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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 만큼 본인에게 껄끄러운 글쓰기는 없을 것이다. 보통 시리즈 게임들은 게임이 제공해주는 코어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시리즈별로 나름의 정체성을 가미하는 작업들을 수행한다. 가령 예를 든다면 몬스터 헌터 와일즈에서는 오픈월드와 필드의 콘탠츠화라는 기믹을 게임에 집어넣기 위해서 기존 몬헌 시리즈의 정체성을 조정하는 작업을 해서, '이전 시리즈와 유사하지만 그래도 본작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수행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명 시리즈는 2편, 3편 이후로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 게임을 개선하거나 추가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의 변화점들이 '미세하지만 쌓이다보면 큰 영향이 가는 변화점'들이 많았는데, 가령 문명 5편에서 육각형 형태의 타일로 보드를 구성하는 점 등은 게임을 보는 문외한이 보았을 때는 미세한 변화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게임 근간을 뒤흔들었던(유닛의 움직임, 상대 유닛과의 대치 등등) 큰 변화였었다. 그렇기에 문명 시리즈를 리뷰한다는 것은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서 어떻게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기술해야하는 리뷰이므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다소 지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문명 7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러한 문명의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난 게임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문명이라는 핵심 경험을 두고 게임의 근간이 되는 베이스 기믹들(타일 모양, 종교나 사회제도, 정치 등등)에 변화를 두어 이를 쌓아 차별화된 시리즈를 만들었던 기존 문명 시리즈와 달리, '우리는 이런 게임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 위에서 모든 게임 요소들을 과감하게 조절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문명 7은 문명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이단아적인 작품이 되었는데, 단순히 경쟁작인 휴먼카인드와 유사하다의 논쟁을 넘어서 문명이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는 문제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문명 7이 어떤 게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문명 7의 지향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문명 7은 문명에 입문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명이다.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은 한줌의 개척자에서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게 핵심적인 재미인 게임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의 세부적인 요소들(불가사의, 종교, 사회 제도 등등)을 이용해서 문명의 확장과 발전을 뻥튀기 할 수 있는 부스팅과 스노우볼링을 해야하는데, 기존의 문명 시리즈들의 난점은 이 부스팅과 스노우볼링 단계에서 시스템이 다소 비직관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명 6의 특수 지구를 중첩하여 보너스를 쌓아서 스노우 볼링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잘 읽는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라 문명 특유의 스노우 볼링에 대한 이해도와 감각, 판단 등이 함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유명 유튜버들의 플레이만 보고 따라한다고 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이러다 보니 단순히 도시를 짓고 소소하게 문명을 올리다가 게임을 종료하는 것을 반복하는 플레이를 하는 초보자들이 문명 시리즈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 7의 방향성은 어떻게 본다면 '게임을 잘 아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을 시스템으로 다듬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문명이었다면 플레이어가 잘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몇십턴이 지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문명 7은 이것을 플레이어가 어떤식으로 게임을 플레이어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목표를 제시하고, 더 나아가서 그 행위에 대한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게임을 구성하였다.

문명 7은 이러한 방향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두가지 측면에서 시스템을 구성하였다:첫번째 측면은 시대의 구성이다. 문명 7은 의도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분절하여 각 시대별로 시대별 목표를 제공하고. 기술의 발전을 통제하고 제한하며, 심지어는 군사나 정치 유닛의 배치까지도 바꾸는 초 강수를 뒀다. 예전 문명에서 시대는 연속성이 있게 구성되어 있었고, 플레이어의 슈퍼 플레이에 따라서 상대 플레이어는 기마궁수로 놀고 있는 동안 나는 탱크 몰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게임 플레이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물론 시대가 바뀔 때마다 게임의 목표나 유닛의 배치, 발전 상태 등 다양한 것들이 리셋되기는 하지만 후술할 목표 시스템 측면과 맞물리면서 각 시대별로 잘한 것에 대한 일종의 '유산'을 남기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두번째 측면은 목표와 네러티브의 제공이다. 기존 문명에서는 게임의 최종 목표(정복이든, 우주선 탈출이든 간에)를 제외한다면 플레이어가 게임 중간에 얼마나 게임을 잘했는지, 목표에 부합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중간 지표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명 7에서는 각 시대마다 군사, 종교, 상업 등의 목표를 제공해주고, 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누적해서 얻을 수 있는 보너스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즉, 플레이어의 행위가 전통이라 하는 소버프들로 이어지고, 이것이 플레이어가 게임 동안 쌓았던 인프라와 결과물들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렇기에 이 두 측면만 놓고 본다면 문명 7의 지향점은 대단히 명확하다.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스노우볼링에 대한 개념을 분절화 시키고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플레이어가 좀 더 명확한 동기부여와 로드맵을 가지고 게임에 임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문명 7이다. 그리고 기존 인프라들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숙련된 플레이어들의 경우 보너스를 중첩시켜서 효율을 극대화하고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문명과 비슷한 부분들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문명 7은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물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문명 7은 '페이퍼 플랜' 위에서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문명 7의 문제는 변화가 너무 인위적이고 극단적인 부분에 기반하고 있고, 그것이 문명의 발전 노정에서 바라본다면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색하게 느낄만한 부분이 많다. 가령 고전 시대에서 대항해 시대(정확하게는 발견 시대지만)로 넘어갈 때, 어째서 플레이어는 고전 시대에는 바다 건너의 대륙을 항해해서 넘어갈 수 없는 것인가? 왜 시대의 마지막에는 항상 내 문명의 약점에 부합하는 위기가 찾아오는 것인가? 게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플레이의 핍진성 측면에서는 다소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게임에서 종종 발생한다. 물론 기마궁병과 탱크가 동시대에 공존할 수 있는 게임 시리즈에서 현실 역사의 핍진성을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임이 삐걱거리지 않게끔 걸어둔 과속방지턱들이 때로 게임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문명 시리즈가 여지껏 추구해왔던 역사의 연속성과 문명 7의 방향성은 상당히 대치된다는 점이다. 문명 시리즈는 이전부터 골수 팬층이 많은 게임이었고, 팬들마다 최애 문명이 있어서 새 작품이 나오면 새 작품은 사지만 결국은 그 문명으로 돌아가는 경향성을 갖는 특이한 팬덤을 가진 게임이었다. 즉, 문명 시리즈는 쉽게 이야기해서 팬층의 보수성이 일반적인 게임 시리즈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게임의 완성도와 완전히 별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초반의 압도적인 부정적 평가는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명 7은 아직 본인들이 하고 싶은 부분들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게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우선 이러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 게임 내에서 내러티브를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문명류의 게임에서 랜덤 이벤트를 통해서 선택에 소소한 보너스를 주고 플레이어가 스노우볼링을 굴릴 수 있게끔 만드는게 관건인 부분인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내러티브가 심하게 약하다는 인상이 있다. 물론 완전히 SF 적 상상력으로 게임을 채워넣을 수 있는 스텔라리스의 랜덤 인카운터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문명다운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게임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크다. 문명은 확장팩으로 완성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명 7은 게임으로 기본이 부족한 부분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정찰병의 자동 정찰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정찰을 눌러줘야 한다던가, 유닛의 주요 조작 버튼을 아예 빼놓는다던가 숨긴다던가, 혹은 UI UX가 완전히 엉망진창이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들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위에 이야기한 부분들은 확장팩이나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이런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들은 당장 처리하고 게임을 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행이도 파이락시스에서 해당 부분을 인지하게 빠르게 대처중에 있다지만, 애시당초에 이런 눈에 보이는 부분들은 해결하고 게임을 내는게 맞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내리자면 문명 7은 분명 노림수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도 해서 낸 작품이긴 하지만, 그 완성도가 다른 문명들(확장팩이 나오기 전 기준으로)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도 뭔가 나사가 한 둘 빠진 작품이다. 분명 잘 다듬어서 확장팩까지 낸다면 게임이 지금보다 반등할 여지는 충분히 있고, 새로운 문명 시리즈의 스탠다드가 될만한 여지가 있는 작품인 것도 맞지만, 너무 성급하게 미완성인 게임을 냈다는 인상이 없지않아 있다. 다소 기대를 내려놓고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작 문명을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게임 이야기

