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잭 스나이더가 만든 새벽의 저주는 훌륭한 오락영화였다. 1978년 동명의 전설적인 영화를 리메이크한(국내에서는 시체들의 새벽 - 새벽의 저주로 이름이 달라지긴 했다) 이 영화는 달리는 좀비와 생존, 좀비와의 근접하여 싸우는 야만적인 총싸움, 대중화된 고어까지. 2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에 와서도 대중문화와 좀비를 논한다 하면 새벽의 저주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조지 로메로가 이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명한 사실이다(링크) 그리고 잭 스나이더 판의 리메이크 판에 대해서 좋지 않게 평가하는 평론이나 칼럼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사례 링크)

 

이러한 비판적 평론들의 근저에는 시체들의 새벽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새벽의 저주와 시체들의 새벽에서 공통적인 부분들은 존재한다:좀비들과 쇼핑몰,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 내부의 갈등. 새벽의 저주는 시체들의 새벽 원판에서 주요한 모티브들에 집중하여 영화를 재구성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주요 모티브들을 하나로 엮는 영화의 시선이 새벽의 저주에서는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체 잭 스나이더가 원작의 무엇을 보고 리메이크를 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새벽의 저주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을 이야기해야할 것이다:전설적인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만든 감독으로 알려져있긴 하지만, 로메로의 필모그래피는 좀비 3부작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놀이공원이나 마틴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한 조지 로메로는 아마도 미국 영화감독 중에서 '분명하게' 좌파적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감독이었다. 놀이공원 자체가 노인 복지와 계급 사회, 착취에 대해서 정면으로 비판한 작품이었고, 마틴은 미국 중산층의 교외 문화와 삶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었다. 잘 알려진 좀비 3부작 역시 좀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체들의 낮이나, 인종 문제의 우화로도 읽힐 수 있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엔딩도 그러한 요소들이 산재했다.

 

그리고 시체들의 새벽의 테마는 '죽어버린 미국 사회'였다. 영화의 시작, 전세계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그 상황을 방송으로 정리하여 보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사태를 보도를 하는 와중에 사람들은 세상이 망했음을 직감하고 하나 둘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을 하고 주인공 역시 도로교통국 소속인 연인과 함께 방송국을 버리고 도망친다. 영화의 시작점이 바로 의무의 방기인 셈이다. 그 다음 시퀸스는 더욱 더 노골적인데, 군대가 건물로 진입하여 산자와 죽은자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죽여버리고, 거기서 다른 두 주인공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탈출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존은 아니다:분명 이 시점까지 영화 속의 미국 사회와 정부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이제 더이상 정상적으로 이 이후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직시하고 자신의 의무와 직무를 내던지는 것으로부터 영화가 시작하는 셈이다. 영화의 시작은 바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죽어가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위와 같은 점에서 시체들의 새벽의 시작은 몇몇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보여지는 무너지는 세계에서 아나키적인 자유와 능력에 따라 생존하는,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신자유주의적인 자유 가치'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비랜드 같은 영화를 보자. 거기서 좀비 사태는 주인공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로 작용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좀비랜드가 신자유주의적인 가치를 옹호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이러한 좀비 아포칼립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신자유주의적 판타지가 깔려있는지를 반증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체들의 새벽에서 보여주는 죽어가는 세계 역시도 가치와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무너짐은 개인이 자유로운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헬기를 타고 지나가듯이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좀비들을 즐겁게 사냥한다. 하지만 동시에 쇼핑몰을 떠도는 좀비들이 실제 사람과 등치됨을 보여줌으로 좀비가 인간과 은연중에 다를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즐겁게 죽여버리는 인간은 무엇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역으로 정부와 사회가 그렇게 좀비들을 죽여버리는 세계 자체를 등져버리고 도망치는 사람들은? 시체들의 새벽에서 보여주는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단순히 '좀비'라는 외적인 위협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조직은 더이상 공공의 선과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내재된 폭력성과 광기(초반 시퀸스의 경찰중 하나가 미쳐 날뛰며 아무 관계없는 민간인들을 사살하듯이)을 표출하며 스스로 망가져간다. 그리고 멀쩡한 사람들은 그러한 광기에 정면으로 맞서 마지막까지 싸우는 것이 아닌,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멀리 도망칠 뿐이다. 말하자면 체제와 구조, 가치의 종말과 죽음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들의 새벽은 해방구의 세계가 아니다. 모든 가치가 무너진 사회를 전제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사회를 등지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람들이 죽어버린 소비 문화인 쇼핑몰에 갇혀버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헬기를 타고 도망치던 주인공 일행은 물자가 풍족하게 쌓여있는 쇼핑몰을 발견하고 점거한다. 흥미로운 점들은 좀비들이 마치 살아생전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듯이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가 무너지고, 세상이 미쳐돌아가도 쇼핑몰에는 물건이 그득이 쌓여있고 소비자들(좀비들이지만)이 영원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에서, 시체들의 새벽의 쇼핑몰은 생존을 위한 공간보다도 '죽어버린 자본주의 소비 사회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캐나다로 도망가다가 쇼핑몰에 사로잡혀서 머무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는 더이상 의미없는 물질들에 사로잡혀 있다가 다른 생존자들과 무의미한 물질들(폭주족들이 쇼핑몰을 강탈할 때, 마치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을 두고 경쟁하는 소비자들처럼 보여준 것은 그러한 부분을 잘 드러낸다)을 두고 싸우다가 공멸하는 것은 소비사회에 대한 음울한 경종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체들의 새벽은 반 체제, 반 구조적인 동시에 더 나아가서 '반 장르적'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좀비 영화들이 좀비들에 맞서서 싸우고, 살아남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데 반해 시체들의 새벽은 죽어버린 물질들에 집착하다 다른 생존자들과 싸우다 공멸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영화들이 후자의 요소(생존자들과의 자멸적인 경쟁)에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이후 영화들이 생존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두고 경쟁한 것과 시체들의 새벽이 보여주는 결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체들의 새벽은 어떤 의미에서 장르의 시조였지만 동시에 반 체제적이고 반 장르적인 영화였다. 이는 로메로의 영화 세계와 크게 맞닿아있다. 그의 다른 영화인 마틴을 보자. 거기서 주인공은 흡혈귀이지만 동시에 흡혈귀가 아니다. 처음에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의 피만 마실 수 있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 피를 마시는 규칙은 무너지고 주인공은 혼란을 경험한다. 황폐하고 늙어버린 교외를 배경으로 중산층 문화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조지 로메로는 통상적인 관념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영화에서 좀비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그들은 뻣뻣하기는 하지만 생전의 삶의 기억에 매달려 계속해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어딘가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그들은 루치오 풀치의 좀비(썩어문드러진 존재들)들에 비해서 덜 '좀비'스럽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인종과 계급의 사람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호러 영화에서 좀비의 모티브인 '대중'에 더 가깝다. 

