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인류 보편의 신화구조를 있다고 규정하고,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나 무의식이 투영된 스토리로 봅니다.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는 신화-이미지-언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경우 Psyche라는 단어가 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로스의 아내인 프쉬케에 대한 신화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에서 이미지(프쉬케)와 스토리(프쉬케에 대한 신화)를 연관지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구조와 이미지는 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 많이 차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구조와 이미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미지 및 반응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헐리웃 상업 영화가 시장을 독점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권에 근저에 깔려있는 신화구조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신화-이미지-언어의 상호보완적인 구조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겪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논리에 의해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몰려 사라진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현대로 계승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주제나 논지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감독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쓰고, 그것들 모두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는 흥행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성과를 한국영화가 드디어 한국 관객들에게 먹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미지 구조를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소위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은 소시민과 무력한 가장과 가족, 위기상황, 그리고 헝그리 정신 등으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공식은 한국적인 사실성과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맞딱트릴 수 있는 당면 과제나 경험, 감정을 표현해서 이미지와 이야기 구조, 주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확보합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론이 대단히 길었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영화입니다. 무력한 가장, 바가지 긁는 아내, 몰려오는 생활고, 구질구질한 일상, 실직의 위험 등등 이러한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정렬 배치하여 영화를 완성합니다. 재밌는 점은 김윤석의 작년 출연작인 '추격자'와 많은 부분에서 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지독한 악덕 포주로 나오지만,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나오더군요. 이는 배우 김윤석의 연기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김윤석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끝냈으면 영화 완성도가 더 올랐을 거라고 아쉬워 하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훌륭하고 긴장의 완급도 좋습니다. 현재 관객 100만을 넘어선 상태이며, 잘하면 제 2의 과속스캔들도 노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영화에 있어서 흥행은 사실 돈이나 CG, 액션을 쳐바르는 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고 완성시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약간 정신이 나간게, 기금까지 나온 61화를 약 2주간에 걸쳐서 다 보았습니다. 딱 공부에 지장이 안갈 정도로 게임 대신에 5D's를 봤다는 정도? 다른 애니도 밀린게 많은데 이걸 다보다니 저도 참 징하네요;
*6/22부터 시험이라서 다음주는 아마 잠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댓글은 관리합니다.
1.들어가면서
최근 유희왕 NDS용 월드 쳄피언쉽 2009에 자극을 받아서 보고 있는 5D's입니다. 생각보다, 아니 기대(?) 했던 것보다 잘 만들었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작년 4월에 처음 방영할 때, 엄청나게 호평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그래봤자 유희왕이라고 넘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장기연재작이란 점 등을 감안했을 때 꽤 괜찮습니다.
유희왕 시리즈는 DM->GX->5D's 이렇게 넘어갑니다. 일단 제가 본 유희왕은 원작 만화 정도였습니다. 만화 자체는 재미는 있으나, 패턴이 항상 비슷비슷. "상대방이 강한 카드를 꺼냈다->근데 나는 패가 말렸네?->근데 나는 내 카드를 믿어!->우왕 ㅋ 굿 ㅋ 더 강한 사기 카드가 나왔네!" 이 패턴을 만화 끝날 때까지 반복합니다.
사실 보고 있으면, 좀 어안이 벙벙해지는 전개
사실, 만화 테마 자체는 "게임"입니다만, 어쩌다 만들어낸 '듀얼'과 카드 게임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내서 결국 만화의 테마가 카드 게임 듀얼로 변하였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만화 유희왕의 작품 내 카드 게임인 듀얼몬스터즈(Duel Monsters, 통칭 DM)의 룰과 실제 유희왕 DM의 룰이 엄청난 갭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만화 속의 DM은 뭐랄까...진짜 룰도 뭣도 없는 완전 '내 맘대로!'입니다.
덕분에 만화 내용이나 게임 내용도 중구난방이고, 컨셉도 왔다갔다 하고...총체적인 난국입니다만, 그래도 만화 자체는 상황 연출이 그럭저럭 좋아서 봐줄만 합니다....만 사실 연출도 대단히 전형적인 소년만화풍의 열혈입니다. 카드 게임이나 머리굴리기 같은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저는 5D's 이전의 유희왕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별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뭐가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원작 만화를 애니로 만들고(참고로 원작 유희왕은 애니화가 두번 되었음) 그 뒷이야기를 이어간 것이 유희왕 DM, 그리고 DM 이후의 스토리가 GX, 그리고 GX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것이 이번 5D's입니다. 사실 GX나 DM은 직접 본 것이 아니나, GX를 직접 보고 감명을 받아서 엘레멘틀 히어로 네오스 덱을 돌린 친구(.....)의 설명을 들어보면 사실 원작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본격적으로 카드를 팔아먹어야 하니까, 룰이나 카드 구성이 점점 짜임새가 있어지더군요(이는 나중에 유희왕 게임 부분을 다룰 下에서....)