 

액션 게임에 턴이 있다는 발상 자체는 처음 듣는 사람들이면 생소하겠지만, 액션 게임들을 오래해본 사람들이라면 이해를 할 수 있는 묘한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액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실시간으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행동의 단위가 분절되어 있는 턴제 게임과는 완전히 다르며, 즐기는 계층도 소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게임의 단위를 가장 작은 단위까지 분절하여 본다면 원자 단위에서 동일한 부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턴제 게임에서는 턴이라고 하는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단위를 이용하여 게임과 상호작용을 하여 액션 게임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보통 '행동'(공격이든 움직임이든 뭐든)을 함으로써 상호작용을 한다.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이 정해놓은 기회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는 턴제 게임과는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액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플레이어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소비한다. 모든 행동들은 프레임 단위로 분절되어 있고, 플레이어가 행동을 했을 때 행동에 대한 애니메이션 프레임을 모두 완료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어는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즉 어떻게 본다면 플레이어는 유연한 단위인 시간이라는 범주에서 행동이 제약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간의 개념도 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와 대상은 공간을 점유한다. 3차원의 게임 기준에서 본다면 공격 판정은 공간 내에서 특정 시간 동안만 유효한데, 이 판정이 상대에게 닿는가가 공격이 실제 유효한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공간 내에서 얼마나 상대와 근접할 것인지, 멀리있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도 시간보다는 좀 간접적이지만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액션 게임 내에서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적에게 접근하거나 거리를 벌리거나 하는 등의 기술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공간 역시 액션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이라는 유연한 자원 내에서 본다면 액션 게임에는 독특한 턴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공격 행동을 보자. 모든 공격 행동들의 프레임은 버튼을 눌렀을 때 준비 자세를 취하는 프레임, 그리고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마지막으로 공격을 마무리짓고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 프레임 내에서 실제 공격 판정이 나오는 것은 2번째 단계로 이 프레임을 공간 내에서 적에게 맞춰서 피해를 주는 것이 액션 게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액션 게임의 턴이 있다는 개념은 이 시공간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 명확해진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들이 시간이라는 시간표와 공간이라는 좌표평면 상에서 일종의 '비용'으로 작동한다. 한번 행동을 하게 되면 그만큼 시간을 소비하고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동시에 공격을 행할 시 생기는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공격을 헛쳤을 경우의 리스크는 매우 큰데, 게임 내에서 공격은 공격 판정이 나오는 프레임 이후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무방비로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깊게 파고든다면 뒤의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을 취소하고 다음 액션으로 이어가는 캔슬 개념이 존재하거나, 적이 가드하고 있을 때 공격을 맞추면 일종의 징벌적 개념으로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프레임이 더 길어지는 개념이 존재하는 등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 헌터는 어떨까? 몬스터 헌터는 어떻게 본다면 액션 게임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액션 게임 장르에서 별의별 변칙적인 게임들이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몬스터 헌터는 근 25년의 역사 속에서 기본적인 골격은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 헌터의 기본 골격은 위에서 이야기한 시공간의 자원을 활용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액션 게임들과 비교해본다면 대단히 명확한데, 하나의 적을 두명이서 팬다는 아스트랄 체인 같은 게임이나 회피의 무적시간을 적의 공격과 겹칠 시 시간을 느리게 하여 프리딜 타임을 주는 베요네타 같은 게임들과 비교하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최근 게임들은 플레이어에게 정직한 시공간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치트키' 무기들을 주는 '하이퍼한 개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핵심이고, 몬스터 헌터는 플레이어에게 시공간 자원을 넘어서는 강력한 무기를 주지 않고 정직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헌터와 몬스터가 서로 턴을 주고 받는다는 게임의 흐름 상에서는 턴제 게임과 비교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몬스터 헌터다.

물론 액션 RPG로써 고전적인 게임 감성을 지니고 있는 소울류 게임이 득세하면서 역으로 큰 변화가 없는 몬스터 헌터 게임이 소울류와 비교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재밌는 점은 몬스터 헌터 게임들이 긴 역사속에서 요즘 액션 게임들과 다른 나름의 하이퍼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몬스터 헌터와 소울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공격에 스테미너가 소비되지 않는다(=공격이 또다른 자원을 소비하지 않는다)인데, 이 때문에 공격과 방어, 생존을 위해서 스테미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느린 페이스로 게임을 이끌어나가야하는 소울류와 달리 몬스터 헌터는 공격에 시공간 외의 자원을 소모하는게 거의 없기 때문에(특정 무기의 특정 기믹들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몬스터 헌터는 게임 내의 독특한 자원들을 추가하여서 턴을 주고 받는 페이스를 올리는 방법을 취한다. 몬헌에서 처음 이것이 등장한 것이 바로 필살기가 등장한 몬헌 크로스와 더블 크로스였다. 몬헌 트라이와 몬헌 4에서 몬헌 더블 크로스로 넘어갔을 때 이야기가 나온 몬헌다움이라는 개념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부분이 바로 이 필살기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과연 몬헌에 필살기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 몬헌다움에서 어긋나지 않을까가 핵심이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건랜스의 용격포나 대검의 모아치기 같은 일격필살 같은 기믹은 이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기믹의 과감한 변화라는 개념에서 연결지어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크로스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이후 몬헌들이 좀 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몬헌 라이즈는 월드와 다른 더블 크로스의 직계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필살기 개념들을 밧줄벌레라는 자원과 밧줄벌레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하였다. 재밌는 점은 낙법과 같은 개념들이 밧줄벌레와 함께 통합되었다는 점이고, 밧줄벌레가 필살기인 동시에 생존기(낙법)로 사용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공격을 맞으면 맞을수록 생존기에 밧줄벌레를 써서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반면, 플레이어가 밧줄벌레를 써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하게 된다면 클리어 시간을 단축시키는 높은 리턴을 가진 부분이 된다는 점은 밧줄벌레라는 자원은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이후 나온 와일즈는 몬헌 라이즈의 밧줄벌레 같은 자원들은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라이즈 이전의 월드와 유사한 부분들을 많이 띄게 된 작품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몬헌 월드 아이스본에 있었던 상처 시스템을 좀 더 범용적인(과거에는 클러치 클로라는 기믹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와일즈에서는 일반 공격으로 생성할 수 있게 만든) 개념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라이즈나 이전 몬헌에서 만들어진 기믹들(몬스터 특정 위치에 마크가 찍히고 그 마크를 공격함으로써 이득을 본다)은 여전히 상처 시스템에 적용되는 부분이고, 밧줄벌레와 같은 자원은 없지만 몬스터의 턴을 무시하고 내 턴으로 가져오는 상쇄나 카운터 기능들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는 최근 몬헌 트렌드를 들고 왔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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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도시전설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괴이한 현상을 보는 주인공이 도시전설 해체센터라는 곳에서 일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오컬트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총 6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사건당 플레이 시간은 1시간 정도로 가격(1만 7천원 정도) 대비 해서 분량은 되는 편이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게임 자체는 상당히 루즈한 편인데, 우선 게임 오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틀린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다시 고르라고 그 자리에서 다시 고르게 시킴), 추리를 하는 요소가 선택지 고르기 밖에 없다. 그나마 좀 참신해 보이는 문장 만들기 퍼즐은 황금 우상 사건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황금 우상 사건에서 보여준 깊이있는 추리 과정이나 단계별 퍼즐 풀기 과정은 없다.

