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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정식 리뷰 전 메모입니다.


*스위치 버전을 기반으로 쓰여졌습니다.


격투 게임이 입문 허들이 높은 이유는 여타 게임 장르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유 문법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 플레이어가 인지하는 것과 다르게 게임 내 메카니즘이 작동하는 점, 마지막으로 프레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공방 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서 격투 게임 장르는 화려함과 아케이드 문화를 지배했던 전성기에 대비해서 많이 쇠퇴하였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과 온라인 대전 환경의 조성 등으로 인해서 격투게임은 나름대로의 활로를 찾았고, 게임 장르 역시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서 게임을 재구성하기 시작하였다:콘솔 중심으로 돌아가는 플랫폼, 시리즈 전통을 살리면서 신규유저도 끌어올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은 이러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크 시스템이 길티기어와 블레이블루 이후, 드래곤볼 파이터즈와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을 만들면서 보인 고민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있을 것이다. 단순화된 기본기 콤보 루트, 콘솔 환경에 맞게끔 레버 입력을 1/4 파동권 입력만 넣고 버튼 조작도 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은  그러나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이 태그 교체와 어시스트의 조합, 크로스 콤보 등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너무나 많은 선택지를 주었고, 그 결과는 너무나 복잡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반면, 태그 배틀보다 먼저나온 드래곤볼 파이터즈는 태그 배틀과 비슷한 기믹(태그 배틀, 오토 콤보와 1/4 파동권 필살기, 단순한 기본기 콤보 루트 등등)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더라도 게임 자체는 태그 배틀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드래곤볼 파이터즈는아크 시스템 게임 다운 속도감에 공격쪽에 유리한 게임 시스템을 쓰고 있다:상당수의 격투 게임들이 공격 시스템과 함께 방어 시스템을 함께 조화롭게 배치하였고, 능동적인 방어 기제를 던져주었다. 예를 들어 블블 태그에서는 리젝트 가드, 모탈 컴벳 시리즈에서는 콤보 브레이크, 길티기어에서는 포트리스 가드 등 방어자가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있었다. 드볼파도 능동적인 방어 시스템이 존재하긴 하지만(가드 캔슬이나 튕겨내기), 문제는 초대시(빠른 딜레이 캐치)와 배니시 무브(공격 캔슬+역가드 유발)에서 오는 공격적 운영의 이점이 더 압도적이기 때문에 방어적 플레이는 불리하게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대신 태그 배틀 답게 주기적으로 케릭터를 교체하면서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이 게임 공방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드래곤볼 파이터즈는 한 번의 공방에서 얼마나 상대 피를 효율적으로 빼는가(혹은 교체전에 최대한 피해를 주는가) 라는 콤보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게임은 콤보의 최적화를 위해서 플레이어가 모든 시스템을 사용하게끔 만들었으며,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이 시스템과 콤보 루트를 꿰는 것으로 나뉘어진다. 물론 초보자를 위해서 편리한 오토 콤보가 존재하며, 게임은 얼마나 빠르게 입력하느냐 보다는 정확한 타이밍에 입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정식 리뷰까지 어느정도 걸리겠지만, 블블 태그배틀보다는 즐기기 편하고 공격 중심이다 보니 상당히 속도감 있게 게임이 전개되는 점도 있다. 스위치 버전 이식도 매우 훌륭해서 가변 60프레임이긴 하지만 게임 플레이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이전 글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http://leviathan.tistory.com/1996)

스마트 토이(위키피디아에서는 Toy-to-life라는 용어를 쓴다)는 게임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실물 피규어 등을 지칭한다. 장난감 산업과 게임 산업을 한데 아우른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스마트 토이는 분명 매력적인 개념이며 실물과 디지털 사이의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스마트 토이란, 쉽게 이야기해서 실물로 구매하는 DLC 개념이었다:플레이어는 인터넷 마켓에서 디지털 DLC를 구매하는 대신, 실물 피규어를 구매하고 별도의 장치를 통해서 연동하면 게임이 이를 인식, 콘텐츠를 해금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가동중인 스마트 토이 라인업들인 스카이랜더스와 닌텐도의 아미보가 이런식의 상호작용 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필자는 이전에 스마트 토이가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되었을 것이라 보았다. 실제 디즈니 인피니트가 이 시장에 뛰어들 당시만 하더라도 그러한 낙관론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디즈니 인피니트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만 라인업을 운영 후, 사업을 철수하였으며 레고 디멘션즈의 경우에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간 운영 후 사업에서 손을 땠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디즈니 인피니트의 실패일 것이다:디즈니 인피니트는 시즌 3까지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마블, 더 나아가 스타워즈까지 투입된 그야말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스타워즈 게임 부분에서 배틀프론트에 비해서 적은 돈을 벌어들였다(관련 기사)라는 분석이 나오고 3개월이 지난 후 디즈니 인피니트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폐쇄당하게 되었다.(관련기사

디즈니 인피니트의 실패에는 이유는 그들이 거둔 성공이 기대치에 못미친 점이 클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수요 공급 예측의 실패와 악성재고의 발생이라던가(첫 런칭 당시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해서 고생하였더니, 2.0 런칭 후에는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예를 들어 헐크의 경우, 200만개의 피규어를 제작하였는데 실제로는 100만개만 팔렸다. 즉 100만개의 '악성재고'가 발생한 것이다),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의 미미했다던가, 혹은 내부적인 이슈들이 게임에 강제되는 등 잦은 악재가 있었던걸로 보여진다(관련기사)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기저에는 디즈니 경영진도 인정하였듯이, 스마트 토이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소프트웨어 제작 이외에 실제 피규어도 제작해야하는 원가 부담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관련기사)

스마트 토이 시장이 주춤하게 된 것은 실제 스마트 토이 자체가 게임 관점에서 DLC를 번거롭게 물리적으로 구매하는 것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 클 것이다:디즈니 인피니티는 분명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방법에서 혁신적이지 못하고 구태의연하였으며, 실물을 팔아야 한다는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스마토 토이 라인업 중 살아남은 건 아미보 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스카이랜더스는 2016년 이후로 신작이 나오고 있지 않음으로...살아있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아미보 라인업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까지 3900만개의 아미보와 3000만개의 아미보 카드가 출하되었고(위키피디아), 회계년도 2017년 3월에서 2018년 3월까지 결산 시에는 약 1030만개의 아미보와 580만개의 아미보 카드가 출하되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물론 때에 따라서 아미보 라인업이 어느정도 부침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사업 자체를 접는 것을 고려해야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2017년 관련기사)

어째서 아미보는 여전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애시당초에 닌텐도 하드웨어(NFC를 인식할 수 있는)에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아미보를 인식하고 게임을 만든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몇몇 경우 아미보라는 스마트 토이의 콘텐츠가 여타 스마트 토이 라인업보다 독특한 방법으로 콘텐츠를 즐기게끔 만들어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어 스플래툰 2의 경우, 스플래툰 보이나 걸 아미보를 연동시키면 특전 기어를 주는 것과 함께 플레이어의 복장을 입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야생의 숨결에서 황혼의 공주 아미보를 연동하면, 그림자 늑대가 나와서 아이템을 찾아주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이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미보는 단지 콘텐츠를 양적인 방향에서 늘리는 것이 아닌, 질적인 부분들(콘텐츠를 바라보거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각도)을 늘려주며, 게임들을 넘어서 서로 대응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아미보 대응 게임들은 양적인 콘텐츠를 늘려주는데 집중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타 스마트 토이 라인업이 하나의 게임 = 하나의 스마트 토이 라인업만 1대1로 대응되는데 비해서, 아미보는 1대다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부분도 있다:일례로 플레이어는 하나의 아미보를 파이어 엠블렘 무쌍와 대난투, 심지어는 디아블로 3 스위치 버전에도 쓸 수 있다. 적절한 조형과 가격, 닌텐도 차원에서의 전폭적 지원, 더 나아가 여러 게임에서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미보는 여타 스마트 토이가 갖지 못하는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닌텐도의 아미보 운영의 화룡점정은 대난투다:아미보를 통해서 대응되는 케릭터를 성장시키고, 플레이어의 분신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여타 아미보 기믹들이 복장을 추가하거나, 게임 콘텐츠에 새롭지만 소소한 추가 요소를 늘려주는 방식이었다면 대난투는 '게임이 피규어를 통해서 물화된다'라는 양방향적인 교류를 보여주었다. 어떻게 본다면, 스마트 토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최대한으로 보여준 셈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타링크의 등장은 다소간 뜬금없고, 위험해보인다:심지어 디즈니 인피니트가 디즈니 프랜차이즈를 등에 업고도 거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신생 IP가 대담하게 스마트 토이 제품을 들고 시장에 도전한 것이다. 심지어 게임은 컨트롤러 위에 엄청나게 거대하고 무식해 보이는 추가 컨트롤러를 얹기까지 하였다. 누가봐도 무모한 도전이지만, 스타링크에는 나름대로 포인트들이 있다:우선, 게임 자체의 콘텐츠를 양적으로 늘려주는 방향이 아니라 질적(게임 플레이 스타일 같은)으로 늘려주는 방향을 선택했다던가, 노맨즈 스카이의 플레이 콘셉트(행성 탐험, 전투, 행성간 이동 등)를 가진 캐주얼한 오픈월드라는 점 등에서 기본적인 게임으로써의 요소를 갖추려고 했다던가 말이다. 심지어 실물 피규어 없이 DLC로 피규어 콘텐츠를 언락하게끔 한다던가 등의 방법은 스마트 토이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또한 장난감에 조립식 모듈형 기믹을 더해준 점도 상당히 독특한 부분이었다.

