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 낙인이라는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에 가깝게 시도라도 해본다면 기괴함, 비논리성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컷들의 구성은 무의미하고 정합성 없이 뚝뚝 끊어진 구성을 보여주며, 이야기들은 리얼리즘은 커녕 현실에서 수백만 광년정도 떨어져있는 듯한 기기묘묘함을 보여준다. 게다가 인물들은 정신줄을 죄다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는데, 밥냄새 환장하는 넘버 3 킬러, 수만마리의 박제 나비들을 벽에다 꽂아놓고 살며 자신의 희망은 죽음이라 이야기하는 넘버 2 킬러, 그리고 바지에다 오줌을 지리면서 준엄하게 자신의 타겟을 꾸짖는 넘버 1 킬러까지 감독한테 약이라도 빨고 영화를 만들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내용은 간단하다. 한 킬러가 있다. 서열 넘버 3. 영화는 이 남자가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남자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과정을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그런 느와르 물이라 할 수 있지만, 스즈키 세이준은 이 이야기를 기묘한 이미지와 구조로 비틀어서 한 남자의 강박관념에 대한 이야기로 빚어낸다.
하지만 영화는 에드 우드나 우베볼 같은 정신나간 저퀄리티의 영화가 아니다. 스즈키 세이쥰은 그러한 정신나간 이미지 속에서도 정확하게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고 있었으며, 그 속에 교묘한 알레고리를 배치하여 한 남자의 강박관념과 광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여태까지 많은 영화들이 인물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 차분하게/폭력적으로, 정적으로/동적으로 등의 다양하고 상반된 방법을 보여주었지만, 살인의 낙인처럼 '진짜 싼티나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상상력이나 표현력의 싼티, 그리고 개그 요소 등의 B급 요소에 있어서는 주성치와 비교할 수 있으나, 스즈키 세이쥰은 이 B급 요소를 예술적인 표현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B급 정서만이 가질 수 있는 파격성과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장치를 이용해서 스즈키 세이쥰이 현실과 영화의 괴리를 통한 웃음을 뛰어넘어 강박관념과 집착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스즈키 세이쥰의 영화는 직접 보기 전까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편린의 투성이이다. 다음은 그 편린의 단편을 분석하고자 노력했던 나의 실패작 리뷰의 일부이다.
영화는 3가지 파트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파트는 주인공 하나다가 공항에서 도착해서 실수로 민간인을 쏘기까지의 이야기, 두번째 파트는 조직에게 쫒기는 하나다가 미사코의 아파트에서 숨어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파트는 하나다와 넘버 1 킬러 사이의 기묘한 동거(?)에 대한 이야기다. 첫번째 파트에서 하나다라는 케릭터는 자신의 원칙을 갖고 살아가는, 범죄영화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프로페셔널 킬러라 할 수 있다. 그와 대비되는 것이 한때 조직의 랭크안에 들었다고 주장하던 퇴물 킬러다. 그는 입에 술을 달고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대해 하나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킬러가 술과 여자에 빠지면 그걸로 끝장이라고. 실제 하나다와 그 퇴물 킬러가 같이 임무를 수행할 때, 하나다가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였다면 퇴물 킬러는 한때 순위권에 들었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허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이야기가 두번째 파트로 접어들면서 부터 하나다 역시 그 퇴물 킬러가 했던 행동양식을 똑같이 따라한다. 민간인을 쏜 이후로, 하나다는 술을 입에 달고 사며, 미사코를 범하기 위해서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미사코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원칙과 프로페셔널리즘이 깨졌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강박관념'이었다. 사실 그의 쿨하고 프로페셔널했던 세계는 그의 부인이 그를 총으로 쏘면서 깨지는데, 그의 프로 의식에 대한 강박관념이 여자와 술, 그리고 생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필름위에 조잡한 종이 새를 붙여서 펄럭이게 만드는(.....) 장면은 하나다의 강박관념을 참으로도 B급스럽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 파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사코'라는 케릭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인도-일본인의 혼혈인 배우이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다른 인물들과는 한 차원 정도 붕 뜬거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미사코는 이 영화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할 수 있을 정도다. 첫만남에서부터 미사코는 관객에게 기묘한 포스를 내보이는데, 비오는날 오픈카를 몰면서 차 장식으로 목에 바늘을 꽂은 새 시체를 갖다 박아넣는 이 정신나간 센스는 이루어말할 수 없을정도다. 게다가 하나다가 미사코의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 수만 마리의 나비 박제들이 벽에 꽂힌 모습은 미사코의 정신상태가 하나다 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다의 강박관념이 미사코의 경우에는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발현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는 이러한 미사코의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박제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압도적으로 구현한다.
하지만 하나다는 미사코의 납치와 죽음, 그리고 조직에서 보낸 킬러들을 하나다가 처리하면서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나, 그런 하나다 앞에 최대의 강적 '넘버원'(심지어 이름조차 없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넘버원과 하나다의 대결이 영화의 후반과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영화는 이 넘버원이라는 케릭터를 통해서 원칙과 타이틀에 대한 강박관념을 희화화 시킨다. 미사코의 아파트에 하나다를 몰아넣고 하나다에게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서 압박하는가 한편, 하나다와 동거할 때는 하나다를 감시하기 위해 화장실도 안가고 바지에 소변을 지린다. 그러고 이를 비웃는 하나다에게 준엄하게 꾸짖는 넘버원의 모습은 웃기다 못해 아연이 질색할 정도다. 재밌는 점은 넘버 원이라는 케릭터 자체는 자신의 '원칙'에 대단히 충실한 케릭터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하나다의 원칙에 대한 강박관념이 완전하게 발현되었을 때의 모습을 넘버원이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넘버원은 하나다에 의해서 패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원칙에 대한 '강박관념'을 하나다가 꿰뚫었기 때문이다. 사실 완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넘버 원은 이마 정중앙에 총알을 박아넣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하나다는 그런 넘버원의 습관을 역으로 이용해 미사코의 헤어밴드로 이마를 커버해서 넘버원의 공격을 방어한 것이다. 어찌보면 영화는 자신의 원칙에 의해 스스로 당해버린, 원칙과 그에 대한 강박관념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은 '내가 넘버원이다!!'로 귀결된다. 끝은 그냥 직접봐라.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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