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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선브레이크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통상적으로 나온 G급(이제는 마스터 급이지만) 확장팩이다. 라이즈의 등장이 월드와 기존 더블 크로스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몬스터 헌터의 지평을 열긴 했었다. 그러나 라이즈는 동시에 전작인 기존 월드가 오랫동안 업데이트를 통해서 쌓아왔던 게임 콘탠츠를 따라가지 못했던 부분들 때문에 초반의 호평에 비해서 상당한 악평을 받았던 부분들이 있다. 결국 라이즈의 없데이트라는 악명으로 사람들은 후속 콘텐츠를 해금해주는 대형 확장팩 선브레이크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고, 확장팩 선브레이크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주었다.

선브레이크의 라이즈 개선 방향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질적인 개선이다. 선브레이크는 다양한 수렵 기술들을 추가한 다음에 신속 교체라는 시스템을 추가하였다. 플레이어는 특정한 버튼 조작으로 수렵 기술을 미리 세팅해둔 수렵교체 기술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게임 플레이 방법은 상당히 단순한 방법이긴 하지만, 라이즈 시절의 시스템과 큰 차별성을 만들어준다. 기존에는 하나의 수렵 기술과 버프 조합만을 다룰 수 있었다면, 이제는 서로 다른 두 사냥 기술들을 조합해서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쌍검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기존 쌍검은 지상 무빙을 중요시 여기는 흐름(돌진 베기, 슬라이딩 베기 등)이나 공중 공격으로 이어주는 흐름(귀인 공무, 망루 뛰기 등)이 존재했었고, 이 두 흐름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속 교체의 추가로 인해서 두 스킬셋을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조합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귀인화 게이지를 채우는 건 느리지만 데미지가 늘어나는 귀인화 짐승과 빠르게 귀인 게이지를 채울 수 있는 일반 귀인화를 오가면서, '귀인게이지는 일반 귀인화로 채우고, 주력 딜링은 신속 교체로 바꿔서 귀인화 짐승으로 한다' 라는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다. 기존 라이즈에도 몇몇 수렵 기술들이나 스타일이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였지만, 구성을 다앙하게 바꾸는 것이 어려워 결국은 하나의 스타일만 살아남게 되었는데, 신속 교체를 통해서 자유로운 게임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전반적인 무기 벨런스 조정도 가해졌다. 원본이 태도 편애로 논란이 될 정도로 무기 벨런스가 엉망진창이었다. 썬브레이크는 랜스와 건랜스 등의 무기들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강한 태도의 딜을 너프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는 강한 무기들에 대해서 특별한 너프를 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태도가 그만큼 얼척없을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무기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강한 무기의 딜을 줄이는 확장판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기믹들을 재활용하면 이전 수준의 딜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가 얼마나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는가'라는 분명한 디자인 철학이 생겼다고 할 수 있는데, 여타 무기들(수렵피리나 건랜스 같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서 무기의 딜 자체가 상향 평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선브레이크는 이전 몬스터 헌터 시리즈보다 무기 디자인 철학을 갈고 다듬어서 완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선브레이크의 두번째 개선점은 양적인 부분이다. 우선 G급(이제는 마스터 랭크)을 추가한 부분들이나 아종이 추가된 부분들은 의례 G급 확장판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부분이긴 하다. 아쉽게도 전작의 백룡야행이나 주인 개체들은 업데이트에서 그 기조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콘탠츠인 괴이화를 추가 되었다. 괴이화는 이전 영맹화나 극한 개체, 광룡 개체 같은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크로스나 더블 크로스의 영맹화처럼 괴이화 시스템은 괴이 개체의 체력을 늘렸으며, 특정 부분에 번쩍거리는 이펙트 부분에 공격을 집중해야한다. 이 부분에 공격을 집중시키면 데미지 축적량에 따라 큰 데미지를 주며 터진다. 하지만 몬스터에게 이러한 식의 경직을 주지 못하면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즉, 플레이어가 얼마나 게임에 숙련되어 빠르게 클리어하는가가 관건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선브레이크 발매 후, 업데이트로 추가된 괴이연성과 괴이 강화 역시 게임의 콘탠츠를 늘리는 요소라 할 수 있다. 4의 길드 퀘스트처럼 퀘스트를 레벨업 시킨다는 괴이 탐색은 괴이화 개체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얻는 재화를 이용해 장비를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괴이 연성의 경우 장비에 무작위의 스킬과 내성을 붙이는 시스템인데, 기존의 길드 퀘스트에서 장비를 발굴하는 것처럼 장비 계속해서 원하는 옵션이 나올때까지 강화해나가는 방식이다. 일종의 가챠 시스템이라 할 수 있지만, 원하는 장비가 나올 때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해서 스트레스를 유발했던 길드 퀘스트에 비하면 괴이 강화는 플레이어가 장비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원하는 옵션이 나올 때까지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저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선브레이크는 라이즈 이후 캡콤이 몬스터 헌터라는 프랜차이즈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훌륭하게 답을 내놓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라이즈 자체도 훌륭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면 선브레이크는 라이즈가 그동안 미쳐하지 못했던 것을 훌륭하게 이루었다 할 수 있다. 라이즈를 구매했거나 몬헌을 처음 해보거나, 혹은 몬헌을 사랑한다면 선브레이크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구에엑 그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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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반지의 제왕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블록버스터 영화의 흐름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그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스타워즈:보이지 않는 위협을 예로 들어보자. 스타워즈:보이지 않는 위협은 컴퓨터 그래픽을 대규모로 적용한 블록버스터였는데, 가장 유명한 자자 빙크스나 마지막 클라이맥스 전투장면에서 수많은 드로이드 병사들과 주인공 일행이 격돌하는 CG 장면들을 대거 채용하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미적지근할 수 밖에 없었는데, 본질적으로 CG와 배우들의 연기 사이에 비롯된 괴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자 빙크스는 아직까지도 팬덤의 증오를 받는 케릭터로도 악명을 떨쳤는데, 이는 케릭터의 성격 뿐만이 아니라 배우들 사이에서 묘한 어색함을 만들어낸 이유도 한몫했다. 하지만 CG의 등장은 블록버스터 영화 업계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반지의 제왕이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은 CG를 이용하면서도 '대규모 전투나 특정 부분에서 특수분장'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수분장 자체는 00년 이전 고전적인 헐리웃 영화나 B급 영화나 고어 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했던 테크닉으로 어떻게 보면 진부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피터 잭슨은 이 오래된 전통을 훌륭하게 살렸을 뿐만 아니라(카메라 앵글 내에서 주로 일어나는 전투들은 모두 특수분장과 액션으로 묘사하되, 규모가 큰 행군 장면 같은 부분들은 CG로 처리) CG에 비해서 오히려 값싸게 촬영함으로써 여전히 특수분장이 현역임을 과시하였다.