여기에 스타링크는 스타폭스를 콜라보레이션 하였다. 상당히 충격적인 콜라보레이션이지만, 스타링크는 스타폭스 인원들의 전용대사와 상호작용 대사, 전용 미션 등을 투입하여서 본격적인 콜라보를 구성하였다. 우습게도, 스타폭스의 존재로 인해서 스타링크의 모든 콘텐츠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닌텐도 스위치 버전이 되었으며 '스타폭스 프랜차이즈가 아니지만 모든 스타폭스 팬들이 원하는 그 게임'이 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그러나 스타폭스 콜라보레이션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신생 스마트 토이 프랜차이즈가 스타폭스라는 기존 거대 프랜차이즈와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주목을 끈 덕분에, 오래된 닌텐도 커뮤니티 측에서는 한번씩 스타링크를 언급하면서 기대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링크에 대한 걱정과 기대는 반반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스마트 토이를 연동시키는 방법이 겉보기에도 대단히 거추장스러울 뿐만 아니라, 게임 내부의 오픈월드를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분량이나 스마트 토이를 실제 구매했을 때의 이점들 등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쪽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스타링크는 스마트 토이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본격적인 오픈월드 슈터 장르 게임이기 때문에 성패의 귀추에 따라서 침체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스타링크는 10월 16일 발매 예정이며,
한국판은 발매 예정이지만 자세한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게임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의 RPG 프랜차이즈 라인업은 두가지로 나뉜다:첫번째는 파이널 판타지 같이 대자본이 들어가는  게임이고, 두번째는 실험적이고 복고적인 컨셉의 게임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두번째 부류의 게임들이다. 전자의 부류가 미래를 바라보고 비전을 추구하였다면, 후자는 과거의 명작 게임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복고적인 분위기를 추구하였다. 이는 자사 브랜드를 관리하기 위한 전형적인 투트랙 전략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대다수는 아니지만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를 공략하기 위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근래 스퀘어 에닉스의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브랜드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일 것이다:파이널 판타지 외전 빛의 4전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실리콘 스튜디오의 브레이버리 디폴트는 고전적인 아트워크와 스토리라인과 함께 파이널 판타지의 잡 시스템에 브레이브/디폴트이란 턴 전투의 새로운 해석을 차용하였으며, 여기에 기존의 RPG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멀티플레이 요소를 도입하였다. 또한 게임 체험판을 사전에 배포하여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본편에 반영하는 등 상당히 독특한 전략을 취하였으며, 그 결과는 대흥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플레이어를 매료시키고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그외에도 사가 스칼렛 그레이스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옥토패스 트래블러도 이 부류에 들어갈 것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에는 사람들은 상당히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분명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부분은 복고 지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이 게임이 어느정도 규모의 게임인지(풀 프라이스? 아니면 인디 게임과 같은 소품류?) 알 수 없었고 안그래도 성능과 관련된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스위치에는 제대로 된 그래픽과 스케일의 RPG 하나 안나온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와 같이 게임 체험판을 공개하고 어떤 게임인지 대중에게 게임 플래이로 어필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을 조금씩 끌어모으기 시작하였다. 발매 이후, 다소 호불호가 엇갈리는 분위기가 있었긴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전세계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신규 IP 치고는 괄목할만한 성과였으며, 기본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매력적인 게임임을 반증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8명의 주인공의 8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고전적인 턴제 전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RPG다. 우선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구성이다. 게임은 서로 다른 테마를 가진 8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모험을 펼치는 옴니버스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 케릭터 당 스토리는 4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챕터는 약 한시간 정도의 분량의 컷씬과 던전으로 구성되었다. 4시간은 RPG 스토리로서 절대적으로 짧은 쪽에 속하지만, 8명의 이야기인 만큼 전체 스토리 클리어까지 32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의외로 긴 분량을 자랑한다. 이러한 시도 자체는 근래 찾아보기 드문 독특한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실험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가 시리즈나 라이브 어 라이브 같이 실험적인 구조이긴 했지만 하나의 큰 이야기가 아닌 케릭터와 테마를 긴밀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이전에도 존재했었던 방식이다. 이는 RPG라는 장르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이들 게임들은 거대한 세계와 플레이어가 상호작용하며 그야말로 이야기에 있어서 역할Role을 강조하는 RPG 장르 특성에 초점을 맞춰서 플레이어의 분신이 되는 케릭터를 중심으로 게임의 모든 것을 구성한 것이다. 일찍이 사가 시리즈가 시리즈의 정체성을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절대로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다양한 케릭터와 관점에 초점을 맞춰서 세계와 이야기를 구성하는 순간, 구성해야하는 게임 콘텐츠가 여타 게임보다 배로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가 최신작 스칼렛 그레이스의 경우에도, 모든 이야기를 다 보고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려면 총 4회차를 클리어해야하며, 이는 요즘 게임의 트랜드에 정면으로 반하는(10~20시간 내외에서 클리어 가능한 싱글플레이 게임) 부분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실험은 이러한 고전의 흐름을 어떻게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 있어서 각각 케릭터들은 테마를 대표한다. 이들 테마는 단순하지만 확고하다:복수, 공동체의 헌신, 구원, 신뢰 등등 모든 테마들은 클리셰적이며 모든 이야기는 예측가능하다. 그러나 클리셰라 해서 이야기의 뒤가 궁금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각 케릭터별 이야기들은 단순하지만 잘 작동하는 편이다. 그리고 몇몇은 상당히 인상적이기도 하다:예를 들어 프림로즈의 스토리 라인의 경우, 아버지의 복수를 실행하는 강인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원수들을 하나씩 추적해서 죽인다는 류의 단순한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복수를 위해서 인내했던 괴로움에 대해서 다뤄내면서 이야기에 나름대로 쓴 맛을 더해주고 있다. 각각의 케릭터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만의 개성을 갖게 된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여기에 독특한 기믹을 부여한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각 케릭터들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패스 액션이란 기믹을 통해 게임 내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학자인 사이러스는 관찰을 통해서 각 NPC들의 뒷 이야기들을 알아낼 수 있고, 올베릭은 NPC에게 결투를 걸어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과거 RPG에서 경험했던 요소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과거 RPG에서 사람들은 길거리에 있는 NPC들에게 말을 걸어서 게임에 대한 정보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얻어내고는 하였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에서도 패스 액션은 마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발동시킬 수 있고, 이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이며 잘 작동한다. 패스 액션은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NPC들과 세계에 대한 뒷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게임의 세계와 테마를 확장하는 역할을 잘 수행한다.




전투는 옥토패스 트래블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콘텐츠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는 턴제를 기반으로 8명의 케릭터 중 4명의 케릭터를 조합하여서 파티를 짜서 진행하게끔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고전적인 턴제 전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게임으로, 흥미롭게도 같은 유통사의 다른 개발사(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천주와 아키바 시리즈의 어콰이어가,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는 실리콘 스튜디오가 만들었다)와 유사한 컨셉을 보유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와 다르다.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의 전투 개념은 한 턴의 시간 및 기회의 확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게임의 전투는 브레이브 액션과 디폴트 액션을 통해 한 턴에 여분의 행동을 소비하거나 다음 턴을 위해 행동을 저축하는 등, 일종의 턴에 대한 부채와 수입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턴에 정말로 다양한 행동들이 이루어지며, 어떤 행동은 여러 개의 턴(또는 브레이브 액션)을 소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한 턴에 얼마나 많은 행동을 할 수 있는가? 가 아닌, 한 턴에에 얼마나 플레이어의 행동을 응축하는가가 관건이다. 게임에서 한 턴에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턴마다 쌓이는 BP를 소비해서 이 행동의 효과를 스케일링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P를 소비하지 않으면 가해지는 데미지가 300정도 수준이라면, BP를 최대로 소비하였을 때 플레이어가 가할 수 있는 데미지는 1200 정도 수준으로 데미지가 스케일링 된다. 이처럼 한 턴에 얼마나 행동을 효율적으로 응축시키는가가 전투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브레이크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모든 적들에게는 약점이 있고, 이 약점에 데미지를 가해서 방어를 벗겨내면 적은 한 턴 동안 행동 기회를 잃고 스턴이 걸리게 되며 데미지가 강하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약점을 벗겨내는 행동에는 제한이 있다. 물리속성의 공격은 각 약점별로 최대 4회(스킬의 경우, 더많은 회수로 공격할 수 있지만 명중률이 보장되지 않고 되는 무기가 있고 안되는 무기가 있다)뿐이며, 마법으로는 2~3회가 최대다. 이 회수를 유념하여 케릭터 조합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을 찌르기 위해서는 케릭터와 잡 조합을 전략적으로 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와 비슷하게 잡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브레이버리 디폴트는 두개의 잡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케릭터 기본 잡 이외에 하나의 잡만 착용할 수 있으며 각 케릭터별로는 중복된 잡을 부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티를 짤 때 케릭터들과 잡의 조합을 신중히 고려해야한다. 특히 잡별로 공략할 수 있는 약점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파티는 케릭터별로 역할을 분명히 정하고 컨셉을 맞춰야 한다. 이렇게 케릭터의 컨셉을 공고하게 잡고 파티를 구성하는 것은 이 게임에 있어서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다.


