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갓 오브 워 2018이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필자의 반응은 미적지근할 수 밖에 없었다: 갓 오브 워 시리즈는 폭력과 섹스에 대해서 극단을 추구했던 작품이었고, 비디오 게임 고어 묘사의 등급을 한단계 올린 작품이었다. 그런 프랜차이즈가 아들이 생겼다고 얌전하게(?) 북구 신화를 탐험하면서 라스트 오브 어스마냥 드라마를 전개한다고 했을 때, 기대감보다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언차티드 4를 망치듯이 또다른 작품을 망치는구나 라는 싸늘한 생각만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갓 오브 워2018은 이야기 측면에서 그런 걱정들이 보기좋게 빗나가게 만든 작품이었다. 새로운 크레토스는 이전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납득가능할만한 케릭터였으며, 아트레우스와 크레토스의 관계는 흥미로웠고, 북구 신화를 둘러싼 서사는 적절하게 비틀렸다. 하지만 동시에 몇몇 부분에서 갓 오브 워 2018의 이야기는 아쉽거나 그 한계점이 분명하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갓 오브 워가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액션 게임의 대표주자로 꼽히긴 하지만 이야기의 기저에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독특한 뒤틀림이 숨어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은 비범한 혈통과 함께 신에게서 소명을 받은 영웅이 업적을 쌓거나 자신의 죄과를 씻기 위해 신에게서 위대한 과업을 받고 이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들은 신화적인 여정을 통해서 과업을 수행하고 위대한 영웅으로 올라서게 된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을 예로 들어보자:헤라의 미움을 받아 광기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 12과업을 수행하고 그리스 신화에 길이남을 전설적인 영웅이 된다. 헤라클레스의 신화는 그리스 영웅 특유의 비범한 혈통(보통은 신에게서 물려받은 핏줄), 불가능한 과업을 향한 집요한 집착(12과업 중 황금뿔 사슴 사냥처럼 1년 동안 사슴을 추적하여 지칠때까지 쫒는다던가)과 문제를 해결하는 극단적인 잔혹성, 그리고 비범한 광기(헤라클레스는 광증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사람을 죽여서 자신이 쌓았던 명성을 잃었다)와 비극적이고 비참한 최후를 모두 다루는 모범적인 그리스 영웅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 영웅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설적인 자기 완성적인 예언이다:오이디푸스 신화를 예로 들어보자. 오이디푸스의 친부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죽이고 어미를 범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오이디푸스의 뒷꿈치에 못을 박아 거꾸로 메달아 산에 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친부의 행위가 오이디푸스가 친부를 죽이고 어미를 범하게 된다는 예언의 발단이 되었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식으로 그리스 영웅과 그리스 신화의 비극들은 비범한 인간들이 정해진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에 의해 정해진 파멸을 맞이한다는 독특한 비극의 정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크레토스는 이러한 그리스 영웅을 180도 뒤집은 케릭터다:고대인다운 잔인함과 집요함, 스파르타인으로서의 자긍심은 신에게 소명받아 위대한 과업을 달성하는 방향이 아닌 신을 증오하고 질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신의 이름으로 무고한 자들을 학살하고, 동시에 신을 저주하며, 자신의 신성한 혈통(제우스의 피를 이어받은)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신까지 증오하는 모습까지 크레토스는 모범적 그리스 영웅의 안티테제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티테제 속에서 고대인의 인간미가 언뜻언뜻 드러나는 것도 크레토스의 매력중 하나였다:자식과 가족, 모국 스파르타를 사랑한 점, 신에게 고통받는 자들에게 이입을 한 점, 마지막으로 신 이외의 인물들에게는 최소한의 기회라도 주려고 했던 점(물론 항상 좋지 않게 끝나지만) 등은 크레토스가 닥치는대로 처죽이는 악역같은 케릭터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리스 영웅의 거울상인 크레토스가 고통받는 과정은 철저하게 그리스 비극적이라 할 수 있다. 1편의 엔딩처럼, 자신을 고통받게 만든 아레스를 죽이고, 신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자살을 하는 크레토스를 신으로 앉히는 장면은 그리스 비극의 아이러니를 정확하게 꿰뚫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3편에서 제우스가 크레토스를 죽이려 한 것도, 예언과 함께 자신 역시 아비를 죽여 권력을 얻은 점에 대한 컴플렉스가 발현되었다는 점은 그리스 신화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산타모니카는 갓 오브 워의 이야기를 구성할 때, 원전이 되는 신화 컨텐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갓 오브 워 2018의 크레토스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원하듯이 신을 모두 처죽이고, 자신이 잃었던 가족을 다시 되찾았다면 그는 어떤 케릭터가 되었을까. 갓 오브 워 2018은 3편의 이야기로부터 긴 시간을 띄워놓고, 그에게 다시 가족을 줌으로써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이제 수염이 자랐고, 아들이 있으며, 자신을 가로막는 적에게 기회를 주며, 심지어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경험했던 프레이야나 발두르에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현명하고 절제하는 케릭터가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크레토스의 절제 사이에서 억눌려있는 분노와 폭력성이다. 게임은 그가 기존 갓 오브 워 시리즈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행했던 폭력은 이미 그의 일부이며, 크레토스는 그것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크레토스가 그의 분노와 폭력을 절제할수록 그는 현명한 케릭터가 되는 동시에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과거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여기에 아트레우스가 끼게 되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아트레우스는 크레토스의 혈통을 이어받았은 신적 존재다. 하지만 크레토스는 이미 신들이 인간과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알고 있다. 또한 크레토스는 신을 증오하고 무엇보다도 신인 자기 자신을 증오하기 때문에 아들과 거리를 두며 아들이 그의 가족력을 몰랐으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트레우스는 그것이 아버지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극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이러한 아들과 아버지의 서먹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케릭터 간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이 둘의 여정은 멸망하기 직전의 북구 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진행된다:여기서 산타모니카가 주목한 것은 북구유럽 신화 전반에 깔려있는 필연적인 종말론(라그나로크)과 종말을 둘러싸고 이를 미화하는 신화적 요소들(전사들이 죽으면 가는 발할라, 발키리, 명예로운 죽음, 종말과 위대한 순환 등)이었다. 그렇기에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종말을 배경으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로드 트립을 연상케한다. 세상의 균형은 깨졌고, 식인을 하는 노상강도들이 돌아다니며, 죽은 자들은 다시끔 현세로 돌아와 산자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크레토스는 아들에게 생존의 방법을 가르친다. 분노를 억제하고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는 것,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등등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리스와 올림푸스를 파멸시킨 자신이 갖지 못했었던 미덕들(폭력의 순환을 이해하는 현명함과 폭력의 절제, 저들과 다르다는 긍지)을 아트레우스가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 전략은 이미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를 통해서 검증된 부분이다:아이는 어리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고, 어른은 세상이 녹록하지 않음을 알고 아이에게 교훈을 주고 세상을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려 한다. 다만, 라스트 오브 어스가 만남을 통해서 서로가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갓 오브 워 2018은 고대인 특유의 무미건조함과 훈육으로 가득 차있다. 이는 게임 내 배경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질 뿐만 아니라 독특한 매력이 있다:멸망한 세상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우수에 가득찬 시각과 달리, 고대인 크레토스의 시각에는 오로지 실용적이고 절제된 사고와 감정만이 들어있을 뿐이다. 이 절제된 사고와 감정은 극을 채우는 작은 이야기들은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흐름으로 진행되어 극의 신선함을 더해준다.