 

좀비를 '우리와 닮았다, 아니 우리일지도 모른다'라는 발상은 좀비 영화의 '죽여도 되는 존재'와 완전히 상반된 개념이다. 조지 로메로는 쇼핑몰과 그곳을 배회하는 좀비들을 통해서 소비사회 그 자체를 풍자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대중을 몰아내고 그것을 차지하는 주인공들과, 아무런 의미없는 사치재와 물질들을 두고 싸우는 폭주족들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이 망해도 여전히 물질에 얽메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로메로가 이후 좀비 영화를 두고 좋지 않게 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링크) 좀비들은 타자화되었지만, 동시에 '우리들 모습' 그 자체였다. 좀비들을 쉽게 죽여버리는 자유를 논하는 것은 역으로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메로는 이러한 명제를 정확히 간파하였고, 그런 통찰력은 시체들의 새벽에 전반적으로 잘 녹아있다.(이러한 통찰력에 대한 오마주는 숀 오브 더 데드에서 잘 드러나는데 

 

결론을 내리자면, 시체들의 새벽은 전설 그 자체인 동시에 장르를 넘어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르적인 모티브인 동시에 장르가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위험성과 그에 대한 통찰력도 함께 들어 있다. 시간이 된다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포켓몬 유나이트는 텐센트에서 만든 포켓몬 기반의 AOS이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게임(마지막 기대작이 본가 시작이 아닌 이것이었기 때문)이 나오면서 상당히 불만 여론이 들끓었는데, 당시 기대와 달리 객관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게임이었다. 중국은 내부 시장이긴 하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큰 모바일 게임 시장을 갖고 있고, 내부의 개발 역량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모바일 AOS의 경우, 왕자영요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데 이미 중국 내에서 모바일 게임으로서 상당한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모바일 AOS가 상품이나 서비스로써의 매력도는 입증되었고, 왕자영요 등을 성공시킨 텐센트가 개발을 전담한 부분이 있어서 포켓몬 유나이트는 '실패할 수 없는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포켓몬 유나이트는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분명 많은 부분 AOS 장르를 따르고 있지만, 몇몇 특이한 대원칙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포켓몬 유나이트는 몰입도가 높은 게임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벨런스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논쟁이 오고 가고 있긴 하지만, 현재의 게임만 놓고 보더라도 오래놓고 즐길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는 기본기가 탄탄한 게임이다. 앞으로 운영의 문제가 있겠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도 추천할만한 게임이다.