이렇게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는 몇몇 제약조건들을 부여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신중하게 전투를 진행하게끔 만들었다. 특히 보스나 적들의 기믹들이 다양하고, 고전적인 RPG에서 찾아볼 수 있는 즉사나 상태이상 패턴 등은 단순히 강력한 화력으로 전투를 압도할 수 없게끔 구성해놨다. 게임을 최대한 풀어나가기 위해서 게임 내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많은 리뷰어와 플레이어들이 지적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그건 바로 8명의 주인공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이들은 서로의 스토리와 행적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교류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곁다리에 불과하며, 정해진 조건에서 버튼을 눌러서 확인하지 않으면 이벤트를 확인할 수도 없다. 중요한 점은 8명의 주인공들의 메인 스토리에는 서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전무하며, 8개의 스토리는 완벽하게 별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사가 시리즈나 라이브 어 라이브 같은 게임들이 다양한 케릭터들의 이야기들이 한 데 모여서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이야기는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히든 보스의 존재와 맞물린 이야기를 통해 모든 케릭터의 스토리가 이어져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반전이 드러나는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고 반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테마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게임의 근본적인 한계다: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애시당초에 거대한 게임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게임의 작은 스케일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마을의 숫자나 NPC의 숫자, 던전의 규모 등등은 게임이 상당히 작게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물론 전투 중에 조우하는 적들이나 적들의 패턴들, 보스의 패턴들은 다양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적들이나 플레이어의 케릭터들은 그대로 서있고, 복잡한 애니메이션 없이 이펙트만 움직이는 형태의 그래픽 구조다 보니 게임에 있어서 아이디어는 많이 들어갔을지언정 예산이나 시간이 많이 투자되었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한 케릭터 당 여타 케릭터의 개입없이 4시간이라는 스토리를 할당한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보여진다:한 케릭터를 설명하고 완결짓는데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다른 케릭터가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8명의 케릭터가 서로의 스토리에 개입하여 이야기가 복합적인 형태로 구성된다면 단순하게 경우의 수만 따져봐도 엄청날 것이며 이에 요구되는 스크립트나 콘텐츠의 분량도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대신 콘텐츠의 단순함을 숨기기 위해서 레벨링 구간을 도입하였는데, 스토리 별로 권장 레벨을 설정해두고 8명의 케릭터를 고루 키워서 게임을 진행하게끔 강제하였다. 또한 패스 액션 등의 NPC와의 상호작용, 서브퀘스트 라인의 불친절한 부분은 단순하지만 플레이어가 모든 것을 일일이 하나씩 눌러보고 실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채택하여 필연적으로 시간이 소비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예산이 적게들어간 부분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 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속임수들이 잘 작동하여서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게 만드는 것은 제작자들의 노련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이러한 부분들은 분명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다:사람들은 분명 RPG에 있어서 하나의 테마와 거대한 이야기, 클라이맥스를 즐기고자 한다. 플레이어 자신의 행위로 인해서 거대한 세계가 바뀌고 여운에 잠기는 것, 그것이 RPG를 끝까지 플레이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하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에는 그러한 요소가 부족하다. 8명의 케릭터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잘 작동하지만, 굳이 그걸 8명이나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오히려 8명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산만해지지 않았나라는 의구심도 있고, 숫자를 줄이고 더 집중하였으면 더 매력적인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래픽과 BGM 측면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이 게임은 도트풍의 그래픽 스타일을 지향하지만, 언리얼 4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전투 이펙트나 브레이크 시의 이펙트를 생각해보면 일견 납득되는 부분들도 있다. 게임은 애니메이션을 최대한 적게 쓰되, 플레이어가 극적으로 느낄만한 부분(브레이크 시의 이펙트라던가)에는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들여 연출과 이펙트를 구성하였다. 덕분에 분명 도트풍의 복고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적인 그래픽을 보여준다. BGM은 연출의 고양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으며, 한 곡 한 곡 버릴것 없이 매우 인상적이다.


결론적으로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게임의 특징(옴니버스+소소한 규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구매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타이틀이다. 이 게임에는 거대한 규모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은 계획된 대로 잘 작동되는 편이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게임을 원하거나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게임을 선택하는 것은 그렇게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게임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락스테디 게임즈가 만든 배트맨 아캄 시리즈가 게임 업계 및 서브컬처 전반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이전까지 나왔던 많은 케릭터 게임들은 영화나 만화의 마이너 타이업 게임으로써 프랜차이즈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아캄 시리즈는 모든 것을 뒤집어 엎었다:아캄 어사일럼은 처음 등장하였을 시, 오롯이 '배트맨이란 케릭터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춰놓고 게임을 구성하였다. 전투와 잠입, 수사 등의 다양한 요소들은 새롭지는 않았지만 배트맨이라는 케릭터와 맞물리면서 유기적인 시너지를 냈었고 아캄 시티에서 아캄 나이트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3부작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었다. 아캄 시리즈의 성공은 수많은 미국 만화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하였다:과연 아캄 시리즈의 성공이 다른 만화 케릭터로 옮겨갈 수 있을까? 배트맨이 그러했었던 것처럼 다른 만화 케릭터를 플레이어가 조작하고 경험해볼 수 있을까?


마블의 스파이더맨(2018)은 아캄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전에도 스파이더맨은 게임들이 있었다:소니에서 나왔던 영화 삼부작에 맞춰서 게임이 나오거나, 쉐터드 디멘션즈, 레고 마블 히어로즈 시리즈나, 이런 게임들은 항상 있어왔다. 하지만 영화나 만화의 타이인 작품이 아닌,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 트리플 A의 규모에 맞춰서 게임을 만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스파이더맨을 개발한 인섬니악 게임즈는 이미 라쳇 앤 클랭크나 인퍼머스 같은 프랜차이즈로 검증된 커리어를 갖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소니의 퍼스트 파티라는 타이틀과 이점을 갖고 있는 회사였다. 락스테디가 아캄 시리즈 이전까지 크게 유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배트맨과 아캄 시리즈로 선두를 빼앗긴 마블이 절치부심하고 소니와 합작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의 완성도 역시 들어간 노력과 자본에 아깝지 않다고 평할 수 있다.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기본적으로 오픈월드의 장르를 취하고 있다. 게임은 뉴욕이라는 도회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여기저기 할 거리를 흩뿌리고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할 거리를 선택하게 만드는 구조다. 하지만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에 비해서는 다소 간소화된 부분들이 있다:예를 들어 GTA5의 경우, 플레이어는 군중 속의 일원으로 거리를 함께 누비며 사고를 치거나 운전을 하거나 등의 활동을 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경우에는 군중의 일원이 아닌 마천루의 꼭대기에서 거리를 내려다 보는 영웅 스파이더맨으로써 활동한다. 콘텐츠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군중과 상호작용 요소가 대부분 삭제되었기에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보다는 아캄 시리즈, 특히 아캄 나이트의 고담 시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아캄 나이트에서 고담 시에는 군중이 존재하지 않으며, 도시는 거대하고 할 것들은 많지만 개발자들이 기획 해놓은 방식으로만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정형적인 부분들이 있다. 스파이더맨 역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는 오픈월드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콘텐츠의 배분이나 소비 구조는 기획자가 설정해놓은대로만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아캄 나이트를 연상케하는 구석들이 많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은 아캄 나이트, 아니 여타 오픈월드 게임이나 케릭터 게임 등을 넘어서는 매력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스파이더맨의 전매 특허인 거미줄을 활용한 파쿠르 요소다. 원작 만화에서 스파이더맨은 마천루 사이로 거미줄을 쏘면서 자유롭게 이동한다:스파이더맨은 때로는 투석하듯이 웹슬링을 하거나, 짧게 거미줄을 쏴서 자신을 끌어당기거나, 양 손과 거미줄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급격하게 끌어당기는 등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스파이더맨의 움직임은 마천루라는 도회적인 풍경과 맞물려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지만, 게임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다는 문제가 있었다. 인섬니악은 바로 이 부분에서 트리플 A 급 게임 다운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마블의 스파이더맨 2018은 모든 도시의 빌딩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난간 등의 디테일을 집어넣고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인썸니악 게임즈는 스파이더맨을 통해 단순히 난잡하게 디테일으로만 채워넣은 것이 아닌, 직관적인 조작으로도 다양한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서 단순히 움직임만으로도 즐거운 게임을 만들어내었다.


스파이더맨의 파쿠르 요소의 핵심은 '가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쿠르는 이러한 요소를 감안하여 설계되어 있으며, 사용하는 버튼에 따라서 크게 3가지 범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스파이더맨은 오른쪽 트리거 버튼을 이용해서 기본적인 파쿠르와 웹슬링 상태로 이행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는 플레이어가 공중에서 거미줄을 쏘아 진자 운동을 하며, 가속을 얻으면 얻을수록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기본적인 이동의 핵심이다. 또한 이 상태에서 벽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웹슬링은 주변 지형에 영향을 강하게 받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거나 웹슬링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본 게임에서 가속은 고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최대가속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때 사용하는 것이 점프(X) 버튼을 이용한 웹 집이다. 웹 집은 주변의 높은 지형지물이 없어서 웹슬링 상태로 이행하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대 고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빌딩을 타고 달릴 때, 맨 끝 난간에서 X버튼을 타이밍 좋게 누르면 달리던 속도를 유지하면서 옥상 층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다. 


마지막은 난간이나 돌출부를 오른쪽+왼쪽 트리거를 눌러서 끌어당겨서 수평하게 먼거리를 이동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속도를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최고 속도를 얻는데 상당한 조작을 필요로 하며(타이밍 좋게 X를 눌러야 한다던가), 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웹슬링이나 벽타기를 통해 고도를 끌어올리거나 웹집으로 고도를 유지해줄 필요가 있다. 종합하자면 플레이어는 최고 속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파쿠르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게임은 이를 직관적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어크의 원버튼 파쿠르와 비교해보자면 스파이더맨의 파쿠르 시스템은 상당히 흥미롭다 할 수 있다:버튼 하나로 파쿠르 모드로 나뉘어지는 어크는 벽타기 등의 파쿠르가 상당히 단순화되었다. 무언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것처럼 보이더라도, 어크는 플레이어가 잡을 수 있는 난간이나 뛰어넘을 수 있는 플랫폼이 정형화되어 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은 파쿠르 요소를 3 버튼으로 쪼게서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요소를 늘리는 동시에, 직관적으로 접근한 덕분에 조작이 난잡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더이상 정해져있는 난간이나 플랫폼에 얽메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 덕분에 스파이더맨은 그저 빌딩 사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즐겁다. 


