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전 정보 없이 봤다가 뒤통수를 심각하게 맞은 작품입니다. 사실, 원래 저는 동생이나 여기저기서 정보를 알아본 다음에 영화를 보러다닙니다만, 이번같이 간단하게 '칸느에서 대상을 받을 뻔한 애니메이션'(대상은 프랑스 영화 '교실'이 받았습니다),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 정도로 알고 가서 봤는데...아주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입니다. 정확한 장르는 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입니다만,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장르를 규정 지을수 있는지가 의문이군요.
2.일단 개인적 체험과 역사적인 체험이 만난다는 구도 자체는 과거 이란 여성이 자신의 수기를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와 비견될 수 있으나, 페르세폴리스가 그러한 경험을 일종의 동화의 형태로 표현을 했다면, '바시르와 왈츠를'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고수 합니다. 즉,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음을 깨달은 감독 자신이 자신의 기억을 계속 되짚어 올라가는 형식의 다큐멘터리 처럼 말이죠. 그러나 매체가 인위적인 느낌을 내는 애니메이션이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블레어 위치와 같은)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영화 장르 자체가 현실적인 사실을 지향하는데 비해서, '바시르와 왈츠를'은 개인적인 경험과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쟁에서의 개인적인 체험을 초현실적으로 다루어내는 전쟁 드라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바시르와 왈츠를'의 대부분의 밑그림은 실제 촬영한 필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여기에 셀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플레시 애니메이션, 컷아웃 기법 등을 동원해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즉, 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는 이제 미묘해졌지만)은 진짜 실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끼는 대부분의 생각이나 감정은 일차적으로 자신과 스크린 사이의 차이가 있음을 그 근저에 두고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를 보는 내내, 우리는 감독 아리 폴만의 초현실적인 과거 경험이 일종의 허구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실제 감독이 겪었던 일이었든 아니었든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 얽힌 초현실주의적인 환상이나 회상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개인적인 초현실주의적인 체험과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일어난 팔랑헤 당원들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에 연결되게 됩니다. 그 사건을 당시 취재했던 리포터의 이야기와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그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레바논 전쟁 당시의 기억 상실의 원인이 감독 자신이 그 광경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부분에서 영화는 갑자기 현실로 돌아옵니다. 당시 리포터가 찍었던 사브라와 샤틸라 수용소의 학살 후 폐허 장면을 말이죠. 이렇게 영화는 개인적인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체험에서 시작해서 팔레스타인 학살이라는 사회적인 경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어떻게 보면 이건 심각한 장르의 반칙입니다. 마치, K-1 선수가 싸우다가 칼이나 총같은 흉기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사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애니를 만든 페르세폴리스 같은 경우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라는 장르에서 벗어나지 않았죠.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러한 장르를 뒤집으면서(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러한 '반전'은 제작 단계나 기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보는 관객에게 경악 또는 충격, 혹은 불쾌감('나는 애니를 보러 온거지, 다큐멘터리를 보러온게 아니라고!' 라는 식의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감독이 의도했던 바를 철저하게 애니메이션이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내었으면 어떻게 될까요?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열심히 다루다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결부지으면서 끝나게 될 것이고,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열심히 사회적인 경험과 역사를 이야기 하다가 개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그러한 사회적 개인적인 체험이 결과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다른 전쟁 다큐멘터리나 영화와 다른 독특한 체험을 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해서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충격을 받았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신겁니다. 사실, 전쟁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넘쳐나고, 그런 영화를 보고나서 '아 그런가 보다'하고 넘기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는 자체에서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니까요.
4.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There Will Be Blood'와 더불어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서 대단히 독특한 영상미와 더불어서,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은 매세지, 주제, 그 방법 까지 모두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니까요.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이 되었으니, DVD가 나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덧1.해변가에서 조명탄이 터지면서 아리와 동료들이 일어서는 장면은
올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였습니다.
덧2.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갔다가, 사람들 반응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ㅠㅠ
역시 저는 스노비즘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