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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뭐라고 불렀소? 하워드?
- 아뇨,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하워드라고 부르지 않고...
  아내가 아닌 여자가 하워드라고 부르지 않아요
  제 약혼자가 아닌 여자는 제 아내도 아니죠
  제 아내가 아닌 약혼자는 스티브라고 부르지 않고...
  하워드라고 부르죠 아시겠어요?

- What's Up Doc?, 1972

하워드 혹스의 걸작 코미디 베이비 길들이기는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광기넘치는 코미디 영화다:범생이 샌님이 지금식으로 이야기하면 천연계라 할 수 있는 여자의 페이스에 휩쓸려서 자신이 원치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베이비 길들이기는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에서는 코미디의 장르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분류된다. 베이비 길들이기의 전위성은 각본과 펀치라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계속해서 휘몰아친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휘몰아치는 대사와 상황이 물흐르듯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베이비 길들이기는 각본이 대단히 훌륭하게 짜여진 작품이다.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코미디의 핵심은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이어지는 것'에 있다. 우선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베이비는 길들여진 '표범'의 이름이다. 시작부터 길들여진 애완동물과 표범이라는 두가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영화의 코미디 컨셉은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생기는 오해와 어색함에서 생기는 웃음에 기반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높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들(권위 있는 존재나 존경 받는 존재 같은)이 낮은 위치로 떨어지는 수직적인 낙차에서 발생되는 웃음이 아닌 대등한 위치에 놓여있거나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짓는 것인데, 영화는 서로 맞지 않는 어색한 것들의 연결을 넘어서 상반된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까지 능숙하게 연결 짓고, 속도감 있게 다루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이것을 속도감 있게 재현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관계대명사이다. 이것과 저것, 그것으로 구성되어있는 관계 대명사는 사물의 실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발화자의 거리에 따라서 발화 대상을 편리하게 부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베이비 길들이기는 대화하는 쌍방의 상황이 전혀 다르고 그 거리와 지칭 대상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연속해서 설정함으로 능숙하게 오해를 살만한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의 중간에 살인 표범과 애완용 표범이 둘이 동시에 등장해서 서로 오해를 사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서 여주인공이 살인 표범을 베이비라 착각하고 실제 포획해서 경찰서로 끌고 들어오는 장면 등은 영화 내내 오해에 오해를 쌓아올리며 만들어낸 훌륭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 속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바로 샌님 같은 남주인공과 자유로운 여주인공이다:베이비 길들이기에서는 건장한 이미지인 캐리 그랜트가 지적인 남주인공 박사의 이미지를 연기하였는데, 이러한 불균형한 모습과 함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에서 영화가 유지하는 '오해와 어울리지 않는 것'의 맥락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남주인공이 그런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서 자칫 무례하거나 폭력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선을 유지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 대척되어 온갖 광기와 카오스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맡는데, 남주인공과 상극인 여주인공은 상극이라 할 수 있지만 영화는 이 상극이 자석의 S와 N극 처럼 들러붙는 과정을 쉴세없이 주고받는 펀치 라인의 빠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서 성립한다.

 

그리고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왓츠 업 닥은 베이비 길들이기의 리메이크 작이다. 리메이크 작인만큼 큰 개념이나 매력적인 부분들을 따오기는 했지만, 흥미롭게도 왓츠 업 닥은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부분과 새로운 장르적 특성들을 함께 녹여낸 작품이었기에 리메이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왓츠 업 닥에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작품 자체가 워너브라더스에서 만든 1930년부터 만들어온 단편 만화영화인 '루니 툰'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애시당초에 제목 자체가 루니 툰의 간판 케릭터인 벅스 버니의 입 버릇(뭔 일이쇼What's Up, Doc?)에서 따온 제목인 거에서부터 시작해서, 여주인공인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이미지가 묘하게 롤라 버니를 연상케 한다는 점, 극 중 내에 오마주 형태로 루니툰이 영상이 들어갔다는 점들이 그러하다.

 

 

 

