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갑작스런 인원 감축으로 퇴직 통보를 받는 리스크 관리 팀장 에릭은 자신의 부하직원 피터에게 곧 닥칠 위기상황을 정리한 USB를 전하며 회사를 떠난다. 그날 밤 에릭에게 전달 받은 자료를 분석하던 MIT박사 출신의 엘리트사원 피터는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파생상품의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고 상사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이른 새벽 긴급 이사회가 소집되고, 그들만이 살아남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는데...(네이버 영화, 마진콜 시놉시스)
마진 콜은 기본적으로 '실화에 기반한' 영화라고 스스로 주장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마진 콜의 그 어떤 것도 실제 일어난 '사건'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영화 속에 나오는 기업은 100% 허구의 기업이며, 현실의 사건과는 하등 관계없는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마진 콜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건 그 자체의 재현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마진 콜이 보여주는 '본질'은 묵시룩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마진 콜은 '마피아'물의 화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마진 콜은 범죄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진 콜의 영화 화법은 소셜 네트워크가 보여줬던 넓은 의미의 마피아물에 가깝다고 보는게 옳다. 인물들은 그들만의 화법과 언어로 마치 음모자들처럼(실제로도 그들은 음모자들이다) 구석에 숨어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며, 외부 사람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민다. 마진 콜은 흔히들 봉급 부르주아라고 일컬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최상위 계층인 금융직종에 종사하는 인물들과 그 집단 내부를 들여다보듯이 관찰하면서 현재의 금융 대란의 본질을 다루고자 한다.
마진 콜의 주요 갈등은 회사의 생존하기 위해서 시장을 희생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들에게 엄청난 이윤을 안겨준 파생상품이지만, 만약 이것을 다 팔지 못했을 시에는 회사에 막대한 피해, 아니 회사가 사라질 수 있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파생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경우, 이 파생상품은 시장 자체를 아예 죽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계수단과 좀 더 대국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시장-공생의 문제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다. 하지만, 마진 콜은 그러한 일반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는 스토리의 축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끝까지 회장의 지침에 반대하는 뉘앙스를 풍겼던 샘이 너무나 싱겁게도 결전의 시간에 돈 때문에 회장 편에 동조하는 장면이나, 이 모든 사태를 예측한 데일이 잘리고 난 다음에 돈 때문에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장면 등등에서 인물들은 너무나 쉽게 돈에 굴복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인간 욕망과 복마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복마전을 구성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그것을 구성하는 금융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마진 콜의 메세지는 기본적으로 자가존속하는 '구조'(기업)로서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유능함에 대한 지불, 건전하지 못한 기업의 도태 등등)을 파괴한다 라는 자본주의 묵시룩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기계적이고 효율적인 데일의 정리해고 장면과 여러분은 유능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라고 샘이 직원들을 독려하는 장면 사이에서의 아이러니, 끝없이 사람들을 봉급으로 재단하려는 세스, 봉급이 늘어난 만큼 씀씀이도 늘어난다고 이야기하는 윌, 로켓공학을 전공하고 MIT 박사를 딴 새내기 금융맨 피터, 멋진 집을 샀지만 결국 그것이 족쇄가 되서 다시 회사로 들어오는 데일, 샘을 회유하려는 회장과 샘을 견제하는 자레드 등등 영화는 거대한 사건 사이에 작지만 섬세한 이야기들을 배치한다. 영화는 이 작은 이야기를 통해서 자칫 일방적인 드라마로 흘러서 지루해지기 쉬운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한편, 이 모든 재앙을 꾸민 자본가 혹은 금융 자본가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서 그들 역시 '구조'의 꼭두각시라고 지적한다. 샘과 데일의 변절아닌 변절은, 결국 윌이 이야기했듯이 씀씀이가 늘어나버린 봉급 부르주아가 그 씀씀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관과 기분을 제쳐두고 기업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기업은 어떠한 존재인가? 그것들은 24시간 깨어있으며(꼭두새벽에 비상이사회를 소집), 효율적으로 사람을 관리 하며(데일을 해고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대규모 해고를 감행하는 부분), 필요하다면 사람을 협박하며(데일에게 일하지 않을 시에 소송을 걸겠다고 하는 부분),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회유하고(샘이 결국은 돈 때문에 일한다고 회장에게 속삭이는 부분), 새로운 인재를 충당하기(피터를 임원으로 승격시키는 부분)까지 한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결전의 순간, 기업은 성공적으로 파생상품을 모두 팔아치우면서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즉, 기업은 자신의 기반이 된 시장과 소비자를 죽임으로서 살아남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요한 슘페터는 “그것(자본주의)의 성공 자체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사회 제도를 약화시켜서 그것(자본주의)이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상황을 ‘불가피하게’ 창출할 것” 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월가가 미국 정부의 대규모 국고 지원으로 살아남고도 보너스 파티를 연것에 대하여 지젝은 '실패에 대한 보상'이라 비판하며 자본주의 기본 명제의 붕괴라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진콜은 거기서 한술 더 뜬다:기업은 자본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시장을 박살낸다. 그렇기에 마진 콜은 자본주의 묵시룩을 다룬 무서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상]테이크 쉘터(2011) (0) | 2013.05.07 |
---|---|
[감상]킬링 뎀 소프틀리 (1) | 2013.05.04 |
[감상]성스러운 피 (2) | 2013.03.14 |
[감상]비스트 오브 서던 와일드 (0) | 2013.03.08 |
[감상]더 헌트 (5) | 2013.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