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 만큼 본인에게 껄끄러운 글쓰기는 없을 것이다. 보통 시리즈 게임들은 게임이 제공해주는 코어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시리즈별로 나름의 정체성을 가미하는 작업들을 수행한다. 가령 예를 든다면 몬스터 헌터 와일즈에서는 오픈월드와 필드의 콘탠츠화라는 기믹을 게임에 집어넣기 위해서 기존 몬헌 시리즈의 정체성을 조정하는 작업을 해서, '이전 시리즈와 유사하지만 그래도 본작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수행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명 시리즈는 2편, 3편 이후로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 게임을 개선하거나 추가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의 변화점들이 '미세하지만 쌓이다보면 큰 영향이 가는 변화점'들이 많았는데, 가령 문명 5편에서 육각형 형태의 타일로 보드를 구성하는 점 등은 게임을 보는 문외한이 보았을 때는 미세한 변화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게임 근간을 뒤흔들었던(유닛의 움직임, 상대 유닛과의 대치 등등) 큰 변화였었다. 그렇기에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은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서 어떻게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기술해야하는 리뷰이므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다소 지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문명 7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러한 문명의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난 게임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문명이라는 핵심 경험을 두고 게임의 근간이 되는 베이스 기믹들(타일 모양, 종교나 사회제도, 정치 등등)에 변화를 두어 이를 쌓아 차별화된 시리즈를 만들었던 기존 문명 시리즈와 달리, '우리는 이런 게임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 위에서 모든 게임 요소들을 과감하게 조절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문명 7은 문명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단아적인 작품이 되었는데, 단순히 경쟁작인 휴먼카인드와 유사하다의 논쟁을 넘어서 문명이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는 문제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문명 7이 어떤 게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문명 7의 지향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문명 7은 문명에 입문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명이다.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은 한줌의 개척자에서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게 핵심적인 재미인 게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의 세부적인 요소들(불가사의, 종교, 사회 제도 등등)을 이용해서 문명의 확장과 발전을 뻥튀기 할 수 있는 부스팅과 스노우볼링을 해야하는데,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의 난점은 이 부스팅과 스노우볼링 단계에서 시스템이 다소 비직관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명 6의 특수 지구를 중첩하여 보너스를 쌓아서 스노우 볼링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잘 읽는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라 문명 특유의 스노우 볼링에 대한 이해도와 감각, 판단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유명 유튜버들의 플레이만 보고 따라한다고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이러다 보니 단순히 도시를 짓고 소소하게 문명을 올리다가 게임을 종료하는 것을 반복하는 플레이를 하는 초보자들이 문명 시리즈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 7의 방향성은 어떻게 본다면 '게임을 잘 아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을 시스템으로 다듬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문명이었다면 플레이어가 잘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몇십턴이 지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문명 7은 이것을 플레이어가 어떤식으로 게임을 플레이어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목표를 제시하고, 더 나아가서 그 행위에 대한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문명 7은 이러한 방향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두가지 측면에서 시스템을 구성하였다:첫번째 측면은 시대의 구성이다. 문명 7은 의도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분절하여 각 시대별로 시대별 목표를 제공하고. 기술의 발전을 통제하고 제한하며, 심지어는 군사나 정치 유닛의 배치까지도 바꾸는 초 강수를 뒀다. 예전 문명에서 시대는 연속성이 있게 구성되어 있었고, 플레이어의 슈퍼 플레이에 따라서 상대 플레이어는 기마궁수로 놀고 있는 동안 나는 탱크 몰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게임 플레이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물론 시대가 바뀔 때마다 게임의 목표나 유닛의 배치, 발전 상태 등 다양한 것들이 리셋되기는 하지만 후술할 목표 시스템 측면과 맞물리면서 각 시대별로 잘한 것에 대한 일종의 '유산'을 남기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두번째 측면은 목표와 네러티브의 제공이다. 