루니 툰의 코미디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베이비 길들이기 보다 좀 더 '포괄적'이라 할 수 있는데, 루니 툰은 1920~30년대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막스 브라더스가 출연했던 고전 코미디 영화에 베이스를 두고 있고 이 스타일은 단순히 관계 대명사의 오해 외에도 다양한 코미디 요소들을 섞고 있기 때문이다. 막스 브라더스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상식이 상식처럼 묘사되는 점이나 강박적으로 어떤 행동 하나에 집착하여서 영화 속 인물들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몰아넣는 점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루니 툰의 코미디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나 상대 케릭터를 능숙하게 엿먹이는 각본과 펀치라인 등은 전반적으로 막스 브라더스의 코미디 영화 스타일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강박적으로 하나의 상황에 집착하는 모습은 루니 툰과 베이비 길들이기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긴 하고, 왓츠 업 닥에서는 양쪽의 전통과 특징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왓츠 업 닥이 리메이크를 하면서 베이비 길들이기와 달라진 점은 크게 두가지다:첫번째는 과격해진 슬랩스틱과 스턴트들이다. 베이비 길들이기가 30년대 영화에서 보여주는 슬랩스틱이라는 점에서 고전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왓츠 업 닥은 루니 툰이 197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보여준 과격한 슬랩스틱이나 액션 장면들을 영화에 두 장면으로 녹여내는데, 첫번째는 리셉션이 끝나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련의 슬랩스틱들, 그리고 두번째는 대단원에서 서로가 원하는 가방을 쫒아 추격전을 벌이는 슬랩스틱 시퀸스가 있다. 무심하게 컷을 잡고 그 속에서 과격한 슬랩스틱을 이어가는 과정은 감독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특징과 루니툰의 특징이 함께 들어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성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기존의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왓츠 업 닥은 성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롭게 보여주는데,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목욕 장면이나 피아노 위에서 키스하는 장면하는 등은 시대가 변화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베이비 길들이기와 다르게 여주인공이 성에 대한 자유로운 묘사를 함으로 단순히 말괄량이나 천연임을 넘어서 그것이 성적인 에너지와 자유분방함,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시대의 인물형(다양한 학문을 전공하면서 박학다식한 모습을 보여주는)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왓츠 업 닥은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선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원작의 쉴세없는 상황 변화와 펀치라인을 유지하면서, 변화한 시대상과 영화가 발전하면서 쌓아올려진 장르적 특징들, 무엇보다도 그것을 하나로 통제하고 자신의 색체를 넣는 감독의 능력까지 모두가 반영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면 양쪽 모두 함께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미니어처 모델에 색을 올리는 도색을 한 2년이라는 기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도색이라는 취미는 평화로운 취미다:작은 미니어처 위에 한 땀 한 땀 붓질로 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심적인 평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역으로 이야기하면, 색깔이 바깥으로 삐져나가면 상당히 심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색은 하나의 대상에 천천히 집중하여 반복되는 동작으로 단조로운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단조로운 리듬을 정신과 몸에 천천히 새기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날선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집중, 단조로운 리듬, 그리고 그것의 반복은 도색이라는 취미를 마음을 가라앉히는 취미로 만들게 된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보이는 도색이라는 취미는 대단히 어려운 취미로 보일 수 있긴 하지만, 도색하는 미니어처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색의 분할을 상정하고 디자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할된 색들을 전제로 하고 있는 미니어처들의 디자인들은 도색을 하는 사람의 지식과 욕심만큼이나 더 세부적으로 디테일을 올릴 수 있다. GW의 미니어처들을 예로 들어보자:스페이스 마린의 경우, 간단하게 도색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단색으로 색을 모두 올린 뒤 몇몇 디테일들에 대해서만 다른 색을 써도 된다. 하지만 더 욕심을 내고,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각각 장갑 패널마다 빛나는 부분에 대해 반사되는 빛 묘사를 하는(흔히 도색판에서 이야기하는 Non Metalic Metal, 즉 금속색의 도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일반 도료로 묘사를 하는 것) 것으로 묘사할 수 있는데 단색 아머 패널 하나만으로도 거의 6개 이상의 도료를 쓸 수 있다.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도색을 취미로 삼은 사람들에게 두가지 덕목이 요구된다:하나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테크닉과 색에 대한 탐구열이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도색이라는 취미는 도색을 하는 사람의 자율이 중요한 취미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방법을 찾아가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이 들고, 끈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제대로 즐길 줄 안다면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도색은 일종의 수양의 취미다. 스스로 가다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집중과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모든 취미들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과정' 역시 중요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도색이라는 취미는 거의 모든 것이 DIY의 영역이기 때문에 결과를 향한 과정이 더 부각되는 부분들이 있다. 물론 모델들이 비싸고, 시간이 많이 들고, 본 궤도에 오르기 까지 인내심과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찾고 번잡한 자신을 잊고자 하는 취미를 찾는다면 도색도 괜찮은 취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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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 블로그와 블로그 주인장은 앞으로도 뻘글을 최대한 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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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는 닌텐도로 나온 메트로이드 시리즈와 코나미에서 나온 캐슬베니아(일본쪽 명칭으로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 두 이름을 합쳐서 만들어진 조어다. 정확하게는 메트로이드가 먼저, 월하의 야상곡이 등장한 이후에는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가 정착했다. 메트로베니아는 2D 플랫포머의 하위 장르지만 단방향적인 스테이지를 두고 달려나가는 거대한 스테이지를 설정해두고 플레이어가 스테이지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메트로이드와, 여기에 RPG 요소들을 탑재한 월하의 야상곡을 통해서 장르적으로 성립되었다.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는 이후 캐슬베니아 시리즈로 이어져내려오다가, 2D 플랫포머가 메인 스트림에서 내려온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게임이나 소규모 제작 게임들(블러드스테인드나 할로우 나이트 같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확실한 점은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 자체는 여전히 현역이고, 많은 개수와 재해석이 이루어진 '살아있는 장르'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원판이라 할 수 있는 메트로이드와 캐슬베니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력을 잃었다는 점일 것이다. 캐슬베니아의 경우, 코나미의 노선 변경과 프로듀서인 이가라시 코지의 이탈 등의 다양한 일들이 겹치면서 2010년 전후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메트로이드는 조금 달랐다. GBA로 나온 메트로이드 퓨전 이후, 메트로이드는 프라임 시리즈를 내면서 기존 메트로이드의 노선과 다른 길을 걸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메트로베니아 혹은 메트로이드 장르에 속한 메트로이드 게임은 사실상 2002년 퓨전이 마지막이었다. 1인칭 액션 게임으로 새로운 방향성으로 나가고, 그것이 결말을 맺은 프라임 3부작이 07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침묵은 어찌보면 캐슬베니아 시리즈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할 수 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커럽션 이후 14년, 그리고 퓨전 이후 19년만에 등장한 2D 메트로베니아 게임이다. 메트로이드 프라임 4가 나오는데 기약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 사이를 매꿔줄 작품이 필요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메트로이드 퓨전으로부터 정식으로 이어지는 속편이었다는 점은 팬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제작사인 머큐리 스팀이 메트로이드 사무스 리턴즈를 만든 제작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선택이 그렇게 까지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동시에 근 20년만에 다시 2D 메트로이드 장르로 돌아온 것일까? 그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가? 라는 질문들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긴 했을 것이다.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는 메트로이드나 케슬베니아의 역사를 넘어서 장르 그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드레드는 프라임 4이 나오지 않는 기대감을 채워줄 지 여부를 떠나서, 지금와서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다시 그 문법을 따르면서 재조명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까지 대답해야 했었던 부담감을 지고 있는 게임인 셈이다.

