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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들어가기 앞서서

이 작품은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나는 것을 더듬거리면서 완성한 칼럼입니다.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지적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罪惡業 3부: 위치헌터 로빈-그것의 이름은 원죄(原罪)

위치헌터 로빈은 2002년에 나온 선라이즈 제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위치헌터 로빈은 선라이즈 작품 치고는 대단히 독특한 아우라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심지어 혹자는 '앞에 선라이즈 로고만 없으면, 이걸 어떻게 선라이즈 작품으로 알 수 있겠느냐?'라고 하더군요. 정갈하고 깔끔한 그림체, 조용한 음악, 차분한 성우들의 연기, 도회적인 분위기 등 일본 애니에서는 보기 드문 분위기를 지향하는 작품입니다.

위치헌터 로빈의 구도는 일견 단순하게 보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일반인과 초능력자, 쫒기는 사람과 쫒겨지는 사람 등 이분적인 구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로빈은 엄밀하게 그 어느쪽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애니는 그러한 로빈이 어떻게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지, 그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서 독특한 심리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위치헌터 로빈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위치(Witch)'입니다. 위치헌터 로빈에서의 위치는 단어 그대로의 마녀(Witch)를 지목하는 게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위치는 철저하게 유전적으로 그 능력을 이어받는데, 이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위치의 가계에 속한 사람이면 위치의 능력을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는 원죄(原罪)입니다. 더러운 피, 태어날 때 부터 순수하지 못한 인간,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위치는 애니 내에서 그런 취급을 받습니다. 과거 조상이 위치였으면, 자신이 능력이 있던 없던 감시받게 되고, 의심받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위치를 사냥(Hunt)하는 집단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그들은 역사시대가 도래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이러한 위치를 사냥해서 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은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어떤 능력도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고, 위치는 엄청난 초능력을 지닌 인간들입니다. 과학과 기술을 써서 밀어붙인다고 해도, 솔로몬이 많이 후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위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똑같이 위치의 힘을 빌어서 위치를 사냥하는 것입니다. 위치의 가계를 이어받은 사람들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서 위치헌터로 키워내는 것입니다. 주인공 로빈처럼요.

사실, 이런 설정은 이제 거의 클리셰가 되다시피한 설정입니다. 인간이 비일상적인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 그들의 기술이나 능력을 쓰지만, 정작 이들 역시 적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정체성의 혼란이 오게 되는 내용 말입니다. 하지만 위치헌터 로빈은 철저하게 로빈이라는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세세한 감정묘사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클리셰적인 설정을 써도 '너무 흔한 이야기다'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시작, 로빈은 솔로몬 일본 지부인 STN-J에 새로운 헌터로 도착하게 됩니다. 로빈이 STN-J에 온 것은 본부가 STN-J를 지원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STN-J에서 위치의 능력을 상쇄시키는 오르보에 대한 감시와 견제, 그리고 STN-J의 위치를 죽이지 않는 헌트 정책에 대한 견제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STN-J의 헌터들이나, 본부에서 온 로빈이나 서로에 대해서 썩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처음 만남에서 지부장에게 인사를 한 로빈이 '오르보는 기분이 나쁘니까 쓰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 장면 등에서 암시적으로(하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STN-J에 도착할 시점의 로빈은 대단히 완고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위태로와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솔로몬 본부에서 철저하게 위치를 사냥하는 법에 대해서만 교육을 받고, '좋은 위치는 죽은 위치 뿐이다'등의 사고방식(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으로 무장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본부와 다른 STN-J만의 마취탄으로 위치를 잠재워서 헌트하는 방식과 오르보의 사용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구요. 하지만, 크래프트 사용자(Craft使い)라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 역시 위치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을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녀의 능력 사용 방법인데, 애니 초반 그녀의 크래프트는...뭐랄까 대단히 ‘위태롭습니다’. 헌트 대상인 위치에게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것이 주변일대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든다던가, 조준이 안되서 딴 데 불붙이기 일쑤이지 않나, 옆에 있는 사람을 대단히 위태롭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로빈도 STN-J에서 아몬, 사카키, 카라스마 등의 동료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처음 대단히 완고해 보였지만, 같이 생활하고 헌트를 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됩니다. 이는 그녀가 점점 소녀적인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죄ㅡ자신이 위치라는 것ㅡ에 대해서 많은 부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계기가 되는 것이 아몬이 건내 준 안경ㅡ아마도 능력 사용에 있어서 초점이 안 맞는다고 본 것이겠죠?ㅡ인데, 안경을 통해서 그녀는 애니에서 처음으로 능력을 똑바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로빈은 이에 대해서 대단히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데,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능력을 쓰거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사고를 당하자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로빈이 자신의 능력이나 임무에 상관없는 자기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로빈의 평화로운 시간도 STN-J의 산하 기관인 팩토리가 그녀를 헌트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깨지게 됩니다.

물론 팩토리가 로빈을 헌트하려는 것은 본부가 그녀에게 내린 임무도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위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녀가 좋은 일을 하고, 사람과 소통하면서 사람 속에서 섞여지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위치'라는 주홍글씨는 지울수 없는 것이지요. 즉, 로빈은 지울 수 없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로빈은 자기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본부를 위해서 위치를 사냥했지만 역으로 이제 자신이 솔로몬에 의해서 헌트당할 위험에 놓였다면,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로빈은 STN-J에서 도망간 이후, 아몬의 친구인 나기라의 사무실에 몸을 숨깁니다. STN-J에 있으면 동료들과 자신이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펙토리가 STN-J 본부를 습격하고 난 뒤, 로빈을 헌트하기 위해서 본부에서 헌터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로빈은 어쩔 수 없이 본부의 헌터들을 죽이게 됩니다. 또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위치'들이 단지 선조 위치와 혈통이 이어졌다는 이유로 헌트당하는 광경도 목격하게 되죠. 이러한 과정에서 로빈은 극심한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로빈의 꿈ㅡ아몬이 로빈에게 총을 겨누면서, '위치는 헌트해야만 한다'라고 하고 로빈이 아몬을 불태우는 내용ㅡ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로빈의 고민은 점진적으로, 극적인 전개없이 해결됩니다. 그것은 그녀가 나기사의 사무소에서 다른 위치들을 만나고, 자신을 헌트하러 온 헌터들에게 저항하는 등의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다시 로빈과 재회한 아몬이 로빈에게 총을 겨누지만 쏘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헌터였다는 것, 그리고 위치라는 사실에 얽메이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다가오는 적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벌려놓은 이야기는 마무리 짓기 위해서), STN-J의 동료들과 함께 펙토리를 습격합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여러 작품에서 많이 보였거나 변용된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로빈의 정체성 혼란과 자아 찾기 과정이 대단히 식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지요. 하지만 애니는 철저하게 로빈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일인극의 모습과 대사의 자제, 음악의 적절한 사용, 절제된 그림체 등을 통해 그러한 원죄에 대한 인물의 심리와 그 변화를 효과적으로 잘 다루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시 만나게 된 아몬과 로빈, 그리고 STN-J의 맴버들은 팩토리에서 오르보의 정체ㅡ살아있는 위치로부터 뽑아내는 물질ㅡ와 로빈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로빈은 로빈의 아버지가 인공적으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해서 만든 위치이며, 그 능력은 다른 위치에 비해 대단히 월등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STN-J의 지부장은 로빈의 아버지의 기록과 로빈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이구요. 이는 일반적인 애니에서는 후속작을 예고하는 대단한 떡밥이 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로빈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이나 원죄에 얽메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빈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게, 고작 그런거였나' 라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결국 로빈은 자신의 출생과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홀가분해진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로빈과 아몬은 잠적하게 됩니다.

