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할 점은 영화는 강도'만' 나쁜 놈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도가 수금하러 왔을 때, '지깟게 설마 진짜 병신으로 만들겠어'하면서 자기 부인이랑 정사를 나누는 남편, 그리고 갚아야할 돈이 너무 많다면서 돈을 못갚겠다고 하는 남자, 자신을 병신으로 만든 강도를 증오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에게 그 증오를 대물림하는 아버지까지, 영화의 포커스를 살짝 강도에게서 벗어나서 본다면 뭔가 단순히 '피해자'로만 보기에는 미묘한 케릭터들이 대다수입니다. 이건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시각인데,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이 유리한대로만 사는 사람들(특히 중산층)의 모순점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거죠. 재밌는 점은 강도가 무자비하지 않게 대하는 두 사람은 변제의 의지가 뚜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한손이 아닌 두손을 잘라달라고 이야기하는 청년에게 기타를 돌려주는 모습(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손을 자르죠...), 자살하려고 건물 위로 올라가는 노인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 그리고 자살하면 보험금이 복잡해진다고 하면서도 그를 막지 않는 모습 등은 '의외로' 강도에게 인간적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본다면 강도는 자신의 업무(수금)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충실한 사회의 일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업무에 있어서 방법 자체가 무자비할 뿐이죠. 그리고 그의 업무 수행 방법이 잔혹한 것은 사실 그의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것에서 오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미선의 엄마노릇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자신의 엄마가 위험에 처해지리라 생각한 강도는 스스로 수금업도 때려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영화 후반부로 갈 수록 드러나는 강도의 모습은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과 많이 유사하죠.
-하지만 미선 역시 강도의 무자비한 수금업의 피해자였고, 사실은 강도에게 가장 잔혹한 복수(자신의 엄마가 눈앞에서 죽어서 영혼까지 죽여버리는)를 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내리기 전의 독백을 통해서 강도에게 묘한 동질감과 모성애를 느끼고 있음을 드러내죠.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에 뛰어내립니다. 왜 뛰어내릴까요? 저는 이것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돈으로 인해 만들어진 죄악의 순환고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선의 아들이 자살한 것도 돈 때문이었고, 자식을 위해 손을 자른 이유도 돈 때문이었고, 사람 병신 만든것도 돈 때문이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외면하고 강도에게 모든 책임을 돌립니다. 채무자에서부터 심지어 자신의 고용인인 사채업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강도를 나쁜놈, 근본 없는 놈이라 하죠.
영화 전반의 가장 큰 문제는 돈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언급하지 않아요. 죄다 서로 비난의 화살을 구체적인 누군가에게로만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돈에 의한 악의 순환고리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너무 거대하고 확고한 나머지 영화 전반을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 동력입니다.
-결국 미선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강도는 엄마와 함께 심은 소나무 밑에 자신의 엄마를 묻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소나무 밑에는 이미 미선의 아들이 묻혀있었죠. 모든 것을 이해한 강도는 자신의 피해자 트럭에 스스로 몸을 메달고 트럭에 끌려서 죽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어찌보면 미선의 말대로 '아무것도 남지 않고 빈껍데기가 되서 죽은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이미지로 봤을 때 강도의 피로 이 죄악의 흐름을 끊고자 하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메라 워킹이나 미장센 등에서 이미 김기덕 감독은 자기 스타일을 확립했습니다. 담담하면서 동시에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김기덕 영화의 코드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그와 별개로 매번 이런 영화볼때마다 신기한거지만...도대체 감독들은 어디서 저런 한국같지 않지만 한국 같은 곳을 찾아내는 걸까요?
-근데, 대사 수준이 영...영화가 좋은 건 맞는데, 영화에 쓰이는 대사들이 무슨 국어책 읽기에서나 볼법한 대사들이 대부분입니다. 연기와 대사가 매치가 안되요. 치명적인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자막으로 감상한 외국인들에게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부분이었겠죠, 음...
-끝으로, 요즘 김기덕 감독 추켜올리기가 한창 유행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진짜 역겨운 광경이 따로 없습니다. 그거 아세요? 불과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김기덕이 '아 나 한국에서 영화 못찍겠음요 'ㅅ' '라는 발언을 하자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랄을 해라 미친ㅋㅋㅋㅋㅋ'이라는 반응을 보였었고, 사람들에게는 해외영화제 출품/수상 소식보다는 '여배우하고 응응 했다더라'로 더 잘 알려진 감독이었죠. 팬들과 비판론자들이 그의 영화를 보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과 무관하게 말이죠. 하지만 웃기는건 순식간에 피에타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오오 김감독님 오오', '한국 영화의 선두주자 오오' 이러고 있고, 심지어는 '김기덕 감독님의 바람에 힘입어서 우리 영화가 어떻게 해외에서 잘나가게 할 수 있을까' 이딴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조금만 더 지나면 저기 한예종 대공분실 위에다가 '친애하는 김기덕 감독 수령님 반자이!'라고 제목 달고 동상이라도 세워줄 판이에요...
사실, 김기덕 감독은 김기덕 감독입니다. 나쁜남자 때도 그랬고,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무려 '은'사자상)을 받은 빈집 때도 그랬고, 피에타도 그랬습니다. 변한건 김기덕 감독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웃기지도 않는 띄워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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