그렇기에 게임은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라기 보다는 플레이어 케릭터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비주얼 노벨류의 게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기본적으로 일직선 진행에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없다보니 그러하다. 하지만 비주얼 노벨 치고도 게임의 구조가 성기다는 인상을 강하다. 개별 스토리나 전체 스토리의 짜임새가 성긴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컬트를 다루는 게임에서 본격적인 추리 소설에서 볼법한 복잡한 트릭이나 이런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도시전설 해체 센터의 아쉬운 점은 이야기 구성이 하나의 패턴을 단조롭게 반복한다는데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첫번째 시나리오나 두번째 시나리오에서 게임의 흐름(오컬트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덮는 위장이며, 실제로 모든 것은 사람이 한 짓이다)을 눈치채버리면 세번째에서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이야기 흐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사건들을 아우르는 큰 플롯과 트릭이 밝혀질 때는 설마 하다가 실망까지 느껴버리게 되는데, 이는 게임이 ‘진실이냐 아니냐’라는 구도로 이야기를 짜버렸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여운이나 해석의 여지를 주기 보다는 뭔가 강제로 납득시켜버리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아쉬운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는 좋은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오컬트라는 것이 발생하는 ‘소문’으로부터 어떻게 ‘사건’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일관된 테마를 구축하려는 시도들이다. 게임은 소문으로부터 오컬트나 도시전설들이 등장하고, 그것에 어떻게 사람들이 소비하는지를 주요하게 다룬다(그리고 메인 시나리오의 핵심 소재기도 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2020년대에 맞게 SNS를 검색한다던가, 스트리밍 문화 등의 다양한 동시대적 요소를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개별 시나리오의 완성도나 이야기 흐름은 다소 반복적이라도 동시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1만 7천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무난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단, 이런 류의 게임에 대해서 많이 플레이 한 사람이라면 실망한 부분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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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발라트로는 포커의 룰에 기반하고 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하지만 장르의 조합만 본다면 호감이 갈만한 게임은 아니다.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운이 좌우하는 도박 게임(포커)에 무작위 변수로 돌아가는 규칙을 추가한다고?(로그라이크)’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본이 되는 포커 역시도 운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그 운을 통제하고 수 싸움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포커에는 카드의 족보라는 것이 있고, 그 족보에 따라서 승패를 가늠한다. 게임의 구체적인 룰에 따라 다르지만 총 52장의 카드 중 공개된 카드와 내가 들고 있는 카드, 상대가 갖고 있을거라 예상되는 카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나 돈을 걸건지 배팅 행위 등으로 쪼게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잘게 쪼게진 요소들을 살펴본다면, 포커는 단순히 ‘운’만으로 돌아가는 게임은 아니다. 물론 아무리 해도 내가 나쁜 패를 좋게 뒤집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나쁜 패가 들어와도 수비적으로 배팅을 하거나 그 판을 포기하는 등의 전략을 취해서 게임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발라트로는 가장 ‘포커’다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카드를 임의의 수만큼 내고, 낸 패가 어떤 족보냐에 따라서 점수를 딴다. 한 장만 내는 하이카드의 경우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게임 내에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까지만 구현이 되어 있다)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점수가 게임에서 제시하는 점수의 커트라인을 넘냐 안넘냐로 게임은 플레이를 평가한다. 포커 로그라이크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려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발라트로는 족보대로 점수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대단히 단순한 룰을 지닌 게임이다. 좀 더 극단적인 평가를 한다면 게임의 핵심 경험은 계산기를 갖고 노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발라트로의 무서운 점은 이 너무 단순한 게임의 규칙을 본질적인 부분에서 뒤틀었다는 것이다. 게임의 핵심은 커트라인을 넘는 점수를 내는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전략 대부분은 ‘어떤 패를 낼 것인가’ 라는 족보 맞추기보다도 ‘어떻게 하면 점수를 내는 규칙을 해킹할까’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라트로에서 점수를 내는 계산 공식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점수 = 칩(base) * (멀티플라이어(mult) * 배수(X))

게임에서 점수들은 기본적으로 족보마다 배정되어 있는 기본적인 베이스라인 점수 칩이 있고, 칩을 곱해주는 멀티플라이어와 칩과 멀티플라이어 계산이 끝난 뒤 계산을 하는 배수 계산으로 나뉘어져 있다.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족보의 복잡도에 따라서 점수 공식이 고정되지만, ‘조커’라는 카드를 통해서 이 공식을 비틀어서 점수를 족보 이상으로 뻥튀기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발라트로에서 조커 카드는 점수 계산 공식을 뒤트는, 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이라 할 수 있는 요소다. 그야말로 조커 카드 답게, 계산식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줘서 점수를 뻥튀기 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단순하게 멀티플라이어에 +4를 더해주는 조커에서 특정 카드를 플레이할 때마다 멀티플라이어나 배수를 늘려주는 조커, 4장의 핸드로 스트레이트나 플러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조커 등등이 존재한다. 하나 하나가 게임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카드들이 많고, 그것을 조합해서 자신이 전략을 자유롭게 짜는 재미가 있다. 또한 조커 카드가 세트나 규칙이 아닌 카드 단위로 쪼게져 있다는 점도 발라트로의 매력인데, 카드 단위로 쪼게져 있는 만큼 조커 카드 규칙의 적용 순서 등에 영향을 받는 부분들이 있어서 독창적인 변수로 작용되는 부분들이 있다.

조커 외에도 게임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덱을 강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첫번째는 족보를 강화하는 요소다. 특정 족보를 레벨업 함으로 플레이어는 점수가 날 수 있는 베이스라인을 올릴 수 있다. 이 베이스라인은 조커보다는 덜 중요한 편이지만, 고난이도로 갈수록 점수의 체급을 키우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두번째는 특수카드의 존재들이다. 카드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지만, 카드의 배수를 올려주는 유리 카드, 카드의 칩/멀티플라이어를 올려주는 카드, 패에 있을 때 배수를 올려주는 강철 카드, 두번 트리거 되는 붉은 인장 등등 발라트로에는 다양한 카드들이 존재한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몇몇의 경우 특수카드들에 이러한 버프들이 중첩될 수 있다는 것이다:예를 유리카드에 카드가 두번 트리거링 되는 붉은 인장이 결합되서 카드 한장만으로 순식간에 배수를 2배에서 4배로 뻥튀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마지막 요소인 타로카드와 결합되면서 덱 구축에 큰 시너지를 내게 된다.