스파이더맨의 전투 시스템은 아캄 시리즈의 프리플로우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플레이어는 주먹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전투 중 물흐르듯이 매우 간단하게 적을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아캄 시리즈를 그대로 이식하지 않고, 전투에 3차원 공간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아캄 시리즈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플레이어는 에어 런치로 적을 공중에 띄워넣고 공격을 가할 수 있는데, 이는 아캄 시리즈보다는 데빌 메이 크라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타일리쉬 액션 개념에 가깝다. 물론 별도의 조작없이 버튼을 길게 누르는 것만으로 적을 띄울 수 있고, 살짝 텀을 두고 공격을 누르는 것만으로 공콤이 이어지게끔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의 일부로써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스파이더맨에서 공중전은 단순히 스타일리쉬한 게임 플레이를 넘어서 시스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선, 게임은 아캄 시리즈와 달리 총을 든 적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총의 사선에서 벗어나야하는 순간이 많다. 또한 위협적인 적들을 피하고, 한 명을 집중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CC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 아캄 시리즈를 하듯이 플레이를 하면(회피 위주의 지상전 플레이), 게임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구석이 많다. 피하기 어려운 공격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을 공중으로 끌어올려서 한 명씩 격파하고, 공중 회피를 자주 사용한다면 난이도가 그럭저럭 할만한 수준까지 떨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스파이더맨은 3차원의 공간에서 전투를 할 것을 요구하며, 그 배경으로 거대한 필드나 입체적인 공간들(빌딩 옥상이나 이런 곳)을 제공하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구사하기 때문에 전투는 아캄이나 여타 게임들과 비교하여 자유롭고 상쾌한 느낌이다.


스파이더맨은 또한 웹슈터 이외에도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해서 전투를 풀어나갈 수 있으며, 이는 상당히 중요하다:적의 체력과 상관없이 적을 바닥이나 벽에 거미줄로 고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구 하나 하나의 성능은 매우 뛰어나며, 쓰는 재미가 있지만 다양한 도구를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선 도구 휠을 띄워서 도구를 일일이 지정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고, 웹슈터를 제외하면 도구들은 무작위로 보충되기 때문이다. 자주 쓰는 도구 몇개라도 단축키로 지정해놓고 빠르게 불러낼 수 있었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을 건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스토리 부분에서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아캄을 훌륭하게 벤치마킹하였다. 아캄 시리즈의 근본적인 테마는 배트맨이 누구인가?이다. 이 테마를 위해서 배트맨의 대적자들인 빌런을 배치하고, 배트맨에게 개인적인 재난과 시련을 주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확고한 케릭터를 정립한다. 스파이더맨도 유사하다. 게임은 존경했던 멘토 옥타비아누스가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 실제 악이라 할 수 있는 오스본은 처벌받지 않고, 스파이더맨의 소중한 사람들이 위협받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시민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의 고뇌를 동시에 다뤄내고 있다. 게임이 전반적으로 빌런을 아껴서 아쉽다는 느낌은 있지만, 큰 틀에서의 스토리는 스파이더맨이란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스파이더맨은 훌륭한 트리플 A 게임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에는 게임 외적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그것은 바로 아캄 시리즈를 너무 의식하고 벤치마킹한 나머지 몇몇 부분에서는 카피켓이라 할 수 있을 정도고 게임을 배낀 것이다. 트리플 A 게임은 자본이 많이 들어가기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성공한 작품의 공식을 이식하는 것은 상당히 흔한 일이다. 하지만 유비소프트의 게임 프랜차이즈들이 서로를 모방하고 배끼더라도, 어느정도는 프랜차이즈의 성격에 맞게 시스템을 개수하는 것처럼 그대로 모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몇몇 미션들이나 장면들은 '그대로 배낀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이 스콜피온의 독에 당해서 해독제를 만들고 도시를 활보하는 미션 같은 경우가 있다:이 장면은 분명히 아캄 시티에서도 비슷한 시퀸스가 있었으며, 심지어 연출도 비슷하다. 그외에도 라디오 타워 개방을 위해 주파수를 맞추는 부분 등의 자잘한 부분에서도 아캄 시리즈의 요소를 그대로 들고온 경우를 볼 수 있다.


또다른 예는 잠입 미션이다:전반적으로 스파이더맨의 잠입 요소는 본편의 파쿠르나 전투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깊이가 얕고 사족에 가깝다. 아캄 시리즈에서 잠입 파트가 배트맨이란 케릭터가 공포로 적을 지배한다는 컨셉을 구현하는 주요한 연출과 게임 플레이였다면, 스파이더맨에서 잠입은 뭔가 그 컨셉이나 당위성이 부족하다. 심지어 몇몇 서브 미션의 경우, 잠입 플레이와 전투 플레이가 상충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예를 들어 창고 제압 미션의 경우, 첫번째 웨이브의 적들을 잠입으로 모두 처리할 시 두번째 웨이브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적들이 스파이더맨의 존재를 인지하고 공격을 가한다. 보통의 잠입 및 제압 플레이의 경우, 웨이브가 가산되더라도 잠입상태를 유지한채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스파이더맨의 잠입 플레이는 뭔가 전체 게임 플레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차라리 이런 부분에서 과감하게 잠입을 쳐냈다면 게임은 좀더 깔끔하고 괜찮아졌으리라 본다.


결론을 내리자면, 스파이더맨은 아캄 시리즈의 좋은 점을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재밌는 게임을 만들어낸 경우라 할 수 있다. 오픈월드 게임치고 클리어 후의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간혹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스파이더맨이라는 게임의 분량이 부족하거나 재미를 퇴색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아캄 시리즈를 이전에 플레이했던 사람들에게 스파이더맨은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묘한 기시감이 들어서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 게임이기도 하다.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추후에도 이런식으로 후속작을 만들면 어떤식으로든 스파이더맨의 개성과 배트맨의 개성 사이에서 충돌하여 완성도가 떨어질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게임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위치 버전 기반의 리뷰입니다.


1987년 첫 작품이 발매된 이후, 팔콤의 이스 시리즈는 30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장수한 게임 프랜차이즈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30년 동안 존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장을 꾀한 다양한 게임 프랜차이즈들과 다르게 이스라는 프랜차이즈의 규모는 커지지 않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RPG인 파이널 판타지를 이스 시리즈와 비교해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7편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작품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엇이 일본 RPG인지를 다루는 비전을 갖고 게임을 만들었다. 파이널 판타지의 비전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 프랜차이즈가 가지는 시사점은 뜻깊다:다른 JRPG 프랜차이즈들의 비전도 점차 원대해지고 담대해지고 있으며, 더는 JRPG 장르 문법과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이스 프랜차이즈와 팔콤이라는 회사는 달랐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지향점은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스 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 역시 그러한 팔콤의 지향점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스 시리즈 넘버링 최신작인 이스 8의 첫인상은 경악스럽다:PS3 수준의 그래픽과 허접한 동작은 10년 전의 JRPG를 연상케 하였다. (물론 비타판이 처음으로 나왔고, 비타판이 베이스가 되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스 8는 10년 전, 20년 전의 게임을 '그대로' 지금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던 게임이다. 즉, 이스 8은 여전히 JRPG라는 경계에 갇혀있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팔콤은 이스 8을 통해 과거의 미덕을 정직하게 구현하였고, 이 덕분에 이스 8은 과거의 JRPG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스 8에서 눈여겨 봐야 하는 부분은 게임 서사와 게임 진행의 유기적인 결합이다. 그리고 이 결합의 형태는 여타 트리플 A 게임이나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절제와 가지치기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스 8은 모험가 아돌 크리스틴이 세이렌 섬에 표류하고 탈출하는 과정을 다루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이벤트와 시스템으로 연동이 되면서 게임 플레이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콘텐츠는 무인도에 표류하여 생기는 거대한 문제(표류촌을 습격하는 마물들 토벌, 탈출하는 배를 만드는 것 등)에서 생존자들 간의 소소한 문제까지 다양하고 방대하게 구성되었다.


만약, 일반적인 트리플 A게임이었다면 이러한 과정을 디테일으로 가득 찬 거대한 규모의 형태로 구현하였을 것이다:웅장한 자연과 배경음, 화려한 괴물들이나 복잡한 시스템 등등…. 트리플 A 게임들이 갖는 주된 특징은 바로 사소한 부분까지 사로잡는 디테일이다. 설령 이러한 작은 디테일이 실제 게임 플레이에 큰 영향이 없다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게임이 세상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 8은 이러한 명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이 게임에는 사소한 디테일이나 화려한 그래픽도, 복잡한 시스템도 없다. 이스 8에는 모든 것들이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거대한 오픈 월드처럼 보이는 필드는 사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일종의 통로 형태의 스테이지이며, 몬스터 레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접근할 수 있는 곳과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정해져 있다. 메인이나 서브 퀘스트는 친절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그 길이와 분량은 짧다. 겉보기에는 거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 8은 실제로는 상당히 소소한 규모를 가진 게임이다.


하지만 이스 8의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이 단순하게 대충 들어간 게임'이 아니라 '그런데도 모든 것들이 적절하고 알맞게 들어갔다'라는 점일 것이다. 각각의 서브퀘스트들은 분량이 짧지만 질리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양을 갖고 있으며, 탐색을 통한 지도 제작은 단순히 일직선 진행만으로 100%를 채울수 없기에 구석구석 꼼꼼하게 찾아보게 만든다. 이스 8의 모든 콘텐츠는 모두 단순하지만 반복적이지 않되 질릴만하면 완결되는 상당히 적절한 분량 및 난이도 조절을 거친다. 이 덕분에 이스 8은 단순한 콘텐츠에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주를 가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에 계속 집중하고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팔콤은 이스 8에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이스 8의 이야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이스 8의 이야기는 기본적인 모티브는 영웅전설 3 하얀 마녀에 둔 생존자들의 군상 극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한 인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에 헌신할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이스 8은 다뤄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스 8에는 여타 게임 서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적자의 존재가 희미하다:이스 8의 궁극적인 적은 캐릭터가 아닌 불합리하고도 무정한 자연의 섭리(진화와 도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스 8은 그 불합리하고도 무정한 자연의 섭리에 대항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그 구심점인 아돌, 그리고 다나에게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이런 점에서 이스 8은 게임의 규모를 적절하게 압축한다:일반적인 JRPG나 게임이었다면, 플레이어가 맞서고 있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서 많은 수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다뤄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몇몇 중요한 인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비중과 존재감이 0에 수렴되었을 것이다. 마치 제노블레이드 크로스가 그랬었던 것처럼 말이다.:플레이어는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거대한 키즈나 그램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로 기억에 남고, 메인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의 수는 더더욱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스 8에는 군상의 규모를 20명 내외로 압축시키고 모든 인물에게 스토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하고, 플레이어의 손에 닿는 범위 내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게끔 했다. 일본 아니메적인 캐릭터 설정과 구성이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스 8에서 플레이어는 이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 과정 중에 세상의 불합리한 이치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모티브를 얻게 된다.


