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 만큼 본인에게 껄끄러운 글쓰기는 없을 것이다. 보통 시리즈 게임들은 게임이 제공해주는 코어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시리즈별로 나름의 정체성을 가미하는 작업들을 수행한다. 가령 예를 든다면 몬스터 헌터 와일즈에서는 오픈월드와 필드의 콘탠츠화라는 기믹을 게임에 집어넣기 위해서 기존 몬헌 시리즈의 정체성을 조정하는 작업을 해서, '이전 시리즈와 유사하지만 그래도 본작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수행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명 시리즈는 2편, 3편 이후로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 게임을 개선하거나 추가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의 변화점들이 '미세하지만 쌓이다보면 큰 영향이 가는 변화점'들이 많았는데, 가령 문명 5편에서 육각형 형태의 타일로 보드를 구성하는 점 등은 게임을 보는 문외한이 보았을 때는 미세한 변화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게임 근간을 뒤흔들었던(유닛의 움직임, 상대 유닛과의 대치 등등) 큰 변화였었다. 그렇기에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은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서 어떻게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기술해야하는 리뷰이므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다소 지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문명 7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러한 문명의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난 게임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문명이라는 핵심 경험을 두고 게임의 근간이 되는 베이스 기믹들(타일 모양, 종교나 사회제도, 정치 등등)에 변화를 두어 이를 쌓아 차별화된 시리즈를 만들었던 기존 문명 시리즈와 달리, '우리는 이런 게임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 위에서 모든 게임 요소들을 과감하게 조절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문명 7은 문명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단아적인 작품이 되었는데, 단순히 경쟁작인 휴먼카인드와 유사하다의 논쟁을 넘어서 문명이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는 문제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문명 7이 어떤 게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문명 7의 지향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문명 7은 문명에 입문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명이다.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은 한줌의 개척자에서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게 핵심적인 재미인 게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의 세부적인 요소들(불가사의, 종교, 사회 제도 등등)을 이용해서 문명의 확장과 발전을 뻥튀기 할 수 있는 부스팅과 스노우볼링을 해야하는데,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의 난점은 이 부스팅과 스노우볼링 단계에서 시스템이 다소 비직관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명 6의 특수 지구를 중첩하여 보너스를 쌓아서 스노우 볼링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잘 읽는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라 문명 특유의 스노우 볼링에 대한 이해도와 감각, 판단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유명 유튜버들의 플레이만 보고 따라한다고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이러다 보니 단순히 도시를 짓고 소소하게 문명을 올리다가 게임을 종료하는 것을 반복하는 플레이를 하는 초보자들이 문명 시리즈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 7의 방향성은 어떻게 본다면 '게임을 잘 아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을 시스템으로 다듬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문명이었다면 플레이어가 잘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몇십턴이 지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문명 7은 이것을 플레이어가 어떤식으로 게임을 플레이어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목표를 제시하고, 더 나아가서 그 행위에 대한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문명 7은 이러한 방향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두가지 측면에서 시스템을 구성하였다:첫번째 측면은 시대의 구성이다. 문명 7은 의도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분절하여 각 시대별로 시대별 목표를 제공하고. 기술의 발전을 통제하고 제한하며, 심지어는 군사나 정치 유닛의 배치까지도 바꾸는 초 강수를 뒀다. 예전 문명에서 시대는 연속성이 있게 구성되어 있었고, 플레이어의 슈퍼 플레이에 따라서 상대 플레이어는 기마궁수로 놀고 있는 동안 나는 탱크 몰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게임 플레이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물론 시대가 바뀔 때마다 게임의 목표나 유닛의 배치, 발전 상태 등 다양한 것들이 리셋되기는 하지만 후술할 목표 시스템 측면과 맞물리면서 각 시대별로 잘한 것에 대한 일종의 '유산'을 남기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두번째 측면은 목표와 네러티브의 제공이다. 