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멀티플레이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http://leviathan.tistory.com/2377 를 참조해주세요


블랙아웃이란 배틀로얄 모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폭발적이었다. 애시당초에 배틀필드와 같이 거대한 맵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임도 아니었고, 게임은 기본적으로 작은 맵에서 빠르게 치고 받고, 빠르게 죽고 빠르게 되살아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또한 시리즈 특유의 퍽/부착물/킬스트릭 시스템 등의 다양한 요소를 배틀로얄에 접합시킬만한 접점이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싱글 플레이가 빠지는 것도 모자라서, 검증되지 않은 물건을 들고나오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블랙아웃의 실제 플레이 영상 등을 공개하지 않고, 심지어 전통적인 마케팅 창구였던 E3까지 건너뛰면서 팬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하지만 베타 이후, 정식 발매된 콜옵의 배틀로얄 모드는 성공적으로 시리즈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다양한 이슈사항들이 있었지만, 블랙아웃의 게임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잘 작동한다. 단순하게 평가하자면, '배틀로얄 장르의 틀을 쓴 콜 오브 듀티'라 할 수 있다. 게임 페이스는 매우 빠르며, 행동 반경이 줄어들고, 파밍 같은 요소들은 여타 배틀로얄 모드에 비해서 간편한 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콜 오브 듀티스러운 배틀로얄'이란 개념 자체는 매우 이상하다:콜옵은 여지껏 큰 맵에서 싸우는 게임이 아니었다. 고스트나 모던 워페어 2의 그라운드 워페어 같은 경우가 거대한 맵에서 일어나는 원/근거리 교전을 다뤘지만, 이 역시도 시리즈 전체 비춰놓고 보았을 때 실패했었다. 즉, 여지껏 콜옵 제작진들은 거대한 전장과 동선, 교전 환경을 성공적으로 구성한 적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블랙아웃에서 콜옵의 게임 경험이 녹아나오는 것은 제작진에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점이었다. 물론 멀티플레이 전반을 다룬 리뷰에서 이미 블랙옵스 4는 콜옵의 틀과 형식을 넘어서서 새로운 콜옵의 경험을 정의내렸다(여기) 그리고 블랙아웃은 그러한 변화의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받은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수동 체력회복 시스템은 아이템을 소비하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초기 파밍 이후에도 꾸준히 체력과 방어구를 챙겨줘야할 상황을 만든다. 붕대나 구급상자, 트라우마 키트 같은 회복템들을 소비하여 체력을 회복하는 시스템은 전투 중에 잠시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하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배그나 여타 배틀로얄 게임들과 다르게 블랙아웃에서의 체력회복 및 아이템 소비 속도는 매우 빠르며, 피해를 입더라도 신속하게 전투로 복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반적으로 블랙아웃은 여타 배틀로얄류 게임들에 비해서 아이템이나 탄환 소비속도가 빠르며 이런 점에서는 기존 콜옵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초반 건물 파밍 이후부터는 킬 파밍이라 불리는 상대를 제압해서 아이템을 뺏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PUBG나 포트나이트와 다르게 강력하게 설정된 투척류 아이템이나 퍽과 소모성 아이템은 킬스트릭이 부재한 자리를 대신 채워주는 강력한 요소라 할 수 있다:예를 들어 집속 수류탄은 블랙옵스 4의 베터리가 던지던 것과 동일하게 폭발 후 여러개의 수류탄으로 나뉘어지면서 건물 내의 적들을 청소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은 접근하는 적들을 막고 높은 방호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농성이나 수비적인 플레이를 할 때 매우 유용하다. 그외에도 블랙아웃에는 여타 배틀로얄 게임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맵 탐지 기능을 가진 추적 다트나 이런 소비 아이템이 즐비하다. 하지만 게임은 여기에 더 나아가서 콜옵 시리즈 전통의 퍽 시스템을 소비용 아이템으로 끌어오면서, 여타 배틀로얄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플레이가 가능해진다:사격을 받으면 상대가 총을 쏜 위치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퍽이나, 설치물/탈 것이 사용된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퍽의 존재는 기존 배틀로얄에 비해서 더 빠른 템포로 적을 인지하고 싸울 수 있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블랙아웃 모드는 출시 전 후의 우려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배틀로얄의 문법을 콜옵의 방식대로 효과적으로 구현한 모드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작진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4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리즈 최초로 배틀로얄 모드를 탑재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리즈 최초로 싱글플레이를 제외했다는 점일 것이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은 영화적 스펙타클이 가득한 싱글플레이 게임의 흥행과 빠른 페이스의 멀티플레이에 기반한 것이었다. 