마지막 요소인 타로카드는 덱에 들어가는 카드를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등의 요소다. 발라트로에서는 덱에 들어가는 카드를 낱장으로 사서 추가할 수도 있지만, 타로 카드로 구하기 힘든 카드(유리 카드에 붉은 인장이 붙었다던가)를 복제하거나 그 수를 불릴 수도 있다. 구하기 힘든 카드들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타로카드의 강화버전인 아스트랄 카드 같은 것을 사용하면 한꺼번에 최대 10장 이상을 카드의 숫자나 문장을 바꾸는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발라트로 내에서 덱을 강화하는 요소들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로 나온 카드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요소들이다. 상황에 따라서 덱을 압축하거나 쓸모 없는 카드를 쓰는 카드로 덮어씌우는 등의 요소들은 덱압축을 통해 빠른 덱회전을 지향하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게임 플레이와 유사하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은 조커 외에도 플레이어가 덱을 구축할 때, 핸드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을 조작하는 여지를 만들어 주어서 거시적인 룰을 통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의 미시적인 요소들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발라트로가 플레이 측면에서 플레이어가 규칙과 덱을 뒤흔들 수 있게 만든 동시에, 게임 난이도 측면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만들었다. 발라트로는 한 스테이지가 3개의 라운드로 구성되어 있고, 2개의 일반 라운드와 1개의 보스라운드로 구성이 되었다. 당연히 게임이 진행될수록 요구하는 커트라인 점수가 올라가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커트라인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스 라운드의 구성이다. 발라트로의 보스 라운드는 특정 덱이나 조커 컨셉을 저격하는 규칙을 건다. 예를 들어서 단 한번의 핸드로만 승부를 본다던가, 패를 버릴 때마다 돈을 차감한다던가(발라트로에서 돈은 마이너스로 내려갈 수 있다) 등 잘못 건드리면 게임이 터지는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요구하는 점수가 낮은 저난이도 게임에서는 족보나 덱 구성으로 압살할 수 있지만, 고난이도에서는 이것조차 힘들어지는데 발라트로는 난이도가 올라갈 수록 덱 자체를 흠없이 짜는 팔방미인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 덱 컨셉에 반하는 보스를 회피하는 방법’을 취한다. 특히 후자는 다른 로그라이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법이다. 발라트로는 한 스테이지에 들어가면 첫 라운드부터 보스 라운드의 규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보스 라운드의 규칙을 보고 상점에서 바우처를 구매해서 보스 라운드를 회피하는 등의 액션을 취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발라트로의 게임 플레이는 근간이 되는 부분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규칙과 환경을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다루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보스 라운드를 통한 난이도 조절도 규칙을 바꿔서 접근하게 만들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 이후에 나온 덱빌딩 로그라이크 류를 따지고 보았을 때, 아마도 최고의 게임으로 꼽을 수 있을정도로 잘 다듬어졌으며, 앞으로 오랫동안 남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용과 같이 7은 용과 같이 시리즈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야쿠자와 인협물의 양식에서 도시 변두리 삶을 다루는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컨셉의 변화를 꾀하고, 더 나아가서 액션이 아니라 RPG 장르로 넘어간 부분 등에서 7은 다른 거대 게임 프랜차이즈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들을 하였고 또한 성공하였다. 이제 용과 같이 시리즈는 나이가 든 어른들을 위한 드래곤 퀘스트가 되었다. 어린 시절 플레이했었던 RPG의 추억과 찌들어버린 현실의 사이에서 용과 같이 7은 게임적 허용과 유희라는 얇은 필터를 씌워두었다. 기존 용과 같이 시리즈가 프랜차이즈가 커지면서 그러한 요소들을 늘리면서 외연적인 확장을 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7의 변화는 그러한 외연적인 확장이 용과 같이의 정체성이라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용과 같이 8은 그러한 정체성이 과연 ‘다른 나라의 시장에서도 먹힐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게임이었다. 물론 7의 성공이 전세계적인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분명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외연을 더 비틀어서 확장할 수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8편이 시도한 것은 ‘일본이 아닌 곳에서도 과연 용과 같이가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리고 8편의 외연 확장은 성공적이었다.

용과 같이 8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갖는 대도시의 어둠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상력에 기반한 게임이다. 범죄와 일탈, 욕망 등을 게임 단위에서 적절하게 뒤틀어서 표현하였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시야를 벗어난 변두리에서는 어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완전히 실존하지 않는 판타지 세상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세상에서 ‘분명히 실존함을 느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일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용과 같이는 그것을 통속 드라마의 감수성에 기반하여 표현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그 통속 드라마의 감수성과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편견과 비일상에 대한 묘한 동경으로 일그러진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도덕에 대한 기준을 붙잡고 묘사를 하려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천박함과 도덕적인 기준 선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용과 같이 8은 분명 재밌는 게임이지만 스토리 상 몇몇 심각한 단점도 존재한다. 그것은 2인 주인공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크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작품은 키류의 은퇴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키류가 사라지기 전 키류에게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 용과 같이 8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용과 같이 8에서 가장 큰 문제는 2인 주인공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키류의 비중이 너무 커서 카스가의 비중이 다소 잡아먹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따져본다면, 용과 같이 8의 문제는 카스가의 새출발을 위해서 ‘카스가가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 안티 테제’를 만든 것이 문제다. 7편부터 이어져 오는 카스가의 논리와 강점을 태생에서부터 정면으로 반박하는 존재가 8편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카스가가 반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서 그것을 키류가 대신 끌어안고 사라짐으로 카스가를 미래로 보낸다는 것이 8편의 주요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안티 테제의 존재가 카스가 쪽의 이야기 개입을 철저하게 차단할 정도로 절대적이기 때문에 키류의 이야기 비중과 해결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몇몇 케릭터나 이야기의 작위성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원래 용과 같이 시리즈가 그런 부분에서 강점이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통속성에 기반한 소프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에 다소 어거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강렬한 인상을 제공한다면 그렇게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과 같이 8의 스토리 문제는 대부분 키류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억지로 카스가가 반박할 수 없는 무적의 빌런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 가장 크다.

물론 용과 같이 8은 그런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만한 작품이긴 하다. 무엇보다 10~20대의 젊은 사람들을 타게팅한 판타지 RPG 류와 달리 현실에 찌들고 성숙하지만 동시에 꿈에 부풀어있는 RPG란 희귀하고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나이든 플레이어들에게 용과같이 8은 어필할만한 매력이 충분히 있는 훌륭한 작품일 것이다.

게임 이야기

20세기 블록버스터 장르 공식을 확립한 작품을 꼽자면 루카스 필름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고고학자인 인디아나 존스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치와 싸우고, 역사의 비밀을 캐내는 이 모험 활극 시리즈는 특수효과와 액션 등을 통해서 전세계적인 흥행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의 상황에 쳐해있다. 비슷한 프랜차이즈였던 스타워즈가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7~9 3부작으로 유명세를 누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자신이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설적인 1편과 3편을 제외한다면, 4편과 5편은 역사의 변화와 극의 방향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연배우는 나이가 들어가지만, 새로운 주역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는 발굴하기 힘들고, 인디아나 존스를 이어받은 수많은 작품들(언차티드나 툼레이더 같은)이 나오면서 이제 더이상 인디아나 존스가 설 자리는 없는것 처럼 보였다.