기존 문명에서는 게임의 최종 목표(정복이든, 우주선 탈출이든 간에)를 제외한다면 플레이어가 게임 중간에 얼마나 게임을 잘했는지, 목표에 부합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중간 지표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명 7에서는 각 시대마다 군사, 종교, 상업 등의 목표를 제공해주고, 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누적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즉, 플레이어의 행위가 전통이라 하는 소버프들로 이어지고, 이것이 플레이어가 게임 동안 쌓았던 인프라와 결과물들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이 두 측면만 놓고 본다면 문명 7의 지향점은 대단히 명확하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스노우볼링에 대한 개념을 분절화 시키고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플레이어가 좀 더 명확한 동기부여와 로드맵을 가지고 게임에 임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문명 7이다. 그리고 기존 인프라들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숙련된 플레이어들의 경우 보너스를 중첩시켜서 효율을 극대화하고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문명과 비슷한 부분들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문명 7은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물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문명 7은 '페이퍼 플랜' 위에서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문명 7의 문제는 변화가 너무 인위적이고 극단적인 부분에 기반하고 있고, 그것이 문명의 발전 노정에서 바라본다면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색하게 느낄만한 부분이 많다. 가령 고전 시대에서 대항해 시대(정확하게는 발견 시대지만)로 넘어갈 때, 어째서 플레이어는 고전 시대에는 바다 건너의 대륙을 항해해서 넘어갈 수 없는 것인가? 왜 시대의 마지막에는 항상 내 문명의 약점에 부합하는 위기가 찾아오는 것인가? 게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플레이의 핍진성 측면에서는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게임에서 종종 발생한다. 물론 기마궁병과 탱크가 동시대에 공존할 수 있는 게임 시리즈에서 현실 역사의 핍진성을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임이 삐걱거리지 않게끔 걸어둔 과속방지턱들이 때로 게임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문명 시리즈가 여지껏 추구해왔던 역사의 연속성과 문명 7의 방향성은 상당히 대치된다는 점이다. 문명 시리즈는 이전부터 골수 팬층이 많은 게임이었고, 팬들마다 최애 문명이 있어서 새 작품이 나오면 새 작품은 사지만 결국은 그 문명으로 돌아가는 경향성을 갖는 특이한 팬덤을 가진 게임이었다. 즉, 문명 시리즈는 쉽게 이야기해서 팬층의 보수성이 일반적인 게임 시리즈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게임의 완성도와 완전히 별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초반의 압도적인 부정적 평가는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명 7은 아직 본인들이 하고 싶은 부분들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게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우선 이러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 게임 내에서 내러티브를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문명류의 게임에서 랜덤 이벤트를 통해서 선택에 소소한 보너스를 주고 플레이어가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게끔 만드는게 관건인 부분인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내러티브가 심하게 약하다는 인상이 있다. 물론 완전히 SF 적 상상력으로 게임을 채워넣을 수 있는 스텔라리스의 랜덤 인카운터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문명다운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게임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크다. 문명은 확장팩으로 완성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명 7은 게임으로 기본이 부족한 부분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정찰병의 자동 정찰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정찰을 눌러줘야 한다던가, 유닛의 주요 조작 버튼을 아예 빼놓는다던가 숨긴다던가, 혹은 UI UX가 완전히 엉망진창이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들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위에 이야기한 부분들은 확장팩이나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이런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은 당장 처리하고 게임을 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행이도 파이락시스에서 해당 부분을 인지하게 빠르게 대처중에 있다지만, 애시당초에 이런 눈에 보이는 부분들은 해결하고 게임을 내는게 맞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내리자면 문명 7은 분명 노림수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도 해서 낸 작품이긴 하지만, 그 완성도가 다른 문명들(확장팩이 나오기 전 기준으로)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도 뭔가 나사가 한 둘 빠진 작품이다. 분명 잘 다듬어서 확장팩까지 낸다면 게임이 지금보다 반등할 여지는 충분히 있고, 새로운 문명 시리즈의 스탠다드가 될만한 여지가 있는 작품인 것도 맞지만, 너무 성급하게 미완성인 게임을 냈다는 인상이 없지않아 있다. 