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블록버스터 장르 공식을 확립한 작품을 꼽자면 루카스 필름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고고학자인 인디아나 존스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치와 싸우고, 역사의 비밀을 캐내는 이 모험 활극 시리즈는 특수효과와 액션 등을 통해서 전세계적인 흥행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의 상황에 쳐해있다. 비슷한 프랜차이즈였던 스타워즈가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7~9 3부작으로 유명세를 누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자신이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설적인 1편과 3편을 제외한다면, 4편과 5편은 역사의 변화와 극의 방향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연배우는 나이가 들어가지만, 새로운 주역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는 발굴하기 힘들고, 인디아나 존스를 이어받은 수많은 작품들(언차티드나 툼레이더 같은)이 나오면서 이제 더이상 인디아나 존스가 설 자리는 없는것 처럼 보였다.
이와중에 머신 게임즈에서 만든 인디아나 존스 : 그레이트 서클은 반갑기는 하지만 다소 의아한 부분이 많은 게임이었다. 다시 한 때 좋았던 인디아나 존스(1편과 3편처럼 나치와 싸우는)를 데리고 오면서, 1인칭으로 고전적인 인디아나 존스 느낌을 내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기존 팬들에게 박수를 받을만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언차티드나 툼레이더 같은 게임들이 이미 흥하고 있는 중에 인디아나 존스가 있을만한 자리는 없어보였다. 특히나 언차티드가 기존에 보여주었던 거대하고 압도적인 풍광에 대한 이미지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인디아나 존스가 가지고 있는 그런 오밀조밀한 느낌에 익숙해할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해보면, 인디아나 존스는 잘 만들어지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재밌는 게임이었다. 놀랍게도 머신 게임즈는 인디아나 존스의 강점을 이해하고 있고, 무엇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지난 두편의 영화(4, 5편)보다도 더 인디아나 존스를 잘 이해하고 게임으로 엮는데 성공하였다.
그레이트 서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게임이 머신 게임즈가 단독으로 만든 게임이 아닌 아케인 스튜디오가 함께 참여한 게임이라는 것을 숙지해야한다. 기본적으로 디스아너드 시리즈, 프레이, 데스 루프와 같은 이머시브 심 게임을 제작하였던 아케인 스튜디오는 다양한 사물과의 상호작용, 다층적인 맵 구조, 잡입과 액션 모두를 활용하는 폭넓은 게임 플레이 스타일 등으로 유명한 게임 제작사였다. 물론, 머신 게임즈가 울펜슈타인을 통해서 잠입이나 총기를 사용한 액션 등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케인 스튜디오는 게임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구성하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것에 비교하면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강점을 가진 스튜디오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레이트 서클이라는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둘이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있는가를 이해하는게 관건이다.
또한 그레이트 서클에서 이해하는데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게임이 ‘느리고 단순하다’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즘 게임들이 속도를 내고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여 진행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비교하자면, 그레이트 서클은 오히려 방향성을 역행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스테미너 시스템의 도입으로 게임에 제약을 둔다던가, 느릿한 파쿠르, 단순화된 잠입과 전투 시스템 등등을 통해 그레이트 서클은 게임을 일종의 ‘톤 다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이 역행하는 발상이 오히려 게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부분들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사항들(아케인 스튜디오의 참여와 느리고 단순한 게임 플레이)을 결합해서 본다면, 그레이트 서클은 대중친화적인 이머시브 심이자, 동시의 영화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케인 스튜디오가 참여한 부분들은 맵 디자인이나 스테이지 디자인, 게임의 템포와 관련된 부분들이고, 머신 게임즈가 관여한 부분들은 게임의 감수성과 연관된 부분들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아래 문단에서 세세하게 뜯어서 살펴보겠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머신 게임즈가 영화와 감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높았기 때문에 아케인 스튜디오와의 협업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맵디자인이다: 그레이트 서클은 복층을 사용하는 맵디자인과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스테이지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디스아너드나 프레이 같은 게임에서 보면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론을 보여주는 것을 자주 경험해볼 수 있는데, 그레이트 서클도 큰 맥락에서는 비슷하다. 또한 오픈월드는 아니지만 스테이지 전체를 감싸는 오버월드를 구성하고 플레이어가 오버월드에서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할 거리를 즐기거나 하는 등의 요소는 분명 아케인 스튜디오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부분은 아케인 스튜디오의 파쿠르에 비교한다면 그레이트 서클의 파쿠르나 스테이지 스타일은 대단히 성기다는것이 특징이다. 아케인 스튜디오 게임들이 초능력을 이용하여 창발적인 게임 진행 방식과 오밀조밀하게 다양한 요소들을 숨겨놓는 것이 가능했다면, 그레이트 서클에서의 인디아나 존스는 채찍 이외에는 초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채찍 때문에 손이 안닿는 곳에 올라가거나 하는 것들을 할 수 있지만, 디스아너드나 데스 루프와 같은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어딘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스테미너 시스템의 차용과 근접 위주의 전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아케인 스튜디오나 머신 게임즈 게임에서 사례를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스테미너 시스템이 도입된 게임은 소울류 게임이나 엘든링과 같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게임들에서 스테미너는 게임의 속도를 줄이고 플레이어들이 행동을 할 때 더 신중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실제 그레이트 서클은 마치 고전적인 액션 영화의 난투극을 연상케하는 느린 페이스로 전투가 진행이 되며, 플레이어가 주먹 버튼을 빠르게 난타하다가는 쉽게 스테미너가 다 떨어져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스테미너의 회복도 일반적인 스테미너 베이스류 게임에 비해서는 상당히 느리다는 인상이 강하며, 이 때문에 한번 스테미너를 모두 다 써버린다면 1대1이라도 큰 위험에 빠진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대신 스테미너 회복량을 빠르게 하는게 아니라 ‘스테미너의 최대치를 늘리는 임시 스테미너’를 시스템에 도입하였고, 과일을 먹을 때마다 이 임시 스테미너를 회복하게 만들어서 장기적인 전투나 파쿠르 등의 활동에 활용하게끔 만들었다. 