위치헌터 로빈은 클리셰와 진부함으로 가득찬 작품이지만, 그러한 클리셰와 진부함을 분위기와 절제된 감정묘사, 연출로 커버하고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무라세 슈코의 다음작인 에르고 프록시를 본 것이죠.

...네, 다음 작품은 에르고 프록시입니다. 아마 반쯤은 욕설로 도배를 한 칼럼이 될 것이라 봅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좀 점잖은 짤을 원했건만, 흠흠)


마크로스 F는 마크로스 7 이후 근 16년 만의 신작입니다. 사실, 제가 마크로스 전 시리즈를 감상 완료한 시점 즈음에서 마크로스 F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번 F에서는 과연 마크로스 원작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뭐, 실제 나온 F는 마크로스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삼각관계, 음악, 전투 이렇게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고, 마크로스 시리즈를 나름대로 재해석 했으며 그리고 나름대로의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원작 마크로스 이후의 새로운 마크로스 시리즈의 전통을 확립했나 라는 부분에 있어서 저는 좀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밑에서 차차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마크로스 F는 마크로스 7 이후로 한참 뒤의 이야기(2059년)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크로스 7 선단 이후, 은하 최중심을 향해서 가고 있는 프론티어(Frontier) 선단에서 주인공인 알토와 아이돌 지망생인 란카, 그리고 성공한 아이돌인 쉐릴 사이의 삼각관계, 외계생물 바쥬라와 그와 관련된 음모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구성은 원작 마크로스 시리즈의 구성들-삼각관계, 외계생물과 인카운터->전투->화해와 이해의 구조, 연애와 외계생물과의 조우 과정에서 음악의 중요성 등-을 따르고 있지만, F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전작에 대한 원용과 변용을 시도합니다.

일단 란카와 쉐릴이라는 두 히로인은 前 마크로스 시리즈의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있는 주인공들인 린 민메이와 넥키 바사라의 변주입니다. 사실 이 둘을 명백히 변용했다고 주장하거나 드러내는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인물이 하는 행동 등에서 이 두명이 과거 민메이와 바사라의 오마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란카가 미스 마크로스 대회에서 '나의 그이는 파일럿'을 부르거나(민메이가 제 1회 미스 마크로스에서 불렀던 노래), 중국집에서 알바를 하는 부분(민메이는 중국계 혼혈로 원작 마크로스에서 중국집에서 삼촌을 자주 도왔음), 자주 린 민메이와 비교되는 부분(후에 바사라를 동요하게 하는 작전 이후로 민메이와 많이 비교가 되었음) 등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쉐릴은 '나의 노래를 들어!'(바사라가 즐겨 말하는 대사 18번)라는 대사, 그리고 그 근거 없는 자신감 등은 바사라의 케릭터와 맥이 많이 닿아있습니다.

하지만. F는 이러한 오마주를 변용하여 발전 계승 시킵니다. 전작에 있어서 각각 케릭터들이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쳐서 작품 내에서 벨런스가 깨졌던 문제들-예를 들어 민메이 같은 경우는 소녀의 감수성을 잘 살린 케릭터였지만 동시에 너무나 자기 중심적인 문제가 있었고, 바사라 같은 경우 너무나 극중에서 뛰어난 나머지 애니 내에서 파워 벨런스를 다 무너뜨렸다는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마크로스 F는 이러한 케릭터의 성격의 벨런스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란카 같은 경우, 민메이의 소녀 같은 매력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소녀의 수줍음을 추가하여서 원작 마크로스의 대단히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탈피하는데 성공합니다.(이런 면에서는 극장판 마크로스의 민메이와 멕이 많이 닿아 있습니다) 이는 알토를 좋아하는 란카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잘 드러나는데, 란카가 알토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해매는(?) 부분은 란카라는 케릭터를 잘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토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이러한 소녀같은 수줍음을 잘 드러내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희일비하는 부분이나 수줍어서 제대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란카의 모습을 보고 많은 팬들은 '뭐 어쩌자는 거냐' 식의 짜증을 표출하였고, 심지어 란카가 아이 군을 바쥬라의 모성으로 데려가려 했을 때는 '잘됬네, 꺼져라 녹색균'이라면서 란카를 심각하게 까더군요. 사실, 저는 이러한 란카의 소녀같은 수줍음이 마음에 들었고, 이것이 란카라는 케릭을 살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수줍음을 가지고 케릭터를 심하게 까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취향차이면 모르겠지만요(........)

쉐릴 같은 경우, 마크로스 7에서 바사라가 겪지 않았던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됩니다(물론 바사라가 내용적으로 고난을 겪는 부분이 있기는 있지만,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난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수행의 일종으로 보이더군요;;) 그것은 자신이 쌓아왔던 명성과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그것도 그레이스가 뒤에서 조작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지만)을 보고, 좌절하는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거기에다가 지병(이라고 보기에는 미묘하지만 하여간)이 겹쳐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위태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좌절에서 쉐릴은 다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자각하고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이러한 자존심이 높은 케릭터가 추락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서 케릭터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정당화 하고, 케릭터의 성격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래 이러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올라오는 케릭터의 모습은 이 쪽 장르에서는 많이 쓰였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케릭터가 바사라를 오마주한 케릭터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오히려 쉐릴의 케릭터는 설득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바사라의 매력을 그대로 지닌 케릭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크로스 F에서 가장 재밌는 점은 바로 기존의 마크로스 시리즈의 외계 존재와의 만남의 틀을 역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마크로스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문화를 모르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과 조우하면서, 인간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계의 전반적인 흐름은 이러한 일방적인 전파나 전도의 방식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마크로스 시리즈도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서 새로운 시리즈의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마크로스 F는 이와 반대로 외계 생물인 바쥬라가 인간과는 다른 형식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 시리즈 전통적으로 외계 생물들이 노래와 문화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비해서, 바쥬라는 노래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의 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문화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대립 구도를 형성합니다만, 그것이 언제나 전면적이거나 서로를 궤멸시킬 만큼의 살의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쥬라와 인간의 첫 만남은 전면적인 전쟁을 일으킬 만큼의 증오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이러한 바쥬라와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전쟁을 불러와야지 애니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기 때문에 마크로스 F도 그러한 요소를 애니 내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러한 오해와 불신을 일으키는 원인이 바로 거대 자본과 권력가들의 어두운 욕망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것 또한 오랫동안 쓰여온 이야기 소재이며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 장치입니다만, 여태까지 마크로스 시리즈에서는 마크로스 플러스 이외에 한번도 쓰이지 않은 장치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마크로스 플러스에서는 이러한 이야기 장치가 부수적인 맥락으로 쓰였다면(사실 모든 건 뮨의 또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샤론 애플이 불러일으킨 문제지요), F에서는 이것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된 장치입니다.