모던 워페어의 성공 이후로 콜옵은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 그리고 월드 앳 워부터 추가된 코옵 콘텐츠인 좀비 모드가 콘텐츠의 삼각편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블랙옵스 4는 최초로 이 콘텐츠 구조를 무시하고 싱글 대신에 배틀로얄 모드를 집어넣은 것이다. 심지어 블옵 4는 콜옵 싱글에서 죽을 때마다 전쟁에 대한 격언을 띄우는 전통을 블랙아웃 사망 화면에 구현함으로써 은연중에 블랙아웃 모드가 싱글플레이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어필한다.


물론, 이들이 전통을 무시한 데는 근거가 있었다. 도전과제나 트로피 달성률에 근거하여보았을 때, 플레이어들이 싱글 캠페인을 끝까지 플레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명 배우와 성우 캐스팅, 별도의 개발 인원과 천문학적 예산, 시나리오 라이터를 들여서 만든 콘텐츠를 끝까지 클리어하는 플레이어 인구가 3~5% 정도 수준이라면 회사 입장에서도 제거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블랙옵스 4의 케이스를 다른 프랜차이즈로 비교하자면, GTA 시리즈에서 멀티플레이를 많이 하니 싱글플레이 컨텐츠를 제외하고 게임을 내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기에 블랙옵스 4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의 실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멀티플레이의 패러다임은 점점 콜옵식의 멀티플레이에서 벗어나고 있고, 배틀로얄의 등장은 데스매치 중심의 멀티플레이 환경을 다변화시키고 소비자 층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중이었다. 블랙옵스 4의 존재는 더이상 콜옵 시리즈의 전통을 지켰다간 판매량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블옵 4는 오프라인 판매량은 전작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디지털 판매량은 이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늘어났다. 어쨌든 싱글을 빼고 배틀로얄 모드를 집어넣은 초강수가 먹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옵스 4의 변화는 콜옵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이제 기존의 게임 판매 모델과 콘텐츠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간 프랜차이즈 자체가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변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콜옵들은 변화를 하더라도 모던 워페어라는 큰 틀에서 게임의 기조를 지키려하였다. 가장 기괴한 콜옵이었던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랙옵스 3 같은 경우에도 어쨌든 콜옵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블랙옵스 4는 콜옵이라는 게임의 기저를 어느정도 바꿔버리고 말았다. 블옵 4는 싱글플레이를 빼버리고 지금 흥행하고 있는 배틀로얄 모드를 게임에 탑재함으로써 콜옵이라는 게임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결론적으로 블랙옵스 4는 모던 워페어 이후로 가장 변화한 콜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모두 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던워페어가 세워놓은 규칙들을 신경쓰지 않고 무시함으로 더이상 모던 워페어의 그늘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무엇도 아니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블랙옵스 4는 분명 트라이아크가 방향성을 잘 잡았기에 성공한 편이지만, 다시금 새로운 방향성을 찾지 못한다면 콜옵의 몰락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연마감도 끝났고 이제 글작업이랑 밀린 게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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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워프레임 스위치 버전이 11월 21일 기준으로 스위치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 패닉버튼이 알려지지 않은 트리플 A 게임을 스위치로 포팅한다고 공개하였을 때(대략 E3가 끝나고 난 7월쯤),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적어도 워프레임은 아니었다. 