 

포켓몬 유나이트는 게임에서 몇몇 큰 대전제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게임을 만든 것이 눈에 보이는 게임이다:그 첫번째 대전제는 제한시간 10분이다. 게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분동안 진행된다. 다른 게임들이 10분 동안 진행된다고 한다면, '목표'에 따라서 게임이 더 빨리 끝나고, 더 늦게 끝나는 평균 플레이 타임을 보여주지만 포켓몬 유나이트는 정확히 10분 동안 진행된다. 이로 인해서 포켓몬 유나이트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결국 10분 동안 모든 것이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상당히 부담이 없다. 실패해도 쉽게 털어낼 수 있고, 성공해도 그 여세를 몰아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10분의 제한시간과 함께 두번째 특징인 '타임라인식 게임 구조 '에 따라 게임 플레이는 집중도 있게 진행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레벨업을 위한 몹들이 점점 늘어나고, 갈가부기나 로토무 같이 라인전에 유리한 효과를 가진 특수 몹들도 생기며, 마지막에는 막판 2분의 게임의 핵심인 썬더가 등장한다. 이와 같이 게임은 게임에서 점점 진행될수록 게임의 변수가 되는 요소들을 툭툭 던져주면서 진행을 이끌어나간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진행되긴 하지만, 자칫 순간순간 놓칠 수 있는 집중의 흐름을 이러한 시간에 따른 게임 흐름이 보조하면서 플레이어를 몰입하게 만든다.

 

대신 게임은 짧은 10분의 게임 플레이와 타임라인식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단순한 구성을 보여준다. 게임은 파밍이나 아이템 조합같은 요소 없이, 오로지 레벨업만이 상대와의 격차를 벌리는 요소가 된다. 상대와의 레벨 차이를 벌려주는 요소는 크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라인과 정글에 산재해있는 몹들, 그리고 두번째는 상대를 제압해서 얻는 경험치다. 흥미로운 점은 10분 동안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잡은 몹이 곧바로 리젠되지 않고 잠시 리젠을 멈추는 시간들이 오는데 분명히 '이 시간에 상대와 한번 간을 봐라'라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주요한 요소는 바로 게임의 목표가 '골을 넣어 상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얻는 것'이다. 기존의 AOS가 라인전에서 우위를 가지고, 돈과 파밍을 성공하며,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대방 본진을 제압하는 구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포켓몬 유나이트의 목적은 다소 이질적이다. 이 말인 즉슨, 얼마나 상대를 제압하고 레벨링을 잘한다 하더라도, 몹이나 상대가 떨어뜨린 에너지를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게임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다. 파밍과 레벨링, 전투 등이 다른 AOS보다 단순화되기는 하였어도, '골을 넣는다'라는 분명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 덕분에 항시 골을 넣는다라는 행위를 의식하면서 팀과 전략을 짜야한다. 

 