다소 기대를 내려놓고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작 문명을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액션 게임에 턴이 있다는 발상 자체는 처음 듣는 사람들이면 생소하겠지만, 액션 게임들을 오래해본 사람들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는 묘한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액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실시간으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행동의 단위가 분절되어 있는 턴제 게임과는 완전히 다르며, 즐기는 계층도 소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게임의 단위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분절하여 본다면 원자 단위에서 동일한 부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턴제 게임에서는 턴이라고 하는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단위를 이용하여 게임과 상호작용을 하여 액션 게임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보통 '행동'(공격이든 움직임이든 뭐든)을 함으로써 상호작용을 한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정해놓은 기회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는 턴제 게임과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플레이어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소비한다. 모든 행동들은 프레임 단위로 분절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행동을 했을 때 행동에 대한 애니메이션 프레임을 모두 완료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어는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즉 어떻게 본다면 플레이어는 유연한 단위인 시간이라는 범주에서 행동이 제약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간의 개념도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와 대상은 공간을 점유한다. 3차원의 게임 기준에서 본다면 공격 판정은 공간 내에서 특정 시간 동안만 유효한데, 이 판정이 상대에게 닿는가가 공격이 실제 유효한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공간 내에서 얼마나 상대와 근접할 것인지, 멀리있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도 시간보다는 좀 간접적이지만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액션 게임 내에서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적에게 접근하거나 거리를 벌리거나 하는 등의 기술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공간 역시 액션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유연한 자원 내에서 본다면 액션 게임에는 독특한 턴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공격 행동을 보자. 모든 공격 행동들의 프레임은 버튼을 눌렀을 때 준비 자세를 취하는 프레임, 그리고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마지막으로 공격을 마무리짓고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 프레임 내에서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것은 2번째 단계로 이 프레임을 공간 내에서 적에게 맞춰서 피해를 주는 것이 액션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액션 게임의 턴이 있다는 개념은 이 시공간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 명확해진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들이 시간이라는 시간표와 공간이라는 좌표평면 상에서 일종의 '비용'으로 작동한다. 한번 행동을 하게 되면 그만큼 시간을 소비하고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동시에 공격을 행할 시 생기는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공격을 헛쳤을 경우의 리스크는 매우 큰데, 게임 내에서 공격은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이후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무방비로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깊게 파고든다면 뒤의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을 취소하고 다음 액션으로 이어가는 캔슬 개념이 존재하거나, 적이 가드하고 있을 때 공격을 맞추면 일종의 징벌적 개념으로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더 길어지는 개념이 존재하는 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 헌터는 어떨까? 몬스터 헌터는 어떻게 본다면 액션 게임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액션 게임 장르에서 별의별 변칙적인 게임들이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몬스터 헌터는 근 25년의 역사 속에서 기본적인 골격은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 헌터의 기본 골격은 위에서 이야기한 시공간의 자원을 활용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액션 게임들과 비교해본다면 대단히 명확한데, 하나의 적을 두명이서 팬다는 아스트랄 체인 같은 게임이나 회피의 무적시간을 적의 공격과 겹칠 시 시간을 느리게 하여 프리딜 타임을 주는 베요네타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최근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정직한 시공간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치트키' 무기들을 주는 '하이퍼한 개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핵심이고, 몬스터 헌터는 플레이어에게 시공간 자원을 넘어서는 강력한 무기를 주지 않고 정직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헌터와 몬스터가 서로 턴을 주고 받는다는 게임의 흐름 상에서는 턴제 게임과 비교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몬스터 헌터다.

