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개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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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업데이트되는 게임이 많아지면서 테세우스의 배의 난제가 적용되는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다:테세우스의 배란 테세우스의 배를 수리하기 위해서 모든 판자를 교체하였다면, 과연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 할 수 있는가? 라는 난제이다. 즉,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바뀌게 된다면 그것의 동일성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라는 것에 대한 질문이 테세우스의 배이다. 게임에 업데이트가 적용이 되면서 게임이 양적으로 확장하는 경우는 이제 흔해졌지만, 역으로 게임의 본질을 건드리는 업데이트도 같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게임과 과거의 게임의 동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들도 종종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예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스텔라리스이다. 스텔라리스는 게임 내의 자원체계를 변경하고, 인구 시스템이나 문명 시스템을 조정하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연단위 패치로 거대하게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처음 플레이했을 때의 스텔라리스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스텔라리스는 거의 게임이 버전 1.5나 1.7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거기에 DLC까지 연결되면서 게임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모하게 되는데, DLC가 단순히 양적 확장 뿐만이 아니라 게임의 질을 바꾸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는 이러한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게임의 바닐라 파트도 같이 변화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두번째는 디아블로 4다. 디아블로 4는 초창기 시스템과 달리 시즌을 적용할 때마다 콘텐츠를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 하면서 게임의 핵심 코어를 많은 부분 건든 것들이 있다. 가장 큰 부분들은 아이템 레벨과 레벨링, 정복자 시스템들에 대한 다양한 조정인데, 게임의 변화가 시즌마다 워낙 크다보니 게임이 원판 디아 4가 나왔을 때와 같은 구조라고 이야기 힘들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복합적인 평가와 설왕설래가 있어왔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계속해서 변화하는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디아블로 4는 나름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 두 게임들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3~4개월마다 게임의 핵심 메카니즘에 크게 손을 대면서 게임의 내용을 바꿔왔다. 모든 업데이트형 게임들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디아블로 4와 스텔라리스 같은 게임들의 존재는 과연 게임이 업데이트로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의 예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들이 디아블로 4.5, 스텔라리스 1.7 같이 불리는게 아닌 디아블로 4나 스텔라리스로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게임을 관통하는 핵심 경험은 게임의 업데이트를 통해서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 4가 그러한 업데이트를 통해서 바뀌더라도 다크소울이나 다른 RPG 장르 작품과 비교되지 않는 것은 결국은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텔라리스도 그러하다. 스텔라리스가 업데이트를 통해서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스텔라리스는 여전히 스텔라리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이 단순하게 장르적인 정체성이나 가족 유사성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이 게임만의 정체성'에 국한되어 변화한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디아블로 4에서 장르적인 특징인 핵앤슬래시라는 장르 하부에 디아블로 4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세부 시스템들이 있다면 업데이트가 건드리는 것은 이러한 세부 시스템들 뿐이라는 것이다. 즉,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부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인데, 다소 극단적인 변화에서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이 게임은 어떤 게임이다라는 제작자들의 확고한 철학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플레이어가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그 범위 내에서는 다양한 변화들을 일으키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게임에서 업데이트로 인해 발생하는 테세우스 배의 난제는 더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난제가 아닌 셈이라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게임 시스템의 합 이상이자 게임 장르의 하위라는 이 게임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일 것인데, 어떤 게임은 이런 게임이다 라고 문장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핵심되는 개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 레벨 파이브의 강점이 집대성된 게임. 좋은 의미로 얕고 넓은 게임인데, 넓게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여러 게임들을 밴치마킹했다. 각각 요소만 보면 이런게 뭐가 재밌지? 싶지만 계속해서 하다보면 시간이 지나가게끔 만들어 놓았다. 슴슴한 재미인데, 그 슴슴한 재미를 콘텐츠의 분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즉, 플레이어가 지루해하는 타이밍에 새로운 챌린지나 새로운 지역을 제공하고, 각각의 요소들이 모두 모여서 다른 요소에 도전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구조와 기획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게임의 구조는 판타지 라이프와 동일하다. 모든 것은 잡이라는 직업으로 게임 내의 세계를 즐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플레이어는 다양한 잡들을 통해서 게임 내의 세계를 다방면으로 즐기는 것이 판타지 라이프의 핵심이다. 이번작도 결국은 다 비슷비슷한 미니게임과 전투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그 대신에 편의성 측면에서 전작에 비해서 엄청나게 뛰어난 작품이 되었다. 어디서든지 잡 마스터를 향해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던가, 혹은 잡을 편하게 바꿀 수 있다던가 하는 등의 편의성이 강화되었다. 전작도 하다가 포기했던 부분이 이런 편의성에서의 귀찮음이 심했다는 것인데, 본작에서는 그러한 불편함이 많이 줄어들어서 불편함을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게임의 구조는 상당히 머리를 썼다고 할 수 있는데, 게임의 시공간을 현재 - 과거 - 무지크지 대륙이라는 구조로 나누어 두고, 마을 꾸미기(현재)와 튜토리얼/스토리 진행(과거), 엔드 콘텐츠(무지크지 대륙)로 나누어서 각 컨텐츠마다 즐길 수 있는 것과 목적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게임이 어떤 특정한 순서대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이 구분된만큼 게임 내의 동선이 깔끔하게 나뉘어지는 부분도 있고, 할거리가 많은 게임인 만큼 공간 분할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인상도 분명하게 잘 심어주고 있는 편이다. 