반지의 제왕의 케이스와 스타워즈의 케이스를 서로 비교해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질감'의 차이일 것이다. CG로 만들어진 드로이드들의 쨍하고 깔끔한 느낌은 어딘가 기존 배우들이나 세트의 질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소품이나 분장 등으로 구성할 수 없는 물건이나 씬의 구성 등은 분명 CG밖에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특수분장과 창작자들이 만든 소품들은 CG로 만들어진 물건들의 분위기와 다르며, 무엇보다 현실의 배우나 세트의 질감과 통일감을 이루게 되어 독특함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런 것들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들이 고어와 끈적거리는 것들에 대한 질감일 것이다:살의 번들거림, 내장의 축축함, 오물의 탁한 색깔 등은 CG로 만들어질 때와 특수분장으로 만들어질 때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한 때 과거의 주류였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찰흙이나 인형들을 이용해서 컷단위로 사진을 찍어 촬영한 후, 그것을 이어서 마치 인형이 움직이게끔 구성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로보캅이나 스타워즈와 같은 과거 영화들의 특수효과 전반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뚝뚝 끊기는 질감과 다른 세트와 별개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질감은 결국 더 나은 기술인 CG로 넘어가는 이유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질감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완전히 절멸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인 매드갓은 그러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정점에 선 필 티펫 감독의 작품이다. 로보캅이나 스타워즈 같은 작품들의 특수효과를 만든 이력이 있는 필 티펫은 이 매드갓을 찍기 위해서 30년을 투자하였다. 바벨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레위기로부터 시작하는 매드갓은 파괴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들의 연속으로 구성하였다. 축축한 고기덩어리와 점액질의 끈적함, 탁한 액체들 등으로 구성된 매드갓의 디스토피아는 극단적인 신체의 변질과 분해, 전쟁, 파괴, 죽음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매드갓에서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쓰레기와 폐기물'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진 덩어리들은 구역질나는 점액질들을 뱉어내며 먼지로 만들어진 사람들을 핍박하고, 의사는 병사의 몸에서 피에 젖은 귀금속들을 뜯어낸다. 매드갓의 강렬한 이미지들은 전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물건들의 질감'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타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쓰레기의 질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질감이 실제의 인물이나 세트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어딘가 이질적이고 뚝뚝 끊겨보이는 움직임, 그리고 그로테스크하게 부풀어 버린 살덩어리나 인물들의 움직임을 이질적으로 구성한다. 

