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좀 점잖은 짤을 원했건만, 흠흠)


마크로스 F는 마크로스 7 이후 근 16년 만의 신작입니다. 사실, 제가 마크로스 전 시리즈를 감상 완료한 시점 즈음에서 마크로스 F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번 F에서는 과연 마크로스 원작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뭐, 실제 나온 F는 마크로스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삼각관계, 음악, 전투 이렇게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고, 마크로스 시리즈를 나름대로 재해석 했으며 그리고 나름대로의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원작 마크로스 이후의 새로운 마크로스 시리즈의 전통을 확립했나 라는 부분에 있어서 저는 좀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밑에서 차차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마크로스 F는 마크로스 7 이후로 한참 뒤의 이야기(2059년)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크로스 7 선단 이후, 은하 최중심을 향해서 가고 있는 프론티어(Frontier) 선단에서 주인공인 알토와 아이돌 지망생인 란카, 그리고 성공한 아이돌인 쉐릴 사이의 삼각관계, 외계생물 바쥬라와 그와 관련된 음모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구성은 원작 마크로스 시리즈의 구성들-삼각관계, 외계생물과 인카운터->전투->화해와 이해의 구조, 연애와 외계생물과의 조우 과정에서 음악의 중요성 등-을 따르고 있지만, F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전작에 대한 원용과 변용을 시도합니다.

일단 란카와 쉐릴이라는 두 히로인은 前 마크로스 시리즈의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있는 주인공들인 린 민메이와 넥키 바사라의 변주입니다. 사실 이 둘을 명백히 변용했다고 주장하거나 드러내는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인물이 하는 행동 등에서 이 두명이 과거 민메이와 바사라의 오마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란카가 미스 마크로스 대회에서 '나의 그이는 파일럿'을 부르거나(민메이가 제 1회 미스 마크로스에서 불렀던 노래), 중국집에서 알바를 하는 부분(민메이는 중국계 혼혈로 원작 마크로스에서 중국집에서 삼촌을 자주 도왔음), 자주 린 민메이와 비교되는 부분(후에 바사라를 동요하게 하는 작전 이후로 민메이와 많이 비교가 되었음) 등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쉐릴은 '나의 노래를 들어!'(바사라가 즐겨 말하는 대사 18번)라는 대사, 그리고 그 근거 없는 자신감 등은 바사라의 케릭터와 맥이 많이 닿아있습니다.

하지만. F는 이러한 오마주를 변용하여 발전 계승 시킵니다. 전작에 있어서 각각 케릭터들이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쳐서 작품 내에서 벨런스가 깨졌던 문제들-예를 들어 민메이 같은 경우는 소녀의 감수성을 잘 살린 케릭터였지만 동시에 너무나 자기 중심적인 문제가 있었고, 바사라 같은 경우 너무나 극중에서 뛰어난 나머지 애니 내에서 파워 벨런스를 다 무너뜨렸다는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마크로스 F는 이러한 케릭터의 성격의 벨런스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란카 같은 경우, 민메이의 소녀 같은 매력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소녀의 수줍음을 추가하여서 원작 마크로스의 대단히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탈피하는데 성공합니다.(이런 면에서는 극장판 마크로스의 민메이와 멕이 많이 닿아 있습니다) 이는 알토를 좋아하는 란카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잘 드러나는데, 란카가 알토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해매는(?) 부분은 란카라는 케릭터를 잘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토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이러한 소녀같은 수줍음을 잘 드러내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희일비하는 부분이나 수줍어서 제대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란카의 모습을 보고 많은 팬들은 '뭐 어쩌자는 거냐' 식의 짜증을 표출하였고, 심지어 란카가 아이 군을 바쥬라의 모성으로 데려가려 했을 때는 '잘됬네, 꺼져라 녹색균'이라면서 란카를 심각하게 까더군요. 사실, 저는 이러한 란카의 소녀같은 수줍음이 마음에 들었고, 이것이 란카라는 케릭을 살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수줍음을 가지고 케릭터를 심하게 까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취향차이면 모르겠지만요(........)