게임이 결국은 높은 레벨의 잡 레벨, 재료 찾기 등을 하기 위해서는 챌린지를 해금해야지 다음 단계로 나가야하는데, 그 다음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동선이 과거와 현재에 적절하게 배분시켜놓았다는 점은 머리를 잘 썼다고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게임의 엔드 콘텐츠인 무지크지 대륙은 구역별로 레벨업을 하면서 단계별로 파밍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마다 목표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상이한게 확실히 잘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길을 해맬 일이 없다는 점, 그 길을 해맬일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이상한데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구조를 잘 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얄팍한 대신에 10개가 넘는 직업을 모두 마스터해서 게임 콘텐츠를 즐긴다는 구조로 만들어 놨다. 즉, 게임 자체는 이미 이런데 많은 레퍼런스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놀랍지는 않은 구조고,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게임을 처음해봐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다. 대신 생활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보니, 게임 내에서 '전체론적인 구성'을 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하우징에서 전투, 이 모든 것들의 제작부터 플레이까지 플레이어가 직접 만들고 즐긴다 라는 점에서), 이런 부분에서 게임은 전체 직업을 골고루 키워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게임 스토리 마지막 퀘스트에서 모든 직업이 힘을 합쳐서 최종 보스와 싸우기 위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레벨을 올리거나 챌린지를 클리어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레벨을 1에서부터 올려도 상관없지만 게임은 동료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좀더 쉽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특히 제작에서 제작 품질을 올리거나 미니 게임을 좀 더 쉽게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등 편의성 측면에서 동료가 하는 역할이 막중하고 또 플레이어의 노가다를 대폭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전투나 제작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동료를 영입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벨 파이브 게임 답게 패러디나 이상한 개그 코드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요괴워치 3이나 4 같이 이상하거나 또 전연령 기준으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내용은 전혀 없다. 레벨 파이브 특유의 뇌절이 없기 떄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얕고 넓은 게임이지만 원판보다 더 뛰어나진 편의성과 게임 디자인 떄문에 오래즐기고 플레이하기에는 괜찮은 게임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할인할 때나 한번 가볍게 즐겨도 괜찮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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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The sky above the port was the color of television, tuned to a dead channel."*
항구의 하늘은 방송이 끝난 텔레비전의 색이었다.

-뉴로맨서 도입부

 