이러한 주요 요소들의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결과가 바로 후반 2분 썬더 한타다. 후반 2분으로 넘어가면 골을 넣을 때 2배의 보너스가 주어지며, 썬더를 잡을 경우 전체 골대에 골을 부여+플레이어가 추가로 넣을 수 있는 20점의 골+골을 넣을 때 더 빠르게 넣는 버프를 한꺼번에 부여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이기고 있다면 이 마지막 2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수 있다. 썬더 한타 망겜이라고 플레이어들 사이에 놀림받기는 해도, 마지막까지 썬더를 놓고 썬더를 먹을지, 아니면 상대가 썬더를 먹을 때 상대를 기습해서 이점을 가져갈건지 등의 다양한 심리전 요소들이 개입하여 게임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썬더 한타는 이기는 순간 뿐만 아니라 지는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만드는 등 게임 전반의 흐름을 훌륭하게 만든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재밌긴 하지만, 몇몇 이슈사항이 있다. 일단 벨런스 부분이 잘 맞는지에 대해서 플레이어들 사이의 설왕설래가 오고가고 있다. 하지만 더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Pay to Win'의 부분일 것이다:이러한 평가들은 게임에서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게임 내 재화를 많이 필요로 하고, 이것이 결제를 유도한다는 본다. 좀 더 정확하게 본다면 과거 AOS(초창기 롤) 같은 아이템 업그레이드 방식이긴 한데, 과거의 구조를 현재의 재화 소비 구조(다양한 이벤트, 배틀패스, 게임 내 재화를 이용한 가챠 등을 통해 소비하는 것 등)하는 것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대부분은 게임을 열심히 하면 이 모든 것을 모으고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긴 하지만, 게임의 본질이 타인과의 경쟁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기기 위해서 결제해야 한다는 비판은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포켓몬 유나이트는 전반적으로 오랫동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며, 계속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면 더 오래 즐실 수 있는 게임이다. 물론 몇몇 요소들(벨런스나 pay to win 요소들)이 좀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게임 운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10분이라는 시간 내에 가볍지만 집중력 있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켓몬 유나이트는 좋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가볍게 시도해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게임 이야기

 

FPS 처럼 칼싸움을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시벌리 2는 9년전의 시벌리 1편, 좀 더 가깝게 본다면 모드하우와 비슷한 게임으로 독특하게 1인칭으로 칼부림과 전장을 경험하게 만드는 게임이다. 시벌리 2의 게임 플레이의 핵심은 특이하게도 'FPS'와 비슷하다:FPS에서 총기가 방아쇠를 당겨서 직선의 판정(발사 위치에서 착탄지점까지)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한다면, 시벌리 2에서는 냉병기를 느리게 휘두르면서 무기가 닿는 부분을 호형태로 판정을 그리는데 이 판정을 '맞추는 것'이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이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 판정을 맞추는 것이 직관적인 동시에 상당히 도전적이라는 것이다: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한 곳에서 끝나는 곳까지 판정이 생긴다, 야구나 배팅을 해본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게임은 색다른 변주를 부여한다. 플레이어가 무기를 휘두르면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하는 지점을 당겨서 빠르게 적을 맞출 수 있게 하거나(엑셀), 혹은 끝나는 점을 질질 끌어서 시간차 공격을 가할 수 있다(드래깅). 무기를 휘두를 때 팔 뿐만이 아니라 '허리 힘'을 이용해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직관적인 동시에 타이밍과 거리를 자신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기본이자 핵심적인 테크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직관적인 동시에 '내 무기의 사거리가 얼마나 되나'를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최적의 거리를 맞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도를 해야 한다.

 

시벌리 2는 상당히 직관적인 공방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스테미너를 소비하면서 가드를 유지할 수 있는데, 가드하는 순간에 가드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대응 공격을 가할 수 있고, 정확한 타이밍에 튕겨내면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시스템도 있다. 단순히 시벌리 2는 가드와 공격으로만 이루어진 공방이 아니라, 스탭을 통해서 거리를 유지하거나 깊게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흘려내버릴 수 있다. 

 

이렇게 '호를 그려서 판정을 만든다'와 '이 판정을 상대에게 맞춘다'라는 개념, 그리고 공방 시스템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시벌리 2는 직관적이고 단순하지만 흡입력있고 매력적인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낸다. 1대1로 싸우면서도 상대방을 맞추면서 나는 안맞게끔 하기 위해서 서로 스텝을 밟으면서 간을 보고, 공격-가드-공격-....의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상대가 공격 하는 타이밍에 스텝을 밟아 공격을 헛치게 만들고, 그 헛치는 타이밍에 공격을 찔러넣는다. 게임은 단순하지만 서로 동일한 것을 들고 싸운다는 전제 아래서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시벌리 2의 진짜 진면목은 1대1에서 대규모 난전, 불리한 1대 다 전투, 목표를 방어하는 방어전이나 공격전까지 모두 단순한 게임 규칙으로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벌리는 기본적으로 32대32, 20대20, 그리고 프리 포 올의 난전을 지원하고 있다. 32대32, 20대20의 경우에는 배틀필드 러쉬 모드 처럼 목표를 점점 밀어 달성하는 게임 플레이가 기본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플레이는 이상적인 1대1의 플레이가 아니라 다수의 팀원과 다수의 적들과 싸우는 게임 플레이로 이행하게 된다:하나의 적들을 여러 플레이어가 1점사하면서 스테미너를 고갈내어 버릴 수 있고, 한 명이 상대의 방어를 굳히게 만들고 다른 팀원이 등 뒤로 돌아가서 가드 자체를 무너뜨리는 등의 다양한 양상이 시벌리 2에는 존재한다. 게임의 시스템은 단순하긴 하지만, 상당히 다양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작동하기에 플레이어는 시벌리 2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학습하고 경험하며 전투를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여기에 시벌리 2는 배틀필드 식의 다양한 무기와 클래스를 부여한다:궁수는 장거리 저격, 뱅가드와 보병은 공격을, 기사는 전열 유지를 담당한다. 각각의 클래스는 체력이 더 높다던가, 장거리 공격을 할 수 있다던가, 좀 더 긴 사거리의 무기를 들 수 있다던가, 방패로 원거리 무기를 카운터 칠 수 있다던가 등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벌리 2의 가장 핵심적인 협력 요소는 바로 '전열의 유지'다. 체력 회복 수단이 한정되어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붕대는 인당 한번 뿐이다) 각 팀원들은 체력을 회복하거나(붕대, 뿔피리, 깃발) 서로를 방호할 수 있는 수단(거치형 방패나 바리케이드, 덫 등) 등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단순히 때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상대와 패싸움을 하는 것이 아닌, 전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고, 그렇게 시벌리 2는 게임을 구성하였다.

