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본인은 이전에 디아블로 3에 대해서 기술의 자유로운 커스마이징과 함께 정해진 스킬트리로부터 자유로워진 새로운 시대의 핵 앤 슬래시 RPG가 탄생하였다고 규정한 적이 있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그 평가는 '반'만 들어맞은 샘이었다:디아 3 오리지날은 고질적인 아이템 루팅 문제(소위 쓸모 없는 아이템인 폐지 줍는 게임)와 접속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콘텐츠 분량의 문제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보였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제작진들이 예측했어야 하는 문제들이었다(물론 본인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디아 3는 수백만명의 유저들이 수천만 시간을 쏟아부어서 플래이하는 게임이 될 것이었고, 또한 온라인 게임 같은 기믹을 도입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준비를 했어야 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디아블로 3는 미흡한 대처와 슬럼프에 늪에서 허우적 거렸다. 이후 콘솔판 디아 3를 만든 조쉬 모스키에라 디렉터가 디아 3 총괄 디렉터가 되면서 일련의 문제들은 점차 해소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러한 조쉬 디렉터의 기조가 디아 3 확장판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확장팩에서 추가적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직업이 하나 추가되었고, 파라곤 레벨이 추가되었다. 전반적으로 디아 3라는 게임의 템포를 반복플래이에 걸맞게 다듬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모험모드와 균열모드로써 반복플래이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게이머는 모든 스토리가 끝난 이후, 모험모드를 통해서 각각의 액트에서 반복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과거 같이 일정 이벤트를 반복하여서 꼼수식으로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는 것이 아닌 반복적인 퀘스트를 통해서 보상과 균열석 조각을 모으고, 이를 이용해서 더 큰 보상을 노릴 수 있는 균열을 도는 형태로 게임 흐름을 굳힌다.


이러한 변화들은 디아 3에 있어서 반복플래이를 강조하고 보완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이러한 반복 플래이에 대한 강화 기조가 왜 디아 3 원판이 아니라 확장판에서 시작되었어야 했는가? 사실 디아 3의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디아 2의 전통을 게임에 접합시키려 했다는 것에 있다. 스토리 모드만 존재하며 게이머가 액트를 순서대로 클리어하며 상위 난이도를 해금하는 것을 기조로 삼은 디아블로 2에서 어떤 '다른 게임이 갖지 못하는 전통'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역으로 디아 3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옭아맸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디아 2의 미덕은 다른 핵 앤 슬래시 RPG들이 훌륭하게 계승하였다. 타이탄 퀘스트나 세이크리드, 토치라이트 등등의 다양한 게임들이 디아 2가 제시한 핵 앤 슬래시라는 컨셉을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하여 자신의 게임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 어느누구도 디아 2의 요소를 완벽하게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세이크리드는 디아 시리즈와는 다른 거대한 필드를 도입하여서 게임 플래이를 차별화하였고, 토치라이트는 모딩 개념을 도입해서 게임이 끝난 이후에도 이것저것 다양한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즉, 소위 훌륭한 디아 2의 모방자들은 큰 게임 흐름에 있어서 디아 2와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디아 3는 유독 그러한 디아 2의 큰 흐름을 따라야 하는 '전통'으로 규정지었기에 문제에 봉착한다.


확장팩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것을 도입하지만, 그러한 원판의 문제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다:잘 쓰여지지 못한 이야기와 게임 서사(게임 플래이를 둘러싼 환경들)들은 게이머에게 게임을 반복해야하는 동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더랜드 2 같은 경우에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매력적인 미치광이 같은 세계와 함께 '총'이라는 핵심 모티브를 게이머가 지속적으로 파밍을 해야하는 이유를 제공한다(물론 총 쏘는 맛도 있다) 하지만 디아 3의 기본 스토리는 매력적이지 못하며(확장팩도 그러하다), 게이머가 파밍을 해야하는 이유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모든 것은 '사후적'으로써 네팔렘이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한 것이기에 어떤 급박함이라던가 이야기에 있어서 끌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게임 플래이 자체는 그러한 반복플래이를 어느정도 숨겨주기도 한다:수십마리의 적을 한번에 도륙내는 쾌감이야말로 디아블로 2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라 할 수 있고, 많은 핵 앤 슬래시 RPG에 게이머들이 끌리는 부분이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디아 3의 장점들(자유로운 스킬셋, 액션 등)을 이어받은 작품들이 이제 슬슬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오히려 콘텐츠나 큰 틀의 게임 플래이에 있어서는 디아 3를 압도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상은 이번 지스타에서 공개된 스마일게이트 신작인 로스트 아크다. 기본적으로 디아 3의 게임 플래이를 빌리고 있지만(트라이포드 시스템), 로스트 아크의 특징은 후반부에 공개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에 있다:기본적으로 다양한 MMORPG에서 차용한 듯한 채집과 수집요소들, 더 나아가서 탑 뷰 카메라를 베이스로 두되 카메라를 돌릴 때는 과감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게임은 새로운 것은 없지만 충분히 검증된 매력적인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고 있다. 내후년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지만, 로스트 아크가 큰 틀에서 보여주는 할 거리는 이미 디아블로 3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물론 내후년에 나올 게임에 대해서 너무 이른 김칫국을 마시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또한 한국 게임 개발 전통이 항상 신선하고 좋은 것을 망치는 방향으로 특화된걸 생각하면.....) 그러나 이미 트레일러만으로도 디아블로 3의 할 것을 아득하게 상회하는 물건이 나왔다는 것은, 확장팩으로 변화를 시도해도 디아블로 3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만약 디아블로 3의 새로운 확장팩이 뭔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디아블로 라는 프랜차이즈에 장기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