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오타나 문법상 오류는 후에 탈고할 예정입니다.


한 때 스타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업계와 게임 플레이어들을 호령하였다:이나후네 케이지, 미카미 신지, 이타가키 토모노부, 켄 레빈,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 등등. 이 위대한 게임 개발자들이 말하던 것이 현실이 되고, 미래를 약속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버렸다:이나후네 케이지는 마이티 넘버 나인과 함께 사기꾼이란 평가를 들으며 주저앉았고, 이타가키 토모노부는 예산 부족에 허덕이며 데빌즈 서드라는 미완성 작품을 내며 거꾸러졌다. 켄 레빈은 바이오쇼크 시리즈에서 손을 때면서 업계에서 실종되버렸고, 피터 몰리뉴와 리차드 게리엇은 증빙되지 않은 공수표를 남발하다가 팬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개발자들의 몰락은 급작스러웠고, 그 끝은 초라했다. 


스타 개발자들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 대자본이 들어간 트리플 A 게임 개념의 등장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게임 매체는 여타 대중문화나 매체에 비해서 기술 및 노동집약적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영화가 분업과 해체, 재조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하였지만, 게임은 영화보다 이 분업의 강도가 더욱 높다. 또한 영상 매체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카메라와 영상 편집의 툴이 보편화되어 영상 매체 제작에 대한 허들을 꾸준하게 낮춘데 비해서, 여전히 게임은 프로그래밍과 수학 등의 전문화된 기술과 개발 인력을 요하는 부분들이 있다. 즉,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더욱 산업화된 매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산업화된 매체인 게임과 과거 우세하였던 '스타 개발자가 그의 독창적 색깔이 들어간 게임을 만들어낸다'라는 명제는 서로 상반되었다는 점이다. 매체 생산 과정이 수많은 공정으로 잘게 쪼게져있는만큼 한 명의 개발자가 전체 게임 개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한 명의 천재가 전체 게임 개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이것이 수많은 스타 개발자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사례를 보자:역사상 가장 유명한 낙하산 게임 개발자(?) 중 하나인 미야모토 시게루는 첫번째 동키콩 게임을 만들 때 코드 작업에서부터 간단한 게임 시나리오 작업, 더 나아가서 기타로 BGM 작업까지 직접하였다. 요즘으로 이야기한다면, 미야모토 시게루는 3명의 전문 인력 몫을 해낸 것이었다. 