이와중에 머신 게임즈에서 만든 인디아나 존스 : 그레이트 서클은 반갑기는 하지만 다소 의아한 부분이 많은 게임이었다. 다시 한 때 좋았던 인디아나 존스(1편과 3편처럼 나치와 싸우는)를 데리고 오면서, 1인칭으로 고전적인 인디아나 존스 느낌을 내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기존 팬들에게 박수를 받을만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언차티드나 툼레이더 같은 게임들이 이미 흥하고 있는 중에 인디아나 존스가 있을만한 자리는 없어보였다. 특히나 언차티드가 기존에 보여주었던 거대하고 압도적인 풍광에 대한 이미지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인디아나 존스가 가지고 있는 그런 오밀조밀한 느낌에 익숙해할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 해보면, 인디아나 존스는 잘 만들어지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재밌는 게임이었다. 놀랍게도 머신 게임즈는 인디아나 존스의 강점을 이해하고 있고, 무엇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지난 두편의 영화(4, 5편)보다도 더 인디아나 존스를 잘 이해하고 게임으로 엮는데 성공하였다.

그레이트 서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게임이 머신 게임즈가 단독으로 만든 게임이 아닌 아케인 스튜디오가 함께 참여한 게임이라는 것을 숙지해야한다. 기본적으로 디스아너드 시리즈, 프레이, 데스 루프와 같은 이머시브 심 게임을 제작하였던 아케인 스튜디오는 다양한 사물과의 상호작용, 다층적인 맵 구조, 잡입과 액션 모두를 활용하는 폭넓은 게임 플레이 스타일 등으로 유명한 게임 제작사였다. 물론, 머신 게임즈가 울펜슈타인을 통해서 잠입이나 총기를 사용한 액션 등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케인 스튜디오는 게임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구성하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것에 비교하면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강점을 가진 스튜디오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레이트 서클이라는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둘이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있는가를 이해하는게 관건이다.

 

또한 그레이트 서클에서 이해하는데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게임이 ‘느리고 단순하다’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즘 게임들이 속도를 내고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여 진행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비교하자면, 그레이트 서클은 오히려 방향성을 역행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스테미너 시스템의 도입으로 게임에 제약을 둔다던가, 느릿한 파쿠르, 단순화된 잠입과 전투 시스템 등등을 통해 그레이트 서클은 게임을 일종의 ‘톤 다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이 역행하는 발상이 오히려 게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부분들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사항들(아케인 스튜디오의 참여와 느리고 단순한 게임 플레이)을 결합해서 본다면, 그레이트 서클은 대중친화적인 이머시브 심이자, 동시의 영화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케인 스튜디오가 참여한 부분들은 맵 디자인이나 스테이지 디자인, 게임의 템포와 관련된 부분들이고, 머신 게임즈가 관여한 부분들은 게임의 감수성과 연관된 부분들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아래 문단에서 세세하게 뜯어서 살펴보겠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머신 게임즈가 영화와 감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높았기 때문에 아케인 스튜디오와의 협업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맵디자인이다: 그레이트 서클은 복층을 사용하는 맵디자인과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스테이지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디스아너드나 프레이 같은 게임에서 보면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론을 보여주는 것을 자주 경험해볼 수 있는데, 그레이트 서클도 큰 맥락에서는 비슷하다. 또한 오픈월드는 아니지만 스테이지 전체를 감싸는 오버월드를 구성하고 플레이어가 오버월드에서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할 거리를 즐기거나 하는 등의 요소는 분명 아케인 스튜디오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부분은 아케인 스튜디오의 파쿠르에 비교한다면 그레이트 서클의 파쿠르나 스테이지 스타일은 대단히 성기다는것이 특징이다. 아케인 스튜디오 게임들이 초능력을 이용하여 창발적인 게임 진행 방식과 오밀조밀하게 다양한 요소들을 숨겨놓는 것이 가능했다면, 그레이트 서클에서의 인디아나 존스는 채찍 이외에는 초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채찍 때문에 손이 안닿는 곳에 올라가거나 하는 것들을 할 수 있지만, 디스아너드나 데스 루프와 같은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어딘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스테미너 시스템의 차용과 근접 위주의 전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아케인 스튜디오나 머신 게임즈 게임에서 사례를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스테미너 시스템이 도입된 게임은 소울류 게임이나 엘든링과 같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게임들에서 스테미너는 게임의 속도를 줄이고 플레이어들이 행동을 할 때 더 신중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실제 그레이트 서클은 마치 고전적인 액션 영화의 난투극을 연상케하는 느린 페이스로 전투가 진행이 되며, 플레이어가 주먹 버튼을 빠르게 난타하다가는 쉽게 스테미너가 다 떨어져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스테미너의 회복도 일반적인 스테미너 베이스류 게임에 비해서는 상당히 느리다는 인상이 강하며, 이 때문에 한번 스테미너를 모두 다 써버린다면 1대1이라도 큰 위험에 빠진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대신 스테미너 회복량을 빠르게 하는게 아니라 ‘스테미너의 최대치를 늘리는 임시 스테미너’를 시스템에 도입하였고, 과일을 먹을 때마다 이 임시 스테미너를 회복하게 만들어서 장기적인 전투나 파쿠르 등의 활동에 활용하게끔 만들었다. 즉, 게임의 템포는 ‘의식하지 않으면 곧바로 플레이어의 행동과 게임 플레이를 끝장 낼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차있고, 플레이어의 행동이나 사고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톤다운 시키는데 집중한다. 최근 게임들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하는데 집중한다면, 이러한 스테미너 시스템과 사용은 다소 시대를 역행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전술한 단순한 맵디자인과 느린 게임 플레이의 결합은 게임을 자칫 단순하게 보이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느리고 ‘모자란 부분’들이 게임을 쾌적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분명 이 스테이지 디자인에서 분명히 뚫고 지나가려면 뭔가 내가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 있을텐데’와 같은 고민의 과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대로 닥치는대로 플레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이 진행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하는 게임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나 단순화되었다 라고 불호를 드러낼 수도 있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기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게임의 접근성이 늘어나는 부분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는 양면성을 띄게 되는데, 이 양면성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건지, 나쁜 인상을 줄건지는 앏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레이트 서클에서 이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후술할 감수성의 영역에서 드러나게 된다.