또한 주인공들이 속한 SMS라는 단체가 정부소속이 아니라 사설 경비업체, 쉽게 이야기하자면 용병들이라는 점도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는 과거 주인공들이나 주요인물들이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부측에서 일하면서 외계인들과의 침략에서 인간을 대변해서 싸웠지만, F에서는 사설 용병 단체이기 때문에 거대 자본이나 정부의 음모에 의해서 휘둘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실제 전개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많이 나오구요. 그렇기 때문에, F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대단히 미묘합니다....만 알토는 그런거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이 문제는 밑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그래서인지, F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26화에서는 원작 마크로스의 인류가 수비를 맡고 외계인이 공격을 맡은 구도를 뒤집어서 인류가 침략, 공격자가 되고 바쥬라가 자신의 모성을 보호하는 수비자가 되는 기묘한 구도를 연출 시킵니다(어떻게 보면 마크로스 7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또한 세뇌당한 란카의 거대한 홀로그라피는 과거 마크로스 플러스의 마크로스 전함을 이용한 샤론 애플의 거대한 홀로그라피를 연상시키구요. 하지만 그러한 껍질을 벗기고 보면, 그 속에는 거대 자본의 야망-파괴된 줄 알았던, 거대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베틀 겔럭시-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모두 갤럭시 선단의 음모임을 안 마크로스 프론티어와 바쥬라는 배틀 갤럭시를 더블 마크로스 어텍(마크로스 쿼터와 베틀 프론티어의 더블 다이달로스 어텍!)으로 격파, 그레이스를 마크로스 제로에 나왔던 프로토 컬쳐의 유산과 비슷하게 생긴 바쥬라 퀸의 머리로부터 안전하게 분리한 후에 폭파시킨 후 바쥬라의 모성에 안착합니다. 결국은 거대 자본과 음모도 사랑과 기합의 힘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진다는 뻔한 결론을 내리는 마크로스 F입니다만, 마크로스 시리즈의 전통을 변용시켜서 색다른 형식의 마크로스를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낸 점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포커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미쉘, ‘비행중에 애인 이야기 하면 죽는다더라’라는 농담(원작 마크로스 극장판에서 카키자키가 비행중에 애인가지고 농담 따먹기 하다가 격추당합니다), 포커의 죽음을 패러디한 장면, 마크로스 7의 에피소드 ‘민메이 비디오’의 오마주가 분명했던 에피소드, 전작들의 제목과 비슷한 제목들 등은 F의 정체성이 마크로스 시리즈 전체의 정리와 재해석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크로스 F는 결정적으로 한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부재입니다. 사실, 연애라는 요소가 중요한 마크로스 시리즈에서 히로인에 못지 않게 주인공의 비중도 큽니다. 결과적으로 삼각관계에서 주인공이 한 여자를 선택해야하고, 거기에 어떤 정당화 사유를 부가하고자 한다면 주인공도 히로인들에 못지 않은 케릭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크로스 F의 주인공 사오토메 알토는 전혀 그럴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해서 저는 이 케릭터에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더군요. 일단, 어떤 케릭터든 간에 자신이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와 동기가 있고,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에서 그 케릭터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토의 행동 동기는 대단히 뭐랄까...찌질합니다. 아니, 찌질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케릭터입니다. 전통적으로 가부키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단순히 어머니에 이끌려 하늘을 동경하고, 그것이 어머니가 죽은 뒤에는 가부키에 대한 도피처가 되고, 그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없이 대충 남들 하는 말이나 들으면서 살다가 애니가 끝납니다. 게다가 애니 진행 도중에 수많은 케릭터들이 '그렇게 살지 마라' 라는 아주 진지한 충고를 해줌에도 불구하고, 이 케릭터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케릭터가 주장하고 싶은 바가 뭡니까? 저는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대충 진지한 척 쿨게이스럽게 살다보면 인생 해피하다는 건가요? 아니면, 쿨게이스럽게 대충 살기 위해서는 성 정체성이 모호한 외모와 발키리를 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사실, 알토의 케릭터성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쉐릴과 란카의 케릭터를 확립하기 위해서 애니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였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알토에 대한 케릭터 묘사는 줄어들고, 그 자리에 쉐릴과 란카의 케릭터 묘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워낙이 독특한 케릭터들 사이에 있다보니까 상대적으로 그의 케릭터성이 죽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출연빈도가 적은 케릭터들-예를 들어 오즈마 라던가;;-도 자기 케릭터를 확립했기 때문에 뭐랄까 미묘한 케릭터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알토 하나만 빼면 대단히 괜찮은 마크로스 시리즈입니다. 그래요. 다만 알토가 주인공 이라는게 문제죠(.......) 그 덕분에 애니의 가장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쉐릴 대 란카의 연애전선에 있어서 할램 루트를 타버리는 어쩡쩡함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알토를 포함하더라도 마크로스 F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도 나름 완결적으로 짜여졌으며, 전체적으로 작화도 좋고(물론 중간 중간 작붕이 있었지만), 시리즈 26주년 기념으로 전체 시리즈를 한번 포괄하는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알토라는 케릭터의 문제,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마크로스가 아니라 원작의 변용 발전이라는 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점점 카와모리 쇼지의 개인작품이 되어가고 있는 마크로스 시리즈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덧.모든 시리즈를 보신 분들이면 26화에 나온 모든 장면들이
전 시리즈에서 오마주 한 것이라는 걸 눈치채실수 있습니다. 거의 한 장면도 빼놓지 않구요.

덧.위에 넣을 마크로스 F짤을 찾았는데, 왜 모두가 크랑크랑 짤인거죠?