이는 게임 개발 초창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자가 마음 먹고 손을 뻗기만 하면 모든 것을 만들수 있었다. 스타 개발자들의 등장은 그러한 초창기의 게임 산업의 특수성에 기반하였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작품이 누적되면서 개발자 한 명이 모든 분야를 관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 게임의 산업화가 두드러졌던 트리플 A 대형 게임들은 전문화된 인력과 분업, 효율적 예산 배분과 스케줄 관리가 맞물리면서 기업화된 개발 환경에 기반하여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대가 바뀌면서 스타 개발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키워왔던 회사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개발자들이 빠져나와 새로운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 활발해진 것도 게임 개발에 있어 조직이 강조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창기 개발자들의 독립 스튜디오 설립은 오히려 스타 개발자들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말았다:초창기 개발자들이 간과했던 부분은 게임(정확하게는 트리플 A 게임들)이 더이상 아이디어에 근거해서 만들어지기 어려워졌다는 점과 게임 개발에 있어 다양한 인프라(특히 재정 등)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가장 단적인 사례는 이나후네 케이지였다:이나후네 케이지는 개발에 있어서 기획 부분만 따로 전담하는 회사인 콘셉트를 만들고 개발을 외주화 시키는 독특한 시도를 하였다. 마이티 넘버 나인에서 아니후네 케이지는 자신은 기획을 전담하고 예산은 클라우드 펀딩으로, 실제 개발을 하는 회사로 록맨 제로를 만든 인티 크리에이츠를 끌어들이는 등 게임 역사상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야심찬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은 수준 이하의 퀄리티와 지켜지지 못한 약속으로 게임 역사와 자신의 커리어에 절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주목해야하는 점은 마이티 넘버 나인으로 신뢰를 잃기는 했지만 이나후네 케이지와 콘셉트는 소울 새크리파이스로 나름대로 주목할만한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겠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의 실패는 단순하게 이나후네 케이지의 게임 기획 능력의 부족으로 몰아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히려 마이티 넘버 나인의 문제는 기획과 개발, 그리고 이를 지탱하기 위한 예산 사이에서의 벨런스가 무너진 부분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킥스타트 펀딩 외에도 지속적으로 펀딩을 하며, 여기에 추가목표를 올리는 등 개발 과정 자체를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부재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만들 떄 받았던 재정적 지원을 마이티 넘버 나인은 받지 못한 원인이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이나후네 케이지의 몰락은 스타 개발자가 몰락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스즈키 유, 이타가키 토모노부 등등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조직 바깥에 자신만의 회사를 세우는 모험을 했다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은 개발자들도 있다:다시 미야모토 시게루의 사례로 돌아와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 개발자로 칭송 받는 그는 이제 더이상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그가 게임을 만들지 않는 대신, 그의 게임을 만드는 방법론이나 철학은 닌텐도라는 집단 전체가 공유한다:슈퍼 마리오를 이제 더이상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들지 않지만, 그가 만들었던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의 방향성은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살아남은 위대한 게임 개발자들은 더이상 자신의 개발 철학을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철학을 개인이 아닌 조직이 공유하는 회사는 시대가 지나도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이끄는 프롬이 그렇고, 30년 가까이 증자 없이 흑자 운영을 하고 있는 팔콤이나 플래티넘 게임즈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은 전반적인 시장 트렌드와 별개로 자신만의 테이스트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닌텐도의 케이스와 다르게, 이 회사들의 규모는 여전히 작다:한명의 제작자가 여러 포지션을 담당하는 멀티플레이를 지향함으로 자신의 분야 외에도 '완성된 게임'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 조직 전체가 동일한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회사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개발자 개개인의 과중한 업무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개발사들은 닌텐도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필연적으로 작은 규모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초창기 스타 개발자들의 성공담이 인디 게임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이코노클라스츠나 아울 보이, 스타듀 벨리 같이 몇년 동안 개발자 혼자서 게임 내의 모든걸 기획하고 만드는 경우나 오버쿡드! 시리즈 같이 열 손가락에 꼽는 인원이 게임을 만들어서 성공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게임이라는 매체와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시장이 자연스럽게 확장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인디 게임들은 트리플 A 게임에서 시도할 수 없는 대담한 시도들이 이뤄지기도 한다. 물론, 트리플 A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들과 달리, 인디 게임들은 하나의 게임을 몇년에 걸쳐서 꾸준히 업데이트 시키고 완성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을 쪼게 판다는 발상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아이디어를 꾸준하게 업데이트해서 완성시킨다는 개념(서비스로서의 게임)의 등장은 다양한 인디 게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게임 산업 초창기에 등장한 창작자의 개성이 넘쳐흘렀던 게임들이 등장하는 토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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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대난투 스매쉬 브라더스 시리즈는 닌텐도 캐릭터의 집대성인 동시에, 여태껏 그 어떤 격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자랑하는 게임이기도 하다:체력의 소진을 통해 KO를 끌어내는 것이 아닌, 데미지를 입은 상대가 점점 가벼워져서 결국은 화면 바깥으로 날려 보낸다는 발상 자체는 여타 격투 게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발상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대난투의 장외패 개념에서 드러나는 '플랫포밍'적인 성격이다:적에게 피격당해 발판 바깥으로 플레이어는 아득바득 발판 위로 복귀해야 하며, 역으로 상대는 플레이어의 복귀를 방해해야 한다. 상대에게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와 상관없이, 복귀에서 오는 공방은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패배와 역전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닌텐도는 스테이지에 다양한 기믹을 추가한다. 많은 대난투 대회와 영상들이 종점화(스테이지 기믹이 사라진 순수한 대전 스테이지)된 스테이지를 기반하고 있지만, 대난투에서만 찾아볼 독특한 개성은 이 다양한 스테이지 에 기반하고 있다:대난투의 스테이지 기믹은 콜라보를 하고 있는 다양한 게임들에서 빌려오고 있으며, 스테이지라는 환경이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대전의 주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가령 대난투 3DS 버전의 광신화 파르테나의 거울 스테이지의 경우, 스테이지가 일정 시간에 따라서 초기화 폭탄을 맞고 바뀐다는 기믹을 갖고 있고, 이때 발판의 위치 등이 모두 변화하여 상대를 날리는 거나 복귀하는 공방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진다. 스타폭스 스테이지 같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전투기 위에서 싸운다던가, 대난투 시리즈 내내 악명높았던 에프제로 스테이지의 경우도 이와 같은 상황에 해당할 것이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의 움직임을 보고, 스테이지 내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며 싸워야 한다. 이러한 정신없는 부분이 오히려 아이템을 사용하는 점과 맞물리면서 대난투를 가벼운 파티용 대전 게임으로 즐길 수 있게끔 해준다:스테이지는 계속 움직이고, 무언가 계속 정신없이 일어나며, 실력에 상관없이 아이템을 들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통쾌하게 날려버린다. 아이템 전의 경우, 엄청나게 뛰어난 반사신경이나 게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한다. 물론 여타 플레이어와의 대전 경험에 집중하는 경우는 스테이지의 기믹을 없애고, 아이템이 등장하지 않게 하는 종점 화를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종점 화의 경우에도, 스테이지 복귀에서 오는 공방은 여전히 어떻게 하면 발판 위에 올라갈 수 있는지/발판에 올라가지 못하게끔 견제하는 플랫포밍의 문법에 집중되었다.