즉, 게임의 템포는 ‘의식하지 않으면 곧바로 플레이어의 행동과 게임 플레이를 끝장 낼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차있고, 플레이어의 행동이나 사고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톤다운 시키는데 집중한다. 최근 게임들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하는데 집중한다면, 이러한 스테미너 시스템과 사용은 다소 시대를 역행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전술한 단순한 맵디자인과 느린 게임 플레이의 결합은 게임을 자칫 단순하게 보이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느리고 ‘모자란 부분’들이 게임을 쾌적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분명 이 스테이지 디자인에서 분명히 뚫고 지나가려면 뭔가 내가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 있을텐데’와 같은 고민의 과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대로 닥치는대로 플레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이 진행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하는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나 단순화되었다 라고 불호를 드러낼 수도 있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기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게임의 접근성이 늘어나는 부분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는 양면성을 띄게 되는데, 이 양면성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건지, 나쁜 인상을 줄건지는 앏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레이트 서클에서 이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후술할 감수성의 영역에서 드러나게 된다.
분명 전투나 맵디자인 등등은 아케인 스튜디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레이트 서클의 가장 빛나는 부분인 ‘감수성’에 대한 부분은 분명 머신 게임즈가 빛을 발한 부분이다.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의 최대 강점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서 갖고 있는 환상을 게임의 형태로 구현했다’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게 영화의 분위기를 재현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영화를 게임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세밀한 고민들이 그레이트 서클에서는 발현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퍼즐’의 구현이다. 과거 인디아나 존스도 유적들을 탐험하면서 고대 유적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레이트 서클은 좀 더 1인칭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퍼즐이 단순한 퍼즐이 아닌 ‘하나의 경이로움이 되는가’라는 연출과 감수성의 측면에서 게임을 잘 다룬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지역에서 거울을 이용한 퍼즐을 푸는 장면이나 바티칸 비밀 수도원에서 시간 제한이 있는 퍼즐을 푸는 장면 등은 하나 하나만 놓고 보면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지만, 단순히 크기나 연출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눈높이에 신비한 것을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감상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머신 게임즈의 연출은 영화에 대한 이해도 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탄복하게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자연스럽게 눈높이에 놓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과 최근의 언차티드 등과 같은 게임을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언차티드나 툼레이더 같은 게임들이 3인칭 게임이 되면서 유적과 규모감을 강조하고, 거대해지는데 집중하였다면 그레이트 서클은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놓고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갖고 놀게끔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뻔한 클리프 행어나 게임 플레이임에도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집트 스테이지의 마지막 보스전의 경우, 플레이어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보스전을 해야하는데, 플레이어는 라이터를 하나 키고 빛이 들어오게끔 발판을 찾아야 한다. 전체 구조를 놓고 본다면 그렇게 놀랍진 않지만, 게임은 이러한 과정을 완급조절을 잘 해두어 순간 순간 몰입감을 높이게끔 만들었다. 또한 몇몇 클리프행어 장면들(상하이의 비행기 갈아타는 씬이나 히말라야의 나치 군함을 타고 산을 내려가는 장면)은 분명 어디서 본 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그 몰입도가 상당한데, 플레이어가 ‘예상은 가능했지만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스테이지를 구성하고 연출하였기 때문에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그레이트 서클은 단순한 영화의 재현이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 영화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보통은 영화는 영화로, 게임은 게임으로 따로 따로 노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레이트 서클의 위치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것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된 레거시 미디어를 게임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방법론과 미학으로 어떻게 다시 되살릴 수 있었는가 라는 흥미로운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차티드 시리즈 조차도 이젠 후속작이 나오지 않고, 툼레이더 조차 나사 빠진 후속작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영화를 가지고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싱글플레이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은 대단히 특기할만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은 24년도 마지막을 장식한 최고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하나 하나 뜯어놓고 본다면 새로울게 없지만, 게임은 90년대 인디아나 존스가 흥행하고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만들고 있었을 때의 매력을 그대로 살려내는데 성공하였고, 감수성을 극대화한 게임 플레이와 연출로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디아나 존스의 후속작이 먹힌다는 것을 여지없이 증명해냈다. 이후 신작이 나온다면, 꼭 나오겠지만, 분명 더 뛰어난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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