덧.이로써 마크로스 전 시리즈 리뷰가 끝났습니다.
마크로스 2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시간나면 하고, 안나면 안하는거고.....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작품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한 컷)

 우와...오랜만에 '이거다!'라는 느낌으로 보고 있는 만화입니다. 국내에는 정식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웹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번역본으로 보고 있는데, 다행히 번역하시는 분이 대단히 멋지게 번역을 해주시고 있어서 별 무리 없이 감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번역 작업을 대패질이라고 하시는 듯 싶은데, 이분들의 대패질은 대단하더군요. 솔직히 정식 출간된 만화라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일단 만화의 제목인 도로헤도로(ドロヘドロ) 자체가 '진흙구정물'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데, 실제로 만화의 분위기 자체도 지저분하면서 끈적한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끈적하고 지저분한 느낌안에서 미묘하게 따뜻한 감성을 지닌 케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다만 다른 사람한테는 별로 따뜻한 감성을 지니지 않은 케릭터들입니다;;) 내용은 카이만이라는 도마뱀 인간이 친구인 니카이도와 함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플룻은 호랑이가 담배 필 시절서부터 써먹었던 플룻이지만, 도로헤도로는 그러한 플룻의 식상함을 독특한(혹은 대단히 기괴한) 설정과 일러스트로 커버합니다. 일단 마법사들의 가면이라던가(역시 가장 임펙트가 있는 것은 심心의 가면. 이건 참 뭐랄까, 보면 압니다.), 마법사와 악마의 관계,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검은 연기, 기괴한 마법 설정, 카이만의 머릿속에 있는 또다른 남자(그래서 매번 카이만이 마법사들을 잡아서 입 안에 넣고, '입안의 남자가 뭐라고 하든?'이라고 묻는데 나름 웃깁니다) 등 기존의 설정을 빌려와서 왜곡 변형 시키는 센스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묘사나 광기 묘사가 대단히 박력이 있습니다. 일단, 분노나 슬픔, 미묘한 감정 등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거친 선으로 적절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심이 열받는 장면들은 근래 본 만화 중에서 가장 임펙트가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카이만이 꾸는 악몽이나, 십자눈 일당의 보스가 나올때마다 등장하는 이미지의 왜곡 등은 멋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기 묘사의 절정이랄까, 하여간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다만 초반의 분위기와 달리 최신 연재분의 분위기는 대단히 판타지 스럽기 때문에(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말그대로 '판타지'), 초반 분위기가 마음에 드신 분들은 나름 실망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처음부터 '이건 판타지 물입니다'라고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전개를 보여줍니다. 다만, 현재 전개 중에 대단히 머리 아프게 하는 전개가 있어서... 이 부분은 나중에 직접 포스팅으로 다루도록 하죠.

보는 곳은 여기(1권의 마의 1에서부터) : http://blog.naver.com/holyarkangel/53389005

덧.IKKI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보쿠라노, 라이드벡 등의
작품을 연재중인 곳이죠.  갑자기 정기 구독하고 싶어지는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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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나 가서 변명하지 그러냐)

망념의 잠드

20화까지 감상. 사실 올해 최고의 명작은 단연 망념의 잠드가 아닐까 싶네요. 나오는 케릭터들이 모두 매력 있고, 매화 매화 작화도 좋고, TVA(라 하기에는 미묘하지만)로써도 이야기 탬포도 좋고, 주제의식도 괜찮습니다. 20화 들어서면서 이야기의 끝이 보이는 느낌인데, 일단 19화에서 아키유키와 하루가 만나고 아키유키가 드디어 가면을 벗게 됩니다. 비트 카야크로 하루가 떨어지는 아키유키를 받아내는 모습은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의 26화에서 랜튼이 떨어지는 에우레카를 니르밧슈로 받아내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아키유키의 등에 난 초록색 날개는...코라리언?(......)

재밌는 점은 북쪽의 히루켄 황제도 잠드였다는 것. 하지만 경동자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장면이나, 잠드 치고는 상당히 이상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점 등은 히루켄 황제가 이야기 내에서 대순례와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됩니다. 게다가 '나를 죽이러 와라, 아키유키'라는 장면은 뭐랄까, 히루켄 황제도 대단히 꼬여있는 상황에 처한 인물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케샨 Sins

점점 케샨의 각성을 통해서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케샨 Sins입니다. 이쪽도 슬슬 케샨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봐줄만하더군요. 하지만, 디오가 그 찌질이의 역할을 이어받고 있군요(......) 10화에서 자기 스스로 '나는 콤플랙스에 휩싸인 놈인가'라고 하던가, 일부러 케샨이 낸 상처를 유지하려고 하던가, 혹은 둔이 계속 루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받아 하는 모습이라던가, 이 자식 케샨보다도 더한 찌질이더군요. 뭐 이거 웃을 수도 없고...케샨의 찌질함을 발전+변형 시킨 별로 보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근데 뭐랄까, 디오도 케샨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인거 같더군요. 아니, 엄밀한 의미에서 '로봇'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았을때는 인간을 로봇의 형태로 개조한거 같은 느낌이 나는데(피가 나고, 살이 떨어져나가는 등), 정확하게 설명이 나와야 할 거 같습니다.

소울이터

드디어 오리지날 스토리로 들어가고 있는 소울이터입니다. 사실 4쿨 짜리 애니가 37화 즈음서부터 오리지널 스토리로 들어가는 건 너무 늦지 않았냐는 생각도 어느 정도 듭니다. 혹시 51화 내로 그 모든 떡밥들을 처리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닌가로 생각합니다.  

블랙스타의 폭주 장면은 나름대로 강렬하더군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은거나 다름없다고!'라고 외치는 부분은 정말 멋졌습니다. 다만 그게 앞으로 부정적인 부분으로 나아갈거 같다는게 문제지만요;;

철완 버디 Decode

으음...10화쯤에서 본궤도에 올라선 철완 버디. 이야기 전개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물론 2쿨이라는 걸 감안(2시즌이 올 1월에 방영)한다면, 아주 나쁜 탬포는 아닙니다. 그래도 여러가지로 시즌을 둘로 나눴는데 이래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이 적잖게 들더군요. 게다가 은근히 작붕도 눈에 보이고, 케릭터도 아카네의 전작 노에인이나 히트가이 J보다 딸린다는 느낌이고, 액션도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군요. 사실 나쁘다기 보다는 미묘하다 라는 평이 더 적절합니다.

그래도 10화에서 운디네 vs 버디의 전투씬은 대단히 거친 느낌으로 잘 만들어졌더군요. 군데 군데 작붕이 눈에 대단히 밟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케샨의 아크로바틱한 액션과 달리 둔탁하고 거친 느낌의 액션-운디네 전에서 버디는 만신창이가 되서 겨우 이깁니다.-을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륭카도 슬슬 각성하였고, 이제 남은건 13화까지 어떻게 이를 정리하고 2시즌으로 이야기를 넘길건지가 관건이군요.