이렇게 대난투는 플레이어에게 상대방을 장외패 시키고 공격을 받을 시 안전하게 발판으로 돌아오는 게 핵심인 게임이고,  서로 동떨어져 있는 다양한 요소를 플랫포밍이라는 장르 문법을 사용해서 묶어놓은 게임이기도 하다. 사쿠라이 마사히로라는 디렉터가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지난 20년 동안, 초대 대난투와 대난투 DX의 실험을 거쳐서 3DS/Wii U 판을 통해 집대성하고 정리하기까지, 대난투 시리즈는 서로 다른 장르적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대난투라는 형식과 이질적인 플랫포밍 장르의 문법 아래 통일성 있게 배치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통일성 있는 구성이 빛을 발한 때가 바로 외부 콜라보가 야심 차게 이루어진 3DS/Wii U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쿠라이는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격투 게임에 등장한 류에서부터 전혀 다른 액션 게임 장르에 등장한 베요네타나 파이널 판타지에 나온 클라우드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을 하나의 게임에 엮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3DS/Wii U 버전 대난투는 벨런스 부분에서 대전 게임으로서 흔들리는(특히 베요네타의 문제는 심각했다) 모습도 같이 보여주었다. 물론 이 부분은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격투 게임들이 모두 겪는 고질적인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대난투 스페셜이 공개되는 시점에서 EVO 대난투 Wii U/3DS 결승전이 수준 이하의 베요네타 미러 매치로 끝났다는 점은 새롭게 등장하는 대난투 스페셜에 대한 큰 걱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대난투 스페셜이 역사상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모든 참전 캐릭터들이 모인다.'라는 것이다:참전 캐릭터만 해도 격투 게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67명 이상이 게임에 등장하며, 벨런스나 기믹 상 겹쳐지는 몇몇 스테이지를 제외하고 전 시리즈에 등장한 100여 개의 스테이지가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팬들은 전무후무한 기대와 걱정을 대난투 스페셜에 걸 수밖에 없었다. 대난투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게임도 이렇게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하나의 게임에 집대성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하나의 작품에 넣기 위해 많은 공수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너무 많은 변수와 조합에 의해서 벨런스가 붕괴하고 게임의 기획 의도와 플레이어의 경험이 유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집대성하는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난투는 근 20년간의 모든 요소를 한군데 몰아넣는 일반적인 통념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대난투 스페셜의 기본 골격은 Wii U/3DS 버전에 기반한다:일반적인 게임 프렌차이즈들이 새 게임을 홍보할 때 새로운 시스템이 생기고 과거 것들이 대체되는 모습에 집중한다면,  대난투 스페셜이 보여준 모습은 '기존 것에서 어떻게 보완되었는가'였다. 오히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대난투 스페셜은 대난투의 신작이라기 보다는 콘텐츠가 대규모로 추가되고 벨런스를 맞춘 대난투 3DS/Wii U 1.5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한때 스위치 대난투에 대해서 강하게 루머가 돌았던 것도 '기존 대난투의 이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난투 스페셜의 기본 방향성은 이미 3DS/Wii U 판의 승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대난투 스페셜의 핵심은 기존 골격을 얼마나 잘 재활용하고 벨런스를 맞추느냐다.