게임의 콘텐츠 구성은 이러한 이스 8의 서사에 강한 영향 아래 놓여있다. 각각의 콘텐츠들은 캐릭터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예를 들어서 거래소의 역할을 하는 디나의 경우, 플레이어가 필드에서 주어온 자원들을 상위나 하위의 소재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디나라는 인물이 쾌활하면서 무인도까지 와서 장사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또한 각종 캐릭터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쓰이는 사치품을 플레이어에게 판매함으로써 여타 캐릭터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이스 8은 복잡한 시스템이나 디테일 없이 단순하고 직관적인 요소들을 이용해서 게임 플레이를 구축하고 서사를 구성하는 캐릭터를 묘사한다. 그 규모가 작고, 일본 아니메 같은 부분이나 유사가족의 분위기는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요소이긴 하지만, 팔콤은 정확하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들어간 예산과 디테일이 부족하지만, 이스 8은 자신이 하고 싶고 묘사하고 싶은 부분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이스 8의 전투 역시도 작품의 전체적인 기조를 따라간다:디테일이나 복잡한 시스템은 없지만, 이스 8의 전투는 빠르고 부드럽게 잘 작동한다.  일단, 유념해야 하는 점은 이스 8에서 화려한 이펙트나 피격 모션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소위 이야기하는 타격감이 이스 8에는 없기 때문에, 때로는 플레이어가 적을 제대로 공격하는지 헷갈리는 일이 왕왕 발생하기도 한다. 트리플 A 게임 다운 풍성한 모션이나 편의성 등은 이스 8의 전투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긴 하다.


그러나 전투의 전반적인 개념이나 흐름은 잘 짜여 있으며, 잘 작동하는 편이다. 우선 이스 8은 기존 시리즈의 플래시 무브(정확한 타이밍에 회피 시 플레이어의 속도가 증가하고 적이 느려지는 시스템)와 플레시 가드 시스템(적의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가드 할 시, 공격력이 향상하는 시스템)를 탑재하였으며, 얼마나 정확한 타이밍에 적의 공격을 받아내고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동료별로 베기/찌르기/타격 속성의 공격이 나누어져 있으며, 플레이어가 적의 약점에 따라서 운용하는 캐릭터를 바꾸어서 게임을 풀어나가게끔 했다.


또한 플래시 가드/무브, 약점 공격 이외에도 중요한 전투 시스템은 전투 스킬이다:플레이어는 최대 4개의 스킬을 단축키로 지정할 수 있으며, 각각의 스킬들은 발동에 SP가 소모된다. 전투 스킬은 일반 공격보다도 훨씬 더 많은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지만, SP는 일반공격과 플래시 가드/무브로만 차오른다. 즉, 플레이어가 얼마나 정확한 타이밍에 공격을 피하거나 받아내느냐가 이스 8 전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스 8은 전반적으로 리소스를 크게 잡아먹지 않는 게임이기에, PS4에서는 안정적으로 60프레임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PS4 버전을 기준으로 이식된 스위치 버전에서는 퍼포먼스 측면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때가 가끔 있다. 스위치 판 이스 8는 대부분 30프레임으로 구동되지만, 지하 성당에서는 15~20프레임 수준으로 심각한 퍼포먼스 이슈를 보여준다. 심지어 이 구간에서는 제노블레이드 2의 동적 해상도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져 PSP를 연상시키는 수준의 그래픽임에도 프레임이 아주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다행히도 이 구간만 벗어나면 나머지 구간에서는 큰 퍼포먼스 이슈는 없지만, 가뜩이나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이 아닌데도 퍼포먼스 이슈를 보여주는 부분은 다소 실망스럽다.


결론적으로 이스 8은 과거 JRPG가 갖고 있던 미덕을 제작사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훌륭하게 구현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스위치 버전으로 플레이하였을 때,  몇몇 구간에서의 퍼포먼스 이슈가 심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클리어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었고, 또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JRPG 특성과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은 스위치 버전 역시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스 8의 미덕과 장점은 전적으로 과거의 JRPG에 대한 향수를 기억하고 있는 한정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가능성을 가진 것이 이스 8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 갓 오브 워 2018에 대한 스토리는 여기를 참조해주세요.


갓 오브 워 2018은 갓 오브 워 프랜차이즈의 가장 최신작이다. 갓 오브 워 시리즈는 데빌 메이크라이나 베요네타와 같은 액션 장르의 게임으로, PS2 시절부터 과격한 QTE와 액션으로 액션 게임의 역사와 후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게임이었다. 하지만, 갓 오브 워 프랜차이즈에도 후속작이 나오지 않아 프랜차이즈의 미래가 불투명하였던 시기가 있었다. 이는 갓 오브 워 어센션과 3편이 PS2 시절의 게임 플레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갓 오브 워 2018은 북구 신화로 배경으로 이야기와 분위기를 바꾸고, 게임 플레이를 바꿈으로서 프랜차이즈가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갓 오브 워 2018은 다양한 측면에서 만족감을 주는 게임이다.


갓 오브 워 2018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액션 플레이가 숄더뷰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전통적으로 갓 오브 워 시리즈는 원거리에서 카메라로 플레이어와 스테이지를 함께 잡아내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갓 오브 워 2018은 어깨 뒤에서 카메라를 잡아내는 덕분에 뭔가 다크소울과 같은 액션 게임과 비슷해졌다:실제 회피나 구르기 같은 요소들이 다크소울의 감각과 유사해진 것도 이 떄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갓 오브 워 시리즈가 원거리에서 잡아내는 카메라 워크 덕분에 수많은 적들을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쓸어내는 연출을 보여주었다면, 갓 오브 워 2018은 플레이어 뒤에 카메라를 붙임으로써 액션의 연출과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집중한다. 또한 맨손 격투와 스턴게이지, 기절 시 즉사로 이어지는 공격 등을 추가하여 기존 시리즈와의 차별성을 꾀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메라 위치나 여러 요소들이 변경/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갓 오브 워 2018은 전작의 전투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과격한 즉사 공격이나 주변을 휩쓰는 광역 공격, 근거리 무기를 이용해 먼 거리의 적을 공격하거나 하는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갓 오브 워 2018은 시점과 시스템의 개보수를 통해 단순하게 전작의 기믹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넘어서 자유로운 형태의 액션을 구성한다:플레이어는 레비아탄 도끼를 휘두르며 상대를 공격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원거리의 적을 향해 도끼를 던지고, 맨손 상태에서 적에게 연속 공격을 퍼부어서 경직을 먹이고 즉사 공격을 행한 뒤, 마지막으로 도끼를 손으로 회수하면서 적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수 있다. 갓 오브 워 2018은 이 모든 것들을 플레이어의 자유에 맡기며 자연스럽게 구성하며,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게임은 이전 프랜차이즈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애쓰는 것은 아니다:혼돈의 블레이드를 사용한 전투는 기존 갓 오브 워 시리즈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며, QTE나 즉사 공격 등의 이전 작들의 시스템들을 많은 부분 기믹적으로 재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갓 오브 워 2018에서 추가된 아들 아트레우스를 이용한 전투 기믹은 상당히 흥미롭다. 아트레우스는 전투 중 무작위의 적에게 메즈를 걸거나, 활을 쏘아서 경직을 주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어를 돕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AI에게 맡기는 것 외에도 플레이어는 아트레우스에게 언제 활을 쏠 것인지, 언제 마법을 쓸 것인지 등을 지시내릴 수 있어서 전투를 더욱 유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 기존 동료가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임들과 갓 오브 워 2018을 비교해본다면, 갓 오브 워 2018의 아트레우스는 멍청하고 잘 작동하지 않는 AI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상당히 훌륭하게 작동하고 실제 도움이 되는 AI 동료다.


기존 시리즈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갓 오브 워 2018가 가장 달라진 부분은 바로 아이템 세팅과 일부 RPG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크레토스는 자신이 장비한 아이템 레벨에 따라서 체력이나 공격력 등의 수치가 변경되며, 플레이어는 장비에 룬을 박아넣음으로써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구성하게끔 만들어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여타 트리플 A 게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흐름인데(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같은걸 보자), 갓 오브 워 2018의 경우 상술한 자유로운 전투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게임의 경험을 대폭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문제는 갓 오브 워 2018의 아이템 제작과 세팅 요소는 덜 다듬어진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플레이어는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적들을 때려잡으면서 소재를 파밍해야 하는데, 이 소재가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게임은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게임에서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오로지 아이템 제작과 룬 세팅 뿐인 점, 그리고 몇몇 구간에서는 레벨링을 필수로 강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파밍 요소에 대한 불편함은 잘만든 게임에 재를 뿌리는 형태라 할 수 있다.