덧.그외에 턴에이, 스피드그래퍼 등도 보고 있지만, 아직 감상평이 올라올 정도는 아니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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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앞서서

 워낙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보니까,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는군요. 사실, 건그레이브는 과장 좀 보태서 제 인생에 있어서 뛰어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이거 보다 더 좋은 작품도 많죠. 하지만, 뭐랄까 지금봐도 참 여러생각이 드는 애니입니다. 쓸쓸한 분위기, 친구, 인생 등등...뭐, 단순한 애니를 보면서 별의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하면서 본다고 비웃을 분들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당시 재수 시작 당시 뇌리에 박히는 내용을 보여준 것이 바로 건 그레이브였습니다.(그러고 보니 재수 할때 본 것들은 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건그레이브를 죄악업 칼럼에서 다루려하니까, 심경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재수 시절보다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이런 글을 쓰려니까 여러 잡상들이 들었구요. 뭐, 결과적으로 그러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애니 자체에 대한 글을 쓰려 노력했고, 장장 A4 5장에 걸친 칼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결론을 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2부 건그레이브:순수의 비가

과거 PS2 시절 캡콤이 만들었던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이 2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Devil May Cry 시리즈였고, 나머지 하나는 건그레이브였죠. 사실 DMC 같은 경우에는 성공을 거두어서 지금까지도 그 시리즈가 나오고 있지만, 건그레이브는 PS2 때 후속작 O.D(Over Dose)까지만 나오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니판 건그레이브는 그러한 PS2 게임인 1편이 나오고 Over Dose가 나오기 이전 그 사이에 나온 매드하우스 제작의 애니입니다.

사실, 원작 게임을 해보고 애니를 본 사람들은 이 애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이 감상한다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애시당초부터 원작 게임이 지향했던 게임의 컨셉은 '스타일리쉬하게 총을 쏘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이라는 것이었고, 게임 제작자도 '그레이브가 탄창을 갈아끼지 않는 이유는 탄창을 갈아끼면 멋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힐 정도로 과도한 파괴와 살상의 미학을 추구하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애니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원작 게임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한 것입니다. 애니의 내용의 절반 이상은 비욘드 더 그레이브의 인간 시절의 이야기 브랜든 히트의 이야기 분량이고, 그레이브는 폼난다기 보다는 구질구질하고 우울해졌으며, 애니 내에서는 총알이 다 떨어져서 탄창까지 갈아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본다면 원작 게임에서 큰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당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건그레이브는 원작보다 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원작이 과거 친구였던 그레이브와 해리의 현재의 싸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애니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선택의 과정을 대단히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흑가 사람들의 우정과 배신 등을 다룬 장르를 우리는 흔히 '느와르'라고 칭하는데, 느와르 장르가 인물의 감정묘사 등에 약한 애니 장르에서는 힘듭니다. 그러나 건그레이브는 그러한 애니라는 매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서 애니에서 보기 힘든 느와르 장르로 대단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흔히 보통 느와르 장르에 있어서 악은 배신입니다. 암흑가는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손에 죽을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배신이라는 행위는 오로지 죽음으로서 밖에 속죄할 수 없습니다. 느와르 장르에 있어서 믿음과 배신이라는 코드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있어서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건그레이브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동력이 배신에 대한 응징인 복수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는가’, ‘왜 우리는 이러고 있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브랜든과 해리는 서로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해리는 브랜든과 빅데디를 위시한 밀레니엄의 믿음을 배신하였고, 브랜든은 해리와 자신과 함께한 동지들-특히 쿠가시라 분지-의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입장에서 본다면, 해리와 브랜든은 각자의 신념에 충실했습니다. 해리는 자신의 ‘자유’라는 신념에, 브랜든은 밀레니엄의 신조에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그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브가 애니 첫화에서 읇조리듯이, ‘어디서...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라는 것처럼 어떻게 본다면, 이 죄와 악은 처음도 끝도 없는, 머리와 꼬리가 물린 우로보로스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해리 맥도웰이란 인물은 건그레이브에서 브랜든 히트에 대항하는 일종의 악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악인일까요? 일단 해리의 역할은 극중에서는 악역이 맞습니다. 애니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미카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기에게 대항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고 억누르며, 살아있는 인간을 잡아서 괴물로 만드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과연 그가 단순한 악인으로 그레이브에 반대되는 역할이라고 보기는 대단히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는 애니 초반부, 해리가 브랜든에게 했던 대사 '자유롭게 되자, 브랜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그는 그냥 머리가 대단히 잘 돌아가는 3류 양아치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그러한 자유를 위한 힘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친구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린 충격에서부터 가속화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밀레니엄에 들어간 후,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길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밀레니엄의 이념과 신조보다는 자신에게 열린 자유의 가능성을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를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브랜든과 함께 나누길 원하죠. 하지만, 그의 무차별적인 팽창과 조직의 이념과 신조에 반하는 행동들은 결국 조직의 창립자이자 수장인 빅 데디에게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해리는 결국 빅 데디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죽이려 했던 브랜든을 죽이고, 빅 데디를 죽임으로서 밀레니엄이라는 조직의 최상부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게 됩니다.

사실, 기존의 악역이나 악인들이 처음에는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다가 후에는 변절하거나 망가지는(예를 들어서, 건X소드의 갈고리 손톱 남자의 마지막이라던가) 케이스가 많았습니다만, 해리 같은 경우는 거의 끝까지 자기 원칙에 대해서 일관됩니다. 그가 후에 밀레니엄의 보스가 된 후에, 그의 자유의 대원칙인 ‘원하는 만큼 빼앗고, 원하는 만큼 나누어 주겠다.’에 충실합니다. 경쟁자들이나 자신에게 대항하는 판사를 눈하나 깜작하지 않고 죽이는 동시에, 고아원에 가서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모습은 해리의 가식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그가 추구한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브랜든의 배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설였던 브랜든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그에게 조직의 배신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웁니다. 해리에게 있어서, 브랜든의 배신은 곧 자신과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레이브가 등장했을 때, 그를 과거의 망령 취급합니다. 그레이브는 해리에게 있어서 그저 지나가버린 과거이고, 그러한 과거가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십 몇 년 가까이 쌓아올린 부와 권력은 과거의 망령의 등장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해리는 스스로가 배신했던 과거에 의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마음에 듭니다. 사실, 해리의 파멸을 불러온 것은 다름아닌 해리 그 자신이니까요. 결과적으로 그가 죽였던 브랜든이 망령으로 돌아와서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것이 결국은 너무나 쉽게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브랜든은 어떨까요? 브랜든은 동네 양아치 시절 절친했던 친구들이 죽고, 그 후 해리를 따라서 밀레니엄에 들어갑니다. 사실, 해리는 밀레니엄을 통해서 자신의 가능성과 자유를 보았다면, 브랜든은 역으로 조직의 신념을 깨달아갑니다. 빅 데디가 조직을 세우면서 삼았던 이상, 그것은 바로 ‘지킨다’(守る)입니다. 자신과 자신을 믿는 가족(Family)들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것, 그것이 빅 데디의 밀레니엄이었고, 브랜든이 이해한 밀레니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빅 데디와 해리, 그리고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밀레니엄의 스위퍼, 즉 살수(殺手)가 됩니다.