혹자는 매드갓의 메타포가 죽어버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기도 한다:한 때 시대를 풍미했었던 스톱 모션은 이제 매이저 스트림에서 벗어나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는 강력한 이미지들은 여전히 지금에도 통용된다. 잔혹하게 해체된 병사에게서 때어낸 기괴한 태아는 곱게 갈려나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쇠락하는 프로세스를 다시 구성한다. 대사나 나레이션 없이 도달하는 매드갓의 강렬한 이미지들은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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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박스 매거진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링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 프랜차이즈를 꼽는다면 당연 콜 오브 듀티가 될 것이다. 매년 북미 최대의 게임 판매고를 올리는 게임, 매년 나오는데도 1000만 장 넘게 팔리는 게임, 2차 대전에서 시작해서 현대전 미래전을 오가는 게임, 전통적인 팀 데스매치류의 게임에서 워존이라는 배틀로얄 양식의 게임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콜옵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왕국이다.   
 
그러나 여타 트리플 A 게임들과 조금 다르게 판매량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애증을 한몸에 받는 프랜차이즈이며, '가장 많이 팔리면서 가장 싸게 만들어지는 트리플 A 게임'이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사례는 블옵 1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블옵 1편에 대한 포스트 모템(개발 이후에 개발 뒷 이야기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개발자들은 첫 미션인 쿠바 미션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버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개발자들은 NPC들이 특정 경로로 이동한 경우 계속해서 게임이 튕기는 치명적인 버그를 발견하였는데, 여기서 제시된 해결책은 버그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버그가 발생하는 경로에 NPC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탁자를 놓아서 버그 발생 조건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론은 언뜻 보기에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는 참신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점에서 단지 '눈속임'에 불과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때워버리는 방법론이야말로 콜옵 시리즈의 본질을 드러내는 근본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콜옵 시리즈는 2007년 전설적인 모던 워페어 1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고, '아직도' 2007년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빠른 TTK, 자극적인 연출과 장면에만 집중하는 시나리오, 킬스트릭과 같이 승자가 모든걸 취하는 구조의 멀티 플레이 구조, 바뀌지 않는 게임 플레이 등등은 07년도 모던 워페어에서 21년 뱅가드까지 모두 비슷하다. 심지어 중간에 미래전을 다뤘던 외도기에도 이러한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이 잘 팔리는 이유와 콜옵 시리즈가 잘 팔리는 이유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게임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잘 만든 게임이 잘 팔린다’는 명제를 믿는다. 그러나 콜옵은 잘 만들었기 때문에 팔리는 게임이 절대 아니다. 가장 엉망이었던 콜옵인 고스트나 인피닛 워페어의 요소들(거대하고 복잡한 맵 등)은 계속해서 모던 워페어 리부트를 통해 콜옵에 숨쉬고 있고, 모던 워페어 리부트의 총기 업그레이드 시스템이나 무기 판매 BM 등 역시도 콜드 워와 뱅가드에 계속해서 살아 있다. 콜옵 프랜차이즈의 성공과 실패는 각각 작품들의 성공과 실패가 아닌 프랜차이즈 전체의 것이었다. 
 
그리고 콜옵 프랜차이즈 전체로 놓고 보았을 때 콜옵이 팔리는 핵심은 '모든 것은 콜옵이 된다'이다. 한 때 현대전에 사로잡혀 있을 때, 콜옵은 새로운 트랜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미래전을 받아들이고, 배틀로얄 장르가 흥행하고 있었을 때는 배틀로얄 장르를 도입하며, 배틀로얄 장르에 배틀 패스를 도입하고, 싱글플레이를 없애는 실험과 좀비 코옵 모드를 넣는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테스트했다. 심지어는 타르코프 스타일의 멀티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루머도 있다. 콜옵은 장르를 리딩하진 않지만, 장르의 성실한 팔로워로써 베낄 수 있는 것들을 성실하게 베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콜옵은 하드코어한 게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프랜차이즈다. 이미 콜옵의 대체제들은 수도 없이 많다. 콜옵을 만들었던 제작자들의 타이탄폴은 콜옵식 킬스트릭 중심의 데스매치를 완벽하게 재창조시켰다. 워존이 콜옵식으로 재해석한 뛰어난 배틀로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장르적 분화를 거치고 있는 배틀로얄들을 생각한다면 유일무이한 배틀로얄 게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무리가 있다. 분명 콜옵 좀비 모드는 적당히 즐길만한 게임이긴 하지만, 동시에 단독으로 구성된 코옵 멀티플레이 게임만하진 않다. 뭐 하나만을 놓고 구매하기에는 콜옵은 확실히 부족하다. 
 