또한 게임의 맵과 스테이지 디자인은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갓 오브 워 2018의 맵 디자인은 전적으로 PS3 말기에 나온 툼레이더를 그대로 이식한 수준인데, 플레이어는 일직선으로 구성된 여러 개의 복도 구간을 왔다갔다 하면서 게임을 진행한다. 이런 식의 맵 구성은 이미 여러 게임에서 등장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놀랍거나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갓 오브 워 2018의 맵 디자인은 어딘가 모르게 밀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일단 거대한 호수를 배경으로 여러 사이드 퀘스트를 배치한 것은 게임의 규모를 강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고 판단되나, 그 덕분에 선착장에 배를 대는 불필요한 과정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또한 맵 UI가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서브 퀘스트를 찾거나 하는 부분은 상당히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게임에 큰 지장을 줄 정도로 엉망은 아니지만, 재미를 주는 여타 요소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끝으로 갓 오브 워 2018의 그래픽은 아름답다. 단순히 그래픽적인 효과나 이런 부분을 떠나서, 디테일에 극도로 집착하는 모습은 모범적인 트리플 A 게임 답다 할 수 있다. 연출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너티독의 좋은 점만 받아들이고 있다. 스토리 분석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빼두기는 했지만(여기), 너티독이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이상한 결말로 초를 쳤던 것에 비교한다면 오히려 좋은 점을 발전 계승한다는 점은 높게 살만하다.


결론적으로 갓 오브 워 2018은 대자본이 들어간 트리플 A 게임답게 훌륭한 재미와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며, 더 나아가 프랜차이즈의 부활을 훌륭하게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PS4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매를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스위치 버전을 기준으로 한 리뷰입니다.


훌륭한 게임의 조건은 다양하다:플레이어를 흔드는 스토리나 아름다운 그래픽 또는 아트워크, 재미 등등 사람마다 훌륭한 게임을 정의하는 조건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본 리뷰에서는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매체로서의 게임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게임은 직접 경험하는 매체이자 자신을 다른 매체에 투영하여 누리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에 많은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끔, 게임 내의 표현과 서사 및 규칙 등을 통일성 있게 구성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훌륭한 게임이 될 수는 없다: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 성립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일 뿐이며, 진정 훌륭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그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훌륭한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든다. 흔히들 많은 플레이어가 착각하는 자유도의 개념이 여기에 부합할 것이다:엄밀하게 게임은 규칙이 있어야지만 성립 가능하기에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규칙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게임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 규칙을 이용하여 문제를 풀어나갔을 때의 쾌감은 여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훌륭한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단순히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학습하고 규칙을 이용해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나가게끔 유도한다.


이 리뷰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투 더 브리치도 그런 훌륭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서브셋 게임은 FTL을 통해서 로그라이크와 우주 함선 운영 및 전술을 훌륭하게 결합하였다. FTL의 특기할만한 점은 인디 게임 기준에서도 자원을 엄청나게 적게 잡아먹으면서도(거친 도트풍의 그래픽, 거의 전혀 없는 그래픽 애니메이션 등) 게임으로서 재미는 매우 뛰어났다. 인투 더 브리치도 마찬가지다:게임은 16비트 콘솔 시절의 그래픽 수준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 규칙은 직관적인 동시에 정교하다. 흥미로운 점은 로그라이크 류의 무작위 생성 요소들을 게임에 탑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투 더 브리치의 게임 플레이는 무작위 요소에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플레이어는 거대한 메카닉을 3대 조종하여 전력을 공급하는 그리드를 보호하고, 정해진 턴 동안 버티면 된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하는 점은 게임의 단순한 구성이다:우선 지도는 8X8의 타일로 구성되어 있어 상당히 작은 규모에서 게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적들의 체력도 낮고, 별도의 데미지 계산 공식이나 파라미터들이 있지 않기 때문에 공격/방어 수치에 따른 변수도 없다. 규칙도 단순히 정해진 턴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고, 한 판에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으며, 심지어 조작하는 캐릭터 수도 최대 3명이기 때문에 첫인상은 매우 조촐하고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첫인상과 별개로 인투 더 브리치는 단순반복적인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반복적인 플레이와 반대로 게임 플레이는 매우 밀도가 높고 플레이어의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게임은 직관적인 규칙과 흐름을 갖고 있기에 복잡한 규칙 숙지가 없더라도 다양한 파훼법을 실험해볼 수 있다. 또한 지도의 생성이나 적의 구성 등을 결정하는 로그라이크 요소들은 게임을 클리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질리지 않게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투 더 브리치는 로그라이크 요소를 가진 전략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본질은 여타 로그라이크와 다르게 무작위에 근거한 반복이 아닌 다양한 환경에 대해 플레이어의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쪽에 가깝다. 이는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미덕이다.

이런 인투 더 브리치의 미덕은 '확정된 미래'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게임 내의 미션 중 하나인 열차 보호 미션을 보자. 열차는 총 4턴에 걸쳐서 선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달린다. 그리고 괴수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스폰되고, 스폰된 괴수들은 주변의 건물이나 열차를 공격한다. 게임 내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표시된다. 어떤 괴수가 어디를 공격하고, 예측되는 피해는 어떻게 되며, 괴수의 스폰 위치는 어디며, 열차는 어디로 움직이는지 등등 각 턴이 시작될 때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확정된 미래를 제시한다. 장기/체스로 놓고 본다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다음 상대의 수를 미리 알려주고 플레이어가 상대 수에 대한 파훼법 자체를 역설계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역설계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장기말, 3대의 메크로 조합된 스쿼드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메크와 스쿼드들은 데미지를 입히는 것을 넘어서 '필드'를 지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기본 스쿼드인 리프트 워커는 컴뱃 메크의 주먹을 이용한 준수한 데미지+밀처내기로 주력 딜을 하며, 캐논 메크와 아틸러리 메크를 이용해 괴수들을 먼 거리에서 밀쳐내어 낙사를 유도하거나 위치를 바꾸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또다른 스쿼드인 블리츠크리그의 경우, 상대에게 가한 데미지가 인접한 유닛/건물에 따라 타고 흐르는 라이트닝 메크와 상대를 낚아채서 강제로 뭉치게 만드는 후크 메크, 전도체로 취급받는 돌덩이를 집어 던지는 볼더 메크의 조합을 통해 괴수를 밀쳐내고 제어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대가 뭉치는 것을 유도하여 라이트닝 메크의 전기 채찍으로 괴수를 일망타진하는 식의 플레이를 보여준다. 인투 더 브리치에 등장하는 총 8개의 스쿼드들은 서로 겹치는 컨셉없이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전장을 통제하며, 각 유닛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리고 이들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여야 확정된 파멸을 뒤바꿀 수 있다.

하지만 장기나 체스에서 '미래에 확정적으로 일어날 수'를 안다고 해서 그것을 역설계하고 파훼하기가 쉬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상황과 조합에 따라서는 모든 경우에 정답이 되는 신의 한 수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게임은 닥쳐올 결과만을 보여줄 뿐,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정 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만이 닥쳐올 결과를 토대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은 플레이어가 고민한 만큼 부드럽게 화답한다:이렇게 플레이어의 생각을 유도하고, 생각한 만큼 작동한다는 점이 인투 더 브리치의 핵심적인 매력이다. 이런 매력 덕분에 혹자는 인투 더 브리치가 퍼즐 장르의 문법을 따른다고 이야기했지만, 정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속성 때문에 명확한 파훼법이 존재하는 퍼즐 게임의 장르로 놓고 보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인투 더 브리치는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스쿼드 메크들과 괴수들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점에서 퍼즐 게임 특유의 정교함을 갖고 있기도 하며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 로그라이크 요소들은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생각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변수 생성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하였듯이 게임은 짤막하고 단순한 것들을 조합하고, 이마저도 확고한 규칙에 근거하여 생성하기에 확률의 변덕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여버린다:예를 들어 괴수의 공격 패턴은 장기/체스의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유사하며,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내의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평가한 뒤 행동한다. 이 덕분에 플레이에 따라서는 다음 턴의 괴수 움직임뿐만 아니라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서 다다음 턴의 괴수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심지어는 통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투 더 브리치에서 생성되는 무작위 요소들은 확률의 변덕스러움보다는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있는 도전이다.



하지만 때로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다. 본질적으로 인투 더 브리치는 퍼즐게임이 아니며, 항상 정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규칙에 따라 괴수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각각의 스테이지에서는 전술적으로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되, 장기적인 전략에서는 피해를 관리하는 위험 통제를 하게끔 만든다. 이러한 전략적인 피해 관리 요소가 바로 섬 형태의 스테이지 구성과 전력 그리드, 명성의 관계다. 우선 게임은 크게 스테이지의 테마를 결정하는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섬은 7~8개의 구역 스테이지로 잘게 쪼게져 있다. 각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플레이어는 전력 그리드와 명성을 보상으로 얻게 되는데, 플레이어의 필요에 따라서 이들을 원하는 순서로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지만, 자원 관리 요소가 들어있다.