 

결론적으로 시벌리 2는 멀티플레이 중심으로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한번쯤은 경험해볼만한 훌륭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PC 플랫폼은 에픽 게임즈로만 나온 상태라 접근하기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 콘솔 플랫폼과 크로스 플레이가 되기 때문에 어느 플랫폼으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꼭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SF,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무엇을 잡아야 하나, 라고 했을 때 여러가지 기준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 가정하였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할 수 있다.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정확하게는 특이점이라 하는게 적절하겠지만)는 그러한 장르적 특성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인 특이점, 물리법칙을 넘어선 물질들,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이 실존한다고 하면,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파국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기본적으로 고질라:싱귤러 포인트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과 고차원 존재를 상정했을 때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괴수물의 장르를 뒤틀어서, 생태계의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여 문명을 부수는 기존의 괴수물이 아닌 세계의 법칙이 뒤틀리고 다양한 아젠다를 가진 고차원의 존재들(괴수)이 경쟁하여 우주 자체가 멈추는 파국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고차원의 존재들이 결국 갈등과 파괴를 이루어내는 것과 별개로 윤이 만들어낸 AI들이 시간의 루프(과거로 향한 계산, 그리고 수많은 AI로 분화되고 하나로 합의되는 모습 등)을 통해서 특이점의 파국을 막아냄으로 인간과 자연 흐름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끝을 낸다.

 

이러한 전개를 작품은 전제로부터 논리적이고 연역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취한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논리를 연역적으로 세우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작품은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교차해서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귀납적으로 추론해낸다. 컴퓨터 공학, AI,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소재들이 쉼없이 등장하고, 그것을 엮어서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이렇게 동작한다는 것을 상정한다고 보면 어떨까? 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상당 수의 SF 작품들이 하나의 대원칙에 근거해서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것과 비교해서 본다면 지적인 만족감이 가득한 작품이다.

 

이는 각본가 엔조 토우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그가 쓴 소설 중에 죽은 자의 제국이란 작품이 있다. 이토 케이카쿠가 죽은 이후, 그가 쓴 프롤로그와 생전에 남긴 시놉시스를 토대로 엔조 토우가 완성한 이 작품은 시체들로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후,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흐름을 잘 구축한 작품이다. 이러한 흐름이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에도 존재하며 SF적으로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오히려 좀 아쉽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정보량이 풍부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상이라는 매체와 어울리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극에서 다양한 트라비아들과 학문들을 연결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작에서 보여준 흐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찬찬히 시간을 들여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개였다. 그러나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는 20분, 13화라는 짧은 러닝 타임 내에서 이를 풀어내야 하는데, 극의 전개와 별개로 너무 많은 정보를 풀어내서 따라가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소설로 보았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보기엔 너무 정보 밀도가 높은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고질라 싱귤러 포인트는 훌륭한 SF작품이지만, 안에 들은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모두가 즐겁게 보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자체가 메카 고지라를 보여주며 뒷 이야기가 진행할만한 여지를 남겨주었기 때문에, 2기를 기대해볼만 하다. SF 작품을 좋아한다면, 보는 것을 고려해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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