하지만, 그도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밀레니엄에 깊이 발담그면 발을 담글수록, 역설적으로 지키려는 자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는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온갖 더러운 일을 맡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순수하지 못하다고 특히, 그를 사랑한 마리아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순수를 버렸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는 자신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자괴감과 함께, 자신과 관련되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그의 신념도 해리의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해리가 역으로 자신의 신념인 조직을 그 근간서부터 문란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빅 데디가 만약 해리가 조직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물었을때 가차없이 제거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을 때 브랜든은 해리를 쏘지 못합니다. 분명히 자신의 신념과 기대를 배신한 것은 해리였고, 해리로 인해서 조직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뻔히 잘 알면서 말이죠. 결국 브랜든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브랜든이 자신을 배신하였다고 생각하는 해리의 손에 죽게 됩니다.

그 후의 브랜든의 네크로라이즈화 된 모습인 비욘드 더 그레이브는 닥터 T가 이야기 하듯이, 브랜든이라는 사람은 죽고, 여기 있는 사람은 무덤에서 일어난 망령(Beyond The Grave, 무덤을 넘어선 자)입니다. 해리가 자신을 죽일 것을 미리 예견한 브랜든이 해리를 다시 원래 조직의 신념 체계내로 끌어들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초 강경수이지요. 하지만, 해리의 배신 이후 죽어서까지 조직에 충성하려는 브랜든의 유지를 본 빅 데디는 그러한 브랜든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면서 닥터 T에게 더 이상 브랜든을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잠들뻔한 브랜든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해리였습니다.

오랫동안 잠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혼선을 겪는 그레이브에게 남은 것은 조직의 신념, '지킨다'와 그 지킬 대상인 마리아와 빅 데디의 딸 미카였습니다. 그는 차례로 밀려오는 조직과 과거의 자신의 친우들-해리를 위시한 발라드버드 리, 밥 파운드멕스, 베어 워큰, 쿠가시라 분지-을 차례로 묻어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조직의 신념을 배신한 죄를 과거의 망령인 그레이브가 과거를 대신해서 처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니에서 비추어지는 그들의 싸움은 악과 선의 대립이 아닌, 뭔가 다른 것입니다. 떠오르는 희미한 햇빛을 받으면서 폐허 속에서 죽어간 밥 파운드맥스, 아무도 없는 철로에서 석양을 받아가면서 죽었던 발라드버드 리, 눈 오는 폐허에 죽은 베어 워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된 밀레니엄 본사에서 쓸쓸히 죽은 쿠가시라 분지. 이들의 죽음은 전형적인 악인의 죽음과 질서의 회복의 이미지보다는 허무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그 중 브랜든에게 가장 의지했던 쿠가시라 분지는 그레이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해리를 배신했느냐? 당신은 해리와 함께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었느냐?

결국은 브랜든 시절의 기억이 싸움을 통해서 돌아오기 시작한 그레이브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조직의 신념, 그리고 지킬 것을 지킨다는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 행동한 그였지만, 그러한 복수와 처벌의 과정에서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낍니다. 아니, 사실 그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애니의 첫부분의 그레이브의 독백)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무엇이 잘못된걸까? 그는 마지막 복수의 대상인 해리를 남겨두고 갈등합니다.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조직과 이상은 이런식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레이브가 그의 복수를 거의 끝내가고 있을 무렵, 해리는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엄청난 양의 재산과 권력,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아내까지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발악으로 오그맨을 이용해서 자신을 배신한 조직을 향해서 공격을 가하지만, 그 공격조차 내부의 배신자(해리 입장에서 본다면)에 의해서 허망하게 무화되어버리고 맙니다. 해리는 도망치면서 생각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걸까? 그는 도주중 그레이브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작되었던 시작점, 최초의 장소로 되돌아갑니다. 저는 이 비유가 마음에 들어요. 목숨을 걸고 언제나 함께 해왔지만, 결국은 해어지게 된 두 친구가 다시 자신들의 첫 시작점으로 돌아와서 서로를 대면하는 것, 서로의 마지막 장소를 처음 시작한 장소에서 맞이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니까요. 해리가 묻습니다. 그때 왜 쏘지 않았냐?

왜 쏘지 않았는가? 네가 나를 쏘았으면, 자신의 신념과 조직을 지킬 수 있었는데 왜 쏘지 않았는가? 결국 네가 이야기 하고 싶은게 뭐냐? 그 질문의 끝에 브랜든이 이야기 합니다.


너를 쏠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몇 십년만에 망령이 되어서 돌아온 브랜든이, 자신의 신념, 조직,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해리에게 내놓은 대답은 자신의 친우를 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죠. 조직은 해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집을 포위합니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으로 내몰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눕니다. 다시, 다시 한번 원점으로 회귀하자. 조직, 신념, 자유 등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서로에게 순수했던 옛날로.

결론적으로 건그레이브에 있어서 죄와 악은 순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서로에게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파에 너무 찌들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죠. 그러한 잘못들에 대해서, 건그레이브가 내놓은 결말은 처음, 순수로의 회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 마지막에 브랜든과 해리가 만났던 첫 시점으로 돌아가는 점은 여러 가지로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둘이 세상에게서 버림받았을지언정, 마지막에 진정한 우정이라는 순수를 되찾은 것이니까요. 그들이 저 세상에 가서 평화롭기를 빕니다.


Rest In Peace, Brandon & Harry



덧. 작년에 마지막화만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덧.첫화 제목이 '황혼의 파괴자들',
 그리고 마지막화 제목이 '파괴자들의 황혼'입니다.
제목 정한 센스가 멋지더군요.

덧.이건 그냥 제 망상일수도 있지만,
건그레이브가 일종의 인생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지더군요.