기존 문명에서는 게임의 최종 목표(정복이든, 우주선 탈출이든 간에)를 제외한다면 플레이어가 게임 중간에 얼마나 게임을 잘했는지, 목표에 부합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중간 지표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명 7에서는 각 시대마다 군사, 종교, 상업 등의 목표를 제공해주고, 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누적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즉, 플레이어의 행위가 전통이라 하는 소버프들로 이어지고, 이것이 플레이어가 게임 동안 쌓았던 인프라와 결과물들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이 두 측면만 놓고 본다면 문명 7의 지향점은 대단히 명확하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스노우볼링에 대한 개념을 분절화 시키고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플레이어가 좀 더 명확한 동기부여와 로드맵을 가지고 게임에 임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문명 7이다. 그리고 기존 인프라들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숙련된 플레이어들의 경우 보너스를 중첩시켜서 효율을 극대화하고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문명과 비슷한 부분들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문명 7은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물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문명 7은 '페이퍼 플랜' 위에서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문명 7의 문제는 변화가 너무 인위적이고 극단적인 부분에 기반하고 있고, 그것이 문명의 발전 노정에서 바라본다면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색하게 느낄만한 부분이 많다. 가령 고전 시대에서 대항해 시대(정확하게는 발견 시대지만)로 넘어갈 때, 어째서 플레이어는 고전 시대에는 바다 건너의 대륙을 항해해서 넘어갈 수 없는 것인가? 왜 시대의 마지막에는 항상 내 문명의 약점에 부합하는 위기가 찾아오는 것인가? 게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플레이의 핍진성 측면에서는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게임에서 종종 발생한다. 물론 기마궁병과 탱크가 동시대에 공존할 수 있는 게임 시리즈에서 현실 역사의 핍진성을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임이 삐걱거리지 않게끔 걸어둔 과속방지턱들이 때로 게임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문명 시리즈가 여지껏 추구해왔던 역사의 연속성과 문명 7의 방향성은 상당히 대치된다는 점이다. 문명 시리즈는 이전부터 골수 팬층이 많은 게임이었고, 팬들마다 최애 문명이 있어서 새 작품이 나오면 새 작품은 사지만 결국은 그 문명으로 돌아가는 경향성을 갖는 특이한 팬덤을 가진 게임이었다. 즉, 문명 시리즈는 쉽게 이야기해서 팬층의 보수성이 일반적인 게임 시리즈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게임의 완성도와 완전히 별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초반의 압도적인 부정적 평가는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명 7은 아직 본인들이 하고 싶은 부분들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게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우선 이러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 게임 내에서 내러티브를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문명류의 게임에서 랜덤 이벤트를 통해서 선택에 소소한 보너스를 주고 플레이어가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게끔 만드는게 관건인 부분인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내러티브가 심하게 약하다는 인상이 있다. 물론 완전히 SF 적 상상력으로 게임을 채워넣을 수 있는 스텔라리스의 랜덤 인카운터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문명다운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게임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크다. 문명은 확장팩으로 완성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명 7은 게임으로 기본이 부족한 부분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정찰병의 자동 정찰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정찰을 눌러줘야 한다던가, 유닛의 주요 조작 버튼을 아예 빼놓는다던가 숨긴다던가, 혹은 UI UX가 완전히 엉망진창이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들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위에 이야기한 부분들은 확장팩이나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이런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은 당장 처리하고 게임을 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행이도 파이락시스에서 해당 부분을 인지하게 빠르게 대처중에 있다지만, 애시당초에 이런 눈에 보이는 부분들은 해결하고 게임을 내는게 맞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내리자면 문명 7은 분명 노림수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도 해서 낸 작품이긴 하지만, 그 완성도가 다른 문명들(확장팩이 나오기 전 기준으로)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도 뭔가 나사가 한 둘 빠진 작품이다. 분명 잘 다듬어서 확장팩까지 낸다면 게임이 지금보다 반등할 여지는 충분히 있고, 새로운 문명 시리즈의 스탠다드가 될만한 여지가 있는 작품인 것도 맞지만, 너무 성급하게 미완성인 게임을 냈다는 인상이 없지않아 있다. 다소 기대를 내려놓고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작 문명을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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