그러나 하드코어한 게임 소비자가 아닌 일반적인 대중들을 상대로 한다면, 콜옵은 분명 매력적인 장르다. 이런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게임 정보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도 않고, 1년에 게임을 여러개 구매하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극적이며 익숙하며, 적당히 작동하고 다양한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이다. 이는 동시에 콜옵이 매년 동일한 구매 고객들을 상대로 판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의 게임 구매 템포는 그렇게 짧지 않다. 이들은 한달에 두 세개 이상의 게임을 구매하며 게임을 서로 갈아치우면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의 게임을 질릴 때까지 플레이하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하드코어 게임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할만한 부분들이 생긴다. 상당수의 멀티플레이 게임들은 게임 발매 후 한달에서 두달 사이에 상당수의 활성 유저들이 빠져나가고 그 게임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소위 고인물들의 게임들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게임 매칭 텀은 점점 길어지고 매칭의 질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다. 게임의 완성도와 별개로 게임의 매칭 환경은 더 나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콜옵의 경우, 유저 풀들이 넓어서 매칭의 질이 금방 떨어지지 않고, 매칭도 빠르게 잡히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에 괜찮다. 아무리 리스폰 구조가 엉망이고, 맵이 복잡해서 장거리 저격에 당하기 쉽고, TTK가 짧아서 파리목숨마냥 픽픽 죽어나가도, 여전히 콜옵은 자극적이고 재밌는 멀티플레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콜옵을 구매하는 이유는 그저 '잘 만든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콜옵은 잘 만든 게임이 아니다. 그저 그럭저럭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게임을 구성한 과거의 게임이다. 액티비전은 이미 존재하는 트렌드를 섞어서 마치 새로운 것을 제공하는 것처럼 마케팅하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으며, 콜옵은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에게 잘 포장되어 내어지는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마케팅과 포장 방법론들은 현대 게임 산업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는 절대 강자를 만들어내었으며, 결과적으로 캐주얼 게이머에게는 물론이고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도 어느 정도 매력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들이 콜옵을 구매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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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박스 매거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노동과 게임의 차이가 무엇일까. 쉬운 대답은 '재미'의 영역이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게임은 재밌고, 노동은 재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단순 명쾌한 답일 수 있다. 하지만 재미라는 것의 개념은 무엇일까? 게임학이나 유희를 다루는 철학에서 유희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진행하였지만, 몇몇 관점에서는 재미를 '학습'의 영역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은 학습을 통해서 점차 더 나은 성취를 이루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과 게임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노동이나 게임이나 학습을 통해서 더 나은 수준과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이 수반되고 충분히 학습의 성취를 통한 재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이란 관점에서 둘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본다면 배움을 통해서 얻는 재미의 곡선의 짜임새가 각각 짜임새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노동은 보통 단조롭고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지루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하드스페이스 : 쉽브레이커는 어떻게 보면 게임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폐선된 배를 해체하는 해체자가 되어서 배를 각각 파츠로 잘게 쪼게서 분류하고, 보내야할 곳으로 분리수거해야 한다. 일종의 '케이크 자르기'의 양식을 갖고 있는 게임인데, 즉 '적은 절단으로 효율적으로 조각을 나누는 것’ 이 핵심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본 게임은 여기에 로그라이크 요소를 접목시켜서 배를 무작위로 생성하는 시스템을 넣고 게임 플레이 콘탠츠를 늘렸다.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가 여타 게임들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면 플레이어에게 정직한 플레이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본 게임은 기본적으로 분리수거 게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배를 용광로/처리기/폐품 그물로 나눠서 수납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하나의 배를 큰 덩어리로 잘라 나누기 보다는 최대한 부품 단위로 잘게 자르고, 그 부품들을 한 데 모아서 각 분리수거 장소로 보내야 한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템포는 느린 편인데, 파츠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분리수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테더 기능을 얻을 때는 템포가 일시적으로 빨라지긴 한다.  
 