물론 액션 RPG로써 고전적인 게임 감성을 지니고 있는 소울류 게임이 득세하면서 역으로 큰 변화가 없는 몬스터 헌터 게임이 소울류와 비교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재밌는 점은 몬스터 헌터 게임들이 긴 역사속에서 요즘 액션 게임들과 다른 나름의 하이퍼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몬스터 헌터와 소울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공격에 스테미너가 소비되지 않는다(=공격이 또다른 자원을 소비하지 않는다)인데, 이 때문에 공격과 방어, 생존을 위해서 스테미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느린 페이스로 게임을 이끌어나가야하는 소울류와 달리 몬스터 헌터는 공격에 시공간 외의 자원을 소모하는게 거의 없기 때문에(특정 무기의 특정 기믹들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몬스터 헌터는 게임 내의 독특한 자원들을 추가하여서 턴을 주고 받는 페이스를 올리는 방법을 취한다. 몬헌에서 처음 이것이 등장한 것이 바로 필살기가 등장한 몬헌 크로스와 더블 크로스였다. 몬헌 트라이와 몬헌 4에서 몬헌 더블 크로스로 넘어갔을 때 이야기가 나온 몬헌다움이라는 개념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부분이 바로 이 필살기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과연 몬헌에 필살기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 몬헌다움에서 어긋나지 않을까가 핵심이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건랜스의 용격포나 대검의 모아치기 같은 일격필살 같은 기믹은 이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기믹의 과감한 변화라는 개념에서 연결지어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크로스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이후 몬헌들이 좀 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몬헌 라이즈는 월드와 다른 더블 크로스의 직계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필살기 개념들을 밧줄벌레라는 자원과 밧줄벌레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하였다. 재밌는 점은 낙법과 같은 개념들이 밧줄벌레와 함께 통합되었다는 점이고, 밧줄벌레가 필살기인 동시에 생존기(낙법)로 사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공격을 맞으면 맞을수록 생존기에 밧줄벌레를 써서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반면, 플레이어가 밧줄벌레를 써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하게 된다면 클리어 시간을 단축시키는 높은 리턴을 가진 부분이 된다는 점은 밧줄벌레라는 자원은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이후 나온 와일즈는 몬헌 라이즈의 밧줄벌레 같은 자원들은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라이즈 이전의 월드와 유사한 부분들을 많이 띄게 된 작품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몬헌 월드 아이스본에 있었던 상처 시스템을 좀 더 범용적인(과거에는 클러치 클로라는 기믹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와일즈에서는 일반 공격으로 생성할 수 있게 만든) 개념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라이즈나 이전 몬헌에서 만들어진 기믹들(몬스터 특정 위치에 마크가 찍히고 그 마크를 공격함으로써 이득을 본다)은 여전히 상처 시스템에 적용되는 부분이고, 밧줄벌레와 같은 자원은 없지만 몬스터의 턴을 무시하고 내 턴으로 가져오는 상쇄나 카운터 기능들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는 최근 몬헌 트렌드를 들고 왔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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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도시전설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괴이한 현상을 보는 주인공이 도시전설 해체센터라는 곳에서 일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오컬트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총 6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사건당 플레이 시간은 1시간 정도로 가격(1만 7천원 정도) 대비 해서 분량은 되는 편이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게임 자체는 상당히 루즈한 편인데, 우선 게임 오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틀린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다시 고르라고 그 자리에서 다시 고르게 시킴), 추리를 하는 요소가 선택지 고르기 밖에 없다. 그나마 좀 참신해 보이는 문장 만들기 퍼즐은 황금 우상 사건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황금 우상 사건에서 보여준 깊이있는 추리 과정이나 단계별 퍼즐 풀기 과정은 없다.