쉐릴 같은 경우, 마크로스 7에서 바사라가 겪지 않았던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됩니다(물론 바사라가 내용적으로 고난을 겪는 부분이 있기는 있지만,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난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수행의 일종으로 보이더군요;;) 그것은 자신이 쌓아왔던 명성과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그것도 그레이스가 뒤에서 조작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지만)을 보고, 좌절하는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거기에다가 지병(이라고 보기에는 미묘하지만 하여간)이 겹쳐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위태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좌절에서 쉐릴은 다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자각하고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이러한 자존심이 높은 케릭터가 추락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서 케릭터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정당화 하고, 케릭터의 성격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래 이러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올라오는 케릭터의 모습은 이 쪽 장르에서는 많이 쓰였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케릭터가 바사라를 오마주한 케릭터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오히려 쉐릴의 케릭터는 설득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바사라의 매력을 그대로 지닌 케릭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크로스 F에서 가장 재밌는 점은 바로 기존의 마크로스 시리즈의 외계 존재와의 만남의 틀을 역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마크로스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문화를 모르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과 조우하면서, 인간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계의 전반적인 흐름은 이러한 일방적인 전파나 전도의 방식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마크로스 시리즈도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서 새로운 시리즈의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마크로스 F는 이와 반대로 외계 생물인 바쥬라가 인간과는 다른 형식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 시리즈 전통적으로 외계 생물들이 노래와 문화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비해서, 바쥬라는 노래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의 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문화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대립 구도를 형성합니다만, 그것이 언제나 전면적이거나 서로를 궤멸시킬 만큼의 살의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쥬라와 인간의 첫 만남은 전면적인 전쟁을 일으킬 만큼의 증오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이러한 바쥬라와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전쟁을 불러와야지 애니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기 때문에 마크로스 F도 그러한 요소를 애니 내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러한 오해와 불신을 일으키는 원인이 바로 거대 자본과 권력가들의 어두운 욕망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것 또한 오랫동안 쓰여온 이야기 소재이며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 장치입니다만, 여태까지 마크로스 시리즈에서는 마크로스 플러스 이외에 한번도 쓰이지 않은 장치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마크로스 플러스에서는 이러한 이야기 장치가 부수적인 맥락으로 쓰였다면(사실 모든 건 뮨의 또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샤론 애플이 불러일으킨 문제지요), F에서는 이것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장치입니다.