갓 오브 워 2018은 이야기의 반전으로서 아트레우스가 로키라고 설정하고 북구 유럽의 신들이 잔악하고 포악한 존재로 정함으로써 기존 북구 유럽 신화를 대칭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신선한 동시에 어느정도 현대의 상식에 부합하기도 한다:북구 유럽 신화의 교훈과 미덕이 모조리 다 명예롭게 죽여서 천국에 가자 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폭력에 찌든 신화 속 신들이야말로 현대적 관점에서는 악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미덕들을 이어받은 아트레우스(=로키)야말로 북구 유럽 신들의 대적자라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산타모니카는 전작 시리즈들의 미덕이었던 그리스 신화의 재해석을 똑같이 갓 오브 워 2018에서 북구유럽 신화의 형태로 이뤄냈다. 이는 본작에서 잘 작동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할 프랜차이즈의 기틀을 다지는 좋은 포석으로 보여진다.


전반적으로 갓 오브 워 2018의 이야기는 무난하고 좋은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이야기가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석이 충분히 있다. 그리고 갓 오브 워의 이야기는 아버지 크레토스의 성장보다는 훈육을 통한 자식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세상에 나온 아들에게 교육하면서 아들이 거친 세상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야기의 큰 흐름이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초점은 크레토스의 변화보다는 아트레우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며, 아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인격자로써의 크레토스를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갓 오브 워 2018의 시간대에서 크레토스는 거의 완성된 케릭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크레토스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인물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본편 게임은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완성된 케릭터로써 크레토스의 존재는 몇몇 부분에서 당혹스러운 몇몇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아트레우스가 신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줄 때, 크레토스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아들에게 뜬금없이 아들이 신이고 자신 역시 신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또다른 예는 발두르를 죽이고 프레이야의 독설을 받아내던 크레토스가 갑자기 아트레우스에게 자신이 스파르타에서 왔고 많은 무고한 사람과 아버지를 죽인 자라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크레토스의 죄와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나 이 중요한 장면에서 게임 내내 능동적이고 자신을 표현하였던 아들은 갑자기 아버지의 선언에 밀려 배경이 되어버리고 만다. 크레토스의 자가 완결성을 위해서 아들의 존재가 이 두 장면에서 희생되고, 게임은 가족이란 공동체의 이야기가 아닌 가부장의 이야기가 된다. 물론 게임의 주인공이 아버지인 크레토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게임 내에서 배우고자 하는 아들과 가르치는 아버지의 교육의 구도가 무너지고 선언과 종속의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버린다.


또다른 문제는 두 층위의 문제다:초반의 아트레우스는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사슴과 맷돼지를 사냥하거나,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등의 과정은 분명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그것과 맞닿아있다. 어린아이는 세상을 동경하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약하다. 그러나 게임은 아트레우스가 신이라고 선언 당하는 시점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급격하게 끌어올려버린다. 이제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게된 아트레우스는 오만해지기 시작하며, 활약도 급격하게 애스컬레이트 된다(발두르와의 최종 일전에서 같이 허공에서 활을 연사 한다던가) 게임은 분명 후반부 서사가 주가 되는 구조를 취하지만, 아트레우스가 신격을 깨닫기 전과 후의 이야기 결이 차이가 나는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갓 오브 워 2018의 서사는 디렉터의 자식을 키우는 경험과 에고가 섞였기 때문에 이런 구조를 취한걸로 보여지기도 한다(어린 자식을 대하는 태도나 뭐 이런 것에서) 전반적인 모티브는 나쁘지 않지만, 그런 에고를 조금만 줄이고 작품을 통일성 있게 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전반적인 북구 신화에 대한 뒤틀기나, 크레토스의 케릭터를 완전히 뒤흔들지 않고 통일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새롭게 재해석한 점은 높게 평가할만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본편 게임 플레이에 대한 리뷰는 별도로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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