 

드레드는 특이하게도 메트로이드 기본 시리즈 본연에 충실한 게임이다: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능력들을 얻고, 스테이지를 풀어나간다. 놀라울 정도로 드레드는 이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19년 간의 공백동안 있었던 장르적 변주나 발전을 철저히 배제한 체 우직하게 기본 구성으로 승부를 본다. 게임은 3DS 버전 사무스 리턴즈에서 적용한 우 스틱으로 조준하는 시스템과 후술할 몇몇 부분을 빼면 이전 메트로이드와 거의 동일한 구조이고 그 차이를 제외한다면 19년전의 메트로이드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훌륭하게 작동한다. 기본적인 장르적 재미 자체는 이미 30년전부터 보장된 시리즈지만,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그러한 시리즈의 본질에 충실하다.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새로운 능력을 얻고, 더 나아가서 보스와 싸운다. 최근 게임들이 많은 부분 포기했다 할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구성'이나 '재미가 떨어질만한 구간에서 새로운 요소를 투입해 재미를 주는 진행 곡선'은 메트로이드 드레드에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드레드는 메트로베니아, 아니 그보다도 더 이전의 메트로이드의 뼈대에 기반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베이스가 되는 게임 플레이는 이전 시리즈와 같이 상당히 깊이가 있다. 메트로베니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던 월하의 야상곡이 능력의 구분에 따라서 맵을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거칠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월하의 야상곡에서 스테이지들은 상당히 러프하고 분명하게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데, 더블 점프가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박쥐 변화가 있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 등등으로 얻는 능력에 따라서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이 분명하게 정해졌다. 하지만, 오래된 메트로이드 시리즈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능력에 따른 스테이지 구분들을 다양한 테크닉 등을 통해서 뛰어넘을 수 있게끔 하는 것들이 가능했다. 요컨데, '그 능력을 해금하지 않고도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숨겨진 테크닉과 구간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깊이 때문에 드레드는 실제 플랫포밍 플레이를 진행할 때 더 다양한 선택지들이 존재하는 편이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흐름은 동키콩 트로피컬 프리즈의 케이스 때와 유사하다:게임은 고전 2D 플랫포밍 게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한 편, 그 속에 두 가지 트렉을 숨겨두는 것이다. 하나는 게임 스테이지를 그대로 따라갔을 때의 정석적인 흐름, 또다른 하나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깊이 이해했을 때 색다른 흐름으로 경험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두 흐름이 상충되지 않고(강제적인 게임 플레이로 게임을 쉽게 만들지 않고, 동시에 게임 난이도를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는 등), 서로 상보적인 동시에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점(동키콩 트로피컬 프리즈에서는 바나나 코인과 같은 요소가 그러하고, 메트로이드 드레드에서는 업그레이드 요소가 그러할 것이다)에서 드레드의 큰 흐름은 동키콩 프로즌 컨트리와 맞닿아 있다:2D 플랫포밍에서 스피드 러닝의 테크닉과 플랫포밍 게임에서의 테크닉을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기에 드레드는 E.M.M.I라는 독특한 변주를 준다:E.M.M.I.는 특정 스테이지 구간에서만 등장하는 보스형 몹이며, E.M.M.I.는 죽일 수 없기 때문에 구간 내의 보스를 잡아 1회성 능력인 오메가 빔을 해금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피해서 돌아다녀야 한다. 즉, 이 스테이지에서는 E.M.M.I.가 일종의 이동형 즉사 장애물로 등장하고, 플레이어는 최대한 이들을 피해서 E.M.M.I가 없는 스테이지 밖으로 피신해야 한다. 이동형 즉사 장애물이 나오는 게임들이 최초는 아니지만, E.M.M.I.는 상당히 넓은 구간에서 지독하게 플레이어를 쫒아온다. 그걸 떨쳐내기 위해서는 스테이지 내에 있는 다양한 요소(자력 벽이나 카트, 작은 통풍구 등)들이나 플레이어의 능력(투명해지는 능력 등등)들을 최대한 쥐어짜야 한다. 이러한 E.M.M.I.가 등장하는 구간이 플레이어가 계속 진행하는 방향에 등장하기 때문에, 게임에 긴장감을 계속해서 더 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게임 자체가 상당히 일방향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하나 하나 따져보면 진행 방향이 분명히 정해져있는 게임이긴 한데, 그래도 최근의 메트로베니아 시리즈들처럼 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탐색하거나 하는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나마 중반 이후에 맵을 탐색할 수 있게끔 풀어주기는 하는데, 그 타이밍이 좀 늦다는 느낌이 강한 기분이다. 더 넓은 맵에서 자유롭게 탐색하는 진행 구간을 늘려줬으면 더 재밌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아마도 전통적인 메트로이드 시리즈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배려하기 위해 제작사가 넣은 부분이라 판단된다. 다만, 너무 배려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도 들긴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여전히 지금도 전통적인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임이다. 숙련된 플레이어면 5~7시간을 하면 클리어하긴 하겠지만, 그 5~7시간을 매우 만족하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음번 작품에서는 좀 더 플레이어를 풀어주고 좀 더 몰아붙여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고어Gore란 무엇인가. 고어란 영어의 오래된 표현 중, 엉겨붙은 피, 선혈을 표현하는 단어로부터 유래되었다. 피의 카니발 이후, 고어라는 장르는 B급 호러영화에서 일반 영화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인체 훼손과 파괴는 특정 서브컬처의 점유물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가 폭력이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피와 근육, 뼈의 파편으로 분해되고 쪼게지는 그 모독의 미학은 대중에게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폭력이 존재하는 곳에는 그 증거물로 고어가 존재할 것이고, 대중매체가 폭력을 다룬다면 고어의 표현방법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나아가보자:인간의 인격을 해체하고 모독하는데 있어서 폭력이란 '물리적'인 방법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한 인간이 인간 미만의 존재로 모독당하는 과정, 더 나아가서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불쾌함이란 단지 물리적 고통을 넘어서, 사회 경제적인 빈곤이나 정신적인 질병, 인간과의 관계 등에서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고어의 미학 범주에 넣진 않겠지만, 이러한 모독과 부패의 과정 역시 광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고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광의의 고어, 인격체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찌그러 들고 부패하는 과정은 대중적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폭력과 그 표현 방법론으로 고어는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현실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비현실적인 욕망(폭력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고어의 미학은 발전했다. 터져나가는 머리, 흘러나온 내장, 박살난 신체들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들을 충족하기 위한 미학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한 인간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박살나는 과정에서 대중이 일반적인 고어의 미학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다. 이러한 모독과 파괴의 과정은 비일상적인 축제라고 이야기하기에는 현실의 재현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난, 정신병, 사회적 차별 등은 여전히 현실이다. 그런 실제의 모독을 재현하는 것은 재미와 해방과 거리가 멀다. 