덧.진짜, 원래 대사는 '해리를 쏠 수 있을리가 없잖아?'인데,
머릿속에 그 대사가 박히더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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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전 정보 없이 봤다가 뒤통수를 심각하게 맞은 작품입니다. 사실, 원래 저는 동생이나 여기저기서 정보를 알아본 다음에 영화를 보러다닙니다만, 이번같이 간단하게 '칸느에서 대상을 받을 뻔한 애니메이션'(대상은 프랑스 영화 '교실'이 받았습니다),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 정도로 알고 가서 봤는데...아주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입니다. 정확한 장르는 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입니다만,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장르를 규정 지을수 있는지가 의문이군요.

2.일단 개인적 체험과 역사적인 체험이 만난다는 구도 자체는 과거 이란 여성이 자신의 수기를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와 비견될 수 있으나, 페르세폴리스가 그러한 경험을 일종의 동화의 형태로 표현을 했다면, '바시르와 왈츠를'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고수 합니다. 즉,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음을 깨달은 감독 자신이 자신의 기억을 계속 되짚어 올라가는 형식의 다큐멘터리 처럼 말이죠. 그러나 매체가 인위적인 느낌을 내는 애니메이션이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블레어 위치와 같은)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영화 장르 자체가 현실적인 사실을 지향하는데 비해서, '바시르와 왈츠를'은 개인적인 경험과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쟁에서의 개인적인 체험을 초현실적으로 다루어내는 전쟁 드라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바시르와 왈츠를'의 대부분의 밑그림은 실제 촬영한 필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여기에 셀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플레시 애니메이션, 컷아웃 기법 등을 동원해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즉, 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는 이제 미묘해졌지만)은 진짜 실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끼는 대부분의 생각이나 감정은 일차적으로 자신과 스크린 사이의 차이가 있음을 그 근저에 두고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를 보는 내내, 우리는 감독 아리 폴만의 초현실적인 과거 경험이 일종의 허구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실제 감독이 겪었던 일이었든 아니었든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 얽힌 초현실주의적인 환상이나 회상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개인적인 초현실주의적인 체험과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일어난 팔랑헤 당원들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에 연결되게 됩니다. 그 사건을 당시 취재했던 리포터의 이야기와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그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레바논 전쟁 당시의 기억 상실의 원인이 감독 자신이 그 광경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부분에서 영화는 갑자기 현실로 돌아옵니다. 당시 리포터가 찍었던 사브라와 샤틸라 수용소의 학살 후 폐허 장면을 말이죠. 이렇게 영화는 개인적인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체험에서 시작해서 팔레스타인 학살이라는 사회적인 경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어떻게 보면 이건 심각한 장르의 반칙입니다. 마치, K-1 선수가 싸우다가 칼이나 총같은 흉기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사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애니를 만든 페르세폴리스 같은 경우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라는 장르에서 벗어나지 않았죠.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러한 장르를 뒤집으면서(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러한 '반전'은 제작 단계나 기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보는 관객에게 경악 또는 충격, 혹은 불쾌감('나는 애니를 보러 온거지, 다큐멘터리를 보러온게 아니라고!' 라는 식의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감독이 의도했던 바를 철저하게 애니메이션이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내었으면 어떻게 될까요?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열심히 다루다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결부지으면서 끝나게 될 것이고,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열심히 사회적인 경험과 역사를 이야기 하다가 개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시르와 왈츠를'은 그러한 사회적 개인적인 체험이 결과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다른 전쟁 다큐멘터리나 영화와 다른 독특한 체험을 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해서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충격을 받았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신겁니다. 사실, 전쟁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넘쳐나고, 그런 영화를 보고나서 '아 그런가 보다'하고 넘기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는 자체에서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니까요.

4.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There Will Be Blood'와 더불어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서 대단히 독특한 영상미와 더불어서,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은 매세지, 주제, 그 방법 까지 모두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니까요.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이 되었으니, DVD가 나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덧1.해변가에서 조명탄이 터지면서 아리와 동료들이 일어서는 장면은
올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였습니다.
덧2.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갔다가, 사람들 반응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ㅠㅠ
역시 저는 스노비즘인건가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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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 얀데레(.....) 히로인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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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플레그 세운 히로인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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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안 봐도 알 거 같은 순애보형 히로인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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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로리 히로인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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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히로인이지만, 물과 공기 취급받고 있는 안습의 히로인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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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케샨 손에 죽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 신비계 히로인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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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8화 나왔는데, 도합 7명의 여자와 만났음.
아주 할렘을 하나 차리지 그러냐, 앙?
나중에는 진짜로 '지나가는 소녀가 있었다'가 나올지도....

....뭐, 농담이고,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근데 굳이 꼭 여자하고 엮일 필요는 없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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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여자가 아니라서 죽어버린 아코즈에게 묵념을
(뭔가 아닌거 같지만서도;)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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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념의 잠드

13화 이후로 14화가 거의 4주 가까이 나오지 않아서 감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에 겨우 구해서 보았는데....이랄까, 14화 스토리상의 분위기 반전이 완전 개쩝니다. 게다가 후유이치는 완전히 개★죽★음, 아키유키는 잠드에게 자아를 먹혀서 기☆억☆상☆실 잇힝~(.....) 사실, 애니 분위기가 뜬금없이 급반전 된 건 아닌거 같습니다. 여태까지 쌓여왔던 전쟁으로 인한 광기가 표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달까(특히 아키유키를 쏘았던 ASP 조종사 같은 경우), 결과적으로 어두워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후유이치의 잠드화라는 촉매를 통해서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13화에서 후유이치의 잠드화가 매우 뜬금없었다고 처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유이치라는 케릭터 자체가 아키유키의 그늘에 가려져서 어두운 부분이 많았을듯한 분위기의 케릭터입니다만, 잠드화를 통해서 그것을 드러내는 부분이 나름 섬뜩했다고 할까나,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이제 폭주에서 풀린 후유이치를 자폭시키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그거보다 더 심하게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뜯어내버리는' 그런 잔인한 짓거리를 시키다니, 이제 후유이치가 좋아지려고 했는데; 하여간 14화 이후로 매우 기대하고 있는 망념의 잠드였습니다.

덧.완결 나면 罪惡業에서 다루고 싶은 제 1 순위 작품입니다.