2.유희왕 5D's:원작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사실 5D's는 나오기 전부터 말이 많은 작품이었는데, 코나미가 5D's가 나오기 전 5D's에 맞추어서 카드 게임의 룰을 개편하였고(실제 게임에서는 못 느낄 정도의 변화지만, 그래도 근 10년 가까이 유지한 룰을 바꾼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D휠이라는 바이크를 타고 듀얼을 하는 라이딩 듀얼의 도입으로 기존의 팬들에게서부터 많은 반발을 샀습니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의 가벼운 노선에 비해서 진지하고 무거운 노선으로 갈아탄 점도 전작과의 큰 차이점입니다. 이러한 변화점들은 코나미가 이번 유희왕 5D's에서 기존의 유희왕의 시리즈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말씀드리자면, 5D's는 장기연재작(4쿨을 넘어서 2~4년 방영하는 작품)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예전 유희왕 시리즈가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서 떨어지는 부분을 5D's는 훌륭하게 보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 부분에서 유희왕 5D's는 기존의 시리즈에 비해서 무겁습니다. 경제적, 계급적으로 이원화 된 공간인 도미노 시티와 새틀라이트, 그리고 단지 새틀라이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주민들, 범죄자들에게 과거 고대의 죄인들처럼 얼굴에 새겨넣는 마커라는 문신, 듀얼의 솔리드 비전이 실체화되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이킥 듀얼리스트들 등등... 5D's는 분위기 전반에 차별이라는 코드를 깔아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무겁다는 느낌입니다.
케릭터들도 원작에 비하면 대단히 무게가 있습니다. 동료와의 유대를 중시하는 유세이나, 프라이드가 강한 잭, 남들과 다른 능력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과의 소통을 단절한 아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서로를 보완하는 쌍둥이 루카 루아 등등...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등장한 클리셰 같은 인물들이지만,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와 사건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무게감이 생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형적이지만 잘 쓴 모범 답안’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장기연재작 치고는 이야기 완급이 대단히 좋습니다. 사실 이야기의 흐름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흘러 간 것은 아니지만(현재 61화까지 감상), 작품의 큰 테마인 듀얼이라는 소재를 두고 통일성 있게 그러면서 동시에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케릭터들 간의 듀얼로 때우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의 주요 테마가 듀얼이기도 하고 또 듀얼로 왠만한 이야기의 전개와 케릭터성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습니다. 게다가 밑에서도 다루겠지만, 듀얼 자체가 재밌기는 재밌으니 보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이 애니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야기의 모든 것이 듀얼 몬스터즈, 즉 카드 게임과 결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카드 게임으로 저 세상의 악마나 신들이 나오고, 카드 게임으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고, 카드 게임으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등등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설정들이 난무합니다만...원래 원작이 그런 작품이었고, 이 부분에서 적응하면 묘한 키치적인 맛이 있습니다. 피구왕 통키로 예를 들어 보죠. 피구왕 통키에서 피구공이 불타고, 세계 피구 대회가 있고, 피구공을 맞으니까 사람이 날아다니는 것에 대해서 ‘세상에 저딴 만화가 어딨어? 현실성이 없다니! 저 만화는 쓰레기야!’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그만한 병맛이 없지만, 아무 생각없이 보면 재밌습니다. 그리고, 사실 만화가 좀 거짓말을 심하게 깐다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재밌자고 보는 만화인데, 재밌으면 그만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기존 시리즈와 다른 진지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이야기의 완급이나 케릭터의 완성도 등은 장기연재작 치고는 수준급이며 보는 내내 이야기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카드 게임으로 세상이 멸망하고 구원받고 하는 문제만 일단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건 원래 작품 자체가 그런거니까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3.유희왕 5D's:작품 내의 듀얼에 대해서
(유세이의 주력 몬스터, 스타더스트 드래곤)
사실 작품 내의 분석에서 하고자 했지만, 너무 기니까 밖으로 뺐습니다.
기존의 유희왕 만화 시리즈에서는 듀얼 과정은 강한 카드->더 강한 카드->더, 더, 강한 카드->사기 카드의 형식으로 전개합니다. 사실 유희왕 실제 초기 TCG도 이렇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下편에서 보기로 하죠. 사실 기존의 소년 만화에서 강대한 적을 앞에 둔 주인공들은 적들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더 강한 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파워인플레이션입니다. 근데 원작에서 파워 인플레이션은 그 도를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희왕 원작을 보면서 강한 카드를 더 사기적인 카드로 받아치는 모습에 기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 타이밍에 딱 맞게 저 카드가 나오지?’ 하는 사기 드로우 문제는 일단 이야기 전개상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더라도, ‘저 카드는 도대체 어디다 숨겨놓았다가 꺼내쓰는거야?’라고 느낄 정도로 강한 카드가 핀치에 몰릴 때마다 튀어나오는 건 보는 사람으로써 황당하게 느껴지더군요. 항상 ‘난 내 카드를 믿어!’라고 하는데, 설마 그게 사기 카드를 뽑아내는 주문인가?(......) 오히려 상황에 맞추어서 사기 카드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더군요.