특히 주의해서 봐야 하는 부분은 전력 그리드다:게임 내에서 메크는 파괴되면 다음 스테이지에서 완벽하게 수리되지만, 메크에게 전력을 공급해주는 그리드는 게임의 전체 체력을 상징하며, 이것이 0으로 줄어들면 곧바로 게임 패배로 이어진다. 전력 그리드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피해가 누적되기 때문에, 한 스테이지에서 큰 피해를 입으면 다음 스테이지 때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역으로 플레이어가 그리드 손실을 최소화하고, 전력 그리드를 틈틈이 보상으로 모은다면 한두 번의 그리드 손실은 감수할만한 손실이 된다. 이러한 그리드 손실은 어떻게 피할 수 없는 결과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스테이지 클리어 외에 보조 임무를 달성을 위한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각각의 스테이지들은 제각기 다른 단순한 보조 임무들을 갖고 있다:특정 건물을 지키거나, 시설을 작동시켜 특정한 목표를 행하거나 등의 다양한 내용을 가진 보조 임무들은 특정한 조건 달성 시 명성이라는 보상을 제공한다. 이 명성 점수는 각 스테이지가 끝나고 나서 플레이어가 원하는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재화로 활용되는데, 파일럿의 레벨업보다는 메크 기능 해금을 위한 리액터 코어 투자로 강해지는 것이 더 직관적인 인투 더 브리치에서는 명성 점수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각각의 보조 임무들은 녹록지 않고 때로는 스테이지 내에서 전력 그리드 손실로 이어지는 판단을 해야 하기도 한다.  즉,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단기적인 전술과 장기적인 전략 부분에서 균형을 요구하며,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메크 업그레이드와 장비, 파일럿 운영은 스쿼드의 능력을 보정하는 세부적인 요소들이다. 큰 틀에서의 게임 운영을 스쿼드 선택이 결정한다면, 파일럿의 육성과 장비 또는 리액터 코어의 확보는 플레이를 편하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파일럿의 경우, 메크 업그레이드보다 레벨업의 한도가 제한되며 레벨에 따른 능력 개방이 무작위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육성과 강화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파일럿은 각기 가진 개성이 뚜렷하고 무엇보다 게임 클리어/패배 시, 자신이 선택한 파일럿 한 명을 레벨과 능력을 계승하기 때문에, 초반 스테이지 클리어에 도움을 준다. 메크 업그레이드와 장비의 경우, 리액터 코어 투자를 통해 메크나 장비의 정해진 옵션을 개방하는 쪽이긴 하지만, 리액터 코어 자체가 게임 내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이기 때문에 장비의 어떤 옵션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인투 더 브리치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턴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흠잡을 곳이 없는 게임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로그라이크 류 게임답게 짧게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양태로 게임이 흘러가는데, 이들을 풍족하게 만드는 다양한 변수와 스쿼드가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기존 8개의 스쿼드를 해금하고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시간과 도전을 요구하지만 말이다. 추가로 스위치 버전으로 이식된 인투 더 브리치는 기기의 컨셉과 상당히 잘 맞아떨어진다. 애당초에 도트풍의 2D 게임인 만큼 큰 화면보다는 작은 화면에서 보았을 때가 더욱 어울리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는 클리어까지 걸리는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스위치로 휴대하며 틈틈이 하기에는 매우 적당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인투 더 브리치는 로그라이크의 요소를 빌고 있지만, 단순화된 규칙들과 확정된 미래를 고쳐나가는 게임 플레이 덕분에 여타 로그라이크류 게임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에 도달한 로그라이크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스위치를 갖고 있다면 구매를 적극적으로 고려해도 좋은 게임이며, 추후 FTL 같이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더 확장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훌륭한 게임이 되리라 생각한다.



게임 이야기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상당히 독특한 게임이다:겉으로 보기에는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브레이버리 디폴트 시리즈의 잡 시스템에 턴제 전투 감각(턴을 몰아 쓸 것인지/저축할 것인지/혹은 파티원과 나눠쓸 것인지)들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브레이버리 디폴트는 직접적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빛의 4전사, 더 나아가서 옛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많은 게임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겉보기와 다르게 본질적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동떨어진 부분들이 있다. 8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에서 케릭터의 개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게임의 제목처럼(옥토패스Octopath, 8개의 길) 게임은 8명의 주인공과 8개의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몇몇 사람들은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파이널 판타지보다는 사가 시리즈에 레퍼런스를 두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코타쿠 기사: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파이널 판타지 6와 비슷하지 않다) 오히려 코타쿠의 경우에는 사가 시리즈를 연상된다고 평하기도 하였다:사가 시리즈는 한 때 스퀘어 RPG를 대표하였던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으며, 프리 시나리오나 적들도 같이 레벨이 오른다든가, 혹은 복수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든가 등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몇몇 예를 들어서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사가 시리즈를 대표하는 로맨싱 사가 2의 경우를 보자:로맨싱 사가 2편은 황제를 계승하는 사람들이 7영웅이라는 적에 맞서 각기 다른 시대에서 싸운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관통하는 소재를 가진 옴니버스식 구성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맨싱 사가 3에서는 서로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8명의 주인공 중 한명을 선택하여 게임을 진행하고, 케릭터에 따라 즐기는 컨텐츠와 이벤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로아누의 후작인 미카엘를 주인공으로 선택할 경우, 국가를 경영하며 매스 컴벳이라 불리는 전략 시뮬레이션을 미니 게임으로 플레이하며, 토마스를 주인공으로 선택할 경우에는 상회를 운영하는 경영 시뮬레이션을 미니 게임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사가 시리즈는 큰 이야기와 별개로 각 주인공들의 개성과 이야기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들에 초점을 맞춰서 게임을 구성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파이널 판타지나 드래곤 퀘스트 같이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게임과는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사가 시리즈를 연상되는 부분도 '서로 다른 8명의 주인공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싸운다'라는 전통적인 JRPG가 아닌, '8명의 주인공이 서로 다른 테마를 가진 각자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고 풀어나간다'라는 부분 때문이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사가와 같이 야심차게 큰 이야기를 다루거나, 상당한 분량의 미니게임을 넣어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에 각 케릭터를 상징하는 패스 액션 시스템을 도입하여, 세계의 NPC들과 상호작용하고 전투에 케릭터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즉, 사가 시리즈 특유의 방대함은 없지만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케릭터와 세계의 상호작용을 단순하지만 의외성을 가진 형태로 구현한다. 예를 들어 게임 내 서브퀘스트의 경우, 별도의 목표나 지시사항 없이, 플레이어가 NPC의 대사만 듣고 이 대사를 통해서 어떤 패스 액션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게끔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옥토패스 트래블러는 복잡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플레이어를 생각하게 만들고, 케릭터의 개성과 특성을 계속해서 인지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전투 시스템은 브레이버리 디폴트와 파이널 판타지의 영향을 강한 편이지만, 케릭터의 개성과 게임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사가 시리즈에 영향을 더 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단순하지만 'RPG가 갖춰야 하는 클리셰의 기본'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비해서, 사가 시리즈의 특징은 현대 게임의 미덕에서 벗어나있다고 평할 수 있다:다양한 이벤트와 자유로운 진행, 케릭터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구성 등은 게임 제작이나 플레이에 있어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떄 많은 팬을 보유하였던 사가 시리즈가 근 10년 가까이 정식 신작이 없었던 체로 지냈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2016년 비타로 발매된 사가 스칼렛 그레이스는 근 10년 만에 나온 사가 시리즈의 신작이었다. 물론 초창기 공개되었을 당시, 그래픽이나 일러스트 면에서 상당히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독창적인 전투와 엄청난 양의 이벤트를 통해서 사가 시리즈를 훌륭하게 계승하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후 2018년 스위치와 PS4, 스마트폰 등의 플랫폼으로 게임을 확장 이식하였다. 어떻게 보면 지속해나가기 어려운 게임 프랜차이즈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돌아왔다는 것은 사가 시리즈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추후, 옥토패스 트래블러를 클리어한 후에는 순서대로 사가 스칼렛 그래이스와 로맨싱 사가 2를 플레이/클리어할 예정입니다. 

추후, 이 3편이 모두 마무리 되면 3개를 함께 엮는 글을 써보도록 하곘습니다.

게임 이야기


*스위치 판을 기준으로 쓰여진 리뷰입니다.


로컬 멀티플레이는 첫 비디오 게임기에 두 번째 컨트롤러가 달릴 때부터 존재해왔었다. 그리고 로컬 멀티플레이의 등장에는 핵가족이라는 가족 구성과 TV를 중심으로 한 거실 공간이 강한 영향을 미쳤다:아이들은 자신의 친구를 거실로 초대해서 두 개 이상의 컨트롤러를 이용해 비디오 게임을 같이했다. 하지만 핵가족의 축소와 인터넷의 발달은 더는 거실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플레이하는 로컬 멀티플레이의 존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프라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처럼 보였던 로컬 멀티플레이가 시간이 흘러도 질기게 살아남았다. 많은 것들이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같은 것을 즐기는 게임은 꾸준히 명맥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오버쿡드 2는 오버쿡드 1편의 후속작이다. 오버쿡드의 게임 플레이는 단순하고 명확하다:최대 4명의 요리사가 말도 안 되는 부엌에 서서 요리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여 음식을 내보낸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게임 플레이 덕분에 오버쿡드는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지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오버쿡드 1편은 스위치로 2017년에 이식되었으며, 2018년 4월까지 약 50만 장을 판매하여 오프라인 협동이라는 장르가 스위치에 어울린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였으며, 오버쿡드 2가 E3 콘퍼런스 당시 닌텐도를 통해서 처음 공개된 것은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오버쿡드 2의 게임플레이는 매우 간단하다:플레이어들은 재료를 집어서 다듬고 조리한 뒤에 내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설거지는 덤이다.) 이것은 오버쿡드 2의 강점이자 매우 특이한 점이다:게임의 모든 것들은 직관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진행에 따라 강해지는 요소나 꼬아놓는 요소들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오로지 요리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처음 오버쿡드 2에 대한 설명을 들은 플레이어라면 이 단순함 때문에 '게임에 깊이가 없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재밌는 점은 오버쿡드 2의 게임 플레이가 극도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고 하여서 게임의 난이도 자체가 쉬운 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숨어 있다.


오버쿡드 2 게임플레이의 핵심은 요리를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요리를 '효율적으로'(최대한 많이/빨리) 생산하는 데 있다. 각각의 부엌에는 클리어에 필요한 점수를 책정되었으며, 플레이어는 많은 점수를 얻어 부엌을 클리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게임의 부엌은 극한의 비효율적인 동선을 자랑한다:예를 들어 재료를 다듬기 위한 도마와 재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예삿일이고, 움직이는 발판이나 장애물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플레이어가 이들을 피해서 요리를 해야 하는 등의 온갖 장애물들이 놓여있다. 물론 모든 게임 내의 장애물과 동선은 직관적이기에 고도의 눈썰미나 반사신경을 요구하진 않는다. 플레이어는 몇 번 조리를 하다 시간을 넘겨 재료를 태우거나 요리를 망치다 보면 '아 이것은 이렇게 플레이해서는 안 되는구나'를 쉽게 깨달을 수 있으며, 모든 것은 적절한 학습과 동선의 수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즉, 게임의 재미는 반복되는 실패와 학습을 통해 극도로 비효율적인 공간에서 효율을 올리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게임은 다른 플레이어와의 협업이라는 주요한 변수를 도입한다. 물론 오버쿡드는 기본적으로 혼자서도 플레이하고 클리어할 수 있게끔 게임을 조절하여 두었다. 그러나 혼자 플레이할 때도 플레이어가 두 명의 요리사를 번갈아서 조작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이 게임이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전제하고 게임을 설계하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요리 과정을 분담해서 게임을 진행할 때, 게임은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한다:플레이어들은 비효율적인 부엌에서 효율적인 동선을 짜내고, 서로가 필요한 부분들을 능동적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가령, 한 사람은 한쪽에서 재료를 주어서 도마 쪽으로 집어 던진다면, 다른 한 사람은 도마에서 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하는 쪽에 재료를 넘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분업을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게임은 여러 장애물이나 비효율적인 동선 때문에 꼬일 수밖에 없다. 이때 게임은 얼마나 상대방이 실수하거나 빈칸이 발생한 부분을 메꾸는가가 중요하다.


