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더 헌트가 이야기하는 집단의 폭력성이라는 주제는 사실 이런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새로운 주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집단 히스테리에 저항하는 존 프록터의 이야기인 크루서블이라던가, 침묵의 폭력과 그걸 학습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하얀 리본 등등에서 많은 영화들이 집단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더 헌트가 접근하는 각도는 상당히 특이하다. 기존의 작품들이 상황에 대한 '극단적'인 상황 설정들(마녀사냥이나 모두가 범죄에 침묵하는 등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더 헌트의 상황은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부분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더 무섭다.


더 헌트의 이야기는 평범한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에게서부터 시작된다. 부인과 이혼하고, 여자친구도 있고, 친구들과 함께 사슴사냥을 다니면서 술도 진탕나게 마시는 말그대로 평범한 소시민인 루카스. 클라라는 자신에게 무신경한 부모보다 자신을 더 아껴주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기 유치원 선생인 루카스에게 호감을 갖지만, 너무 접근하는 자신을 거부한 루카스에게 화가 난 나머지 해서는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 만다. 그 결과, 루카스의 인생은 크게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집단 히스테리의 성격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루카스가 누명을 쓰는 과정은 어디에서나 일어날법한 오해와 불협화음의 하모니이며, 사태는 전적으로 누구의 잘못이다 이야기 할 수 없다. 심지어는 오해와 거짓말의 장본인인 클라라 조차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집단의 폭력성은, 집단의 '안일함'과 '맹목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클라라가 처한 상황이 매우 바람직한 상황은 아닌 것은 맞다. 오빠의 수위높은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클라라나,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고 클라라를 유치원에 등원시키는 것 조차 친우에게 미루어버리는 테오 부부에 대한 묘사을 통해 사실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클라라에 대해서 테오 부부가 무관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 '무관심'의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는 했지만.


그러한 일상적인 무관심은, 클라라의 거짓말로 인해서 루카스에 대한 맹목적인 악의로 채워진다. 클라라에 대한 무관심이 사건을 통해서 클라라에 대한 애정으로 바뀌기는 했지만(실제 영화에서도 사건 이전과 이후, 테오 부부가 클라라에게 스킨쉽을 하거나 안고 다니는 등의 빈도가 늘어난다), 그 상황에 도달할 때까지의 상황을 합리화 하기 위해 테오 부부는 아이의 거짓말을 맹목적으로 믿는다. 유치원 원장은?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가 하는 말은 진실일 것이다. 다른 인물들의 행동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맹목적인 신념 아래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루카스였고. 한 공동체의 안일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위해서, 그는 낙인 찍히고 고통당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집단 내부에만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루카스가 실제로 아동성추행을 했는가 안했는가의 진실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의 주된 핵심은 루카스라는 인물이 거짓말로 인해서 누명을 쓴 이후, 집단이 루카스에 대해서 가하는 폭력의 본질과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더 헌트의 폭력의 방식은 '사냥'이라는 폭력적인 상황과 맥을 함께 한다. 영화 초반, 주인공 루카스가 숫사슴을 사냥하는 시퀸스는 루카스의 앞으로의 운명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한데, 루카스가 처하는 상황은 그가 한 행동의 결과도 그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문구 의미 그대로의 마른 하늘의 날벼락인 것이다. 루카스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때마다, 그의 위치를 상기시켜주는 무자비한 폭력들(슈퍼마켓, 페니의 죽음, 그리고 심지어 마지막의 엔딩까지.)은 그러한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렇기에 루카스라는 케릭터 역시 그러한 총맞는 숫사슴의 연장선상이다. 하지만 메즈 미켈슨은 그러한 수동적인 피해자의 입장을 단순한 형태로 묘사하지 않는다. 메즈 미켈슨의 연기는 절정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절제되어 있는데, 자신이 처한 폭력적 상황에 대한 분노와 슬픔 등을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대신, 그는 자신의 행동이나 표정 등의 연기를 통해서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절제해서 드러내는데,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크리스마스 미사 장면에서 테오를 바라보는 루카스의 눈빛은 자신이 막을 수 없는 집단의 폭력에 대한 무기력함과 분노를 동시에 드러내는 훌륭한 연기였다.


영화의 마지막, 시간은 훌쩍 뛰어넘어 1년뒤의 루카스의 아들인 마커스의 성인식 겸 첫 사냥으로 건너간다. 루카스는 다시 여친과 재결합했으며, 친구들 모두 그의 곁에 있다. 첫 사냥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마커스는 자신을 파멸 직전까지 내몰았던 클라라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루카스는 클라라를 안아주면서 화해한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사슴사냥을 하며 모든것이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순간, 혼자 남겨진 그에게 누군가 일부러 총을 빗겨 쏜다. 그가 아동을 추행하든 추행하지 않았든 간에, 그에게 찍힌 낙인과 집단의 증오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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