앞서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에서 로그라이크 요소가 접목된 무작위 생성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였다. 배마다 급이 있어서 각 급에 맞는 위험 요소들(전기 배터리, 반응로, 연료 탱크 등등)이 존재하는데, 본 게임에서는 이 위험 요소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다. 때문에 같은 급의 배를 분해하더라도 경험 자체가 달라진다. 또한 모드에 따라서는 퍼머데스(영구적 죽음) 요소도 들어간다. 플레이어는 회사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상태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며, 플레이어가 쓰는 장비나 여러 요소들은 모두 비용 및 이자로 청구된다. 이 빚이 너무 쌓이게 되면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매번 게임 플레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꾸준히 내는 것이 중요하다. 퍼머데스 모드의 경우, 몸을 적당히 사리면서 빚을 적당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드스페이스 쉽브레이커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게임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도 플레이어의 능력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거나 강해지지 않고, 플레이어의 실력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정직하게 배를 분해해야 한다. 대충 배를 분해하려 했다가는 스코어(=돈)이 되는 부품을 상하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배 전체를 파괴하는 위험 요소들을 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비례하여 꾸준하고 신중하게 배를 분해하는 정직함이 요구된다. 대체로 일반적인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빠르게 학습하고 강해지도록 하며, 극적인 게임 템포를 가지는 반면, 본 게임은 그와 반대이기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본 게임은 플레이어를 매우 집중하게 한다. 게임 내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 '두 번 재고, 한 번에 잘라라' 라는 대사가  있다. 플레이어가 자르기 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를 수 있게끔 먼저 측정하고, 자를 때는 과감하게 한번에 자르라는 의미인데, 플레이어의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레이저 절단기의 두 가지 절단 모드에서 이 대사의 진가가 드러난다. 레이저 절단기의 절단 기능은 선을 한번에 자를 수 있는 절단 모드와 절단 부위만 핀 포인트로 가열해서 녹이는 가열 모드로 나뉘어진다. 절단 모드의 경우, 넓은 범위를 한번에 절단할 수 있지만 판정에 따라서는 부품에 손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위혐요소를 터뜨릴 수 있는 등의 위험성이 있다. 반면 가열 모드의 경우, 자신이 자르고 싶은 요소만 핀 포인트로 잘라낼 수 있지만, 가열해서 녹이는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절단 전에 최대한 재서 절단 모드로 한번에 부품 손상 없이 깔끔하게 부품을 절단하고 안전하게 분해해야하는 부품은 가열 모드로 잘라내는 것이 핵심이다.  
 
하드스페이스 쉽브레이커는 이러한 정직한 구조 덕에 단조로운 노동과 성과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임이다. 드라마틱하게 강해지거나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는 화끈한 모습은 적지만, 정직하게 관찰하고 잘라내고 최적의 분해 순서를 고민할수록 게임은 플레이어의 노력에 화답해서 정직하게 성과(스코어)를 제공하는 형태다. 비록 최근 게임 트렌드와는 많이 다른 흐름이긴 하지만, 이런 단순한 부분 때문에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직한 재미를 준다.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는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 서사를 보여준다. 게임은 미국 블루칼라 노동계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는데, 먼 미래에 기업이 국가를 넘어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 먼 과거의 유물인 '노조'를 부활시킨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이러한 흐름이다 보니 게임 전반이 거대한 블랙코미디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부터 몇억 달러의 빚을 지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나, 안전 보험이라 하면서 클로닝 시스템에 플레이어를 등록시킬 때 물리적으로 죽여버리고 클론을 만들어버리는 등 실소가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보니 컷씬이 모두 대사창이나 일러스트, 이메일 등으로 되어 있어 몰입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하나 하나 잘 뜯어보면 재밌는 것들이 많다. 
 
결론을 내리자면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는 분명 재밌는 게임이지만, 이 게임의 재미는 최근 게임들의 재미와는 많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 추천할만한 작품이지만, 이 게임의 특징을 인지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게임 이야기

 

최근 포트나이트 시즌 3에서는 건설 요소를 제외한 '빌드 제로' 모드가 출시되었다. 흥미롭고 포인트가 있지만 뭔가 이상한 모드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포트나이트는 지난 5년 동안 배틀로얄에 건설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어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고, 빠르게 요새를 짓거나 자원을 수집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테크닉들이 그에 따라서 개발되었다. 다양한 요소들이 늘어났음에도 '건설이 완전히 제외된 포트나이트'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건설은 포트나이트에 있어서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정체성이 사람들에게 역으로 장벽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원래부터 배틀로얄을 위해서 만들어진 조작 체제도 아니었고, 포트나이트 자체가 원래부터 코옵 게임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에 이 '건설'이라는 요소가 개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전체 게임과 겉돌게 되는 이슈는 항상 있었다. 포트나이트의 역사는 이 건설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테크닉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지난 5년간 포트나이트의 개발자와 플레이어 양쪽 모두 이 건설라는 요소에서 많은 노력과 헌신을 기울였다.