분명 전투나 맵디자인 등등은 아케인 스튜디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레이트 서클의 가장 빛나는 부분인 ‘감수성’에 대한 부분은 분명 머신 게임즈가 빛을 발한 부분이다.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의 최대 강점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서 갖고 있는 환상을 게임의 형태로 구현했다’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게 영화의 분위기를 재현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영화를 게임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세밀한 고민들이 그레이트 서클에서는 발현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퍼즐’의 구현이다. 과거 인디아나 존스도 유적들을 탐험하면서 고대 유적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레이트 서클은 좀 더 1인칭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퍼즐이 단순한 퍼즐이 아닌 ‘하나의 경이로움이 되는가’라는 연출과 감수성의 측면에서 게임을 잘 다룬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지역에서 거울을 이용한 퍼즐을 푸는 장면이나 바티칸 비밀 수도원에서 시간 제한이 있는 퍼즐을 푸는 장면 등은 하나 하나만 놓고 보면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지만, 단순히 크기나 연출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눈높이에 신비한 것을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감상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머신 게임즈의 연출은 영화에 대한 이해도 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탄복하게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자연스럽게 눈높이에 놓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과 최근의 언차티드 등과 같은 게임을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언차티드나 툼레이더 같은 게임들이 3인칭 게임이 되면서 유적과 규모감을 강조하고, 거대해지는데 집중하였다면 그레이트 서클은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놓고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갖고 놀게끔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뻔한 클리프 행어나 게임 플레이임에도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집트 스테이지의 마지막 보스전의 경우, 플레이어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보스전을 해야하는데, 플레이어는 라이터를 하나 키고 빛이 들어오게끔 발판을 찾아야 한다.  전체 구조를 놓고 본다면 그렇게 놀랍진 않지만, 게임은 이러한 과정을 완급조절을 잘 해두어 순간 순간 몰입감을 높이게끔 만들었다. 또한 몇몇 클리프행어 장면들(상하이의 비행기 갈아타는 씬이나 히말라야의 나치 군함을 타고 산을 내려가는 장면)은 분명 어디서 본 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그 몰입도가 상당한데, 플레이어가 ‘예상은 가능했지만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스테이지를 구성하고 연출하였기 때문에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그레이트 서클은 단순한 영화의 재현이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 영화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보통은 영화는 영화로, 게임은 게임으로 따로 따로 노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레이트 서클의 위치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것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된 레거시 미디어를 게임의 경험이라는 새로운 방법론과 미학으로 어떻게 다시 되살릴 수 있었는가 라는 흥미로운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차티드 시리즈 조차도 이젠 후속작이 나오지 않고, 툼레이더 조차 나사 빠진 후속작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영화를 가지고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싱글플레이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은 대단히 특기할만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인디아나 존스 그레이트 서클은 24년도 마지막을 장식한 최고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하나 하나 뜯어놓고 본다면 새로울게 없지만, 게임은 90년대 인디아나 존스가 흥행하고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만들고 있었을 때의 매력을 그대로 살려내는데 성공하였고, 감수성을 극대화한 게임 플레이와 연출로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디아나 존스의 후속작이 먹힌다는 것을 여지없이 증명해냈다. 이후 신작이 나온다면, 꼭 나오겠지만, 분명 더 뛰어난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게임 이야기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동물이 아니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생기는 다양한 관계성과 위계들이 다양한 맥락들을 만들어가며 우리가 다양한 것과 정치적 상호작용을 이끌어내게 만든다. 정치란 것을 단순히 어떤 슬로건이나 계파성, 당파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표면적인 흐름이다. 더 깊게 살펴본다면 당파나 계파로 대표되는 정치가 아닌 우리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정체성이나 생각, 무의식에 의한 정치도 가능하며, 그것에 의해서 종종 우리는 무의식적인 정치에 지배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헬블레이드 2는 정치적인 게임이다:전작은 신화에 대한 재해석이자 깨져버린 정신이 어떻게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는지, 트라우마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조셉 캠벨의 뒤틀린 버전의 신화학이었다. 헬블레이드 1은 그 자체로 깔끔하게 완결된 작품이었는데, 신화와 현실의 경계가 개인의 트라우마와 깨진 정신에 의해서 모호하게 바뀌고 재해석 되는 과정을 조현병 환자의 병증과 신화적인 모티브들을 연결지어놓고 신화와 개인적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다뤄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완결된 작품이었다. 즉, 헬블레이드 1편에서 이미 개인과 신화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완결되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테마로 이야기를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좋아했던 작품의 2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흥분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걱정이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부분이기도 하였다.

헬블레이드 2는 신화가 어떻게 정치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헬블레이드2는 신화를 더이상 세누아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사실로 만들어야 했다. 헬블레이드 1편과 2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편에서 모든 인물들이 세누아의 머릿속과 기억, 환상에서만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외부의 인원이 등장한다는 것은 1편의 대전제를 흔드는(개인의 트라우마와 신화와의 혼동, 그리고 그것의 극복) 구조다. 하지만 1편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트라우마는 극복하고 치유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깨달음을 토대로 타인과 교류한다는 점에서 2편의 이야기는 실제 살아있는 인물과의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1편과 다른 양상을 띌 수 밖에 없었다.

헬블레이드 2의 메인 플롯이 일종의 ‘정치적인 해방서사’라는 점에서 헬블레이드 2의 정치성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헬블레이드 2에서 바이킹이 지배하는 땅은 거인들에 의해서 황폐화 되고, 거인들을 달래기 위해서 바이킹들은 픽트족 노예를 잡아다 바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무적으로 보였던 거인들은 각자 사연이 있는 인간들이 크나큰 원한으로 변한 신화적인 존재며, 세누아는 이들의 진명을 불러 화해함으로 거인을 잠재우고 더이상 노예와 희생없는 세상이 온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노예상이었던 자와 현자, 여전사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구조는 희망에 근거한 연대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누아의 역할일 것이다. 재밌는 점은 조현병에 대한 표현이 1편과 사뭇 달라졌다는 점인데, 1편에서 조현병은 깨져버린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분열된 음성을 집어넣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면, 2편에서의 조현병은 세누아의 다양한 모습을(약한 모습에서 강한 모습까지) 드러낸다. 1편에서 세누아의 정신이 트라우마에 의해서 없는 환상을 만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과정이었다면, 2편에서는 그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장애는 오히려 세상을 달리 보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리잡는다. 재밌는 점은 머릿속의 목소리들이 약한 소리를 내거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유일한 무기인 칼을 건내주는 시퀸스라던가) 세누아가 종종 거기에 거스르고 앞으로 나서는 모습은 그녀가 더이상 트라우마나 자신의 장애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닌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이러한 점이 그녀를 다른 인물들보다 더 멀리 보고 이끌어줄 수 있는 위치에 놓는 사람으로 만든다.