모탈컴뱃, 폴아웃 뉴베가스 등등 다양한 게임들이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워프레임이 거론되지 않은 것은 스위치 트리플 A 게임에 대한 수요도 있었겠지만, 5년간 수많은 업데이트를 통해서 콘텐츠가 쌓인 온라인 코옵 게임을 스위치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생각해보면 워프레임 자체는 이미 5년전 게임으로 처음 등장할 때의 베이스 게임은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와서 결과론으로 이야기하자면, '불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위치 버전 워프레임의 핵심은 엄청난 업데이트와 분량을 가진 게임도 스위치로 이식될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패닉버튼이 있다. 패닉버튼은 일찍이 둠의 포팅과 로켓리그의 포팅을 담당하였고, 최근에는 울펜슈타인 2를 스위치로 포팅하였다. 분명 이들의 초창기 이식은 '그럭저럭 납득할만하지만 여전히 부족하였던' 이식이었다. 그러나 둠과 로켓리그의 퍼포먼스 개선으로 스위치라는 기기의 한계에 도전하는 회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스위치버전 울펜슈타인 2의 퍼포먼스를 상당수 개선하여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패닉버튼의 포팅들은 절대 스위치에서 불가능한 수준의 그래픽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지털 파운드리에서 분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패닉버튼은 말도 안되는 가변해상도에 갖가지 속임수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디지털 파운드리 분석) 그리고 분명 포팅되기전 엑스박스나 플스에서 돌아가던 수준을 생각한다면 스위치 버전의 울펜슈타인 2나 둠은 열화된 부분이 눈에 띌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패닉버튼의 포팅이 여타 게임들의 포팅과 다르게 놀라운 점은 분명 열화된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게임 플레이 자체는 기존 원본 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둠의 사례를 보면 이는 뚜렷하다:둠 신작은 60프레임 기반으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빠른 폭력, 전투가 난무하는 강렬한 게임이었다.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둠 특유의 강렬한 고어 연출은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위치 버전에서 패닉 버튼은 이를 30프레임으로 반토막 내고, 그래픽을 열화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분명 스위치 버전의 둠은 무언가 빠져있는 결격품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스위치 버전 둠은 이러한 다운그레이드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연출이나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거치적 거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즉, 열화되기는 하였지만 스위치 버전 둠은 여전히 둠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다.


패닉버튼이 스위치로 트리플 A 게임들을 이식하면서 우리에게 증명한 것은 게임에서 그래픽의 본질이란 눈속임이라는 점이다. 분명 게임에 있어서 그래픽과 안정된 프레임은 게임 플레이와 경험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최근 트리플 A 게임들은 이러한 눈속임을 더욱 많은 예산과 더욱 많은 기술력을 투입하여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결과 예산은 더 많이 들어가고 작품의 실패 리스크는 점점 더 커지는 양태로 바뀌었다. 패닉버튼의 포팅은 오히려 다양한 눈속임을 통해서 디테일을 죽이고, 게임 플레이에 중요한 안정적인 프레임과 애니메이션을 사양에 맞게 잘라내면서 기존 트리플 A 게임들이 나가던 방향성과 정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패닉버튼은 포팅을 통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패닉버튼의 성공적인 포팅은 워프레임에서도 이어졌다:이 게임은 이미 놀라운 최적화로도 유명했고, 5년전에 나올 당시 플포와 엑스박스 원의 초창기 부분유료화 게임이었다. 하지만 패닉버튼은 휴대모드에서도 안정적인 30프레임과 그래픽 디테일을 보여주면서 마치 처음부터 워프레임이 스위치로 나온 게임인것 같이 게임을 구성하였다. 또한 상당수의 디테일을 처냈지만(뭉게지는 텍스처라던가)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는 큰 차이를 못느끼게끔 그래픽 수준을 조정한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물론 워프레임이 실제 스위치로 나왔을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꾸준히 유지가 될지는 미지수인 부분들이 있지만, 워프레임의 존재와 패닉버튼의 포팅은 스위치라는 게임기의 저변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그래픽이라는 눈속임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던져준다.