도시라는 풍광과 산업 사회의 등장은 우리에게 도시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의 등장으로 연결되었다. 이전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도시의 풍광과 대중의 풍광, 그리고 그 대중이라는 존재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실체화 되는 것 등을 통해서 19세기 말 ~ 20세기 초의 탐정 소설들과 하드 보일드, 필름 느와르와 같은 장르들이 흥하게 되었다:진실과 가치는 도시의 무정한 흐름속에 삼켜지고, 오로지 현실에 찌들었지만 동시에 고귀한 마음을 가진 자들(혹은 그보다 더 악에 받쳐 싸우는 악인들)이 진실을 찾아 올라간다. 진실을 찾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주인공과 독자들은 바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말도 안되는 일상의 기적들이나 작은 가치의 소중함을 찾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19세기 ~ 20세기 초의 탐정물과 도시를 풍광으로 하는 작품들이 고전 명작들이 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교과서인 동시에 낡고 퇴색한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요즘의 대중은 삶에 찌든 고귀한 탐정 이야기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 모든 노력과 고생 끝에 찾아낸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드 보일드 소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필립 말로 마지막 작품인 기나긴 이별과 같은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탐정이 찾고자하는 가치는 무가치하고, 탐정 역시 지쳐서 일을 그만두려 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다. 즉, 이러한 대중문화의 흐름에는 도시 문명에 대한 사람의 패배에 대해 은연중의 무기력감과 패배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와 동시에 20세기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대중 일각으로부터 드러난 우울한 세계의 이미지였다. 20세기 후반, 우리를 구원해줄 것 같은 과학과 기술은 환경을 파괴하고 삶을 옥죄었고, 물질적인 풍요는 기업의 조직적인 착취와 억압이라는 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도시라는 풍광은 더이상 대중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였고, 사람들은 그 속에 무력하게 삼켜져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가리에 박힌 삐죽삐죽한 이빨들은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가 등장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이었다. 네트워크라는 기술이 가져다 줄 가능성이 새로운 인류 사회에 대한 가능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착취와 억압의 도구가 되며, 국가라는 가치 체계가 붕괴하고 기업이 그 자리에 들어서며 노골적으로 인간을 착취하는 세계, 더 나아가서 거기서 찾아야 하는 가치도 없고 끝없이 방황하며 떠도는 인간이라는 관점이 들어간 대중문화는 1970~80년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받으면서 장르화되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사이버펑크 장르가 지향하고 있는 시대가 상당수 지금 현재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아닌 1980년대에 상상한 미래, 촌스럽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이미지를 띄고 있는 일종의 레트로 퓨처리즘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버펑크의 초기작들이 1980년대의 암울했던 미국의 경제 상황이나 일본에 대한 공포, 80년대 스타일을 당시에는 업데이트된 상상력으로 그렸다면, 이제 이러한 이미지를 인용하는 것은 그러한 미래가 일부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고, 또 언젠가는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사이버펑크는 현재의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이버펑크에 열광하는 것이다.

사이버펑크 2077은 문자 의미 그대로 사이버펑크 장르의 작품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SF 하부 장르였던 사이버펑크 장르에 비추어본다면 사이버펑크 2077은 엄밀하게 이야기해서는 SF 하부 장르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다. SF, 사이언스 픽션이라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상상에 기반하여 쓰여지는 장르다. 하지만 작품의 핵심 이야기 흐름인 렐릭이라는 요소는 ‘인격의 복제’라는 요소를 들고오긴 했지만 그것으로 사회가 어떻게 바뀐다 라는 상상력을 제공하진 않는다. 브레인댄스나 인채 개조 등의 다양한 SF 요소들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믹으로써만 동작할 뿐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 동력이 되지 못한다.

사이버펑크 2077 이야기의 핵심 동력은 욕망이고, 그것의 배경으로 거대한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나이트 시티라는 무대를 제공해준다. 이 점에서 오히려 사이버펑크 2077의 장르적 맥락은 SF나 때때로 사이버펑크 그 자체의 장르보다는 20세기 초의 필름 느와르나 하드보일드 장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욕망이 들끓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 사이버펑크 2077의 핵심 테마인 것이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기존 하드보일드 소설이나 필름 느와르의 작품에서 도시는 흑백영화에서 드러나는 어둠처럼 항상 존재하면서 진실과 추악함을 덮어버리는 암막처럼 작용했다. 그 암막을 들춰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20세기 초반 대중문화의 특징이었다면,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그러한 암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트 시티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은 도덕과 가치의 기준이 없이 오로지 욕망만이 긍정되는 극단적인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진실과 믿음, 가치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주인공 V의 직업이 용병인 것도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기존 느와르 장르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직업 이상의 의미였다. 실제로는 돈을 받으면서 불륜이나 조사하고, 남의 뒤나 캐고 다니는 천박한 직업이지만, 동시에 ‘도시의 어둠속에 가려진 진실을 찾는다’라는 점에서 대중문화가 탐정에게 주는 가치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진창을 굴러다니더라도, 지켜야 하고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이라는 진리가 있고, 그걸 탐정이 찾아나선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에서 탐정은 실제와 다르게 기사이자 십자군, 고행수도사처럼 묘사되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V가 용병인 것은 이러한 탐정의 안티테제를 취한다고 볼 수 있는데, ‘돈을 주면 무엇이든지 한다’라는 명제로 인해서 V는 도저히 벗어나올 수 없는 골치아픈 상황에 직면한다.