또한 주인공들이 속한 SMS라는 단체가 정부소속이 아니라 사설 경비업체, 쉽게 이야기하자면 용병들이라는 점도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는 과거 주인공들이나 주요인물들이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부측에서 일하면서 외계인들과의 침략에서 인간을 대변해서 싸웠지만, F에서는 사설 용병 단체이기 때문에 거대 자본이나 정부의 음모에 의해서 휘둘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실제 전개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많이 나오구요. 그렇기 때문에, F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대단히 미묘합니다....만 알토는 그런거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이 문제는 밑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그래서인지, F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26화에서는 원작 마크로스의 인류가 수비를 맡고 외계인이 공격을 맡은 구도를 뒤집어서 인류가 침략, 공격자가 되고 바쥬라가 자신의 모성을 보호하는 수비자가 되는 기묘한 구도를 연출 시킵니다(어떻게 보면 마크로스 7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또한 세뇌당한 란카의 거대한 홀로그라피는 과거 마크로스 플러스의 마크로스 전함을 이용한 샤론 애플의 거대한 홀로그라피를 연상시키구요. 하지만 그러한 껍질을 벗기고 보면, 그 속에는 거대 자본의 야망-파괴된 줄 알았던, 거대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베틀 겔럭시-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모두 갤럭시 선단의 음모임을 안 마크로스 프론티어와 바쥬라는 배틀 갤럭시를 더블 마크로스 어텍(마크로스 쿼터와 베틀 프론티어의 더블 다이달로스 어텍!)으로 격파, 그레이스를 마크로스 제로에 나왔던 프로토 컬쳐의 유산과 비슷하게 생긴 바쥬라 퀸의 머리로부터 안전하게 분리한 후에 폭파시킨 후 바쥬라의 모성에 안착합니다. 결국은 거대 자본과 음모도 사랑과 기합의 힘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진다는 뻔한 결론을 내리는 마크로스 F입니다만, 마크로스 시리즈의 전통을 변용시켜서 색다른 형식의 마크로스를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낸 점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포커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미쉘, ‘비행중에 애인 이야기 하면 죽는다더라’라는 농담(원작 마크로스 극장판에서 카키자키가 비행중에 애인가지고 농담 따먹기 하다가 격추당합니다), 포커의 죽음을 패러디한 장면, 마크로스 7의 에피소드 ‘민메이 비디오’의 오마주가 분명했던 에피소드, 전작들의 제목과 비슷한 제목들 등은 F의 정체성이 마크로스 시리즈 전체의 정리와 재해석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크로스 F는 결정적으로 한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부재입니다. 사실, 연애라는 요소가 중요한 마크로스 시리즈에서 히로인에 못지 않게 주인공의 비중도 큽니다. 결과적으로 삼각관계에서 주인공이 한 여자를 선택해야하고, 거기에 어떤 정당화 사유를 부가하고자 한다면 주인공도 히로인들에 못지 않은 케릭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크로스 F의 주인공 사오토메 알토는 전혀 그럴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해서 저는 이 케릭터에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더군요. 일단, 어떤 케릭터든 간에 자신이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와 동기가 있고,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에서 그 케릭터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토의 행동 동기는 대단히 뭐랄까...찌질합니다. 아니, 찌질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케릭터입니다. 전통적으로 가부키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단순히 어머니에 이끌려 하늘을 동경하고, 그것이 어머니가 죽은 뒤에는 가부키에 대한 도피처가 되고, 그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없이 대충 남들 하는 말이나 들으면서 살다가 애니가 끝납니다. 게다가 애니 진행 도중에 수많은 케릭터들이 '그렇게 살지 마라' 라는 아주 진지한 충고를 해줌에도 불구하고, 이 케릭터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케릭터가 주장하고 싶은 바가 뭡니까? 저는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대충 진지한 척 쿨게이스럽게 살다보면 인생 해피하다는 건가요? 아니면, 쿨게이스럽게 대충 살기 위해서는 성 정체성이 모호한 외모와 발키리를 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사실, 알토의 케릭터성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쉐릴과 란카의 케릭터를 확립하기 위해서 애니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였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알토에 대한 케릭터 묘사는 줄어들고, 그 자리에 쉐릴과 란카의 케릭터 묘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워낙이 독특한 케릭터들 사이에 있다보니까 상대적으로 그의 케릭터성이 죽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출연빈도가 적은 케릭터들-예를 들어 오즈마 라던가;;-도 자기 케릭터를 확립했기 때문에 뭐랄까 미묘한 케릭터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알토 하나만 빼면 대단히 괜찮은 마크로스 시리즈입니다. 그래요. 다만 알토가 주인공 이라는게 문제죠(.......) 그 덕분에 애니의 가장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쉐릴 대 란카의 연애전선에 있어서 할램 루트를 타버리는 어쩡쩡함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알토를 포함하더라도 마크로스 F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도 나름 완결적으로 짜여졌으며, 전체적으로 작화도 좋고(물론 중간 중간 작붕이 있었지만), 시리즈 26주년 기념으로 전체 시리즈를 한번 포괄하는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알토라는 케릭터의 문제,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마크로스가 아니라 원작의 변용 발전이라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점점 카와모리 쇼지의 개인작품이 되어가고 있는 마크로스 시리즈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덧.모든 시리즈를 보신 분들이면 26화에 나온 모든 장면들이
전 시리즈에서 오마주 한 것이라는 걸 눈치채실수 있습니다. 거의 한 장면도 빼놓지 않구요.

덧.위에 넣을 마크로스 F짤을 찾았는데, 왜 모두가 크랑크랑 짤인거죠?

덧.이로써 마크로스 전 시리즈 리뷰가 끝났습니다.
마크로스 2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시간나면 하고, 안나면 안하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