덕분에 원작에서의 듀얼은 전략도 뭣도 없는 사기카드 나열 대전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핀치에 몰리고, 역전하는 건 재밌기는 재밌지만, 곰곰이 되씹어보면 이런 병맛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단 ‘GX도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안 보았으니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핀치에 몰린 주인공을 위해, 어렸을 때 자신의 소망을 담은 카드들을 담은 캡슐을 우주로 쏘아올려 보냈는데 그게 우주에서 거시기 해서 졸 짱쌘 카드(네오 스페이시언, 줄여서 네오스)가 되어 돌아왔더라 하니 말 다한거 같습니다만....그래도 원작보단 덜한 거 같네요.
하지만 5D's는 원작과 다르게 전작에서 심하게 일어났던 파워 인플레가 안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마법이나 함정카드가 엄청나게 많이 바뀐거 같은 느낌이지만 덱이 지향하는 전략이나 전술은 명확하고, 애니메이션 내에서의 듀얼은 카드 간의 상성, 효력, 상대의 전략 등을 파악->이용->반격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공들 보다 적들이 더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들은 대단히 압도적인 능력으로 주인공들을 압박하는데 반해서, 주인공들은 정말 그 타이밍 아니면 의미가 없는 날카로운 한수로 적들을 이깁니다. 문자 의미 그대로의 ‘신의 한수’ 인 것이죠.
물론 여전히 ‘저 타이밍에 저 카드가 나오냐’ 싶은 드로우나 전개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 일어나는 패말림이나 게이머의 실수 같은 거 까지 다루기에는 애니메이션의 분량이 너무 부족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해칠 수 있기에 이 정도까지는 눈감아 줄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번작에서는 케릭터의 성격이나 특징에 맞게 덱과 카드가 정해져있다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유세이의 주력 몬스터인 스타더스트 드래곤은 자신을 희생해서 필드 파괴 효과를 무효로 하고, 그 턴의 엔드 페이즈에 돌아옵니다. 이는 유세이의 케릭터, 동료를 위해서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라는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잭의 주력 몬스터인 레드 데몬즈 드래곤은 스타더스트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공격력과 무시무시한 특수능력ㅡ이 카드가 공격한 때, 상대 필드위의 수비표시 몬스터들을 모두 파괴한다.ㅡ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턴 공격 선언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을 파괴하죠. 이와 같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킹이라는 지위에 대해 자존심이 강한 잭의 성격을 잘 대변하는 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5D's에서 듀얼 게임의 진행은 대단히 재밌습니다. 확실히 전작에 비해서는 머리 굴려가면서 게임 진행을 만들었구나 싶더군요. 게다가 전작에서는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일어났던 사기적인 파워 인플레가 현재까지 없다는 것도(물론 언젠간 하게 되겠지만) 인상깊더군요. 물론 최근의 유희왕 TCG의 흐름도 이렇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나중에 下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스타트렉 팬도 아니고, 스타트렉 시리즈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스타트렉 설정이나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리뷰는 영화 더 비기닝에 나온 이야기와 각종 언론 매체에서 나온 단평들을 토대로 리뷰를 진행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스토리 진행에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타트렉은 미국의 유명한 SF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서 수많은 팬들이 있고, 수많은 파생작들(ex.베틀스타 겔럭티카 등)과 패러디(ex.겔럭시 퀘스트 등)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그러한 스타트렉의 시리즈의 처음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단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훌륭한 SF 영화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기존의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 가지는 입장입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기존의 트레커(스타트렉의 팬들을 지칭하는 말)들에게는 분노를 살만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더 비기닝'의 시작은 전설적인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 제임스 커크 함장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초반 출생부분 및 오프닝 시퀸스 이후로 사람들(트레커를 포함해서 스타트렉이라는 시리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은 '그 대머리 함장'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완숙하고 노련미 넘치는 중년의 제임스 커크가 아닌, 젊은 풋내기 제임스 커크입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낌세를 보입니다. 물론 젊고 반항적인 제임스 커크를 등장시킨 것은 커크가 어떻게 위대한 함장이 되어가는가의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의도한 바는 기존의 스타트렉 시리즈와 영화 사이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기 위해서는 젊은 커크를 보여주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뭔가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죠. 여기서 감독 J.J. 에이브람스는 영화에 아주 골 때린 설정(동시에 기존의 팬들을 완전히 열받게 만들만한)을 집어넣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여행과 평행세계 이론입니다.
미래에서 온 악역인 네로는 처음 연방과의 접촉에서 커크의 아버지를 죽입니다. 기존의 시리즈의 역사를 따르면, 커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스타 플레트에 들어오고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이 되죠. 하지만 여기에 네로가 개입하면서 영화는 스타트렉 세계관의 평행세계가 됩니다. 여기서 커크의 케릭터나 사고관이 바뀌고, 그리고 스타트렉 내의 역사와 사건들도 다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심지어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까지 바뀝니다.