사이버펑크 2077의 스토리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잘 쓰여진 안티-느와르, 하드보일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오로지 돈과 욕망, 전설이 되고자 하는 명예욕, 그리고 시한부 인생으로부터 살고자하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동기에 따라서 움직인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러한 동기에 얽메이면 얽메일수록 일은 점점 꼬여가고 해어나올 수 없는 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선인도 없지만 악인도 없고, 오로지 돈과 욕망에 따라서 움직이는 시궁창만이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이며 나이트 시티라는 공간의 본질인 셈이다. 이러한 구도는 메인 퀘스트 뿐만 아니라 서브퀘스트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특히 서브퀘스트 라인에서 주인공이 어떤 의뢰를 받거나 행위를 하는 것들은 대부분 ‘시작’이나 ‘끝’이 아닌 어떤 일의 중간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해결사 역할로 투입이 되는 것인데, 플레이어가 중간에 그 행위의 결과를 바꾸거나 하지 못한다는 구조를 띈다. 즉,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톱니바퀴로써 그 행위를 수행하고 돈을 받아가는 것이다. 

물론 사이버펑크 2077의 본편 사이드 퀘스트들은 이러한 미션들로 구성된것들이 많아서 다소 질리는 부분들이 있다. 정확히는 게임 스토리의 테마는 분명하게 잡혀있는데, 미션들이 너무 분절적이라(=한번 하면 끝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사이드 퀘스트가 반복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 DLC 팬텀 리버티의 스토리라인과 서브퀘스트들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팬텀 리버티는 존 르 카레 또는 톰 클랜시 같은 첩보물 혹은 테크노 스릴러의 구조를 띄고 있는데, 거대한 힘들이 알력다툼을 벌이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요원들이라는 톱니바퀴들이 마모되고 박살나는 과정들을 긴장감있게 다루고 있다. 

팬텀 리버티 DLC에서 주목해야하는 점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답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그때 그때 선택하는 최선의 선택들이 큰 힘들의 충돌 사이에서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DLC 스토리라인에서 소미의 편을 들것인가, 리드의 말을 들을 것인가라는 선택지 양쪽 모두 나름 지지할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무엇을 선택해도 완벽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깨름칙한 여지를 남겨놓는다. 소미는 살아남기 위해서 주인공을 끝까지 등쳐먹는 인간이고(그런 점에서 가장 순수하긴 하지만), 리드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공감할만하지만 그 원리원칙을 지키는 성격과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속이며 임무에 매몰되는 모습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 

결국 팬텀 리버티 DLC의 엔딩은 독특한 ‘지침’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게임이 지루하거나 너무 길어서 지친다기 보다는, 이 지저분한 이전투구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다. 마치 송버드를 살려내서 다시 대통령에게 가져다 바친 뒤,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는거야를 이야기하는 리드의 모습처럼 함께 돌아갈 사람도, 집도 없고, 모든 걸 잃어버리고 지쳐버린 사람이 자기 위로를 하는 모습은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수성을 구성한다. 즉, 이 모든 일이 있고 난 뒤에 우리가 얻을 것은 허울 뿐인 명예, 구하지 못한 실리, 무너져버린 명분, 복잡하고 쓰라린 감정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두가 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도시 문명의 어둠이자 숙명이라는 것이다.

사이버펑크 2077의 특유의 이 지저분한 난장판에서 고생해서 모든 것을 끝내버렸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형태로 얻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독특한 페이소스는 본편 게임의 엔딩에서 빛을 발한다. 게임의 마지막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서 아라사카 타워에 자살 특공을 감행하게 되고, 거기서 살아남아 후일담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후일담에서 주인공이 원하는 모든 것을 잡을 수 없다. 자유를 포기하든가, 명예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삶을 포기하든가, 무엇인가를 대가로만 해야 플레이어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사는 없다 하더라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이트 시티를 등지고 떠나는 별 엔딩일 것이다. 주인공은 명예를 찾아서 온 나이트 시티를 등지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데, 거기서 V는 확정적인 죽음이 아닌 ‘삶의 연명’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물론 그것이 시한부라 할 지라도 욕망의 구렁텅이였던 나이트 시티를 등지는 것으로 욕망의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불타오르는 전설이 될 것인가(태양), 적과 타협하고 신념을 굽힐 것인가(악마), 아니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탑)의 엔딩과는 다른 묘한 희망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왜냐하면, 태양이나 악마, 탑 엔딩은 우리가 이미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고 이미 이해하고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별의 엔딩은 우리가 절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도피이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사이버펑크 2077의 스토리는 매우 훌륭하며, 스토리 하나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트리플 A 게임들이 플레이어에게 힘을 강하게 주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에 집중하였다면, 사이버펑크 2077은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도 아니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그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씁쓸하고도 양가적인 감정들을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하였고, 도시 문명의 욕망의 휘황찬란함과 그 속에서 지치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채워넣은 게임이다. CD 프로젝트가 후속작을 만든다면, 이러한 기조는 꾸준히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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