케산 Sins

2008년 하반기 애니 중에서 가장 기대하고 열심히 보고 있는 애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애니의 작화, 분위기, 스토리 등이 올해 10월 나온 신작들 가운데서는 저와 많이 맞기 때문입니다. 캐산 Sins는 1970년대 타츠노코 프로를 대표했던 작품인 신조인간 케산의 리매이크 버전 많이 알려진 작품입니다. 애니 내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작화의 분위기가 옛 70년대 작화 필-바람 머리와 화려한 미형 케릭터 등-이 많이 나는 것은 그 때문인 듯 싶습니다. 최근 일본 대중문화에 있어서 예전에 흥행했던 코드나 작품들을 다시 현대적인 시각에서 리매이크 하는 것이 유행인 듯 싶은데, 스컬맨나 20면상의 소녀 등에서 그러한 성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최근 제가 본 메드하우스 작화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인물 작화에서부터, 배경작화, 그리고 전투 동화 등에서 마치 메드하우스 전성기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전투 동화에서 캐산과 적들의 기계적이면서 날카로운 충돌, 화려한 공중동작, 그리고 모니터 바깥에서 보고 있는 저로써도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은 현재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분위기의 곡예 액션을 보여주고 있는 본즈의 소울이터와 비교해서 독특하면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멸망하는 세계라는 컨셉에 맞추어서 보여주는 폐허의 세계는 여태까지 제가 보았던 폐허 묘사 Top 3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테크노라이즈의 밝으면서 삭막한 폐허와 다르게, 어두우면서 생명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절망적인 폐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뭐, 뒤로가면 갈수록 독특한 느낌을 주는 배경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특히 7화의 폐허가 된 공장의 분위기는 정말 독특했습니다.)

애니 자체는 종말에 가까운 세계와 함께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주면서, 세계를 파괴한 캐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인물들을 만나가면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캐산의 변화가 주축입니다. 사실, 애니를 자세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캐산 Sins의 처음 부분은 캐산이 루나를 죽이는 과거 부분을 조금 조금씩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화 매화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점점 뒷 이야기가 밝혀지는 형식이지요. 이 부분에서 케산은 완전히 기계적인, 감정이 없는 단순한 살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본 내용에서 케산은 대단히 찌질한 모습입니다(.......) 사실, 저는 찌질스럽기는 하지만 뭐 그럭저럭 봐줄만하다는 느낌이더군요. 저는 찌질한 것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애니 내내 케릭터의 변화가 하나도 없이 찌질한 것이 싫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작인 신조인간 캐산의 설정을 따르면, 로봇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캐산의 아버지가 아들을 인조인간으로 개조해서 싸우게 만드는데, 그렇게 된다면 아들 캐산 VS 아버지의 구도가 될 가능성도 커보입니다.

뭐 하여간 기대작. 올해 소울이터, 잠드, 캐산 Sins만 건진것도 대단한 행운인것 같군요.

덧. 나중에 이것도 罪惡業에서 한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울이터

애니 오프닝이 갑자기 꿈과 희망도 없는 암울 오프닝으로 바뀌고 나서, 점점 암울한 분위기로 바뀌는 듯한 소울이터입니다(.........) 이제 귀신 부활 후 슬슬 본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 드는 몇몇 부분들-예를 들어 마사무네 VS 블랙스타 리턴메치, 키드와 폭주열차 편, 메두사 부활, 크로나 다시 암울모드 등-이 눈에 띄더군요. 워낙이 잘만든 애니이고,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입에 바른 칭찬은 일단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 애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내가 생각하던 원작을 그대로 옮겼는데, 왜 내용이 다른 것 처럼 느껴지지?’입니다. 네, 사실 애니는 여태까지 거의 모든 원작의 스토리와 설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은 예전에 지적했던데로 임팩트나 박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고(이건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절대로 원작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 니가 이야기하고 싶은바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라는 질문이 만화를 보는 내내 계속들더군요. 그런데, 본즈가 제작을 맡고 나서는 같은 만화의 장면이 오히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게다가 은근히 많이 숨어있었던 서양 대중문화 코드에 대한 패러디가 더 찾기 쉬워졌구요. 따라서 이 작품은 본즈가 얼마나 무서운 제작사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원래 원작 초월 애니화이라는 것이 대단히 드문 케이스이고 어려운 것임을 감안한다면 말이죠.

턴에이 건담

아직도 열심히 시청중인 턴에이 건담입니다. 사실 12화까지 밖에 보지를 못했지만, 이 작품은 건담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메카물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더군요. 일단 턴에이 건담에 대해서 간단하게 평을 내리자면 ‘거대한 전투 메카가 나오지만, 전면적인 전투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원래 거의 모든 건담 시리즈가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언제나 그에 대항하는 악의 무리가 있었고, 그와 대립하는 선의 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턴에이는 아예 이 구도를 버리고, ‘우리편이나 상대편이나 다 좋은 놈’이라는 독특한 공식을 세우고 있습니다.

애니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전투의 대부분은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에서 시청자들은 문레이스와 지구인들의 갈등에서 딱히 지구인들이나 문레이스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미묘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제가 보았을때는 이런 미묘한 선악의 구분이 이 애니의 장점이자 미덕인것 같습니다. 계속 꾸준히 보아서 52화까지 볼 생각입니다.(근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52화까지 가는건지 OTL)

덧. 생각보다 이 애니, 우연과 기연을 많이 쓰는군요.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다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Who Watches Watchmen?)

사실, 영화화가 결정되었을때 여러가지로 걱정을 했었지만, 트레일러를 보니 생각보다 잘 나와준거 같습니다.....
랄까, 참 원작이 대단해서 과연 영화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임펙트를 줄지 좀 걱정이 되는군요; 제게 있어서 이작품은 평범한 히어로, 혹은 다크 히어로 물도 아닌데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 그러면서 무게감을 잃지 않고 사람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재미를 가진 만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책을 빌려서 조심스럽게 보았는데, 1판 전체에 인쇄불량이라는 문제 덕택에 친구놈에게 1권을 새로 사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만화(......)입니다. 부디 영화에서 그러한 장점을 잘 살리길 빕니다.

개봉하면 한번 꼭 보고 싶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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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하면서 본건지 아니면, 3D로 구현된 네크로모프들이 대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좀 시시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점은 웹에 공개된 코믹스 상의 이지스 콜로니 전멸 직전, 그리고 이시무라 호의 전멸과 본편 게임의 주인공인 아이작 클라크가 이시무라 호에 도착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프리퀼 같은 작품입니다. 작화 자체는 괜찮습니다. 미국 애니식의 작화랄까, 나름 독특하더군요. 다만, 고어 장면에서는 미묘하게 싱크로가 안맞는 듯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감상한 버전은 블루레이 립 버전이었는데, 약 한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지만 용량이 무려 2기가(!)에 육박하는 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블루레이가 기반이라서 그런지 화질은 최상급이더군요.

스토리는...뭐 별거 없고, 이시무라가 어떻게 전멸하는가를 다루는 작품이더군요. 60분 내내 그거 말고는 별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뭐, 게임은 이미 네타를 당해서(......) 대충 내용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몇몇 장면들은 게임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듯 싶습니다.

다만, 데드 스페이스의 프리퀼이다 보니까 꿈과 희망이 없는 시궁창 엔딩을 지향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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