하지만 2년만에 복귀해서 플레이해본 포트나이트 빌드 제로는 생각보다 할 것이 많고 재밌는 게임이었다. 건설이라는 요소가 빠졌지만, 포트나이트에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생겼고, 더 나아가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그래플러 글러브를 이용해서 빠르게 이동한다던가, 다스베이다를 잡아서 좋은 무기를 파밍한다던가, 다양한 차량 타고 이동한다든가의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 또한 현실의 꽃이나 금괴를 이용해 게임과 게임을 넘어서 쓸 수 있는 자원 요소를 추가했다. 빌드 제로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신감'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 더이상 포트나이트는 건설에 기반한 배틀로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즌 3로 넘어오면서 포트나이트는 일종의 '거대한 테마파크'이 되었다. 포트나이트 시즌 3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 탈 것이나 그래플링 훅, 순간 이동이나 비행, 사냥 가능한 NPC, 이용할 수 있는 식생의 존재 등등은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고, 그렇게까지 놀랍거나 새로운 것들이 없다. 하지만 핵심은 포트나이트에 이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포트나이트에 삽입된 다양한 요소들은 큰 문제없이 잘 작동한다고 할 수 있는데(물론 높은 수준의 게임 플레이로 올라가면 달라질 수 있는 인상이다), 포트나이트의 개발자들이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을 다양한 게임 요소들을 올릴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화 시킨 셈이다.

포트나이트가 전방위적이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게임의 플랫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긴 했지만, 이들이 첫번째라고 할 수는 없다. 트리플 A에서 가장 오래된 시도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다:콜옵은 근 10년간 경쟁, 코옵, 싱글 게임을 오랫동안 서비스해왔고, 여기에 배틀로얄을 섞었다. 심지어 콜옵은 매년 게임이 발매되는 사이클로 인해서 이전에 진행했던 게임 요소들이 금방 사라지는 단점조차도 워존의 등장 이후 통합 계정화를 통해서 유지시켜주는 부분까지 보여줬다. 어떤 의미에서 콜옵은 느리지만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게임 트렌드를 꾸준하게 자기 시스템 내로 통합시키고, 단순히 개별 작품 시리즈를 넘어서서 콜옵이란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계정을 저장하는 방식까지 취했다. 

좀 다른 방법론이긴 하지만 유저가 게임을 일종의 플랫폼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들도 있다.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같이 태생부터 그런 것들도 존재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했던 플랫폼화된 게임들은 바로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들이었다. 이 게임들에서 성공한 장르인 AOS 장르(롤이나 도타 같은)가 분화되어 나왔고, 굳이 AOS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콘탠츠들이 분화되어 나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게임의 요소들을 재활용하되 코드 단위에서 새로운 게임 구성하는 모딩도 있었다. 위대한 성공작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하프라이프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게임이었다.