게임 이야기


*대악마판 - 영혼을 거두는자 리뷰 : http://leviathan.tistory.com/1916 , 디아블로 3 원본 리뷰 - http://leviathan.tistory.com/1587


디아블로 이모탈의 공개 이후, 디아블로 프랜차이즈는 나락으로 추락하였다. 물론 현재 시장 트렌드에서는 중국과 모바일 시장을 모두 고려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러할지라도 프랜차이즈에 오랫동안 충성하였던 팬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관람하던 현장에서 기대감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프랜차이즈를 이용해서 카피게임을 만들고, 소비자들을 우롱한 회사와 협업한 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망발이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이모탈의 선택은 프랜차이즈의 연명을 위한 단기 수혈로서는 적절하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프랜차이즈를 망가뜨리는 일이었다:이미 중국권에서는 디아블로나 MMO의 문법을 복제하고 그 위에 나름대로의 연출과 시스템적 개선사항을 덧입히고 있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PC를 통해서 전통을 쌓아올린 디아블로는 이모탈을 통해 자신의 어드벤티지를 버리고 자신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발전한 카피겜들과 싸워야 하는 멍청한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디아블로 3는 처음 나올때부터 삐걱거리는 게임이었다:현금 경매장을 기억하는가? 디아 2 시절부터 조던링을 이용한 물물 교환이나, 현금을 이용해서 게임 아이템을 사고 파는 거래는 흔한 개념이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덜해졌지만, 게임 내 화폐를 구매해서 파밍 단계를 넘어서는 것은 당시 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디아블로 3는 이러한 현금 거래를 게임의 일부로 통합하고자 하였다:여기에는 분명 다양한 법적 이슈가 있었겠지만, 현금 경매장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디아블로 3가 구작에 비해서도 아이템 비중이 더 올라간 게임이었다는 점이었다. 스킬 세팅과 스텟 세팅으로부터 게임이 자유로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아이템의 중요성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는데, 아이템 나올 확률은 극악하고 난이도도 극악하며 게임 구조는 반복적이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지칠 수 밖에 없었다. 스킬 셋 구성과 스텟 구성을 제거하여 플레이어가 케릭터 육성에 들일 시간을 최소화시킨 것도 좋았고, 처음 클리어까지는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거기까지만' 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게임을 되살린 것은 파밍의 속도를 올리고 로그라이크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게임을 반복 플레이할 수 있게끔 만든 대균열과 모험모드가 추가된 영혼을 거두는 자는 디아블로 3라는 게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시즌제의 도입과 정벌 등의 요소는 주기적으로 새 케릭터를 키우고 도전하는 재미를 주는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거두는 자는 디아블로 3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게임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투명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디아블로 3는 전작들과 다르게 스텟치의 분배와 스킬 포인트의 분배로 케릭터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이 아닌, 6가지 스킬의 선택과 룬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아이템으로 구성하여 케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스킬셋 자체는 그 누구라도 쉽게 구성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었고, 아이템 역시도 착용하는데 제한이 없었다. 그렇기에 케릭터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정체성은 스킬셋의 구성이나 육성이 아닌 '그 케릭터가 어떤 장비를 입고있느냐'라는 장비 파밍의 개념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게임은 기존 패시브 스킬이 갖고 있었던 스킬 증폭이나 보조 효과를 유니크 아이템에 붙어있는 옵션의 형태로 옮겼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스킬셋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뺑뺑이를 게임이 된 것이다.