 

물론 이런 인간 모독의 과정을 다루는 작품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들이 그렇고,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고자 하는 클린 쉐이븐 같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흥미롭게도 아트하우스 영화에서 사회적인 차별이나 정신병 같은 소재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벡터가 있는 작품이었다면 클린 쉐이븐 같은 작품들은 가난과 정신병과 같은 것들이 '날 것 그 자체'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작품이다.

 

클린 쉐이븐은 망가져버리고 낮게 짖눌려버린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클린 쉐이븐의 주인공은 조현병을 앓는 환자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입양된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서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일반적인 맬로 드라마 같진 않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환청을 듣고, 편집증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유리를 가리거나 뒤집으며, 더 나아가서는 실제 자신이 했는지 안했는지 조차 불분명한 상황들(아이를 살해하는 장면이라던가)의 환상에 시달린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영화는 밑바닥 삶을 메마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클린 쉐이븐의 미학은 쓰레기의 미학이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이란 인간 인격의 파괴된 잔여물, 광범위한 의미의 고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세계는 주인공의 머릿속 마냥 난잡하고 무가치하며 흩어져있다. 그가 훔친 차, 도서관에서 흐트려놓은 책들, 잠시 들렀던 그의 부모의 집과 싸구려 모텔 등처럼 그의 주변 모든 것들은 지저분하게 눌어붙은 자국마냥 빛을 바라고 어지럽게 흐트러져있다. 이러한 어지럽고 지저분한 광경들은 인물들이 처해 있는 광경들이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여기에 어떤 감상조차 담지 않고 메마른 감수성으로 보여줌으로 마치 파괴되어버린 인간들의 모든걸 마치 로드킬 당한 고양이의 시체마냥 무덤덤하게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클린 쉐이븐에서 육체의 파괴와 정신의 파괴가 서로 교차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몸에 도청장치가 삽입되었다고 믿고, 스스로 머리 가죽을 뜯어내거나 손톱을 파내고 그 밑에 있는 살점을 칼로 후벼 판다. 상당히 고통스러운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태도는 흥미로운데, 자신의 조현병적인 집착에 그 행위가 주는 고통에 대해서 어떠한 반응을 하지도 않은채 차갑고 덤덤한 시선으로 자신의 행위를 응시한다.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 자신의 신체조차 조현병적인 망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레기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정신은 파괴되고 부패되어 분해되어간다.

 

하지만 그런 그가 딸 앞에서 어떻게든 정상임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을 영화는 극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동시에 영화 내내 보여준 부패되고 망가져버린 그의 삶과 정신 속에서 어떻게든 딸 앞에서 논리와 이성을 지키고 딸을 되찾으려 하는 시도 자체는 영화의 미학에 대비되어 더 극명하게 두드러진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딸을 죽였다고 오해한 형사에 의해서 버려지는 쓰레기처럼 죽어버린다.