그리고 포트나이트와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것이 포트나이트가 된다, 라는 명제에 부합하지만, 흥미롭게도 모딩의 경우에는 어떤 것은 AOS가 된다 라는 개념에 가깝다. 모딩의 경우, 성공적일 경우 기존 플랫폼이 된 게임으로부터 분화되는 것이 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수익 구조에 대한 수요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수익구조 보다도 중요한 것은 플랫폼으로부터 분리될 때 좀 더 독특한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나서는 부분들일 것이다. LOL은 워크3 모드 시절의 AOS와 분명히 다른 게임이 되었고, 워크 시절의 DOTA의 정식 계승자를 이야기하는 DOTA2 역시도 과거의 워크 3 시절과 다른 게임이 되었다. 플랫폼의 보편적인 시스템은 역으로 '어디에 특화되지 못하다'라는 이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례를 본다면 회사든 플레이어든, 플랫폼화된 게임에 많은 관심이 있다. 이는 기존 게임의 골격이 훌륭한 경우, '이러한 경험을 연장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수익적 측면, 재미적 측면에서)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되는 게임이 가장 기초적인 재미를 제공해주는 베이스를 구성해야 하고, 그것이 서로 납득 되는 방법으로 확장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플랫폼화 된 게임은 회사와 플레이어 양측에 독특한 화두를 던지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메타버스만큼 모호한 용어는 없을 것이다. 범람하는 마케팅들과 트렌드 세터들의 과대 포장으로 인해서 메타버스란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많이 어렵지만, 메타버스라는 조어 자체에 집중해서 본다면 상위의("Meta") 세계(Uni + "Verse")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상위의' 개념일까?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에서 가상 현실을 지칭하는 단어로 등장했다(아바타라는 개념도 이 때 등장했다) 소설을 직접적으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닐 스티븐슨이 가상 세계를 여러 개념들의 상위의 개념을 지칭하는 '메타'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메타버스가 현실과 가상을 조합하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을 지칭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즉, 우리가 게임이나 VR 등등을 통해서 접하고 있는 메타버스의 개념들은 가상 자체를 강조한다기 보다는 '현실과 가상, 이 둘이 합쳐지는 상위의 공간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자:전자 네트워크로 구성된 공간은 애시당초에 물리적인 현실에 기반하고 있고, 거기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결국 현실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기존 가상 세계 담론들이 새로운 가능성에 집중한 것은 맞지만, 동시에 그것이 '여전히 물리적 공간의 확장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즉, 가상 세계 담론에 있어서 현실과 가상은 분리된 것이 아닌 통합된 개념으로 접근한 이야기들이 가상 세계라는 담론과 대중문화의 기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메타버스 담론들은 이런 과거의 역사들을 모두 없었던 것으로 취급한다. 그들이 메타버스를 통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주로 돈에 관한)인데,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혹은 위험성이든)이 이미 오래된 미래의 형태로 담론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구현된 낡은 담론이자 현상인 셈이다. 이러한 메타버스 담론의 핵심은 결국은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 것처럼 꾸며서 시장에서의 상품성을 확보하려는 '마케터'들의 값 싼 전략에 불과한데, 비대면 접촉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관련 산업을 묶기 위해서 일부러 단어를 마케팅하는 것이라 접근하는 것이다. 엄밀히 메타버스의 성공과 담론은 메타버스 자체가 발견되거나 논의된 것이 아닌 코로나 시대라는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로 들어오면서 눈여겨 볼 만한 점들이 있다. VR, 메타버스형 비지니스나 운동 프로그램 등등의 존재를 통해서 이전보다 더 옅고 얇은 형태로 게임의 영역이 넓어지게 되었다. 필자가 최근 자취하면서 운동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는 원랩 프로맥스 자전거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소위 메타버스형 자전거 홈 트래이닝 앱인 원랩은 쉽게 이야기해서 여러 센서가 달려있는 자전거와 핸드폰 어플을 연결하여서 자전거 회전속도, 부하 등의 다양한 수치들을 모니터링하고 얼마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프로그램에 맞게 운동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원랩의 트레이닝 어플은 게임적인 요소들(같은 코스를 달리는 다른 사람들, 점수화된 운동, 그리고 사람들끼리의 경쟁)로 치환해서 구성한다는 점에서 소위 메타버스의 특징들도 존재한다. 몇년전에 유행하였던 게임화Gamification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보통 체육관에서 트레이너를 통해서 이루어지던 운동들이 수치화 되고 측정되면서 앱의 기능으로 구성 가능해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세대의 여러 비즈니스들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변화들은 '입력 장치의 다양화'와 '수치의 측정과 데이터화'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게임 영역에서 입력은 게이밍 패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메타버스 비즈니스에 있어서 입력 방식은 더이상 패드라는 제한적인 수단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전자식 자전거의 센서, VR의 HMD와 센서들, 핸드폰의 자이로스코프 등등의 다양한 센서들이 게이밍 패드라는 인터페이스를 뛰어넘는 요소가 되었다. 이 새로운 입력 요소들은 기존의 게임과 다른 형태의 장르적 생태를 구성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타버스의 새로운 입력 방식은 지속적인 장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무언가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 흐름에 있어서 독특한 점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센서들을 통해서 수집된 데이터들을 재구성해서 서비스의 형태로 엮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들은 '전체적'이지 않다. 어디까지나 자전거의 센서처럼, HMD나 폰의 자이로 센서처럼 어디까지나 일부의 데이터를 시각 디스플레이에 띄워주는 방식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메타버스 시대의 비즈니스들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게임 산업의 어설픈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게임 산업이 쌓아올린 노하우보다 더 깊지 않고 입력과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은 아직까지는 '통합적'이라 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자전거는 어디까지나 자전거에서, 트레드밀은 트레드밀에서, VR은 VR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메타버스의 최종 목표라고 한다면, 현재의 입출력 인터페이스를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인터페이스가 등장해야 한다. 쉽게 이야기한다면 여러 SF 소설이나 담론에서 다뤄지듯이 신경계에 직결로 연결해서 인풋/아웃풋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정도의 새로운 방법을 통해 기존 게임 산업의 노하우를 결합함으로 가상의 세계를 소비자가 경험을 시각적인 경험에서 벗어나 '전체'로 즐길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다. 즉, 메타버스 산업의 상당수들은 기나긴 산업의 발전 이정표 상에서 결국 사라지게 될 흐름이다. 그것이 얼마나 짧을지, 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추구하는 '가상의 구현'이라는 최종적인 결과에 비추어본다면 점차 조금씩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버스의 흥망에 너무 과열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이사 후 집 정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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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까지 앞으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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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최근 흥행하고 있는 뱀파이어 서바이버라는 게임이 있다. 코나미의 고전 명작인 악마성 드라큘라의 도트나 디자인, 컨셉 등을 트레이싱한 걸로 논쟁을 일으킨 이 게임은 당연하게도 최근 몇년간 불고 있는 복고풍 인디게임의 트렌드를 따른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복고는 '과거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는 것이다:분명 도트풍 그래픽이나 단순한 게임 플레이 등등은 언뜻 보기에는 과거의 게임 트랜드를 재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에서 보여주는 적들의 규모는 이전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도트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데미지 계산 등으로 인해서 때때로 고사양 컴퓨터에서조차 60프레임을 방어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게임 플레이는 분명 '복고인척 하지만 현재의 기기 스펙에 기반을 둔 현대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는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도 복고적이지 않고 현대적인 부분들이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에서 플레이어의 공격은 별도의 버튼 입력없이 자동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 게임이 베이스로 삼고 있던 시절(패미콤 ~ 슈퍼 패미콤 시절, 80년대 말 ~ 90년대 초)의 게임들이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을 지향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다. 오히려 장르적으로는 공격 조작을 제외하고 거기에 공격마다 특징들(예를 들어 채찍은 좌우 공격만 가능하다든가)을 부여함으로 플레이어가 위치와 공격 타이밍을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선택과 집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는 단순한 조작으로 플레이어가 강해지는 클리커 류를 생각나게 하고, 무작위로 얻는 아이템들의 테크 트리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플레이 스타일을 임기응변식의 게임 플레이는 로그라이크 장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보이는 것과 반대로 게임은 최근의 게임 장르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뱀파이어 서바이버가 과거의 모습을 취하는 것은 단순하게 모티브를 취하는 것 이상이다. 과거 게임과 다른 방식으로 단순화된 게임 방식이나 도트에 대한 접근 등은 과거를 재현하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재해석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취하는 이유는 게임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추억하는 시기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좋았던 과거를 좋은 방식으로 재현하기 위해서 여지껏 산업이 걸어왔던 역사를 거기에 대입하는 것이다.