저는 원작 드라마를 안봐서 뭐라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의 이미지는 사려깊으면서 노련한 지휘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더 비기닝의 커크 선장은 천재적이긴 하지만 반항적이고 문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스팍과 대립하고 갈등하죠. 하지만, 커크와 스팍이 케릭터적으로 서로 맞닿아있다는 것을 영화 말미에 보여주어서 기존의 시리즈와 다른(?) 스팍과 커크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서 작품은 기존의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과거 스타트렉이 서로 다른 종족 간의 생각 차이로 생기는 문제, 그리고 특이한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모험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면, 이번 더 비기닝에서는 모험이나 조우보다는 각각의 케릭터에 더 집중하고, 케릭터성 또한 대단히 현대적입니다(ex.반항아적인 커크, 머리는 차갑지만 가슴은 따뜻한 스팍 등). 즉, 이와 같이 더 비기닝은 예전의 시리즈 보다는 최근의 영화의 흐름을 반영했습니다.
영화에서 전투나 함대전은 대단히 화려하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는 과거 클로버필드를 감독한 J.J. 에이브람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러한 아슬아슬한 전투나 액션 연출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케릭터성의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재창조)은 영화 스타트렉:더 비기닝을 잘 만든 SF 블록버스터로 만듭니다.
이런 특징 덕분에, 더 비기닝에는 한가지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팬들은 대단히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J.J. 에이브람스가 기존의 시리즈를 재창조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재창조는 기존의 스타트렉 세계관이나 분위기를 무너뜨리고, 극단적으로 기존의 스타트렉의 세계는 평행세계화 시켜버립니다. 이렇게 과격한 영화를 팬들이 썩 좋아할 리는 없죠. 저도 스타트렉은 잘 모르지만, 보는 내내 스타트렉 정도가 되면 전통과 역사가 있는 시리즈인데 이렇게 함부로 막 바꾸어도 되는지는 의문이더군요.
일단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SF 블록버스터로써는 중간 이상은 하는 영화입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들로 영화 내내 관객을 쥐었다 폈다 하니까요. 다만 기존의 드라마의 펜이라면 썩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가 완전히 J.J. 에이브람스 식으로 재창조되서 나왔는데, 보고나서 기분이 좋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쪽의 에덴은 노이타미나에서 현재 방영중인 09년도 4월 신작입니다. 공각기동대 SAC의 감독인 카마미야 켄지와 허니와 클로버의 원화가인 우미노 치카가 다시 만나서 만든 작품으로 애니의 작화나 분위기, 케릭터에서 허니와 클로버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여태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스펜스와 순정장르의 결합이죠. 줄거리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를 구하는 게임에 참가하고, 그 와중에 기억을 잃은 아키라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가는 추리 및 서스펜스적인 축과 그리고 사회 초년생 사키-기억을 잃은 아키라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연애적인 축으로 나뉩니다.
서스펜스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아키라가 처해있는 부조리한 상황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이미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100억 엔으로 썩어빠진 일본을 구해야 하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기억을 지웠고, 자신이 기억을 지운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행적을 되짚어 올라갑니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ex.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현기증 등)과 제한적인 인식에 근거한 추리극이라는 측면에서 히치콕 영화와 많은 부분 유사합니다.(주1) 아키라가 처해있는 세계를 구하는 게임, 세레손,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리고 스스로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이라는 상황은 아키라 본인으로서는(일단 현재까지는) 부조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으로써 자신이 잃은 기억을 되찾아 올라가기 위해서 제한된 기억과 단서에 근거해서 추리를 하죠.
재밌는 점은, 이러한 기억을 되찾아 올라가는 과정이 아키라가 의도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데스노트에서 L을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멀쩡한 척하는 라이토와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아키라는 세계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기억을 지웠고,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그러한 이유와 마주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키라가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구할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이 세상을 구하기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키와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사회 초년생인 사키가 보는 세상의 부조리함 혹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관계, 혹은 현대사회의 매정함이 주된 이야기의 축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5화 마지막 장면ㅡ사키가 회사 면접에 떨어지고 나서 아키라에게 이야기하는 장면ㅡ에 근거해서 추측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잃기 전 아키라가 2만 명의 니트(2만 니트 대군?)를 사회로 회귀시켰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아키라가 기억을 지웠다는 점(아키라가 사회로 복귀시킨 니트가 '어? 너 결국 기억을 지운거야?'라는 점을 통해서 보았을 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4번 세레손 형사의 죽음 장면(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칼 맞고 죽어가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건립하였지만 세계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은 9번 세레손 등등 애니메이션 내에서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연애 쪽을 살펴봅시다. 사키-아키라의 관계는 좀 묘한 관계입니다. 아키라는 사키에게 있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백마 탄 왕자 같은 느낌입니다. 애니메이션 초반의 사키의 나레이션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키라는 사키에게 대학교라는 안전한 틀을 막 벗어난 사회 초년생의 불안감과 형부에 대한 감정 등에 대한 해결책 같은 존재입니다. 즉, 사키에게 있어서 아키라는 꽉 막힌 세계에서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하지만 아키라에게 있어서 사키는 그 반대입니다. 처음 워싱턴에서 만났을 때, 알몸으로 기억이 없는 자신과 처음 만난 사람이자 도와준 사람입니다. 