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발라트로는 포커의 룰에 기반하고 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하지만 장르의 조합만 본다면 호감이 갈만한 게임은 아니다.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운이 좌우하는 도박 게임(포커)에 무작위 변수로 돌아가는 규칙을 추가한다고?(로그라이크)’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본이 되는 포커 역시도 운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그 운을 통제하고 수 싸움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포커에는 카드의 족보라는 것이 있고, 그 족보에 따라서 승패를 가늠한다. 게임의 구체적인 룰에 따라 다르지만 총 52장의 카드 중 공개된 카드와 내가 들고 있는 카드, 상대가 갖고 있을거라 예상되는 카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나 돈을 걸건지 배팅 행위 등으로 쪼게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잘게 쪼게진 요소들을 살펴본다면, 포커는 단순히 ‘운’만으로 돌아가는 게임은 아니다. 물론 아무리 해도 내가 나쁜 패를 좋게 뒤집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나쁜 패가 들어와도 수비적으로 배팅을 하거나 그 판을 포기하는 등의 전략을 취해서 게임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발라트로는 가장 ‘포커’다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카드를 임의의 수만큼 내고, 낸 패가 어떤 족보냐에 따라서 점수를 딴다. 한 장만 내는 하이카드의 경우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게임 내에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까지만 구현이 되어 있다)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점수가 게임에서 제시하는 점수의 커트라인을 넘냐 안넘냐로 게임은 플레이를 평가한다. 포커 로그라이크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려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발라트로는 족보대로 점수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대단히 단순한 룰을 지닌 게임이다. 좀 더 극단적인 평가를 한다면 게임의 핵심 경험은 계산기를 갖고 노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발라트로의 무서운 점은 이 너무 단순한 게임의 규칙을 본질적인 부분에서 뒤틀었다는 것이다. 게임의 핵심은 커트라인을 넘는 점수를 내는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전략 대부분은 ‘어떤 패를 낼 것인가’ 라는 족보 맞추기보다도 ‘어떻게 하면 점수를 내는 규칙을 해킹할까’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라트로에서 점수를 내는 계산 공식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점수 = 칩(base) * (멀티플라이어(mult) * 배수(X))

게임에서 점수들은 기본적으로 족보마다 배정되어 있는 기본적인 베이스라인 점수 칩이 있고, 칩을 곱해주는 멀티플라이어와 칩과 멀티플라이어 계산이 끝난 뒤 계산을 하는 배수 계산으로 나뉘어져 있다.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족보의 복잡도에 따라서 점수 공식이 고정되지만, ‘조커’라는 카드를 통해서 이 공식을 비틀어서 점수를 족보 이상으로 뻥튀기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발라트로에서 조커 카드는 점수 계산 공식을 뒤트는,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이라 할 수 있는 요소다. 그야말로 조커 카드 답게, 계산식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줘서 점수를 뻥튀기 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단순하게 멀티플라이어에 +4를 더해주는 조커에서 특정 카드를 플레이할 때마다 멀티플라이어나 배수를 늘려주는 조커, 4장의 핸드로 스트레이트나 플러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조커 등등이 존재한다. 하나 하나가 게임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카드들이 많고, 그것을 조합해서 자신이 전략을 자유롭게 짜는 재미가 있다. 또한 조커 카드가 세트나 규칙이 아닌 카드 단위로 쪼게져 있다는 점도 발라트로의 매력인데, 카드 단위로 쪼게져 있는 만큼 조커 카드 규칙의 적용 순서 등에 영향을 받는 부분들이 있어서 독창적인 변수로 작용되는 부분들이 있다.

조커 외에도 게임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덱을 강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첫번째는 족보를 강화하는 요소다. 특정 족보를 레벨업 함으로 플레이어는 점수가 날 수 있는 베이스라인을 올릴 수 있다. 이 베이스라인은 조커보다는 덜 중요한 편이지만, 고난이도로 갈수록 점수의 체급을 키우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두번째는 특수카드의 존재들이다. 카드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지만, 카드의 배수를 올려주는 유리 카드, 카드의 칩/멀티플라이어를 올려주는 카드, 패에 있을 때 배수를 올려주는 강철 카드, 두번 트리거 되는 붉은 인장 등등 발라트로에는 다양한 카드들이 존재한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몇몇의 경우 특수카드들에 이러한 버프들이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이다:예를 유리카드에 카드가 두번 트리거링 되는 붉은 인장이 결합되서 카드 한장만으로 순식간에 배수를 2배에서 4배로 뻥튀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마지막 요소인 타로카드와 결합되면서 덱 구축에 큰 시너지를 내게 된다.

마지막 요소인 타로카드는 덱에 들어가는 카드를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등의 요소다. 발라트로에서는 덱에 들어가는 카드를 낱장으로 사서 추가할 수도 있지만, 타로 카드로 구하기 힘든 카드(유리 카드에 붉은 인장이 붙었다던가)를 복제하거나 그 수를 불릴 수도 있다. 구하기 힘든 카드들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타로카드의 강화버전인 아스트랄 카드 같은 것을 사용하면 한꺼번에 최대 10장 이상을 카드의 숫자나 문장을 바꾸는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발라트로 내에서 덱을 강화하는 요소들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로 나온 카드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요소들이다. 상황에 따라서 덱을 압축하거나 쓸모 없는 카드를 쓰는 카드로 덮어씌우는 등의 요소들은 덱압축을 통해 빠른 덱회전을 지향하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게임 플레이와 유사하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은 조커 외에도 플레이어가 덱을 구축할 때, 핸드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을 조작하는 여지를 만들어 주어서 거시적인 룰을 통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의 미시적인 요소들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발라트로가 플레이 측면에서 플레이어가 규칙과 덱을 뒤흔들 수 있게 만든 동시에, 게임 난이도 측면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만들었다. 발라트로는 한 스테이지가 3개의 라운드로 구성되어 있고, 2개의 일반 라운드와 1개의 보스라운드로 구성이 되었다. 당연히 게임이 진행될수록 요구하는 커트라인 점수가 올라가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커트라인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스 라운드의 구성이다. 발라트로의 보스 라운드는 특정 덱이나 조커 컨셉을 저격하는 규칙을 건다. 예를 들어서 단 한번의 핸드로만 승부를 본다던가, 패를 버릴 때마다 돈을 차감한다던가(발라트로에서 돈은 마이너스로 내려갈 수 있다) 등 잘못 건드리면 게임이 터지는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요구하는 점수가 낮은 저난이도 게임에서는 족보나 덱 구성으로 압살할 수 있지만, 고난이도에서는 이것조차 힘들어지는데 발라트로는 난이도가 올라갈 수록 덱 자체를 흠없이 짜는 팔방미인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 덱 컨셉에 반하는 보스를 회피하는 방법’을 취한다. 특히 후자는 다른 로그라이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법이다. 발라트로는 한 스테이지에 들어가면 첫 라운드부터 보스 라운드의 규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보스 라운드의 규칙을 보고 상점에서 바우처를 구매해서 보스 라운드를 회피하는 등의 액션을 취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발라트로의 게임 플레이는 근간이 되는 부분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규칙과 환경을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다루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보스 라운드를 통한 난이도 조절도 규칙을 바꿔서 접근하게 만들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에 나온 덱빌딩 로그라이크 류를 따지고 보았을 때, 아마도 최고의 게임으로 꼽을 수 있을정도로 잘 다듬어졌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남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