 

클린 쉐이븐은 인간과 쓰레기가 같이 뒹굴면서 그것이 결국은 '신뢰할 수 없는 주인공=쓰레기=박살난 인격'이라는 미학을 완성시키지만, 그러한 미학에도 불구하고 딸을 찾아나서는 그 과정에서 일말의 가능성과 그것이 부정되는 순간을 메마르게 다뤄낸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특이한 감수성이 충만한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쓰레기와 같은 풍경과 메마른 감상주의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면서 불쾌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묘한 인상을 준다. 마지막 딸이 아버지가 죽은 과정을 모두 목격하고도 죽어버린 아버지를 추억하며 무전을 하는 장면은 기분 나쁘게 메마른 영화에 남겨진 오아시스 같은 장면일 것이다.

 

 

게임 이야기

 

데스 루프는 아케인 스튜디오에서 만든 액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콜트를 플레이하며 섬에 존재하는 8명의 선지자를 단 하루만에 모두 다 죽어야 한다. 이머시브 심 게임이라는 점과 암살 타겟들을 차례대로 처리해야한다는 점에서  게임은 아케인 스튜디오에서 만든 이전 작들인 디스아너드 시리즈와 유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데스 루프에 이전작들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게임의 흐름 자체가 하나의 스테이지를 여러번 플레이하게끔 짜여있다는 것이다.

 

데스루프의 핵심은 가벼움과 반복되는 게임 플레이다:디스아너드 시리즈와 비교해보면 이 게임의 특이한 부분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편인데. 기존의 디스아너드 시리즈들이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게임 속 다양한 요소들과 반응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이머시브 심을 지향했었기 때문에 게임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세밀하게 짜여졌으며, 동시에 '플레이하기 무거운 형태'를 지향했다. 가령, 플레이어가 블링크를 이용해서 고저차를 이용한 은신을 하는 게임 플레이를 지향한다고 하자. 이렇게 은신 형태의 게임을 플레이할 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다른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재화나 스킬에 필요한 포인트 등이 결국은 '제한된 재화 내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선택해서 나가는 것'을 지향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선택한 플레이 스타일은 쉽게 다시 돌아가기 힘든 그런 부분이 있다. 모든 자원과 게임 플레이의 지향성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데스루프의 게임 플레이는 디스아너드와는 사뭇 다르다.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면 플레이어는 대부분의 무장과 스킬들을 쉽게 맞출 수 있고, 스킬을 쓰는데 이용되는 에너지도 자동으로 회복되며, 잠입의 실패에 대한 처벌도 관대하다. 게임은 이전 디스아너드나 다른 이머시브 심 게임들에 비하면 대단히 관대하다는 인상인데, 이는 게임의 전반적인 구조 때문에 그러하다.

 

데스루프의 게임 플레이는 빠르고, 시원스러우며, 플레이어로 하게끔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시도하게끔 만든다. 데스루프는 이전 이머시브 심 게임들에 비해서 아드레날린을 한껏 들이킨 모습을 보여준다:플레이어는 원없이 달리고, 원없이 특수능력을 쓰며, 강력한 초능력들로 적들을 농락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이머시브 심 게임들과 비교할 때, 전면전과 잠입 플레이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인데, 잠입을 하다 실패했을 시 빠르게 전면전으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전면전에서 밀리면 빠르게 이탈하고 적들에게서 한숨 돌리는 것도 쉽다. 적들 AI의 반응성이나 경보 시스템이 정교하지 않고, 체력을 제외한다면 플레이어의 화력이나 능력이 다른 게임보다 더 강하게 책정되었다.

 

데스루프의 게임 플레이 핵심은 기본적으로 게임 스테이지들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전 게임들과 다르게, 데스루프에서는 기본적으로 4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머시브 심답게 각각의 맵들은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전체의 맵 크기만 놓고 본다면 데스루프의 맵 크기와 다양성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게임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감되는 게임 스테이지의 크기는 더 적은 편이다.

 

대신 게임은 맵을 줄여놓은 대신에 다양한 방향성을 부여한다:각 스테이지에 대해서 4개의 시간대를 쪼게놓은 뒤, 8개의 타겟과 다양한 이벤트들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스테이지 각각은 분명 기존의 디스아너드의 맵들 크기거나 혹은 그거보다 작은 편이지만, 시간대를 각 스테이지에 바리에이션을 두고, 각기 다른 이벤트들을 시간대별로 배치하여 마치 서로 다른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기분을 들게 만든다. 

 