즉, 기억을 잃고 난 뒤에 맺은 첫 인간관계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키라에게 있어서 사키는 기억이 없는 자신과 세상 사이의 끈을 확인해주는 존재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키와 아키라는 서로에게 있어 각별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키-아키라의 관계를 통해서 위에서 다룬 서스펜스적인 축이 강화(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됩니다. 이렇게 동쪽의 에덴은 서스펜스의 축과 연애의 축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동쪽의 에덴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동쪽의 에덴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쪽의 에덴은 애니의 템포 자체가 서스펜스나 스릴러 장르라기보다는 순정물에 가까운 템포라는 점입니다. 즉, 이야기 진행이 너무 담담해서 보는 사람을 강렬하게 흡인하는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작품 자체는 별로였지만 관객을 쥐었다 폈다하는 서스펜스 측면에서는 대단했던 코드기어스:반역의 루루슈 같은 경우, 매화 매화 관객들은 '다음 화는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으로 애니를 봅니다. 하지만 동쪽의 에덴은 이야기가 진행되도 '어 그런가 보다'라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전개 자체가 감독의 전작인 허니와 클로버 쪽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두번째는 애니가 제기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 또한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애니 내의 사회 문제 해결 과정 및 접근 방법이 맥이 빠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너무 문제 제기 및 해결의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마치 논술 문제를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20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라고 내고, 이에 대한 답안을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심성의 것, 전심전령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라고 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가 5화까지 진행되도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자주 시도되지 않은 서스펜스와 순정 장르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또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어느 정도 눈감아 준다면, 충분히 재밌습니다.
동쪽의 에덴은 주 애니메이션 시청 대상을 오타쿠 집단이 아닌 일반 여성층으로 삼고 있는 노이타미나 시간대에서 처음으로 '11화+극장판'의 시리즈 구성을 한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그만큼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저는 보고, 극장판 까지 포함해서 애니메이션 끝까지 기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주1. 예를 들어, 영화 현기증 같은 경우, 주인공은 고소공포증으로 인해서 살인 사건을 목격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현기증으로 인해서 환상을 본 것인지에 대해서 햇갈립니다. 이를 통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제한적인 인식에 근거해서 사건을 찾아간다는 것이 영화의 주 내용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제한된 인식과 이를 근거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히치콕 영화의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장난은 그만두고...영화 푸시는 참 뭐랄까, 모호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목표는 초능력자 배틀물인데, 정작 내용은 스릴러(?)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그 스릴러도 제대로 된 스릴러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로인해서 영화는 하나의 구심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덕분에 스릴러와 배틀물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해서, 어중간한 내용이 되어버리죠.
푸시는 크게 9종류의 초능력자가 있습니다. 미래를 보는 워쳐, 물건을 움직이는 무버, 기억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푸셔 등등...이렇게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능력을 이용해서 숨 막히는 추격전과 두뇌 싸움을 벌인다.....가 영화가 지향하는 컨셉입니다. 근데 이것이 영화 푸시의 첫 번째 실수입니다. 일단 푸시에서 나오는 9종류의 초능력자들은 죄다 어디선가 나온 능력자들이거든요. 대단히 식상한 소재일뿐더러, 이미 다른 영화에서는 소재에 대한 장르적인 깊은 고찰이 된 상태(ex.엑스멘 등)입니다. 단지 종합 선물 세트처럼 어디서 나온 놈들을 죄다 모아놓고 특수효과 좀 넣었다고 해서 재밌는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는게 아니죠.
그 다음으로 영화가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과연 주인공이 워쳐에 의해 예지된대로 죽지 않고, 히로인을 구할 수 있을까?’ 입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머리를 막 굴리죠. 어떡하면 워쳐에 의해서 결정된 예지를 고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악역들은 ‘난 니네의 죽음을 알고 있지 메롱’하면서 약을 올리고, 주인공들의 행동범위도 적들의 워쳐들이나 주인공들이 예지하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는 여기서 두 번째 실수를 하는데, 주인공들은 적들이 그냥 '메롱'하는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하면 피할까'를 열심히 궁리를 합니다. 뭐, 궁리하는 거 까지는 좋은데, 여태까지 주사위 도박이나 하면서 양아치처럼 살아온 주인공이 어떠한 초능력자도 하지 못한 '워쳐의 예지를 깨뜨린다'라는 난제를 너무나 쉽게 해결합니다. 그냥 '워쳐의 예지는 불확정성에 의해 깨지니까, 계획을 세우고 기억을 지운다.'라는 것만으로요. 감독은 이러한 명제에 대해서 대단히 심취한 나머지 이 부분을 대단히 강조합니다. 주인공들이 적들을 속이는 부분을요. 근데 솔직히 그 부분을 보는 제 입장에서는 '알겠으니까, 극장에서 보는 보람이 있게 좀 두드려 부수고 싸우라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두가지 실수 덕분에 영화 푸시는 이도 저도 아닌 묘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초능력자물다운 능력자들의 힘겨루기나 대결도 제대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이 영화를 뭐하러 보러 가야하나요? 사실 이 영화의 가치는 다코타 패닝이 아역이 아니라 청소년의 역할을 맡은 감격스러운(?) 첫 번째 영화라는 점입니다. 뭐, 연기도 무난하게 그럭저럭 하는 편이고, 나름 귀엽다고도 할 수 있으니 다코타 패닝을 위해서 콜라와 돈을 소비할 수 있다는 열성 팬들은 보셔도 상관 없을거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푸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덕분에 망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뒤에 감독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군요. '제발 부탁인데,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가 플롯 짜놓고 자아도취하는 짓거리 좀 하지말고 하나만 확실히 해!' 라고요.