특히 이는 세트 아이템 파밍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세트 아이템은 유니크 아이템을 넘어서 각 케릭터마다 특정 스킬들의 성능을 엄청나게 강화시키기 때문에 엔드 콘텐츠에 들어서는 세팅 자체를 고정시킨다는 문제를 만들었다. 특히 엔드 콘텐츠인 대균열이 정해진 시간에 빠르게 클리어를 해야하는 콘텐츠이다보니 극한의 효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구조고, 이로 인해서 세트 아이템에 유니크 몇개를 섞고 스킬 셋도 거기 맞춘 고정된 형태의 세팅이 지배하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스텟 배분과 스킬 포인트 배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더니 게임이 아이템에 종속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게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파밍 속도를 올리고 수단을 다양하게 만드는 등 보험 장치를 마련하였지만, 그것이 고착화된 세팅을 무너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패스 오브 엑자일이나 그림 던 같은 작품은 디아블로 3가 갖고 있는 딜레마(고정된 세팅)를 벗어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림 던의 사례를 보자:그림 던은 기본적인 엑티브-패시브 스킬 구조를 넘어서 별자리 시스템을 통해 엑티브 스킬 효과에 또다른 효과를 부여하거나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패시브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타이탄 퀘스트 때부터 나왔던 두개의 직업 스킬트리를 조합해서 자신만의 직업 조합을 만들 수 있는 구조도 많은 각광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크루시블 모드나 육성에 편리한 세팅과 스킬트리가 있긴 있지만, 여전히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스킬트리와 육성 방법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만큼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림 던은 디아블로 3보다 더 뛰어난 게임일까? 물론 그림 던은 정말로 훌륭한 게임이긴 하다. 오래 즐길만하고,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며, 클리어 이후에도 꾸준히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림 던은 기본적으로 디아블로 2의 변종이며 동시에 불친절하고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어떤 아이템을 입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스텟 포인트를 소비해야하는지, 별자리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서 재단을 뚫어야 하고, 스킬을 마스터하기 보다는 시너지를 주는 스킬을 딱 필요한 만큼만 배분해야 하는 등 육성에 있어서 상당히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게임이다. 이런 섬세한 덕분에 게임은 선택지가 많지만, 플레이어에게 독자적인 연구를 사실상 반강제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게임에 들이는 시간이 많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좋은 게임이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게는 어필하기 힘든 게임이기도 하다.


디아블로 3의 성공과 실패, 복고적인 그림 던이 보여준 성취와 한계는 그라인딩(반복적인 게임 플레이가 핵심인 게임) 게임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육성의 폭을 줄이는 대신 아이템을 통해 케릭터의 개성과 정체성을 결정 지으면 아이템 중심의 게임이 되다 보니 육성이 정형화된다는 문제가 있고, 모든 요소들을 세부적으로 조정하게 하면 플레이어가 쉽게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디아블로 3와 '같은 장르'로 게임이 나오는 것이 대신에 '디아블로 3의 문법'을 차용한 게임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즉, 게임 플레이 시간을 늘리면서 게임 인구를 유지해야하는 MMO 형태의 게임에서 이러한 장르 문법을 차용하는 것이 두드러진 것이다. 보더랜드 시리즈와 같은 실험작의 성공 이후, 데스티니 시리즈나 디비전 같은 게임들이 플레이타임을 늘리고 플레이어의 개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파밍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와 다르게 이들 게임은 좀더 다양한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인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디비전은 엄폐 슈팅을, 데스티니는 트리플 A FPS의 문법을 도입함으로써 디아블로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디아블로가 쿼터뷰 RPG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을 때, 디아블로의 문법을 따르는 경쟁자들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장점을 취합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공고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디아블로 형태의 쿼터뷰 액션 RPG는 자신이 갖고 있는 미덕들을 여타 장르에 이양함으로써 조용히 쇠퇴하고 있는 중이다. 디아 3는 그저 그 역사의 끄트머리에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디아블로 이모탈의 존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다만 그것이 오랫동안 장르를 이끌어온 프랜차이즈의 추한 종말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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