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네타 있습니다.



비스트 오브 서던 와일드는, 세계와 나의 관계를 오로지 '나'라는 개인이 겪는 경험과 사건들, 그리고 독특한 세계를 통해서 표현한다. 비스트 오브 서던 와일드(이하 비스트)의 이야기는 '욕조'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꼬마 허시 퍼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의 환경에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욕조의 주민들. 하지만 태풍으로 인해서 욕조는 물에 잠기게 되고, 업친데 덮친격으로 전혀 아플것 같지 않아 보이던 아버지는 백혈병에 걸려서 점점 죽어간다. 그리고 허시 퍼피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를 찾아서 물을 건너게 되는데...


비스트의 주제의식은 '세계는 나로 인해서 망가지며, 또한 나로 인해서 세계가 치유된다'라는 다소 독특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거대한 세계와 조그마한 꼬마 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현대의 원시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서, 나와 세계의 관계를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다. 욕조라는 공간에서부터 허시 퍼피가 사는 공간, 부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영화에서 다루는 소재까지, 비스트의 세계는 철저하게 문명을 배제한다. 이러한 문명의 배제의 정점에는 허시 퍼피의 아버지 라는 존재가 있다. 그는 철저하게 문명을 배제하는 원시적 생명력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는 둑 너머의 도시인들을 안좋게 보며, 태풍을 향해 소리치면서 태풍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과시한다. 심지어 그는 물고기를 잡을 때 낚싯대를 쓰지도 않으며, 삶은 게를 먹을 때 조차 게를 도구를 써서 껍질을 벗기는 것이 아닌, 손으로 잡아서 문자의미 그대로 으깨서 먹는 것을 자식에게 가르친다. 


하지만, 온몸으로 생명력을 드러내는 허시 퍼피의 아버지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재밌는 점은, 영화는 이러한 허시 퍼피가 아버지에게 대드는 장면, 아버지가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을 리드미컬하게 이어서 마치 하나의 '연관성'을 갖는것처럼 보여준다. 물론, 허시 퍼피가 아버지에게 대드는 것이 아버지에게 병을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나, 이 장면은 허시 퍼피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들면서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태풍이 오고, 욕조는 물에 잠긴다. 하지만 염수의 피해로 민물의 숲이나 생명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다이나마이트를 이용해서 둑을 파괴하고, 염수를 빼냄으로서 다시 욕조에 삶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수 피해로 인해서 더이상 욕조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아버지가 실패하고, 죽음에 가까워지자 자식인 허시 퍼피가 내린 결론은 어머니를 찾는 것이었다. 영화 내내, 허시 퍼피의 상상내에서 존재했던 어머니의 이미지와 어머니가 바다 건너로 넘어갔다는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었다는 악어 튀김 이야기 등등 오로지 허시 퍼피의 어머니는 바다를 건너기 전까지는 오로지 '이미지'만으로 존재한다. 영화는 허시 퍼피의 어머니가 왜 아버지를 떠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거세한다. 영화를 본 뒤에, 상당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허시 퍼피가 어머니와 만남으로서 아버지와 화해하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어머니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확립하는데 성공하고, 그 결과 세계가 치유되었지만(정확하게는 다른 터전을 찾아서 떠난 것이지만), 왜 아버지와 별개로 어머니는 극중에서 '타자'로 취급되는가? 몇몇 일단 이것에 대해서 내가 내린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가설은, 허시 퍼피가 원시적 생명력의 발현처럼 보이는(실제로는 죽어가고 있지만) 아버지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머니라는 이미지만의 존재를 실제 만남으로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아버지의 죽음과 화해하는(아버지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그런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헀다. 실제, 아버지에게 허시 퍼피가 준 것은 어머니가 잘 해주었다는 악어 튀김이었고, 이를 먹는 아버지와 허시 퍼피 사이의 눈빛은 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다는 그런 의미로 읽혔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허시 퍼피는 이전의 어린아이적인 면모를 벗어던진 성숙한 '무언가'가 된다. 영화 초반 선생이 이야기해주었던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 오락스가 부서진 빙하에서 깨어나서 허시 퍼피에게로 오는 과정, 허시 퍼피에게 오는 과정과 모습은 피할 수 없는 숙명, 또는 자연의 잔인함을 암시적이고 신비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런 그들이 욕조에 도착해서 달라진 허시 퍼피에게 무릎꿇는 장면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자에 대한 경외감(트리 오브 라이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비스트 오브 서던 와일드는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다. 원시적인 이미지와 한 아이의 성장기를 통해서, 세상과 내가 소통하고 화해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독특하게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석연치 않은 몇몇 부분이 있기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자체가 주는 경험이나 이미지가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꼭 보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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