세누아가 그녀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화의 세계는 신화가 아버지로 대변되는 잔인하고 냉혹한 질서의 세계가 아닌 각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비극과 연대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세계다. 그리고 아버지로 대변되는 압제가 어떻게 신화를 이용해 공동체를 억압하고 탄압하는지를 게임 초반에 이를 중요하게 다룬다. 신이 떠난 세계에 아버지로 대변되는 억압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의 세계에 똑같이 파괴와 억압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화해함으로써 그들이 이 세상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구도는 1편의 논의를 적절하게 확장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점에서 마지막 거인이 압제자 자신이었다는 점은 어느정도 예측되는 반전이었다. 압제자가 자신의 압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거인을 만들고, 거인을 통해서 자신의 압제를 정당화하는 과정은 여러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헬블레이드 2는 아비저를 따르는 압제자의 아들인 노예상이 세누아와 여행을 하면서 점차 변하는 과정도 함께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노예상의 케릭터는 세누아와 여러가지 점에서 대비되게 만들어두었다(남자와 여자, 억압자와 해방자 등) 그렇기에 그것은 억압 받는 자와 해방하는 자 사이 뿐만 아니라 억압하는 자의 각성과 연대를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기서 논하는 것은 헬블레이드 2가 정치적으로 첨예한 논리와 논쟁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헬블레이드 2는 신화에 근거하여 가장 오래된 형태의 정치, 사람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단순한 형태의 상징과 정치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한다. 물론 완성도 측면에서는 헬블레이드 1이 더 높지만(다양한 신화적 맥락을 엮어서 새로운 신화적 맥락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헬블레이드 2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확장시켜서 고민할 거리를 늘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다만 게임 플레이 관점에서 보면, 헬블레이드 1편의 퍼즐보다 더 단순해지고 전투도 단조로워져서 이걸 게임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워킹 시뮬레이터에 가까워진 부분이 있다. 물론 게임의 스토리나 연출, 그리고 플레이어가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징은 갖고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그래도 게임으로 냈어야 제대로 이야기 전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재미의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몇몇 부분은 전작보다 후퇴한(퍼즐 푸는 재미나 이런 점에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헬블레이드 2는 1편의 담론을 이어받아 확장시킨 작품이고, 고민이나 생각을 많이 한 작품이다. 경험하기로는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모두에게 추천할 수는 없는 것이 게임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1편 자체도 이미 호불호가 너무 심하게 갈리는 작품이라 모두에게 추천하기에는 좀 그런 작품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게임 패스를 통해서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대단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이미 이름에서 차이가 나듯이 장르적으로 이 두 게임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법을 구축하였고, 팬층도 다르고 소비하는 문화도 다르다. 물론 이 둘은 공통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물리적인 컴포넌트와 규칙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을 유사한 가족으로 분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과연 이 둘을 나누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가이다:분명 문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을 구분하는 그 얇지만 선명한 기준에 대해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측정measuring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자를 이용한 측정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작게 축소된 세계miniature에서 거리를 판단하고 행동을 수행해나간다. 물론 각각의 개별 미니어처 게임들이나 보드게임들을 따지면 반례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가령 옵시디언 프로토콜 같은 게임은 미니어처 게임의 장르로 분류되면서도 행동과 이동을 그리드 단위로 구분짓는다. 그러나 단순히 실제의 거리를 측정하는가 아니면 그리드 단위로 하느냐의 행동 문제보다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측정이 갖는 행위의 추상적인 의미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의 연계성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니어처 워게임은 미니어처의 세계, 즉 세계의 축소를 다룬다. 28mm 스케일, 32mm 스케일 등등 세계를 작게 축소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게임의 핵심적인 철학과 문법을 구축한다:세계의 축소이기 때문에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세계의 규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가령 게임 내에서 하나의 모델이 존재한다면 그 모델이 다른 모델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이 아무리 단순화되어 있어도 주사위나 그외의 요소들을 이용해서 상호작용할 수 있게끔 설정한다. 이러한 법칙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미니어처 워게임 인피니티다:인피니티는 미니어처 워게임으로 하는 TRPG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세한 규칙과 시스템들을 자랑하는데, 단순히 공격과 이동에 대한 규칙 외에도 TRPG에서 볼 수 있는 스킬체크 등의 요소들도 충실히 구현되어 있어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것 외에 얼마나 지적으로 유능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수치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TRPG와 미니어처 워게임의 서로 비슷한 요소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들이 있다면 이 바로 축소라는 내용일 것이다. TRPG는 세계 자체가 스킬 체크 형태로 추상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추상화된 행위로 모든 것을 스킬 체크의 형태로 등치시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과 세계 그 자체인 마스터의 존재 때문에 게임 문법이 세계 전체를 다룬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TRPG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와 마스터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협상의 영역도 중요하다. 하지만 미니어처 게임에서는 규칙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거나 세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의 관점에서 본다면 추상화된 TRPG보다는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구조를 띈다.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당연하게도 미니어처라는 요소다:축소된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미니어처라는 컴포넌트를 통해서 세계와 상호작용 한다. 이 상호작용이라는 요소는 위에서 설명한 TRPG 적 요소와 맞물리면서 작은 시뮬레이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세계는 축소되었고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이 존재함으로써 그 세계에 맞게 축소된 미니어처들은 그 나름의 규칙에 따라서 다른 컴포넌트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맥락을 만들어내고 상상속의 치열한 전투와 드라마들을 만들어낸다. 즉, 작아진 세계와 단순화된 규칙이 미니어처라는 매게를 만나서 맞물리면서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갖게 만드는 것이 미니어처 게임의 장르적 특수성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측정한다는 행위는 단순히 거리를 재는 것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 단위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측정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선측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측정을 통한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측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몇몇 게임에서는 선측정Pre-Measuring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떻게 본다면 철저하게 플레이어라 하는 게임 외부의 존재가 아닌, 축소된 세계 속의 미니어처 모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미니어처 게임이 선측정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일례로 인피니티가 선측정 자체를 막지 않는다), 측정과 모델,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다루는 규칙을 이해하는 것으로 미니어처 게임들이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보드게임과 미니어처 워게임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기준이 있다. 보드게임들의 목적은 축소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 분명한 규칙의 흐름에 근거한 게임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도, 규칙간의 충돌도, 플레이어가 측정을 통해 규칙을 판단하거나 하는 등의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미니어처 워게임의 경우, TRPG와 보드게임 사이의 경계에 놓여있다. TRPG와 달리 물리적인 규칙과 시스템의 간소화를 분명하게 요구하지만, 동시에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보드게임에서 보여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미니어처 게임에서는 일어난다. 

물론 좀 더 논의를 확장하여 본다면 이러한 점들 때문에 미니어처 워게임과 보드게임, 혹은 다른 게임 장르 사이의 장르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게임들도 꽤 등장하기도 한다. 옵시디언 프로토콜과 같은 게임이나, 언더월드 같이 TCG와 보드게임 사이를 오가는 게임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적인 구분이란 철저하게 어떠한 정의를 따라간다기 보다는 비트겐슈타인이 이야기했던 가족 유사성의 관계를 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게임 이야기



처음 오큘러스 퀘스트 2(현 메타 퀘스트 2)를 구매하였을 때의 인상은 기기 자체는 완성되어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그만큼 따라오기 힘들다 였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같은 이레귤러 작품들을 제외한다면, VR 게임들의 기믹은 너무 얕고 반복적인 부분들이 많거나 혹은 게임 플레이에 집중한 나머지 VR이라는 요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이는 VR 게임이 플레이 되는 환경에 기반한다:하드웨어 조작의 특수성으로 일반적인 패드/키보드+마우스 기반의 게임 플레이와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서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느정도 운동을 수반하여 체력소모가 심하다는 점, VR 기기 특성상 필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서 기존 콘솔 게임의 게임 플레이를 재현하지 못하고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되는 게임의 역사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걸음마의 단계를 다시 거치는 것이 VR 게임의 현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타 퀘스트 3로 넘어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확하게는 기기가 바뀌었다기 보다는 약 2~3년 간의 소프트웨어의 트랜드들이 바뀌고 노하우가 쌓여서 바뀌었다는게 정확할 것이다. 몇몇 가지 게임들을 예로 들어보자:거대한 메카닉에 타고 권투를 하는 게임 언더독의 경우, 첫 인상은 메카닉을 타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반적인 VR 권투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전 2~3년전 vr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동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공간을 넓게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움직일 때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거나 스틱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두 팔로 땅을 찍어서 마치 고릴라가 팔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이동을 표현하였다.

두 다리나 스틱을 이동 수단으로 쓰는 조작법은 관념적으로 직관적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조작방식이었다. 우리가 실제 움직이는 공간과 게임을 하는 공간이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두 다리와 스틱을 쓰는 이동 방식은 인식되는 공간과 실제 공간 사이의 괴리 때문에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3D 멀미를 유발하거나 제한적인 공간 때문에 한정적인 움직임을 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다리를 바닥에 접지시킨채로 두 팔만 이용한 이동 조작의 등장은 많은 것을 바꾸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다리를 접지시킨다는 점이다.  스웜이라는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360도 상하좌우로 날아다니면서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파쿠르를 하며 총을 쏘는 게임인데 신기하게도 카메라를 이리저리 뒤흔드는데도 3D 멀미를 크게 유발하지 않는다. 이는 카메라 자체를 미세하게 흔들다기보다는 카메라를 움직이는 폭이 시원시원하고 크기 때문에 사람이 인식하고 멀미를 느끼지 않게끔 해준다. 