영화 더 레슬러는 퇴물 레슬러 랜디와 그의 변두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한 때 프로레슬링이 유행할 때 그는 잘 나가는 레슬러였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프로레슬링이 쇠퇴하면서 같이 퇴물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랜디는 심장에 문제가 오게 되고, 이를 계기로 레슬링을 관두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반추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으려 합니다. 하지만 랜디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링으로 돌아가고, 그의 생애 마지막 경기를 벌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레슬러는 구태의연한 신파물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 때 잘나갔지만 이제는 완전히 퇴물이 된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이 걸린 고칠 수 없는 병. 어릴 때 버리고 떠났던 자식. 프로레슬링의 세계 바깥에서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인 등등...이와 같이 전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파적인 코드를 기저에 깔고 있다고 해서 더 레슬러가 평범한 3류 신파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식상한 스토리와 소재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더 레슬러는 관객들에게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쥐고 흔듭니다.
더 레슬러와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저는 패배자 3부작 이라고 부르지만)ㅡ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신파 코드를 끌어오면서도 동시에 신파 코드 그 자체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파와 인생에 대한 철학, 혹은 이들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의연한 소재를 끌어오면서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더 레슬러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랜디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철저히 소외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에서는 적어도 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 일탈 같은 부분을 남겨두었지만, 더 레슬러에서 데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주인공인 랜디를 세상에서 소외시킵니다. 몇 년만에 찾은 딸과는 좋지 않게 해어지게 되고, 클럽에서 서로 좋아하던 스트리퍼 댄서와는 이어지지 못했으며, 은퇴한 뒤에 동네 샐러드 바에서 일하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 때문에 상처 받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서 랜디는 자신이 있을 곳이 링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링 위로 올라섭니다.
이러한 과정을 감독인 데런 아르노프스키는 대단히 저자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몇몇 극적인 사건들도 일말의 호들갑 없이 담담한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고, 일상생활 등을 거친 핸드핼드의 카메라를 통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그의 예전 작품이었던 레퀴엠(2000, 관련 리뷰는 여기)과 극단적으로 대조됩니다. 레퀴엠에서는 온갖 MTV 스타일의 자극적인 카메라 기법을 동원해서 현대 사회의 중독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었지만, 더 레슬러에서는 그러한 촬영 기법을 핸드헬드 이외에 거의 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데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현실적인 영화 분위기에 랜디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영화적인 장치를 적절하게 삽입합니다. 이는 그가 그리워하는 그의 전성기인 1980년대와 현대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면서 완성됩니다. 일례로 랜디가 자신의 이름을 딴 NES(혹은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는 FC로 알려진) 게임을 동네 꼬마를 불러서 할 때, 동네 꼬마는 콜 오브 듀티 4 이야기를 하죠. 어찌보면 80년대를 풍미했던 NES가 현재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완전히 퇴물이 된 것이고, 랜디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랜디의 트레일러의 붙어있던 영 엥거스의 AC/DC 포스터와 딸의 집에 붙어있던 Vampire Weekend(2008년에 유행한 밴드 중 하나) 포스터 등등 랜디와 현재 세상의 간극을 잘 보여주는 영화적 소품이 많습니다. 그리고 미장센 또한 이러한 랜디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 일조하죠.
그러나 감독의 적절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키 루크의 연기입니다. 원래 주인공 역에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를 후보로 두었지만, 결과적으로 미키 루크가 주인공으로 정해졌죠. 만약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인공을 맡았으면, 이 영화는 절대로 지금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할 겁니다. 한 때, 1980년대의 나인 하프 위크 등에 출연, 색스 심볼로서 느끼함과 근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키 루크.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마약과 문란한 사생활 문제로 완벽하게 망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배우로써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로 신시티에 등장해서 배우로서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만화적 이미지가 주된 영화인 신시티에서는 연기의 완성도를 논할 부분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레슬러에서 미키 루크는 말 그대로 퇴물입니다. 80년대의 탄탄한 근육과 매끈한 피부, 잘생긴 얼굴, 말총머리 등 한 때 섹스 심볼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망가져서 나옵니다. 축축 늘어진 근육과 주름 잡힌 얼굴, 푸석푸석한 머리까지, 물론 어느정도 분장은 한 것이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미키 루크가 망가졌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망가진 모습이야 말로 랜디 역에 어울리는(미키 루크 본인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에서 미키 루크는 완벽한 망가진 중년 퇴물 레슬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죠. 덤덤하게 저자극적인,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성격을 스크린에 서있는 것만으로 드러낼 수 있는 놀라운 경지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는 더 레슬러의 랜디와 미키 루크 본인이 걸어온 삶이 결과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기에, 미키 루크가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키 루크=랜디'의 공식은 영화의 마지막 랜디가 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할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이 한때 젊어서는 뭣도 모르고 설쳤고 좀 더 순탄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이제 완전히 퇴물이 되었고 더 이상 갈 데도 없게 되었지만 결국 링 위에서 관객들의 받은 환호를 잊지 못해 돌아온 랜디. 이는 랜디의 자기 고백이자 동시에 미키 루크의 자기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영화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링 위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뛰어내리는 랜디의 모습을 끝으로 스텝롤이 오르고, 브루스 스프링턴의 'The Wrestler'가 흘러나옵니다. 이 노래를 끝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 trick pony in the field so happy and free?