흥미로운 점은 대난투 스페셜이 나오는 지금의 상황이다. 닌텐도는 3DS/Wii U 보다도 더 온라인 토너먼트나 e스포츠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자사 게임 내에 이러한 시스템과 기믹들을 적극적으로 추가하고 있는 중이다:이미 스플래툰 갑자원과 페스는 정례 행사가 되었으며, 마리오 테니스 에이스에는 기간제 온라인 토너먼트 매치 기능이 추가되었다. 암즈와 같은 새로운 작품도 멀티 중심에 파티 크러시 같은 실험을 도입하였다. 닌텐도의 관심사가 일반적인 이스포츠(프로와 리그를 구성하고 있진 않기에)와 다른 부분들이 많지만, 게임을 즐기는 문화이자 자사 게임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인지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모든 것을 집대성한 대난투 스페셜이 나온다는 것은 현재 닌텐도의 멀티플레이에 대한 방향성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대난투에 바라는 것은 가벼운 파티용 격투 게임에서부터 진중한 1:1 격투게임 커뮤니티까지 모두 포섭할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게임이다. (가디언 기사 링크) 그렇기 때문에 대난투 스페셜은 정말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단 한 번의 비장의 기회(모두가 원하는 게임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를 꺼내든 것이다. 다만, 더는 이런 식의 같은 볼륨을 가진 대난투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게임 역사상 전무후무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콘텐츠에 기존 골격을 한 번 더 다듬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변화시키기에는 게임의 분량이나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난투 스페셜은 더는 다시 찾아올 수 없는 게임 역사상 가장 담대한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봐야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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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나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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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3막에서는 쏴야한다. 안쏜다면 없애버려라"