즉, 카메라와 조작에서 신체의 중요한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다리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 다리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팔이 조작의 연장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작은 어디까지나 과도기 적이다. VR 트레드밀이나 신경 조작, 더 나은 조작 방법 등이 등장하게 되면 이러한 연장 방법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과도기의 방법이다. 그러나 VR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한 방식이나 연구한 방식은 앞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 현재 알파~베타 테스트 중인 게임으로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 점 유의 바랍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게임들이나 콘셉들은 이미 누군가 시도했거나 테스트의 형태로 구현해본적이 있는 것들이다. 둠이나 울펜슈타인 이전에 1인칭 슈터 게임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둠 이전의 작품들은 둠과 같은 디테일과 완성도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구현을 했다 라는 사실이 아니라 구현을 어떻게 하였는가라는 영역일 것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없다. 최초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잘 구현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데드락은 벨브에서 나온 게임으로 AOS와 소위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히어로 슈터를 섞어놓은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미니언들과 함께 적의 본진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상대 미니언들을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맞춰서 더 강해진다. 이러한 과정들은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나 도타 2에서 봤었던 기본적인 AOS의 흐름이고 데드락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데드락이 구현하려고 하는 게임의 흐름은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 역사가 있다. 데드락이 대단한 이유는 이런 게임이 처음이라서가 아니라 그동안 다양한 게임들이 시도했었던 것들을 얼마나 잘 만들도록 끌어올렸냐가 핵심이었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데드락이 구현하려고 하는 게임의 아이디어는 다른 게임에서 많이 시도한 부분들이 있다. 국내 게임으로는 사이퍼즈 같은 게임이 있을 것이고, 해외의 게임을 사례로 든다면 파라곤이나 스마이트 같은 게임들이 있다. 이러한 게임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3인칭 액션/슈팅 게임들을 AOS의 운영과 한 타로 대표되는 협동을 섞고자 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이 항상 성공적이었다던가, 혹은 메이저한 성공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서비스를 종료한 파라곤의 예를 들어보자. 파라곤의 가장 큰 문제는 매우 느린 호흡이었다. 플레이어는 미니언을 하나 잡기 위해서 많은 평타를 쳐야 했었고, 필연적으로 라인전이 느려지니 한 판 게임 플레이가 한 시간 가까이 걸리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한 시간이 강렬한 경험으로 가득차있기 보다는 그저 느리고 지루한 내용으로 찾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반적으로 데드락은 슈터를 AOS에 섞는 과거의 시도를 따라하면서도, 속도가 빠르고 경쾌하게, 소위 요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하이퍼'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오버워치와 같은 게임과도 비교가 많이 되는 게임이긴 한데, 본질적으로 협동해서 싸우는 전투가 여러번 일어나는 오버워치와 다르게 데드락은 AOS 처럼 라인전이라는 운영 요소를 베이스로 깔면서도 그 운영의 결과물로 나오는 레벨링이나 아이템 파밍 등을 이용해서 협동 전투를 풀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게임이 속도감을 중요시하고 플레이어들의 유기적인 협동 전투를 요구하는 점에서 오버워치와 유사한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밌는 점은 속도감이나 공간을 쓰는 감각(맵의 높낮이 배치나 파쿠르 같은 부분들)은 분명 오버워치보다도 더 하이퍼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AOS의 부분에서 본다면 데드락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 도타 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미니언 파밍에 있어서 디나이 개념이 존재하고, 아이템 트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케릭터의 잠재력이 다르게 드러나는 등 탑-미드-바텀-정글-서폿이라는 틀에 잡혀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눈여겨 보아야하는 점은 디나이의 개념일 것이다: 플레이어 편 미니언이 상대에 의해서 죽었을 때, 상대가 흡수할 영혼의 절반이 허공으로 날아가는데 이걸 상대가 사격해서 획득할 수 있고, 역으로 플레이어가 사격해서 상대가 못먹게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이미 도타 2에서 구현된 적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가 미니언을 파밍하지 못하게하는 동시에 상대에게 돌아갈 일부 영혼을 자신이 먹는 시스템이다.

디나이 시스템의 존재는 데드락에서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라인전 개념을 성립시킨다. 도타 2에서 디나이는 크립의 체력과 내 공격력등을 계산해서 해야하는 행위이다 보니까 게임이 매우 어려운 테크닉이었는데, 데드락에서 디나이는 그럴 필요 없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영혼만 총으로 쏘면 되다보니까 이런 부분에서는 매우 쉬워진 부분이 있다. 그러나 데드락에서 재장전은 느린편이고, 탄창을 상대 플레이어에게 배분할 지, 미니언에게 배분할 지 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탄창을 배분한다는 느낌으로 의식적으로 디나이와 파밍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디나이와 파밍 시스템의 경우, 데드락 만의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도타의 개념을 들고 온 것도 있고, AOS의 양식을 적극 차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례들이 슈퍼 먼데이 나이트 컴벳 같은 게임들을 통해서 우선 구현된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드락이 대단한 이유는 새로운 장르와 플레이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디테일들을 잘 다듬어서 창발적인 플레이를 장려하고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이고 운영하는 게임'을 만든 점이 가장 크다.

다양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데드락에서 자유로운 부분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맵과 움직임이다. 데드락이 의외로 '하이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데, 이는 캐릭터들의 속도감도 있긴 하지만 더블 점프, 대시, 파쿠르 등의 다양한 요소들과 이를 잘 활용하는 맵의 디자인도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게임을 겉으로 볼 때보다 실제 할 때 느껴지는 감각이 다른데, 겉으로 볼 때는 매우 가볍지만 실제 할 때는 내가 생각한대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맵 디자인 역시 옥상에서부터 지하까지 다양한 층위와 높낮이를 가진 맵을 만들고 플레이어가 이를 창발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등(갱킹 루트의 다양화 같은) 눈에 뚜렷하게 띄진 않아도 잘 만들어진 부분들이 많다.

두번째는 케릭터들의 역할군에 한계를 잡아두지 않고, 아이템과 활용에 따라서 다양한 포지션을 잡을 수 있게 설정한 점이다. 롤과 같은 AOS에서는 스킬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영향력 계수(AD, AP 같은)에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데드락은 장비들이 계수뿐만 아니라 도타와 같이 액티브 스킬로 기능하거나 스킬의 범위, 쿨타운, 부가 효과 등에 영향을 끼치게끔 구성을 하였기 때문에 아이템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스킬의 운영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캘빈과 같은 케릭터는 스킬 범위, 쿨다운 등의 모든 아이템 강화를 아크틱 빔에 밀어주게 되면 6초에 한번 씩 상대를 80%까지 느려지게 만드는 광역 슬로우 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데미지를 어느정도 포기해야하는데 구성과 운용에 따라서는 다른 느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케릭터들도 많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데드락은 베타 단계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들이 아쉬운 부분들이 있긴 하다. 가장 큰 부분은 랜덤 픽 구성일 것이다:플레이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케릭터를 할 수 있는게 아니고 케릭터 풀을 지정하고 게임이 무작위로 그 풀내에서 플레이어의 케릭터를 지정해준다. 이 때문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조합이 나온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가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꼭 베타 이후 해결해야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부분들이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데드락의 문제들은 '베타'이기 때문에 납득되는 부분들이 많다.

결론을 내리자면, 데드락은 오랜만에 벨브에서 만든 게임 중 가장 포텐셜이 높고 잘만들어진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벨브는 여전히 게임을 만드는 감각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데드락은 앞으로도 완성된 모습이 더 기대되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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