그렇기에 게임은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라기 보다는 플레이어 케릭터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비주얼 노벨류의 게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기본적으로 일직선 진행에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없다보니 그러하다. 하지만 비주얼 노벨 치고도 게임의 구조가 성기다는 인상을 강하다. 개별 스토리나 전체 스토리의 짜임새가 성긴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컬트를 다루는 게임에서 본격적인 추리 소설에서 볼법한 복잡한 트릭이나 이런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도시전설 해체 센터의 아쉬운 점은 이야기 구성이 하나의 패턴을 단조롭게 반복한다는데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첫번째 시나리오나 두번째 시나리오에서 게임의 흐름(오컬트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덮는 위장이며, 실제로 모든 것은 사람이 한 짓이다)을 눈치채버리면 세번째에서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이야기 흐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사건들을 아우르는 큰 플롯과 트릭이 밝혀질 때는 설마 하다가 실망까지 느껴버리게 되는데, 이는 게임이 ‘진실이냐 아니냐’라는 구도로 이야기를 짜버렸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여운이나 해석의 여지를 주기 보다는 뭔가 강제로 납득시켜버리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아쉬운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는 좋은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오컬트라는 것이 발생하는 ‘소문’으로부터 어떻게 ‘사건’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일관된 테마를 구축하려는 시도들이다. 게임은 소문으로부터 오컬트나 도시전설들이 등장하고, 그것에 어떻게 사람들이 소비하는지를 주요하게 다룬다(그리고 메인 시나리오의 핵심 소재기도 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2020년대에 맞게 SNS를 검색한다던가, 스트리밍 문화 등의 다양한 동시대적 요소를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개별 시나리오의 완성도나 이야기 흐름은 다소 반복적이라도 동시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1만 7천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무난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단, 이런 류의 게임에 대해서 많이 플레이 한 사람이라면 실망한 부분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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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발라트로는 포커의 룰에 기반하고 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하지만 장르의 조합만 본다면 호감이 갈만한 게임은 아니다.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운이 좌우하는 도박 게임(포커)에 무작위 변수로 돌아가는 규칙을 추가한다고?(로그라이크)’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본이 되는 포커 역시도 운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그 운을 통제하고 수 싸움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포커에는 카드의 족보라는 것이 있고, 그 족보에 따라서 승패를 가늠한다. 게임의 구체적인 룰에 따라 다르지만 총 52장의 카드 중 공개된 카드와 내가 들고 있는 카드, 상대가 갖고 있을거라 예상되는 카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나 돈을 걸건지 배팅 행위 등으로 쪼게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잘게 쪼게진 요소들을 살펴본다면, 포커는 단순히 ‘운’만으로 돌아가는 게임은 아니다. 물론 아무리 해도 내가 나쁜 패를 좋게 뒤집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나쁜 패가 들어와도 수비적으로 배팅을 하거나 그 판을 포기하는 등의 전략을 취해서 게임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발라트로는 가장 ‘포커’다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카드를 임의의 수만큼 내고, 낸 패가 어떤 족보냐에 따라서 점수를 딴다. 한 장만 내는 하이카드의 경우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게임 내에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까지만 구현이 되어 있다)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점수가 게임에서 제시하는 점수의 커트라인을 넘냐 안넘냐로 게임은 플레이를 평가한다. 포커 로그라이크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려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발라트로는 족보대로 점수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대단히 단순한 룰을 지닌 게임이다. 좀 더 극단적인 평가를 한다면 게임의 핵심 경험은 계산기를 갖고 노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발라트로의 무서운 점은 이 너무 단순한 게임의 규칙을 본질적인 부분에서 뒤틀었다는 것이다. 게임의 핵심은 커트라인을 넘는 점수를 내는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전략 대부분은 ‘어떤 패를 낼 것인가’ 라는 족보 맞추기보다도 ‘어떻게 하면 점수를 내는 규칙을 해킹할까’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라트로에서 점수를 내는 계산 공식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점수 = 칩(base) * (멀티플라이어(mult) * 배수(X))

게임에서 점수들은 기본적으로 족보마다 배정되어 있는 기본적인 베이스라인 점수 칩이 있고, 칩을 곱해주는 멀티플라이어와 칩과 멀티플라이어 계산이 끝난 뒤 계산을 하는 배수 계산으로 나뉘어져 있다.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족보의 복잡도에 따라서 점수 공식이 고정되지만, ‘조커’라는 카드를 통해서 이 공식을 비틀어서 점수를 족보 이상으로 뻥튀기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발라트로에서 조커 카드는 점수 계산 공식을 뒤트는,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이라 할 수 있는 요소다. 그야말로 조커 카드 답게, 계산식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줘서 점수를 뻥튀기 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단순하게 멀티플라이어에 +4를 더해주는 조커에서 특정 카드를 플레이할 때마다 멀티플라이어나 배수를 늘려주는 조커, 4장의 핸드로 스트레이트나 플러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조커 등등이 존재한다. 하나 하나가 게임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카드들이 많고, 그것을 조합해서 자신이 전략을 자유롭게 짜는 재미가 있다. 또한 조커 카드가 세트나 규칙이 아닌 카드 단위로 쪼게져 있다는 점도 발라트로의 매력인데, 카드 단위로 쪼게져 있는 만큼 조커 카드 규칙의 적용 순서 등에 영향을 받는 부분들이 있어서 독창적인 변수로 작용되는 부분들이 있다.