분명한 점은 데스루프의 게임은 겉보기와 다르게 '로그라이크'는 아니다. 게임 내 모든 요소들은 정확하게 동일한 위치에 존재하고,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이벤트들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스테이지를 외워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것은 플레이어의 행동으로 인해서 그 다음 시간대 스테이지가 바뀌는 것 뿐이다. 대신 하루가 지나면 플레이어가 들고 있는 소지품과 모든 게임 진행 상태가 리셋된다는 점에서 로그라이크 같이 생기는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스킬이나 장비 등을 쉽게 전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의 핵심은 '전체 구조를 익히고, 필요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스테이지에 변화를 유발해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스루프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선형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대신에 그 선형의 게임 플레이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더 잘하게 되고, 강해지는 것이 게임 경험의 핵심이다. 선지자를 암살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선지자를 암살하는 순서와 처리하는 시점은 고정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그 단 하나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게임은 이러한 과정을 UI/UX 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UI/UX가 가르키는 방향으로만 잘 진행해도 큰 막힘없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데스 루프의 게임 스타일은 이전 디스아너드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그 깊이가 얕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 부분들은 전적으로 적 AI들 때문이다:AI들의 감지나 반응 속도, 움직임들은 상당히 딱딱하고 느리며 단순하다. 이 덕분에 소음기 달린 권총들을 구하기 시작하면, 게임의 난이도가 너무나 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소음기 권총 헤드 한방에 적을 끝낼 수 있고, 다른 초능력들을 사용하면 더 게임이 쉬워진다. 기존 디스아너드 시리즈를 플레이 해본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쉽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플레이 구성이 '하나의 스테이지를 탐색하며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루프로 넘어가서 탐색한 정보를 토대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스테이지를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탐색하고 다음 시간으로 넘어갈 때, 망설임 없이 넘어가길 바라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AI 적들이 너무 똑똑하거나 게임 플레이에 발목을 잡았다면 루프를 빠르게 넘어가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기존 이머시브 심에 비해서 '이머시브 심이되 플레이어의 파워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벼움을 추구하는 것이 데스 루프다.

 

대신 게임은 줄리아니라는 독립 변수를 부여한다:줄리아니는 고정되어있는 선지자들의 행적이나 스테이지 구성과 다르게 플레이어를 능동적으로 사냥하는 적인데, 좋은 총기와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게임 내에서는 일종의 '보스'나 '문지기'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싱글플레이에서 줄리아니는 플레이어의 위치만 알 뿐 여전히 둔감한 AI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싱글플레이의 줄리아니는 플레이어가 쉽게 농락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줄리아니가 사람이 잡아서 플레이하는 멀티플레이도 가능하다. 일종의 다크소울처럼 '암령 플레이'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진행했을 때 게임 플레이의 질이 많이 높아진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문제는 게임을 플레이 했을 당시에는 멀티플레이가 잘 잡히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만약에 플레이를 원한다면 사람들을 잡아 같이하길 추천하는 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데스루프는 빠르고 가벼워졌고 그 바운더리 내에서는 훌륭한 게임이다. 달리면서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초능력을 마음대로 쓰며, 막히지 않고 빠르게 플레이하기를 원한다면 데스루프는 훌륭한 게임이다. 다만 알아둬야 하는 점이 있다면, 이 게임은 기존의 이머시브 심 게임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가볍고 다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이머시브 심 게임들을 해봤다면 당혹스럽게 느껴질 부분들이 꽤 있다. 멀티까지 포함해서 보았을 때는 훌륭할 수 있지만, 같이 할 사람을 고정적으로 구했을 때의 이야기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구매를 할 때, 꼭 호평만 보고 구매하지 말고, 양쪽 장단점을 모두 비교하고 구매할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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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포르자 호라이즌 5는 엑스박스 독점 오픈월드 레이싱 게임이다. 구엑박 시절부터 함께한 유서 깊은 레이싱 시리즈였던 포르자 시리즈는 일반적인 레이싱 시리즈였던 모터스포츠, 그리고 오픈월드 시리즈였던 호라이즌으로 나뉘게 된다. 호라이즌에서 플레이어는 축제의 슈퍼스타로, 맥시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자동차 레이싱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서킷 레이싱,  스트리트 레이싱, 차량 스턴트 등의 활동을 즐기게 된다. 이런 레이싱 장르의 게임들이 보통은 한 두개의 활동에 집중하는걸 생각한다면, 포르자 호라이즌 시리즈의 야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자 호라이즌 5는 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게임이다. 레이싱 게임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핵심적인 재미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으로 생각하보면 레이싱 장르가 입문 난이도가 높은 것도 이 '빠르게 달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었다:어느 속도로 코너로 감속해야 하는지, 자동차는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이싱 장르에는 '완벽한 주행'이 존재한다:모든 서킷과 코스에는 정답이 존재하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정확히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이싱 장르의 게임이 점점 시뮬레이션에 가까워질 수록 게임의 입문 난이도를 높이는 원인이 되었고, 레이싱 게임에서 많은 요소들을 단순화 시키고 플레이어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레이싱 아케이드 류의 장르(니드 포 스피드 같은)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포르자 호라이즌 5은 시뮬레이션과 양쪽 모두의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다루고 있는 활동의 범위가 매우 넓고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클래식 세단 ~ 슈퍼카까지)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심케이드(시뮬레이션+아케이드) 레이싱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자동차들과 특징들을 세밀하게 구현하고는 있긴 하지만, 기존 시뮬레이션 레이싱에서 나오지 않는 요소들도 존재하고 게임의 주요한 축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시간을 되돌려서 과거 주행 시점으로 돌아가는 되감기 버튼, 레이싱 중 최적의 주행경로와 속도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 주행 이외에도 드리프트나 기물 파손 등을 점수화 하고 경험치를 얻는 구조, 외관만 부서지고 실제 주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요소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포르자 호라이즌 5의 아케이드 요소들은 게임을 단순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게임에 빠르게 적응하고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부분들은 뛰어난 그래픽이나 음향, 음악들과 잘 어울러져서 플레이어에게 주행의 쾌감을 전달하는데 반복 플레이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또한 후술할 시뮬레이션 요소들과 오픈월드 요소들로 인하여 단순한 반복이 아닌 게임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콘탠츠 소비 구조가 구축된다.