-당신은 벌판 위에서 묘기 부리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조랑말을 본 적이 있나요?
If you've ever seen a one trick pony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묘기 부리는 조랑말을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입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legged dog making its way down the street?
-당신이 외발인 개가 거리를 내려가는 것을 본 적 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legged dog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발 개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입니다.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와서 모든 문 앞에 섰죠.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ea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항상 잃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당신을 미소짓게 할 수 있죠.
Tell me, fan,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더 이상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Have you ever seen a scarecrow filled with nothing but dust and wheat?
-당신은 먼지와 밀짚단 밖에 없는 허수아비를 본 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that scarecrow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허수아비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armed man punching at nothing but the breeze?
-당신은 항상 헛손질하는 외팔이 복서를 본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armed man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팔이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와서 모든 문 앞에 섰죠.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ea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항상 잃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당신을 미소짓게 할 수 있죠.
Tell me, friend,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더 이상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hese things that have comforted me, I drive away
-나를 안락한 것들을 모두 갖다 버렸네.
This place that is my home I cannot pay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내게 더 이상 감당이 안되네.
My only faith's in the broken bones and bruises I display
-내 유일한 신념은 내가 보여주는 부러진 뼈와 멍에 있다네.
Have you ever seen a one-legged man trying to dance his way free?
-당신은 한 다리로 자유롭게 춤추려는 외다리 사나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legged man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다리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사실, '300' 감독인 잭 스나이더가 신작인 왓치맨의 메가폰을 잡았다고 들었을 때, 저는 이번작 왓치맨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왓치맨이라는 원작 자체가 대단히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고, 분위기 자체가 300이라는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저번 시사회에서 원작자인 알랜 무어가 영화에 대해서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점과 메타 크리틱에서 100점 만점에 50점을 웃도는 평균도 또 다른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래도 백문이불여일견.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 작품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국내 시사회 이후 나온 평론들도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에(듀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너무 원작 그 자체를 옮겨놓아서 영화적인 맛이 떨어진다고 불평을 했죠), 오늘 친구들과 함께 용산 아이맥스 개봉 레이드를 뛰었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는 원작에 충실합니다. 아니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왓치맨이라는 중층적 의미를 가진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고, 그 결과 원작을 충실히 구현해 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원작이 가지는 묘한 느낌이나 다의성 등의 많은 장점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적절한 선에서 원작 구현을 해내는데 성공합니다.
영화는 원작의 가장 큰 스토리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것은 코미디언의 죽음과 함께 시작과 함께 드러나는 음모이죠. 이러한 스토리는 '과연 슈퍼 히어로 등의 개인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한데, 도대체 슈퍼 히어로가 할 수 있는게 뭔가? 영화 왓치맨은 이러한 과정을 은퇴한 히어로들(몇몇은 현역이기도 했지만)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무력감과 히어로 코스튬 중독·도착증(나이트 아울과 미스 주피터가 충동적으로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사람을 구한 뒤에 격렬한 관계를 가지는 장면, 혹은 로어셰크의 마스크 집착증 등)을 보여주고, 마지막 애드리언 바이트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한 게 뭐지?