최근의 레트로/복고 서브컬처 콘탠츠들이 이러한 방법론의 결과물들이다. 분명 과거의 모습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하나씩 때어내놓고 보면 여지껏 걸어왔던 산업의 역사가 응축되어 본질적으로 과거의 것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는 물건들이 대다수다. 이러한 레트로/복고/리바이벌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핵심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보다 나이든 세대의 소비력이 높은 점, 제작자들이 자신의 추억을 재해석하여 창작을 하고 있는 점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 과거는 단순하게 퇴행으로 단정짓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순수하게 과거로 돌아가서 본다면 미래의 게임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예를 세가 새턴의 게임 중에는 유명 성우를 기용하여 다양한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해서 일종의 성우 케릭터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지금 보자면 케릭터 가챠 게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구조이긴 하지만, 그 당시의 트렌드는 사쿠라 대전 처럼 한 명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모든 케릭터 디자인을 전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당시의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었다. 이런 식으로 항상 과거는 미래의 맹아를 품고 있었지만, 이런 미래들은 항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좋았던 과거의 형태와는 동떨어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일종의 회귀인 동시에 현재 도래한 미래에 대한 부정을 내포한다. 과거의 게임들이나 작품들이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실험과 가능성들을 품고 만들었던 것들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몸부림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잠시 언급한 뱀파이어 서바이버 역시 어떻게 보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능성들(별도의 공격 조작 없이, 자동공격의 구조만으로 게임을 구성할 수 있는)을 내포하고 있지만, 뱀파이어 서바이버가 기반하는 바라보는 지향점은 저 너머의 미래(자동공격의 구조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라기 보다는 악마성 드라큘라와 좋았던 옛날이라는 과거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저력이나 통찰력이 날카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임들이 재미가 있는 것과 별개로, 어딘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라보는 지향성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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