 

포르자 호라이즌 5의 시뮬레이션 요소들은 다양한 차들과 튜닝 요소다:포르자 호라이즌 5에는 수많은 차들이 존재하고, 이 차들은 튜닝을 통해서 더 정교하게 성능을 조정할 수 있다. 게임은 다양한 상황(로드, 서킷, 스트릿 레이싱, 스턴트, 오프로드, 크로스 컨트리 등등)에서 레이싱을 제공하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 맞춰서 차와 튜닝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이다. 튜닝으로 성능을 조정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처음 초반에 제공해주는 3개의 차들이다:이들은 튜닝에 따라서 거의 상당수의 상황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튜닝을 통해서 상황에 맞게 차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등급도 자유자재로 조절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튜닝이라는 요소는 게임의 폭과 다양성을 넓혀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튜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차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혹은 일상생활에서 차를 타는 정도로만 차를 아는 사람에게 엔진이나 타이어, 심지어는 타이어 공기압까지 조정을 해야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심한 허들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순정 차량으로 레이싱을 하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일종의 한계치가 있는데, 그 한계치를 돌파하기 위해서 튜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포르자 호라이즌의 가장 독특한 점이자 강점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포르자 호라이즌 5는 주행의 편의성을 아케이드 레이싱의 방법론으로, 주행의 깊이와 다양성을 시뮬레이션의 방법론으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 자체는 이전 레이싱 게임에서도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었던 부분들이었다. 포르자 호라이즌 5가 다른 레이싱 게임보다 높게 비상하는 것은 이러한 방법론들을 오픈월드와 커뮤니티라는 거대한 횡적 다양성으로 묶고 있는 부분에 있다:기존의 게임들이 다양한 방법론들을 한데 묶어서 하나의 축으로 깊이있게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처음 콘탠츠들은 쉽게 버려지는 경향성도 있었다:레이싱 게임은 보통 처음 언락되는 자동차들이나 트랙들, 난이도들은 이후 게임에서 플레이되지 않는다.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초반 콘탠츠의 리플레이 가치는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포르자 호라이즌 5의 핵심적인 매력과 재미는 '레이싱 서킷에 정답은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은 자동차의 수와 종류만큼 존재한다'에 존재한다. 포르자 호라이즌 5에서는 낮은 등급(B~A등급)의 자동차들이나 트랙들이 자주 다시 플레이된다. 튜닝의 깊이도 있지만, 트랙에 다양한 차량들을 가지고 와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다. 그것은 게임이 횡적으로 엄청나게 다양하고 풍부한 콘탠츠들과 서킷을 제공하고, 튜닝이나 다양한 차량들로 매번 달리는 재미를 다르게 한다. 어떻게 보면 트리플 A 게임이 도달한 궁극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데, 깊이와 콘탠츠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모두 사로잡아 플레이어를 만족시킨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자 호라이즌 5는 게임 내에 플레이어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플레이어들이 함께 달리는 감각을 제공한다. 자신의 튜닝 설정을 제공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튜닝을 할 수 있게 하든가, 서킷 이벤트를 만든다든가, 길거리 1대1 레이싱을 즐긴다든가, 데칼을 공유한다든가 등의 다양한 콘탠츠들을 유저가 만들고 공유하고 그리고 함께 즐긴다.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포르자 호라이즌의 커뮤니티 공유 구조는 편리하며, 게임의 오픈월드 구조와 콘탠츠 재생산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결론을 내리자면, 포르자 호라이즌 5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축제라 할 수 있다. 달리는 것도 재밌고, 달리는 과정에서 점점 더 능숙해지는 과정도 재밌고, 사람들과 게임을 같이하는 것도 재밌다. 레이싱 게임들이 보통 매니악한 유저층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포르자 호라이즌 5는 그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게임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훌륭한 게임이다. 게임 패스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플레이해보기를 추천하며, 게임패스가 없더라도 구매해도 아깝지 않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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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광기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광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단순히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광인이라 부르기에는 이 정의는 너무나 무딘 정의라 할 수 있다:고대에서 광인들은 때때로 미래를 예지하거나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되어 중요한 직책을 맞기도 했기 때문이다. 환각과 광기에 기반한 통찰력은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현대 사회가 인정하는 광인과 광기의 정의와 범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이는 광기의 특징에 기반한다:광기는 종종 일반적인 논리의 단계를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요소들을 유연하게 연결한다. 그것은 때때로 일반적인 논리로 통찰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개척하는데, 그 광기의 유연함과 논리를 벗어난 자유로움이야말로 광기의 핵심이다.

 

사이코너츠 2는 구 엑박 시절 광기넘치는 플랫포밍 게임인 사이코너츠 1편의 정식 후속작이다:구엑박에서 엑박 360, 엑박 원을 넘어서 엑박 시리즈 엑스까지 콘솔 3대를 뛰어넘는 근 20년만의 신작인 셈이다. 1편은 컬트 게임의 명작이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근 20년만에 정식 신작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인 동시에 걱정되는 일이었다. 더블파인 스튜디오가 오랫동안 게임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사이코너츠와 같은 플랫폼 게임은 만든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너츠 2는 그러한 불안을 떨쳐내고 20년만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게임이었다.