아무 것도 없죠. 세상은 여전히 개판 5분전이고, 인간들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슈퍼 히어로는 정부의 꼭두각시이며(닥터 맨하탄과 코미디언),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절대 주류 세상에 낄 수 없습니다. 자기 인생과 모든 것을 갖다 받쳐서 세상을 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거죠. 역설적이게도, 바이트는 인류의 공동의 적(원작에서는 외계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닥터 맨하탄)을 설정함으로써 인류를 공동의 적 앞에서 뭉치게 만듭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보여줍니다. 그러한 군더더기를 많이 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2시간 40분 가까이 되는 건 원작이 좀 대단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영화는 잘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각각의 케릭터를 살리는데는 실패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작에서만큼의 깊은 케릭터성을 가진 케릭터를 만드는데 실패합니다. 물론 영화는 케릭터성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분히 합니다. 적절한 플래시백과 독백 등등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기법들을 다 동원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만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에 비해서는 썩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원작의 포스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각각의 챕터 사이에 작품 내의 초대 나이트 아울이 쓴 자서전이나 인터뷰 자료 등을 첨부해서 이야기의 흐름과 또 다른 객관적인 시점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케릭터의 깊이를 부여합니다. 그러한 작품내의 자료 또한 왓치맨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키포인트인 것이죠.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를 제대로 살릴 길이 없습니다. 아예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거나, 뭐 영화와 다른 흐름을 지닌 이야기를 삽입을 해야하는데...이는 영화의 통일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는 이야기들-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나 정신과 의사 이야기 등-도 개봉버전에서는 짤렸더군요. 이 부분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왓치맨은 괜찮은 영화입니다. 다만 원작이 워낙이 대단한 나머지 영화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더군요. 잭 스나이더가 원작에 되도록 충실하게 하려고 많이 애를 쓴 거 같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영화 그 자체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니 기회가 되시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이번 슈로대 K 발매 기념으로 보고 있는 작품들이 3개 있습니다. 일전에 보고 있던 창성의 아쿠에리온, 그리고 창궁의 파프너와 신혼합체 고단나, 이렇게 3개입니다. 이 3개중에서 가장 병신 같은 작품을 꼽으라면 창성의 아쿠에리온이고, 가장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고르라면 창궁의 파프너겠군요.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다가 보니까 평이 더 좋은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객관적으로도 잘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는 전형적인 포스트 에바(Post Eva, 에반게리온 이후의 나온 비슷한 컨셉의 작품들)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적과 완전히 수세에 몰린 인류,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인간형 최종 병기, 이를 조종하는 소년 소녀들, 그리고 특유의 존재론적 혹은 인간관계론적 고민까지, 창궁의 파프너는 에반게리온의 코드를 많은 부분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첫 1, 2화만 놓고 본다면 '이거 에반게리온 판박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주요한 비판 중 하나가 바로 에반게리온의 복제품이며 아류고 그렇기 때문에 에반게리온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런식으로 에반게리온의 아류작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전에 나온 작품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새로운 작품도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이런식의 논리를 확대하면 마징가 Z 이후로는 어떠한 메카닉물도 나와서는 안되며, 퍼스트 건담 이후로 나온 일명 리얼계 로봇물들은 죄다 건담의 아류이고, 데즈카 오사무 이후의 만화가는 다 사이비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일단 작품을 놓고 작품 자체가 어떤지를 본 다음에 그 작품의 좋은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궁의 파프너는 잘 만든 작품입니다. 포스트 에바가 가지는 코드를 넘어서 자기만의 색체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에반게리온이 주된 테마를 '소통'에 초점을 맞추어 놓았다면, 창궁의 파프너는 '생존'에 초점을 맞춥니다. 평온했던 섬의 일상이 단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소년 소녀들이 알고 있던 현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평온해보이던 타츠미야 섬은 사실 대 페스튬 요격 요새였고, 믿었던(?) 친구는 자신의 친구보다 파프너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자신들은 알고 보니 인공 자궁에서 만들어져서 길러지는 새로운 인류였으며, 타츠미야 섬은 전세계를 등진 존재라는 것,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는 이미 멸망한 것 등등 주인공들에게 있어 일상은 순식간에 비일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창궁의 파프너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세계를 등지고, 아이들에게 파프너를 타고 싸움을 강요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싸움에 내몰린 아이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예전의 자신들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또한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는 것, 그것이 언제나 살아남는 사람에게 있어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애니는 적절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야기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음악이나 컷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상황에서는 대단히 찌질해 보일수도 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 일단 페스튬이라는 적도 흥미로운 적이기는 합니다만, 현재까지 제가 감상한 분량(~14화 까지)에서는 별다른 특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쭉 보아온 애니의 적들과 다르게 '당신은 거기 있습니까?'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다니더군요. 다만 문제는 멘트가 그거 하나 밖에 없어서, 나중에는 듣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창궁의 파프너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북구 신화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브륜힐데 시스템, 발키리의 바위굴, 그리고 파프너 뒤의 넘버링이 독어인 점은 창궁의 파프너가 독일 및 북구 신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성경 및 기독교적인 부분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라제폰은 이집트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점을 생각하면 나중에 '신화라는 텍스트로 본 포스트 에바'라는 분석도 가능하겠군요.
-이 애니 감상에 있어서 유일하게 거슬리는 부분은 바로 케릭터 디자인과 작화입니다. 건담 시드, 시드 데스티니의 히라이 히사시, 이걸로 게임 셋입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케릭터가 3종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해어 스타일만 바꾼 키라 클론, 여자, 그리고 보통 사람(.......)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좀 개성있게 그릴 것이지, 생겨먹은 게 죄다 그놈이 그놈같고 저놈이 저놈같으니 문제입니다. 물론 최근작 히로익 에이지는 좀 나은거 같습니다만, 저는 지금 히로익 에이지를 보는게 아니라 창궁의 파프너를 보고 있는 것이거든요(......)
작화는 붕괴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경계에 있습니다. Xebec이 뭐 그렇게 작화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창궁의 파프너는 객관적으로 좋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무너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선은 유지해주고 있으니 감지덕지 하고 보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