-안톤 체호프


과거 존 카멕이 "게임에서 있어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이 비중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게임에 있어서 이야기 전개의 본질을 짚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게임에서 스토리란 존재해야 하지만, 그 역할이 핵심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게임은 기본적으로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한다는 행위 자체를 무시하고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것은 게임이란 매체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에서 스토리가 기능하는 모습을 통해서 본다면, 존 카맥이 게임의 스토리를 포르노에 빗댄 것은 화자의 발화 맥락을 넘어선 묘한 맥락을 갖는다:포르노에 있어서 서사는 단순히 성행위의 촬영을 넘어서 성행위를 둘러싼 다양한 성문화적 페티쉬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포르노를 단순한 성행위의 관음으로만 치부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성행위를 구성하는 문화적인 맥락과 관계들이 미약하게나마 폭넓은 의미에서의 서사를(카메라 연출, 묘사 등)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게임에도 같이 적용된다.:게임 내에서의 행위는 게임 내에서의 서사에 의해서 그 맥락이 결정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스토리텔링을 넘어서 음향과 시각,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어떻게 구성하고 플레이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까지 더 넓은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게임 산업과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게임에 대한 수요도 점점 다변화/고도화되고 있으며, 이전의 게임들보다 더욱 이야기의 소재나 표현 양태에 있어서 고도화된 게임들도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호러 게임이 b급 스플레터 물이나 좀비 호러 등의 감수성을 빌린 바이오하자드나 왁스맨, 엘비라 같았다면, 최근 호러 게임들은 개인의 심리적 공포와 강박관념 등을 다루는 레이어즈 오브 피어나 헬블레이드, 소마 같은 게임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물론 과거의 b급 감성의 게임들이 사라진건 아니다) 그리고 게임이 서사의 소재로 다루는 요소가 추상화되면서 게임 내 서사와 이를 받아들이는 감상 자체도 크게 바뀌었으며, 게임이라는 문화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게임 내의 서사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직관적인 플레이로부터 괴리되어 플레이어를 의도치 않게 헤매게 만드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레이어즈 오브 피어의 DLC를 플레이하던 한 니지산지쪽 버추얼 유튜버는 한 구간에서 약 15분간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람이 게임이라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이다:FPS를 플레이하듯이 맵 구석구석을 탐험한다던가, 무기나 아이템을 찾는다던가, 주변 환경을 보고 퍼즐을 푼다든가 하는 등의 모습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초적인 배경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특정 구간에서 15분을 해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째서일까? 흥미롭게도 이는 레이어즈 오브 피어라는 게임의 모호한 게임 서사와 스테이지 구조에 기반하여 생긴 문제였다:레이어즈 오브 피어는 개인의 트라우마에 따라서 스테이지와 세계, 퍼즐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플레이어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레이어즈 오브 피어는 이 과정을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고 일직선의 워킹 시뮬레이터의 형태로 만들었어도, 그 와중에도 게임 내의 레벨과 서사 사이의 불명확한 관계로 인해서 헤맬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주인공 딸이 지하실에서 줍는 개와 자신의 사진은 게임 플레이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벽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플레이어에게 던져지는 이 모호한 이미지와 상징들은 '무언가 정답이 있는데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한다'라는 답답한 인상을 심어준다. 


게임 서사의 특징들은 영화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위와 같은 문제가 두드러진다:영화라는 매체는 관객에게 정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특성 덕에 시간에 따른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게임은 관객의 참여 여부와 별개로 흘러가는 영화와 달리, 플레이어가 행동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다. 결국 레이어즈 오브 피어의 경우처럼, 게임 내에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암시적인 정보량(=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이 늘어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야기가 암시적일수록 플레이어가 복잡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은 그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잡음이 발생하여 필연적으로 게임 플레이 경험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플레이어에게 모든 것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설명하거나 안내를 하는 것도 방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하는 매체'이기에 플레이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게임 내의 서사에 있어서 유리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나 소설 같은 매체에서 감상자는 작품이 제4의 벽을 부수고 관객의 몰입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게임 매체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품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것이 매체를 구성하는 주요 요건인 게임이라는 매체는 특성상 '플레이어의 행동'이라는 작품 외적인 요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품 외부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라는 존재는 창작자의 의도와 같이 단일하고 균질하지 못하다:모든 플레이어는 제각기 다른 경험과 문화적 기반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행동하는 양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즉, 몰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가 제공하는 경우, 게임 내 서사 바깥의 플레이어를 강하게 인지하게 되거나 플레이어가 기반하는 환경에 따라서 의도한 것과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 수 있다. 


종종 플레이어를 배려하겠답시고 많은 정보를 던져주다 실패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일례로 콜옵 어드벤스드 워페어를 보자.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버튼을 눌러서 조의를 표하세요"는 잘못된 QTE의 모범적 사례다. 게임은 분명 비극적인 상황에서 전우를 잃어버린 경험에 대해서 플레이어가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자 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QTE가 영화적인 액션 같은 동적 경험에 쓰인다는 점과 그리고 일반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그 순간에는 침묵과 묵상하는 장례 문화가 일반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드벤스드 워페어의 QTE는 그야말로 과유불급이었다. 


위와 같은 상황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게임 서사의 난제는 바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에의 이입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적당한 정보량을 제공하느냐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를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손에 닿을 정도로 단순하고 직관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변주를 주어서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주고, 생각에 잠기게끔 만드는 것이 유효하다:예를 들어 바이오쇼크의 Would you Kindly 같은 반전이나 헬블레이드의 서사처럼, 플레이어가 몰입할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하고는 결국에는 플레이어의 행동과 진실이 서로 대치되게끔 구성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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