 

사이코너츠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플랫포밍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라즈를 조작해 사이코너츠에서 사람의 정신세계를 탐험하면서 머릿속의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 깊숙한 곳의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사이코너츠가 거의 20년 전의 게임 치고 놀라웠던 부분은 현대적인 3D 플랫포밍 게임과 비견해도 낡지 않은 게임 플레이와 스테이지, 그리고 유연한 스테이지 구성에 있다:사람의 머릿속 처럼 광기 넘치게 구성되어 있지만, 동시에 나아갈 길이 뚜렷하게 제시되고 나아가게끔 유도하는 점 등은 최근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광기라는 측면에서 사이코너츠는 정말로 훌륭하다:스테이지의 다양한 요소들은 등장인물의 정신 세계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모습들인데, 마치 말도 안되는 요소들이 등장인물들 머릿속의 내적 논리에 의해서 하나의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광경은 장관이다. 정갈하게 정리된 샤샤의 머릿속에 점점 카오스가 펼쳐지는 장면이나, 생선의 머릿속에 고질라와 같은 스테이지가 만들어진다 하는 등의 장면들은 '말이 전혀 안되는데 묘하게 말이 되는' 모습들이다. 전반적으로 사이코너츠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러한 정신나간 것들이 실제 말이 되게끔 구성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사이코너츠 2는 사이코너츠 1의 미덕을 제대로 이어받고 있다. 사람의 머릿속을 게임 스테이지로 풀어내는 듯한 게임 스테이지 구조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첫번째 게임 스테이지인 닥터 로보토의 스테이지를 보자:인셉션을 패러디한 구조인 이 스테이지는 전작의 악역이었던 닥터 로보토로부터 흑막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심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닥터 로보토가 저항하면서 원래 설계되었던 스테이지는 점점 로보토의 치과처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두가지 컨셉의 스테이지(의도적으로 로보토를 속이기 위한 스테이지 + 로보토의 내면이 형상화된 치과 스테이지)가 점점 섞이면서 스테이지의 구성이 바뀌는 것이 일품인 스테이지인데, 사이코너츠 2의 모든 스테이지들은 이런식으로 게임의 플롯과 컨셉, 게임 내의 플랫폼 컨셉들이 함께 어우러져있어 게임을 흥미롭게 만든다.

 

사이코너츠가 훌륭한 점은 뭔가 대단히 난잡한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진행하는 과정은 직관적이라는 것이다:사람의 머릿속처럼 혼란스럽고 복잡하더라도, 나아갈 길이 어딘지를 직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의 스테이지 디자인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 이러한 가이드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코너츠 2가 1편보다 더 나아진 부분은 이러한 스테이지들이 단순히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가진 스테이지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콜튼 부울의 스테이지를 예로 들어보자:콤튼은 주변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인물인데, 플레이어인 라즈는 그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서 그의 정신세계를 탐험해야 한다. 이 때 콤튼의 정신세계는 음식 만들기 버라이어티 쇼로 재구성되는데, 주변인(포드 크롤러, 포사이스, 제나토)의 손인형들이 쇼 게스트로 나와 음식을 요구하며 콤튼을 압박하고, 라즈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음식을 만들면서 그의 중압감을 해소하고자 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인형탈과 보스전을 치루고 난 뒤에 그 인형탈들을 조작하던 손이 사실은 콤튼의 손이라는 점을 통해 '그러한 부담감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라는 것을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그 외에도 밥 자나토의 정신세계나, 감각을 찾아 떠나는 헬무트 풀베어의 여정 같은 장면에서 단순히 출발지 ~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플랫포밍 스테이지와 달리 다양한 컨셉과 흥미로운 설정들, 스테이지 기믹들을 붙여서 구성을 한다.

 

사이코너츠 2에는 다양한 초능력들이 등장하고, 이 초능력들을 이용해서 전투와 플랫포밍 양쪽을 다 이끌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파이로키네시스 능력은 막혀있는 벽을 불로 뚫을 수도 있고, 적들에게 불을 붙여서 도트 데미지를 입히는 능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8개의 초능력이 등장하고, 여기에 뱃지를 추가해서 전투나 플랫포밍에 유리한 능력을 해금하는 것이 초능력의 능력이긴 한데, 플랫포밍 쪽에 비해서 전투쪽의 초능력은 쓰이는 것만 쓰이는 느낌이라 좀 애매한 느낌이 있다.

 

전투는 전작과 유사하게 근거리/원거리를 자유롭게 섞어가면서 싸우는 전투 방식을 취한다. 평타 콤보와 원거리을 전담하는 초능력들을 이용해서 적들과 싸우게 되는데, 단순히 적들을 두드려 패는 것 외에도 몇몇 몹들은 상당히 독특한 기믹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배드 무드의 경우, 몹을 무적으로 만들어내는 근원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죽일 수 없는데 정신적으로 기분 나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선한 기믹이라 할 수 있었다. 게임은 이와 같이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을 적으로 형상화하였는데, 이것들이 상당히 게임의 컨셉과 명확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에 재밌게 느껴진다. 다만, 몇몇 보스들은 기믹보다 좀 억지로 들어갔다는 느낌(밥 자나토 보스전 같은)이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코너츠 2는 요즘 트리플 A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센스와 완성도 높은 스테이지를 자랑하는 플랫포밍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패스에 기본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시간과 기회가 된다면 꼭 플레이하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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