오버쿡드 2가 구현한 것은 협동 게임의 기본이자 핵심이다:서로를 부족한 부분은 메꾸고, 잘하는 부분을 채워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 그러나 상당수의 협동 게임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위해서 다양한 기믹들을 추가하는 쪽이었다면, 오버쿡드 2는 오히려 협동에 필요한 장애물과 목표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쳐내버리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협동에 필요한 직관적인 요소들만 남겨놓은 덕분에 게임의 입문 장벽이 낮아지면서 도전적인 콘텐츠를 구성하는 다소 모순적인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오버쿡드 2의 협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있어야만 한다:그것은 바로 '소통'이다.  플레이어는 효율적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빈틈을 메꾸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한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어필하고 지시를 내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커모로즈와 같은 양식화된 채팅수단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다. 실제 오버쿡드 2는 오프라인 협동에서는 서로 음성으로 소통하며 상대와 호흡을 맞추기 쉬운 구조이지만, 음성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익명 온라인 협동 같은 경우에는 게임 난이도가 거의 클리어 불가능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물론 스위치의 경우에는 여타 플랫폼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플레이 환경 구성이 쉬운 편이다:한 대의 콘솔이 기본적으로 두 명의 플레이어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두 대의 스위치로 2명 - 2명 팀을 짜서 플레이한다든가 등의 인원 구성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게임 퍼포먼스 측면에서도 크게 차이점이 없기 때문에, 기본 오프라인 협동 등을 고려하였을 때 스위치 버전이 가장 추천할만하다.


결론적으로 오버쿡드 2는 분업과 협업, 그리고 효율 추구라는 단순한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이 부분에 극도로 집중한 덕분에 여타 협동 게임들과 다른 차별점과 매력을 가졌다. 물론, 게임 자체가 긴밀한 소통을 필요로 하므로 보이스 채팅 없는 무작위 온라인 협동은 상당히 어렵고, 더 나아가서 혼자서 플레이하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구한다면, 오버쿡드 2는 분명 추천할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오타나 문법상 오류는 후에 탈고할 예정입니다.


한 때 스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업계와 게임 플레이어들을 호령하였다:이나후네 케이지, 미카미 신지, 이타가키 토모노부, 켄 레빈,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 등등. 이 위대한 게임 개발자들이 말하던 것이 현실이 되고, 미래를 약속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버렸다:이나후네 케이지는 마이티 넘버 나인과 함께 사기꾼이란 평가를 들으며 주저앉았고, 이타가키 토모노부는 예산 부족에 허덕이며 데빌즈 서드라는 미완성 작품을 내며 거꾸러졌다. 켄 레빈은 바이오쇼크 시리즈에서 손을 때면서 업계에서 실종되버렸고, 피터 몰리뉴와 리차드 게리엇은 증빙되지 않은 공수표를 남발하다가 팬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개발자들의 몰락은 급작스러웠고, 그 끝은 초라했다. 


스타 개발자들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대자본이 들어간 트리플 A 게임 개념의 등장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게임 매체는 여타 대중문화나 매체에 비해서 기술 및 노동집약적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영화가 분업과 해체, 재조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하였지만, 게임은 영화보다 이 분업의 강도가 더욱 높다. 또한 영상 매체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카메라와 영상 편집의 툴이 보편화되어 영상 매체 제작에 대한 허들을 꾸준하게 낮춘데 비해서, 여전히 게임은 프로그래밍과 수학 등의 전문화된 기술과 개발 인력을 요하는 부분들이 있다. 즉,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더욱 산업화된 매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산업화된 매체인 게임과 과거 우세하였던 '스타 개발자가 그의 독창적 색깔이 들어간 게임을 만들어낸다'라는 명제는 서로 상반되었다는 점이다. 매체 생산 과정이 수많은 공정으로 잘게 쪼게져있는만큼 한 명의 개발자가 전체 게임 개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한 명의 천재가 전체 게임 개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이것이 수많은 스타 개발자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사례를 보자:역사상 가장 유명한 낙하산 게임 개발자(?) 중 하나인 미야모토 시게루는 첫번째 동키콩 게임을 만들 때 코드 작업에서부터 간단한 게임 시나리오 작업, 더 나아가서 기타로 BGM 작업까지 직접하였다. 요즘으로 이야기한다면, 미야모토 시게루는 3명의 전문 인력 몫을 해낸 것이었다. 


이는 게임 개발 초창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자가 마음 먹고 손을 뻗기만 하면 모든 것을 만들수 있었다. 스타 개발자들의 등장은 그러한 초창기의 게임 산업의 특수성에 기반하였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작품이 누적되면서 개발자 한 명이 모든 분야를 관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 게임의 산업화가 두드러졌던 트리플 A 대형 게임들은 전문화된 인력과 분업, 효율적 예산 배분과 스케줄 관리가 맞물리면서 기업화된 개발 환경에 기반하여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대가 바뀌면서 스타 개발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키워왔던 회사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개발자들이 빠져나와 새로운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 활발해진 것도 게임 개발에 있어 조직이 강조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창기 개발자들의 독립 스튜디오 설립은 오히려 스타 개발자들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말았다:초창기 개발자들이 간과했던 부분은 게임(정확하게는 트리플 A 게임들)이 더이상 아이디어에 근거해서 만들어지기 어려워졌다는 점과 게임 개발에 있어 다양한 인프라(특히 재정 등)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가장 단적인 사례는 이나후네 케이지였다:이나후네 케이지는 개발에 있어서 기획 부분만 따로 전담하는 회사인 콘셉트를 만들고 개발을 외주화 시키는 독특한 시도를 하였다. 마이티 넘버 나인에서 아니후네 케이지는 자신은 기획을 전담하고 예산은 클라우드 펀딩으로, 실제 개발을 하는 회사로 록맨 제로를 만든 인티 크리에이츠를 끌어들이는 등 게임 역사상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심찬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은 수준 이하의 퀄리티와 지켜지지 못한 약속으로 게임 역사와 자신의 커리어에 절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주목해야하는 점은 마이티 넘버 나인으로 신뢰를 잃기는 했지만 이나후네 케이지와 콘셉트는 소울 새크리파이스로 나름대로 주목할만한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겠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의 실패는 단순하게 이나후네 케이지의 게임 기획 능력의 부족으로 몰아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히려 마이티 넘버 나인의 문제는 기획과 개발, 그리고 이를 지탱하기 위한 예산 사이에서의 벨런스가 무너진 부분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킥스타트 펀딩 외에도 지속적으로 펀딩을 하며, 여기에 추가목표를 올리는 등 개발 과정 자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부재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만들 떄 받았던 재정적 지원을 마이티 넘버 나인은 받지 못한 원인이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이나후네 케이지의 몰락은 스타 개발자가 몰락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스즈키 유, 이타가키 토모노부 등등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조직 바깥에 자신만의 회사를 세우는 모험을 했다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은 개발자들도 있다:다시 미야모토 시게루의 사례로 돌아와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 개발자로 칭송 받는 그는 이제 더이상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그가 게임을 만들지 않는 대신, 그의 게임을 만드는 방법론이나 철학은 닌텐도라는 집단 전체가 공유한다:슈퍼 마리오를 이제 더이상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들지 않지만, 그가 만들었던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의 방향성은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살아남은 위대한 게임 개발자들은 더이상 자신의 개발 철학을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철학을 개인이 아닌 조직이 공유하는 회사는 시대가 지나도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이끄는 프롬이 그렇고, 30년 가까이 증자 없이 흑자 운영을 하고 있는 팔콤이나 플래티넘 게임즈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은 전반적인 시장 트렌드와 별개로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닌텐도의 케이스와 다르게, 이 회사들의 규모는 여전히 작다:한명의 제작자가 여러 포지션을 담당하는 멀티플레이를 지향함으로 자신의 분야 외에도 '완성된 게임'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 조직 전체가 동일한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회사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개발자 개개인의 과중한 업무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개발사들은 닌텐도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필연적으로 작은 규모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초창기 스타 개발자들의 성공담이 인디 게임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이코노클라스츠나 아울 보이, 스타듀 벨리 같이 몇년 동안 개발자 혼자서 게임 내의 모든걸 기획하고 만드는 경우나 오버쿡드! 시리즈 같이 열 손가락에 꼽는 인원이 게임을 만들어서 성공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게임이라는 매체와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시장이 자연스럽게 확장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인디 게임들은 트리플 A 게임에서 시도할 수 없는 대담한 시도들이 이뤄지기도 한다. 물론, 트리플 A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들과 달리, 인디 게임들은 하나의 게임을 몇년에 걸쳐서 꾸준히 업데이트 시키고 완성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을 쪼게 판다는 발상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아이디어를 꾸준하게 업데이트해서 완성시킨다는 개념(서비스로서의 게임)의 등장은 다양한 인디 게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게임 산업 초창기에 등장한 창작자의 개성이 넘쳐흘렀던 게임들이 등장하는 토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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