조커 외에도 게임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덱을 강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첫번째는 족보를 강화하는 요소다. 특정 족보를 레벨업 함으로 플레이어는 점수가 날 수 있는 베이스라인을 올릴 수 있다. 이 베이스라인은 조커보다는 덜 중요한 편이지만, 고난이도로 갈수록 점수의 체급을 키우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두번째는 특수카드의 존재들이다. 카드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지만, 카드의 배수를 올려주는 유리 카드, 카드의 칩/멀티플라이어를 올려주는 카드, 패에 있을 때 배수를 올려주는 강철 카드, 두번 트리거 되는 붉은 인장 등등 발라트로에는 다양한 카드들이 존재한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몇몇의 경우 특수카드들에 이러한 버프들이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이다:예를 유리카드에 카드가 두번 트리거링 되는 붉은 인장이 결합되서 카드 한장만으로 순식간에 배수를 2배에서 4배로 뻥튀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마지막 요소인 타로카드와 결합되면서 덱 구축에 큰 시너지를 내게 된다.

마지막 요소인 타로카드는 덱에 들어가는 카드를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등의 요소다. 발라트로에서는 덱에 들어가는 카드를 낱장으로 사서 추가할 수도 있지만, 타로 카드로 구하기 힘든 카드(유리 카드에 붉은 인장이 붙었다던가)를 복제하거나 그 수를 불릴 수도 있다. 구하기 힘든 카드들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타로카드의 강화버전인 아스트랄 카드 같은 것을 사용하면 한꺼번에 최대 10장 이상을 카드의 숫자나 문장을 바꾸는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발라트로 내에서 덱을 강화하는 요소들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로 나온 카드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요소들이다. 상황에 따라서 덱을 압축하거나 쓸모 없는 카드를 쓰는 카드로 덮어씌우는 등의 요소들은 덱압축을 통해 빠른 덱회전을 지향하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게임 플레이와 유사하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은 조커 외에도 플레이어가 덱을 구축할 때, 핸드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을 조작하는 여지를 만들어 주어서 거시적인 룰을 통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의 미시적인 요소들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발라트로가 플레이 측면에서 플레이어가 규칙과 덱을 뒤흔들 수 있게 만든 동시에, 게임 난이도 측면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만들었다. 발라트로는 한 스테이지가 3개의 라운드로 구성되어 있고, 2개의 일반 라운드와 1개의 보스라운드로 구성이 되었다. 당연히 게임이 진행될수록 요구하는 커트라인 점수가 올라가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커트라인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스 라운드의 구성이다. 발라트로의 보스 라운드는 특정 덱이나 조커 컨셉을 저격하는 규칙을 건다. 예를 들어서 단 한번의 핸드로만 승부를 본다던가, 패를 버릴 때마다 돈을 차감한다던가(발라트로에서 돈은 마이너스로 내려갈 수 있다) 등 잘못 건드리면 게임이 터지는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요구하는 점수가 낮은 저난이도 게임에서는 족보나 덱 구성으로 압살할 수 있지만, 고난이도에서는 이것조차 힘들어지는데 발라트로는 난이도가 올라갈 수록 덱 자체를 흠없이 짜는 팔방미인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 덱 컨셉에 반하는 보스를 회피하는 방법’을 취한다. 특히 후자는 다른 로그라이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법이다. 발라트로는 한 스테이지에 들어가면 첫 라운드부터 보스 라운드의 규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보스 라운드의 규칙을 보고 상점에서 바우처를 구매해서 보스 라운드를 회피하는 등의 액션을 취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발라트로의 게임 플레이는 근간이 되는 부분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규칙과 환경을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다루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보스 라운드를 통한 난이도 조절도 규칙을 바꿔서 접근하게 만들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에 나온 덱빌딩 로그라이크 류를 따지고 보았을 때, 아마도 최고의 게임으로 꼽을 수 있을정도로 잘 다듬어졌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남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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