버워치나 협동이 중요한 경쟁 멀티 게임들, 심지어는 카운터 스트라이크(강탈 모드)나 PUBG 같은 게임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뭔가 새로운 비전을 제공하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블랙옵스 4의 모험은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가 아직도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던 워페어 1편의 혁신이나 충격을 없었지만, 여기에는 트레이아크의 노련함과 콜 오브 듀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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